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 > (보도사진윤리) + (수니나라님 고맙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보도사진윤리를 주제로 꽤나 진지하게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비폭력집회 도중 백골단이 쳐들어와 참가자들을 죽일듯이 팰 경우 이를 사진으로 찍어 널리 폭로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일단 학생을 구하는 게 맞는가. 당시 우리는 일단 얼른 사진을 찍은 뒤 학생을 구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라며 냉정하게 따지던 선배의 안경이 지금도 오싹하게 기억난다.

나로선 보도와 인명(혹은 인간존엄)중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설 기회가 아예 없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질뿐 도저히 해답을 못내겠다. 하지만 수니나라님이 보내준 고마운 공짜표로 세계보도사진전을 가본 소감은 영 씁쓰름하다.

참혹한 전쟁을 고발한다는 명목으로 라이베리아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체는 곳곳에서 거리낌없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뿐인가.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부모와 형제는 물론 11명의 친척이 죽고 본인은 상반신만 남은 병신이 되었다는 것을 사진으로 말하기 위해, 어린 알리 이스마일의 가엾은 몸뚱아리를 가리고 있던 모포는 거리낌없이 제쳐졌다. 남편의 학대를 피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한 마리아의 사진은 또 어떤가. 초점이 흔들린 사진결과를 보건대, 전신화상으로 얼룩진 나체의 몸뚱아리와 얼굴을 가리기 위해 그녀가 노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충격적인 사진들은 전세계적으로 파장을 불렀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진들 모두가  '보도'를 우선시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과연 누가 사진기자에게 촬영을 거부한 사람의 사진을 전세계에 순회전시할 권한을 주었는가. 보도를 명목으로 초상권 고소의 위험이 없는 사체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도 되는가?

이는 서방의 사건을 다룬 보도사진의 예와 비교해볼 때 더욱 문제시된다. 가령, 미국에 불어닥친 초거대 허리케인의 피해로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쳐야했던 사건을 보도한 사진을 보자. 단 1명의 사체도, 부상자도 발견할 수 없다. 사진속에는 아름답기까지한, 장엄한 자연의 순간이 담겨있을 뿐이다. 전시회에는 사진이 없었지만, 미국의 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었던 보도사진을 기억하는가. 교실벽에 박혀있던 총알, 혹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흐느끼는 친구의 사진이 실렸었지, 총기난사후 자살한 주범의 사체나 비명횡사한 급우의 현장사진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라이베리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이 나라들은 서방세계에 속하지 않는 타자이며, 감히 국제사진기자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서방기자들은 고소당할 염려없이, 상대적으로 사진을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고민을 덜 하면서, 보다 충격적인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난 서방기자들 개개인의 윤리의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수십통의 사진중 단지 한 장만이 보도될 수 있다고 할 때, 그러한 사진이 널리 알려지고, 순회전시되고, 사진집에 수록되고, 상을 받을 수 있는 배경에도 서구우월주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니나라님, 인사가 너무 늦었죠? 님덕에 정말 좋은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전시회에 갔었으나 그동안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페이퍼에는 전쟁 사진의 참혹함만을 끄적였지만, 스포츠 사진이나 인물사진, 자연사진 등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고, 수니나라님 덕분에 참으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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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서울국제노동영화제 9회 정기 상영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9회 정기 상영회

노동영화제 정기 상영회가 10월 2일 토요일 늦은 6시, 미디액트에서 열립니다.(추석 연휴로 예전보다 한주가 미뤄졌습니다)

제8회 서울 국제 노동영화제를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상영회인 이번 8회 상영회의 작품은 영국의 좌파 저널리스트 존 필거의 작품인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입니다. 인도네시아를 소재로 삼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을 심층분석해내는 이 작품은 체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담아낸 방송 다큐멘터리의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입니다. 국내 배급이 불가능한 작품이기 때문에 이번 상영이 아마도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합니다.

한편, 올해 노동영화제의 준비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영화제는 11월 16일에서 21일까지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열리는대요. 해외 프로그래밍은 현재 약 10편 정도의 섭외가 완료된 상황입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선 베네주엘라의 혁명에 대한 특별 섹션이 현지 활동가들의 전폭적인 협조에 힘입어서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고, 초국적 자본의 물 사유화와 그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투쟁을 담아낸 <갈증>, 해고된 정보통신기업 노동자의 거리 농성 투쟁을 그린 <이구아주 효과>, 미국과 쿠바의 의료제도의 현실을 조망한 <유혈 : 삶 죽음 의료제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다각도로 조망한 벨기에의 <힘이 정의다>, 아르헨티나 여성 노동자의 투쟁과 삶을 그린 <여성전사들>, 기업농이 초래한 생태계의 파괴를 패로디로 표현한 단편 애니메이션 <미트릭스>, 대안적 라디오 운동의 대표적 사례를 꼼꼼히 기록한 , 베트남전에 반대해 파업한 항만노동자들을 소재로 했기에 30년간 프랑스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됬던 극영화 <부두에서의 조우>, 켄 로치의 <빵과 장미>에 출연했던 여성 활동가를 주인공으로 한 <켄과 로자>등이 이미 섭외가 끝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여러 국내외 작품들이 준비중이며 <케메라를 든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의 참여 노동자들이나 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들을 포함하는 최종 프로그래밍은 아무래도 10월중에 !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 영화제의 모든 준비는 노동자뉴스제작단과 노동영화제지원단이 꾸려가고 있으며, 이 준비과정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해외작품의 번역 및 자막작업과 관련해서 자원활동가로 참여해주실 수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대하겠습니다. (02-888-5123 노뉴단) 그리고 아울러, 올해 장소 대관 비용이 만만치않게 들기 때문에 영화제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후원 또한 필요한 상황입니다. 관심 가져주시구요.

그럼 상영회때 뵙지요 !



*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 (2001, 영국, 54분, 존 필거)
The new rulers of the world (2001, UK, 54 min, John Pilger)
현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미국의 포드사의 자산 규모가 남아프리카 전체의 경제 규모를 넘어서고 있고, 빌 게이츠 회장같은 소수의 부자들이 소유한 재산이 전체 아프리카의 부의 양보다 많으며, 전세계 아동의 3분의 2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영국인의 절반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인류의 절반은 전화를 걸어본 적조차 없다.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은 새로운 ‘글로벌’경제라는 미명하에 빈부 격차를 가속화한 다국적 기업과 IMF, 세계 은행 등의 본질적 성격을 분석해낸 역작이다. 제1회 인권영화제를 통해서 동티무르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국내에도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저명한 좌파 저널리스트 존 필거는 이번에는 인도네시아의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 IMF 간부, 영국 정보 각료 등과의 공격적인 그러나 논리적인 인터뷰는 비판적 저널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나이키나 GAP과 같은 유명한 신발 및 의류 브랜드 기업의 노동 환경의 실태는 여지없이 폭로된다. (제5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작)
John Pilger explores the impact of globalisation, taking Indonesia as his prime example, a country that the World Bank described as a "model pupil" until its 'globalised' economy collapsed in 1998. Under scrutiny are the increasingly powerful multinationals and the institutions that back them, notably the IMF and The World Bank.



존 필거 (John Pilger)
전쟁 특파원이자, 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존 필거는 베트남, 동티무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호주,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 지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저널리스트이며, BAFTA 작품상, 에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최근작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의 감추어진 진실을 폭로하는 <침묵을 깨고 : 테러에 대한 전쟁의 진실과 거짓말, Breaking the Silence: Truth and Lies in the War on Terror> 이다.
(참조 : http://www.johnpilger.com/)
John Pilger was born and educated in Sydney. he has been a war correspondent, film-maker and playwright. Based in London, he has written from many countries and has twice won British journalism's highest award, that of 'Journalist of the Year', for his work in Vietnam and Cambodia. Among a number of other awards he has been 'International Reporter of the Year' and winner of the 'United Nations Association Media Prize'. For his broadcasting, he has won an 'American Television Academy Award', an 'Emmy' and the 'Richard Dimbleby Award', given by the 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필르모그라피
Filmography
1970 Vietnam: The Quiet Mutiny
1971 Conversations With a Working Man
1974 1974 Vietnam: Still America's War
Palestine is Still the Issue
Guilty Until Proven Innocent
Thalidomide: The Children We Forgot
The Most Powerful Politician in America
One British Family
1975 An Unfashionable Tragedy
Nobody's Children
Mr Nixon's Secret Legacy
Smashing Kids 1975
To Know Us Is To Love Us
A Nod & A Wink
1976 Zap - The Weapon is Food
Pyramid Lake is Dying
Street of Joy
Pilger in Australia
1977 A Faraway Country
Dismantling A Dream
An Unjustifiable Risk
1978 Do You Remember Vietnam?
1979 Year Zero: The Silent Death of Cambodia
1980 The Mexicans
1981 Cambodia Year One
Heroes
1982 Frontline: In Search of Truth in Wartime
1983 The Truth Game
Nicaragua: A Nation's Right to Survive
1984 Burp! Pepsi v Coke in The Ice Cold War
1985 The Secret Country - The First Australians Fight Back
1987 Japan Behind the Mask
1988 The Last Dream: Heroes Unsung; Secrets; Other People's Wars
Secrets
Other People's Wars
1989 Cambodia Year Ten
1990 Cambodia The Betrayal
1992 War by Other Means
Frontline - In Search Of Truth In Wartime
1993 Cambodia: Return to Year Zero
1994 Death of a Nation: The Timor Conspiracy (updated in 1999)
1994 Flying the Flag, Arming the World
1995 Vietnam: The Last Battle
1996 Inside Burma: Land of Fear (updated 1998)
1997 Breaking the Mirror - The Murdoch Effect
1998 South Africa: Apartheid did not Die
1999 Welcome to Australia
2000 Paying The Price: Killing the Children of Iraq
2001 The New Rulers Of The World
2002 Apartheid Did Not Die!
2002 Palestine Is Still The Issue
2004 Breaking the Silence: Truth and Lies in the War on Terror


노동자뉴스제작단 Labor News Production
노동자뉴스제작단은 1989년이래 노동영상운동과 진보적 독립영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단체로서, 영상물 제작, 일상 촬영, 미디어 교육, 영상동아리 조직, 국내외 연대, 조사 연구, 배급 및 상영 등 을 활동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Seoul International Labor Film and Video Festival
1997년부터 시작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노동영화의 상영 공간으로서, 그리고 영상활동가, 투쟁 주체간의 상호 교류의 장으로서 그동안 7회에 걸쳐서 개최되었습니다. 2004년 1월부터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노동영화제 월례 정기 상영회를 개최합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주최하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 및 정기 상영회는 많은 자원활동가들의 참여를 통해서 준비되고 있으며, 정기 상영회 및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원활동가의 모임인 <노동영화제지원단>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홍보, 후원조직, 번역, 자막작업, 행사진행, 노동영상운동 연구사업 등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지원단의 활동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연락처 : 노동자뉴스제작단 02-888-5123 / http://www.lnp89.org/festival )




▶ 지하철
- 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
- 1,2호선 시청역 4번 출구 프레스센터 방향으로 5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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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정기상영회 소식지 http://www.lnp89.org/festival/
인권영화 정기상영회 반딧불 소식지 http://www.sarangbang.or.kr/hrfilm/2004test/news2_ullim.html

해당 페이지에서 E-mail을 등록하면 소식지를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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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말했던 것처럼 [한국출판인회의]라는 단체에서 매달 내고 있는 [북 앤 이슈Book & Issue]라는 서평지에서 지난 달에 서평을 부탁해와서 보름전에 서평을 써서 보냈습니다. 이제 책이 나오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이 단체 관계자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 책을 선정했던 분이 책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서 책을 선정한 것 같아서, 내부 회의 결과 이 책의 선정을 취소했고, 따라서 서평도 빼고서 책을 냈다고 말입니다.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잦은 오역시비가 일어나는 줄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이 달의 책을 선정한다는 관행 자체(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위를 부여했는지??)도 어이가 없거니와, 자신들이 서평을 부탁해서, 고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평을 부탁해서 여러 날 동안 없는 시간 들여가며 책을 읽고 서평을 써주니까, 그제서야 책의 선정을 취소하고 서평을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발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평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단체의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이나 선정자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 또 아마도 출판사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 등이 고려되었겠지요.

하지만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300여개 출판사들이 창립한 <한국출판인회의>는 지식문화의 근간인 출판의 개념과 영역을 확장시키고 그 산업 발전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지식정보 사회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표방하고 있고, 자신의 정체에 따라 소임을 다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이 달의 책들을 선정하는 일을 여러 차례에 걸쳐 해온 단체라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이처럼 엄연히 이미 이 달의 책으로 선정, 발표하고 나서(이는 이미 중앙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고, 인터넷 서점들 가운데는 이러한 선정의 결과를 공지한 곳들도 있습니다) 선정의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그제서야 선정의 행위를 취소하고 서평을 싣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음부터 선정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은 자신들의 선정 행위가 갖는 권위는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잘못된 선정 행위의 책임은 회피하겠다는 발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경우 또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될 쪽은 잘못된 정보를 갖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일 텐데 말입니다.

그동안 이 책에 관해 인터넷 서평을 쓸까 망설였는데, 이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번역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포함시켜서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평을 써야 할 것 같군요. 시간에 쫒겨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시간을 내라고 부추기는군요. 

아래는 [북앤이슈]를 위해 써준 서평의 원문입니다.

 

 

또 하나의 참담한 데리다 오역본


  데리다는 현재 인문사회과학 및 예술이론 분야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심지어 영미 학계에서는 데리다의 작업에 관한 논의가 하나의 독자적인 하위학문(sub-discipline)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데리다의 이론적 작업은 여러 학문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인문사회과학 및 예술이론 분야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서는 데리다의 작업을 소개하고 이해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데리다의 중요한 예술론 저서 중 한 권인 [시선의 권리](아트북스)의 출간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 없다. 데리다는 문학에 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회화에 관해서도 여러 권의 책(La vérité en peinture(1978), Mémoires d'aveugle(1990), Atlan: Grand format(2001), Artaud le Moma(2002))을 낸 적이 있지만, 사진, 포토로망에 관해 이처럼 체계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벨기에 출신의 사진작가인 마리-프랑수아즈 플리사르의 포토로망에 관해 데리다가 긴 ‘해설’을 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격조 높은 사진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데리다가 덧붙인 탁월한 ‘해설’은 이 책을 통상적인 사진집(과 해설)의 차원을 넘어, 이미지와 문자, 보기와 말하기/쓰기, 장르와 젠더, 현전/현상과 환영/유령 및 더 나아가 시선과 감시, 법과 권력 등에 관한 예술적, 철학적 논의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번역이 제대로,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이루어졌을 때의 이야기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는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전설, 신화일 따름이다. 사실 국내의 데리다 독자들은 이미 이같은 사실과 소문, 현실과 신화 사이의 참담한 괴리를 여러번, 너무나 자주 경험한 바 있다. 아쉽게도 이는 이 번역본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인데, 이 책은 [그라마톨로지](민음사, 1996)나 [해체](문예출판사, 1996), [불량배들](휴머니스트, 2003) 등과 더불어 데리다 저서의 최악의 오역본들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저런 기회에 지적했던 것처럼 데리다는 현대뿐만 아니라 철학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에도 보기드문 문장가(그에 비견할 만한 현대의 이론가는 라캉 정도일 것이다)여서, 이론적인 논증과 수사학적인 어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을 쓰며, 그의 작업이 갖는 의의, 중요성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논증과 수사학의 결합이 산출해내는 의미효과들에 있다. 따라서 데리다 저서에 대한 번역의 성패는 이러한 의미효과들을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충실하게 옮겨내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바로는 이 책의 역자는 “dont”이나 “que”와 같은 프랑스어의 초보적인 관계대명사의 용법이나 과거시제의 용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격자”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abyme”를 줄곧 “심연”으로 번역하거나 “독촉”과 더불어 “총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sommation”이라는 단어를 줄곧 “독촉”이라고만 번역하는 등의 일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이며, 더 나아가 복잡하게 뒤얽힌 논증과 수사학의 결합을 풀어내어 이해 가능한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차 있는 이 번역본은, 데리다를 신비스러운 인물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는 데도 외국에서는 놀라운 명성을 누리고 있는 불가사의한 인물로 만드는 데 기여할 뿐, 독자들이 미묘한 논의들을 통해 산출되는 놀라운 의미효과들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데리다의 이론적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역자만이 아니라 출판사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문학동네의 자회사인 아트북스 같은 출판사라면, 그리고 “데리다의 3대 예술서의 하나”―무슨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라고 광고할 만큼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면, 더 나아가 역자가 불어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면, 데리다 전문가나 적어도 불어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외주를 줘서 이 책의 번역을 꼼꼼하게 교열하고 교정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 번역본의 상태는 출판사에서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이 책을 출간했음을 잘 말해준다. 그런 마당에 “3대 예술서 중 하나”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럴 바에야, 재판을 찍을 경우에는 아예 [자크 데리다, 시선의 권리]라는 민망한 제목을 빼고 대신 [마리-프랑수아즈 플리사르의 포토로망: 시선의 권리]라는 제목으로 고쳐내는 게 옳을 것이다. ‘포토로망의 번역본’이라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출판인회의의 공신력 역시 이 책으로 인해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위촉해서 달마다 우수한 도서들을 선정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하고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데리다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데리다의 책이 이처럼 우수도서로 선정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달의 최악의 도서들 중 한 권으로 꼽힐 만한 오역본을 우수 도서로 선정해놓으면, 이 단체의 권위를 믿고 이 책을 마음놓고 사서 읽는 독자들이 입게 될 피해는 과연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이래저래 이 책의 출간과 우수도서 선정은 한국 출판계 및 인문학계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또하나의 사건, 또하나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제발 이런 류의 참담한 사건, 이런 식의 어이 없는 해프닝은 이번으로 끝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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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9-2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로드무비 2004-09-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앤이슈가 큰 실수를 했군요.

balmas 2004-09-2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황당할 따름입니다.

chika 2004-09-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요... 전 님의 서재를 즐찾한 줄 알았는데, 이 글을 다른 분 서재에서 보고야 즐찾안됐다는걸 깨달았지뭡니까.. ㅡㅡ;;;;;
^^

조선인 2004-09-24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 추천합니다. -.-;;

바람구두 2004-09-2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 서평 청탁 받고, 글 썼다가 애꿎은 시간만 날려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에효... 왜들 그러는지....

balmas 2004-09-24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이 추천해주셨군요. 근래 보기드문 성황입니다.
나쁜 번역은 사라지고 좋은 번역만 나오길 바라는 마음들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감사^^
바람구두님, 그러셨군요. 정말 왜들 그러는지 ...

비로그인 2004-09-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노는 건지...하여간 발마스님의 날카로운 서평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balmas 2004-09-2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이죠.
그렇게 할 거면 책을 내지를 말고, 책을 선정하지를 말든가 ...

hoyami 2004-09-25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ut you should be happy about one thing! That you are thaaaaat influential!!!!!! Isn't it great! You are such an influential writer that they had to withdraw their decision!!! Oh my God, you're so great!!!! ^^
What is the name of the SeonJeong Wiwon, by the way? Just curious~

starrysky 2004-09-25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어떻게 저런 식으로 일을 한대요. 심하게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옵니다. 나뿐 사람들!!!
우리 balmas님의 시간과 노력은 누가 보상해 주나욧!! 그리고 이런 말 좀 심할지 모르지만 선정위원이란 사람들은 읽어봐도 오역인 줄 모르지 않을까요? -_- 적어도 출판사 관계자들은 꼬옥 balmas님의 글을 읽었음 좋겠습니다.

balmas 2004-09-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말도 안되죠.

   책을 잘못 선정하는 것 자체는 (될 수 있으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몇천명씩 파병도 하고, 기업도시법이나 파견법 같은 어이 없는 일도 개혁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마당에, 책 하나 잘못 선정했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봅니다.

   더욱이 지난 몇년 동안 문광부 같은 데서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한 책들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어이없는(저자나 편자,  역자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책들이 버젓이 우수도서로 선정되고, 우수도서로 마땅히 선정되어야 할 책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운지. 우스운 것 중 하나는  올해부터는 한 출판사에서 5권 이상의 책을 선정하지 않도록 방침을 정했다고 공표한 점입니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그 이전에는 한 출판사에서 5권 이상의 책이, 그것도 합당한 자격과 질을 갖추지 못한 책들이 다수 선정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셈이죠. 문화관광부 선정도서는 도서당 1,000만원어치를 구입해서 각 공공 도서관에 비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름 없는 출판사들에서 내는 좋은 책들이 여기에 선정될 수 있다면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만, 또 실제로 그런 경우들도 있지만, 상당수 도서들은 원래의 취지와는 무관한, 선정위원들과의 모종의 친분관계/연줄관계에 따라 선정되었고 또 선정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책들입니다. 좋은 취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집행되고 관리된다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런 분야에도 시민들의 엄정한 감시와 비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마당에 한국출판인회의 같은 데서 책 한 권  잘못 선정했다고 크게 문제삼을 건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선정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선정을 취소한다고 하더라도 취소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그 계기가 된 서평은 실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제 생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한국출판인회의로서도 좀더 떳떳한 일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쨌든 별총총님과 여러분들이 모두 공감하고 응원해주셔서 큰 힘이 나는군요. 다시 한번 감사드릴게요.^^

 

  그리고 Shimba, 내가 뭘 영향력이 있다고 그러시나?^^ 영향력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서평 게재를 취소하고 하지도 않았겠지.  어쨌든 [북앤이슈]에는 실어줄 수 없다니까, 인터넷 서점들에라도 서평을 실어야지. 


릴케 현상 2004-09-2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추천이 무척 많군요. 저도 하나 추가하지요^^ 사실 상당수의 출판사는 선정도서에 책을 내지도 않는 것 같더군요. 지이이이이루한 노릇이죠

balmas 2004-09-2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쯧쯧, 그런가요?
특정한 책을 예로 들어서 좀 무엇하긴 하지만, 작년인가 종교/철학 분야의 우수 학술 도서 중에는 로제 폴 드르와라는 사람의 책이 두 권이나 선정되었더군요. 로제 폴 드르와라는 사람은 철학자라기보다는 일종의 저널리스트이고, 선정된 두 권의 책은, 읽으면 좋지만 안 읽어도 상관없는, 수많은 교양철학서들 중의 하나인데, 이 책들을 철학/종교 분야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더군요. 참고로 이 두 권의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시기에 나온 책들입니다. 그 출판사는 문화관광부 우수 도서에 단골로 선정되는 출판사이기도 하지요.
 

[디지털 말]

 

 

마이크로소프트 아성 무너지나

모질라 불여우 1.0, 100시간 만에 100만 다운로드 돌파

 

이정환 기자 blue@digitalmal.com

 

마이크로소프트 독점 왕국의 아성이 무너지는 것인가. 최근 1.0 미리보기 판을 출시한 모질라 재단의 대안 웹 브라우저, 불여우(파이어폭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9월 14일에 첫 선을 보인 불여우 1.0 미리보기 판은 출시 6일째 되는 날에, 시간으로는 100여시간 만에 다운로드 횟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첫날 31만2천명이 이 프로그램을 내려받은데 이어 22일까지 모두 150만6200명이 불여우 쓰기 운동에 동참했다. 당초 모질라 재단이 공언했던 10일 100만 다운로드 목표를 일찌감치 넘어선 셈이다. 이런 속도라면 10일 동안 200만 다운로드도 가능할 전망이다.

불여우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계보를 잇는 100% 무료 프로그램이다. 넷스케이프가 아메리카온라인에 인수됐다가 지난해 8월 결국 독립해 나오면서 불여우로 이름을 바꾸고 소스 코드를 모두 공개했다. 소스를 공개했다는 건 프로그램의 내부구조가 모두 공개돼 있어 누구나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고쳐쓰거나 무료로 배포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불여우를 개발하고 있는 모질라 재단은 100%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재단이다. 60여명의 개발자와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글 불여우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근무하고 있는 윤석찬씨를 비롯해 이정민, 박상현, 신정식씨 등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불여우가 주목받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여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불여우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비교할 때 속도나 안정성, 보안 등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웹 사이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 돼 있어 불여우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페이지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1.0판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호환성이 크게 강화했고 라이브 북마크 기능과 비밀번호 암호화 기능 등이 추가됐다. 라이브 북마크는 RSS(웹 페이지 정보 수집, Really Simple Syndication)를 제공하는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오른쪽 아래 상태 막대에 아이콘이 나타나는 기능이다. 즐겨찾기에 추가하면 새로운 글의 목록을 읽을 수 있다. RSS를 지원하는 웹 브라우저는 불여우 1.0판이 최초다.

비밀번호 암호화는 관리자 암호를 입력해야 암호 자동입력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여러명이 쓰는 컴퓨터에서 유용하다. 검색도 편리해졌다. 검색어를 입력하면 페이지 안의 모든 검색어를 한꺼번에 표시해주는 기능도 있다. 보안이 필요한 페이지에 접속할 때는 주소창이 밝게 표시되는 기능도 있다.

이밖에 이미 0.9판 때부터 제공됐던 팝업 창 차단 기능과 탭 브라우징, 검색 툴 바 등도 불여우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용량이 4.5메가바이트로 작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 훨씬 빠르다는게 가장 큰 강점이다.



정보기술 전문 잡지'이위크(EWEEK)'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석달동안 1.8% 줄어들어 현재 93.7%에 이른다. 불여우는 1.7% 늘어나 5.2%에 이른다. 역시 정보기술 전문 웹사이트 '시넷'에 따르면 이 사이트 방문자 가운데 불여우 사용자의 비율이 지난 1월 8%에서 9월 둘째주에는 18%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의 비율은 84%에서 75%로 크게 떨어졌다.

불여우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지난 7월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보안 결함이 발견되면서 부터다. 모질라 재단의 대변인, 바트 디크램은 "불여우 열풍은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디크램은 "일시적인 현상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가 계속될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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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9-2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이 좀 거창하긴 한데,
혹시 모르죠 ...^^
 

 

 

판사님, 판사님, 길들여진 판사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948년 대한민국 출발 때 3부 중 가장 깨끗하고 똑똑했던 사법부가 가장 처절하게 망가진 이유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최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활약이 눈부시다. 두 기관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수구적인 결정을 연달아 내놓아, 철없는 ‘좌경 정권’ 때문에 이 나라가 결딴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애국세력’에게 천군만마의 힘이 되어주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26일 국가보안법의 말 많고 탈 많은 고무찬양죄에 대해 재판관 9명의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같은 날 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서도 7 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뒤질세라 대법원은 9월2일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겨냥해 “나라의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국가의 안보에는 한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주류 중의 주류!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라는 자리에 오른 분들이 보수적이라는 점이야 익히 알려진 사실로 새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세속의 정치적 일에 초연한 척 지내온 점잖은 분들이 작심을 하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입장에 서서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1997년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가 넘어갔다. 1960년 4월부터 1년여 동안의 짧은 에피소드를 빼고는 대한민국 수립 이래 처음으로 정치권력이 바뀌었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른바 ‘주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 5년만 참자.”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내면서 5년은 흘러갔다.


△ 1971년 7월 사법 파동 당시 유태흥 수석부장판사가 형사지법 판사들의 사표를 모아들고 있다. 사법부가 철저히 길들여지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02년, 다시 대선의 계절은 왔다. 그런데 또 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책임져야 할 환란위기도, 이인제로 인한 적전분열도 없었고, 정몽준은 선거 전날 밤 노무현과 결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것이다. 김대중은 비주류 내에서는 그래도 주류였지만, 바보 노무현은 비주류 내에서도 비주류였다. 기득권층인 ‘주류’로서는 이런 노무현에게 져서 앞으로 5년을 더 보내야 한다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영원히 정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 탄핵이었다. 의회 다수의석의 힘을 빌려 잃어버린 대통령 자리를 되찾으려는 무모한 시도는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갖고 탄핵을 밀어붙인 거대야당이 거대여당의 출현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해서 ‘주류’는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마저 ‘비주류’에게 넘겨주게 된 것이다. 국가의 3부 중 주류에게는 이제 사법부 하나가 남은 셈이다. 대통령이 넘어가고, 입법부도 넘어가고,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방송과 인터넷 매체에 치여 위축됐고, 게다가 사법부 내의 사정도 옛날 같지 않다. 사법개혁이니 뭐니 해가며 지난 수십년간 굳어져온 법관 서열 대신에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하질 않나, 시민단체가 후보를 추천하거나 검증하겠다고 하질 않나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또 여태까지 아무 탈 없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1만명을 감옥에 보내왔는데 갑자기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떨어지지 않나,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이라며 국가보안법의 사활을 걸고 몰아붙인 송두율 교수가 핵심적인 부분에서 무죄를 받아 풀려나지를 않나, 주류권력의 마지막 보루가 된 사법부의 입장에서는 나라 전체가 정말 위기 상황에 빠진 꼴이다.

<한겨레21>에서도 얼마 전 특집으로 다루었지만, 이제 모든 것은 헌법으로 통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니 바라는 대로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될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주류’ 기득권층이 그래도 끝까지 장악하고 있는 국가권력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계속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젊은 법관들이 고뇌하며 내린 하급심의 전향적 판단을 모조리 퇴짜 놓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법부의 역사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이 출발할 때 그래도 3부 중에서 가장 깨끗했고 제 기능을 수행했던 사법부가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정치깡패가 판사를 협박하던 50년대

1950년대는 정치깡패의 시대였다. 1958년 7월2일 유병진 판사는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진보당 당수 조봉암에게 예상을 깨고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사흘 뒤 법원은 단체손님을 받았다. “친공판사 유병진을 타도하라!”고 부르짖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애국청년’ 수백명이 법원에 난입한 것이다. 경찰은 이런 때면 늘 어디 가서 딴 짓 하다가 한 시간쯤 흐른 뒤에 나타나는 법이다. 유병진 판사는 이에 앞서 4월에는 서울대 문리대 학보에 ‘무산대중의 체제로의 지향’이라는 무시무시한 부제 아래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조국을 갈구한다’라는 치기 어린 글을 기고한 유근일- <조선일보>의 바로 그 유근일이다- 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6월23일에는 용산중학 교감으로 재직 중에 간첩 혐의로 기소된 이태순 피고 사건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때는 비록 김병로 대법원장은 퇴임한 직후였지만, 그가 일궈놓은 전통에 따라 많은 판사들이 법대로 판결하고 있었다. 5척 단구의 조그마한 보수주의자 김병로는 이승만 시대의 무지막지한 외풍으로부터 사법부를 지켜낸 든든한 거목이었다.

1960년대 전반에도 법원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권력의 주구들은 법원으로 몰려갔다. 한-일 굴욕외교 반대 데모가 한창이던 1964년 5월21일, 이번에는 정치깡패가 아니라 정복을 입은 군인들이었다. 법원이 박정희가 내건 ‘민족적 민주주의’의 장례식을 벌인 시위 주동학생들의 구속영장을 대부분 기각하자 수경사 소속 군인들이 법원에 난입하고 심지어 판사의 집까지 찾아가 당장 구속영장을 발부하라며 행패를 부린 것이다.

자기를 천황쯤 되는 초월적 지위에 놓고 싶어했던 박정희는 3권분립을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을 경멸했고, 가끔 행정부를 견제하려 드는 사법부를 극도로 불신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1962년 5월14일 대법원장에게 보낸 ‘지시각서’ 5호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박정희는 “혁명 이래 일부 법관이 아직도 새로운 세계관의 확립 없이 돈과 술에 팔리고 정실과 야합”하고 있으며, 중대한 국가적·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불순분자는 방면하고 힘이 없어 땅을 치고 우는 약자에 대하여는 무고한 벌을 가하고도 하등의 양심적 가책도 없이 마치 법은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완전히 사단장이 밖에서 술 먹다가 사고치고 들어온 초임 법무관 야단치는 어조였다. 박정희에게 모든 국가기구는 통치권자가 세운 목표를 향해 일로매진해야 하는 존재였지만, 사법부는 여기에 역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승만도 꿈꾸지 못한 사법기구에 대한 지배를 시도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박정희 시대에는 가인 김병로나 권승렬, 최대교같이 늘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권력에 맞서 외풍을 막아줄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다.


△ 박정희 정권 시절 검찰총장에 임명돼 벼락출세한 신직수(왼쪽). 그와 환상의 콤비를 이뤘던 법무장관 민복기(오른쪽).

1963년 12월7일 박정희는 중앙정보부 차장 신직수를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 그의 학교나 고시 동기들은 대개 평검사였고 15년에서 2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검찰총장이 되었으니 벼락출세도 그런 벼락출세가 없었다. 오죽하면 심기가 불편한 고검장들이 집단으로 검찰총장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신직수가 벼락출세를 한 비결은 박정희가 5사단장 시절, 그가 사단 법무참모를 지낸 인연 때문이다. 육사 출신이 주도한 군사정권과 판검사들의 야합을 육법당(陸法黨)이라 불렀는데, 아마 신직수가 법당의 초대 당수쯤 되지 않았을까? 얼마 전 검찰개혁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검찰이 연공서열에 따른 인사를 하는 것이 봉건적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나 역시 이 비판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저 험한 군사독재 시절에 연공서열에 따른 인사에 나름대로 상황에 따른 합리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자격 없는 권력자가 자격 없는 대상자를 검찰총장이나 다른 요직에 인재 발탁이란 미명하에 끌어올리는 것을 막으려면, 조직 전체가 똘똘 뭉쳐 “서열대로 합시다”라고 할 수밖에. 가끔 장관이나 고위직 인사를 보면 ‘왜 저런 사람을 저런 자리에 앉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뜻밖에 큰 감투를 쓰게 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권력자 원하는 대로 진흙탕에서 뒹구는 일도 마다 않고 하는 것이지, 자기가 잘나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뭐 빚진 게 있다고 무리수를 두겠는가? 이런 게 박정희의 용인술이었다.

신직수는 무려 7년 반을 검찰총장 자리를 차지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장수 총장이 되었는데, 그의 총장 시절 검찰은 완전히 독재권력의 충실한 시녀가 되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1964년 8월의 제1차 인혁당 사건이다. 한일회담 반대시위인 6·3 사태로 인해 계엄령이 선포된 지 얼마 뒤 중앙정보부는 북의 지령을 받아 국가를 변란하려는 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을 적발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김형욱의 중앙정보부는 이 사건의 각본을 다 짜서 서울지검으로 송치했는데, 서울지검 공안부 부장 이하 검사들이 아무런 증거도 혐의도 찾을 수 없다며 양심상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법무장관 민복기는 “상명하복의 검찰기강을 세우기 위해 공소장에 서명을 거부한 검사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공안부장 이용훈 등 3명의 검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몹시 분개했고, 중정 차장으로서 그를 모셨던 신직수가 총장으로 있던 검찰은 이용훈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검찰은 1970년대를 풍미한 참고서의 이름마냥 박정희 체제에 ‘완전정복’되었다. 신직수는 이후 중앙정보부장이 되어 사법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2차 인혁당 사건을 처리했다.

‘양심에 따른 기소거부’를 아십니까

조직을 장악할 때는 당근도 같이 주는 법. 법무장관 민복기, 검찰총장 신직수, 이 환상의 콤비는 대법원이 전체 법조계를 대표하기 위해서 대법원 판사에 검찰 출신도 들어가야 한다는 궤변을 내세워 마침내 대검차장 출신의 주운화 등이 검찰 대표로 대법원 판사가 되는 길을 연다(이런 이상한 관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주운화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맡아서 역시 법대로 일부 피고의 간첩 혐의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유병진 판사 때나 1964년 군인들의 법원 난입 사건 때처럼 직접 법원에 ‘애국청년’들이 몰려온 것은 아니고, 벽보를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거기 사용된 표현은 과거의 두 사건보다 훨씬 거칠었다. 담당 재판장 김치걸이나 주심 주운화 등은 ‘김일성의 앞잡이’로 ‘법관의 가면을 쓰고 도사린 붉은 늑대’이며 사법부는 ‘북괴의 복마전’으로 규탄됐다. 이 사건을 만들어낸 정보기관의 간부는 인책 사임했다는데, 사법부 보호를 위해서 공작 자체에 책임을 물어서가 아니라 방법이 너무 졸렬해서 역효과 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정희 하에서 사법부가 철저히 길들여진 계기는 역시 1971년 7월 말에 시작된 사법 파동이었다. 박정희는 1971년 4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 신승하고 7월에 3선 임기를 시작했다. 바로 이 무렵 대법원은 사상 처음으로 위헌심판권을 행사하여 군인과 군속의 손해배상권을 제한하는 국가배상법을 위헌이라 판결했다. 그리고 학생시위로 구속되거나 반정부 논문을 기고했다가 반공법으로 기소된 문인들이 잇달아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이에 박정희는 격노했다. 새로이 법무장관으로 승진한 신직수에게 사법부 길들이는 과업이 부여됐다.

판사들이 집단사표를 낼 정도였으니…

1971년 7월28일 서울지검 공안부(이때 공안부장은 1964년 인혁당 사건 때 공안부 검사로는 유일하게 사표를 쓰지 않은 최대현이었다) 는 무죄 판결을 많이 낸 재판부의 하나인 서울형사지법 항소3부 이범렬 부장판사와 배석 최공웅 판사 등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혐의 사실은 재판부에 할당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의 증인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갔을 때, 피고인의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피고인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잘못이지만, 공식 출장비가 거의 책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는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 형사지법 유태흥 수석부장판사가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다고 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증거를 보강하여 다시 영장을 청구했다. 보강된 증거란 두 판사가 출장가서 ‘객고’(客苦)를 푼 것에 관한, 좀 쑥스러운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누가 보기에도 명백하게 법관 길들이기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보수적이고 집단 행동을 안 하기로 소문난 판사들도 집단 사표를 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판사들은 이번 집단 사표가 단순히 동료를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법권 독립’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1) 반공법,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과 견해를 달리한 법관을 용공분자로 취급하여 협박하고 신원조사를 했다, 2) 판사실에 도청장치를 했다, 3) 무죄선고가 나면 법관이 부정한 재판을 한 듯 비난하면서 예금통장을 조사했다, 4) 판사들을 미행, 사찰하고 함정수사까지 했다 등등 그동안의 사법권 침해 사례 7개항을 공개했다.

일선판사들의 집단 행동이 이어지자, 대법원 판사들은 회의를 열고 대법원장(인혁당 사건 당시 법무장관인 민복기가 대법원장이 되어 있었다)이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대통령 ‘알현’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박정희는 결국 영장을 청구한 공안부 라인을 문책성 전보인사를 하는 것으로 법관쪽에 약간의 퇴로를 제공했고, 법관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사건 한달 만에 스스로 사표를 철회했다.

사법 파동이 일어난 1971년 여름은 유난히 큰 사건이 많았다. 파동이 한창 진행 중에 광주대단지 폭동, 남북이산가족찾기와 남북 적십자 회담 발표, 실미도 사건 등이 일어났고, 뒤이어 교련반대 데모로 위수령이 발동되고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사법 파동은 박정희의 영구 집권 음모인 10월유신을 앞두고 걸림돌이 되는 각 집단을 각개격파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유신헌법이라는 황당한 헌법 아래 법관 재임용제도가 도입되어 대통령은 법관의 임명권마저 손에 넣었다. 그리고 1973년 3월 법관 재임용에서는 전체 법관의 10%가 넘는 48명의 법관이 법복을 벗어야 했다. 1971년 국가배상법 위헌 판결에서 위헌 의견을 낸 대법원 판사 9명을 포함해, 학생들을 무죄 방면하거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들도 대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 10·26 사건 당시 김재규에게 신군부가 원한 내란목적살인죄 대신 단순살인이라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대법원 판사 6명은 모두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살아남은 판사들은 길들여져갔다. 이제 사법부(司法府)는 행정부의 한 부서인 사법부(司法部)라 불리더니 급기야는 사법부(死法部)라 조롱받게 되었다. 10·26 사건 김재규에게 신군부가 원한 내란목적살인죄 대신 단순살인이라는 소수 의견을 제시한 대법원 판사 6명은 모두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 대법원장에서 물러난 이영섭은 신군부의 외압에 마음고생을 하다 입이 돌아갈 정도였다. 그가 퇴임사에서 한 말, 자신의 대법원장 시절은 오욕과 회한의 역사였다는 말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형사지법 수석부장 시절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하고, 사표를 쓴 판사들을 대표해서 성명서를 읽던 유태흥은 대법원 판사가 된 뒤에는 김재규 사형 판결에서 적극적 역할을 했고, 결국은 대법원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유태흥은 법관 인사의 난맥상을 비판하는 글을 한 법조신문에 기고한 판사를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부임 하루 만에 울산지원으로 전보시켰다가 2차 사법 파동을 초래하고,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 사상 최초의 탄핵 발의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렇게 처절하게 망가져간 사법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대법원에서 그나마 소수 의견을 가장 많이 낸 판사가 이회창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회창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유

지난번 탄핵 사태 때 사람들은 혹시라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하면 어쩌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3월13일 광화문의 촛불시위를 다녀온 뒤 나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느긋해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뭘 믿고 그러냐”며 설마 헌재 재판관들의 양심을 믿느냐고 힐난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순진하지는 않다면서 ‘그들의 양심은 나도 안 믿지만 거기까지 올라온 그들의 눈치만큼은 믿어줘도 된다’며 촛불이 꺼지지 않으면 문제없다고 답해 같이 웃었다. 그런데 이제 헌재는 그 눈치를 벗어버리고- 어떤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나를 놀라게 했는데, 정작 헌재 결정에서는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 용감하게 수구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리고 어떤 법원장은 자못 비장하게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사법부의 독립이 훼손되고 있다는 퇴임사를 남겼다. 설마 군사독재 시절을 나름대로 고통스럽게 살아낸 저분들이 말하는 사법부의 독립이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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