*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국역본이 드디어(!!) 출간되었군요. [형이상학] 전체의 번역이 아니라 발췌 번역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에 따라 본문을 번역하고 해설과 주석을 붙여 놓아서, 전공하지 않는 분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더 편할 듯합니다.

어쨌든 서양 철학의 거대한 발원지 중 하나인 [형이상학]이 국내에 소개되어 더할 수 없이 기쁘군요. 조만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명제론]도 이제이북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서양 고전학을 전공하는 분들이나 철학도들에게는 매우 기쁜 가을이 아닐 수 없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 주요 본문에 대한 해설.번역.주석
조대호 (지은이)

 


 

 

 

 

 

소개글
서양철학사의 고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소개하는 안내서. <형이상학>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물음들, 있는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있으며, 그것들의 궁극적인 근거는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고전이다.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모아 후대의 편집자 안드로니코스가 붙인 'ta meta ta physika', '형이상학'이라는 말의 의미와 사용 경위를 추적하고 <형이상학>의 전체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또한 주된 내용에 따라, '존재론, 제일 철학, 신학', '존재론과 실체론', '<형이상학>과 신학'의 세 장으로 나누어 <형이상학>의 본문을 번역, 해석하고 주석을 덧붙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의 핵심은 실체(ousia)에 대한 이론이다. 실체는 있는 것들 가운데 첫째로 있는 것(proton on)이요 다른 것들은 모두 그것에 의존해서 있기 때문에, 있는 것에 대한 탐구는 실체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의 기본 관점이다. 그런 뜻에서 <형이상학> Ⅶ권 1장, 1028b2-7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탐구 대상이 되고 언제나 의문거리인 것, 즉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니......, 우리는 가장 많이, 가장 먼저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그런 뜻으로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 본문 88쪽에서

저자소개
조대호 -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있다.

작가의 말
서양 철학을 받아들인 한 세기를 바라보는 오늘날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수용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는 셈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서양 철학 수용의 깊고 넓은 틈새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이런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 <형이상학>을 올바로 소개하려면 책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이 일을 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겠기에 그 준비 작업의 하나로서 이 주해서를 꾸미게 되었다. - 조대호



 책속으로


차례

역해자의 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1.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삭항>: 이름과 내용
1. ta meta ta physika와 형이상학
2. <형이상학>의 내용

2. 존재론, 제일 철학, 신학
1. 지혜: 보편적인 첫째 원인과 원리들에 대한 앎
<형이상학> Ⅰ권 1장-2장
2.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서 탐구하는 학문
<형이상학> Ⅳ권 1장-2장(부분)
3. 자연학, 수학, 제일 철학
<형이상학> Ⅵ권 1장과 ⅩⅠ권 7장

3. 존재론과 실체론
1. 실체의 일반적 본성과 종류
<형이상학> Ⅶ권 1장-2장
2. 실체와 기체
<형이상학> Ⅶ권 3장
3. 실체와 본질
<형이상학> Ⅶ권 4장-6장
4. 실체와 생성
<형이상학> Ⅶ권 7장-9장
5. 본질과 정의
<형이상학> Ⅶ권 10장-11장
6. 본질과 정의: 정의의 통일성
<형이상학> Ⅶ권 12장과 Ⅷ권 6장
7. 실체와 보편자
<형이상학> Ⅶ권 13장-16장
8. 실체: 존재의 원인
<형이상학> Ⅶ권 17장
9. 가능성과 현실성
<형이상학> Ⅸ권 6장(부분)과 8장

4. <형이상학>의 신학
1. 영원한 원동자의 존재와 작용
<형이상학> ⅩⅡ권 6장-7장
2. 신적인 정신: 사유의 사유
<형이상학> ⅩⅡ권 9장
3. 선의 원리와 자연 세계의 질서
<형이상학> ⅩⅡ권 10장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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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0-2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이북스가 서광사의 뒤를 잇는군요

balmas 2004-10-2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를 이을지는 좀더 두고봐야죠.
서광사는 20여년 동안 수백권의 책을 낸 곳인데 ...

瑚璉 2004-10-2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렇게 살 책이 많아지면 곤란한데요 (-.-;).

balmas 2004-10-2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호련님,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래도 좋은 책은 ... 어쩔 수 없죠???
새벽별님, 조대호 씨는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이고,
제가 듣기로는 외국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좋은 연구자라고 하니까
믿고 구입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째 책 외판원 같은 느낌 ... ㅋ)

MANN 2004-10-3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드디어...;;

...몇 년 전, 수능 보고 나서 아리스토텔레스 읽어 볼까하고 서점을 뒤져 보다
아리스토텔레스 책이 거의 없다는 것에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오르네요.
이름은 못 들어 본 사람이 없을 듯한 유명한 철학자인데 정작 책은 없다는 게...

반가운 일이네요. ^^

balmas 2004-10-3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한번 사보라구. 나 학부 다닐 때는 희랍철학 관련해서는
정말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었는데, 앞으로는 점점 더 번역도 많이 나오고 좋은 연구서도
많이 나올 것 같아. 반가운 일이지.^^
 

 

 

‘21세기판 니체’ 슬로터다이크의 ‘도발’


  관련기사

  • 슬로터다이크?

  • “유전공학 통해 새 인간성 창조” 주장

    지난 20일,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배아복제 연구 재개를 선언했다. 최근 막을 내린 인간복제금지협약을 위한 유엔회의는 끝내 찬반논쟁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유럽국가들과 함께 ‘치료적 복제 허용안’을 제출해 찬성론에 가담했다. 선구자적인 한 유전공학자의 노력 덕택에 이제 한국은 이 세계사적 논쟁의 첨단에 서있다.

    유전공학을 철학전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

    이런 급박한 변화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 인문학계에 독일의 한 철학자가 찾아 왔다. 28일부터 11월2일까지 네차례에 걸쳐 국내 강연을 펼칠 페터 슬로터바이크(56·독일 카를스루에 조형대학 총장)가 주인공이다. 때맞춰 그의 사유를 소개하는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한길사)과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문예출판사) 등 두 권의 책도 동시에 발간됐다.

    슬로터다이커는 배아복제를 비롯한 유전공학의 기술적 성취를 철학적 사유의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의 인문학적 논쟁의 진앙지 노릇을 하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하버마스와 대립하면서 독일 철학계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나찌즘과 잇닿은 궤변론자라는 악평도 있다.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등 출간

    여러 면에서 ‘독일적’인 배경을 지닌 그의 사유는 ‘21세기판 니체의 기획’이라 불릴만 하다. 슬로터다이크는 근대적 휴머니즘의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포스트 휴머니즘’을 주창한다. 그에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야만성과 투쟁해온 과정이다. 전통적 휴머니즘은 이를 위해 문자를 매개로 한 ‘길들이기’의 전략을 택했지만, ‘문자의 시대’가 끝나면서 이 방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새로운 미디어 사회의 도래와 함께 인간의 공존이 새로운 토대 위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인류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화’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전쟁과 제국주의,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인간의 일상적 야수화”다.

    철학·과학자 연합한 초인 필요성 주장

    바로 이 지점에서 슬로터다이크는 유전공학에 주목한다. 그에게 인문학적 교육이나 유전공학은 모두 ‘사육(길들임)’의 한 방식이며,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간섭의 또다른 얼굴이다. 이제 새로운 인간성 창조는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인 유전공학의 적극적인 활용을 요구한다. 심지어 그는 바람직한 인간성의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철학자와 과학자의 연합이라는 ‘21세기판 초인’의 필요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나찌를 기억하는 현대의 지식인을 ‘경악’시킨 그의 사유는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니체주의자의 궤변으로 간단히 일축되지 않았다. 이번 방한 강연의 주제가 ‘세계의 밀착-지구화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라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그의 문제의식은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적 지구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네차례 강연

    분명한 것은 프랑스의 해체주의 이후 별다른 지적 자극을 받지 못했던 국내 인문학계가 모처럼 논쟁적 철학자를 만났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서구 ‘사상’의 수입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사유’할 계기까지 품고 있다. 철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인간복제의 기술적 선두 주자가 바로 한국이기에 그렇다. 이제 우리의 인문학계가 응답할 때다. 한국철학회(회장 성진기) 주최 제8회 다산기념철학강좌의 하나로 열리는 그의 강연은 28일 서울 언론재단회관에서 열린 데 이어, 30일 한남대, 11월1일 계명대, 11월2일 서울대 등에서 계속된다. (02)820-0370.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슬로터다이크?

     

    “니체의 초인이론 변형시킨 파시즘적 수사”
    언론비판 맞서 대논쟁

    슬로터다이크의 유명세는 독일 언론을 통해 전개된 이른바 ‘슬로터다이크 논쟁’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논쟁은 인간복제를 둘러싼 현대 철학의 논점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인문학과 저널리즘이 어떻게 서로에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발단은 99년 7월 ‘하이데거 이후의 철학’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슬로터다이크가 발표한 강연문이었다. 그 내용에 대해 〈차이트〉가 “니체의 초인이론을 유전공학 시대에 맞게 변형시킨 파시즘적 수사”라며 비판기사를 싣자, 슬로터다이크가 “저널리스트 주제에 내 논문을 제대로 이해하긴 했느냐”며 반박글을 기고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하버마스의 사주’로 단정하고, 하버마스에게 보내는 장문의 서한도 언론에 실었다. 여기서 그는 하버마스의 후기비판이론을 “자신만이 윤리적이라고 착각하는 독선적인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맹비난했다. 결국 유전공학을 둘러싼 논란이 근대적 합리성을 넘어서려는 두가지 기획(비판이론과 포스트휴머니즘론)의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 셈이었다.

    〈차이트〉 〈슈피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독일의 주요 언론매체들이 이후 1년4개월 동안 30여차례에 걸쳐 하버마스 등 유력 학자들의 기고와 대담, 관련 학술 기사들을 통해 이 논쟁을 다뤘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잘못된 환상 △인간성의 우열을 나눌 기준의 자의성 등이 비판의 근거로 등장했다. 동시에 △유전자 조작이 반드시 인간 존엄성의 훼손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유전자 의존도는 얼마나 큰 것인가 △도덕성 함양을 위해 왜 인간은 (유전자 조작이 아닌) 교육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인간은 왜 불완전한 자연생식을 통해서만 출현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도 제기됐다.

    이번에 발간된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등을 통해 이 논쟁을 소개한 이진우 계명대 교수(철학과)는 슬로터다이크를 “계몽주의에 대한 니체의 비판적 계몽작업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위험한 문제를 위험한 방식으로 다루는 탓에 여러 오해를 ‘자초’하고 있지만, 그 지평은 ‘계몽’과 ‘비판’에 잇닿아 있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한국일보

     

    獨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 방한
    "생명복제 무조건 반대는 유아적 발상"

    인간 생명 및 존엄성을 절대시하는 인문주의적 학풍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생명복제 등 유전공학을 옹호, 독일 지성계에 충격을 주었던 페터 슬로터다이크(57) 칼스루에 조형대 총장이 한국을 방문해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올해로 8회째인 한국철학회 다산기념철학강좌에 초청돼 방한한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한국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83년 발간한 ‘냉소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철학자다. 그는 특히 99년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들’라는 논문을 발표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제자들과 격렬하고도 감정적인 논쟁을 벌이며 “비판이론은 죽었다”고까지 선언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그는 고전적 휴머니즘과 인문주의적 교육을 통해 인간의 야수성을 길들여온 프로젝트는 실패했다며 그 대안으로 유전공학을 통해 엘리트를 선별하고 배양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자는 생각의 단초를 제시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독일 학계와 언론들은 니체가 말한 초인의 탄생에 빗대어 ‘차라투스트라 기획’이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차라투스트라 기획’을 두고 생명공학과 관련한 윤리적 문제를 배제한 극우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생명공학에 대해 불안만 가질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생명복제를 반대하는 종교계 등에서는 수정 이전 줄기세포 단계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유아적 발상”이라며 “심지어 인간의 유전병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자학적 발상이 아닌가. 생명공학을 통해 유전적 고통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고 반문했다.

    최근에는 세계화와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철학적 관점에서 점검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2차 대전을 전후해 유럽 국가들의 일방적인 영역 확장의 역사가 끝나고 세계의 역학구도가 평형을 찾아가고 있으나, 미국은 이 같은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며 군사적 기초 위에서 일방주의를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 프레스센터에서‘수정궁:자본주의적인 안락과 테러리즘’을 주제로 강연한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지구화의 완성:지구라는 기호의 승리’(30일 오후2시ㆍ대전 한남대) ‘응축불가능성:지역의 재발견’(11월1일 오후3시ㆍ대구 계명대) ‘미국은 예외인가:어떤 유혹의 해부’(2일 오후3시ㆍ서울대) 등 모두 4차례 강연을 한다.

    방한에 맞춰 그의 대표 논문 3편을 번역한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한길사)과 그의 생명복제 논쟁을 이진우 계명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분석한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문예출판사)도 나왔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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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케 현상 2004-10-2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들고 가서 읽어 볼게요^^

    MANN 2004-10-3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강연회 포스터를 본 듯 한데...
    이것만 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름이 한겨레 기사 두 번째 문단에선 슬로터바이크,
    세 번째 문단에선 슬로터다이커라고 되어있네요;;
    기사에서 사람 이름을 두 번이나 틀리다니;;)
     

     

     

     

    음악, 문학, 그리고 맥주가 생활 속에…

     

    동유럽 여행기 <1>체코 프라하

    이상희 <ishtarfor@hanmail.net>
              
    ▲ 유람선에서 본 밤의 프라하.  ⓒ 이상희

    석양이었습니다, 프라하는….

    밤에 도착한 공항은 처음인가? 기분 탓인 지 프라하 공항은 애잔한 느낌을 주네요. 시설이나 디자인은 아주 세련됐는데….

    위협적이거나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울린, 보기 드문 공항 건물입니다. 공항 주차장 조명이 녹색 창과 아이보리색 벽에 부딪혀 따뜻하고 친근해 보이네요.

    사실 공항들 다 비슷하고 거기서 거기지만 버스를 기다리고 앉아있으니 전에 김해공항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혼자 해지는 시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일까요….

    참, 제가 비행기로 여행을 다니니 '웬 호사?'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으실 듯합니다. 저도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저가 항공사들이 엄청 많습니다.
    GO-FLY, EASYJET., RYANAIR….

    물론 시시각각 요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터넷을 잘 두드리고 있어야 합니다. 여행 한 코스를 마치고 와서, 싼 표를 찾아서 돌아다니다, 좋은 조건을 찾으면 바로 떠나는 그런…. 아무튼 좀 황당한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여기 프라하도 영국까지 왕복항공료가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였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런던까지 기차 타고 가는 것보다 싼 가격입니다.

    ▲ 유람선에서 본 프라하.  ⓒ 이상희

    프라하는…. 너무 반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깨끗하고 이쁘고…. 근데 사람들이 저마다 가장 인상적인 도시로 꼽는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부다페스트 쪽이 더 좋았거든요. 좀 더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 관광객이 적어서 그런가…. 사람 사는 데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프라하보다 좀 더 가난한 느낌이지만.

    영어 식으로 프라그라고 부르는 게 듣기 싫데요. 도시들 이름 그 나라 식으로 제대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이탈리아 쪽도…다 영어 식으로…. 오죽했으면 밀라노에서 나오는 가이드북 이름이 <밀란 이즈 밀라노>…. 거꾸로였나?

    제가 아무리 방향치일지라도, 한 도시에서 이틀쯤 지나면 대강 윤곽이 잡히고, 다니는 데 별 문제가 없어집니다. 근데 프라하에서는 나흘이 넘어가도 계속 헤매고 다녔습니다. 작은 지역들은 익숙해지는데, 그것들이 결합이 안되는 겁니다. 심지어 가이드 투어까지 했는데 말이죠. 이유를 모르겠어요….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강에는 다리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제일 유명한 다리는 '카를 다리'입니다. 프라하성이랑 시내 쪽을 연결하는 다리지요. 이 다리에는 아주 근사한 조각들이 많이 있는데,게 중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조각이 있지요.

    ▲ 체코 성인 Jan Nepomucky의 조각상.  ⓒ 이상희
    Jan Nepomucky라는 체코 성인의 조각상입니다. 조각상 아래 쪽에 조각되어 있는, 순교하는 성인의 모습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한가지는 들어주신다네요.

    우리네 부처님들이랑 비슷하지요. 그 옆의 개의 조각을 붙잡고 기도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일생, 자신에게 충실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요? 그 얘기를 프라하 가기 전부터 들어서, 계속 고민하다 카를 다리를 한참 가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만 들어준다니까 뭘 원해야 되는지 도저히 고를 수가 없더라구요. 그냥 구경하고 다시 가면 될텐데 인간이 고지식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비겁하게 두리뭉술한 소원을 만들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남해 금산 보리암 갔을 때도 소원 하나 들어주신다고 해서 전날 밤부터 계속 고민했었는데…. 하여간 인간이 얄팍해요…하하.

    프라하 성내의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가 독특합니다. 대부분의 창은 보통 스테인드 글래스 분위기인데 창 하나가 선명한 채색화의 느낌을 줍니다.

    창 옆의 벽에도 그림이 인상적인데, 프레스코화도 아닌 것 같고 마치 판박이를 붙여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성 조지 교회당은 천장이 나무로 격자무늬 모양으로 짜놓아서 독특해 보였습니다. 미사 의자도 이때까지 다녀본 중에 가장 질이 좋아보이더군요.

    성내의 황금 소로는 예전에 연금술사들이 연구하던 집들이라네요. 카프카가 잠시 집필했던 집도 있구요. 지금은 공예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로 꾸며져 있는 집들을 구경했습니다.

    그 집들 낮은 2층은 쭉 연결되어 갑옷이나 창들을 전시해 놓았더군요. 근데 그런 건 별로 재미없고 벽에 있는 창이 아주 독특하데요. 통나무를 잘라 중간에 사각으로 홈을 파서 끼워 놓은…잘 설명이 안되네요. 어쨌든 재미있는 창이었습니다.

    프라하에는 카프카의 흔적이 참 많네요. 하긴 카프카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조각들을 그냥 생활로 받아들이는구나 싶을 정도로 문화적인 분위기입니다.

    ▲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  ⓒ 이상희

    전에 프라하를 다녀오신 분이 저더러 꼭 프라하 가야한다고 하셨는데 이유를 알겠더군요. 프라하는 맥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입니다. 오리지널 버드와이저를 비롯해…. 버드와이저나 미켈롭이 체코의 지방 이름이라네요.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많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라거 보다 비터 쪽을 좋아하는 편이라 영국 쪽 맥주가 더 입에 맞지만 워낙 다양하고 맛있는 것들이 많으니 종류별로 맛보는 재미로 마시게 됩니다. 밥 먹으면서도 한잔, 길 가에 앉아 쉴 때도 한잔, 목마를 때도 맥주 한 캔…하루종일 맥주를 달고 다닙니다.

    프라하에서 밥 먹고 물론 맥주도 마시고…숙소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맞고 가든지 기다려 보려고 하는데 제대로 비를 피할 곳도 마땅찮고 계속 더 심해지데요.

    그 핑계 대고 가까운 펍으로 뛰어들었는데…이 집 참 좋더라구요. 테이블 다섯 개 정도의 작은 가게인데 아주 관록있는 느낌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참 편하게 해주시더군요.
    낯선 나라에서 처음 간 곳인데도 늘 다니던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낮에는 웬만히 혼자 있어도 밤에 혼자 술집에 가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체코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서유럽 사람들 기준으로 그런 것 같고, 그냥 우리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체코 음식들은 먹을 만 하구요. 전통 스프라는 건 스코틀랜드 홈메이드 스프랑 거의 흡사합디다.

    ▲ 프라하 성내의 황금 소로.  ⓒ 이상희

    기름기가 약간 많은 게 차이랄까? 닭 같은 걸로 육수를 내는 것 같고 감자, 당근, 샐러리 같은 야채를 잘게 썰어서 푹 끓였는데 거기다 보리 비슷하게 생긴 곡식을 같이 넣었더군요. 국에 밥 말은 것 같은 식이었습니다.

    체코는 웨이터들이 우리 1년치 영수증 모으는 지갑처럼 칸이 많이 나눠진 지갑을 들고 다니며 바로 계산을 해줍니다. 돈의 단위가 워낙 많아서 그런 걸 사용하나본데 볼 때마다 좀 우습더군요.

    제가 워낙 수치에 약하다 보니 체코랑 헝가리에서는 화폐의 단위나 가치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고생하다가 그냥 환산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습니다. 도대체 유로화 전에는 어떻게 유럽 여행을 했는 지 존경스럽더군요. 그때 여행자들….

    밤에 유람선을 탔습니다. 강을 따라 서너 시간 내려가는 코스였는데 좀 어설프지만 재즈를 연주하는 밴드도 있구요. The Girl From Ipanema, La Vie En Rose 같은 곡들을 연주하는데 공간이 넓으니 소리가 다 퍼져버리네요. 다리 밑을 지나갈 때는 소리가 울려 제법 들을만 합니다. 역시 울림판이 중요하군요.

    이 많은 사람들 중 일행 없는 혼자는 또 저 하나네요. 이제 적응도 되어가지만 특히 이런 밤 유람선 같은 데는 워낙 다정한 사람들이 많아서 강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강 중간쯤 갔다 다시 돌아오는데 요즘 해가 늦게 지니 프라하성 조명이 켜지는 걸 기다리느라 배가 일없이 빙빙 돌고 있네요.

    ▲ 성 비투스 성당.  ⓒ 이상희

    마지막날은 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에 갔습니다. 이곳은 동화 속 마을 같았습니다. 처음 이 도시로 접어들 때, 숲 속에 작은 성 같은 호텔과 예쁜 집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모습이 참 이쁘더군요.

    마침 영화제가 한창이었는데 김기덕감독전이 있어서 거리에 영화를 소개하는 대형포스터 중에 '나쁜남자'도 보이더군요. 워낙 광적인 분위기의 부산국제영화제 밖에 영화제를 본 적이 없는지라, 영화제 때문에 복잡하다고 하는 데도 그냥 느긋한 관광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작은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온천수가 나오는 곳들이 있어서 도자기로 된 전용컵으로 오며가며 마시고 다닙니다. 거리 중간에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많은 도로는 그 길에서 담배를 필 수도 없고 개를 데리고 다니지도 못하게 해놓았더군요.

    모든 여행길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있기 마련이지만 들어나 봤습니까? 투어버스 운전사가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얘기…. 황당하더군요. 프라하에서 다시 차가 와서 태우고 간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프라하로 돌아가는 일 밖에 없는 듯 느긋했지만 저는 그날 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타야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도 미안하다는 얘기만 하고…예정보다 세 시간쯤 늦게 출발해서 정말 열심히 달리는데… 세상에 우박이 쏟아지데요. 정말 차 지붕, 창에서 툭탁툭탁 소리가 나도록 큰 우박들이….

    ▲ 황금 소로의 통나무 창.  ⓒ 이상희

    겨울에는 지름 2,3 cm의 우박들이 온다고 하네요. 와이퍼를 움직여도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을 만큼 내리는 상황에서 당연히 거북이 걸음…어쨌든 기차 타기는 탔습니다. 진땀났지요.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 가는 기차는 침대칸이었습니다. 3인용 객실이었는데 출발할 때까지 다른 손님이 없더군요. 마침 승무원아저씨도 너 혼자 쓰는 거라고 얘기하셔서 횡재다 생각하고 대강 싼 배낭 짐 풀고 세수하고 난리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막 두드립디다.

    3중으로 잠궈놓은 자물쇠를 겨우 열었더니 아까 그 승무원아저씨 안면을 바꾸시고 딱딱한 표정으로 니 자리는 꼭대기라고 하시는데…. 그 뒤로 서너살된 꼬마랑 젖먹이 아기를 안고 산만한 배낭을 진 엄마가 들어옵니다.

    부랴부랴 짐을 삼층으로 쓸어 올리고 인사를 하는데, 그 시끄럽고 답답한 침대칸에 갓난아이가 탔으니…애기 엄마는 미안해 하지만 어쩌겠어요. 다들 고생하고 가는 수밖에….

    근데 이 열차가 체코에서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로 들어가니 겨우 애 재울 만하면 국경 통과하는 검문소입니다. 나가고 들어가고 도합 4번의 여권검사로 다들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 프라하 전경.  ⓒ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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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무비 2004-10-2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의외로 굉장히 섬세한 분이시군요.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전 생각난 김에 따우님 방에 가서 알래스카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거든요. 따우님은 안 계셨지만......
    그런데 프라하 기행문을 쓴 이상희 씨가 <잘 가라 내청춘>의
    그 시인 이상희 씨는 아니겠죠?
    담담한 여행기와 사진이 마음에 듭니다.
    고마워요, 발마스님.^^

    balmas 2004-10-2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의외라니요??
    평소에 얼마나 둔감해 보였으면 ...(ㅋㅋ)
    시인 이상희 씨인지는 확인이 안되는데요.

    릴케 현상 2004-10-2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이 여행안내를 시작하셨네요^^

    balmas 2004-10-2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라하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더라구요.^^

    balmas 2004-10-2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마련하셔서 꼭 가보세요.
    저도 언젠가는 ...^^
    (헉, 원고청탁 거절했다는 소식이 따우님 귀에까지 들어갔군요.
    저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바쁘기도 하고 데리다 추모글은
    벌써 쓸 만큼 썼는지라 ...)

    숨은아이 2004-10-2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를로비바리라면 베토벤도 애용했다는 온천지네요. 가보고 싶어라. 그렇게 먼 곳에서 김기덕 감독전을 하는군요!

    balmas 2004-10-30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죠, 베토벤도 애용했던 곳이죠.
    (마치 잘 안다는 듯이 ... ㅋㅋㅋ;;;)

    딸기 2004-11-0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프라하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런데 저 여행기는 퍼오신 것 같은데, 발마스님도 프라하에 가보셨던 거예요?

    balmas 2004-11-0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스트롱베리님,

    저 같이 게으르고 돈없는 촌놈이 프라하 같은 데 가봤을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언제 가봐야겠다, 벼르고 있을 따름이죠.^^
     


     

     

     

    수정처럼 맑은 물, 그리고 '오물'의 맛

     

    한스와 함께 하는 바이칼 여행 <3>멋있는 곳, 맛있는 곳
    윤희만 <imhans89@hanmail.net>
              
    ▲ 노을 지는 바이칼 호수. 출처 http://nature.baikal.ru  

    바이칼은 남부 시베리아 산지에 있는 호수이다. 호수의 길이는 636㎞, 면적은 3만1천500㎢(네덜란드의 넓이)로 세계 호수 중 면적으로만 8번째로 꼽는다.

    하지만 물의 깊이와 수량을 따진다면 바이칼 호수는 어떤 호수도 따라올 수 없다. 평균 깊이는 730m, 가장 깊은 곳은 1620m, 수량은 23만㎡이다. 이는 러시아에 있는 전체 담수양의 80%, 세계 전체 담수양의 20%를 차지하는 엄청난 양이다.

    호수 해안선의 총 길이는 2100㎞이다. 재미있는 것은 336개의 하천이 바이칼 호수로 들어오고 있으며, 오직 하나의 강만이 바이칼에서 나간다.

    바이칼 호수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은 부럇트 민족인데, 현재도 이 곳에 하나의 공화국으로 존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들에게 바이칼 호수는 매우 신성한 곳이었다. 부럇트 민족은 돌 하나라도 함부로 바이칼 호수에 던지거나, 그 위치를 바꾸는 것을 금기시했다.

    바이칼 호수로부터 빠져나가는 강은 오직 하나, 앙가라 강인데 이 강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 바이칼 호수에서 빠져나가는 앙가라 강. 이 강은 이르쿠츠크 시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오른쪽이 리스트뱐까 마을이다.
    출처 http://baikal.irkutsk.ru  

    전설에 의하면 바이칼은 늙은 아버지이며, 앙가라는 그 딸이다. 아버지의 성격은 매우 잔인하고 무정했으나, 외동딸인 앙가라를 무척 사랑했다.

    어느 날 앙가라는 아버지 바이칼이 잠든 사이 야반도주를 감행하여, 젊은 청년인 예니세이에게 도망간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아버지 바이칼은 크게 분노했다. 그의 분노로 하늘과 땅, 산맥과 호수가 어두워지고 천둥과 바람이 몰아쳤으며 바위들이 날아다녔다. 바이칼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커다란 바위를 앙가라에게 던졌고, 그 바위는 앙가라의 목에 걸렸다. 앙가라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빈다.

    앙가라는 “아버지, 바위 때문에 아무것도 마실 수가 없어요, 제발 물 한 모금만 마시게 해주세요”라며 빌었지만 아버지는 매정하게 답했다.
    “너에게는 물 한 모금도 줄 수 없고, 단 내 눈물만 줄 수 있다.”

    그래서 현재도 바이칼에서 앙가라 강으로 빠지는 호수 어귀 가운데를 보면 바위 덩어리가 올라와 있다. 그 바위가 바로 바이칼이 딸에게 던진 바위라 하고, 앙가라 강은 계속 가다가 러시아의 유명한 강 중 하나인 예니세이 강으로 빠지게 된다.

    ▲ 나무 아래 물을 퍼가는 구멍이 있다.  ⓒ 윤희만

    근데 차로 가다가 그 바위를 본 한스는 바위가 생각보다 작아 의아해했다.
    한스: 흠…저 바위가 목에 걸렸다니.. 별로 안 큰데.
    운전기사: 물 위로 올라와 있는 건 작지, 물 속에 있는 부분은 얼마나 큰데.
    한스: 글쿠나….

    예로부터 샤머니즘을 믿는 부럇트 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장소들은 바이칼 호수 곳곳에 있다. 현재도 부럇트 족이건 러시아 현지민들이건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동전, 담배 등을 던져놓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우리랑 같이 다니던 기사 아저씨도 차를 세워두고 담배 한 개피씩을 던져놓았다.

    겨울 바이칼은 장관이었다. 전설처럼 신령스럽기까지 했다. 바이칼 호수는 러시아의 국립공원이기도 하고, 유엔에서 정한 자연보호지역이기도 하다.

    처음에 어렵게 묵었던 집은 바로 바이칼 호숫가에 있었다. 집을 찾을 때는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수 얼음 위에 있는 조그마한 전나무들이었다.

    ▲ 바이칼 호수의 얼음 조각. 먹어도 된다. 입이 꽁꽁 얼지만.  ⓒ 윤희만

    호수는 전체가 얼어 있었다. 육지와 가까운 얼음 위에 중간중간 있는 전나무의 정체는 일종의 우물이었다. 사람들이 그 곳에 얼음을 깨고 나무를 세워놓는다. 왜냐하면 다음 사람이 물을 뜨러 올 때 표지판이 되는 것이다. 깬 곳은 약간 살얼음이 얼어 있으므로 삽 자루로 톡톡 두들겨서 깨고 물을 떠간다. 그 물은 식수다. 그냥 호숫물을 떠먹는다. 워낙 깨끗하니까.

    얼음 위를 처음 걸어갈 때 겁도 났다. 혹시 깨지면 어떡하지? … 어떤 곳은 얼음이 매끈하게 얼어서 속이 다 보였다. 나중에 한 친구한테 얘기했다.

    한스: 얼음이 너무 깨끗해서 속이 다 보이더라. 너무 신기했어.
    친구: 뭐가 보였는데?
    한스: 물이 보이던데.
    친구: ……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에서 물고기도 낚는다. 바이칼에 가기 전에 갔다 온 사람들은 '오물(омуль)'이라는 생선을 꼭 먹어보라고 했다.

    ▲ 바이칼 얼음 구멍에서 잡혀 올라오는 오물.  ⓒ 윤희만

    ▲ 금방 훈제된 오물, 싱싱하면서도 담백한 오물 맛을 한 겨울에 맛보는 것,추위도 잊게 된다!

      ⓒ 윤희만

    한스: 오물이라는 물고기를 꼭 먹어보래요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요?
    일행: 오물? 뭔 쓰레기를 먹으래??
    한스: 헉!

    발음이 좀 그렇지? 아무튼 간 날부터 계속 오물만 먹고 다녔다. 영하 20-30도에서도 호수가에 나와 나무를 지펴 훈제구이 한 오물 맛은 정말 일품이다. 그 외에도 ‘씩(сиг)’이라는 생선도 먹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생선들이 있는데, 너무 생소한 이름이라 사전을 보니 하나같이 '시베리아에서 나는 연어의 일종'이라고만 나온다. 그래서 여기서 나는 물고기들은 대개가 바이칼에서만 나는 종류이고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단다. 참 신기하지?

    그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은 물개다.
    민물에 물개가 산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는가? 특히 바이칼에 사는 이 물개를 '네르파'라고 부르는데,

    ▲ 바이칼에 사는 민물 물개, 네르파. 출처 http://nature.baikal.ru  

    친구: 물개가 다 있어?
    한스: 응.
    친구: 어떻게 물개가 호수에 있냐?
    한스: 그러게 말야..
    친구: 봤니?
    한스: 아니….

    사실 이 네르파라는 물개를 보려면 북쪽으로 상당히 올라가야 한단다. 사람이 없는 오지에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라, 우리가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어쨌든 우리는 바이칼에서 맛있는 오물을 열심히 먹었다.


    200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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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mas 2004-10-2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미있는데,
    게으른 나는, 직접 여행을 떠날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

    로드무비 2004-10-2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개의 눈이 너무 슬프고 예쁩니다.
    저는 오늘 아침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을 보고 알래스카에 가고 싶어
    여기저기 뒤져봤거든요.
    그런데 사진 한 장 구할 수 없어 주옥같은 글쓰기를 포기했다는......
    그런데 발마스님, 느림 님께 날렸다는 추천이 어디 있나요?^^

    balmas 2004-10-2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꼭 구슬같군요.^^
    ㅋㅋ
    다시 가서 추천했답니다.
     
     전출처 : 바람구두 > 전선기자 정문태 : 타인의 고통 속에서 찾은 믿음

    종군기자와 전선기자의 차이

    처음엔 그저 "정문태 선생"이라고 하자. 내가 처음 그를 불렀던 호칭이 그러했으니 리뷰를 올린다 하더라도 역시 처음 불렀던 호칭 "선생"을 빼는 것도 이상할 듯 싶다. 나는 그와 몇 년 전 전화통화로 그리고, 이 메일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지면에 특집으로 "전쟁없는 21세기를 위하여"를 기획하며 그의 글을 싣고자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의 사진들과 그에 담긴 사연을 글로 적는 일종의 "포토에세이" 형태의 글로 급하게 전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정문태 선생의 깐깐함이랄까, 고집스러움이라는 일종의 자기 검열 덕에 일하기는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껏 고양되는 경험을 했다. "포토에세이"라 하면 자동 연상되는 사진작가는 유진 스미스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유진 스미스는 매우 고집불통의 사내였고, 종종 자신을 고용한 언론사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알프레드 슈바이처를 취재한 사진을 놓고 "라이프" 편집진과 불화를 일으켜 결국 "라이프"와의 계약을 파기(다른 말로 '쫓겨나는')하기도 했다.

    사진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여 지각으로 매개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어떤 사진들은 그것들이 사색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소리를 듣게 만들고, 이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때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내도록 인도해 갈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생활방식이 그들에게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잘 구성하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들려줄 수가 있다. - 유진 스미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군기자"란 표현 대신 정문태는 "전선기자"라는 신조어를 대체어로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한 정문태의 정의는 "종군"이란 말은 군대에 종속된, 군을 따르는 존재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복종한다" 거나 "거역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의미이므로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기자가 영원히 군대에 복속당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도 집착하는 그의 이런 고집스러움과 자기 검열 과정이 지금의 정문태를 있게 한다. "전선기자 정문태!"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라면 이 책의 부제는 "전쟁 취재 16년의 기록"이 될 것이다. 개정 헌법에 의해 우리나라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로 규정되었으니 그가 전선을 누빈 16년 성상(星霜)에 대통령이 세 번 이상 교체되었다. 노태우에서 김영삼, 김대중을 거쳐 노무현에 이르는 시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격변의 시간이었다.

    정문태가 경험한 20세기의 전쟁, 학살, 분쟁

    20세기의 전쟁사를 나는 시기적으로, 역사적인 의미에서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하나로 묶어 파악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주전장은 유럽이었고, 이 기간동안 유럽은 그야말로 한 세대가 전멸해버리는 전쟁을 체험한다. 그리고 잠시의 휴식기를 거쳐 인류는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다. 혹자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나 규정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이 두 번의 세계대전은 크게 보아 하나의 전쟁으로 생각한다. 잠시 휴식기를 거쳤을 뿐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뒤이어 벌어질 전쟁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원인이 소멸되지 않았을 뿐더러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다음 전쟁을 위한 뇌관을 고스란히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세기 인류사에서 벌어진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에 벌어져 1945년 8월 15일에 끝난 30년 전쟁이었다. 세계대전의 원인은 유럽 중심의 세계통합 과정에서 소외된 신흥공업국들과 왕조 중심의 유럽 정치 질서의 붕괴라는 과도기 속에 자각하기 시작한 민족주의 의식이 맞붙으면서 세계대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체의 식민지라 할 수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며 힘을 축적해왔고, 유럽 내부의 충돌로 말미암은 몰락과정에서 유럽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오랫동안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이라 할지라도 힘의 일정한 비축을 전제로 한 참여를 통해 유럽의 질서를 조율해 오던 대영제국이 세계대전에 직접 참여하고, 전력투구한 결과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는 급격히 붕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이런 힘의 공백은 그간 유럽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놓여 있던 피식민지 민족의 민족적 자각과 맞물려 식민질서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고, 더이상 식민지를 직접 운영할 수 없게 된 유럽의 힘이 물러가는 틈새에서 수많은 전쟁, 분쟁, 내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폭력상황들이 발생한다. 우리가 직접 당사자였던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같은 국지전, 제한전쟁, 냉전의 이해당사자인 동서의 대리전 양상을 띤 열전들이 그것이다. 유럽의 패권이 밀려난 상황에서 그 힘의 공백을 둘러싼 각축에서 민족과 종교, 지역 등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을 선정해 동서 양대 진영의 이념적, 동지적 지원을 통해 전쟁을 치렀다.

    세 번째 단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비경쟁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 이후 일어난 힘의 공백 속에 주도권 다툼을 통해 벌어진 내전들이 될 것이다. 이 전쟁들은 모두 서로 밀접한 인과율 속에서 때로는 우연처럼, 때로는 필연처럼 서로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정문태가 목숨을 걸고 전선을 누빈 지난 16년의 역사는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의 전쟁들이었다. 나는 그가 40여 곳의 분쟁 혹은 전선의 현장을 다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곳이 현재 전쟁 상황인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부록으로 "세계분쟁지도"를 만든 기억이 나서 다시 그 지도를 펼쳐보았다.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 많은 신생국가들이 생겨난 것처럼 소련의 해체 이후에도 마치 도미노처럼 수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생겨났거나 만들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발생한 분쟁 지역만 하더라도 "멕시코(사파티스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아이티, 콜롬비아, 페루, 파푸아뉴기니, 티모르, 아체, 캄보디아, 버마, 스리랑카, 카슈미르, 펀잡,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젠, 체첸, 쿠르드, 그루지아, 몰도바, 키프로스,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얼스터, 이라크 시아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 예멘, 소말리아, 알제리 투아레그, 차드, 서부 사하라, 카사망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토고, 앙골라, 르완다, 수단, 에리트레아, 모잠비크" 등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구상 전 지역에서 연일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학살의 공포 속에서 살았다.

    90년대 이후라고는 했으나 이들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난 원인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분쟁의 첫 번째 단계, 두 번째 단계의 전쟁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의 전쟁인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이 누린 평화는 그들이 오늘날 누리는 풍요와 복지의 혜택은 이렇듯 그들이 뿌려낸 원죄의 씨앗을 미국이 지원하고, 발아시켜 타지역에서 대신 추수하는 덕에 누리는 것들이다.

    20세기 후반의 국지전들
    - 피, 학살, 인종청소 그리고 미국

    이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전선의 꽃, 전선의 부랑아들"은 그의 기자관, 취재관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종군기자의 의미와 그가 어째서 전선기자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자신이 어째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취재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정문태 자신이 스스로가 일반에게 영웅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얼마나 경계(자기검열)하고 있는지 잘 살필 수 있다. "혈액형 G의 논리"에서 그는 스스로 고백하길 "여행지"로서 전선을 택했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전선에 머물면서 "전선 중독" 현상이 나타났다고 고백한다.

    피를 본 전선이 다시 그 피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내게 숨어있던 들짐승과 같은 속성이 드러났다. 전선에서 느끼는 공포, 분노, 전율 같은 격렬한 감정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극단적인 쾌감으로 다가왔다. <본문 20-21쪽>

    만약 그가 기자가 아니라 직업군인이었다면 이것은 일종의 전후증후군으로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병사가 평화로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평온하고 일상의 생활이 전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을 때, 전역한 병사는 이것을 평온이나 평화로 느끼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거짓으로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병사가 아니라 기자였다.

    그러나 전선이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역사적 현장에 내가 서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아니었던가 싶다. 그 역사가 굴러가는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대가로 나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사람들이 사지로부터 빠져나오는 전선을 거꾸러 기어들어면서 나는 늘 내 존재를 역사 속에 집어넣었다. 그게 나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착각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본문 21쪽>

    나머지 5개 장은 그가 실제로 경험한 전장의 기록들이다. 일부는 이미 다른 책이나 기사를 통해(나 역시 이 책에서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몇몇 사진들도 볼 수 있는 드문 경험을 하긴 했지만) 공개된 적이 있는 것들이다. 첫 경험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그에게 "버마학생민주전선"의 경험이 그렇다. 그는 이 책의 2장 "나의 혁명, 나의 해방구"를 통해 버마의 마너플라우에서 경험한 학생 전사들과의 인연을 다소 감상적이기까지 한 필치로 회고하고 있다.

    매복병에게 걸려 나자빠진 5분여, 나는 인생을 스무 바퀴도 더 돌고 돌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지루했다. 극적인 순간에 사랑하는 이들을 곧잘 떠올리곤 하던 영화나 소설도 내것이 아니었다. 내 거친 숨소리를 내가 들으며, 내가 의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내 뇌가 정상인가 아닌가 의심해 보는 일뿐이었다. <본문 75쪽>

    나는 이 책을 통해 앞서 말했던 20세기 전쟁사의 후반부를 조합해 볼 수 있었다. 3장 "끝없는 전쟁"에서는 동서양의 중요 교통로로 탈라스 전투를 이끌었던 고선지도, 인도로 가는 길을 걸었을 혜초도 머물렀을 발자취가 남은 아프가니스탄을 다룬다. 중요한 길목이란 하나의 이유로 역사상 수없이 많은 외침과 내분을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20세기 막바지, 21세기 초엽의 지배자는 미국이다. 그는 이를 다소 낭만적인 표현을 빌어 "아프가니스탄의 천년전쟁"이라 말하고 있으나 천지사방이 지뢰밭이자 클러스터 폭탄(집속탄)의 불발탄들 때문에 놀 곳이 없어 공동묘지에서 뛰어 놀다 탈리반에게 학살당한 꼬마 천사들에겐 잠시 머물다간 지상의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외에도 남과 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다가 1국 2체제의 형태로 잠시 통일되었던 남북예멘이 결국 잠시의 통일 기간을 거쳐 다시 전쟁으로 불거진 예멘 전쟁, 카슈미르 분쟁을 다루고 있는 제4장 "멀고 먼 전선"이 주는 교훈은 1국 2체제의 통일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다.

    제5장 "비밀전쟁" 편에서 그는 20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분쟁의 숨은 얼굴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유럽을 대신해 새로운 전쟁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얼굴이다. 그는 "끝나지 않은 전쟁, 미국의 라오스 침공"이란 해묵은 과제들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세계적 석학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한 인물을 호명한다. 그는 바로 닉슨 행정부 시절 대통령보좌관 겸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였다. 그는 취임 이후 국무부의 통상적인 외교경로를 무시하고, 이른바 ‘키신저외교’를 전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이런 비밀 외교는 닉슨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며 성과를 높였다. 그러나 키신저의 비밀 외교가 늘 평화로왔던 것만은 아니다. 일찌기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전술핵무기의 한정적 사용을 주장했던 그 답게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의 배후 기지로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지목하고 이들 지역에 대한 폭격을 국회의 승인도 없이 비밀리에 실시했다.

    우리가 시드니 쉔버그와 디스 프란 사이의 감동적인 우정으로 기억하는 킬링 필드의 실제 주역은 바로 헨리 키신저와 닉슨 행정부였다. 그들은 라오스에 1964년부터 197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200만 톤에 이르는 각종 폭탄 700만 개를 라오스 상공에 투하했다. 당시 라오스 총인구는 400만명이었으니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통계 방식을 빌자면 국민 1인당 1.75개의 폭탄 0.5톤씩을 선사한 것이다. 참고로 미국이 한국 전쟁 당시 사용한 폭탄의 총량은 49만 5천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공격에 사용한 폭탄이 65만 6천 톤이었다. 라오스에 대한 비밀 폭격은 1973년에 끝났지만, 라오스에서는 오늘도 아이들이 죽어간다. 당시 미군이 뿌린 폭탄의 저주들이 거듭거듭 자라나는 씨앗들을 거두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문태는  전세계 언론 가운데 어디에서도 주목하지 않는 라오스의 비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캄보디아. 우리는 캄보디아에 대해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왕가위의 영화 "화양연화"로 우리에게 새삼스레 주목받게 된 "앙코르 와트" 유적과 크메르 루주에 의한 대량 학살을 지칭하는 "킬링 필드". 미국은 롤랑 조페의 감동적인 영화 "킬링 필드"를 전세계에 내보내면서 캄보디아에서 그들이 행한 잔혹한 폭격의 진구렁에서 살짝 비껴가고 싶어한다. 무려 200만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대학살은 2단계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1기인 1969년에서 73년 동안 미국의 폭격으로 60만에서 80만의 캄보디아 민간인들이 죽었고, 제2기인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크메르 루주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만약 책임을 따지자면 미국 역시 전범재판에 회부되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미국은 제2기에 벌어진 학살만을 문제삼는다. 물론 제2기에 벌어진 학살의 원책임을 묻자면 크메르루주의 지도자들에게 있겠지만, 미국의 폭격과 쿠데타 지원으로 말미암은 혼란이 없었다면 정글의 소수 게릴라 세력에 불과했던 크메르루주가 캄보디아 전역을 장악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보도를 통해 본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

    마지막 6장 "가슴에 묻은 이야기들"에서는 그가 첫 정을 주었던 버마의 마너플라우 함락 과정과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총을 들었던 버마의 소수 민족들과 학생들, 그리고 게릴라 지도자들의 최후와 내부 분열이라는 아픈 소식들을 들려준다. 소련의 최정예 군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판쉴의 사자"라는 칭호를 얻었던 아프가니스탄의 게릴라 전사 마수드의 암살과 얽힌 의혹들과 그가 추측하는 암살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는 이유를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동티모르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 역사의 현장을 누볐던 그만이 누릴 수 있는 가슴벅찬 감동이었을지 모르겠다. 무수한 희생을 뒤로 하고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고, 구스마오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은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으니 말이다. 그는 기자로서 흘리는 마지막 눈물임을 다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전선기자가 되었든, 종군기자가 되었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칼 한 자루를 지니고 산다. 그 칼은 "장자"의 일화에 등장하는 천민 백정 포정의 칼처럼 뼈와 살을 발라내듯 쓰일 수도 있고, 에밀 졸라의 칼처럼 "나는 고발한다(J'accuse!)"의 거꾸로 흘러가려는 역사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묵직한 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글을 써 세상에 알릴 때는 마음속에 지닌 칼을 꺼내 휘두르는 자객의 심정이 된다. 사마천이 실패한 자객들의 이야기를 사기열전에 포함시킨 것은 아마 그런 뜻일 게다. 정문태가 지니고 휘두르는 칼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베트남 전쟁을 통해 전쟁의 최고 상층부에 존재하는 이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실태를 고발한 언론은 이후 군부와 정치, 보수화된 대중의 뭇매라는 반동을 경험한다. 그들은 자본과 검열이라는, 드러나지 않는 제약과 살해의 위협 속에서 더이상 과거의 힘을 보이지 못한다.

    CNN은 알 자지라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언론에서 헨리 키신저는 여전히 세계적 석학이고, 아흐마드 야신은 여전히 극악한 테러리스트로 포장된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은 본격적인 언론길들이기에 나섰고, 미국 언론은 겉으로는 여전히 최고의 자유를 구가하는 듯 보이나 보이지 않는 검열과 통제에 질식해 버렸다. CNN은 연일 뉴스를 현장에서 보도하지만 진실만큼은 교묘하게 편집한다. 그들은 걸프전의 최첨단 정밀폭탄을 통한 "깨끗한 전쟁"만을 강조하느라 패전 후 후퇴하다 학살당하다시피한 이라크 군대와 오폭으로 숨진 민간인 피해를 눈감아 버린다. 군대의 브리핑을 앵무새처럼 받아 적으며 군대의 뒤를 졸졸 따르며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의 주방에서 발견한 밀가루를 흔들며 마약을 찾았다고 소리 지르는 미군 병사를 화면 가득 보여준다. 우리는 도덕교과서에서 언론 보도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화신으로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일화를 배웠다. 그들은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대포와 탄환에 불량이 많고, 불발탄이 많다는 보도를 내보냈고,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보도를 내보내 결국엔 이를 관철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보이는 것과는 늘 다른 이면을 갖는다. 내가 알기로 데일리 메일은 영국의 보수신문이고, 그들은 1896년 창간 이래 일관되게 보수 논조로 일관해왔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고, 2월 27일 밤 베를린 제국의회의사당 화재 사건이 일어난 뒤 나치가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유태인까지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보내자 그들은 "나치의 젊은 전사들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라는 기사로 나치에 힘을 실어 주었다. 네덜란드 소년 한스와 아무도 현장에 있지 않았음에도 마치 현장에서 이를 본 듯 전해준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처럼 진실은 종종 현실에 압도당해버린다. 연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정문태의 기사를 국내 신문들이 받아주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서평으로 다룬 신문사 역시 "한겨레"뿐이었다) ?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최소한 정문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사족 한 마디를 더 달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보도란 것이 과연 전쟁을 줄일 수 있을까?  전쟁보도로 잔인한 장면이 TV와 매스미디어에 홍수처럼 실리는 일은 과연 우리에게 전쟁을 멈추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까? 혹시 그것이 도리어 전쟁을 뭔가 낭만적인 것으로, 타지에서 누군가는 죽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계속 살 수 있다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보게 된다. 이에 대해 수잔 손탁은 "타인의 고통(이후, 2004)"을 바라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행위, 살아남은 혹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우리가 보도를 접하고, 본의 아니게 소비하는 자의 입장에서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잔 손탁의 이 말은 값싸든, 비싸든 "연민"하는 행위, 그 자체를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바로 "전쟁과 악랄한 정치"를 그대로 둔 채 연민만 보내는 행위의 가증스러움을 거부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논리 없는 연민""자기 연민"이고, "연민 없는 논리"는 잔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연민과 논리를 동시에 지녔으되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비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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