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영화산업의 콤플렉스(complex)
대기업들의 '불안한' 움직임

2004년 10월 04일   이은혜 기자 

대기업의 영화시장 진출, 영화사·제작사들의 합작법인 발족, 인수합병과 되팔기의 반복 등 요즘 영화계의 ‘보이지 않는 손’들은 잠자면서도 머리회전을 그치지 않는다. 수평계열화와 수직통합이란 두 축을 중심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한다.
먼저 국내 영화산업은 CJ엔터테인먼트(투자배급사), 케이블TV와 극장업계를 꽉 잡고 있는 오리온의 자회사인 쇼박스(투자배급사)의 양강구도다. 여기에 시네마서비스(제작사)와 강제규·명필름(제작배급사)이 가세하고 있으며, 기타 창투사들을 자금줄로 ‘기획영화’를 내놓는 소규모 영화사들의 시장이 펼쳐져 있다.


주목할 점은 자본금이 가장 많은 CJ엔터테인먼트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대박을 향후 2~3년 동안 못터뜨리면 손을 털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물론 CJ는 인터넷, 게임 등 미디어사업의 일환으로 영화로 진출한 것인데 이런 수평계열화가 제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시네마서비스와 강제규·명필름도 마찬가지. 1~2편의 대형영화를 실패하면 또다시 자금줄이 막힐 만큼 위태로운 상태다. 강제규·명필름은 네티즌들에게 제작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반응이 좋았지만, 한국영화들의 연패행진이 계속된다면 이것도 믿지 못한다.이런 상황이니 투자-제작-배급-상영의 수직통합이 ‘안전책’으로 선택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업체들은 필승의 승부수를 띄우는 상황이다. 


그것은 ‘모 아니면 도’의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자본의 횡포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이에 따른 유통질서의 황폐화, 건전한 문화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치열한 물밑대결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독과점을 비판하는 여론에 밀려 최근 CJ 측이 독립영화제 개최 등을 통한 ‘예술영화’ 지원에 연간 20억 이상을 쏟겠다고 발표했지만, 문제는 예술영화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상업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 중앙일보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나리오 공모전이 총 6백여편의 응모작 가운데 대상을 뽑지 못한 점, 우수작으로 뽑힌 작품들이 기존 장르적 문법을 답습한 뻔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은 지켜보는 이를 매우 허탈케 한다. 따라서 “대자본을 중심으로 영화시장이 확대된다고 질적 성장까지 담보되지 않는다”는 전범수 방송통신대 교수의 말은 설득력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도 “메이저사들의 멀티플렉스화는 한국영화를 잠들게 할 독약이다"라며 대자본의 흥행위주 투자가 경쟁력있는 웰-메이드 영화, 예술영화 시장을 초토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임성준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할리우드 역시 극장들이 문을 닫자 최근 다시 수직통합체계를 이루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독과점 현상과 영화의 다양성 실종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양영철 경성대 교수(영화연출)도 “참신한 프로듀서들이 이들로부터 자본을 받아 다양한 영화들을 제작할 수 있다”라고 본다. 임정수 서울여대 교수(미디어산업) 역시 “비상업적인 영화들은 또 다른 할당제로 보호해주면 된다”라고 말한다. 아무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양분돼 있고, 여기에 불안한 우리의 현실이 걸쳐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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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방환하는 우리들의 추악한 공범의식 '살인의 추억'
정성일의 영화세상

 

정성일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잔치는 끝났다고 푸념한 지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80년대가 돌아오고 있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시대가 우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변방에서 80년대를 이야기할 때만 해도 우리들은 깡패새끼들만을 보았지, 그 풍경을 보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서울 변두리의 80년대를 다룬 「해적, 디스코 왕이 되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80년대 ‘고삐리’들의 연애활극 「품행 제로」와 80년대 ‘중삐리’들의 음담패설 「몽정기」가 등장했다. 1982년 11월 14일 맞아죽은 권투선수 김득구가 「챔피온」으로 부활하고, 거의 동시에 서울 가서 성공하겠다고 권투하러 떠난 80년대 섬 소년들 이야기 「남자, 태어나다」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삼청교육대 러브스토리’라는 기괴한 ‘純正哀歡劇(?)’ 「나비」와 함께 80년대 미해결 사건인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지금 상영 중이다.


1980년대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


그러니까 80년대가 지금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는 중이다. 때로는 낄낄대면서, 때로는 음란하게, 때로는 비장한 말투로, 때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지금 다시 말해야 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는 그 사건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하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유명한 이야기. 범인은 현장에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1987년 10월 26일. 경기도 화성 논밭 근처의 농수로에서 강간당한 다음 브래지어로 목을 졸리고 스타킹으로 손발이 묶인 채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쓴 이향숙의 시체가 발견된다(이하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본 다음에 평을 읽으실 것). 동네 경찰서의 박두만 형사(송강호)와 조 형사는 대충 사건 조서를 꾸민 다음 이향숙을 쫓아다닌 동네 고기집 바보 막내 백광호를 ‘感으로’ 체포한다.

그리고는 지하실로 데려와 겁도 주고 달래기도 하면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는다. 서울에서 서태윤 형사(김상경)가 파견되어 내려오고, 그는 백광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에 의한 추리로’ 안다. 둘이 범인 여부를 놓고 다투는 사이에 새로운 희생자가 발견되고, 이미 벌어진 범행의 예전 희생자도 찾아낸다.
서장이 경질되고, 새로운 수사반장(송재호)이 내려온다. 박두만 형사는 무당을 찾아가서 부적도 받아오고, 나름대로 과학적 추리를 해서 동네 남자들 중에서 무모증(無毛症)인 놈이 범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범인은 매번 비오는 날 라디오 방송으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신청한 다음 빨간 우산을 쓰고 가는 여인을 골라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수건돌리기 놀이’ 같은 재미


함정수사도 벌이지만, 소득이 없는 가운데 범행 장소에서 ‘빨간 팬티를 입고 딸딸이를 치던’ 동네 공사장 인부 조병순을 잡아 다시 한 번 족치면서 범행 자백을 받던 중 또 범행이 일어난다. 범인에게 강간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언덕녀’로부터 “범인의 손이 곱다”는 진술을 받아낸 다음 라디오 방송국에서 신청곡 엽서의 주소를 찾아내 “손이 고운” 용의자 박현규(박해일)를 검거한다. 박현규는 완강히 범죄를 부인하지만, 서태윤 형사와 박두만 형사가 보기에 그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범인”이다. 희생자에게서 발견된 정액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 검사 의뢰를 보내고 박현규를 감시하다가 서태윤 형사는 잠시 깜빡 존다. 그 두 시간 사이에 한 여고생이 다시 살해당한다. 더 이상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박현규를 찾아가 서태윤 형사가 총을 들이대고 자백하라고 외치는데 미국에서 결과가 왔다고 박두만 형사가 달려온다. 결과는 두 사람의 정액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3년, 아직 사건은 미해결로 남아 있다.

다소 길긴 하지만 이 영화의 줄거리는 꼼꼼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봉준호가 화성에 내려가서 이 사건을 직접 취재했(다고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나는 「살인의 추억」에서 실제 사건의 어느 부분이 극적으로 허구인지 알지 못하며, 어느 인물이 극중 인물인지 모르며, 미안하지만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지 못했다. 미해결 사건을 영화로 담은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대목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투적으로 말하면 송강호는 거의 원맨쇼에 가까우며, 많은 대목들은 봉준호가 지나치게 텔레비전을 열심히 본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만큼 영화적으로 서투르다.(특히 추적장면들은 유치하게도 음악소리만 시끄럽다. 또한 도입부의 롱테이크는 겉멋이다) 시나리오는 산만하고, 인물들은 차례를 기다려 적당한 대목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물러난다. 「살인의 추억」은 ‘그냥’ 재미있다.

그러나 그 재미는 일종의 수건돌리기이다. 그래서 내 뒤에 수건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놀이다. 수건돌리기가 불러일으키는 술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내 뒤의 수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놀이 자체에 있다. 하지만 놀이는 즐겁고 수건만이 괴로워진다. 수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뒤에 놓일 것이다. 수건이 놓이면 당신은 범인이다. 「살인의 추억」은 가까스로 술래에서 빠져 나온 당신을 다시 그 자리에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것은 봉준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80년대를 끌어들이는 순간 그 시대의 지식이 만들어내는 위장술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소도구나 미장센으로 활용된 80년대 텔레비전 연속극 「수사반장」이나 ‘나이스’ 운동화, 모나미 볼펜, 등화관제, 전두환이 이 동네를 지나간다니까 동원된 한복차림의 여고생들, 그리고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부천 경찰서 성(性)고문 경찰 문귀동과 같은 대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내가 궁금한 것은 1987년에서 1991년에 걸친 미해결 사건의 이야기, 그러니까 어떻게 풀어내도 결국에는 불구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 그래서 결론이 없는 (정말 벌어진 현실 속의) 사건을 끌어안고 어떻게 해서든 그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고 가야 하는 안간힘 때문에 가져야만 되는 거짓된 외양의 그럴 듯함이 무엇을 기만하고, 무엇을 희생시키면서 그 대가로 무엇을 얻어내는 과정을 밟아 나가느냐는 것이다. 자꾸만 이야기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주인공들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범행은 계속 되고 시체는 쌓여가는데, 이야기는 진척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같은 이야기의 끝없는 변주이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니 사실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살인의 추억」을 가장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범인이 누구인지는 (또는 아닌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그가 모든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첫 번째 범행만을 저지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걸 왜 알 수 없냐면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박현규를 범인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으로 끝을 낸다. 영화는 범인이라고 지목을 하는데, 이야기는 아니라고 버틴다. 봉준호는 그 모순의 인과관계를 끝내 설명하지 못한다.

박현규는 비만 오면 “애국가 듣고 조회하는 것처럼”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라디오에 신청한 다음 강간 살인하러 밤에 범행장소로 ‘출근하는’ 미친놈이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점이 이 영화에서 정말 무서운 대목이다. 또는 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동의가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범인의 범행동기를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범인을 이해하는 대신 그냥 “미친 사이코”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왜? 그걸 이 영화는 슬쩍 생략한다. 범행 동기를 알 수 없으니 끝내 범인을 잡기는 틀린 일이다. 그런데도 박두만 형사는 일단 잡아다가 때리고 달래면서 범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또는 서태윤 형사는 자기가 선택한 증거를 통한 자기의 추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백광호는 자기가 범인을 보았다고 말한 다음 기찻길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조병순은 ‘통닭구이’ 고문을 받은 다음 시키는 대로 범행을 자백한다. 박현규는 끝내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또는 못한다. 여기에는 범인(이라고 자백을 강요받은 채 희생당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다. 오직 추적하는 형사들의 시선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증거물만으로 추리를 하고 범인을 호명한다. 호명당하면 그때부터 범인이다. 그것이 80년대를 기억하는 우리들의 추억의 수사학이다.

우리들은 80년대에 대해서 마치 형사와도 같은 자리에 가서 호명한다. 거기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나, 죽은 자들의 묘지 앞에서의 죄의식 따위는 처음부터 없다. 무언가 잘못이 있지만, 그 잘못은 범인이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이해할 생각은 없다. 그저 호명하고, 죄를 자백하라고 외치면 된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대상, 끝내 잡을 수 없는 대상과의 숨바꼭질 속에서 ‘아무나’(이 말이 중요하다) 거짓범인으로 몰아서 때리고 고문하던 가해자는 갑자기 희생자가 되고, 희생자들은 위증을 한 것으로 몰린다. 정작 범행을 저지른 그 대상이 완전히 탈락되어 있는 기만적인 속임수의 드라마는 텅 빈 구멍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정말 잡히지 않는 범인은 80년대라는 구멍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 걸려들 것이다. 우리 시대의 관객들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는 것은 동시에 80년대에 걸려 넘어진 채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내라는 요구에 대한 집단적인 비웃음이다. 2003년은 80년대에 대해서 완전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누가 범인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도 알 수 없게 뒤섞인 이 무시무시한 공범의 책임전가 시대에 갑자기 80년대의 범인을 찾자는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 대해 집단적으로 히스테릭한 웃음을 터트리는 중이다.


완전범죄를 방관한 우리의 지리멸렬함


그러니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중으로 읽혀야 한다. 형사를 그만 두고 대리점을 하는 박두만은 2003년에 이 영화의 첫 장면, 이향숙이 시체로 발견된 농수로에 다시 찾아간다. 그곳을 보고 있는데 한 초등학생 소녀가 와서 이야기한다. “참, 이상하다. 어제는 다른 아저씨가 와서 들여다보더니 옛날에 한 일이 생각나서 온 것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아직도 활개치는 범인이 와서 들여다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서태윤이 들린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영화를 곧이곧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가 남아 있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을 잡아야 하는 놀이는 아직도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재수 없게도 비오는 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흥얼거리면서 걸어가는데 당신 앞에 빨간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여인이 있다면 당신은 범인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 강간할 의지가 없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 자리에 하필이면 마침 도착한 당신이 잘못이다. 결과가 원인을 붙잡으러 달려갈 때, 당신은 저지르지 않은 죄의 범인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이 순환의 고리에 누군가를 대신 밀어넣어야 할 것이다. 어느 새 당신은 범인을 잡는다는 미명을 앞세워 가해자의 자리에 가 있다. 당신은 자꾸만 형사의 자리에 가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은 당신이 80년대의 공범자라는 그 책임의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이 따분하고 뻔한 영화가 어떤 대목에서 찬물을 끼얹듯 섬뜩해지는 이유는 그 역설적인 책임회피를 통해 우리들의 추악한 공범의식을 쳐다보게 만드는 순간이다. 「살인의 추억」을 보는 재미는 80년대에 대해서 완전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어둠 속에 모여 앉아 즐겁게 추억을 더듬는 그 공범의식의 음란한 은밀함이다. 참으로 지리멸렬하게도 우리들의 역사는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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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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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포리아님이 방금 소개해주어서 퍼왔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방환하는"이라고 되어 있어서 이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방관하는"이군요.
재미있어서 그냥 놔두었습니다.

비로그인 2004-10-06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 잘라낸 듯한 살인의 추억을 추석 때 흘끗 본 저로서는,
정성일의 평으로 만족하는 게 낫겠군요.

aporia 2004-10-0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초면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곳에서 정성일씨 얘기를 처음 꺼낸 사람이고 약간 의견도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한 마디 씁니다.
1. (정성일씨가 꼭 아니라) '평론가'가 영향력을 갖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넓고 영화도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정성일씨의 평론에 의지해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제가 영화에 열광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크게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15편도 채 안 되고, 때때로 집에서 비디오를 볼 때도 (아무 생각할 필요도 없는 헐리우드 액션이 아닌 바에야) 상당한 피곤함을 느낍니다. 다른 할 일도 많은 데다가, 여가 시간에 제가 주로 하는 독서와 음악감상의 경우 제가 리듬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반면,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문외한인 까닭에 그렇게 신경을 써서 영화를 봐도 잠시 독서하는 만큼의 효과도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정말 괜찮은 영화다, 그러니까 힘은 좀 들겠지만(더구나 정성일씨 지론처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두 번 이상 봐야 한다면!)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추천이 없는 한 영화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이때 중요한 참조점 중 하나가 정성일씨의 평입니다. 확실히 수동적입니다. 하지만 수동성/능동성이 '태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그것과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역량의 결과일 텐데, 제 발로 설 때까지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거니와 지금 당장엔 역량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키고자 하는 욕망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적 자극을 주는 영화평론이 없다면 저는 영화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에 별로 열광하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예컨대 제가 얼마 전에 본 신형철씨의 영화평론이 아니었다면 저는 '올드보이'를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2. 저는 정성일씨가 과연 말씀하신 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정성일씨 영화평론 단 하나 때문에 특정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컨대 지금 문제가 되는 '살인의 추억', 특히 그가 줄기차게 비판해 온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천만이 본 영화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열광이 반갑지 않습니다. 영화는 잘 모르지만 그 영화들이 크게 수작이라고 느끼지도 않았고, 이걸 통해 한국영화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문외한인 저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평론계'에서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블럭버스터 경향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 이는 정성일씨 외에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 산업논리를 앞세우고 실체를 알 수 없는 감격에 젖어 한국영화 만세를 불러댔을 뿐이지요. 제가 정성일씨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키노'나 '정.영.음.' 세대가 아닌 제가 그를 지지하는 건, 지금 한국영화의 흐름에 대해 '영화적'이면서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그는 헤게모니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른바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권력의 효과로서 어떤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게 무엇이지요? 그를 지지하는 몇몇 관객들이 특정 영화(특히 최근 한국의 블럭버스터들)를 보지 않는 것? 그/녀들이 '특이한' 영화를 찾아 보는 것? 전자는 아주 미미할 뿐더러, 후자를 산출할 수 있는 권력이라면 오히려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쨌든 '무엇을 보지 말라'는 부정적 발화가 아니라 '무엇을 보라'는 긍정적 발화고, 그건 오늘 같은 천편일률적인 영화판에서 반드시 필요한 몸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정성일이라는 평론가 개인의 공과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는 문제입니다. 흔히 그에게 '글을 어렵게 쓴다', '엘리트주의적이다', '임권택에 대해 지나치게 극진하다' 등등의 비난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외로 영화판 안에서 그가 어떤 권력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문제기 때문에 언급할 수가 없군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모든 장르 안에서 '평론가'의 역할이 일정하게 있고(제가 생각할 때 평론가는 매개자, 심지어 '사라지는 매개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 한국영화 안에서 그와 같은 비판적 논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평 때문에 영화를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라도, 그게 그를 '교조적'으로 따라서라기보다는 (저의 사례를 통해 말씀드리려 했던 것과 같은) 구체적 맥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과끝님도 그럴 테구요. 궁극적으로 평론가에 의지하지 말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영화를 보자는 말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저처럼 영화 이외의 다른 분야에 역량을 쏟는 걸로도 힘이 부치는 사람 그렇지만 어쨌든 괜찮은 영화는 종종 보고 싶은 사람에게 그런 말은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한편 어느 정도 영화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제 짐작이긴 합니다만, 정성일씨 개인의 평에 완전히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역량과 주관은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관객 수준이 그 정도는 됐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쓸데없이 너무 길어졌네요. 감사합니다.

philliee 2004-10-0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글써놓고 처음과 끝님에게 실례한거 같아서 지금 얼른 지우려고 보니 아포리아님의 글이 올라와 있네요. 먼저 위의 제 글은 지우겠습니다. 그리고 아포리아 님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짧게 몇마디로만 한 말이라 오해하신듯한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긴 답글을 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으로만 새기겠습니다.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기가 balmas님의 서재이고 둘째로는 아포리아 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제가 잘 모르는 문제라 오해가 더 쌓일 수도 있을것 같아서 입니다. 긴글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4-10-0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벌써 퍼갔는데요, 실례했다고 여기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다만 제가 펌한 후에 제가 갖다붙인 글을 여기다도 적고 갑니다.

무슨 반론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냥 쓴 것입니다요...

이거원. 여하튼 두 분의 대화를 덤으로 듣게 되었다.
음... 영화전체를 80년대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대한 메타포와 지리멸렬함으로 해석한 것이 내가 영화보면서 느낀 바와 동일해서 잘라낸 살인의 추억까지는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적은 것을... 정성일에 대한 평가 혹은 평론가를 통한 영화보기 등에 대해 이야기가 번지다니.

흠. 나는 키노의 팬인 셈이고, 모니터기자도 했다. 내 기억으로는 80년대는 작가주의, 엄숙주의, 근본주의의 시대라고 본다. 권위는 둘째치고 모두들 진지함에 경직되어 어떤 사람들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진지함이 부족한 것을 탓하게 만드는 시대였다, 분명.

하지만 서태지의 등장이후부터였을까, 진지함은 경멸받기 시작했다. 작가주의도 시들고, 근본주의나 엄숙주의는 철퇴를 맞았다. 그 자리를 쿨, 쿨이 채웠다. 쿨하면 선이요, 그렇지 않으면 악인 것이 과거 진지함만이 무게를 갖던 그 시절과 닮았다. 진지하다면 젊음의 치기도 용서가 되었던 것을 잘 보여주었던 게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본다, 난.

하여튼 정성일은 고집있게 진지한 작가주의를 지켜가는 평론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지루함은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타인이 듣기 괴로운' 기나길고 진지한 수다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악평을 할 수 있다. 그의 필력때문인지, 그에 동조하는 것 때문인지, 키노는 때로는 필요없는 영화지식의 과시나 수사어의 남발로 가득찬 현학적인 영화잡지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도 동조한다. 그것까지 칭찬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난 키노의 존재가치와 내가 신세졌던, 씨네21이 자리잡은 그 자리 말고, 키노의 자리와 정성일의 비평을 인정하며 아낀다. 그의 비평은 점점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다.
키노는 폐간되었고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아쉬워하였다.
있을 때는 불평투성이였으니, 좀 더 사랑해줄걸 하고 말이다.

씨네21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리이며 비워둘 수 없는 자리였다.

이야기가 물감튀긴 모양새로 이리저리 번져나갔지만 하여튼...
 
 전출처 : 바람구두 > 살인의 추억: 불행에 중독된 시대의 살인

영구미제사건 - 화성연쇄살인사건
 
   영화 <살인의 추억>이 지난 2003년 4월 25일 개봉한 지 꼭 석 달만에 전국 510만 1645명(서울 191만 2369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막을 내렸다. 역대 한국 영화 흥행 랭킹 5위에 해당하는 작지 않은 성과를 거둔 이 영화는 지난 2001년 개봉한 <친구> 820만 명으로 1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이상 580만 명), <조폭 마누라>(520만 명)의 뒤를 잇고 있는 소위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한편 이 영화의 실제 소재가 되었던 '화성연쇄 살인사건'(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여에 걸쳐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 당한 뒤 피살된 사건)은 유일하게 목격자가 확보되었던 7차 사건(88년 9월7일 발생)의 공소시효가 2003년 9월 6일로 만료되었다. 사실상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전체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경기경찰청은 8일 “범인검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7차 사건의 살인혐의 공소시효 15년이 지남에 따라 화성 사건은 90년 11월15일 발생한 9차 사건과 91년 4월3일 발생한 10차 사건만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유일하게 범인이 검거된 8차사건은 나머지 연쇄살인과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었다. 7차 사건은 당시 수사팀에 의해 유일하게 목격자가 확보 돼 용의자에 대해 ‘갑동이’라는 별칭까지 붙는 등 검거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경우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목격자가 전혀 없던 이전 사건과는 달리 “사건 당일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옷이 흠뻑 젖은 남자를 범행 현장부근에서 태웠다”는 버스 운전기사와 안내원이 나타나면서 수사에 더욱 활기를 띠었었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스포츠형 머리에 신장 165~170㎝, 오똑 한 코에 날카로운 눈매의 24~27세 가량 남자’를 현상금 500만원에 수배하고, 20만장의 전단을 전국에 배포하는 등 검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미제사건으로 종결되게 되었다. 당시 사건의 수사팀장이던 경기경찰청 강력계장 하승균 경정은 모 출판사를 통해『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자전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하 계장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아직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담당형사” 라면서 범인을 잡지 못한 아쉬움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검거의지를 나타냈다.
 

이성이 사라지면 소녀취향만 남는다

  어느 책에선가 이 문장 "이성이 사라지면 소녀 취향만 남는다"를 읽고 무릎을 짝 소리 나게 때리고 싶었다. 가끔 통렬한 한 문장이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기도 한다. 물론 저 문장이 어느 경우에나 고스란히 제몫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저와 비슷한 감흥을 던져주었던 다른 문장은(일종의 아포리즘 같이) 가령, "천재가 사라지면 스타일만 남는다"와 같은 문장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성'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소녀 취향'이 될 것이고, '천재'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스타일'이다. 공자를 대성(大聖)이라 하는데 비해 맹자를 아성(亞聖)이라 하는 것은 맹자를 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류(亞流)라는 말에 이르게 되면 '에피고넨(epigonen)'의 의미가 된다. 에피고넨이란 말은 본래 그리스 신화에서 테베를 공격한 그리스 7용사의 '자손'을 의미하는 말이었고, 그 뒤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를 이르는 말로도 사용돠었다. 에피고넨의 의미는 자손에서 후계자로 이어지다가 학문과 예술에 이르러 이에 대한 '모방자', '아류'의 의미로 확장된다. 예술사를 살펴보면 하나의 사조를 만들어 내는 이들이 뛰어난 작품을 남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그 뒤를 이어 오는 이들이 좀더 뛰어난 작품을 남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것은 앞서 가는 이들이 겪게 되는 시대의 징벌을 선구자들이 고스란히 맞아준 덕이다.

  종종 시대의 아웃사이더들이 새로운 사조를 개창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주류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탓이다. 우리는 세계 4대 종교라는 '공자, 예수, 부처, 이슬람'의 진리를 알고 있다. 또한 근세사를 통해 종종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의 폐해를 듣고 말한다. 이 말은 본래 20세기 초엽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파 내에서 신학적 해석과 진화론을 둘러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갈등에 대응하는 보수교단의 신앙운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근본주의라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는 애초의 진리로 회귀하자는 운동이 된다.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성서의 무오류성을 비롯한 몇 대 강령을 신앙처럼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공자에 이르러서는 주희의 성리학이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져 조선에서는 유교의 다른 학파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처형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나의 진리가 처음 그것을 말한 이로부터 에피고넨으로 이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사라지고 '말씀'으로 기록된 진리만이 남을 때, 그리고 이것을 다시 절대선으로 추구하게 될 때 우리는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된다. 중심은 유연하나 변방으로 이를수록 잔인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이렇게 고쳐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대 정신이 사라지면 풍속만 남는다." 80년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나는 무수한 소설가들이 달려들었던 '후일담' 문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일담이 진정한 후일담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그들이 통과한 시대에 대한 성과와 반성이 녹록치 않게 녹아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급한 후일담은 마치 지금도 똥 푸는 사람이 내가 옛날에 똥 펐었는데 말이야 하면서 떠들어대는 술집 무용담처럼 여겨진다(이건 절대로 똥 푸는 일에 대한 험담은 아니다). 어떤 내용들은 마치 과거 풍문으로 떠들던 -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들이 담배를 나눠피우며 대학생들이 MT가서 '떼씹'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 소문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들은 아니었음을 자인하는 정도의 반성(실제로 '100인위'에서는 지난 시기의 소위 '민주화운동권' 내에서의 성폭력을 조사했다)이 그것이다.

  어느 한 시대를 조망하는데 있어 개인의 성찰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작가의 절망은 곧 사회와 시대의 절망과 아직까지도 대등한 긴장관계 아래 놓인다는 나의 문학적 전망 아래에서 그것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개소리의 연장이었다. "그래, 혁명은 파산했다. 그렇다고 절망도 파산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80년대를 회고하는 성찰에서 우리가 특히 주의할 것은 우리가 지난 80년대에 꿈꾸었던 전망은 아직 성취되지 못한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즉, 현재 진행형의 연장선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종료된 시점으로 정리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발 인정해 달라는 것이(즉, 현재도 우리는 똥 푼다는 것)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시대에 우리들은 그러할 수밖에 없었음을 살펴봐달라는 울먹임 섞인 반성에 대한 경멸이다. 반성은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반성이라 해서 비굴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이 들었다. 마치 80년대의 풍속화를 보는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말이다. 감독 봉준호는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후일담을 시작한 것일까?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속에서 시대 정신으로, 스타일에서 천재로, 소녀취향에서 이성으로 말이다.

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두 가지 선행 조건 - 반성과 극복

  나는 진정으로 어느 한 시대가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비극이 코미디로도 다루어질 수 있는 시점에 가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믿는다. 80년대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386세대가 정치 일선에 등장한다고 해서, 과거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보상받는다고 해서, 그들의 운동이 재평가된다고 해서 그 시대가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살인의 추억>이 가진 미덕 중 한 가지는 80년대를 바라보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 하나를 얻었다는 것이다. 80년대를 바라보는 그간의 여러 영화들이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등이 있고, 그 이전의 또다른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 영화들 또한 일정한 미덕과 함께 일정한 한계들 속에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이창동은 그 시대와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초록 물고기>가 자본과 근대화의 폭력성을 그렸다면, <박하사탕>은 개인과 국가 권력 사이의 폭력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는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섣부른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애초에 그런 의도같은 것은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의 시선에 사로잡힌 두 명의 형사는 전근대성(시골형사 박두만)과 근대성(서울형사 서태윤)을 상징하지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는 이 둘 사이를 애초부터 화해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서울 형사의 근대성이란 것은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서울 형사 서태윤은 영화의 후반부에 진입하면서 꼬이고 꼬인 범인 체포에 대한 미련과 열망으로 박두만과 닮아간다. 그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박형규를 철도 터널 앞에서 구타하고, 그에게 권총을 들이댄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순간마다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신청되었다는, 자신이 그를 미행하지 못한 순간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연속되는 우연의 심증으로 그는 박형규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올드'old'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던'modern'한 한 인간은 결국 'old'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날아든 미국범죄수사국의 DNA조사 보고서는 어리석은 미망을 깨우는 근대의 세계로부터 날아온 타임머신과 같다. 이 영화에는 유력한 범죄 용의자 세 사람이 등장한다. 범죄용의자들이 차례로 등장할 때마다 당신과 나의 전근대성은 함께 피의자를 지목하고, 함께 범죄자를 추적하고, 잠시동안은 연쇄강간살인범의 심정이 되기도 하면서 발로 범인을 잡는 대한민국 형사들의 어처구니없는 발걸음이 되어 이 영화의 히트한 광고 카피처럼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심정이 된다.  우습게도 우리들 중 누구도 현재까지 이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사상 미증유의 미해결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박현규가 범인일 것이라는 심증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들의 이성이 소녀취향을 능가하지 못하는 순간

  감독 봉준호는 이 상황에서 슬며시 우리들의 뒤통수를 노린다. 그는 마치 시대를 표현하기 위한 풍속의 아이콘을 삽입하듯 - 이미 모든 장치가 드러나 있음에도, 워낙 잘 녹아들어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 시대를 드러낸다. 시대를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이 모든 것이 시대의 잘못이라고 그는 섣부르게 대놓고 지목하지 않는다), 그는 시대를 드러내는 고도의 술수를 부린다. 우리는 몇 번의 살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회고하게 된다. 전두환의 지방 방문을 위해 빗속에 강제동원된 여고생들과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빗속을 뛰어다니는 경찰들, 살인사건이 벌어질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시국사건에 차출된 전경들, 문귀동의 부천성고문 사건 뉴스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범인이 잡힐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감독은 더욱 잔인하고 예리하며 집요하게 관객들을 괴롭힌다. 범죄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또 한 명의 피의자. 광호는 범죄 현장의 유력한 증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형사에게 엉겁결에 못 박힌 각목을 후려친뒤 이에 놀라 뛰어나가고, 전봇대에 올라갔다가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숨지고 만다. 형사들이 조금만 더 일찍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대응했더라면, 광호에게 고문을 행사해 광호가 공권력을 두려워하게 만들지만 않았더라도 유력한 증인이었던 광호가 열차 선로로 뛰어들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호를 때렸던 형사는 녹슨 못에 찔린 뒤 치료를 미루다가 파상풍에 걸려 결국 다리를 잘라내고 만다. 이것을 단순히 형사 개인의 인과응보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형사와 함께 시대의 징벌을 받고 있다.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범인이 아니었으며 진짜 범인은 유유히 사라져 과거의 살인현장을 추억한다.

어느 비평가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한국적인 토양에서만 이해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한다. 오랫동안 한국영화계는 오랫동안 스스로의 갈 길에 대한 고민은 거듭해 왔다. 할리우드 식의 블록버스터를 실험해보기도 했고, 유럽 영화의 예술성을 흉내내보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수사반장>의 시그널을 들으며 발장단을 맞추는 형사와 범인을 외국 관객들이 쉽게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헌법 개정을 논하는 것만으로 적국을 이롭게 만드는 이적행위로 규정되어 치도곤을 당해본 적 없는 그네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도리어 억울할 지경일 것이다. 이 영화는 1996년 초연된 김광림 연출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바탕으로, 실제 사건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시나리오화 되었다고 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불과 10여년 전의 사건으로 사건발생지역인 화성과 당시 관계자, 피해자 유족들이 예민하다는 점,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주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보면서 심각해진다는 것, 우리들은 왜 저 지난 시기에 저렇게 답답하게 굴었을까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어째서 우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그 흔한 DNA조사기가 없었을까를 탓한다. 왜 저 순간에 하필이면 형사가 타고 다니는 고물 '맵시나'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나를 탓한다. 감독 봉준호는 전작 <플란더즈의 개>를 통해 그가 장르적인 영화 만들기를 이미 터득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을 적절한 지점에서 배분하는 장르 뒤집기에 능숙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솜씨를 <살인의 추억>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냈다. 그런 솜씨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낯익은 이야기들을 만난다. 경찰의 무능을 욕하고, 시대의 덜떨어짐을 비난하던 사람도, 경찰의 무능이 또한 우리 시대의 무능이었음을 깨우치고 아파한 사람도 이 대목에 가서는 속이 쓰리다. 우리들은 이 나라의 민주헌정질서를 군홧발로 짓이긴 자들과 광주학살의 주범들과 함께 어두침침한 극장에서 함께 희희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달콤 쌉싸름한 살인의 추억을 즐기고 있다. 아시겠는가?

달콤쌉싸름한 학살의 추억

  며칠전에 실린 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경찰청이 이날 국회 행자위 소속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난 7월말까지 서울지역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위해 교통통제를 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1백97회, 전두환 전 대통령 1백93회의 교통통제를 요구하여 시민들이 다니는 길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차를 신호대기없이 달리도록 만들었다. 1997년 노씨가 선고받은 비자금 추징액 2,628억여원의 추징금 가운데 노태우 전 대통령은 78.8%인 2,073억여원이 국고에 환수되었고, 이중 555억여원이 아직 집행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엔 전체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14.3%에 불과한 314억여원 만이 추징된 상태다. 얼마전 방영된 TV 시사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들은 우리나라 상위 5%안에 드는 부자들이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판사에게 도리어 성을 내며 자신은 돈이 없어 추징금을 낼 수 없고 일가친척들이 도와주는 돈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며 넉살을 떨었다.

  학살자의 피묻은 손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보해야 할 백주대로의 거리를 막고 신호대기없이 통과하는 이 나라에서는 2002년도 통계에 따르면 9시간에 한 명씩 살해당하고, 1시간 30분마다 한 명씩 강간당한다. 3분마다 한 곳씩 털리고 1분 30초에 한 명 꼴로 거리에서 폭행당한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것은 연쇄살인범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민이라도 가야하는 걸까?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신은 힘을 지배할 수 없게 되자 그저 힘을 저주하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음 좋은 사람들은 그건 좋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며 다닌다. 우리는 그것이 좋지 못한 일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론인즉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칼 앞에 결코 다시는 고개 숙이지 않는 일이며 정신을 섬기려 하지 않는 힘을 결코 다시는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사실 그것은 끝이 나지 않을 과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업을 계속하자고 이곳에 있는 것이다. 나는 진보나  그 어떤 역사철학에 찬동할 만큼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은 그의 운명에 대하여 그가 지니는 인식에 있어서 한 번도 그치지 않고 발전해 왔음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조건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인간조건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 속에 놓여 있지만 그 모순을 거부해야 하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책무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무한한 고통을 진정시켜줄 몇 가지 공식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이토록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가 상상 가능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존재가 역사가 자신들에게 부여해준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혁명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파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속 편하게 미련두지 말고 파산했다고 해두자.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이 어설픈 희망을 찾아 이것이 희망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정말 절실하고 정직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 복원되지 못한 정의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진실한 절망이다. 절망조차 진실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렇게 모순이 진리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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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ria 2004-10-0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살인의 추억'에 대한 영화평을 보니, 문득 제가 전에 본 정성일씨의 평이 생각납니다. 그때 이 영화에 대한 되지도 않는 감상문을 쓴다고 관련된 평론은 대부분 읽어보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역시 정성일'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아마 [말]지에 실린 영화평이었는데, http://my.dreamwiz.com/dorati4/mal/mal200306.htm에 가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푸른 서울광장, 부끄러운 곳

오성훈
공간연구집단 연구원


밀려드는 차량의 매연과 소음은 지나가는 보행자를 답답하게 하고, 커다란 교통광장을 둘러싼 가구(블록)들은 칙칙한 지하도로만 연결되어 있던 곳이 분수와 잔디가 어우러지고, 지상의 횡단보도로 연결된 곳으로 바뀌었다면 누구나 환영할 것이다. 더구나 고궁과 산을 제외하고는 버젓한 녹지하나 없는 서울의 도심이라면 그 기꺼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도심의 차량교통속도와 같은 ‘수량’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우리도 이런 것좀 해보자는, 환경의 ‘질’에 대한 고려가 그 바탕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창한 여름날 시원한 녹지와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바라보면서도 시원하기는커녕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우리네 마음가짐이 아직은 저런 고운 것을 즐거워하기엔 촌스럽기 때문일까?

서울시가 마련한 시청 앞 광장 홈페이지를 가보면, 광장에 대한 역사적인 기원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옛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부터 시작하여 신성과 이성 등의 흐름이 광장이라는 공간에 면면히 담겨져 왔음을 간략하게 기술한다. 맞다. 광장은 저 들판 한복판에 자리잡은 휑뎅그레한 공간과는 다르다. 동일한 크기와 질감의 공간이라도 도시 한복판에 들어섬으로써 다른 효과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효과와 의미는 도시의 고유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 시청 앞 광장의 홈페이지의 설명이 단순한 구색맞추기가 아니라면, 광장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시청 앞 광장에 담았을 게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광장과 공원

광장은 공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광장은 정치적인 논쟁을 벌이는 곳으로서,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으로서, 아니면 전제권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로서 기능하였고, 광장이 위치한 도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수준, 문화적 위상을 나타내는 재현적 공간이다. 광장의 속성은 사적이기보다는 공적인 것이고, 사색과 휴식보다는 논쟁과 협상에 걸맞는 곳인 것이다. 이에 반해 공원은 사적인 향유를 그 전제로 하는 공간이며, 사적 향유에 장애가 되는 것은 최대한 배제하게 된다. 그렇다. 그 이름이 광장이면 어떻고, 공원이면 또 어떤가. 광장이라고 이름 붙인 공원도 있을 법한데, 시청 앞의 공간은 광장으로 꾸밀지 공원으로 꾸밀지조차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다. 즉 애초의 명칭은 광장이었으나, 서울시 일꾼들의 머리에는 어느 새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 설계공모전까지 개최한 후 선정한 시청 앞 광장 설계안 ‘빛의 광장’안에 따르면 시청 앞 광장은 조명시설이 갖춰진 높이 15m의 기둥, 음악에 따라 물을 내뿜는 분수, 2300개의 액정장치(LCD)모니터가 설치된 바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설계는 기본적으로 많은 인구가 이용할 수 있고, 정보전달체계가 갖추어짐으로써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공적인 의사소통체계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광장’설계안은 곧 ‘공원’화된다. 10개월에 걸쳐 추진하던 원 설계안이 잔디광장으로 급작스레 바뀐 것이다. 이를 결정한 ‘시청 앞 광장 조성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시 측에서 5월에 열리는 ‘하이서울’ 축제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빈땅에 잔디라도 깔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빛의 광장’ 공사비가 103억에 달하고 잔디광장은 40억이면 조성할 수 있어 시기상조인 안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기상조인 안을 당선작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것을 승인한 사람, 또 손바닥 뒤집듯 바꾼 사람은 누구인가? 시말서라도 써서 시민들 앞에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청 앞 광장 홈페이지에 가보면 서울시에서는 ‘2004년 5월 개최예정인 Hi Seoul Festival 행사 대비하여 4월까지 Open Space 형태의 광장을 조성하고, 당선작 작품의 시행은 일단 유보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103억이 드는 광장을 결국 조성할 계획이라면 무슨 잔치마당 하나 때문에 40억짜리 공사를 임시로 가설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거기에 1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설계, 공사업체에 대한 위약금도 물어줄 판이라고 한다. 하이서울페스티발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잔치마당의 개최시기는 몇 십억을 들여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으로, 하늘에서 절대절명으로 점지라도 해준 것인가?

‘들어가지 마시오’

잔디광장 안은 결국 서울의 시청 앞 광장을 광장아닌 공원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과연 그곳에 광장이 필요한지, 공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슬그머니 공원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잔디‘광장’은 지나치게 밟아서는 안되고 아름다운 상태로 보존해야 하므로, 거기에 따른 통제가 필요하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딱딱한 말, 또는 굳은 표정의 용역경비원들이 따라나온다. 잔디보호라는 합리적인 명분으로 통제가 개입되자, 그 통제는 ‘광장’이용의 허가를 서울시에서 가져가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제 시청 앞 광장은 서울시장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모임은 가지기 어려워진 것이다. 의견수렴없는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실현된 광장설계안은 부적절한 통제의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그 통제의 기준은 모호하다.

지금의 모습처럼 잔디가 깔리고, 물이 흩날리는 공간도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의 역량에 따라 공적인 공간으로 전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공간의 물리적 배치 또한 일정한 의도, 또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 밟으면 죽게되는 잔디를 유동인구가 상당한 고밀도의 도심의 보행자 공간에 배치하는 것은 사실 목가적인 환상에 가깝다. 서울시는 집회 등으로 잔디가 손상될 경우, 그를 돈으로 물어내라고 조례를 제정하였다. 허가를 받을 경우에도 면적당 사용료를 내야 한다. 도시에서 누군가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선 많은 무리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돈만 내면 누구나 집회를 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울시는 정치적 집회는 원천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열린 음악회나 축구경기 응원에는 허용한 잔디밭을 6월항쟁 기념행사에는 제한했고,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의 문화제는 ‘문화제를 가장한 정치적 집회’라며 미신고집회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거기에 새마을운동 서울시회, 자유총연맹 서울시지부, 바르게살기운동 서울시협의회 등이 5, 6월 두달 내내 사용신청을 내 다른 시민단체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실제로 광장을 사용하는 일수는 적으면서도 공간을 미리미리 ‘확보’해놓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이러한 공간통제는 악법으로 거론되는 ‘집시법’보다도 더 강도가 높다고 한다.

역사 앞에 부끄러운

광장이란 이름의 공원은 싫다. 공원이면 공원이라고 해야 한다. 보수비 1억원씩 퍼붓는 잔디 걷어치우고, 차라리 적벽돌이라도 깔아달라. 서울시청 앞에서 여러 가지 집회도 하고, 시장님 듣기 불편한 소리도 하고, 시끌벅적 사람들이 이것저것 논쟁도 하고, 그런 와중에 서울시에서는 그런 말, 글을 귀담아 듣고, 더 좋은 정책도 내고 하는 것이 정말 건강한 모습 아닌가? 그런 소란스런 광장 하나 없는 서울시, 부끄럽지 않은가? 차량흐름 힘들여 걷어내어, 고작 시청 앞 잔디가꾸기에 정치집회 퇴출이라니. 아무리 푸르른 서울광장이라도, 역사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공간이다. ●
[월간 문화연대]

- 통권 52호(2004년 8월호) 기획연재 기사들 중에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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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따우님,


[감시와 처벌] 번역본이 잘 이해가 안되던가요? 번역을 평가해달라고 하시는 걸 보니 ...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나남)도 제가 강의에서 두 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번역입니다. 그런데 3부와 특히 4부에서는 상당히 오역이 있더군요.

아시다시피 [감시와 처벌]은 17세기에서 18세기 말-19세기 초(푸코가 제일 좋아하는, 또는 제일 자주 다루는 역사적 시기죠)에 이르는 형벌체계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책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내용이 당대의 역사적 문헌들(푸코 역사 서술, 특히 [감시와 처벌]의 역사서술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대가들이나 유명한 저자들의 문헌들보다는 익명의 저자가 기술한 관공서의 문헌들이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문헌들을 참고문헌들로 활용한다는 점이죠. 이는 푸코의 고고학, 또는 오히려 계보학이 드러내려는 인식의 층위가 공식화된 담론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그 아래에 위치해 있는 영역, 다시 말해 과학적인 담론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소하고 비과학적이고 매우 이질적인 이야기들, 문헌들이기 때문이죠. 푸코는 이러한 영역의 담론이야말로 과학의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조건들이지만, 동식적이거나 과학적인 담론에서는 배제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만큼 지식의 형성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데 훨씬 적합하다고 보는 거죠)에 기초한, 역사적 변동과정을 기술하고 재구성하는 것들이죠. 이런 내용들이야 번거롭긴 해도―왜냐하면 백과사전이나 기타 참고자료들을 자주 참고해야 하니까―번역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시와 처벌]의 1,2부, 또 3,4부에서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서술 부분들은 번역이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3, 4부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역사적 상황이나 변동과정을 한참 서술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매우 일반적인 철학적 결론을 도출하는 부분들 말이죠. 이런 내용들이 3,4부에 많이 나오는 이유는, 3,4부가 다루는 시기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구요?

이 시기는 아시다시피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가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이고, 대대적인 법적, 정치적, 행정적 개혁들이 일어났던 시기지요. 당연히 형벌제도나 형행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구요. 푸코 이전에 이러한 변화를 가리키던 일반적인 명칭이 있는데, 그건 인간화라는 것이죠. 형벌의 인간화, 행형제도의 인간화(또는 [광기의 역사]의 경우는 광인들의 인간화) 등등. 그리고 보통 이러한 인간화의 기초에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토대였던 [인권선언]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평민, 예속자들이 [인권선언]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은 것처럼, 죄수나 광인 같은 사회의 배제된 주변인들 역시 [인권선언]을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권리, 곧 인권을 보장받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감시와 처벌]이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이죠. 형벌제도나 형행제도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급격한 단절을 보인 것도 아닐뿐더러, 그러한 변화의 양상이 구체제의 야만성에서 인권에 기초한 인간화로의 이행의 양상도 아니라는 것이죠.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은 사실은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푸코가 이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에 기초하고 있고 또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데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법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첫째,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가 성립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자유로운 의지와 이성적 능력을 갖춘 존재이고, 둘째, 그들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국가를 구성하며, 다양한 대의 제도들을 통해 국가의 운영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셋째, 모든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는, 국민들의 의사를 얼마간 대표하는 의회에서 공식적인 법률이 제정되고 이 법률에 기초하여 행정부서에서 각종의 제도적 절차들을 마련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푸코는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 그리고 법적 이데올로기는 첫째,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왜곡할뿐더러, 둘째, 예속자들, 특히 수인들이나 광인들, 불량배들 같은 주변적인 존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속의 실제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지요. 푸코가 보기에 법제도는 사회적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진정한 원인은 미시적인 지식/권력관계들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권력관계의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 형벌체계와 형행제도를 변화시켜왔는지를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려는 게 바로 [감시와 처벌]의 작업의 의미이지요.

이 작업을 통해 푸코가 밝혀낸 핵심적인 결과는 형벌제도와 형행제도의 변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러한 변화를 일으킨 힘은 근대적인 규율권력이라는 것입니다. 규율권력의 특징은 억압하고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목표에 잘 따르고 권력의 명령을 잘 이행할 수 있는 개체들, 곧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요. 다시 말하면 규율권력은 이 권력이 작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개체의 역량puissance―이 개념은 들뢰즈가 니체와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에서 매우 강조하는 개념이지요. 따라서 [감시와 처벌] 푸코의 분석은 그가 들뢰즈의 작업을 어떻게 활용하고 변용하는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을 개체 자신(의 권한)으로부터 분리시켜(마치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상품화에 관해 말하듯이), 권력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만들지요. 이처럼 사람들을 각자의 역량으로부터 분리시켜 권력의 목적에 순응하게 만드는 권력의 기술이 바로 규율입니다.

푸코는 이를 또한 예속화assujetissement의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따라서 푸코가 보여주고 싶은 점은 이거죠.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통해 사람들이 구체제의 야만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유화, 또는 인간화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사실은 새로운 종류의 지배-종속관계가 실현되고 구체화되는 과정, 곧 예속화의 전개과정이다.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인간화, 자유화라고 부름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의 실제적인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철학적 테제들이 바로 3부 뒷부분과 4부 이곳저곳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번역본에는 이런 내용들이 제시되는 부분들에서 오역이 자주 보입니다. 특히 4부가 좀더 오역이 많지요. 제가 지금 책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예시를 해볼 텐데, 막연한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 보니까 정확히 어떤 오역이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네요. ^^;;;

그런데 이 책은 올해 초에 개역본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저도 개역본은 보질 못해서 이런 오역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따우님은 아마 이전에 나온 판본을 보신 게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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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0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 ;;;

바람구두 2004-10-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는 보기 좋습니다만, 제가 질문 드려도 잘 답해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가을산 2004-10-05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맘 좋으시니까 추천이 많이 들어오네요. ^^

비로그인 2004-10-0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에 저도 추천!!

balmas 2004-10-0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추천들을 많이 해주셨군요. 따우님의 인기의 영향인가요?^^
바람구두님, ㅎㅎ 무슨 질문을 하실지 겁이 나는데요 ...

비로그인 2004-10-0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듣자하니 강원대 출판부에서 나온 책이 (박홍규)번역이 더 낫다고 해서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첫번째를 나남으로 읽어놔서... 이걸 별 불편없이 보았어요. 그리고 읽기엔 나남이, 나중에 읽어선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는 박홍규씨 것이 더 편했던 기억이..나남 개역판이 나왔군요.
저두 추천했는데, 여기엔 이런 정보를 더 자주 달라는, 시간없으셔도 좀 적어주시라는 주문의 추천이었음을... 헤헤헤... _(__)_

biosculp 2004-10-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남 번역본은 불문학자가 강원대 본은 법학자가 번역해서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나겠죠.
근데 강원대 본은 절판이 되서

balmas 2004-10-0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원대 출판부 판본은 책은 갖고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
그 판본 번역이 더 낫다고요? 그럼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숨은아이 2004-10-0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언제 읽게 될진 모르지만 자료 삼아 퍼가서 간직하렵니다. ^^

balmas 2004-10-0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얼렁 읽을 기회를 얻게 되시기를 ...

모모 2004-10-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홍규의 번역이 더 낫다고 들어서 그걸로 읽었었어요. 오생근의 번역은 읽지 못해서 무어라 비교하기가 힘들지만, 그렇게 아주 좋은 번역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의미는 정확하게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문장들이 거칠고 비문이 많았던 듯. 대신 역주가 꽤 많이 달려 있어서 도움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

balmas 2004-10-1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모모님은 박홍규 교수의 번역본을 읽으셨군요.
저도 기회가 되면 한번 비교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오생근 교수 번역본은 개역본으로 한번 읽어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