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살인의 추억: 불행에 중독된 시대의 살인
영구미제사건 - 화성연쇄살인사건
영화 <살인의 추억>이 지난 2003년 4월 25일 개봉한 지 꼭 석 달만에 전국 510만 1645명(서울 191만 2369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막을 내렸다. 역대 한국 영화 흥행 랭킹 5위에 해당하는 작지 않은 성과를 거둔 이 영화는 지난 2001년 개봉한 <친구> 820만 명으로 1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이상 580만 명), <조폭 마누라>(520만 명)의 뒤를 잇고 있는 소위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한편 이 영화의 실제 소재가 되었던 '화성연쇄 살인사건'(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여에 걸쳐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 당한 뒤 피살된 사건)은 유일하게 목격자가 확보되었던 7차 사건(88년 9월7일 발생)의 공소시효가 2003년 9월 6일로 만료되었다. 사실상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전체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경기경찰청은 8일 “범인검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7차 사건의 살인혐의 공소시효 15년이 지남에 따라 화성 사건은 90년 11월15일 발생한 9차 사건과 91년 4월3일 발생한 10차 사건만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유일하게 범인이 검거된 8차사건은 나머지 연쇄살인과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었다. 7차 사건은 당시 수사팀에 의해 유일하게 목격자가 확보 돼 용의자에 대해 ‘갑동이’라는 별칭까지 붙는 등 검거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경우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목격자가 전혀 없던 이전 사건과는 달리 “사건 당일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옷이 흠뻑 젖은 남자를 범행 현장부근에서 태웠다”는 버스 운전기사와 안내원이 나타나면서 수사에 더욱 활기를 띠었었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스포츠형 머리에 신장 165~170㎝, 오똑 한 코에 날카로운 눈매의 24~27세 가량 남자’를 현상금 500만원에 수배하고, 20만장의 전단을 전국에 배포하는 등 검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미제사건으로 종결되게 되었다. 당시 사건의 수사팀장이던 경기경찰청 강력계장 하승균 경정은 모 출판사를 통해『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자전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하 계장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아직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담당형사” 라면서 범인을 잡지 못한 아쉬움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검거의지를 나타냈다.
이성이 사라지면 소녀취향만 남는다
어느 책에선가 이 문장 "이성이 사라지면 소녀 취향만 남는다"를 읽고 무릎을 짝 소리 나게 때리고 싶었다. 가끔 통렬한 한 문장이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기도 한다. 물론 저 문장이 어느 경우에나 고스란히 제몫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저와 비슷한 감흥을 던져주었던 다른 문장은(일종의 아포리즘 같이) 가령, "천재가 사라지면 스타일만 남는다"와 같은 문장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성'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소녀 취향'이 될 것이고, '천재'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스타일'이다. 공자를 대성(大聖)이라 하는데 비해 맹자를 아성(亞聖)이라 하는 것은 맹자를 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류(亞流)라는 말에 이르게 되면 '에피고넨(epigonen)'의 의미가 된다. 에피고넨이란 말은 본래 그리스 신화에서 테베를 공격한 그리스 7용사의 '자손'을 의미하는 말이었고, 그 뒤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를 이르는 말로도 사용돠었다. 에피고넨의 의미는 자손에서 후계자로 이어지다가 학문과 예술에 이르러 이에 대한 '모방자', '아류'의 의미로 확장된다. 예술사를 살펴보면 하나의 사조를 만들어 내는 이들이 뛰어난 작품을 남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그 뒤를 이어 오는 이들이 좀더 뛰어난 작품을 남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것은 앞서 가는 이들이 겪게 되는 시대의 징벌을 선구자들이 고스란히 맞아준 덕이다.
종종 시대의 아웃사이더들이 새로운 사조를 개창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주류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탓이다. 우리는 세계 4대 종교라는 '공자, 예수, 부처, 이슬람'의 진리를 알고 있다. 또한 근세사를 통해 종종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의 폐해를 듣고 말한다. 이 말은 본래 20세기 초엽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파 내에서 신학적 해석과 진화론을 둘러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갈등에 대응하는 보수교단의 신앙운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근본주의라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는 애초의 진리로 회귀하자는 운동이 된다.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성서의 무오류성을 비롯한 몇 대 강령을 신앙처럼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공자에 이르러서는 주희의 성리학이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져 조선에서는 유교의 다른 학파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처형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나의 진리가 처음 그것을 말한 이로부터 에피고넨으로 이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사라지고 '말씀'으로 기록된 진리만이 남을 때, 그리고 이것을 다시 절대선으로 추구하게 될 때 우리는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된다. 중심은 유연하나 변방으로 이를수록 잔인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이렇게 고쳐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대 정신이 사라지면 풍속만 남는다." 80년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나는 무수한 소설가들이 달려들었던 '후일담' 문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일담이 진정한 후일담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그들이 통과한 시대에 대한 성과와 반성이 녹록치 않게 녹아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급한 후일담은 마치 지금도 똥 푸는 사람이 내가 옛날에 똥 펐었는데 말이야 하면서 떠들어대는 술집 무용담처럼 여겨진다(이건 절대로 똥 푸는 일에 대한 험담은 아니다). 어떤 내용들은 마치 과거 풍문으로 떠들던 -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들이 담배를 나눠피우며 대학생들이 MT가서 '떼씹'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 소문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들은 아니었음을 자인하는 정도의 반성(실제로 '100인위'에서는 지난 시기의 소위 '민주화운동권' 내에서의 성폭력을 조사했다)이 그것이다.
어느 한 시대를 조망하는데 있어 개인의 성찰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작가의 절망은 곧 사회와 시대의 절망과 아직까지도 대등한 긴장관계 아래 놓인다는 나의 문학적 전망 아래에서 그것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개소리의 연장이었다. "그래, 혁명은 파산했다. 그렇다고 절망도 파산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80년대를 회고하는 성찰에서 우리가 특히 주의할 것은 우리가 지난 80년대에 꿈꾸었던 전망은 아직 성취되지 못한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즉, 현재 진행형의 연장선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종료된 시점으로 정리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발 인정해 달라는 것이(즉, 현재도 우리는 똥 푼다는 것)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시대에 우리들은 그러할 수밖에 없었음을 살펴봐달라는 울먹임 섞인 반성에 대한 경멸이다. 반성은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반성이라 해서 비굴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이 들었다. 마치 80년대의 풍속화를 보는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말이다. 감독 봉준호는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후일담을 시작한 것일까?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속에서 시대 정신으로, 스타일에서 천재로, 소녀취향에서 이성으로 말이다.
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두 가지 선행 조건 - 반성과 극복
나는 진정으로 어느 한 시대가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비극이 코미디로도 다루어질 수 있는 시점에 가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믿는다. 80년대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386세대가 정치 일선에 등장한다고 해서, 과거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보상받는다고 해서, 그들의 운동이 재평가된다고 해서 그 시대가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살인의 추억>이 가진 미덕 중 한 가지는 80년대를 바라보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 하나를 얻었다는 것이다. 80년대를 바라보는 그간의 여러 영화들이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등이 있고, 그 이전의 또다른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 영화들 또한 일정한 미덕과 함께 일정한 한계들 속에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이창동은 그 시대와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초록 물고기>가 자본과 근대화의 폭력성을 그렸다면, <박하사탕>은 개인과 국가 권력 사이의 폭력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는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섣부른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애초에 그런 의도같은 것은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의 시선에 사로잡힌 두 명의 형사는 전근대성(시골형사 박두만)과 근대성(서울형사 서태윤)을 상징하지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는 이 둘 사이를 애초부터 화해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서울 형사의 근대성이란 것은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서울 형사 서태윤은 영화의 후반부에 진입하면서 꼬이고 꼬인 범인 체포에 대한 미련과 열망으로 박두만과 닮아간다. 그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박형규를 철도 터널 앞에서 구타하고, 그에게 권총을 들이댄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순간마다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신청되었다는, 자신이 그를 미행하지 못한 순간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연속되는 우연의 심증으로 그는 박형규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올드'old'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던'modern'한 한 인간은 결국 'old'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날아든 미국범죄수사국의 DNA조사 보고서는 어리석은 미망을 깨우는 근대의 세계로부터 날아온 타임머신과 같다. 이 영화에는 유력한 범죄 용의자 세 사람이 등장한다. 범죄용의자들이 차례로 등장할 때마다 당신과 나의 전근대성은 함께 피의자를 지목하고, 함께 범죄자를 추적하고, 잠시동안은 연쇄강간살인범의 심정이 되기도 하면서 발로 범인을 잡는 대한민국 형사들의 어처구니없는 발걸음이 되어 이 영화의 히트한 광고 카피처럼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심정이 된다. 우습게도 우리들 중 누구도 현재까지 이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사상 미증유의 미해결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박현규가 범인일 것이라는 심증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들의 이성이 소녀취향을 능가하지 못하는 순간
감독 봉준호는 이 상황에서 슬며시 우리들의 뒤통수를 노린다. 그는 마치 시대를 표현하기 위한 풍속의 아이콘을 삽입하듯 - 이미 모든 장치가 드러나 있음에도, 워낙 잘 녹아들어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 시대를 드러낸다. 시대를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이 모든 것이 시대의 잘못이라고 그는 섣부르게 대놓고 지목하지 않는다), 그는 시대를 드러내는 고도의 술수를 부린다. 우리는 몇 번의 살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회고하게 된다. 전두환의 지방 방문을 위해 빗속에 강제동원된 여고생들과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빗속을 뛰어다니는 경찰들, 살인사건이 벌어질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시국사건에 차출된 전경들, 문귀동의 부천성고문 사건 뉴스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범인이 잡힐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감독은 더욱 잔인하고 예리하며 집요하게 관객들을 괴롭힌다. 범죄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또 한 명의 피의자. 광호는 범죄 현장의 유력한 증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형사에게 엉겁결에 못 박힌 각목을 후려친뒤 이에 놀라 뛰어나가고, 전봇대에 올라갔다가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숨지고 만다. 형사들이 조금만 더 일찍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대응했더라면, 광호에게 고문을 행사해 광호가 공권력을 두려워하게 만들지만 않았더라도 유력한 증인이었던 광호가 열차 선로로 뛰어들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호를 때렸던 형사는 녹슨 못에 찔린 뒤 치료를 미루다가 파상풍에 걸려 결국 다리를 잘라내고 만다. 이것을 단순히 형사 개인의 인과응보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형사와 함께 시대의 징벌을 받고 있다.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범인이 아니었으며 진짜 범인은 유유히 사라져 과거의 살인현장을 추억한다.
어느 비평가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한국적인 토양에서만 이해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한다. 오랫동안 한국영화계는 오랫동안 스스로의 갈 길에 대한 고민은 거듭해 왔다. 할리우드 식의 블록버스터를 실험해보기도 했고, 유럽 영화의 예술성을 흉내내보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수사반장>의 시그널을 들으며 발장단을 맞추는 형사와 범인을 외국 관객들이 쉽게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헌법 개정을 논하는 것만으로 적국을 이롭게 만드는 이적행위로 규정되어 치도곤을 당해본 적 없는 그네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도리어 억울할 지경일 것이다. 이 영화는 1996년 초연된 김광림 연출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바탕으로, 실제 사건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시나리오화 되었다고 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불과 10여년 전의 사건으로 사건발생지역인 화성과 당시 관계자, 피해자 유족들이 예민하다는 점,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주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보면서 심각해진다는 것, 우리들은 왜 저 지난 시기에 저렇게 답답하게 굴었을까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어째서 우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그 흔한 DNA조사기가 없었을까를 탓한다. 왜 저 순간에 하필이면 형사가 타고 다니는 고물 '맵시나'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나를 탓한다. 감독 봉준호는 전작 <플란더즈의 개>를 통해 그가 장르적인 영화 만들기를 이미 터득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을 적절한 지점에서 배분하는 장르 뒤집기에 능숙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솜씨를 <살인의 추억>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냈다. 그런 솜씨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낯익은 이야기들을 만난다. 경찰의 무능을 욕하고, 시대의 덜떨어짐을 비난하던 사람도, 경찰의 무능이 또한 우리 시대의 무능이었음을 깨우치고 아파한 사람도 이 대목에 가서는 속이 쓰리다. 우리들은 이 나라의 민주헌정질서를 군홧발로 짓이긴 자들과 광주학살의 주범들과 함께 어두침침한 극장에서 함께 희희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달콤 쌉싸름한 살인의 추억을 즐기고 있다. 아시겠는가?
달콤쌉싸름한 학살의 추억
며칠전에 실린 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경찰청이 이날 국회 행자위 소속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난 7월말까지 서울지역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위해 교통통제를 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1백97회, 전두환 전 대통령 1백93회의 교통통제를 요구하여 시민들이 다니는 길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차를 신호대기없이 달리도록 만들었다. 1997년 노씨가 선고받은 비자금 추징액 2,628억여원의 추징금 가운데 노태우 전 대통령은 78.8%인 2,073억여원이 국고에 환수되었고, 이중 555억여원이 아직 집행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엔 전체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14.3%에 불과한 314억여원 만이 추징된 상태다. 얼마전 방영된 TV 시사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들은 우리나라 상위 5%안에 드는 부자들이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판사에게 도리어 성을 내며 자신은 돈이 없어 추징금을 낼 수 없고 일가친척들이 도와주는 돈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며 넉살을 떨었다.
학살자의 피묻은 손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보해야 할 백주대로의 거리를 막고 신호대기없이 통과하는 이 나라에서는 2002년도 통계에 따르면 9시간에 한 명씩 살해당하고, 1시간 30분마다 한 명씩 강간당한다. 3분마다 한 곳씩 털리고 1분 30초에 한 명 꼴로 거리에서 폭행당한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것은 연쇄살인범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민이라도 가야하는 걸까?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신은 힘을 지배할 수 없게 되자 그저 힘을 저주하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음 좋은 사람들은 그건 좋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며 다닌다. 우리는 그것이 좋지 못한 일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론인즉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칼 앞에 결코 다시는 고개 숙이지 않는 일이며 정신을 섬기려 하지 않는 힘을 결코 다시는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사실 그것은 끝이 나지 않을 과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업을 계속하자고 이곳에 있는 것이다. 나는 진보나 그 어떤 역사철학에 찬동할 만큼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은 그의 운명에 대하여 그가 지니는 인식에 있어서 한 번도 그치지 않고 발전해 왔음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조건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인간조건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 속에 놓여 있지만 그 모순을 거부해야 하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책무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무한한 고통을 진정시켜줄 몇 가지 공식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이토록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가 상상 가능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존재가 역사가 자신들에게 부여해준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혁명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파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속 편하게 미련두지 말고 파산했다고 해두자.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이 어설픈 희망을 찾아 이것이 희망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정말 절실하고 정직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 복원되지 못한 정의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진실한 절망이다. 절망조차 진실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렇게 모순이 진리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