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프랑스 책을 싸게 구하는 노하우를 질문하셨는데, ㅎㅎ
이렇게 좋은 정보를 공짜로 얻으려고 하시다니요???^^

제가 프랑스 책을 구입할 때 자주 이용하던 서점은
"Furet du Nord"라는 프랑스 릴(Lille)시의 서점에서 개설한 인터넷 서점으로,
주소는 www.furet.lalibrairie.com입니다.
이 서점은 다른 프랑스 인터넷 서점들과 달리 배송료가 10유로(원화로 하면 14,000원 가량)로 정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권을 주문하든 백권을 주문하든 똑같이 10유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책을 매달 여러권씩 사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리하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제는 이 서점을 이용하기가 좀 어려울 듯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존 같은 데 책을 주문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주문과정 및 결제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서점의 주문시스템, 특히 결제 시스템은 문제가 많아서 에러가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문제는 국가를 입력할 때 아무리 "남한Coree du Sud"라고 입력해도, 서점측에서 받아볼 때는 "France"라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국가주소가 잘못 나오게 되면, 주문한 책이 무사히 모두 입고되어 결제를 마치고 발송을 해도, 당연히 결국 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주문은 취소가 됩니다.

그러면 원래 주문했던 금액은 이미 카드결제가 다 끝난 상태여서, 최상의 경우 다음달에 카드로 다시 상환되거나, 아니면 나쁜 경우에는 프랑스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가 집으로 날아옵니다. 이렇게 수표가 오면 현금으로 바꾸는 절차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은행 수수료를 별도로 물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지요. 제가 이 서점과 거래한지가 벌써 5년 정도 되는데, 이전에 몇번 이런 문제가 있어서 석달만에 주문한 책이 도착하는 경우들도 있었고, 수표를 받은 적도 몇번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해 벌써 이메일로 여러번 지적을 했고, 전화도 한번 한 적이 있는데, 전혀 시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얼마전에는 그 서점에서 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이 서점과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서점에서 몇 번 주문해보려고 했던 다른 후배들은 위에서 말한 국가입력의 문제점 때문에 계속 주문취소가 돼서, 결국 책을 주문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책을 구입하는 최선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듯합니다. 첫째는 영우무역(http://www.book24.co.kr)이라는 회사를 통해 구입하는 방법입니다. 이 회사는 프랑스와 독일 서적을 전문 수입해서 판매하는 회사인데, 개인 주문도 수시로 받고 있습니다. 한 권이든 열권이든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는데, 다만 1유로당 환율을 정상적인 경우보다 10-20% 정도 더 받는 것으로 알고 있고, 배송료는 3천원 정도 되는 것 같더군요. 기간은 4-6주 정도 걸리고, 구하기 힘든 책은 2달 정도 지나야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고판 책 같은 경우는 이 회사를 통해 구입하는 게 아마존 프랑스 등을 통해 구입하는 것보다 더 싼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아마존 프랑스를 통해 구입하는 방법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마존 프랑스는 기본 배송료 외에 권당 배송료를 받지만, 대신 모든 책을 10% 할인해주지요. 그래서 좀 가격이 비싼 책들은 아마존 프랑스를 통해 구입하면, 상대적으로 배송료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몇 군데 서점들이 더 있는데, 다 비슷비슷한 배송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프랑스인들의 불친절 때문에 불쾌감을 덜 가질 수 있는 아마존 프랑스를 선택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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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보안법 폐지는 '보수'의 과제다

[손석춘 칼럼] 진보-보수 대결로 호도말라

 

국가보안법. 보수와 진보의 '한 판'이란다. 부자신문의 부추김이다. 심지어 학자라는 자들까지 거든다. 폐지 주장을 빨갛게 물들이는 작태를 서슴지 않는다. 윤똑똑이들은 부르댄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정반대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없애야 옳다. 누가 뭐래도 민주주의란 사회 구성원들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밑절미를 둔 까닭이다. 표현의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조차 없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진보의 과제가 아니다. 보수세력이 나서야 마땅한 숙제이다.

더러는 남북대치 상황을 든다. 하지만 그 또한 억지다.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적 법조인들이 존경하는 초대 대법원장이 있다. 누구인가. 가인 김병로. 그는 한민당 창당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누구도 그를 진보로 분류하지 않는다. 가인은 1953년 4월에 형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초안을 내놓으며 말했다.

"특수한 법률로 국가보안법 혹은 비상조치법, 이러한 것이 국회에서 임시로 제정하신 줄 안다. 지금 와서는 그러한 다기다난 한 것을 다 없애고 이 형법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의 목적을 달할 수가 있겠다는 고려를 해보았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이 형법과 대조해 검토해 볼 때 형에 가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이 형법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는가 하는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

가인의 생각은 분명했다. 실제로 형법 여러 조문에 내란죄와 외환죄, 공안을 해하는 죄를 포괄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살아남았다. 그 명분도 차라리 순진했다. "전시의 치안 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이었다.

그랬다. 보수주의자 가인 김병로의 발언이 나온 것은 '전쟁 상황'(1953년 4월)에서다.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이 지점이다. 가인. 그가 진보인가. 더구나 지금이 과연 '전시'인가. 가인이 살았던 시대와 전혀 다르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마치 나라가 결딴날 듯 떠드는 자들이 있다. 저들이 반세기 넘도록 초·중등 교육에 신문과 방송으로 '세뇌'한 결과 적잖은 구성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여론 조작'에 나선 부라퀴들에게 찬찬히 들려주자. 그것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요, 민주시민에 대한 모욕이다.

더러는 '민주주의론'으로 밀리는 탓인지 '시장 경제론'까지 들먹인다. 이 또한 희극이다. 시장경제의 논리를 존중한다면, 당연히 사상도 시장에 맡겨야 하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법만이 아니다. '사상의 시장'을 제한하는 법이다. 그래서다. 과연 이 땅에 참다운 보수는 있는가. 거듭 묻고 싶은 까닭은.

물론 이 땅의 보수세력을 애도하며 이미 장송가('한국보수주의의 장송곡' 2004년 1월 14일)를 불렀기에 부질없는 질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회' 아닌가. 가인 김병로에서 끊어진 보수세력이 부활을 선언할 수 있는.

그래서다. 저질연극판을 벌이는 수구정당의 정치모리배들이나 수구언론인, 그리고 그들에 부닐고 있는 '먹물'들은 그렇다고 치자.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개정론과 대체입법론 따위가 흘러나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들이 국가보안법 논쟁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몰아가는 깜냥은 무엇일까. 케케묵은 악령을 내세워 기득권을 '사수'하고 싶어서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빨갛게 색깔을 덧칠할 속셈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국가보안법은 더더욱 폐지해야 옳다. 정권은 물론이고 국회에 과반의석을 지니고도 그 '보수의 숙제'조차 풀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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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노무현 퇴진 논쟁'의 진실을 왜곡말라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의 '김태경 반론'에 대한 재반론]

  2004-08-30 오후 12:04:48

 

파병반대국민행동 정책사업담당 기획위원인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24일 프레시안에 오마이뉴스 김태경기자가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기고한 글 '노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에 대한 반론을 보내와, 이를 전제했었다.

  30일 이같은 이태호 실장의 반론에 대해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이자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운영위원인 박준도 처장이 재반박문을 보내왔다. 이태호 실장이 당시 치열하게 전개됐던 논쟁과정을 자의적으로 잘못 전달하고 있다는 반론이었다.
  
  이에 본지는 박준도 처장의 반론을 실으며,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의 재반론이 있을 경우 이를 실을 것을 약속한다. 편집자주.
  


  '노무현 퇴진 논쟁'의 진실을 왜곡말라
  

  김태경 기자의 글을 “Pressian"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난 그가 상황을 상당히 예리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자로서 의문을 품을 만한 것들,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시민단체의 이중적인 태도를 문제 삼았고, 이때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응이 어떨지 몹시 궁금했었다. 그러던 차에 “Pressian"과 “OhmyNews”에 실려 있는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이하 이태호 실장)의 반박 글을 보았다. 그의 글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너무도 실망했다. 그는 김태경 기자의 논지가 무엇인지,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반박해놓고는 되려 김태경 기자에게 ‘근거있는 비판’을 요구했다. 회의에 참여할 수 없었던 독자들을 상대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장마저 임의대로 재구성해서 자신의 논거로 삼았다. 뭐가 그의 논거인지 도무지 알 길 없는 이 글에서 유일한 근거라고는 다른 민중운동단체들도 노무현 퇴진 주장에 반대했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비판하려거든 그들도 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뿐이다.
  
  그런데, 내 보기에는 이마저도 반론으로 쳐주기에는 한심스럽다. 이는 김태경 기자는 시민단체를 비판한 것이지 파병반대 국민행동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몇몇 ‘민중운동진영 단체’를 비판하려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김태경 기자가 무엇을 썼는지조차 모르고 반론을 쓴 셈이다. 따라서, ‘근거있는’ 반론 요구는 내 보기에 오히려 김태경 기자의 몫이고, 글쓰기를 가르쳐야 할 선생 역시 김태경 기자의 몫이다. 김태경 기자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박 글이 유효하려면, 적어도 다음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이번 파병반대운동에서 자신의 주장이 노무현 비판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적절하고 핵심적이었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현 시기 노무현 비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논증하는 것, 이 둘 중 하나 말이다.
  
  나는 이태호 실장의 글이 시민단체의 입장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노무현 퇴진’에 대한 모두의 입장을 애매하게 서술하거나 뭉뚱그려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서로 입장차이가 무엇인지, 무엇을 가지고 논쟁을 했는지를 애매하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을 훼손해 놓은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렇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논쟁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논쟁해야 하는지 서로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나는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소모적이었고 쓸모없었다는 것, 이것이다. 이태호 실장이 정확히 이 효과를 노리고 썼는지 알 길은 없지만, 나는 파병반대운동에서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의 성과가 이렇게 유실되는 것은 불가하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파병반대운동이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맞서는 유력한 운동으로, 전 세계 민중의 평화를 향한 의지를 스스로 담으려는 운동으로 성장하려거든 이 논쟁의 의미를 정확히 재확인해야 한다. 분명히 전개된 논쟁은 운동 자체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민단체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우리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기억나는 대로 상세히 남겨 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노무현 비판이 파병반대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하여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좀더 정확히 주장하고자 한다.
  
  1. 파병반대 국민행동에서 ‘노무현 규탄’을 둘러싼 논쟁
  
  이태호 실장은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김태경 기자 말대로 파병반대 국민행동이 ‘대통령 책임’ 기조를 잡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김선일 사망 직후 추모제를 앞두고 진행된 첫 운영위에서 민중운동의 상당수 단체들이 대중의 분노가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참여연대의 참석자는 ‘추모기조’를 강조했고, 민언련 참석자는 노무현 지지자들을 참석하게 하기 위해라도 아예 ‘노무현 비판’을 자제하고 문제의 근원인 ‘미국’에만 비판의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했다. 6월 26일 대회기조는 ‘이라크파병철회, 피랍상황은폐 진상규명, 미국 파병압력 규탄’이자 동시에 추모기조로 치르기로 했다.
  
  잘 아는 것처럼 이날 집회에 대한 평가는 서로 극단을 달렸다. 한 극단에는 "추모와 읍소로 될 일이 아니며 노무현이 이 사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그제야 파병이 철회된다"는 주장이 있었다면, 또 다른 한 극단에는 "한나라당·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대한 야유는 불공평한 것이며 노무현을 향한 정치적 비판이 너무 극단적이거나 노골적이면 평화적 감수성에도 어긋나고, 일부 참석자들의 경우 그 말에 놀라 파병철회 집회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파병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퇴진당할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한 청소년과 노무현 퇴진을 주장한 인쇄 노동자의 발언을 놓고 "민중운동진영이 사전에 조직한 것 아니냐"며 그 자리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참여연대 관계자였고, 앞서 의견은 운영위 회의에서 여성단체연합의 참석자가 제기한 것이다.
  
  공개된 비상시국회의 자리에서 노무현 퇴진론자로 알려진 한 참석자가 현 시기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정치적 목표에 대해 토론하자고 할 때, "이 자리는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주요 방침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이를 제지한 것도 참여연대 관계자였고, 노무현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언급이 교묘히 빠져있는 ‘대국민호소문’에 격분한 참가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려 했을 때도, 참여연대 관계자는 "채택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만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물론 이태호 실장은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제안하였지만, 격앙된 상황에서 아무도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 문제없는 훌륭한 호소문"이라는 참여연대 대표의 압박이 있었음에도 끝내 이 호소문은 채택되지 않았다.
  
  당일 열린 운영위에서 민중운동 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은 대중의 분노가 있고, 분노의 대상이 노무현을 향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 기조는 적어도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그에 따라 “파병철회. 진상규명, 대통령사죄(대통령책임), 미국규탄, 점령반대”라는 5개 기조가 확정되었다. 또, 이제까지 집회와 달리 7월 3일 집회만큼은 대중의 분노를 모으고 노무현과 미국을 규탄하는 집회로 진행하자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제출한 기획안은 여전히 변함없는 추모대회 안이었다. (이 기획안에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퇴진’입장에 가까운 만큼 OOO 신부의 정치발언 섭외는 재론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모양은 ‘추모대회’ 였지만, 정치적 의도만큼은 분명히 반영된 기획안인 셈이다. ) 급하게 기조를 바꾸어 보려했지만 시간제약이 있었다. 이 와중에 장소조차 긴급하게 변경되고 행진 계획마저 재론되는 등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비마저 내려 더더욱 초라해진 7월 3일 집회는 집회참석자들과 진행자들 사이의 불신과 대립이 극단적으로까지 전개되고 말았는데 전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라고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7월 14일 운영위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는 "집회참석자들이 ‘노무현 퇴진’ 집회에 나왔는지, ‘파병철회’ 집회에 나왔는지 혼란스러워 한다"며 "파병반대운동은 열린 우리당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파병반대운동의 다수화를 위해서는 파병철회만을 주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 제기했다. 또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투쟁 기조 자체를 문제 삼고는 "파병반대 국민행동이 노무현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미국문제는 부차화되고 있으며, 민중운동의 고착화된 집회운영이 대중의 집회참석을 가로막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제 더 이상 광범위한 대중이 운집하는 집회는 곤란할 것이고, 결사투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주장한 뒤, "김선일 피랍 은폐 의혹에 대한 국회 청문회와 국정감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이를 소홀히 하면 국회의원 소환운동(노무현이 아니라 국회의원 소환)을 전개하자"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역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대중들이 폭넓게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노무현의 ‘보복’ 선동에 밀렸기 때문이지 반대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파병을 강행한 실질적 주체는 미국도 한나라당도 아니라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라는 주장,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공동전선"이라는 주장들이 반론으로 제기되었다.
  
  '노무현 퇴진’ 주장이 자꾸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부터는 더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시민단체과 민중단체 사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중운동 단체들 사이에서도 격렬했다. 일체의 ‘퇴진’ 주장은 불가하다는 의견에서 완전히 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이견은 좁혀질 여지가 없었다. 참여연대 회의 참석자는 "‘퇴진’ 주장을 외치고 선전선동하는 사람들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집회가 계속 이렇게 진행될 경우 결국에는 파병반대국민행동 명의의 집회 개최 자체가 제한하게 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이 날 이후 관련 논쟁은 상반기 파병반대투쟁 평가토론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주고받은 것 말고는 더 이상 전개되지 않았다.
  
  나 역시 대통령 사죄와 대통령 책임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상에서 보듯 김태경 기자의 글에 인용되어 있는 오창익 사무국장 말대로 ‘대통령 사죄(책임)’, '규탄‘기조를 확정하는 데만도, 그리고 그 기조에 따라 집행을 하는데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노무현’이 져야 한다는 주장 자체였고, 이 목소리를 가장 높인 것은 ‘퇴진’이라는 구호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하려 했던 이들이었다. 또, 보는 바와 같이 여기에 이러 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이견을 제시했던 그룹은 이른바 ‘이름 있는’ 시민단체였다. 그럼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 혹은 노무현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진실로 어떠했는가? 어떤 맥락에서 진행되었는가? 이를 좀 더 살펴보자.
  
  2.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
  
  노무현 비판에 머뭇거렸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단체는 민언련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민언련은 회의 자리에서 "(전술적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노무현 비판은 자제하고, 모든 것의 원흉인 미국을 규탄함으로써 아예 우회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최민희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김선일 사망 이후 피랍과정에 대한 의혹이 한참 막 제기되던 시절에 당당히 노무현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집회 발언 취지를 뒷받침하는 인터뷰(『시민의 신문』, 6월 29일자)에서 최민희 사무총장은 "노무현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근거도 없고 몰랐었던 것 같다"며 외교부와 개혁세력의 갈등문제를 제기하면서 "(노무현과 개혁세력도 일부 책임이 있긴 하지만) 도리어 수구친미세력의 무능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AP통신과 미국이 사전에 인지하고도, 동양인이라고 우습게보았거나 김선일의 반미발언 때문에 고의로 안 알려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AP통신과 미국책임론을 강하게 부각했다.
  
  최민희 총장은 또한 자신이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을 많이 비판한 것은 사실 열린우리당이 파병철회나 미국문제, 국가적 자존심 문제에 무엇인가 노력할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열린 우리당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노무현 퇴진 주장이 잘못된 것은 파병철회 집회에 참석하는 다수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노무현 퇴진 이후 ‘로드맵’도 안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파병철회집회에 200~300만이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며 그러기 위해서는 파병철회 여론의 다수로 추측되는 노무현 지지자들을 여기에 참석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7월16일 운영위에서 여성단체연합 회의 참석자는 "오늘 노무현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노무현 정부 내 우파(특히, 국방외교통상 라인)들의 입김이 강해서 나타난 결과"고, 따라서 "노무현 정부 내 좌파가 주도하는 개혁에 힘을 실으면서 파병반대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참석자 또한 노무현 퇴진 이후 ‘로드맵’을 걱정하였는데, 1987년 당시에는 그래도 진보야당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퇴진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퇴진’주장에 강한 의문을 표명했다.
  
  그럼, 참여연대는 어땠을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참여연대가 당당히 내놓는 근거가 있는데, 바로, “정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질 경우, 노무현 정권의 진퇴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참여연대 관계자의 한겨레신문 인터뷰다. 이 인터뷰 하나로 참여연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교적 언변에 능숙한 참여연대가 이 말의 진의를 모를 리 없는데, 이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기 때문이다.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지면 제아무리 ‘노사모’인들 등 돌릴 수밖에 없다. 친 노무현 경향의 언론이라 할지라도 게이트 사건이 터졌다며 난리를 칠 것이고, 지배세력은 이를 수습하기위해서라도 노무현에게 스스로 하야할 것을 권고할 것이다. 이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점에서 아무 말도 안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동시에 이 말은 김선일의 죽음에도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의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김선일의 사망 자체에 대한 노무현의 책임도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은폐의혹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고, 김선일을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한 노무현의 가장 핵심적인 과오 즉, 피랍에도 불구하고 파병강행방침 자체는 문제 삼으며 진퇴를 거론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선일 사망 직후 참여연대가 제출한 성명서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을 제안한 단체라는 명성에 걸맞게 썼는지 의문이 들만큼 점잖게 썼다. 이 성명서는 김선일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은 파병 전면 ‘재검토’라는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했다. ‘파병 철회’도 아니고 ‘파병 재검토’다(파병반대 국민행동의 공식입장은 무조건 ‘파병 철회’다. 단, 대 국회사업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재검토’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내의 미묘한 갈등을 강조하며, 당면목표(파병철회) 달성을 위한 상당한 정치 테크닉을 강조하는 단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김선일씨 피랍 직후 상황도 아니고, 주검이 되어 돌아오게 된 마당에 대국회사업에서나 구사해야 할 세련된 언사를 구사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이툰 선발대가 떠난 직후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안국동의 창’이라는 코너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정녕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 도착적 수구세력과 한 패가 되고 말 것이냐며 개탄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끝끝내 그는 제 국민 안위 하나 못 지키면서도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가정이라곤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역으로 파병을 강행한 대통령이 이회창이라고 가정하자. 참여연대가 개탄의 목소리나 내며 이런 한가로운 소리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있듯 아마 정면으로(!) 비판했을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에 대한 참여연대의 정치적 태도고 이중 잣대다.
  
  이 모든 것 역시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이며, 시민단체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입장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다고 강변한다면, 한마디만 덧붙이겠다. 비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정면 비판이 있고, 애정 어린 비판이 있다. 자, 시민단체의 노무현 비판은 이중 무엇인가? 무엇으로 보이는가? “우연의 일치겠지만, 노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데 머뭇거렸다고 알려진 곳은 ‘주류’ 또는 ‘이름 있는’ 시민단체가 많았다”는 김태경 기자의 주장은 여전히 근거 없는 주장인가? 김태경 기자가 가장 문제 삼은 대목은 시민단체가 퇴진주장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속에서 드러난 시민단체의 입장에 비추어봤을 때 시민단체가 노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데 머뭇거렸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초점은 이것이다.
  
  3. 노무현 퇴진 주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진실
  
  김선일의 죽음은 이라크 파병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언제든지 전쟁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오늘날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폭력의 연장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 마저 일깨워주었다. 김선일이 억류된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파병강행한 것을 보며, 우리는 노무현이 마지못해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사활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바로 노무현이 이 참혹한 전쟁터에 우리를 내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퇴진 주장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의 배출이건, 선전 슬로에 불과하건, 전술·전략적 주장이건 간에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주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구호 자체, 이런 주장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왜인가? 굉장히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있는 연대체내에서 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매번 논란이 되는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노무현 ‘퇴진’ 주장 자체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매번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대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대부분이 시민단체 관계자였고, 노무현 비판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들로서는 이런 주장 자체가 집회장에서 오고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 중 몇몇은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에 대한 대중의 즉석 야유를 민주노동당 관계자가 선동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 자유발언대에서 터져 나온 퇴진주장을 보면서는 지금 촛불집회 자유발언은 자유발언을 가장한 특정정치집단의 정치발언이라며 (내 보기에 촛불집회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자유발언 자체를 도매 급으로 매도했다. 대중은 다 안다며 선동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라며 강변하는 이들이 대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파병을 철회해주세요’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중이고, 열린 우리당·한나라당·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야유하고, ‘몽둥이로 때려 청와대에서 내쫒아 버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는 말뜻인가? 아니면, 대중이 열린 우리당에 야유하고 노무현 퇴진과 같은 고강도 정치발언을 할 리가 없다는 뜻인가? 왜 대중과 활동가들을 무 가르듯 확실히 나누려 하는가? 집회 참석 대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앞서 본 대로 실상은 대중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던 것이다.
  
  이 때 벌어진 논쟁의 축은 다음과 같다. 시민단체는 ‘파병반대운동은 열린 우리당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수화 전략을 위해서 파병철회만을 주장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되풀이해서 제기해 왔고,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힘, 다함께,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학생연대회의 등은 ‘파병강행의 모든 정치적 책임은 노무현이 져야 하며, 노무현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이 파병반대운동의 숨통을 틔게 할 것’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것은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 차이’이기도 하다. 이것이 ‘퇴진’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의 진실이다. 따라서, ‘퇴진’ 주장을 둘러싼 토론의 가장 기본적인 배경은 무엇보다도 김태경 기자가 지적한 대로 “이라크 파병의 이유, 노 정권의 성격, 시민단체와 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시각차”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논의가 격렬했던 것은 시각차가 얼마나 큰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여기서 잠깐 논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본대로 ‘퇴진’ 주장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토론을 벌일 때마다 이 주장과 슬로에 대해 시비를 가리자며 논쟁을 제기한 이들은 거의 대부분 시민단체 관계자였다. 여기에 맞서서 ‘노무현 퇴진’ 주장과 목소리를 옹호하려 했던 이들은 (김태경 기자의 표현을 따르면) 이른바 ‘좌파’ 진영이다. 한편, 이 토론이 전개될 때 온전한 형태로 이와 관련되어서만 진행된 적은 없었는데, ‘지도부 비판’, ‘집회 문화’, ‘연대의 기술과 원칙’, ‘발언/토론과 선전의 자유’, ‘행동의 통일’ 등등이 혼재되면서 진행되었고, 그러다보니 논의 자체가 쉽게 격렬해졌다. 이러다보니, ‘구호와 행동의 통일’을 요구하는 한편으로는 ‘노무현 퇴진’ 슬로의 선전/주장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때마다 ‘노무현 퇴진’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들은 단호히 이를 비판해 왔다. 그것이 대중의 발언을 옹호하는 차원이든, 행동의 통일과 토론/선전의 자유를 옹호하는 차원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제기했던 유일한 단체인 사회진보연대가 노무현 퇴진이 공통의 구호가 될 수 없는 조건과 정세에 공감했다”며 사회진보연대가 노무현 퇴진 입장을 철회하거나 파병반대 국민행동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후퇴했다는 듯, 혹은 참여연대와 입장을 같이했다는 듯 기술한 것은 사회진보연대의 의견을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물론이거니와 퇴진입장에 동의하는 다른 단체들은 ‘퇴진’주장이 제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음에도 “회의장에서 동의해놓고는 집회장에서는 잘 지켜 지지 않았다”면서 노무현 퇴진 주장을 하는 단체들과 개인이 신의가 없는 정치세력처럼 서술한 것이라든지, 참여연대 스스로 노무현 퇴진 주장에 관한한 늘 논쟁과 견제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면서도 “해프닝성 사건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으로 노무현 퇴진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며 논쟁 자체를 폄하하려 한 것, 그것도 모자라 “이 논쟁은 주로 민중연대 소속단체들 간에 이루어졌다”며 참여연대는 물론이거니와 시민단체는 논쟁의 구도에서 제외해 버린 것, 거기에 더해 ‘그래서 해프닝’이라고 친절하게 해설까지 첨가한 것은 맥락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노무현 ‘퇴진’ 주장을 둘러싸고 참여연대가 취했던 입장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퇴진’ 주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자신과 유사한 입장이건 다른 입장이건 적당히 물타기해서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흐리게 하면 서로 오해만 증폭될 뿐이다. 논쟁을 하건 토론을 하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서로 오해도 없이 정확히 토론을 할 수 있고,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태호 실장의 전언대로 상당수 민중운동 단체들이 ‘퇴진’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긴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은 내가 결론에서 주장할 ‘지금 파병반대운동에 필요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도부 비판’, ‘집회 문화’, ‘연대의 기술과 원칙’, ‘발언·토론과 선전의 자유’, ‘행동의 통일’ 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제기된 만큼 이에 대한 서술도 필요하겠지만, 이 문제는 이 글이 다루어야 할 범위를 넘는다.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퇴진’ 주장에 반대한 상당수 민중운동 단체들이 이태호 실장에게는 글의 논지와 관계없이 매번 함께 걸고 넘어갈 수 있는 손쉽게 물타기 할 대상으로 밖에 안 보이는지, 이 점 몹시 못마땅했다는 점만큼은 밝혀 두고자 한다. 동지에 대한 비판을 냉혹하게 수행할 지언 정, 자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남에게도 돌리며 자신도 무마하려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4. 지금 파병반대운동에 필요한 것
  
  참여연대를 위시하여 시민단체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파병반대운동의 다수화 전략 즉,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 지지자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다. 상식적인 이야기라도 필요하면 반복해야 한다. 파병을 강행하고 파병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데 총력을 기울인 인물과 정당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다. 김선일 사망 이후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파병을 철회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보복’을 선동한 사람은 노무현이었고, 파병강행을 주장하며 테러방지법을 운운하기 시작한 의원이 속한 정당도 열린우리당이었다. 당내 파병을 철회시켜야겠다는 의견을 관철시키기는커녕 당 지도부 비판에도 소극적이고, 긴급할 때는 파병강행입장으로 바뀌는 국회의원들이 속한 정당도 열린우리당이다.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선일 피살 이후 파병결정과정에서 노무현이 감내해야 했을 ‘고충’을 이해하자는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때, 그들은 파병철회보다는 노무현 지지를 선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들에 기반을 두어야 200~300만의 시위대가 모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수도행정 이전에 대한 반대마저 자신에 대한 퇴진요구라 강변하는 노무현대통령을 두고,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200~300만의 숫자를 헤아리는 거리의 군중이 되어 파병철회를 주장할 것이라고 보는가? 단언컨대 절대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200~300만이 모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중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다. 대중에게 패배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거짓말이고, 불가능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200~300만의 시위대는 노무현 지지자 몇 십만과 민주노동당 지지자 몇 십만이 합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 조합원 몇 십만과 전농 농민회원 몇 십만이 합해진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대중의 자발적인 대규모 군중 시위는 이 집단과 저 집단을 단순히 더해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각성에 따른 결과다. 열린우리당 지지자인 너도 나오고 민주노동당 지지자인 나도 나와서 200~300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투표를 했건,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했건, 심지어 한나라당에 투표를 했건 아예 관계없이) 너도 각성하고, 나도 각성해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시위 군중 200~300만이 되는 것이다. 너도 정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정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때, 200~300만이 되는 것이다. 200~300만이 벌이는 파병철회 시위를 꿈꾸고자 한다면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철회해줄 것이라는 미련을 떨쳐버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정치의 주인이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에 분노하여 노무현에게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 오직 그 길 뿐이다. 노무현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이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민중들의 연대의식과 함께 터져 나와야 그제야 가능하단 뜻이다.
  
  그렇다면, 왜 ‘정치적 각성’인가? 나는 다른 글 {박준도, 「노무현도 '엄호'하고, 파병도 '철회'시키겠다? - 불행한 비극? 불가능한 희극!」, 『사회진보연대』(47호,2004.7~8) 혹은 『사회화와노동』(230호,2004.7.9)}에서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든 강제적인 수준에서든 대중의 명확한 인식과 정치적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파병반대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확장은 … 우리들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이 같은] 장애를 제거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시기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는 무엇인가? 노무현과 그의 행정수반들의 파병/전쟁 참여선동, 정치토론의 장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고 대중의 분노가 폭발되는 것을 막는 경찰의 저지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 더러운 입놀림과 언론의 기만적인 펜대 들이 장애다.
  
  그밖에도 우리에게 장애는 곳곳에 있다. 정치의 주인으로 단결하고자 하는 노동자·농민·여성을 중산층이라 칭하며 상품의 소비자로서만 살아가게끔 하는 것,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으로 분할하여 성별 분업화된 삶에 안주하도록 하는 것, 국가 행정 관료들과 국회 정치인들에게 의존토록 하는 것. 개별화되어 모든 연대의 손길을 스스로 외면토록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장애다. 이 장애를 물리쳐야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이 장애를 물리쳤다면, 어제 우리의 삶과 오늘 우리의 삶이 바뀌었을 것이다. 어제는 내 한 몸 살아남기 바쁘고, 정부가 노무현이 미국이 한일인데 어쩌겠냐며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면, 오늘은 거리에서 ‘파병철회’를 외치고, 일상에서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토론하고 조직하며 능동적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다른 삶, 이것이 ‘정치적 각성’이다. 정치적 각성은 남이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요, 남이 시켜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대중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스스로 능동적인 대중이 되는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대중의 거리 시위로 이라크 파병을 중단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전 세계 민중의 평화 애호 노력을 스스로 대표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서로가 능동적인 대중이 될 수 있도록, 이것이 더더욱 촉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무현 퇴진’ 슬로는 노무현 정권의 성격,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문제를 표현한 것이다. 미제국주의 침략전쟁에 협조하는 정권, 신자유주의 세계화(국익)와 이를 무장한 군사력으로 엄호(한미동맹)하려는 정권 - 바로 그 노무현 정권에 일체 협력할 수 없으며, 민중은 이를 거부한다는 뜻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 ‘노무현 퇴진’ 슬로다. 시민단체들이 예의 그 관행처럼 또다시 노무현정권의 행정부 관료들 사이의 갈등관계를 활용하는 테크닉이나 구사하며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하는 것에-만(!) 치중하려 든다면, 자신과 연계가 깊은 여러 행정 관료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노무현을 향한 정면(!) 비판을 꺼린다면, 파병철회-만(!)이 목적이라며 자신의 목적 달성에만 급급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운동과 연대하는 것을 외면한다면, 파병반대운동은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자멸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퇴진’ 슬로는 파병반대운동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게 한다. 장애를 보았다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물리치고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분명히 계획하고 사고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노무현 퇴진’ 슬로가 가지는 중요성이다.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논쟁에서 우리가 남겨야 할 교훈이 있다면, 정치적 입장에 관한 한 광범위한 대중의 토론을 보장하고 조직하는 것이 파병반대운동에 진실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스스로 돕는 것이며, 스스로 자신의 실천을 조직하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토론은 오늘 우리를 참혹한 전쟁터로 밀어 넣는 이가 누구인지, 오늘 우리를 비참한 빈곤으로 내모는 이가 누구인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깨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토론은 오늘날 파병반대운동의 오류가 우리의 오류가 무엇인지, 민중의 자기통치, 민중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진실로 깨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어야 튼튼하고 광범위한 대중행동과 거리 시위가 가능하다. 노무현 퇴진주장과 이를 둘러싼 토론을 막으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장애를 만드는 것이다. 노무현 퇴진주장과 이를 둘러싼 토론 그리고 광범위한 의견개진, 이을 충분히 보증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우리 스스로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하는 길을 도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백만 시민 결집됐을 때 파병철회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냥 한번 해본 말솜씨가 아니고 진실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헤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제까지와 다르게 파병반대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와 행정 관료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우리의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침략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노무현 정권을 냉혹한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 민중이 그 죄상을 엄히 다스리는데 앞장서는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짓눌려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으려는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민중들과 함께 진정으로 평화로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힘껏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연대운동은 합의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치의식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요 서로의 힘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연대운동은 너와 나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아 너와 나만의 이익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고 나아가 민중의 보편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파병반대운동이 두고두고 재고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박준도/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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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근거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을 기대한다"

 

[김태경 기자의 비판에 대한 반론] "내부이견 심각하지 않다"

  2004-08-24 오후 5:06:21

 

  파병반대국민행동 정책사업담당 기획위원인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24일 프레시안에 오마이뉴스 김태경기자가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기고한 글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왔다. 김기자는 '노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메이저 시민단체들을 비판한 바 있다.   

이에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된 민언련이 오마이뉴스에 반박글을 실은 데 이어, 김기자 글에서는 직접적으로 거명되지 않았으나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참여연대의 이태호 실장이 본지에 김기자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오기에 이르른 것이다.
  
  본지는 지난 21일 김태경기자의 글 전문을 게재한 바 있기에, 이번에 이태호 실장의 글도 전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앞으로 김태경기자가 재반론을 전개할 경우 그 글도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김태경 기자의 <인물과 사상> 기고에 대한 반론
  -파병반대운동에 대한 근거 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을 기대한다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는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9월 호에 “노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이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김태경 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병반대 의지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이 눈에 띄었고 지난 6월 23일 김선일 씨가 피살된 후 벌어진 일련의 촛불시위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이른바 주류 또는 이름있는 시민단체들이 현 정부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과감하게 비판하기보다는 미국 탓, 수구세력 탓, 또는 정부 안의 친미라인 탓으로 돌리며 변죽만 울린다고 느껴졌다. 이는 노 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 했던 주류 시민단체가 파병반대운동을 읍소형 운동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도된 결론을 이끌어내려 한 나머지 비약과 과장, 사실검증 없는 불충분한 추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김태경 기자의 기사 외에도 이런 추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적절한 반론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하여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인터뷰 요청도 하지 않고 취재하기 어려웠다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필자는 참여연대 정책실장으로 지난 10개월간 파병반대국민행동 정책사업단 간사를 맡아왔고 시민단체 측 연락을 담당하는 상황실 업무도 맡아왔다. 또한 김태경 기자와는 지난 5월 이후 오마이뉴스-파병반대국민행동 공동캠페인을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경험이 있음을 밝힌다. 오마이뉴스와 필자는 언론과 시민단체라는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파병철회 운동을 확산시킬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믿는다. 이 관계는 김선일 씨 사건 이후에도 지속되어 오마이뉴스측과 필자와는 기사기획이나 집회 생중계 등을 위해 전화쯤은 수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였었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기획팀의 일원이었던 김태경 기자와도 그런 관계였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김태경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문제의식과 관련된 사전 언급이나 비판적 지적, 혹은 우려를 전해들은 바 없었다. 게다가 필자의 10개월 활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고, 심지어 내 말을 인용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내게 정식 인터뷰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러면서도 기사에서는 정부기관 취재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주요 행동방침을 결정하는 비상시국회의도 매번 공개해 왔다. 국민총투표 제안이 부결되던 회의, 노무현 퇴진 구호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었던 7월 1일 회의도 모두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운영위원회 논의도 진지하게 물었다면 감출 이유가 없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이나 시민단체 내부의 움직임에 대해 김 기자가 부당하게 취재를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면 공개해 주기 바란다.
  
  과연 노무현 정권 퇴진이 쟁점이었는가?
  
  파병반대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고 그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해 모인 360개 단체의 연대체이다. 연대체에서 파병을 근거로 노무현 퇴진 구호를 내걸 때에는 우선 소속단체들의 정세인식이나 위임한 실천범위에 합당한 것인가? 내건 구호를 관철시킬 수 있는가? 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대운동이 실없어 지거나 목소리 높은 소수의 정파적 운동으로 축소, 왜곡되고 만다. 말하자면 연대단체는 노무현 퇴진이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퇴진을 내거는 것이 파병철회운동을 고조시키는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로 판단한다. 김태경 기자도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노무현 퇴진 구호는 운동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적지 않은 구호였다. 주지하듯이 대통령 탄핵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쟁점이 파병이냐 아니냐를 넘어 탄핵이냐 아니냐, 친노냐 반노냐로 확장되는 것이 파병반대운동에 실익이 있는지도 전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노무현 퇴진 문제를 일부 단체가 제기하긴 했었다. 그러나 파병반대 운영위 소속 대다수 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김태경 기자의 가설처럼 시민단체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 민노당,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 대다수 민중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 대다수 단체가 노무현 정권 규탄이 적절한 구호라고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실현가능성 없는 노무현 정권 퇴진보다 노무현 사과, 노무현 규탄 등을 외치는 것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유일한 단체인 ‘사회진보연대’도 노무현 퇴진이 공통의 구호가 될 수 없는 조건과 정세에 공감했다.
  
  운영위원회에서 세 차례나 이 문제가 거론되었던 것은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는 단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회의석상에서는 다들 동의해 놓고 집회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진을 주장하는 이들이 공동구호를 외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의 순간에도 자신들의 퇴진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노무현 퇴진 손피켓을 집회장에서 무차별적으로 배포한 데 대해 상황실에서 문제제기 하고, 이에 대해 소수 그룹이 선동의 자유를 지도부가 가로막는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격렬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논쟁은 주로 민중연대 소속단체들간에 이루어졌다. 필자가 해프닝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를 비판하는데 연대기구에 지도부가 따로 있을 리 없다. 매 회의의 결정사항을 공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의사결정회의는 운영위원회다. 운영위 구성단체에는 민중단체가 더 많다.
  
  한편, 김태경 기자는 마치 노무현 사과를 요구한 것이 노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는 주류 시민단체의 읍소형 운동에 연유하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예를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대목에서 찾고 있다. 노무현 사과를 요구한 것이 잘못인가? 노무현이 책임지라고 주장하는 것과 노무현은 사죄하라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 김기자가 지적하는 그토록 중대한 차이가 있단 말인가? 집회장에서는 노무현 정권 사과하라! 노무현 정권 책임져라! 노무현 정권 규탄한다!가 함께 외쳐졌다. 필자는 이런 소모적 논쟁이 정말 안타깝다.
  
  사실 김선일 사건 이후 정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질 경우, 노무현 정권의 진퇴문제를 거론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였다. 열린우리당 386의원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압박하는 사이버 캠페인을 공동기획한 것도 오마이뉴스와 필자였다. 김태경 기자가 이런 정황을 애써 무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사족이지만 한가지만 더 언급하기로 하자. 파병반대 촛불집회에서 시민단체 사회자가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주십시오.”라고 읍소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간혹 접한다. 프레시안과 부안독립신문 창간호에도 이와 유사한 기사가 실렸었다. 그 뒤로 파병반대운동을 읍소형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간간이 있다. 실제로 6월 26일 집회 말미에 수차례 반복된 이 멘트는 필자가 보기에도 집회분위기에 적절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집회장에 가면 감정에 복받쳐 이러저러한 말실수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멘트도 더러 나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날은 김선일 씨 유해가 귀국해 빈소에 안치된 날로서 추모와 규탄의 안배가 만만치 않았던 까다로운 집회였다. 따라서 읍소형 멘트는 사회자 나름대로 파병철회의 절절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지 말 그대로 ‘읍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파병반대 전쟁피해자 전국도보순례에 참여했던 정신대피해자 할머니도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에 절을 하며 파병철회를 읍소했지만 모두가 감동을 받았을 지언정, 왜 노무현에게 읍소하냐고 비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날 집회 사회자는 시민단체인사가 아니라 여중생 촛불집회 사회자로 잘 알려진 민노당 관계자였다.
  
  시민단체들은 “자주파 : 친미수구”의 구도에 동의하는가?
  
  김태경 기자는 시민단체가 미국, 친미 커넥션, 수구언론 등을 문제 삼으면서 정작 노무현 정권은 문제삼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일 소속단체일뿐인 민언련 최민희 총장의 발언을, 그것도 진의를 왜곡하여 말꼬투리를 잡는 방식으로 인용하고는 다른 시민단체들도 대동소이하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식으로 자신의 가정을 강변하고 있다. 이는 논리적 비약이자 왜곡이다. 좋은 기사작성 방법이 아니다.
  
  김태경 기자는 한국의 파병에 친미커넥션이나 수구언론, 미국의 압력 또는 영향이 없다고 보는가? 최민희 총장이 노무현 정권과 함께 그들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하자고 주장한 것이 틀렸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김 기자는 최민희 총장이나 시민단체가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지 않으면서 미국이나 친미커넥션만 문제삼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김 기자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이름으로 노무현 정권 대신 다른 대상에게 책임을 돌리자고 주장한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나온 모든 성명과 논평은 파병반대국민행동 사이트나 참여연대 사이트에 대체로 올라가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발표하는 성명이나 논평 대부분의 작성을 맡았던 사람은 김 기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시민단체’ 정책실장인 필자였다. 또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된 정책의견서도 역시 관련 사이트에 업데이트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시민단체 주변의 정책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사업단에서 발간한 것이다. 우리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결성 목적에 충실하게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방침을 비판하고 이를 철회시키기 위한” 정책조사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했다. 그 활동 내용은 김태경 기자도 잘 알 것이다. 정책사업단은 모든 조직 운동 세력들이 탄핵 촛불집회에 나서고 있던 지난 2-3월에도 일관되게 이라크 현지 모니터 작업, 파병찬성 낙선리스트 작성 작업을 전개했으며 새 국회가 열리자마자 준비된 정책의견서를 쏟아내었다. 이 정책의견서에 경제국익론 비판도 있고 북핵빅딜론 비판도 있다. 그 당시 우리는 농담 삼아 "대통령이 탄핵되건 말건 세상에는 파병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NSC 내 자주파 : 친미수구 식의 대립등식은 조선일보가 만들어 낸 거다. 내가 아는 한 이른바 ‘잘 알려진 시민운동 단체’ 중 이런 구도에 동의하는 단체는 없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노무현 정부가 내건 협력적 자주국방이 미국 추종적 군비확장 노선이라고 비판해왔고, 파병문제에서도 북핵과 파병을 바꿀 수 있다는 노무현 정권의 주장을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해왔다. 이 결정을 주도한 NSC에 대해서도 비판을 우회한 일도 없다. 김태경 기자가 기사 중반에 삽입해 넣은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는 시민단체의 파병관련 활동과는 실제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NLL월선 사건 역시 비교적 구체적 쟁점이었던 바, 참여연대를 비롯하여 국방부를 모니터 하는 평화단체들은 대체로 입장을 발표했었다. 일부 시기를 놓친 것이 있다면 파병반대운동으로 인해 실무적으로 어려워서였지 김태경 기자가 기대하는 그 무슨 ‘유착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김태경 기자도 잘 알다시피 노사모 관련 단체들은 파병에는 반대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혹시 김 기자는 시민단체와 노사모를 혼동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런 혐의를 두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취재도 없이 사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것인가?
  
  김선일 씨 사건이 난 직후 서프라이즈, 국민의 힘 등 이른바 노사모 웹사이트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 강행방침을 비난하는 주장이 본격화되면서 매우 심각한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었다. 한편, 김선일 사건 직후 오마이뉴스 편집진에서도 개탄했듯이 파병여론은 50:50의 평행을 긋는가 하면 심지어 찬성 여론이 강화되는 경향도 일부 있었다. 오마이뉴스와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함께 진행하던 온라인 서명도 예상보다 확산되지는 않았다. 이 사정은 누구보다도 김태경 기자가 잘 알 것이다. 이 상황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노사모 들의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이 6월 26일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인용해 보자.
  
  "탄핵을 막아냈던 그 촛불이 다시 200만, 300만이 모여야 파병을 철회시킬 수 있습니다. 노사모와 국민의 힘 등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정말 당신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다면 촛불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에서 개혁파로 불리는 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론 바꿀 생각이 없으면 차라리 의원 그만 두십시오."
  
  내가 기억하기에 최 총장의 발언은 그 날 발언 중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발언이었다. 김태경 기자는 이 발언에서 읍소형 운동을 발견했는가? 필자는 정세에 걸맞는 대중연설의 생생한 사례를 보았다.
  
  추론과 가정에 기초한 근거 없는 논리비약
  
  이 소제목은 청와대가 공개한 대외경제정책보고서에 대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반박보고서 제목과 동일하다. 이 보고서는 파병 결정 시 경제위기론 등을 내세우며 파병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청와대가 근거 없이 경제위기를 들이대면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태경 기자의 기사에는 ‘알려진 시민단체’들을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나 근거는 거의 인용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로 말하면 파병반대국민행동 제안단체이자 파병반대운동 내내 정책분야를 담당했던 중심단체인데 기사 첫머리에 이름만 인용해놓고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김태경 기자가 비판하는 ‘주류 시민단체’에 참여연대가 포함되는 것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다. 김 기자가 유일하게 언급한 것은 참여연대가 운영위원회에서 노무현 퇴진에 반대했다는 내용인데,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대다수 민중단체들도 같은 입장이었다.
  
  김 기자 기사에는 여성연합이 자주 거론되는데 여성연합에 대한 비판은 다소 엉뚱한 내용으로서 본 주제인 파병반대운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김기자 기사에는 여연 소속 단체로서 여연을 대표해 파병반대국민행동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평화를만드는여성회가 얼마나 열심히 파병반대운동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없다. 또한 여성운동 진영의 파병반대운동에 대해서 구체적인 평가나 지적도 없다. 만약 여연이 왜 전적으로 파병반대에만 몰두하지 않았냐고 비판하려면 동일한 잣대를 전교조, 전농, 보건의료연합 같은 민중단체들에도 적용해야 마땅하다. 민언련이 왜 노무현 퇴진 구호를 내거는데 반대했냐고 비판하려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왜 노무현 퇴진 구호를 내걸지 않았는지도 함께 거론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탄핵반대 집회에는 20만명이 모였는데 파병반대 집회에는 최대 15000명이 모였다. 이 상황이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파병반대운동을 전개했던 운동주체 자신이다. 그러나 20만명을 시민단체의 힘으로 모은 것이 아니었듯이 파병철회에 대중 동력이 실리지 못한 정세적 한계를 특정 시민단체의 노무현 편향 탓으로 돌리는 것도 상황을 과장하는 것이다.
  
  평화운동 역량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지난 주말, 파병반대국민행동 상황실은 10개월만에 처음으로 벼르고 벼르던 나들이를 동해바다로 다녀왔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아직 태풍의 뒤끝이 가시지 않은 동해의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뒹굴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운영위원회, 기획단과 정책사업단, 상황실의 활동 중 부족한 점도 많았다. 논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개월 내내 민중단체 시민단체, 정당과 정파를 초월하여 파병반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밤샘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아직 1차전 밖에 끝나지 않았지만 참으로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형성된 서로에 대한 신뢰는 확고하다. 이 신뢰는 모든 문제를 토론과 합의로 풀어온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운영방식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김 기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파병반대국민행동 내에 이견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사소한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아직 취약한 평화운동 역량의 강화를 위해 서로를 보듬고 단결할 때라고 믿는다. 김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11월 연장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거나 파병 부대에 사상자가 나오는 등 진정으로 단결된 힘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태호/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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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교양서 쓰면 손가락질 당해…원서 사용 오히려 증가
진단_과학 교양교재 출판의 현황과 과제

2004년 08월 30일   권기호 과학칼럼니스트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물질세계는 양방향성을 강화해 가고 있으며, 이것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와 보편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물질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세계나 지식세계의 한편에서는 양방향성이 약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 곧 권력이므로 먼저 많이 알고 독점하려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20세기에 들어서 과학?기술은 드디어 권력을 쥐게 되었고 세계는 치열한 과학기술 전쟁을 벌여 왔다. 권력에는 부와 명예가 따르므로 급격히 늘어난 과학기술자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선취권과 독점주의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젊은 교수들일수록 원서 의존도 높아

더구나 우리나라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만 받아들여 ‘지식인’이 아닌 ‘전문가나 기술자’만 양산하고 그들을 이용하는 데 골몰해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철학과 역사 같은 근본 문화가 없는 사상누각이며, 과학기술자들에게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동참하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그러한 근본 문화를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을뿐더러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할 의지도 시간도,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리물리학자 앨런 소칼은 인문학자들의 ‘지적 사기’를 신랄하게 꼬집었지만, 사실 그러한 지적 사기를 야기한 데에는 자연과학자들의 잘못이 크다. 많은 자연과학자들은 발견하거나 발명한 사실을 책이나 강연을 통해 쉽게 설명하기보다 현학적 아우라를 씌워 고답적인 것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할머니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정통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난해함은 단절과 오해와 왜곡을 낳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출판을 비롯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침체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국가 정책이다. 과학기술을 이 시대 문명과 생활의 일부로서 인식하지 않고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한, 과학기술은 교과서와 실험실의 장벽을 허물고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 편향된 교육 제도는 말할 것도 없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학문인데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주체인 인간을 빼고 나머지만 가르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과학기술이나 그 산물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하거나 사회와 문화를 해석하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다.
이제는 많은 교수와 학생이 그 못된 타성에 젖어 있다. 유학파 젊은 교수들일수록 원서와 외국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학생들은 마지못해 또는 환상에 젖은 채 따라가고 있다. 자연히 우리말로 된 교재나 교양서는 줄어들고, 범람하는 새로운 용어와 개념들이 번역되지 않은 채 고착화되는 현상도 폭증하고 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언어의 문제로 이어진다. 언어는 인식의 출발점이므로 언어 자체가 혼란스럽거나 난해할 경우 커뮤니케이션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후손은 외국어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안은 채 과학기술을 더 기피할지 모른다.

‘수준 낮은 독자’ VS ‘역량 부족 저자’

최근 과학 교양서 번역물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몇몇 소장파 과학 저자들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왔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과학 교양서 시장의 성장을 논하기는 이르다. 우선 번역물의 경우, 교양서의 종수는 늘었지만 평균 판매 부수는 줄어들었고, 과학기술 발전의 기초가 되는 교재나 학술서도 원서 사용의 증가로 오히려 줄었다. 국내 저술의 경우도 초·중·고교생을 위한 에듀테인먼트 내지 부교재만 늘었지 대학생이나 일반인을 위한 고급 교양서는 여전히 드물다.
읽을 만한 과학책이 없어 못 읽는다는 독자와, 읽어 주는 독자가 없어 과학책을 못 내겠다는 저자나 출판사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야 한다면 지금은 독자의 편에 가깝다. 재미있고 쉽게 또는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쓸 만한 지식 인프라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저자나 출판사의 외침은 공허하다. 왜냐하면 저자나 출판사가 독자의 수준과 기호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책을 펴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준 낮은 독자’ 탓만 하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역량 부족인 저자’ 비난만 하는 독자도 적잖다.
또한 교수나 전문가 집단에서 ‘대중을 위한 책’을 펴내는 것이 ‘딴전’을 부리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진지한 순문학 작가의 조금 경쾌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작가가 문학적 순수함을 잃은 것으로 내몰리듯,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쓰면 학문적 순수함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손가락질당하는 풍토는 과학 교양서 출판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얼핏 대학출판부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출판부는 대학 부설 편집·인쇄소나 다름없다. 대학출판부장이라는 자리도 대개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임기만 채우기 때문에 눈여겨 볼만한 출판 콘텐츠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 부족, 도서관 부족, 불법 교재 복제 같은 눈앞의 주요 장애가 먼저 해소되고 과학 교육이 혁신되어야만 과학 교양서 출판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권기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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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08-3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엿듣기로는 인문학 교수들은 오히려 교양서 써서 잘 팔리면 우쭐하는 분위기던데요^^

balmas 2004-08-3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교수들과 자연과학 교수들이 성향이 좀 다르겠죠.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네) 사실은 교양서 잘 쓸 수 있는 사람도
드문 편이죠.
그러니 우쭐해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