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티토 : 한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의 평전을 읽는 일

뛰어난 전기작가의 세 가지 덕목

오늘날 전기작가가 주는 인상은 힐러리 클린턴이나 마돈나 같은 인물의 뒤꽁무니를 추적해 이들이 구태여 감추고 싶은 것들을 파헤쳐 가십거리를 양산해내는 옐로우 페이퍼를 연상하거나 아니면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에게 고용된 대필 작가들이 쓰는 자서전 형태의 전기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시기나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은 일반 대중의 흥미를 유발한다. 사람들은 소위 잘 알려진 이들의 배꼽 아래 이야기와 같이 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 탓인지 우리 사회에서 전기문학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런 인식에 변화를 주게 된 것은 "체 게바라 평전"의 성공 이후 일어난 변화이다. 체 게바라에 대해 쓰여진 여러 종의 책들을 읽어 보았으나 지난 번에 성공을 거둔 "장 코르미에" 판 체 게바라 평전이 거둔 인기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흡함이 많은 책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이 책에 대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의아할지는 모르겠으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은 까닭이 책 자체가 주었던 것이라기 보다는 "체 게바라" 자신이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만한 사람이었던 탓이 더 크다고 여긴다.

코르미에의 게바라 평전은 당시 게바라의 행적만을 무미 건조하게 추적했을 뿐, 게바라의 활동이 가진 사회적 의미나, 당시의 시대 상황이 게바라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의 대응이 빚어낸 결과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부족한 인식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로 인식의 한계를 꼬집곤 하는데, 코르미에의 게바라 평전은 "체 게바라"라는 한 개인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 모르겠으나 체 게바라라는 한 개인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는 전문가이지 못한 전기 작가의 저술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기작가들, 예를 들어 "플루타르코스""스테판 츠바이크" 같은 일급 전기작가들은 역시 일급의 역사가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은 그들이 다루려고 하는 역사 속 인물들을 단지 개인의 삶을 추적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그네들의 삶과 역사를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비단을 짜내듯 서로 긴밀하게 결합시킨다. 뛰어난 전기작가는 문학가이자, 역사가이며, 동시에 뛰어난 취재기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전기 혹은 평전과 같은 장르에 대해 우리 문학계는 거의 전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 문학은 시와 소설만을 의미한다. 에세이 역시 일부 삶의 여유가 있는 이들이나 즐기는 시중한담으로 치부된다. 이래서는 철학적 에세이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에세이는 힙합이 그러하듯 한국에 와서 그저 미셀러니 수준으로 격하되며, 기자들의 르뽀 문학 역시 문학비평은 다루지 않는다. 잭 런던이나 조지 오웰의 르뽀가 서구에서는 정식 문학 장르 안으로 포용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다. 심지어는 작가나 시인이 저술한 산문집도 문학비평에서 제외되는 협소한 장르가 문학이다.

시와 소설만이 문학의 순수성을 담보해주는 장르로 머무는 동안 한국 문학은 계속 외국 이론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 상황에 놓일 것이고, 폐쇄적인 학문사회가 서로 인접한 학문의 교차를 금지하는 것처럼 서로의 밥그릇을 놓고 싸우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노벨문학상의 역대 수상자 면면을 살펴보라). 한국에서 소위 일급 문학가들이 집필한 전기문학들은 문학적으로는 평가받을지 모르나 역사학자들에게는 고증의 가치조차 없는 것들로 평가받기 십상이다. 이는 문학가들의 전기문학인 탓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전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급 사료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유고슬라비아는 있으나 유고슬라비아 국민은 없다

우리의 근대는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미완의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남과 북은 그들의 태생만큼이나 상이한 체제를 구축했고, 북의 정치 지도자 김일성의 행보는 호치민식 민족주의, 티토의 비동맹외교노선, 카스트로의 반미와 일부분은 겹치고, 일부분은 다른 그들만의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의 평전을 읽는 일은 냉혹한 국제질서의 격동기 속에서 각기 다른 민족과 극심한 분열 속에 놓였던 유고가 어떻게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와 그의 리더십을 통해 봉합될 수 있었던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시기적으로 구분하자면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요셉 브로즈가 유고 공산당의 정치지도자로 부각되는 단계, 2단계는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숙청을 피해 유고지도자가 된 티토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우스타샤, 체트니크의 협공으로부터 승리하여 유고의 실질적 지도자로 인정받는 단계, 3단계는 스탈린의 공격으로부터 유고 지도자의 지위를 지속시키고 유고의 독립성을 수호하는 단계, 4단계는 외부적으로는 비동맹 외교의 중추적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들로 부터 유고식 사회주의를 지켜내는가로 구분된다. 이렇듯 20세기 가장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정치지도자 티토에 대한 평가가 단지 위대했다는 한 마디만으로 규정될 수 없을 만큼 복잡할 것이라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가능하다.

제1단계는 티토가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는가를 살피는데는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을 준다. 과거 티토의 행적에 대해서 오늘날까지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1892년 5월 7일 크로아티아 쿰로베츠 계곡에서 태어난 요시프 브로즈는 그의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 이르까지 그가 진짜 요시프 브로즈가 아니라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북의 김일성이 진짜가 아니라는 소문처럼 말이다. 우리가 흔히 "티토"라고 알고 있는 이 사람은 사실 무수히 많은 가명을 지닌 사내였고, "티토"라는 이름 역시 그의 무수히 많은 가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티토가 통치하던 나라 유고슬라비아는 나라는 있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진정한 의미의 유고슬라비아 인들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티토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를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인, 몬테네그로인, 코소보인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유고슬라비아라는 지명 속에 살고 있는 각기 다른 민족들인 이들은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의 경계선상에서 종교적으로도 가장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었다. 거기에 비잔티움 제국을 함락시킨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종교간의 대립 양상을 한층 더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의 평전을 읽는 일

"제스퍼 리들리"가 집필한 "요셉 브로즈 티토"의 평전은 매우 뛰어난 전기작품이자, 나에겐 그간 궁금했으나 충분한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었던 지난 역사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담긴 책이었다. 우리에게 유고슬라비아는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제3세계의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거울이자 시금석 역할을 해주는 나라이지만 이에 대한 접근은 통제되고 있었다.

내가 지닌 여러 궁금증 가운데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파시즘에 저항한 주된 세력은 좌파였으나 이들이 정권을 장악하지 못한 까닭과 그렇게 되기 까지의 과정은 총체적으로도 궁금한 부분이었으나 각국의 사례 역시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총론적 접근방식으로야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리스와 터키 등에서 발칸 반도와 그 인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각론적 접근이 가능한 책은 현재도 태부족인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비교적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그리스"를 우리는 오로지 "신화의 땅"으로만 이해하지만 그리스 올림푸스에는 제우스와 아프로디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에 저항한 수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 뛰어난 활동을 보인 다수는 좌파였으며 이들은 전후 영국의 지원을 받으며 복귀한 그리스 왕정에 반대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패하여 많은 수가 유고슬라비아로 탈출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된 세계질서 속에서 과거의 강대국들 영국과 프랑스, 미국들은 그들의 정치체제에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은 반면, 신흥독립국들이나 약소국가들은 대개 두 가지 혹은 크게 보아 세 가지의 발전 양상을 보인다. 이것을 유럽이라는 지역으로 한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와 같이 좌파의 몰락이 기존 정치체제의 부활로 이어지고, 이것이 표면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태로 전이되었다가 군부쿠데타와 연이은 파시즘적 군부독재로 이어졌다가 다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가는 형태이거나 폴란드, 루마니아, 알바니아 등과 같이 이전의 정치체제가 파시즘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타의에 의해 소련공산주의 체제로 갔다가 소련의 몰락 이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전이되는 양식이다. 

물론, 제3의 방식엔 과거 동서 냉전 시절 비동맹외교를 주도했던 네루의 인도와 티토의 유고슬라비아가 있다. 이들 두 국가의 발전 양태나 정치 체제, 외교는 이 두 정치 지도자의 과거 행적의 차이만큼이나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바는 이들 두 사람이 오랫동안 구금 생활을 했다는 공통점만큼이나 흡사하다.

티토는 공산주의자였는가?

소비에트 혁명의 성공 이후 스탈린과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코민테른의 악명 높은 실책들만 엮어도 책 10권은 족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티토를 비롯해 당시 혁명에 가담했던 무수히 많은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신념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로 생각했고, "사회주의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노동자 계급의 대의를 위한다"는 믿음을 위해 기꺼이 동지의 손에 죽어가는 길을 택했다.

독일의 공산주의자들은 나치에 저항할 수 있었지만, 나치즘이 소련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를 공격할 것이라는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침묵했고, 중국에서는 마오쩌뚱 대신에 장개석을 유일한 중국 내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갖가지 이유로 학살당했지만 가장 많은 공산주의자를 죽인 나라는 다름 아닌 소련이었고, 그들은 레닌의 사후, 트로츠키의 몰락 이후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공산주의 이념을 이용했다.

티토는 수감 생활에서 풀려난 뒤 내분에 휩싸여 있던 모스크바로 간다. 히틀러는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에서 공산주의의 뿌리를 뽑겠다고 장담한다. 그러자 기업가들이 수많은 정치 헌금을 헌납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실제로 공산주의의 뿌리를 뽑기 위해 테러에 나서자 독일 공산당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하인츠 노이만은 공산주의자들도 앉아서 당하지 말고, 파시스트를 공격하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1931년 여름 노이만이 스탈린을 만나 나치에 대항하는 공산당의 활동을 설명하자 스탈린은 이렇게 말한다.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하게 되면 서방세계를 휩쓸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사이 소련이 한숨 돌리면서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노이만은 하는 수 없이 한 발 물러났다. 이 무렵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큰 적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제국주의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밀어낸다면 그 틈을 노려 프랑스를 압박해 동맹체제를 구축할 요량이었다.

티토는 그 시절 국제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 그가 소련에서 머무는 동안 스탈린의 후계자로 추앙받던 키로프가 암살되는(실제로는 스탈린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사건이 있었고, 이에 대한 혐의로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숙청당한다. 숙청은 이 두 사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에 와 있던 국제공산주의자들에게도 시행되었다. 비밀경찰들이 밤마다 이들이 묶고 있던 숙소로 들이닥쳐 체포해간 뒤 이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아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훗날 이 때의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지른 스탈린과 소련을 지지한 이유를 묻자 티토는 다른 공산주의자들도 했을 법한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르주아들의 형무소에서 크고 작은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던 소수의 골수 공산주의자들은 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소련이 유일한 희망으로 보였다 ...<중략>... 우리는 오랫동안 낮에는 강제노동을 하고, 밤에는 고독이 엄습하는 숨막히는 감옥에서 끝없는 고문과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면서 힘들게 지냈지. 그 때 우리를 지켜주었던 유일한 희망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투쟁하던 목표를 꽃 피울 수 있는 나라가 있다는 믿음이었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과 우정이 충만하며, 성실성이 인정받는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생각했지. 1934년 출감한 이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우연히 '모스크바 방송'을 들었다네. 거기서 복음을 들었지. 크렘린 궁의 시계소리와 힘차게 들리는 '인터내셔널가'가 심금을 울렸어. 노동자의 천국 소련의 위대함을 듣는다는 것은 크나큰 위안이었다네."

심금을 울리는 그의 이런 말을 대신하여 생각해볼 만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보면 티토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무렵 만약 소련과 스탈린을 거부한 혁명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최악의 경우 트로츠키처럼 멕시코 산골의 오두막에서 스탈린의 자객이 보낸 피켈에 정수리를 찍혀 죽거나, 아니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 정치적 위상과 활동 공간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국내의 현실에서 죽산 조봉암이 스탈린식 공산주의에 대한 포기를 선언한 뒤 걸어야 했던 가시밭길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무렵 공산주의를 포기한 많은 이들이 훗날 파시스트가 되어 더욱 가혹한 억압자로 나선 것을 생각해볼 때 티토의 이 말은 슬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민테른을 신뢰하지 않은 티토는 스탈린의 시선 밖에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침묵했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유고슬라비아로 돌아왔다.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고, 벨기에, 네덜란드 , 프랑스를 함락시켰고, 처칠이 영국의 수상이 되었다. 유고 공산당에서도 트로츠키파를 제거한다면서 다른 공산당원들의 숙청을 실시했지만, 티토는 "불만 당원이라도 교화시키면 됐지 죽일 필요는 없다"며 이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했다.

그에 대해 내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단 하나 그들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짜르 시대 이후 지속되어 온 단 하나의 목적, 러시아의 패권 유지"란 차원에서 국제공산주의를 이용했다. 책을 읽는 내내 티토에게 쏟아내는 스탈린의 증오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이런 형편 없는 나라가 70여년 동안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도리어 의문스러웠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본래 러시아의 속내와는 상관없이 인민의 대의를 위한 그들의 이상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혁명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 우울하고 슬픈 역사 아닌가. 티토가 스탈린과 소련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베오그라드의 도살자인가? 유고 통합의 지도자인가?

티토가 이끈 파르티잔은 이들 모든 세력에게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파르티잔은 이들 모든 세력을 포용하는 유고 내부의 유일한 정치 세력이기도 했다. 티토 자신은 크로아티아 출신이었고, 그는 파르티잔 세력 못지 않게 모두의 미움을 받은 이슬람 교도들을 포용해주었다. 그런 까닭에 파르티잔 세력 안에는 유고 내부의 잡다한 민족구성과 이념적 다양성을 두루 포괄하고 있었다. 그런 티토조차 전후엔 우스타샤와 체트니크 세력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내전을 경험했다. 북의 김일성은 신흥지역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왜곡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신흥학살의 역사적 진실은 북한군이 패퇴하기 시작하면서 신흥의 우파 세력이 들고 일어나 좌파들을 숙청하면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이후 다시 북한군이 남하하면서 우파를 다시 제거하는 피의 악순환이 벌어졌지만, 김일성은 신흥 학살 사건을 미군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일소해버린다. 내부의 적 대신에 외부의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역사적으로는 왜곡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티토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었다. 우스타샤와 체트니크의 악행이 워낙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데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파르티잔 집단이 이들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티토 역시 이들을 처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 사건은 이후 서구에 의해 티토의 공격에 종종 이용당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블라소프와 코자크인들의 경우 그들이 영국의 관할 지역으로 넘어왔으나 그들은 영국에 의해 다시 소련으로 되돌려 보내졌기 때문이다. 영국 역시 국제정세의 미묘한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의 존재를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의 일화를 보자. 1946년 5월 1일 티토의 오랜 연인 즈덴카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는 즈덴카의 죽음에 가슴 아팠고, 베오그라드의 대통령궁에 조그만한 기념비를 세우고, 매일 그녀의 기념비에 헌화한다. 즈덴카에게는 사촌 베라 밀레티치가 있었다. 그녀는 파르티잔과 결혼해 딸 한 명을 낳았는데, 곧이어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한다. 그녀는 갖은 고문 끝에 동료들의 이름을 토설했고, 그로인해 많은 동료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한다. 이후 그녀는 다시 파르티잔 동료들에게 체포돼 총살당한다. 티토의 연인이었던 즈덴카의 부모들은 밀레티치의 딸 미랴나를 입양한다. 미랴나는 훗날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결혼한다.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냉혹한 인종청소로 악명 높았던 밀로셰비치가 바로 이 사람이다. 티토가 죽은지(1980년) 10여년 만에 유고슬라비아는 가혹한 내전을 경험하며 분열된다. 유고가 다른 동구 국가들이 걸었던 공산화의 길과 다른 공산화의 길을 걸었던 것을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도리어 불행한 결과를 빚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소련이 건재할 당시 이들의 위성국가였던 알바니아나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는 소련의 몰락 이후 그나마 국가의 분열이나 인종청소와 같은 갈등을 겪지 않은 반면에 당시로서는 서구와 동구 사이에서 그네들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유고가 티토의 사망 이후 동구 해체 과정을 겪으면서 나토(NATO)와 미국의 집중 폭격을 받을 만큼 가혹한 해체 과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여러 방면에서 가능하다. 우선 평전인 만큼 요셉 브로즈 티토의 행적에 대해서만 치중해서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티토가 궁극적으로 보냈던 충성의 대상이었던 공산주의 혁명의 전개 과정을 따르는 것이 가능하고, 영화화되기도 했던(리처드 버튼이 1971년 티토 역을 맡은 영화) 그의 파르티잔 시절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의 비동맹 외교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이 책이 티토의 개인적 삶은 물론이고, 역사를 충분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전기 출간붐을 타고 판매되는 수많은 평전이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이 책을 단연 첫손에 꼽을 수 있는 책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도 몇 가지 단점이 보인다. 우선 이 책의 저자 제스퍼 리들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초상"이란 부제를 통해서도 이미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티토에 대한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티토의 모습이 객관성이 결여된 그에 대한 상찬으로 거듭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는 오해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책의 저자가 티토에 대한 존경을 보내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는 장점에 어긋나는 몇몇 부분들이 그럴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흐루시초프가 집권 이후 티토와 유고 공산당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였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럴 개연성도 있지만, 그것이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전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가지는 유고가 유럽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고와 티토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까지 영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지적해두고 싶다. 미국과의 관계 부분이 상대적으로 미약해보인다. 그 이외에 이 책은 번역이나 기타 편집 부분에서 역자인 유경찬 선생(그는 "베트남, 10,000일의 전쟁"도 번역했는데)의 깔끔한 번역 솜씨에 힘입어 흡족한 수준이지만, 무려 53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 그것도 21세기 초엽인 제1차 세계대전부터 20세기 말엽에 이르는 기나긴 시대를 다루는 책에서 책 말미에 인명, 지명 찾아보기가 없다는 점과 편집자주, 옮긴이 주와 같은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지 못했다는 것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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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이 책은 내가 알라딘 서재에 올리는 200번째 리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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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을까

고교등급제 파문에도 양심선언 하나 없어…소수 통제 가능한 교수들만 평가 참여

▣ 강성만 기자/ 한겨레 사회부 sungman@hani.co.kr

지난 3년여 동안 소문과 의혹으로만 떠돌던 고교등급제의 실체가 확인되자 서울 강북이나 지방의 학생·학부모·교사들은 경악했다. 믿고 싶지 않았던 일부 사립대와 강남 그리고 특목고의 ‘검은 유착’이 한순간 그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교육부식 표현에 의하면 “고교등급제를 일부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화여대와 연세대, 고려대는 물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출신 고교와 지역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학업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대학의 올 1학기 수시 합격생 수의 분포를 보면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


△ 전교조 등 교육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대해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사진 / 김진수 기자)

학교별 가이드라인 마련해 활용했다

교육부는 서초와 강남, 그리고 송파 등 서울의 3개 구 출신 합격생 비율과 강북·지방과 함께 비교한 자료를 내놓았다. 부동산업계쪽에서는 강동까지를 이른바 강남권역으로 치지만 대학쪽에서는 강동 지역 학교를 강남에서 제외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3개 구의 일반계 고교 학생 수는 전국 대비 5%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이에 따른 교육열을 감안할 때 합격생 비율이 전국 대비 2~3배 정도 높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최대로 늘려 잡아도 20% 이상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실제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고려대의 수시 1학기 합격생의 9.5%가 서초와 강남 지역 학생이었다.

하지만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드러난 연세대와 이화여대의 올 수시 1학기 강남 학생 비율은 이런 상식을 여지없이 짓이겨버렸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입학생 가운데 36.1%와 35.3%가 전국 대비 5%에 불과한 강남 학생들이었다. 고교등급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들 대학의 반박의 허구성은 실태조사 대상에 오른 서강대와 성균관대, 한양대 등 다른 대학의 강남 학생 비율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세 대학은 각각 11.4%, 8.3%, 12.6%의 비율을 보였다. 이대·연대의 강남 학생 비율과 3~4배의 차이를 보인다.

이들 대학의 부인에도 교육부는 왜 이대 등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으로 보는 것일까. 평준화 체제에서 고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각 고교들은 2000년 이후 각 고교의 수능성적과 당해 대학 입학생 수 등 학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들을 축적해놓고 있다. 실제 이번 조사로 등급제 적용 의혹을 털어버린 한양대의 최재훈 입학관리실장도 “고교별 특성을 분석해놓은 자료를 모으고 있으며 입학제도개선 연구팀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수시 전형의 서류평가 등에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화여대와 연세대는 고교별 학력차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이런 자료들을 교수 평가위원들에게 직접 전달해 평가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고교 유형과 지역별로 서류 평가 때 각각 어느 정도의 점수 차이를 둘 것인지 명시하는 구체적인 지침 등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들 대학이 학교별 점수 차이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활용했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등급제 적용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것까지 까발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평가에서 특목고와 강남, 강북 등 학교 유형과 지역별로 일정한 점수대가 형성되어 있고 같은 학교 출신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점수차가 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는 학생별로 천차만별일 텐데 특정 특목고의 경우 지원자 모두 80점 이상을, 특정 비강남고 지원자는 모두 70점 이하였다는 것이다. 학교를 차별하라는 문서상의 지침이나 구두 지시가 없었다고 부인하더라도 실제 드러난 결과가 확증이 되는 셈이다.

평가위원 교수의 수도 밝혀내지 못해


△ 고교등급제 파문은 교육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사진 / 김진수 기자)

지난 8월30일 <한겨레>의 ‘고려대 고교등급제 적용 시사 파문’ 기사가 나가면서 물 위에 드러난 ‘고교등급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큰 의문은 “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을까”였다. 대입 전문가들이나 교사들은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의 고교등급제 적용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 오래 종사했고 전문가일수록 그 확신의 강도는 셌다. 그런데도 연세대 교수사회 안에서는 어떤 양심선언이나 제보도 없었다. 서류 평가 등에 상당수 교수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교수들이 몇명은 있지 않겠느냐는 상식적 판단이 배반당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쪽은 나름의 판단을 제시했다. 학교별 차이를 일사분란하게 적용한 이화여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평가에 전·현직 입학처장이나 대학의 통제가 가능한 교수 몇명 등 핵심 소수만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연세대의 경우도 이화여대에 비해 다소 많지만 다른 대학들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교수만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게 교육부 판단이다. 이화여대에 비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은, 같은 고교 지원자 가운데도 서류 평가 점수차가 나는 등 일부 평가위원들은 자료를 일률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재량을 발휘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쪽은 아울러 두 대학이 각기 축적해놓은 자료를 공유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교수의 수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구체적인 교수 명단도 확보하지 못했다. 대학쪽에서 대외비라는 이유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발표 뒤 뒷말이 가장 많이 나온 학교는 고려대다. 이 대학의 수시 1학기 강남 학생의 비율 18.2%가 말해주듯, 이화여대와 연세대에 비해 ‘학교 차별’의 정도는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연대·이대와 비슷한 수준의 제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대학은 서류와 내신 석차 백분위 평가 때 최대 2점까지 학교에 따라 다르게 가산점을 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산점의 규모가 크지 않아 실제 강남이나 특목고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학교에 따라 차등 배점한 증거는 세 대학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고대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자료를 주고 교수들 재량에 맡긴 연세대를 두고는 “지능적”, 빈틈없이 학교를 차별한 이화여대에 대해선 “단순하다”는 수식어를 달았다.

교육부는 애초 세 대학의 재정적 제재 수위를 거론하면서 ‘수도권 대학 특성화’ 지원금 20% 삭감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년 전 한양대가 본고사형 지필고사를 치른 사실이 적발됐을 때 지원금의 15%를 삭감했다. 20%면 올해 이화여대의 특성화지원금 36억원 가운데 7억2천만원이 삭감되는 것이다.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중대 사안이었음을 감안하면 왠지 액수가 초라해 보인다. 교육부는 실태조사 발표 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뒤 추후 결정하며 전액 삭감도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 이번 파문은 입시생과 학부모들의 줄소송으로 번질 전망이다. (사진 / 김진수 기자)

가장 큰 책임은 거짓말 방조한 교육부

이번에 적발된 세 대학은 교육부 발표 이후 “고교간 학력차가 엄존하는데 그 차이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판에 박은 항변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선 본고사 불가피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 주장의 정당성은 제쳐놓더라도 이번 조사 결과는 이른바 명문 사학이 수험생을 상대로 ‘앞과 뒤가 다른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연세대는 수시 전형 요소로 내신(60%)과 서류(20%) 그리고 면접(20%) 등 세 가지를 내세웠다. 내신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외형적인 요강만으로는 강북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연세대는 은밀히 고교별 자료를 활용해 학생들의 서류 평가를 왜곡함으로서 강북이나 지방 학생들을 차별한 것이다. 구체적인 전형 기준 등을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대학쪽에선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강북·지방 수험생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 피해를 입었다. 아울러 고려대는 명시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한겨레>가 이 대학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고교간 학력차 자료를 수시 전형에 활용해왔다고 보도하자 며칠 뒤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자료만 축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기여입학제를 금한다고 말만 했을 뿐 이를 강제하기 위한 어떤 실효적인 노력도 해오지 않았다. 언론과 전교조 등의 문제제기로 쟁점화하자 뒤늦게 칼을 빼든 교육부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대의 등급제 시행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부는 고려대쪽에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함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부인하는 해명 자료를 내놓도록 재촉했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유도한 셈이다. 학수고대하던 해명 자료가 나오자 흡족한 미소를 지었던 교육부 당국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의 사회적 신뢰를 땅으로 내팽개쳐버린 고교등급제 파문은 그동안 ‘사회적 합의’로 간주해온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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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아마존에서 책주문하려면

미국서만 책을 주문하고 신용카드로 지불해왔는데요...

아마존에서 개인수표나 체크카드, Paypal로도 결제할 수 있습니다. Money order도 받는걸로 기억합니다...즉, 현금만 빼고 기타 모든지불 방법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에 대한 정보는 지불방법에서 신용카드말고 <기타>를 선택하면 나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가 아니면 거의 미국에 있어야만 가능하지요.

이곳서 신용카드 말고 개인수표 (또는 체크카드)를 사용할 경우, 주문후 아마존에서 수표를 받아 바운스 첵이 아닌걸 확인한 후에 물품을 보내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립니다. 물론 미국 은행 어카운트에 돈이 들어 있어야만 하구요.

이래저래 신용카드가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입니다. 앞으로 외국 서점을 자주 이용할 계획이라면, 이 기회에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않을 것 같습니다 (비자, 메스터카드, 아멕스(아메리칸 익스프레스)정도 중에서). 신용카드로는 모든 거래가 가능하고, 가장 편하기 때문이지요.

수수료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방식이 이곳과 한국이 좀 달라서요. (이곳선 원칙적으로 할부구매의 개념이 없거든요. 신용카드 고지서가 나오면 매번 낼 수 있는 만큼씩 계속 갚으면 되니까요. 물론 컴퓨터 등 1천불 이상의 비싼 물건들은 간혹 몇번에 나누거나, 여러 카드로 나누어 지불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또한 크레딧이 좋은 사람은 몇달 뒤나 일년 뒤부터 갚을 수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고요.) 이곳서 카드로 한국과 온라인 거래를 할 경우엔 수수료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에서 미국카드를 사용했을땐 한국 가게서 붙인 수수료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카드로 구매할 경우 환율같은건 개인이 관여하는게 아니고, 한국의 카드회사에서 다 알아서 원화로 계산된 액수가 카드대금 고지서에 나옵니다. 이 부분은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될 듯. 다만 환율의 변동상황을 고려하기는 해야겠죠. 달러가 너무 비싼 때라면 원화로 지불할 액수가 올라가니까요.

카드를 만들 계획이 없으시다면 동가이님 의견처럼 다른 분의 카드로 결재하거나, 미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딱 한번이 아니라면 서로 부담이 되기에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경우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웹사이트를 이용합니다. 이곳에서는 서치란에 원하는 책의 정보를 (제목이나 저자 등) 집어넣으면 각 책마다 가장 보편적인 5,6개에서 10 여군데에 이르는 온라인 서점의 (Amazon, Amazon Market Place, eCampus, Powells, eBay (half.com), Barnes & Noble 등등) 가격들을 비교해서 나열해 줍니다. 가장 싼 가격이 나온 곳을 클릭하면 바로 그 웹사이트로 이어지기에 무지무지 편합니다. 웹사이트들을 오가며 비교할 수고가 완전히 생략되니까요.

대체로 아마존 마켓플레이스 (중고시장)가 가장 싼 경우가 많기는 한데, 딜러에 따라 국제배송을 해주거나 아닌 경우도 있어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근데 아마존 자체는 갈수록 서비스가 너무 나빠지는 것 같아요. 요즘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생기더라구요. 어쨌든 가격비교를 위해서는 아래의 웹사이트를 참고해 보세요.

http://www.cheapesttextbooks.com/index.cgi?store=cheapesttextbooks

출처 : 숱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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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유용한 정보라서 냉큼 퍼오긴 했는데,
이걸 보니 또 책사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는 ... -_-;;;

2004-10-26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10-2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다시 좋은 정보를 주신 님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볼 수 있게 하시지 그러셨어요.

싸이런스 2004-10-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보다 엄청나게 싼 값에 인문, 사회, 자연 과학등 각종 책을 미국에서 살 수 있는 싸이트
http://www.labyrinthbooks.com/
책을 받는데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신 분은 선박으로 배송 주문하면 정말 싸게 살 수 있답니다.
함 둘러 보세요.

balmas 2004-10-2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기저기서 좋은 정보들이 많이 들어오는군요.
조금 있으면 공짜로 책 얻는 곳도 알아낼 수 있을 듯.
ㅋㅋ

릴케 현상 2004-10-2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몇 군데 순방하면서 안 쓰는 외서들을 슬쩍해 오면 공짜 책이 가득^^
 
 전출처 : 노부후사 >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 이해영

[시론]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경향신문 2004-10-25 17:42] 

 

〈이해영 한신대 국제평화인권대학원장〉

 

자신의 안전을 타인에게 의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말한 이는 마키아벨리다. 그래서 스스로의 안전을 스스로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위험’하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되새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 때문이다.

 

부시와 케리 중 누가 우리에게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조건이 계속된다면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하는 데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조건 가운데 역시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안전을 타인, 곧 미국에 의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는 현실, 바로 그것이 ‘위험한 사회’ 한국의 존재조건이다.

 

부시=전쟁’ ‘케리=평화’식의 사고 역시, 너무 단순한 현실인식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북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화’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었고, 이 문제로 북폭을 계획한 것은 우습게도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더군다나 1999년 북한 대포동미사일을 놓고 벌어진 위기상황에서 재차 북폭론이 제기되었을 때, 여기에 반대한 사람은 미 네오콘의 우두머리 울포위츠였다. 그가 보기에도 북폭은 한반도의 전면전을 불러올 것이고, 그것은 완전한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

 

- ‘부시냐, 케리냐’ 무의미 -

 

9·11 이후 미국 외교노선을 네오콘이 쥐락펴락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이라크전쟁을 디자인해 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 민주당내 계파 중 이른바 ‘리버럴 매파’는 사실상 네오콘과 별 차이가 없다. 또 민주당 케리와 에드워즈 모두 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 있고, 심지어 케리는 이스라엘의 극우 리쿠드당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네오콘의 전략은 전쟁이라기보다 소위 ‘공격적 봉쇄’이다. 쉽게 말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는 ‘때려 죽이기’를 택했다면, 북의 김정일 정권에는 ‘굶겨 죽이기’ 전략을 펴겠다는 말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의 어린이들이 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전법은 최근 ‘북한인권법’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기본발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네오콘이 주장해 온 그대로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쟁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북한의 결사적 버티기와 남한의 부전(不戰)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가능성은 실상 높지 않다. 더군다나 갈수록 인플레되고 있는 북의 핵무기는 우습게도 그 자체가 전쟁억지 요인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물론 과장되기는 했지만 북이 ‘정말’ 핵을 갖고 있고, 유사시 그것을 사용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인간에게 알려진, 최대로 효과적인 권력자원은 바로 공포이다.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한 것도 실은 그 깊숙한 데에 미국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고, 북의 핵도 사실은 대미 공포의 결과물이다. 부시건 케리건 남과 북 모두에 대해 공포의 국제정치를 구사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가 그 뚜렷한 실체를 증명하기 어려운 전쟁 공포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미국은 아마 곶감 빼먹듯 ‘실리’를 챙길 것이다.

 

- 美에 의탁 한국상황이 문제 -

 

물론 여기에는 영어가 국교(國敎)가 되고, 친미는 정책을 넘어 중독이 되어버린 바로 그 국내적 조건이 중요하다. 한·미간 경제현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빼먹을 실리의 리스트는 이미 공개되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협정(BIT), 농산물, 자동차, 스크린쿼터, 반도체, 지적재산권 등. 공포를 바탕에 깔고 한손에 북핵, 다른 손에 실리, 여기에 우리 외교관료의 무능함이 가미된다면 나는 그것을 ‘망할 쾌’라고 본다.

 

어떤 현명한 이가 말하길, 미국은 우리의 팔을 비틀더라도 아주 부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팔이 비틀리더라도 견뎌낼 맷집을 키우면서, 여태껏 미국이 대신해준 그런 국제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국제 ‘정치’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큰집 제사상만 바라보다가는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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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에릭 로메르 회고전

에릭 로메르 회고전
(Eric Romher Retrospective)
감독 : Eric Romher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공연시간 및 요금
일정 : 2004/10/22 ~ 2004/11/04         1회 11:20 2회 1:40 3회 4:00 4회 6:20 5회 8:40 (11월 1,2일 4회,5회 상영없음)

작품소개
동숭아트센터"하이퍼텍 나다"와 시네마테크 부산, 광주극장은 현존하는 누벨바그의 거장이자 성찰적인 심미주의자 에릭 로메르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영화제를 개최합니다.1959년 장편영화 <사자자리 Signe du lion>로 감독 데뷔 후 2004년 <삼중 스파이 Triple Agent>에 이르기까지 약 45년에 이르는 활동 기간 동안 총 51편(단편·TV 제작물 포함)의 작품을 발표한 로메르는 프랑스 영화의 질적인 변화와 새로운 영화의 도래를 이끌었던 누벨바그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화세계를 창조해냈고, 20세기 최후의 대가 감독이자 최후의 누벨바그라고 알려질 만큼 현재까지 가장 지속적으로 누벨바그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입니다.

"마음의 풍경을 사려 깊게 담아낸 영화철학자"

이번 에릭 로메르 회고전에서는 감독으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매김 시킨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포함해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덕이야기’ 연작 6편과 80년대부터 일상의 낯익은 격언을 토대로 삶의 교훈을 전하는 ‘희극과 격언’ 시리즈,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을 반추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계절 이야기’ 연작, 2001년과 2004년에 발표한 최근작 <영국여인과 공작>과 <삼중 스파이> 등 로메르의 대표작 총 17편이 소개됩니다. 발자크, 스탕달, 헨리 제임스 등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에릭 로메르의 작품을 통해 오랜 프랑스 영화의 전통과 품격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 10월 22일~11월 4일
일반 7,000원/회원 3,500원/연장회원만 동반 1인 1,000원 할인
작품: 총17편 - 몽소 빵집의 소녀(26분),수잔느의 경력(52분),수집가(90분),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10분),여름 이야기(113분),오후의 연정(95분),해변의 폴린느(94분),아름다운 결혼(97분)녹색 광선(90분),봄 이야기(112분),겨울 이야기(114분),클레르의 무릎(105분),가을 이야기(110분),영국 여인과 공작(125분),보름달이 뜨는 밤(102분),내 친구의 남자친구(102분),삼중 스파이(115분)
*** 에릭 로메르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7편 중 16mm는 2편으로, <녹색광선>과 <해변의 폴린느>입니다.
*** 수잔느의 경력,녹색광선,보름달이 뜨는 밤,영국 여인과 공작,여름 이야기,가을 이야기 - 6편의 영화는 영어 자막이 있습니다.

10월 22일(금)
11:2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1:40 수집가/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여름 이야기/ 8:40 오후의 연정

10월 23일(토)
11:20 해변의 폴린느/1:40 아름다운 결혼/4:00 녹색 광선/6:20 봄 이야기/
8:40 겨울이야기

10월 24일(일)
11:20 클레르의 무릎/1:40 가을 이야기/4:00 영국 여인과 공작 /
6:20 보름달이 뜨는 밤/8:40 내 친구의 남자친구

10월 25일(월)
11:20 삼중 스파이/1:4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4:00 해변의 폴린느/
6:20 여름 이야기/8:40 수집가

10월 26일(화)
11:20 아름다운 결혼/1:4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4:00 가을 이야기/6:20 녹색광선
8:40 영국여인과 공작

10월 27일(수)
11:20 클레르의 무릎/1:40 봄 이야기/4:00 보름달이 뜨는 밤/6:20 오후의 연정
8:40 삼중 스파이

10월 28일(목)
11:20 겨울이야기/1:40 내 친구의 남자친구/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8:40 아름다운 결혼

10월 29일(금)
11:20 봄 이야기/1:40 해변의 폴린느/4:00 수집가/6:20 영국 여인과 공작
8:40 여름 이야기

10월 30일(토)
11:20 클레르의 무릎/1:40 보름달이 뜨는 밤/4:00 겨울 이야기/
6:40 내 친구의 남자친구/ 8:40 녹색광선

10월 31일(일)
11:20 오후의 연정/1:40 삼중 스파이/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아름다운 결혼 /8:40 봄 이야기

11월 1일(월)
11:20 가을 이야기/1:40 영국 여인과 공작/4:0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
6:20 봄 이야기 /8:40 오후의 연정

11월 2일(화)
11:20 수집가/1:40 녹색 광선
6:20 해변의 폴린느 /8:40 여름 이야기

11월 3일(수)
11:20 삼중스파이/1:40 내 친구의 남자친구/4:00 클레르의 무릎/
6:20 보름달이 뜨는 밤 /8:40 겨울 이야기

11월 4일(목)
11:20 여름 이야기/1:40 오후의 연정/4:00 가을 이야기/6:2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8:40 클레르의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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