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ked에서 퍼온 글.

Blecher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분열과 대립이 단순히 정책적인 이견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늘 미국인들에게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는 것은 종교적인 차이나 지역적인 요소들보다도 훨씬 중요한 정체성 형성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자는 서로를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공포스러워 한다. 타자는 좋게 보아주면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인간이 아니다. Blecher는 이러한 증오와 공포의 밑바닥에는 절망이라는 공유된 감정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공적이고 사적인 삶에서 그리고 민주주의적 과정에서의 절망. 그들([우리도 아마])은 더이상 문제들이 민주주의적 과정으로 풀려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것은 이기는 것 뿐이다. 만일 우리가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면 타인들도 그렇게 살 수 없도록 하자.

Blecher의 글은 분명 약간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현재 미국 내 상황의 일단을 설득력 있게 포착하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가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Article7 October 2004

It's mutual hatred, stupid
Both Democrats and Republicans are taking their disappointment with politics out on each other.

by George Blecher

Pundits pouring over the latest election polls miss the point that the average American seems to get: polls or no polls, the popular vote is likely to be as close as it was four years ago. Though most American voters describe themselves as 'moderate', psychologically we've hardened into two armed camps of equal strength. In this climate, issues matter far less than allegiances. The Iraq war, the economy, the military records and personalities of the candidates, 9/11 - none of it matters as much as which side you're on.

Seeing ourselves as liberal or conservative has become more central to our identities than our religions or where we live. In a time of virtual rather than actual community, we feel safe with those on our side, threatened by and furious at those on the other side. Actually, we don't even see the other side. At best, they're certifiably insane; at worst, monstrously inhuman.

Two personal examples: four years ago, I heard a well-known conservative intellectual, a speechwriter for President George Bush senior, speak at a university club in New York. She was relaxed and charming, felt that she was among friends and shared not only opinions, but feelings as well. 'At the beginning of the campaign', she said, 'my colleagues and I felt pretty good about [Democratic nominee Al] Gore. We didn't agree with most of what he said, but we could live with that. He seemed like somebody you could talk to. But now we realize that he's just like Clinton - crazy!'. When I told the incident to a friend on the Left, she said: 'Well, I'm not surprised. But I disagree with you on one point: there are no intellectuals on the Right.'

A few months later, I was crossing a snowy Manhattan street with my young son. A van with Jersey plates made a tight turn and missed my son by a couple of inches. I ran after the van and started bawling out the driver, who took one look at my fur hat and designer glasses, rolled down his window and sputtered: 'You, you, you…liberal!'.

We don't merely disagree with each other; we hate and fear each other. What do Republicans hate about Democrats? They're sneaky, compromising, ready to barter away hard-earned money and freedom to win the approval of decadent Europeans and perverse fringe groups. They're effeminate cowards, unwilling to stand up and fight for their beliefs. One of the more popular Republican labels for people on the left - latte-drinking, Volvo-driving liberals - isn't frivolous in the least. A fondness for lattes and Volvos is a nod to the inherently foreign and devious - a latte's very name is Euro-pretentious, to say nothing of its price; and driving a Volvo suggests that one values safety over design, power and speed. Worst of all, Democrats are hypocrites, professing to help the poor and spread the wealth around while making sure that their kids go to the right schools and avoid military service.

All this may be obvious, but what is more subtle is what Republicans fear about Democrats. The look in that van driver's eye was fear, and not just that I might turn him in. He feared that I was of a higher class - which I suppose I was - and therefore had powers that he couldn't imagine. To a great number of Republicans, Democrats have come to represent privilege - the kind of self-righteous, impersonal, abstract pseudo-generosity ready to give away rights that less privileged people have fought hard for.

What do Democrats hate about Republicans? Their stupidity and love of violence, their selfishness, aggressiveness, ruthlessness. Republicans are bullies and cheaters, who'll use any tactic, dirty or not, to get what they want. They're isolationists full of hate and prejudice. You can't reason with them because they regard reasoning as a sign of weakness. They're Mr Hyde to the Democrats' dedicated, humanistic Doctor Jekyll; Id to the Democratic Ego, but not a healthy, sexualised Id. On the contrary, their macho swagger masks grave insecurities about their potency. At heart no Republican has any sense of morality or decency; they're ruled either by greed or fanaticism.

Democrats fear Republicans for much the same reason that their counterparts fear them: they fear their enemy's superior power. High in their corporate offices, Republicans pull the strings of the country. The plebs of the radical right are merely a convenience that the party elite need to get themselves elected and then redirect to hopeless causes, like overturning the Roe v Wade decision on abortion, or passing a Constitutional amendment against same sex marriage.

Underneath the hate and fear, however, I think there's an even more basic - and shared - emotion: disappointment. Disappointment in one's public and private life, and disappointment in the democratic process. Judging by the diminishing number of voters in European elections, it would appear that this disappointment isn't limited to the USA.

Over the past 50 years, the Republican/conservative vision of self-reliance and upward mobility through hard work has been clouded by everything from the complexities of foreign trade to unionism to regulatory agencies to perceived inequities in the educational and welfare systems. The Democratic vision of benevolent centralised government working for equal opportunity has likewise been compromised - by corporate arrogance, lobbyists, and a sense that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has grown to unprecedented proportions. Because the solutions to these problems aren't within our grasp - and because to a great extent we have lost faith that the democratic process can work to solve the problems - we've chosen to take it out on each other. Winning has become everything. If we can't live a good life, at least we can make sure that the others don't either.

In November's presidential elections we won't vote for any issue or candidate; we'll vote against those on the other side. As Walt Kelly's cartoon character Pogo put it many years ago: 'We have met the enemy, and he is us.'

George Blecher is based in New York, and reports for a number of European publications about American politics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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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1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심한데, 이거나 번역해 볼랍니다. ^^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타계
[한겨레 2004-10-10 19:00]
[한겨레] “권위에 맞서라” 한평생 실천적 삶
9일 지병으로 숨진 자크 데리다는 일체의 권위에 맞서 그 모순을 폭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실천적 철학자다. 해체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난해한 사유체제는 인류문명 전반에 걸친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허무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생전의 다양하고도 정력적인 현실참여는 해체주의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웅변했다.

고인은 1930년 7월15일 프랑스령 알제리 엘비아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2년 10월, 식민지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법을 청원했다는 이유로 알제리의 벤 아크눈 국립고등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사춘기의 혼란은 폭넓은 독서로 이어졌고, 몇년 뒤 파리로 간 그는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프랑스 인문학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80년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차례 낙방 끝에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해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재직했고, 알튀세르 등의 초청으로 1965년 모교인 고등사범학교로 자리를 옮겨 1984년까지 가르쳤다. 1983년엔 국제 철학학교를 만들어 초대 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자명한 ‘진리’·위계질서 전복 시도
문학·영화 넘나들며 노벨상 후보로
미테랑 “당대 최고 철학자” 찬사도

1981년 체코의 저항 지식인들과 모임을 연 뒤 체코 당국에 체포·구금됐고, 이후에도 넬슨 만델라 구명운동과 인종차별 및 동성애자 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아랍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도 걸프전과 9·11 동시다발테러, 유럽통합 등에 대해 발언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철학이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유는 기존의 정돈된 철학적 체계나 용어, 고전적 문체 등을 스스로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데리다의 사유가 근대 인류문명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와 그로 인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데서 비롯됐다. 이런 탈현대의 문제의식을 데리다는 ‘해체’라 이름 붙였다.

데리다는 서구적 근대의 밑바탕이 되는 저작과 학설들이 불안정한 언어와 모순되는 층위로 구성돼 있고 이로 인해 그 내부로부터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다. 정신과 물질, 보편과 개별, 남성과 여성 등 합리주의의 기본개념인 대립항 구조는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을 주변화하거나 억압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해체이론은 플라톤 이후 서양 지성사를 분해해 기존의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동시에 인류의 새로운 인식지평을 개척한 선구자적인 것이었다.

데리다는 철학 외에도 문학과 건축, 영화, 회화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 해체론을 적용하거나 스스로 예술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마르지 않는 지적 열정과 자유로운 사유는 〈차이와 반복〉 〈그라마톨로지〉 〈마르크스의 유령들〉 등 수백편의 저술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당대 최고의 철학자’라는 찬사를 바쳤지만, 데리다의 사유가 다다른 지평을 고려하자면 그 업적은 인류 역사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것 가운데 하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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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아래쪽 책제목 중에서 <차이와 반복>은 <기록과 차이>의 오기인 듯합니다.


갈대 2004-10-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는 전혀 모르지만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리다의 철학을 정리하는 작업이 뒤따랐으면 좋겠네요.

balmas 2004-10-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는 이름은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사상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죠. 우선 읽을 만한 그의 저서들이 좀더 많이 번역되어야겠죠.

바람구두 2004-10-1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업적은 인류 역사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것 가운데 하나다." 란 말이 가시처럼 걸리네요. 죽은 이에 대한 헌사란 점에서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balmas 2004-10-1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 정도의 찬사도 보낼 법하다고 보지만,
문제는 우리가 무슨 권리로,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일 듯합니다. 거의 모든 신문들이 데리다 사망 기사를 속보로 내보내고, 상당한 지면들을 할애해서 추모 겸 해설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만, 국내의 맥락에서 본다면 좀 뜬금없는 일이죠. 읽을 만한 책들도 거의 없는 실정인 데다가 이미 대부분의 신문들은 데리다와 관련하여 원죄를 범하고 있거든요. 읽을 수도 없는 번역에 낯뜨거운 찬사를 늘어놓거나 여태 그의 철학(의 의의)을 소개하는 별다른 기사도 제대로 내보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어제 오늘 신문들에 난 데리다 기사를 읽으면서, 떠들썩한 술판(과 도박판)으로 흥이 오른 초상집 풍경을 떠올렸습니다만(내가, 무슨 권리로??), 어쨌든 이런 애도의 모습들이 앞으로 국내에서 데리다의 철학이 좀더 잘 수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바람구두 2004-10-1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1992년 아직 맑스 원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갓 입학한 신입생 녀석이 입에 "데리다와 해체"를 달고 살더군요. 제 개인적으로 데리다에 대해 사실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지 못함에도 우리나라에서 데리다에 대한 열풍이 첫단추부터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 계기가 그때부터라고 하면 너무 겁없는 말일까요? 발마스님이 퍼온 한겨레 기사를 보면서 제 기분이 묘했던 것은 죽은 사람을 조상하는 방식이 장자의 마누라 죽은 뒤에 푸닥거리하며 즐거워하는 장자를 이해 못하는 꼴 같아서 입니다. 제가 데리다를 읽으려면 아직도 십여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balmas 2004-10-1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말씀이 일리가 있군요. 데리다가 국내에 최초 소개되던 맥락은 국내의 데리다 수용의 또 하나의 원죄적인 장면이죠.

데리다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던, 또는 오히려 하나의 붐(제 친구 하나가 군대에 있던 때인데, 잘 알고 지내던 장교 한 사람이 영역본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를 읽고 있던 이 친구에게 그랬다고 하더군요. 자기 부인이 요즘 데리다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까지 시달리고 있다구요)을 이루던 90-92년 당시는 주지하다시피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몰락하던 시기였죠. 그러니 데리다는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국내에 도입된 셈이고, 따라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운동으로부터의 도피에 하나의 알리바이를 제공해주고, 자본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간접적인 변호, 또는 적어도 증언을 자청한 셈이 되었죠.

그런 만큼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데리다(및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일반)에 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주적으로까지 간주하는 게 전혀 그릇된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국내 데리다 수용의 이러한 맥락에 대한 검토 없이는, 데리다에 대한 "적절한" 수용, "올바른" 애도는,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매우 힘든 일이 될 듯합니다.


바람구두 2004-10-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의 이 코멘트 별점을 매기라면 최소한 별 다섯을 드리고 싶군요. 전면적인 끄덕끄덕...입니다.

MANN 2004-10-16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92년에도 데리다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데리다가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단 말인가?' 라는 놀라움과
'그런데 10년이 넘도록 동안 제대로 번역된 책도 거의 없었는데, 그동안 데리다에 대해 뭘 한 거지?'라는 당혹감이 들었는데
발마스님의 코멘트를 보니 이해가 가네요.

한국의 좌파들이 왜 데리다(그리고 소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대해
왜 그렇게 이를 박박 가는지도요.

balmas 2004-10-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92년 쯤 데리다 붐이 있었지.
결국 읽을 만한 책들이 별로 없어서 얼마 못가 사그라들었지만.
 
 전출처 : 릴케 현상 > 한글과 한자

[문화산책―황현산] 한글과 한자  

 

2004.07.27 / 국민일보


  여야 의원 67명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개정법률안을 공동발의했다고 전해진다. 개항 이후 한글은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 했고,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문명이 모두 한글의 은덕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한글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오직 자기 손으로 만들어 갈고 다듬은 문자로 개인들의 일상사는 물론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고 학문과 예술 같은 고도의 정신적 작업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 한글은 우리말을 표기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글자여서 우리는 지금 언문이 완전히 일치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그것이 때로는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다.

 

  한글에 관해 말하다 보면 한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나는 한자가 한글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글자라고 생각한다. 태고의 어느 시기에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어떤 학자들의 주장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한자를 써왔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한말까지 우리의 제반 기록이 한문에 의지해 왔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지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글과 함께 한자가 병용되었다. 한자는 우리에게 역사적 무의식이 되었고,비록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다. 이 무의식을 우리는 남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 한글 전용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지만,그렇다고 그와 관련된 주장들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한글의 경제성에 대한 주장이 있다. 한자는 익히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는 투자의 측면에서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니다. 투자가 크더라도 이익이 월등하다면 반드시 비경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점에 관해 충분한 연구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의견으로,한자가 기계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기계가 언어생활을 따라와야 옳을 터인데 언어생활을 기계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 생각은 사실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한글이 민중적이라는 주장을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한글은 배우기 쉬울 뿐더러 우리말과도 잘 어울리니 민중의 문자생활을 자유롭고 용이하게 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의도가 여기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은 항상 ‘어린 백성’이 아니다.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 한자를 배우지 못할 민중은 없다. 게다가 모든 글을 한글로 쓰기는 하되,글 쓰는 사람의 발상이 한자나 외국어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그게 오히려 민중을 속이는 것이다.

 

  한자가 우리말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토착어와 한자어를 무리하게 양분하는 데서 오는 오류다. 한자어가 들어와 우리말의 어휘와 내용과 논리를 풍요롭게 했다면 그게 바로 우리말의 발전이다. 우리말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말이 곧 우리말이다. 말에는 한자가 없는데 왜 글에는 한자를 써야 하느냐는 막무가내식의 주장도 있다. 말의 논리와 글의 논리는 다르다. 말이 특수한 사안에 구체적으로 대응한다면 글은 보편적 사안에 추상적으로 대응한다. 문어가 차지해야 할 자리를 구어가 차지함으로써 일어나는 혼란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다.

 

  한자에 대한 내 생각은 간단하다. ‘가’를 可,加,歌,家로 쓰는 것인데, 이는 ‘가’를 빨강,주황,노랑,초록색으로 쓰는 것과 같다. 빨간 가는 ‘옳다’,주황색 가는 ‘더한다’,노란 가는 ‘노래’,초록색 가는 ‘집’이 된다. 컬러가 흑백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격상한다면,이 기회에 우리의 문자생활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쓸데없는 이데올로기를 개입시키지 말고,가능한 한 과학적인 태도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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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내가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1번을 찍었을 때 2번에다가 투표를 했고, 나보다 못사는 준부자들마저 한나라당을 열심히 지지하는 판에 지난 총선에서 민노당에다 투표를 했다. 이유? 그게 옳다고 믿었으니까. 이념이란 과연 뭘까. 자기 처지에 맞게 투표를 하는 걸까, 아니면 옳다고 믿는 쪽에다 투표하는 것일까. 한나라당이 석권하다시피한 소위 강남벨트를 내가 결코 비난하지 않았고, “거긴 그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보면 ‘처지론’에 기울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있는 집 자식이었던 내가 지금껏 소위 보수에 단 한번도 투표하지 않은 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거기엔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게다가 생각을 하며 산 게 얼마 안되서 판단 같은 것도 주체적으로 내리지 못한다. 진보적인 책을 읽기 시작한 97년부터, 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눈치를 봤다. 어느 게 옳은 것일까, 한겨레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를. 처음에는 책에 쓰인대로, 한겨레에 난대로 말을 했다. 지금은 혼자 판단을 내리지만, 그건 오랜 기간의 학습을 거쳐 그들의 틀에 자신을 맞춘 것일수도 있다. 그점을 의식하고 한겨레와 다른 시각을 가지려고 내 딴에는 노력을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조선일보는 늘 틀리고, 한겨레는 대개 옳다. 젠장.


요즘 한겨레에는 고교등급제에 대한 비판 기사가 연일 실린다. 명문대학이 사실상 고교등급제, 그러니까 실력있는 고교 출신이면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며,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지다. 조선일보를 보면 고교등급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고교평준화는 깨져야 하고 이미 깨져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양측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겠지만, 난 이번만큼은 한겨레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우리나라 고교의 격차는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상태며, 강남과 강북의 학력차를 무시하고 일괄적인 내신을 적용한다는 게 말이 안되어 보이니까.


신문을 보니 챔피언스 리그의 조편성이 나왔다. 유럽 축구의 명문구단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게 바로 챔피언스 리그, 하지만 그 출전팀의 수는 나라마다 다르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세계 최강의 리그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4팀이 나가고, 네덜란드에서는 아인트호벤 한팀이, 터키는 단골팀인 갈라타사이가 아니라 처음 듣는 이름을 가진 팀이 나온다. 러시아도 한팀, 우크라이나도 한팀, 이렇게 모인 팀들이 32개다. 축구강국 프랑스 같으면 자국 팀도 4팀이 나가야 한다고 강짜를 부릴만도 한데, 세팀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선 거의 열팀이 출전하고, 나라수가 많은 아시아는 티켓이 겨우 4장이다. 하지만 8강에 오르는 나라가 대부분 유럽인지라 아시아의 티켓을 늘리는 건 매우 비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고교등급제도 바로 이런 것이리라. 강남의 10등이 강북의 2등보다 학력이 높다면 그걸 인정하는 것. 닭의 머리보다 용의 몸통을 우대하는 것.


반면 메이져리그 야구는 그렇지 않다. 선수를 데려오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명문구단 보스톤은 언제나 조 2위다. 더 명문팀인 뉴욕 양키스와 같은 조니까. 지금 세경기차로 따라붙긴 했지만, 보스톤이 1위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행히 2등 세팀 중에서 한팀이 올라가는 와일드 카드제가 생겨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보스톤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반면 중부지구는 매우 약하다. 돈도 없는 미네소타 같은 구단이 엄청난 경기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미네소타의 승률은 보스톤보다 2푼6리나 낮다. 그래도 미네소타는 남은 경기에서 반타작만 하면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반면, 보스톤은 다른 2위팀들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 보스톤으로서는 억울하지 않겠는가.  내셔널리그 최강으로 15년째 지구우승을 확정지은 아틀랜타와 같은 조에 속한 필라델피아와 뉴욕메츠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거다. 우린 왜이리 운이 없냐고. 하지만 플레이오프는 승률이 아니라 누가 1위를 했는가를 우선시하니,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하고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우는 수밖에.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걸까. 메이져리그는 억울한 패자를 낳지만, 그래서 더 인기가 높다. 하지만 애들 공부는 흥미 위주의 게임이 아니며, 억울한 패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평준화주의자로 생각해 왔지만, 이 글을 쓰다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534890
     
paviana(mail) 2004-09-15 11:16
제 생각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시네요 ..^^
대학에 그정도의 자율권은 줘도 되지않을까 하는게 제생각입니다.
부리님 서재 일등이네요..아이 좋아라~
부리(mail) 2004-09-15 11:20
호홋, 파비아노님 2등!!
sweetmagic(mail) 2004-09-15 11:25
바람직한 무한 경쟁의 측면에서 고교평준화에 극히 반대합니다.
문제의 시각적 차이는 공정함, 평준화 인 것 같은데... 지금의 고교 평준화는 평준화가 아니라 획일화 같습니다. 교육은 세상 어떤 것 보다 가장 평등한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획일화와 다른 겁니다. 실력은 실력이되 공부만 실력 평가 대상이 되선 안됩니다. 특성화된 교육이 특성 분야 별로 차별있는 경쟁이 가능해야 양질의 인재들이 길러질 것입니다. 대학 신입생이 열 아홉 스물인 것이 너무나 당연한 지금의 인식이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정말 학문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시기에도 무리없이 공부 할수 있는 교육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무조건 대학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거 바뀌어야 합니다. 실업계 고등학교 나왔다고 웬지 주눅 드는 거 바뀌어야 합니다. 모두들 각자 흥미에 맞고 취향에 맞는 분야의 프론티어가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그 기회의 장에는 철저한 실력제가, 무한 경쟁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만약에 제가 아이를 원해서 - 입양을 하든, 혼자서 낳든, 결혼해서 낳든 -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제시를 하고 자기 적성을 찾기 위한 일을 도와 주는 것 만 할겁니다. 철저히 자립시킬 것이며..대학 교육을 일정 시기에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토론문화하나 정착 안되어 있는 정보전달에만 열혈한(?) 일방통행 같은 지금의 대학교육 현실.... 대학이 무슨 학원 입니까 ???
꼬마요정(mail) 2004-09-15 11:34
하지만 고교시절부터 생기는 계층의식이나 우월주의 같은 건 어쩌죠? 그 예로 울산을 보면 그렇잖아요...서울대를 없애자는 둥 그런 말도 나오지만 정작 실천이 안 되는건 그 학교 출신들이 다 잘되어 그걸 막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아무튼 너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tarsta(mail) 2004-09-15 11:40
상식적으로, 장기적으로 볼 때 고교 등급제는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재는 키워져야 해요. 공부뿐 아니라 예체능에 봉사점수까지 따지는 고교 시스템은 팔방미인을 요구합니다. 그런 시스템에서 천재는 낙오되기가 더 쉽지요. 천재 하나가 평범한 사람 몇백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시대에 그런 시스템은 치명적입니다. 게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교육현실때문에 이미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다 일찌감치 해외로 아이들을 내보내죠.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 등급제를 시행하면 반대급부가 더 심할겁니다. 인맥으로 해결하는 줄타기가 더 견고해질 것이라는 우려와, 비정상을 넘어 기형화된 사교육시장 때문이에요.
WASP 같은 부류가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물 위로 드러나겠지요. '새로운 KS'(경기고-서울대)가 생겨나게 된다면, 과거의 KS 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강한 힘을 만들어 그걸 절대 놓지 않을껍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같은거, 기대도 못할 분위기에서 생겨나는 또하나의 기득권층은 이미 사회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그래도 쉬쉬해가며> 하던 일들을 드러내놓고, 훨씬 지능적으로 하려 들껍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조선일보가 고교등급제를 찬성한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여요.
미쳐가는 사교육때문에 이미 많은 고교생들은 동등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BS라거나 생각있는 몇몇 '스타강사'에 의한 무료 강의니 하는게 가끔씩 나오고 있지만, 기업화 된 학원들과는 게임이 되지 않고, 게다가 훨씬 더 근본적으로, 인터넷은 구경도 못하는 고교생이 아직도 많이 있어요. 억울한 고교생이 나오지 않도록, 이라는 이유라면 더더욱 고교 등급제는 시기상조입니다. 돈이 있는 부모들은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 고교에 자식을 입학을 시키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를 쓸거에요. 중학교 대상 사교육시장도 더 확대되겠죠. 이게 현대판 음서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살벌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변화의 흐름을 기대한다는게 무리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문제점들이 정서적으로, 국가차원의 시스템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한.. 차라리 고교 평준화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등급 따기 힘든 좋은(=합격율 높은) 교교에 가느니 내신 잘 받을 수 있는 보통(?)학교에 아이를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해외로 빠지는 유학비를 생각해봐,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사교육시장이라는 블랙홀은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tarsta(mail) 2004-09-15 11:55
제 대안은 언제나 <이 문벌주의를 없애야 해!> 였죠. 교육을 차별화(다양화, 라는 의견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해야 한다는 스윗매직님 의견에 백프로 찬성입니다. 마이스터 제도 같이 기술자도 동등히 우대받는 사회만이라도 된다면 고교등급제도 충분히 가능성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대학 교육을 일정시기에 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는 말, 저랑 너무 똑같습니다. ^^
sweetmagic(mail) 2004-09-15 11:44
제 말이 지금의 현실을 무시하고 매우 지나치게 이상적이게 들릴 것도 같다 라는 생각도 합니다만...계층의식이, 우월의식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고교평준화라는 이름으로 실력 획일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대학은 학문하는 곳으로, 전문대학은 실용학문을 배우는 곳으로... 철저한 실력주의로 경쟁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 출신과 전문대학의 출신이 그냥 단지 다른 분야를 공부한 또는 익힌 사람들이라는 차이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식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이라는 단어가 필요 하지도 않을 만큼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생각인데... 답답 합니다.
의식 변화의 문제가 수반 된다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우루루 움직이는 데 익숙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이빨 안 먹힐 얘기 란거 압니다. 갑자기 제 처지가 답답하네요.
마태우스(mail) 2004-09-15 11:52
스윗매직님/님의 글도 아름답지만, 1등을 기꺼이 양보한 게 더더욱 아름답습다. 이미지 안바꾸신 거 제 반대 때문이죠?^^
타스타님/코멘트로 남기엔 너무 아까운 글입니다. 저도 그래서 평준화를 지지하는데요, 대학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거를 막는다는 게 과연 옳은 건지 싶네요. 국가 차원에서 교육을 전적으로 해결해 준다면 평준화를 깨도 되겠지만 지금처럼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선 평준화를 깨는 게 무리죠. 고교등급제에는 찬성하고 평준화도 찬성하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마태우스(mail) 2004-09-15 11:54
꼬마요정님/님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애들이 중학교 때부터 입시에 시달리는 게 과연 좋은가 싶구, 어려서부터 계층별로 층이 갈라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하여간 전 모든 문제의 근원에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서열화에 있다고 보고요, 서울대 폐지를 위해노력할 겁니다. 근데 그게 잘 될까요...
마태우스(mail) 2004-09-15 11:54
근데 내가 왜 부리 서재에서 답을 하고 있는걸까.
tarsta(mail) 2004-09-15 11:58
(풉.! ^^)
sweetmagic(mail) 2004-09-15 12:06
ㅎㅎㅎ 될까요 ? 라 물으셨지요. 님 혼자서요 ?? 절대 안돼지요.
저희가 할겁니다. 어떻게 할거냐구요 ? 그냥 무관심 할 겁니다.
서울대가 사랑 받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보고 다시 사랑할지 안 할지 결정할갑니다.
서울대는 폐지 되어야 할것이 아니라 개혁 아니 변화 해야 하는 것 뿐입니다.
의식 변화이지요.
서울대가 지금 까지 이바지 해 온일이 얼마나 많은데.... 저희가 무관심 하기 전에 서울대 스스로 서울대로 부터의 변화가 생기길 바랄뿐입니다.
sooninara(mail) 2004-09-15 12:24
고교등급제가 되던 획일적인 평등화가 되던..부모입장에선 아이에게 가장 좋은것을 주고싶은 거라서..분명히 부작용은 생길겁니다..대학입학시험 한번에 목숨을 걸던 예전의 입시제도는 비인간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실력을 정당하게 비교한다는 장점도 있었던것 같아요..
요즘은 중학교때부터 수행평가에 엄마들이 목숨걸고 다 챙겨줍니다..시험외에 수행평가 점수가 중요하고..엄마가 같이 챙겨주어야 일정한 점수가 나온답니다..기술시간에 필통만들기 숙제에서 아크릴판 사가지고 간판집에 잘라달라고 가져간 엄마가 바보됐다고 하더군요..
이미 만들어진 필통 완성품에 이름만 써서 팔고 있어서..가지고간 아크릴판은 놔두고 완성품 사가지고 올수밖에 없었다구요..시험외에 모든면에서 완벽한 슈퍼맨을 만들어야하는 내신으로 대학가기는 더 엄청난 비리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우리아들,딸이 서울대 못가더라도..특수고등학교 못가더라도..잘난 놈들은 더 키워주어야하는것이 우리나라 경쟁력을 위해서 필요한것이 아닐까요? 이미 우리나라안에서 경쟁하던 시대가 아니고 전세계와의 무한경쟁 시대인데..이해찬세대이후로 학력은 점점 더 떨어져만 간다고 하는데...외국에선 오히려 공부잘하는 아이들만 대학가려고 고등학교때 공부하고 그외에는 직업학교가 발달되어있어서 문제가 적은거 아닌지요? 유럽쪽은 그렇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란 상고나 공고나..자격증따서 대학에 특례입학하는 중간코스로 보는경우가 많더군요..
고등학교에서 직업훈련은 아예 없어진거 아닙니까...우리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반에서 5등안에 들어도 여상가는 아이들도 있었는데..이젠 그런 여상 명문도 없어진지 오래라는...
sooninara(mail) 2004-09-15 12:34
한참 수다 떨다보니,,중요한걸 안썼네요..^^
저도 부리님 의견에 찬성입니다..이미 차이가 있는걸..짧은것은 길게 늘리고..긴건 잘라서 침대길이에 맞추는 짓은 웃길것 같아요..(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던데..생각은 안남)
부모에 따른 재력에 따른 실력차는 생길수밖에 없잖아요? 무조건 눈감고 그런거 없다..없어야한다고 하는것은 불가능할듯...군사독째때처럼 사교육 금지시켜도 비밀과외는 돈있는집은 다 하잖아요..과외금지세대라서 놀긴 실컷 놀고 대학도 갔는데..요즘 아이들이 불쌍해요..
초등학교1학년부터 엄마들의 마음가짐이 보통이 아니더라구요..
갈대(mail) 2004-09-15 13:23
저는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경쟁에는 평가가 뒤따라야 하는데, 이 평가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한정되고 결정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미래의 돈벌이가 걸려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공부할 수도 없습니다. 또 경쟁에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적대감과 배척, 집단 분열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재'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백만 명에 한 명씩 나올까 말까 한 천재를 염두에 두고 교육을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우수한' 학생들을 염두에 둔다면 모를까.
mannerist(mail) 2004-09-15 13:56
고교등급제를 실천하자는 사람들이 눈감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학을 선택하는 "권리"의 크기와, 주거지 근처에서 학교를 골라야 하는 현재 고등학교 "선택권"의 크기와 똑같은가요? 그리고 과연 강남지역의 애들 성적이 평균적으로 높은 게 고등학교의 교육 탓인가요? 고등학교를 고를 선택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실시하는 고교등급제는 집이 어디인가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단거리 달리기 경주를 시키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지금의 고교평준화 내신 구조가 문제 없는 건 아닙니다. 대학의 고충은 내신 성적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지금 고등학교 시험 문제들 보면 정말 골때립니다. 될 수 있으면 얘들 내신 잘 주려고 평균은 80-90점대로 치솟습니다. 보충교재 문제집 숫자도 안 바꿔 낼 뿐더러, 쉬운문제에 배점이 크고, 어려운 문제에 배점이 작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같은 반의 1등과 5등 차이는, 누가 실력이 좋나 보다 누가 더 실수를 안 하는가 차이입니다. 변별력이 하위권 - 중상위권 가르는 데는 있어도, 실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갈 비율인 상위 15%간의 내신성적은 신뢰할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내신 간의 격차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교육 스팀팩 쳐바른 애들만 유리해지지 않겠습니까.

대학에서 빽빽대는 걸 없에려면 교육청에서 각 학교 중간/기말고사의 평균과 표준편차 관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균은 65 -80점, 표준편차는 +-5 ~ 10점 정도로 말이죠. 단기적으로, 일단 급선무는 내신에 대한 신뢰를 높여, 대학에서 변별력 없으니 어쩌란 말이냐. 소리 못나오게 하는 거 아닐까요.
Epimetheus(mail) 2004-09-15 14:29
저는 고교등급제 개폐와 관련해서 이 문제의 핵심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은 고교등급제 개폐의 중심논거로 양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력’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정답찍기 능력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데 있어 유용한 것이냐 비유용한 것이냐를 면밀히 살피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겠지요. 그러고 난 차후에 고교등급제 개폐를 둘러싼 논의를 시작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요?

먼저 학력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제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교육체제 내에서 ‘학력’이란 것은 사실상 정답찍기 능력이겠죠. 그렇다면 이 정답찍기 능력이 과연 대학교육에 있어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떨까요?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 한 가지 고전적 기준을 내세워 봅시다. 대학의 고전적 정의는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리와 응용 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함양하는 기관”입니다. 여기서 “학리와 응용 방법을 교수, 연구”하기 위해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지성은 다음의 네 가지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번째는 “탐구 또는 발견하는 기술”입니다. 두 번째는 “음미 또는 판정하는 기술”, 세 번째는 “보관 또는 기억하는 기술” 그리고 네 번째는 “발표 또는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다소 추상적이어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현대식으로 의역한 걸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정보수집기술”, 두 번째는 “정보평가기술” 세 번째는 “컴퓨터 사용기술 즉 리터러시(literacy)” 마지막 네 번째는 “정보이용기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행 교육체제에서 ‘학력’으로서 함양시키고 있는 정답찍기 능력은 어느 범주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아쉽지만 단 하나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결국 헛굴만 파고 있는 셈이죠.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고교등급제 논란은 겉만 번지르한 공중누각일 뿐입니다. 근본이 없는데 거기에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단언컨대 이것은 이념적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사실이냐 사실이 아닌가에 초점이 맞춰줘야 합니다. 사실과 사실 사이에 이념과 노선이 끼여들 여지는 없습니다. 진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고 보수이기 때문에 이것이 거짓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뒷 넋두리

'엘리트'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수한 학생을 '엘리트'라 정의내리는 것은 이미 오류라는 것이 교육학의 정설입니다. 말을 엄밀하게 쓴다면 '엘리트'가 아니라 '수월성'이겠죠. 교육이란 것도 하나의 제도인 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적응이 요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커리큘럼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죠. 예컨대 에디슨과 테슬라가 살았던 당대에는 에디슨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오늘날 공학계에 있어서는 테슬라의 업적이 에디슨의 업적보다 두드러진다 하더군요. (이건 책에서 읽긴 한건데, 그쪽에 워낙 문외한이라 좀 그렇네요. 매너님이라면 잘 아실 듯하고... 매너님 진짜에요?)
어디에도(mail) 2004-09-15 14:46
위에 쓰신 분들처럼 구체적으로 논할 능력은 되지 않지만, 저는 부리님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황에서의 고교등급제 시행은 단순한 '실력 등급'이 아니라 매너리스트님의 말씀처럼 그저 '주거지 등급'에 다름아닌 것 아닐까요.
만약에 부리님의 2세가 단지 마포구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강남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비해 등급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다면 님은 그저 당연하다 하실건가요, 아니면 강남구로 이사를 가실 건가요.
'재력에 따른 실력차' 를 등급으로 만든다면 비강남권 아이들이 더욱더 '억울한 패자' 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nugool 2004-09-15 16:38
여기에 대해 다들 생각이 많으시군요.. ^^ 전 상세하게 의견을 개진할 만큼 제대로 알고 있진 못하지만요.. 등급제가 바람직 할 거 같진 않아요. 어쨌거나, 지금 우리 선배들 처럼 대학뿐 아니라 출신 고등학교까지 레이블이 붙게 되겠죠. 지금의 엉성한 고교등급제가지고는 안되겠지만 점점 더 자리를 잡게 되길 바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렵니다. 매너리스트님 말씀이 아주 공감이 가는 군요.
부리(mail) 2004-09-15 16:59
우와, 너무들 글 잘쓰세요. 님들의 댓글을 읽다보니 제가 왜 저 글을 썼던가 후회가 될 정도예요. 그래도 님들의 댓글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웠으니, 글을 괜히 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조선인 2004-09-15 17:48
제가 생각하는 진짜 대안은 대학 수를 줄이자! 입니다.
쓸데없이 대학가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고교등급제니, 기여입학제니 야릇한 논의가 범람하는 겁니다.
sweetmagic(mail) 2004-09-15 17:56
망해 자빠지는 대학이 팍팍 늘어야 합니다.
mannerist(mail) 2004-09-15 18:10
Epimetheus님_어설프게 에디슨과 테슬라를 비교하는 건 범주에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에디슨이 무수한 공학적 업적을 남길 수 있던 건, 그가 공학도(engineer)이자 기업체를 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되겠지요. 반면에 니콜라 테슬라는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연과학도였거든요. 기술의 응용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 현상의 발견과 탐구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학자 말입니다. 에디슨이 전기 사업과 관련하여 교류에 대한 근거없는 폄하를 비롯한 비열한 짓거리는 이 연장에서 바라보면 이해할만도 합니다. 자기 회사가 나자빠질 지도 몰랐거든요. 물론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말이죠. '업적'이란 것 역시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틀려집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바로 실생활에 쓸 수 있는 편리함에 주안점을 둔 에디슨의 귀납적 연구 방법과 그 성과, 엘리트 과학 교육과 타고난 천재성에 근거한 연역적인 니콜라 테슬라의 전자기학에 대한 업적과 그 성과는 실제적인 영역, 학문적인 영역에 각기 그 무게를 두고 있으니까요. 둘을 라이벌로 보는 시각에는 전 그리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리님. 딴소리 늘어놓는거 용서해 주시길. =)
soyo12(mail) 2004-09-16 00:46
대학에서 말하는 고교 등급제를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고의 내신 10등급은 일반 학교의 1등급과 동등하게 인정하자로요.
저는 이건 실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저는 대학갈때 평준화 내신의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제가 내신등급이 2등급이었기에 저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갈때는 고만고만한 내신이었지만,
제 친구보다는 수능 10점이 낮아도 대학에 붙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제 친구는 내신이 8등급이었거든요.
결국 그 친구나 저나 같이 붙기는 했지만 어쩌면 현행과 같은 평준화는 역차별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거지요.
사회적인 평등을 이룩할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실력이 더 월등한 아이를 뽑을 것인가?
지금 현실적으론 그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
Epimetheus(mail) 2004-09-16 15:20
매너님/ 님의 글은 언제나 절 계몽합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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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0-09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수능점수나 내신 등급이 요구되는 걸까? 혹은 부산대 갈 성적인 학생이 연세대 가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까 연세대 갈 성적인 사람이 부산대 가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내 생각에는 일정정도의 수학능력(?)과 학습의욕만 있으면 아무 대학에나 보내서 공부하게 하면 될 것 같은데...

객관적인 실력에 관해서도 내 생각으로는 가령 강남에서 10등급인 사람이 지방에서의 1등급인 사람과 비슷한 실력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답안지에 모범답안을 몇개나 넣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서 몇 프로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가 오히려 더 정확한 수학능력 테스트가 아닐까? 더 경쟁력이 있는 학생들이니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릴케 현상 2004-10-09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대학 수를 줄이는 게 왜 대안인지는 좀 의아하네요. 혹시 경쟁력 있는 대학만을 남겨놓고 고등학생 상위30프로정도가 아무 대학이나 골라서 가게 하자는 의견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실 대학수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대학가고자 하는 사람이(공부하고 싶지 않은 다수의 사람이 대학가고자 하죠) 너무 많은 게 문제고 그건 사회의 문제지 대학 수의 문제는 아닌 것 같거든요.

망해 자빠지는 대학이 많아야 한다는 것도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하는 문제와는 관련이 있겠지만...고교등급제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NA 2004-10-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 선배 서재에는 처음 글을 남깁니다. 사실 눈팅은 많이 했는데, 별로 헐말도 없고 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오늘은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분들을 보면서 한심해서 한마디 하게 됩니다. 지역 '불평등', 계급 '불평등'을 '공정하게' '평등주의적으로' 반영하라고 주장하다니....이런 형용모순이 어디있습니까?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어퍼머티브 액션 비판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논리군요. 가진 자만이 더 가질 권리가 있다. 가진 것을 기준으로 평등하게 기회를 부여하라! 어퍼머티브 액션이 그렇게 진보적인 것도 아닌데 그걸 옹호하는 말을 해야할 때 정말 짜증이 나죠. 문제는 고교평준화가 너무 지나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평준화가 계급간 격차해소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것인데, 참 역시 스피노자가 말하듯 사람들은 언제나 원인보다는 결과에 많이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릴케 현상 2004-10-09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trl님 말씀 너무 어려워요. 누구 해설 좀 해줘요


balmas 2004-10-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trl님은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자명한 산책님이 해설을 좀 해달라고 하시는데, 제게 그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ctrl님 말씀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강남과 강북 사이에, 서울과 지방 사이에 학력 차이가 존재하니까 고교등급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현실적 격차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니까 이게 좀더 공정하다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좀 혼동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인 듯합니다. 다시 말해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사이의 학력 차이를 낳는 원인은 계급적, 지역적 불평등인데, 또는 이러한 불평등이 교육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원인의 문제는 놓아둔 채로 학력 차이가 존재하니까 고교등급제를 인정하라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원인, 곧 계급적, 지역적 불평등을 한층 더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느냐 시행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결과를 둘러싼 쟁점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데, 다만 고교등급제의 시행은 계급적, 지역적 불평등을 훨씬 더 조장할 우려가 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그것을 금지하는 게 필요하다, 또는 그런 정책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ctrl님 말씀은 그런 말씀인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둘러싼 논의와 유사한 구도를 갖는 게 아니냐고 보시는 듯하고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군요. 답답하시면 ctrl님이 좀더 설명을 해주시겠죠.^^


NA 2004-10-10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너무 함축적으로 썼었나 보군요. 자명한 산책님께는 죄송합니다. 발마스 선배께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아시다시피 소수자들에게 입학허가 등을 주어야할 의무를 대학에 부과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설사 백인들이 보다 많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흑인 학생이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백인 학생들은 바로 점수를 기준으로한 평등논리를 앞세워 어퍼머티브 액션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정치활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의 인종주의는 많은 경우 노골적인 불평등논리를 주장하지 않고, 평등논리를 이렇게 왜곡함으로써 뒤통수를 공격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들은 백인들이 현실에서 이미 누리고 있는 특권과 소수자들이 처해있는 어려운 조건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이들간에 보다 평등한 관계들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동일한 논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실력차이를 인정하라.' 단 백인과 흑인 사이가 아니라 강남과 강북사이, 혹은 서울과 지방 사이 등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더 사회가 신분제 비스무레하게 변해나가는 것이 보이는데, 고교등급제는 당연히 그것을 고정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입니다. 오히려 강남 학생들에게는 무슨 가산점을 덜 준다든지 해서 독식을 막아야 될 판국인데, 이런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것은 정말 아니올시다라는 것이지요. 고교등급제, 좋습니다. 만일 지역적 빈곤도를 조사하여 빈곤한 지역들 출신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주는 고교등급제를 실시한다면, 저도 대 찬성입니다.


balmas 2004-10-10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trl님이 다시 상세히 설명해주셨으니,
이제 자명한 산책님이 만족하실 듯하군요. ^^


릴케 현상 2004-10-1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대만족이에요. 마음에 드는 논평인데요^^

 
 전출처 : 갈대 > 시사투나잇

요즈음 자정만 되면 나는 거실로 향한다. 그리고는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비를 켠다. 왜? '시사투나잇' 보려고. 그게 뭔데? KBS 2TV에서 자정부터 약 40분간 하는 뉴스프로그램. 그걸 왜 보는데? 그 이유를 이제부터 말하려고.

아마 9시 뉴스에 완전히 질려서 뉴스란 걸 아예 안 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굳이 9시 뉴스를 볼 필요도 없다. 7시 뉴스랑 똑같으니까. 나도 가끔 밥 먹을 때 우연찮게 보게 되는 경우를 빼면 왠만해선 뉴스를 보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뉴스가 사실 전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방송국 전화통이 항의전화로 불이 난다고 한다. 심지어는 있는 사실만을 말해도 뉴스거리 선정 자체가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매우 좋은 비판이긴 하나, 비판자가 꼴통이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매일 똑같은 뉴스에 신물이 났다면, 내가 도대체 저 소식을(예를 들어 이름모를 누군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등의 소식들) 왜 봐야 하는지 뉴스 제작자 멱살을 붙잡고 묻고 싶을 정도라면, 속는셈 치고 '시사투나잇'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간략한 소개를 위해 방금 전에 끝난 오늘자 방송내용을 순서대로 적어 본다.

1. 국정감사 - 서울시 국정감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다른 뉴스들은 국정감사 하는 과정을 방송하기에 무리 없도록 아주 짤막하게 편집해서 그냥 '국정감사 한단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다더라' 라고 방송할 뿐이지만 시사투나잇은 직접 찍은(9시 뉴스랑은 완전히 다르다) 화면을 재미있게 편집해서 길게 보여준다. 오늘은 주로 명바기가 곤혹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실로 통쾌했다. 서울시 행정과장이 증인으로 호명되자 혼란스러운 틈을 타 슬그머니 도망가는 모습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면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직 행정수도 공방 문제만을 두고 9시간 동안 떠들었다는 비판을 잊지 않는다.

2. 헤딩라인뉴스 - 이거 보신 분들 많으실 거다. 일종의 풍자페러디 뉴스인데 시사투나잇에서 중간에 해준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박진 선수가 외국 용병을 영입하지 않으면 16분만에 골을 먹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단다.

3. 월경축제, 성교육 - 대학가에서 월경축제하는 현장에 가서 축제의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인터뷰를 곁들였다. 이런거 해주는 뉴스는 아마 없을 것이다. 덕분에 여자가 월경 전에 몸에 다양한 변화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추천 환영).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성교육이 나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임신했을 때의 고통을 체험해 보기도 하고 수정의 과정을 인형극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때는 왜 그런 게 없었나 싶었다.

4. 외국인 한글 백일장 - 한글날을 앞두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글 백일장을 열었다고 한다. 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다. 대상을 수상한 탄자니아 여학생의 시는 심금을 울렸다.

5. 미국 동성애자 결혼 허가 - 미국의 몇몇 주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허가했단다. 그래서 직접 미국에 가서 찍어 왔다(외주이긴 하지만 역시 이런 건 다른 뉴스는 일체 안한다). 예상보다 엄청나게 많은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동성애자 결혼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그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동성애자 하면 떠오르는 이유없는 거부감이 조금은 사라진 듯 싶다.

보면 알겠지만 별 쓰잘데기 없는 뉴스는 아예 다루지를 않는다. 대신 다른 뉴스들이 그냥 지나치는, 하지만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소식들을 전한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직접 찍어온다. 한동안은 이라크 소식을 현지에 있는 활동가와 통화를 해서 전했다(기자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포지션은 왼쪽으로 상당히 치우쳐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좋은 놀림감인 것은 당연하다. 가끔은 이렇게 막나가도 되나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뭐 나야 재밌고 좋지만. 혹 내가 여아나운서의 미모 때문에 이렇게 칭찬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절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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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0-0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아나운서가 예쁘다고요?(솔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