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참세상]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1>-지금은 다 개방중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1)

이정석 기자 
다 개방한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의제가 7개 분야 13개 주요 의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에너지, 물, 의료, 교육, 환경,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가 포괄됩니다. DDA 협상 시한이 2005년 12월 홍콩각료회의까지 연기되긴 했으나, 한국 정부는 이미 2003년에 150여 개 분야의 양허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개방 입장은 정해진 것이고 수위와 시기 문제만 남은 것 아닌가요?”

정상철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개방이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임을 직시하며 되물어왔다. 에너지, 물, 의료, 교육, 환경, 과학기술 영역이 개방된다는 것은 사실상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개방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영역이 개방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과 노동조건의 악화가 불보듯 훤하다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우리 나라 서비스 분야 종사자가 고용의 70%를 차지하고, 공공부문에만 대략 400만 정도다. 그 중 약 150만 명이 비정규직인데, 이대로 가면 더 확대될 거고, 노동강도는 더 강화될 것이다. LG칼텍스가 몇 조 원의 수익을 낸 3년인가 5년인가 기간 동안 고용은 단 1명만 늘렸다.”

돈 없으면 교육 못 받고, 병 못 고치고

교육 개방도 물이 올랐다. 외국 교육자본이 학교 설계에 들어갔다. ‘WTO교육개방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 조희주 집행위원장은 “고등학교의 55%, 대학의 84%가 사립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우리 나라에 외국 교육기관이 영리법인 학교을 세우게 되면, 돈벌이 학문만 발달하고, 고교 평준화는 해체되며, 공교육의 골간이 붕괴될 것”이라며 교육 개방이 미칠 영향을 걱정하였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입법 예고되고 있는 외국교육기관특별법(안)에 대해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은 국내에 외국자본이 맘놓고 들어와 공교육을 갖고 돈벌이하도록 배려해주는 악법이자 한국 공교육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 위험천만한 악법”이라며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앞장서 위협하는 정부의 교육시장화・개방화정책 방향을 비판하였다.

손지희 전교조 정책연구국장도 "지금 가장 큰 현실 쟁점은 앞서 말한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이고 그 내의 3대 독소조항이다. 내국인입학 허용, 학력인정, 영리추구 허용의 파격적 '혜택'이 외국교육기관에 부여되면 국내 대학의 80%, 공교육의 절반인 사립이 어떤 요구를 할지 눈에 선하다. 특히 영리 추구 허용은 현행 사립학교법으로도 제어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라며 정부가 개방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교육을 시장판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남규 전교조 정책위원은 “대학서열 체제로 인한 학벌사회의 모순과 입시지옥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정부는 공교육을 정상화 하기보다는 대학구조조정, 국립대 민영화, 경제논리에 따른 평준화 해체, 사학청산법, 외국교육기관특별법 추진 등을 시도하고 있다”며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개탄했다. 의료 영역도 급하긴 매한가지다.

“국민들이 공공의료를 제공받은 정치적 경험도 없고 국가로부터 그것을 요구할 생각도 못하고 있어요. 의료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국가가 그걸 한 번도 책임진 적이 없으니, 민간시장만 늘어나고 극성을 부리는 거죠.”

박주영 민중의료연합 활동가의 말이다. 여기서 민간시장만 늘어난다는 말 역시 세계화와 연관되어 있다. 국내외 병원자본이 건강을 상품으로 가공해서 사고 파는 일이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의료 개방은 말 그대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국내외 병원자본에게 팔아 넘기는 일이다. 국내 대형병원들은 진작부터 시장개방에 대비한다고 병원을 대형화, 전문화시키고 있다. 병원자본이 더 많은 투자를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 '개방'이 가져올 수익 규모를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건의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매우 높아 기대수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계 병원들이 막강한 자본과 축적된 노하우를 앞세워 국내시장에 몰려들면 시장은 순식간에 외국자본에게 넘어갈 겁니다.”

의료 개방의 경우, 1995년 1월부터 의료기관 시설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허용되었고,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면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외국인 의료기관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더군다나 내국인 진료 허용뿐 아니라 현재 '비영리법인'으로 되어있는 의료기관을 '영리법인'으로 허용하는 문제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두가 재경부와 청와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복지부는 눈치만 보는 모양세다.

따라서 외국 교육자본과 마찬가지로 외국 병원자본은 의료를 매개로 돈을 벌 수 있는 한국시장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더 높은 고급의료 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그만큼 수요가 늘어날 것이며, 노령인구 증가로 의료비 지출이 더욱 팽창할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수지타산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 병원자본의 '전문화된, 고급의, 선진화된' 의료서비스는 구매력있는 상품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등장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리병원은 민간보험을 패키지로 끼고 돌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병원은 자율적으로 민간보험과 계약을 맺고, 건강보험에 적용되던 질환 범위도 대폭 축소한다는 말이다. 가령 삼성병원 가려면 삼성생명에 가입해야 하고, 현대아산병원에 가려면 현대해상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허용,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개정 여부가 최대의 쟁점인데, 박주영 활동가는 이렇게 의료개방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딱 잘라 말한다.

“돈 없으면 병원에도 못 가보고 죽는 거죠.”

철도, 가스 사유화 속도 높이고

개방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유화 문제도 심각하다. 가스의 경우 공사는 그 동안 분할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해왔는데, 공사도 ‘도입 수송 계약의 승계, 도입판매회사 신설에 따른 이윤 반영 및 간접비 증가, 거래시스템 구축 등 추가 비용 부담, 수급조절 기능의 악화’ 등의 이유로 불가능한 조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공사는 이의 대안으로 신규진입 방식을 내놓고 있는데, 이에 대해 송유나 사회진보연대 자문위원은 “직도입 역시 가정용 요금인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사적 과점화를 부추기고, 직도입 물량의 확대와 기존 계약자의 이탈 가능성으로 인해 LNG 수급조절 능력을 현격히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하고, “결국 가스공사가 시장의 위험을 떠안아야 하며, 위험을 관리하지 못할 시 심각한 국부 유출 및 '부채의 사회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며 이 내용이 반영되는 가스사업법은 정당하지 않다고 짚었다.

또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 예고되고 있는 철도사업법안은 공공성에 기초한 철도 운영체계를 수익 중심의 경쟁체제로 바꾸는 것으로, 넓게 보면 역시 개방 문제와 맞물려 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철도사업법(안)은 김대중정권 때부터 추진해온 분할 만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내용도 그렇거니와 공청회 한 차례 없이 제정법률로 다룬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하고, “철도 운영을 지역, 고속, 남북철도로 분할하여 민간자본과 해외 자본에게 철도사업 참여를 열어놓는 사실상의 철도사유화 법”이라고 설명했다.

철도사업법이 통과되면 민간사업자에 의한 외주 하청과 민간 위탁의 증가로 철도노동자들에게는 구조조정 공세가 더 강화되고, 민중에게는 요금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정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미 체결, 비준된 한-일 양자투자협정을 보면 철도가 예외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철도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일 자유무역협정 의제로 남북철도 연결과 함께 한-일 해저터널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데, 철도사업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이런 사안들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철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철도는 지방본부로 쪼개어 언제든 민영화가 가능하게 하는 철도사업법, 가스는 가스사업법 등으로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공공연맹에서는 공공서비스 시장개방 저지 및 사회공공성 강화 특위를 구성하여 대처할 예정이나 얼마나 대응해낼 지는 미지수”라며 현실적인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쌀 개방도 예외 없으며

농업 개방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산물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다 전체 농가의 80%가 경작하고 있는 쌀마저 개방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실정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당시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국으로 인정받은 이래 10년간의 유예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정광훈 쌀국본 대표는 “쌀 개방은 농민의 생존권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가치 측면에서도 막아야 된다”고 말하고, “쌀이 개방되면 농민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도시 문제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의료, 교육, 공공 기간산업 개방 반대와 함께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쌀마저 개방되면 400만 농민은 앞으로 10년간 1/10 규모로 축소된다는 전망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빈곤화 과정과 맞물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미 개방의 고삐는 풀릴만큼 풀렸다는 이야기다.

초국적자본, 알짜는 이미 다 챙겼다

세계화에 따른 개방 물결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돌아보면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자본 개방 물결이 거세게 몰려왔다. 초국적자본의 활동을 따져보면 자본 투자의 면에서는 더 이상 개방할 게 있는가 할 정도로 완전 개방된 것이나 다름없다. 체결했거나 체결을 추진중인 다자협상이나 양자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과 관계없이 자본의 투기는 지금까지 별다른 장애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가령 국내에 있는 은행의 실제 주인을 따져보면 모두 외국 자본으로 되어 있다.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60%를 상회한다. 특히 국내 은행산업의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은 지난 6월말을 기준으로 약 63%로 사실상 외국자본 지배체제 하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Asia Society Conference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국제 금융 거래에 대한 자유화 조치는 신흥시장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격히 진행되었다”고 말했는데, 이에 따른 폐해마저도 금융개혁의 성과로 언급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장화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8월 25일 대한투자증권 강당에서 열린 투기자본 국민대토론회에서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권시장에 유입된 외국자본의 약 95%가 단기성 투기자본이고, 안정적인 장기투자는 5%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투기자본은 각종 탈법과 불법, 합법을 가장한 편법적 금융기법을 동원하여 투기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외국 자본은 99년에 약 48조원, 2001년에 약 29조원, 2003년에 약 36조원의 이익을 챙겼으며, 98년 이후 2003년까지만 약 93조 6천억 원의 평가이익을 발생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자유롭게 투자하고, 맘먹은 대로 챙겨갔다는 이야기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10개 대기업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은 더 높은 실정이다. 2004년 1월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8.18%, SK텔리콤 48.99%, 국민은행 74.38%, POSCO 66.76%, 현대자동차 51.23%, KT 46.82%, LG전자 36.06%, 삼성SDI 37.14%, 신한금융지주 52.40%로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더드를 적용해야 하고, 노동유연화도 더 높여야 한다며 개방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개방, 과연 대세인가

최근 2-3년 개방은 부문 영역별로 불균등하게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올해 개방 속도를 보면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사회 전 부문 전 영역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세계 자본운동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자본간 시장 확보와 이윤 획득을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다자협상의 연장, 자유무역협정의 확산, 유럽, 전미, 아시아 등 지역블록화의 형성 등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따라서 앞으로 1-2년이 세계 시장질서 재편에 있어, 지각변동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개방은 대세가 맞다. 그러나 민중의 모든 부분, 영역에서 개방에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압축된다. 개방이 다수 민중의 생존과 삶을 침해하고, 억압하고, 위협하며 진행되기 때문이다. 착취의 세계화, 빈곤의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개방이라는 점에서 다수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부르는 것이다.

지금 개방에 반대하고, 자본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운동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민중이, 민중운동이 진지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아야 할 때다.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
1회(9. 9) - [취재]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
2회(9.16) - [기고/좌담]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
3회(9.23) - [기고/영상]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4회(10. 5) - [기고/취재]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한반도 전쟁 위기
5회(10.12) - [기고]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
6회(10.19) - [기고/취재] 아시아 황금시장 노리는 초국적자본
7회(10.26) - [기고/좌담]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1) : 의료,교육,스크린,방송,에너지 개방
8회(11. 2) - [기고/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2) :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의 횡포
9회(11. 9) - [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3) : 산업공동화, 한-일FTA, 기업도시
10회(11.16) - [대담] 자본의 세계화와 저항의 세계화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1)-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2>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반세계화운동 과제 제기

 

이정석 기자 
반세계화운동의 도화선, 씨애틀 전투

1999년 씨애틀 전투가 반세계화 운동의 도화선이었다는 데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은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각료회의가 5만의 반세계화 시위대에 가로막혀 개막식도 치르지 못하고 무산된 사건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전념하다시피 했던 한국 노동운동에 있어 씨애틀 전투 소식은 다소 먼 곳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시애틀전투는 미국노총 AFL-CIO의 대규모 동원으로 7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90년대 후반 MAI(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 실업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로마치, 유럽차원의 EU-G8 반대투쟁 등 지역별, 국가별 반세계화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이 투쟁들 모두는 시애틀 전투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주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애틀 전투에 대한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의 말이다.

“첫째, 국제기구와 협정에 맞선 직접행동과 국제적 조정과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각인시켰고,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에 맞선 20여 년 간의 수세적인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셋째, 전술적인 측면에서 각료회의장을 포위, 타격하여 각료회의를 실질적으로 저지시킴으로써 국제공동행동의 전형을 창출했다는 점 등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2001년 9.11 테러를 전후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든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은 반세계화 운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미국 내에서 IMF-세계은행 총회에 맞서려던 투쟁이 취소되었고,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 대응 투쟁은 상징적인 국제행동의 날 행사로 대신했다. 9.11 이후 벌어진 미국의 아프간 공습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자, 씨애틀 전투로 고양되어온 반세계화 운동이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낳았다.

반제국주의, 반전운동과 결합으로 확장

그러나 2002년 1월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제2차 세계사회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4월 바르셀로나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세계화 시위를 벌임으로써 반세계화 운동의 물꼬가 다시 트이기 시작했다. 이 즈음 반제국주의와 반전 운동을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제기되었고, 반전투쟁 역시 고양기를 맞았다. 영국 런던의 40만 반전시위가 이를 웅변한다. 이창근 국제부장은 이후 전개된 반전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애틀 투쟁 이후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투쟁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계기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3년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은 9.11사건으로 제공된 국제적인 공안국면을 공세적으로 극복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강화시킨 계기였죠. 즉 현재 무한전쟁은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자본의 공동관리, 공동지배를 위한 전쟁이고, 이는 이라크에 대한 침략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플랜콜롬비아 등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무력, 폭력 개입까지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2.15 국제반전행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에 있어서, 국제기구 및 협정에 대한 포위, 타격 투쟁을 반제, 반미 등 군사세계화 문제와 결합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열린 것은 2001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투기자본 거래에 대한 토빈세 신설을 목표로 유럽의 반지구화운동을 주도해온 프랑스 ATTAC(투자과세시민연합)과 진보적 신문 "르몽드 디를로마티크"의 제안으로, 지배엘리트가 주도하는 세계경제포럼에 대당하는 대안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다.

대안 토론의 장, 세계사회포럼

2001년 1차 포럼에는 12,000여명이 참석하였으나, 2002년에는 1차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123개국 공식대표단 12,000여명을 포함, 모두 6만명 규모가 포르투 알레그레로 결집했다.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공세와 전쟁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정치적으로 성공하였으며, 2003년 1월에 열린 3차대회에서는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을 결의하는 등 반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이 하나의 운동임을 확인하였다. 이창근 국제부장은 반세계화 운동의 발전을 위한 세계사회포럼의 과제를 짚었다.

“세계사회포럼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발전과 전망의 재구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결절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세계화의 상징적 의미를 넘어, 어떻게 운동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을 활성화시킬 것인가가 핵심적인 과제죠. 즉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미래를 위해서 현재 무엇인가를 변화시켜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은 국제적으로 '세계화가 대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대중화, 여론화시키는 데 성공한 지금의 국면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야 합니다. 반세계화 담론(안티 담론)을 극복하는 초창기의 유의미성을 넘어야 한다는 건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도전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는 강령인데, 워싱턴컨센서스에 대비되는 포르투알레그레컨센서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이는 세계사회포럼의 각종 워크숍 등에서 제기되는 내용들을 이론화 정치화시켜 지속적으로 논쟁하고, 업데이트 해나가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합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세계 사회운동세력의 민첩함과 유연함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소유 사상을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3년 1월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3차 세계사회포럼은 2002년 하반기 유럽 반전운동의 성과를 전지구적 투쟁으로 확장시켜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의 역사적 투쟁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3월의 이라크 침공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는 제국주의세력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정치적 성과를 통해, 전쟁세력들의 국내적 정치적 기반을 와해시켰다.

세계사회포럼에서 결의한 2.15국제반전공동행동

반전투쟁의 맥락에서만 보면 하반기 9.27, 10.25 등 국제반전투쟁이 반전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중요한 투쟁이었지만 2.15국제반전공동행동 당시 국면을 확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11월의 유럽사회포럼에서 제기된 2004년 3.20 국제반전투쟁, 제4차 세계사회포럼에서의 반전총회, 각 국에서 벌어진 파병 철군 투쟁과 9월 베이루트 반전 전략회의 개최 등 국제 반전운동의 명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 역시 지속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반WTO, 반FTAA 투쟁은 매우 큰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2003년 9월 WTO 칸쿤회의와 11월 마이애미 FTAA 회담은 모두 강력한 반세계화 투쟁에 막혀 결렬됐다. 2003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공세를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던 제국주의의 시도는 전세계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좌절된 것이다.

지난 2003년 9월의 칸쿤투쟁은 반세계화운동의 투쟁력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의 시애틀 전투를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WTO 체제 고유의 모순과 한국 농민 이경해 동지의 자결에 따른 투쟁 성과였다. 칸쿤투쟁 승리로 반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정치적 역량과 자신감을 갖추게 되었으며, 보다 정교한 전략과 동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역시 이창근 국제부장의 말이다.

“결국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운동은 시애틀 투쟁과 국제반전투쟁을 거치면서, 두 가지 측면의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는 국제적 동원전략과 일국적 동원전략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국제공동행동의 날은 국제주의적 시각의 형성과 확산,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투쟁의 집중점 형성 등에 있어서 그 유의미성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전술이 남발되고 일국적 동원전략과 결합되지 않으면 홍보용 이벤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국적 동원 전략, 일국적 수준의 운동주체 형성, 특히 대중조직과의 결합력 강화가 핵심적으로 요구됩니다. 두 번째로 대안세계화 운동의 내용적, 정치적 측면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어떻게 공동의 내용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차원에서의 핵심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 문제를 결합하고 공동 강령 및 내용을 합의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한국 반전, 반세계화운동, 세계 민중투쟁과 함께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 재편, 지역블록화와 자유무역협정의 확산, 다자협상의 연장과 세계적 수준의 축적위기의 심화 등으로 압축되는 오늘날 자본운동의 흐름은 반제,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필연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도 어느덧 세계 민중의 투쟁과 맥락을 같이 해나가고 있다. 특히 작년 교육개방 반대,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반대, 공공성 쟁취 투쟁과 반전투쟁의 형성 등 민중의 투쟁은 세계 반전, 반세계화 투쟁의 내용과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나아가 한-미 양자투자협정, 한-일, 한-싱가폴 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투쟁 등 신자유주의적 자본협정에 반대하는 투쟁 과제를 제기함으로써 본격적인 반세계화 운동을 열어가고 있다.

이창근 국제부장의 말대로 한국에서의 대중적 동원전략과 국제적 동원전략을 결합시켜가야 할 과제와, 반세계화의 정치적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과제를 동시에 풀어가야 할 시점을 경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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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9-13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시의적절한 기획이군요. 이 참에 공부 좀 합시다.
 


2004년 09월 10일 (금)
제 2653 호
발행처 : 인권운동사랑방

 

베슬란 학교 참사가 보여준 진실

인권·사회단체, "러시아의 체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원인"

천오백여 명의 생명들을 아비규환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어, 결국 천여 명의 사상자를 낳고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함의 기억을 집단적으로 간직하게 만든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화국 베슬란 학교 참사의 주범은 누구인가.

인권실천시민연대 등 19개 인권·사회단체는 9일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야만적 진압작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어린이와 여성들을 인질로 잡고 무력을 행사한 인질범들의 행동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 정부가 주도한 끔찍한 진압작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푸틴은 대규모 인명 피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에 임하지 않고 무력 진압을 택했다"며 "푸틴이야말로 진정한 테러리스트"라고 외쳤다. 더욱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는 기자들을 감금하는 등 언론통제를 통한 진상 은폐에 급급했고, 이번 무력 진압을 우발적인 것인 냥 위장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지난 2002년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에서 인질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도 실내에 독가스를 투여하는 진압 방법을 택해 백여 명의 관람객이 생명을 잃었다.

현재 이번 참상의 인질범으로는 체첸 반군이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다함께의 김인식 운영위원은 "러시아 정부가 서방지도자들의 묵인과 승인 아래 체첸을 잔혹하게 공격해 왔는데, 이 과정 중에 잉태된 비극의 씨앗에서 절망을 수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눈에 보이는 참사의 기저에는 러시아 정부의 체첸에 대한 오랜 탄압의 역사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체첸 공화국은 풍부한 석유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략적 요충지인 카프카스 산맥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체첸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석유 패권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무력 침공으로 대응했다.

두다예프가 체첸 공화국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94년 당시 두다예프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은 잠정평의회를 세워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를 빌미 삼아 러시아 정부는 체첸에 병력을 투입했고, 그 결과 3만 명이 넘는 어린이를 포함, 8만여 명의 체첸인이 학살당했고 25만 명이 집을 잃었다. 또한 99년 체첸 반군이 신생독립국 '체첸-다게스탄 공화국'의 건설을 공포하며 독립을 선언하자,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 지역에서 일어난 연이은 테러를 체첸반군의 행동으로 규정하며 체첸 반군 거점에 공중폭격을 가했다. 99년 2차 침공에서 역시 러시아 정부는 무자비한 처형과 강간을 자행하며 4만 명에 이르는 체첸인들을 죽였다. 김 운영위원은 "아름다웠던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의 침공 때문에 지형이 평평해졌을 정도"라며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탄압을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러시아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해 "러시아 정부는 체첸을 떠나고 체첸반군과 협상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미니 활동가는 "국적, 민족, 인종 등에 관계없이 인권을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국내 인권운동진영이 체첸이나 팔레스타인 등 전세계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땅에서 큰 참사가 터지고 나서야 한시적으로 연대를 표명한다"고 지적하며 "일상적인 연대"를 강조했다.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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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9-13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의 말이 따갑군요 ...
 


 

 
 
뇌과학의 태동, 밝혀지는 '마음'의 신비들
연구경향_뇌과학의 혁명(上)

2004년 09월 03일   이상훈 서울대 

약 70년 전 캐나다 몬트리얼에 있는 한 병원의 수술실. 당대의 노련한 뇌수술 전문의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는 두개골이 열려 뇌를 활짝 드러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간질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간질의 진원지를 찾아 뇌 표면의 이곳저곳을 전극으로 조심스레 찌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측두엽-관자놀이 쯤에 위치한 뇌의 한 영역-의 한 부위를 자극했을 때 갑자기 간질환자가 중얼거렸다. “난 지금 부엌에 앉아 있는데 내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 아이는 길가의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다녀 위험한 것 같아 걱정돼요.” 자신의 귀를 의심한 펜필드는 다시 한 번 똑같은 뇌 영역에 전류를 흘렸다. 놀랍게도 환자는 똑같은 경험을 보고했다. 마치 자동응답기의 단추를 누르듯 펜필드는 특정한 기억흔적을(engram) 지닌 뉴런들을 자극하여 생생한 기억을 불러낸 것이다.

마음의 자리는 뇌다

마음의 사건을 물리적으로 촉발한 펜필드의 실습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마음은 뇌의 활동”임을 강력하게 예시하고 있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명제는 최근에야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며, 그러기 위해 고단한 논쟁과 발견들의 축척을 거쳐야만 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을 영혼의 장소로 여겨 죽은 이의 심장을 미라로 만든 반면, 두개골 속의 뇌는 파내어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를 마음의 장소인 심장이 활동할 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일종의 냉각기라 생각했으며, 데까르뜨는 영혼은 물질로 환원될 수 없으며 松科腺(pineal gland)을 통해 물질적 육체와 교신한다고 보았다.


마음의 장소가 뇌라는 사실은 철학자들의 상상력과 논리학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었고 실험 현장에서 과학자들의 체계적 관찰을 통해 혹은 우연히 얻어 낸 발견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대한 ‘과학’이 시작된 시점은, 마음이 뇌라는 물질적 기반위에 존재하는 것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며, 이는 곧 근대 뇌과학의 출발인 셈이다.

“마음의 자리는 뇌다”라는 명제는 뇌과학의 시작일 뿐, 뇌과학의 목표라 할 마음과 행동의 물질적 기초를 밝히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력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매우 도전적인 작업이다. 뇌는 비전문가의 눈에 그저 1400cc의 크기와 1.4kg 정도의 무게를 지닌 주름지고 뚱뚱한 두부덩이 같아 보인다. 그러나 뇌에는 약 1010~13개의 뉴런들과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더 많은 수의 신경다발들이 있으며, 이들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분자생물학적, 화학적 환경에서 활동한다.

뇌의 뉴런들과 신경망들에서 벌어지는 전기화학적 활동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복잡하고 다양하기 이를데없는 마음과 행동의 측면들을 발생시키는가를 밝히는 것이 현대 뇌과학자들이 마주한 숙제다. 이러한 작업의 어려움은 우주의 물리적 기초를 푸는 숙제를 마주한 한 뛰어난 물리학자의 고백에 견줄 만 하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 질문인지 미리 알지 못한다. 해답에 다가갈 때까지 옳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겪는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이다.

마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다

이 도전적인 숙제에 응전하여 뇌과학자들은 지난 세기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고단한 여정을 걸어 왔다. 비록, 여전히 갈 길이 벅차긴 하지만 그간 이룬 성취도 결코 만만치 않다. 1889 년 가을, 도은법(silver impregnation)이란 예리한 칼로 무장한 검객, 카할(Cajal)은 독일 해부학회장의 연단에서 개별 신경세포들을 하나하나 도려내듯 떠낸 아름다운 그림들을 공개한다. 이 그림들로 그는 뇌가 연속적인 망상체가 아니라 서로 분리된 수많은 개개의 뉴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이고, 많은 동료 과학자들의 동의를 끌어내어 ‘뉴런 독트린(Neuron doctrine)’을 선포한다.

아드리언(Adrian)과 하트라인(Hartline) 등은 또 다른 뇌의 중요한 비밀을 밝혀서 뉴런 독트린을 강화시켰다. 뉴런들이 서로 대화할 때 모스와 같은 부호를 사용하는데, 이 부호는 局地的이며, 스스로 옮겨 다니기도 하고, 실무율적(all-or-none)인 일종의 전기적 교란으로 뇌의 모든 지역에서 통용된다는 것이었다.

‘뇌의 핵심 단위는 뉴런이며, 뉴런들은 만국공통의 부호로 대화한다’라는 단단한 패러다임을 확보하여 정상과학의 지위에 오른 뇌과학은 주로 감각뉴런들에 다양한 입력들을 제시해가며 이 부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허블(Hubel)과 비젤(Wiesel)에서 정점에 이른 이러한 관찰들은 하나의 뉴런이 매우 선택적 자극에만 반응을, 즉 신경부호들을 발생시킨다는 대단히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이를테면 고양이 시각피질의 한 뉴런에 전극을 내렸을 때, 망막의 아주 제한된 영역에 11시 방향으로 기울어진 막대가 오른쪽 위로 움직일 때만 그 뉴런이 맹렬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었다.

뇌과학의 후예들은 뇌가 수많은 영역들로 분화되어 있으며 각 영역마다 고유한 마음의 특정한 측면들만을 표상하거나 행동의 특정 측면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 왔다. 여러 형태의 감각입력 사건들을 등록하는 감각영역들, 펜필드가 예시한 것처럼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의 흔적을 지닌 기억과 체계적 지식을 담당하는 영역들, 감각영역의 출력과 기억/지식영역들의 출력을 결합하여 적응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과 관련된 영역들이 있으며, 이 모든 활동들에 따르기 마련인 정서적 반응과 관련된 영역들도 존재함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뇌에 마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다음 호에 계속>


 

연구경향: 뇌과학의 혁명(下)
세포들의 커뮤니케이션망 구축…인문학자들 관심 늘어

2004년 09월 10일   이상훈 서울대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마음과 행동의 다양한 측면들과 相關된 뉴런의 활동을 기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공격적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자연스런 마음이나 행동산출의 과정에 발생하는 신경부호들을 소극적으로 관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유기체의 마음이나 행동을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라는 것처럼.


스탠포드 대학의 뉴썸과 동료들은 MT라는 시각영역에서 특정한 방향의 움직임과 상관된 반응을 보인 뉴런들을 규정한 다음, 원숭이들이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있을 때 그 뉴런들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원숭이들은 자신들이 지각한 방향대로 보고하도록 잘 훈련됐었는데, 제시된 물체들이 물리적으로 특정 방향 없이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쪽 방향에 조율된 뉴런들을 전기적으로 자극했을 때 위쪽 방향의 움직임을 보았다고 보고하는 확률이 우연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온 것이다. 뇌의 활동을 교란하여 마음을 움직인 이 실험은 마음을 조작하는 인공보조장치 개발이 가능함을 시사하는 매우 의미심장한 시도이다.

뉴썸과 동료들이 뉴런의 활동을 조작하여 마음을 움직였다면, 마음과 상관된 뉴런의 활동을 읽어 행동으로 번역하는 연구들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칼 테크의 앤더슨과 동료들은 원숭이의 뇌에서 운동계획에 관여하는 여러 인지 영역 세포들의 부호들을 풀어내어 원숭이들의 선호도와 동기수준을 읽어 냈다. 또한 원숭이들의 운동계획을 읽어 내어 로봇 팔을 원숭이의 의사판단에 일치하도록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발전은 사고로 인해 척수가 손상되어 마비된 몸을 지녔으나 뇌의 인지기능은 여전히 건강한 많은 환자들에게 엄청난 희망을 제시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뇌과학 활동의 대부분은 뇌에 주어지는 입력과 가까운 쪽이나 뇌의 출력과 가까운 쪽의 뉴런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최근에는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매우 복잡한 문제해결이나 의사결정 과정의 신경적 기초를 이해하는데서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다.

뇌과학자들은 경제적 의사결정의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하며 해묵은 경제학의 딜레마에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뉴욕 대학의 글림셔는 원숭이들의 뇌에서 특정 뉴런들이 경제적 투자행동과 관련된 의사판단과 상관된 활동을 보인다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고하였다.

그의 실험에서 목마른 원숭이들은 매 번 도박-이것의 점잖은 혹은 합법적 표현은 주식투자이다-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예컨대 A란 선택지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쥬스 1000cc를 마실 수 있고, 뒷면이 나오면 쥬스를 아예 마시지 못하는 반면, B란 선택지는 동전 던지기 결과와 상관없이 500cc의 쥬스를 보장받는다.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두 선택지는 ‘기대값’의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기대효용'은 B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글림셔가 관찰한 뉴런의 활동수준은 도박에 열중한 원숭이들의 선택을 매우 정확하게 예언하며 기대효용의 수준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였다. 복잡한 수학으로 유도된 하나의 추상적 경제학 방정식의 해가 원숭이 뇌의 한 세포의 활동으로 번역된 것이다.

최근에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이라 불리는 뇌영상 기술을 통해 인간들의 뇌활동을 직접 측정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fMRI는 뉴런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측정하며 시공간의 해상도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뇌의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뉴런들의 활동을 모니터할 수 있으며, 원숭이와 인간의 뇌 활동을 직접 비교함으로써 과거 동물모델을 통해 축적된 단세포 측정법의 결과들을 인간의 뇌에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인간에게 특징적인 여러 고위 인지기능 및 정서, 사회적 적응기능의 신경적 기초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뇌과학 연구에 획을 긋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된 흐름은 전통적으로 뇌과학 영역의 바깥이라 여겨져 왔던 분야들이 하나 둘씩  뇌과학의 손길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껏 철학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의식’ 혹은 ‘자각’의 문제를 뇌과학자들이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공격하기 시작하여 이른바 ‘의식의 신경상관(NCC, 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이란 주제로 의식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소비활동에서 '상표 가치'의 신경적 기초를 밝히는 작업들을 중심으로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 혹은 넓은 의미로 뉴로이코노미(Neuroeconomy)란 분야가 생겼는가 하면, 두 사람 이상이 fMRI 스캐너에 동시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상호작용을 할 때의 뇌활동을 측정함으로써 사회적 능력의 신경적 기반을 탐구하는 소셜 뉴로사이언스(Social Neuroscience)등의 분야도 생겼다.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인문학자 또는 사회과학자들이 뇌과학 학회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뇌과학자들의 발견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와서 자신들이 축적해온 개념들의 외연도 넓히고 또한 미래 뇌과학 연구에 적절한 지침을 주기도 하여 매우 생산적인 학제간 상호작용이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뇌과학은 젊은 학문이다. 그리고 뇌과학이 마주한 엄청난 난이도와 방대한 양을 지닌 숙제들은 많은 과학자들의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다양한 종류의 과학자들을. 필자는 각 분야의 젊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하는 연구활동이 뇌과학의 질문들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여기길 바란다. 우리 뇌과학자들에겐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고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들이 산적해있지만, 우리는 즐거운 불평을 해대며 연구실로 달려간다. 마치 새로운 발견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잠 못 이룬 카할처럼.

국내의 뇌과학 관련서들
입문서부터 학제적 연구까지

2004년 09월 10일   최철규 기자 

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생명공학이나 나노 기술 등의 최첨단 과학뿐만 아니라 이공계 분야의 기초학문까지도 뇌과학으로 귀결되어 21세기는 뇌과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출판계에서도 뇌과학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뇌과학에 대한 기초 입문서 성격의 책부터 학제적 접근까지 제시하는 포괄적인 책까지 다양하다.


‘브레인 스토리’(수전 그린필드 지음, 지호 刊)는 영국의 BBC 방송이 2000년 제작해 국내에서도 방영됐던 동일명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것. 90년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축적된 뇌의 비밀을 폭넓고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뇌과학에 대한 기초 입문서로 적당하다.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코언이 쓴 ‘마음의 비밀’(문학동네 刊)은 뇌 혹은 마음의 비밀을 캐기 위한 두 유형의 집단의 성과를 정리하고 있다. 생리적 영역을 탐색하는 한편의 집단은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적 접근을 통해 마음이 거주하는 뇌의 비밀을 밝히려 하고, 다른 한편은 심리적인 영역에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통해 마음의 구조를 탐사하려는 것. 양 유형을 접목하여 뇌의 비밀을 밝히려는 저자의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신경과 교수인 리처드 레스탁이 쓴 ‘새로운 뇌’(휘슬러 刊)는 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뇌의 다양한 변화 양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고 두뇌 회전을 게을리 할수록 기억력이 저하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조건을 변경하면 기억력이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란 연령에 따라 퇴화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활발한 사고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며 거듭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음악을 통해 뇌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 등 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실용적 예도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뇌과학이 부딪힐 수 있는 윤리적 문제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한다.

‘뇌와 기억 그리고 신념의 형성’(다니엘 쉑터 지음, 시그마프레스 刊)은 하버드 대학의 ‘마음/두뇌/행동 이니시어티브(Initiative)’ 그룹이 펴낸 책이다. 신경생물학, 인지과학, 정신과학, 문학의 다양한 측면에서 기억, 뇌 그리고 신념의 복잡한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지식형태로서의 기억과 신념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과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별로 이뤄지는 전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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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1989년 이른바 '한겨레신문 방북 취재 기획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신 당시 리영희 한겨레 논설위원이 국가 권력의 대행기관인 검사의 신문에서 국가보안법의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조목조목 따진 글이다. 15년 전에 발표된 글이라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따지기 위해 조목조목 든 14가지가 지금의 싯점에서 보면 조금 상황이 변한 것도 없지 않으나 지금 보아도 보안법의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원문 그대로를 옮겨서 적어 본다.
이글은 리영희 교수가 펴낸 <자유인>아라는 책에 실려 있으며, 책 안에서의 작은 제목은 "객관적 진실과 법률적 허구"이다.


정확히 6개월 만에 '한겨레논단'에 돌아왔다. 그동안 뜨거운 격려와 사랑을 보내준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나는 옥중에서 확인한 감동적인 우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기자단 방북취재 기획 사건'은 수많은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의 전형이다. 그 핵심적 쟁점은 휴전선 이북에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의 '성격' 규정에 있다. 다른 모든 문제는 부차적일 뿐이다.

<한겨레신문>과 나에 대한 공소장 20매는 그 본문 첫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북한 공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다. 그 끝줄에서 <한겨레신문>은 "그런 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반국가단체'라는 성격 규정이 각기 상이한 내용의 모든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정부 쪽 주장의 논리적 대전제가 된다.

과연 정부의 그런 주장이 객관적 진실 검증을 견딜 수 있는 것인가? 혹시 한때 냉전시대의 맹목적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는 아닌지? 나는 국가를 대리한 '검사'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였다.(지면관계상 요점만 적어본다)

1)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는 38도선으로 분할됐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반국가단체'가 지배한다는 그 지역에 대해서 대한민국은 통치권을 행사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

2) 정부가 주장해온 이른바 '유일 합법정부론'의 근거인 유엔총회 결의 (제 195호의 제 2항, 1948.12.12)는 1948년 5월 선거(5.10선거)가 실제로 실시된 38도선 이남에 제한된 것이다.(담당 검사도 이 사실을 시인했다)

3) 한국전쟁 초반에 점령하에 놓인 38도선 이북 지역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유일 합법정부론'에 입각해서 대한민국 민정장관을 임명, 파견했다. 그러자 유엔은 그 지역 (38도선 이북지역, 즉 지금의 북한)이 대한민국 행정관할의 밖이라는 근거로 한국 정부의 결정을 취소시켰다.(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보고서
A / 1881, 1951년)

4) 대한민국 수립 뒤, 한국을 승인하고 수교하는 관계에 있어서 각국은 이 제한적인 결의를 '고려'하라는 유엔의 그 결의 제 9 항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

5) 북한을 '반란단체'라 하여 북한을 승인한 국가와는 수교하지 않고, 수교했다면 수교 단절을 고수하던 60년대의 원칙(이른바 할슈타인 원칙)은 이미 백지화된 지 오래다.

6) 그 결과로 대한민국은 현재(1988. 8. 10) 북한을 독립,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102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7) 박정희 군사정부의 '통일원칙에 관한 남북공동성명'(7.4 공동성명)은 최초의 사실적 승인이다.

8) 1980년 1월부터 추진 중인 '남북한 총리회담'은 그 명칭이 말하듯이 주권국가 정부간의 회담을 위한 것이지 '반란단체'와의 회담이 아니다. 반란단체'에 어찌 정부조직인 '총리'가 있을 수 있는가?

9) 전두환은 '남북 최고책임자회의'를 갖자고 '김일성 주석'에 거듭 제의했다.
대통령이 '주석'이라고 공식화 했는데 대통령을 따라 '주석' 용어를 쓰는 국민은 왜 처벌되어야 하는가?

10) 정부는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해 주권국가 만이 회원이 될 수 있는 "유엔에 함께 가입하자"고 독촉하고 있는데 이 모순을 국가보안법은 또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11) 행정부와 국회는 1985년부터 '남북 국회회담' 개최를 추진 중이다.
어째서 반란집단이 입법부인 '국회'를 가질 수 있는가?

12) 남북 정부는 지금 상대방의 정식 국호를 공문서에 사용하고 있다.
(나는 실제로 정부기구의 회의에 참석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으로부터 ' 대한민국 국무총리 강영훈 귀하'에게 방금 전달된 공식문서를 토대로 정책토론을 했었다.)

13)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주권국가 정부만'이 발급하는 북한의 여권사증(비자)을 받고 '반란집단'의 지역으로 '잠입' '탈출'하는 행위를 정부가 "승인"했다.

14) 대한민국이 국가적 운명을 의탁하고 있다는 '한미 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사실상' 휴전선 '이남'으로 규정하고 있다.(제 3조 및 종말부칙 '미합중국의 양해사항')

국가보안법이 대전제로 규정한 이북 지역은 과연 어떤 성격인가? 진실로 문제인 것은 오히려 보안법의 성격이 아닐까?
(1989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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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09-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명백한 사실들이네요

balmas 2004-09-13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선생의 대를 이을 만한 지식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
 

오늘(금요일) 낮에 일이 있어서 문학과지성사에 들렀는데, 마침 [테러 시대의 철학]을 한 권 줘서(공짜밝히기는 ... -_-;;;) 조금 읽어봤다. 생각대로 번역이 괜찮더군. 아직 책을 못본 분들을 위해 한 대목을 맛보기로 인용해 보면(저작권 시비에 말려들지는 않겠지???) ...

 

보라도리: 9.11은 대사건major event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우리 생애에서 목도하게 될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인상을 말이죠. 세계대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죠?

데리다: Le 11 septembre[이하 9.11]라고, 혹은 우리가 두 언어로 말하는 데 동의한 이상, "september 11"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나중에 우리는 이 같은 언어의 문제로 되돌아와야 할 겁니다. 또한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이 딱 날짜만을 말하는 이러한 명명 행위의 문제로도 되돌아와야 할 거구요--당신은 '9.11'이라 말하면서 이미 인용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닌가요? 이에 대해 제가 뭔가를 말하도록 권유하려고 당신은 지금까지 5주 동안 우리의 공적 공간과 사생활을 점령하고 있는 어떤 날짜 혹은 날짜 기입을 마치 따옴표 안에서인 듯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프랑스 숙어로 말하자면, 뭔가가 날짜를 만듭니다fait date. "날짜를 만들다, 획기적 사건이 되다", 이는 늘 두드러지게 각인되는 사건, 유일무이한 사건, 여기 식으로 말해, "전례 없는" 사건으로 느껴지는--외견상 직접적으로는 그런 사건으로 [인식된다기보다는] 최소한 느껴지는--무언가에 의해 가해진porte 일격이며, 이것이 남긴 효력portee 자체입니다.

물론 저는 "외견상 직접적"이라 말했습니다. 이 '느낌'이란 게 보기보다 덜 자생적이거든요. '느낌'이란 대부분 조종된 것이며, 짜맞춰진 건 아닐지라도 구성된 것, 어쨌든 경이적인 기술-사회-정치적 기계로 매개된 것, 매체화된 것입니다. 하여간 "획기적 사건이 된다는 것"은 '뭔가'가, 아직 어떻게 정체를 부여하고 규정하고 인지하고 분석해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부터 망각할 수 없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뭔가'가, 보편력calandrier universel의 공용 문서고에 남게 될 지워질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입니다. 물론 이는 가정상의 보편력인데, 왜냐하면 우리에겐 가정과 전제들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시작에서부터 강조하고 싶군요. 이러한 가정과 전제는 유치하고 독단적인 전략이거나, 아니면 심사숙고되고 조직되고 계산된 전략이거나, 그도 아니면 둘 다일 겁니다. 왜냐하면 이 날짜를 가리키는 색인, 날짜만을 부르는 수식 없는 벌거벗은 행위, 극소적 지시사, 이것이 겨냥하는 극소주의적 표적, 이는 또한 뭔가 다른 것을 표시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뭘까요? 그건 바로, 방금 일어난 이 '것', 이 가정상의 '사건'을 어떻게든 달리 명명할 수 있는 개념이나 의미가 없다는 사실, 바로 그겁니다. 가령, '국제 테러리즘'이라는 행위--우리는 이 문제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이는 우리가 말해보려는 어떤 것의 독특함을 파악케 하기에는 결코 엄밀하고 만족스러운 개념이 아닙니다. 뭔가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도래하는 걸 보지 못했다고 느끼지만, 이 '것'은 특정한 귀결들을 부인할 수 없도록 펼쳐냅니다. 그러나 이것 자체, 이 '사건'의 장소와 의미는 여전히 형언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개념 없는 직관처럼, 지평에 아무런 일반성을 지니지 않는, 심지어는 어떠한 지평도 수반하지 않는 유일무이함처럼, 이것은 언어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언어는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게 되고, 결국 어떤 날짜를 기계적으로 발음하는 것으로, 이 날짜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한정해버립니다. 일종의 제의적 주문처럼, 이와 동시에 축귀의 시처럼, 저널리스트적 연도(連禱)나 자신이 뭘 말하는지 모르고 있음을 자백하는 수사적 상투어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9.11, 9.11, 9.11이라고 말하거나 명명하면서도 그들 자신이 무엇을 말하거나 명명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호명이 간결한 건(9.11, 9.11) 단지 경제적 필요나 수사적 필요 때문만은 아닙니다. 환유--어떤 이름, 어떤 숫자--의 전보문은 사람들이 [그 사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거나 재인하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는 인지하지도 못한다는 것, 아직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 스스로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재인지함으로써 규정 불가능한 어떤 것을 털어놓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계산되었든 아니든, 잘 계산되었든 아니든) 9.11,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던 일이 가져온 최초의 효과, 논란의 여지 없는 최초의 효과입니다. 즉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합니다, 그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명명하고 있는 것이 무언지를 아주 잘 알지는 못하기에 오히려 더더욱 그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단번에 두 번의 푸닥거리를 하기나 하려는 듯, 곧 한편으로는 '사물' 자체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나 공포를, 주술적으로 몰아내기 위해서(반복은 늘 정신적 외상traumatisme을 중화시키고 무감각하게 하고 멀어지게 함으로써 [우리를] 보호해주는 효과를 낳으니까요. 텔레비전 이미지의 반복도 마찬가지 경우인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말하기로 하죠),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의 그 사물을 적절한 방식으로 명명하고 규정하고 사유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단순히 날짜를 지시하는 것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9.11, 뭔가 끔찍한 것이 일어났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을 가능한 한 이 같은 언어 행위 및 진술 행위 가까이서 부인하기 위해. 실상 우리가 폭력에 대해 아무리 분노한다 한들, 다른 모든 분과 더불어 저 역시 그렇듯, 숱한 사망자에 대해 진심으로 비탄해 마지않는다 한들, 문제가 되는 것이 결국 이런 거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는 나중에 이 문제로 되돌아올 겁니다. 당분간 우리는 다만 그것에 대해 뭔가 말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3주 동안 뉴욕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사실은 제가 9월 11일 날 머물렀던 중국에서, 그 다음 9월 22일 가 있었던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미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약간은 맹목적으로 이 날짜에 준거하지 않고서,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서, 아무 것으로나 말을 시작한다는 건 단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금지되어 있다고, 당신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이미 사람들은 느끼고 있으며 또한 당신에게도 그렇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특히 공개석상에서 말이죠. 저는 어김없이 이 명령에 따릅니다.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또한 어떤 의미에선 당신과의 이 우애로운 인터뷰에 참여함으로써 저는 또다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충격과 가장 충심 어린 연민을 넘어, 9.11, 여기 맨해튼의 코앞에 있고 워싱턴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제 막 일어난 일에 대해, 일어난 듯 보이는 일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기를, 그리고 "사유하기"를 호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름을 붙이고 날짜를 기입하는 이 같은 언어 현상을, (수사적이면서도 주술적이고 또한 시적인) 이 반복 강박을 신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늘 믿고 있습니다. 이 강박이 무엇을 의미하고 나타내고traduit 혹은 누설하는지trahir[이건 "기만하는지"나 "왜곡하는지"로 번역하는 게 낫지 않을까?---인용자]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는 성급한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하고 싶어하듯 언어 속에 빠져들어 감금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는 바로 언어 너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끝없이, 그리고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9.11, 9.11, 9.11, 9.11"이라 반복하도록 부추기는지를, 언어와 개념이 스스로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른바 사건이 가져온 이와 같은 일차적 효과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좀더 알려고 해야 합니다. 또한 여유를 가지고서 자유롭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결국 아직 알지 못하는데도, 그리고 당신이 부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는데도, '9.11' '9.11'이라 명명하라는, 반복하라는, 또다시 명명하라는, 그 자체 위협적인 이러한 명령. 도대체 어디서 이러한 명령이 우리에게 도래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명령에 강제될까요?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에게 이 위협적 지시를 내렸을까요?(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는 테러리스트가 명령한 건 아니더라도 그 자체가 테러를 가하는[공포에 몰아넣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당신 말에 동의합니다. 즉 의심의 여지없이 이 '것', '9.11'은 "우리에게 대사건major event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이 경우 인상이란 뭘까요? 사건이란 또 무엇입니까? 특히 '대사건'이란 무엇입니까?

당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저는 하나 이상의 주의 사항을 강조하려 합니다. 물론 경험주의를 넘어서기를 겨냥하면서도 저는 이를 외견상 '경험주의적' 스타일로 수행할 겁니다.  분명 18세기 경험주의자라면 문자 그대로 이렇게 말하겠죠. 거기 어떤 '인상'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이는 당신이 영어로--이는 우연이 아닙니다--'대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준 인상이라고. 저는 영어를 강조했는데, 물론 이는 영어가 당신의 언어도 저의 언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 뉴욕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반복하라는] 명령이 무엇보다도 영어가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지 미국의 거의 두 세기를 거치는 동안--정확히 말해 1812년 이래로--처음으로 제 국토에서 표적이 되고 습격당하고 침범당했다 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가 이 폭력의 표적이 되었다고 느끼는 세계 질서가 대부분 앵글로-아메리카 고유어idiome[이런 경우에는 "방언"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다-인용자]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계 질서에서 이 고유어는, 세계 무대를 지배하는 정치적 담론과, 국제법, 외교 관례, 미디어, 그리고 가장 거대한 기술과학적, 자본주의적, 군사적 권력과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죠. 그리고 지금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헤게모니가 지닌 여전히 수수께끼같으면서도 결정적인critical 본질입니다. 결정적인''이라는 말을 저는 '결정하는' '잠재적으로 결정하는' '결정을 내리는'의 의미로 사용하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공격에 노출되어 있으며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이 '인상'이 정당하든 아니든, 이 '인상' 자체가 하나의 사건입니다. 바로 이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확실히 분화된 방식으로 고유하게 세계적인 효과일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인상'은, 그것을 숙고하고 소통시키고 '세계화'한,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그것을 우선적으로 형성하고 산출하고 가능케 한 일체의 정서와 해석 및 수사법들과 떼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인상'은 그것을 산출한 "바로 그 사물 혹은 사태"와 닮게 되죠. 이른바  '사태'가 '인상'으로, 따라서 사건 자체가 '인상'으로 환원될 순 없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건은 (일어난 혹은 도래한) '사태' 자체와, 이른바 '사태' 자체가 부여하고 남겨두고 만들어낸 (그 자체 '자생적'이면서도 '조종된') 인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인상이 'informee[형식을 부여받는다/정보화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좀더 인용했으면 좋겠지만, 타자치기 싫어서(;;;), 사실은 저작권법에 저촉될까 두려워서(;;;) 이만 줄인다. 하지만 데리다의 전형적인 논변(또는 이 경우에는 즉흥적인 대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로 씌어졌을 경우에는 훨씬 더 다양한 수사법적 장치가 동원되고 논변의 가닥이 좀더 복합적이겠지만, 인용한 이 구절만으로도 데리다 특유의 논변을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논변과정에서 중요한 한 문장이나 한 문단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하면, 그만큼 데리다의 논변의 의미, 그것이 낳는 의미효과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는데, [시선의 권리]를 포함한 많은 국역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번역된 문장들, 문단을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러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데리다의 난해함의 8할은 바로 이런 오역 때문에 생겨나는 난해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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