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쌀의 경고 ①쌀개방으로 우리에게 쌀이 없어지는 날
우리가 매일 먹는 쌀. 숨을 쉬고 갈증을 달래는 공기와 물이 그렇듯 우리는 쌀의 가치와 생명에 주는 소중함을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흔하다.그래서 소중함 역시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 70년대 보릿고개를 넘긴 뒤 쌀 문제는 ‘없으면 어떻게 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절실하게 부족했던 적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쌀에 관한 한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쌀 문화지역으로 꼽힌다.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지역에서 발견된 볍씨가 그것이다. 이 볍씨는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미국의 지오크론시험소(GX)의 유전자 분석결과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중국 후난성 옥첨암 동굴 유적의 1만1000년전보다 최소 1500년에서 3000년은 앞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우리의 쌀 역사는 1만2500~1만3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우리 민족과 1만년 긴 세월을 함께 한 쌀이 역사 이래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미국, 중국 등 9개국과의 쌀 재협상 결과에 따라 우리는 쌀도 밀과 고추, 마늘, 배추 등의 다른 농산물뿐 아니라 캠코더,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공산품처럼 국제시장에서 사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터넷한겨레>는 쌀의 가치, 쌀 재협상의 쟁점과 과제, 앞으로 쌀 산업의 방향 등 쌀을 둘러싼 농업계 주변의 여러 논쟁을 추적해 보았다.
쌀 개방 최악 시나리오…“쌀도 한우 꼴 난다”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닥쳤다. 지구 온난화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세계 쌀 생산량은 기상이변이 겹치면서 지난해 5%가량 줄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0년 전 단행된 쌀 전면 수입개방으로 농지는 10년 만에 절반인 70만ha로 줄었고, 쌀 생산량은 전년에 비해 7%가량 하락했다. 국내 소비량의 40%를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쌀값은 지난해보다 두 배나 폭등했다.
그나마도 주요 수입국인 미국과 중국의 사정으로 수입마저 여유치 않다. 미국은 ‘쌀값을 더 올려 달라’며 태평양에서 쌀 수출 선박을 본국으로 돌려버렸고, 중국도 자국의 식량난으로 지난해부터 쌀 수출을 잠정 중단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슈퍼와 할인점, 백화점 등에는 쌀을 구입하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서고, 쌀 대신 라면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얼마 되지 않는 국산 쌀은 값이 수입산보다 두 배 가량 폭등한 결과 서민들은 입도 대지 못하고 모두 계약재배로 부자들의 밥상에만 겨우 올랐다. 10년 전 쌀도 상품이라며 노골적으로 쌀 수입을 부추겼던 언론은 이를 ‘90년대 쇠고기 수입으로 2000년대 한우 값이 폭등했던 사례와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한반도에는 홍수와 가뭄이 빈발했다. 이 같은 홍수와 가뭄은 물을 가둬두는 구실을 했던 논이 급격히 사라지면서 더욱 심해졌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댐공사를 실시해야 했다. 이 때문에 월급쟁이들의 세금부담은 더욱 늘었다. 전국 곳곳에서 폭등하는 쌀값과 뛰는 세금으로 서민들의 아우성은 극에 달했다.”(가상 시니라오- 쌀 수입개방 10년째, 2015년의 한반도 풍경)
올해 쌀 재협상에서 쌀이 완전 수입 개방되는 것을 전제로 2014년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았다. 그런데 이같은 시나리오가 단순한 시나리오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에서 만약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선진국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을 전제로 추정한 자료를 보면 2010년 쌀 재배면적은 약 32%가 줄어든 72만ha가 되고, 생산량은 현재의 522만톤에서 359만톤으로 3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이 또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쌀 개방에 반대하는 많은 농업계 전문가들은 “농업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가 더 문제”라며 실제 상황은 이것보다 악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같은 우려의 밑바닥에는 ‘식량 무기화’와 ‘식량주권론’이라는 논리적 포석이 깔렸다. 지난해 식량자급률은 26.9%(쌀을 제외하면 5%수준)로 나날이 악화일로에 있으며 식량주권론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예외 없는 관세화와 국가간 자유무역을 이념으로 내세운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쌀을 공산품처럼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쌀 개방, 당신의 건강이 위험하다
소비자의 먹을 권리·건강권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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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은 농업의 문제일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먹거리와 건강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유기농쌀로 학교급식을 받는 초등학생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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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는 ‘우리쌀지키기 식량주권수호 범국민운동본부’ 발족식을 열었다.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이 한창이던 때, 쌀 지키기 국민운동본부에 이어 꼭 10년 만에 대대적인 쌀 지키기 국민운동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진행 중인 쌀 관세화유예협상에서 식량주권과 생명·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민들은 물론 도시민, 소비자 등 모든 국민이 나서 쌀 추가개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족식에서 소비자단체로 참여한 녹색소비자연대의 노은숙 소비자건강팀장은 쌀은 농업의 문제일 뿐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권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강조했다.
“60년대 미국이 무상원조한 밀이 들어와 결국 이 땅에서 밀농사가 자취를 감췄다. 쌀이 전면 개방되면 밀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어떤 농약을 치는 줄도 모르고, 유통과정에서 부패를 막기 위해 어떤 유해물질을 섞을 지도 모른다. 또 대량생산을 위해 옥수수나 감자처럼 유전자조작을 할 수도 있다. 수입쌀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다.”
그는 또 ‘수입쌀은 싸다’는 전제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기상이변 등 농산물의 불확실한 수급상황을 고려한다면 지금처럼 쌀을 싼값에 수입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도 근거가 없다. 미국 등이 쌀값을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쌀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쌀값 폭등의 피해는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는 “최근 도시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아토피와 같은 피부질환은 부모들의 먹을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증거가 확인되고 있다”며 “전적으로 수입쌀만 먹자는 것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할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 쌀 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이종화 상황실장은 “쌀 수입은 식량주권이라는 추상적 논리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국민의 세금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소비자는 당장 값싼 수입 농산물을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한 심각한 건강상 위협은 병원비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농업이 수행하는 다양한 공익적 가치가 파괴되는 것은 그것을 복구하기 위한 국민들의 세금부담만 늘릴 뿐”이라고 말한다.
싼 맛에 수입쌀에 길들여지면 결국 그 비용이 부메랑이 돼 소비자에게 돌아올 것이란 이야기다.
쌀의 공익적 가치 100조원…생명·환경·문화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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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농사는 먹거리 생산뿐 아니라 △홍수조절 △수자원 함양 △수질정화 △토양유출경감 △폐기물처리 △대기정화 등 다양한 환경보전기능은 물론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등 다원적 가치를 갖는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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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입게 되는 피해는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쌀과 농업이 주는 공익적 가치(multi-functionality)를 잃는 것은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셈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다. 이 또한 쌀이 사라진다면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 뻔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01년 11월 내놓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가치평가 연구’ 보고서를 보면 쌀농사가 △홍수조절 1조3305억원 △수자원 함양 1조1427억원 △수질정화 1조1946억원 △토양유출경감 4532억원 △폐기물처리 882억원 △대기정화 2조2118억원 등 6조4210억원의 환경보전기능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또 쌀 농사의 다원적 기능은 △식량안보 기능 1조7084억원 △농업경관 1조1214억원 △농촌에 활력 부여 8165억원 등으로 환경보전기능과 합해 10조673억원 경제적가치가 있다고 분석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2001년 내놓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계량화 평가’라는 자료는 이 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총 120만 정보의 논에서 연간 9조원의 쌀이 생산되고 있으나 논농사는 그 보다도 10배에 가까운 93조원의 공익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쌀의 공익적 가치를 감안하면 100조원 산업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농촌진흥청의 분석을 보면 논은 연간 350억 톤의 물을 하천(192억 톤)으로 흘려보내고 지하수(158억 톤)로 저장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 같은 지하수 저장량은 전 국민이 1년간 쓰는 지하수의 2.7배에 해당하고 소양호의 저수량과 비교해도 8.3배가 넘는다. 이 같은 물을 저장하려면 1996년 가격으로 최소 65조원이 든다는 분석이다.
논은 우리나라의 집중호우기인 6~8월경 36억 만 톤의 물을 가둬두는데 이는 우리나라 6대 댐의 저수량에 2.4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논의 홍수조절효과만 17조원에 해당한다.
또 벼는 지구상에 생존하는 식물 중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산소를 공급하고 가장 많은 탄산가스를 흡수하는데 연간 1230만 톤의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산소공급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5조3천억 원어치의 가치다.
농촌 어메니티…쾌적한 도시민의 휴양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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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을 포기하는 것은 농촌이 주는 문화적 가치와 쾌적함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잃는 것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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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뿐 아니라 농업이 주는 ‘보이지 않는 혜택’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아름다운 강산과 경관, 맑은 공기, 깨끗한 물과 산천초목이 우러나는 향기, 국토의 균형적 발전, 전통문화의 보전과 지역사회 유지 등의 보이지 않는 공익적 기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유럽 등에서는 이 같은 농업의 유·무형의 자산을 농촌 어메니티(Amenity·사전적 의미로 쾌적함, 즐거움,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자원)란 개념으로 이론화하고 있다.
정필균 농촌진흥청 다원적기능평가연구팀장은 “농업의 환경·생태적 중요성뿐아니라 최근들어 농촌어메니티, 식량의 안정적 공급, 국토의 균형발전 등 사회문화적 기능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며 “선진국으로 갈수록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산출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낮게 잡아도 연간 20조원을 육박할 것”이라며 “국민 1인당 주는 편익은 연간 50여만원 정도로 농촌을 지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줄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도시민들은 농촌이 주는 혜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이같은 공익적 가치를 버리는 것과 같다. 또 농업과 농촌의 붕괴는 심각한 도시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농어연)가 1990년대에 분석한 이농으로 인한 도시의 사회적 비용은 △실업비용 564억원 △대기오염증가 38억원 △폐기물 증가 134억원 △교통혼잡증가(연료비와 시간비용) 574억원 △교통사고 증가비용 912억원 등 222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농어연 권영근 소장은 “2222억원은 90년대 통계이고 물가상승 등의 변화를 감안해 오늘날 비용으로 계산하면 100배가 넘을 수도 있다”며 “도시민들은 농민들이 농촌을 유지함으로써 경감되는 사회적 비용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정부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 경실련 대표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는 식량생산뿐 아니라 농촌이 역사, 문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복합적 기능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농촌과 농업을 지키는 것은 생태계뿐 아니라 문화전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농업이 없는 국가,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겨레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며 “농업은 국가와 민족형성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고 국정철학과 비전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기아인구 8억4200만명…식량은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
쌀 문제와 관련해 또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것이 식량무기화다.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들은 식량의 교역자유화가 빈곤과 기아문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루과이라운드(UR),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이 진척될수록 전 세계적인 기아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11월 ‘세계 식량불안 상태’라는 보고서에서 90년대 전반기에는 기아 인구가 3700만명 줄었으나 후반기에는 1800만명 늘어나 1999~2001년 전세계 기아 인구가 8억4200만명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또 매년 3600만명이 먹지 못해 굶어죽고 있으며 세계 인구 7명중 1명꼴로 하루 끼니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영국의 진보적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월 미국 국방부의 비밀문서를 입수해 “앞으로 20년 안에 급격한 기후 변화로 식량, 물, 에너지 자원 확보가 커다란 안보위협이 될 것”이라며 “이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 등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등 ‘전 지구적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UN이 올해를 ‘세계 쌀의 해’로 선정한 것도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FAO의 자크 디우프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말 ‘쌀의 해’ 선포 배경과 관련해 “세계 인구는 계속 늘고 있으나 쌀 생산에 필요한 농지와 농업용수는 줄어들고 있다”며 “기아에 허덕이는 전세계 인구 8억4000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쌀을 주식이나, 소득, 고용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냉혈적 곡물자본…“무한정 공급은 낭만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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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된 식량문제와 기아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또 5대 곡물메이저가 전세계 곡물유통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은 언제든 무기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쌀수확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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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곡물유통의 대부분을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카길, 미드랜드(ADM), 루이드레퓌스, 분게, 앙드레 등 세계 곡물시장을 주무르는 5대 메이저는 전세계 곡물 거래량의 80%를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 곡물 수입의 60%를 ‘카길’이라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농업계 내부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농민단체들은 이들 곡물메이저들에게 자유무역의 원리에 따라 쌀을 비롯한 농산물을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낭만적 상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범국민연대의 이종화 상황실장은 “곡물자본은 단돈 1원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냉혈적 성격을 지녔다”며 “이들에게 대가없는 안정적인 식량수급을 바라는 것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곡물은 생산이 1%만 줄어도 가격이 47% 폭등할 정도로 민감한 품목”이라며 “곡물을 공산품처럼 자유로운 무역체계에 편입시키려는 것은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무기를 버리고 백기 투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쌀과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지키며 환경과 생명을 보전할 것인가? 쌀도 예외 없는 자유무역에 포함시킬 것인가? 쌀 추가개방과 관련해 무엇을 택할 것인가는 10년 뒤 우리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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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무기화의 여러 사례들/ 전농 쌀 백서
전농은 최근 발행한 ‘쌀 백서’에서 70년대부터 쌀이 식량 무기화된 구체적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전농은 여기에서 “곡물은 생산이 1%만 줄어도 가격이 47% 폭등할 정도로 수요공급에 민감한 품목”이라며 “식량자급률이 26.9%(쌀을 빼면 5% 미만)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쌀이 개방돼 무너지면 우리의 식량시장은 미국과 중국의 손에 놀아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1976년 자이르(현 콩고) 정부가 곡물 대금 결제를 지연하자 콘티넨탈은 밀 공급을 중단, 현금지불과 다음해 밀의 독점 수입을 약속하고서야 수출을 재개.
△1988년 사하라 이남의 최대 소맥 수입국인 나이지리아가 국내 식량생산 감소를 이유로 소맥 수입을 금지하자 카길은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나이지리아의 섬유수출을 제개.
△1988년 식량난을 겪고 있던 북한과 카길은 아연과 구상무역 형태로 밀 2천 톤을 교환하기로 계약했으나 북한의 아연 궤가 준비되자 않자 운송 중이던 수출 선적을 공해 상에서 돌려 다른 나라로 수출.
△1980년 우리나라가 냉해로 쌀이 부족하자 미국 쌀 가격의 3배를 주고 샀으며 그 뒤로 5년간에 걸쳐 사기로 약속을 해 미국쌀 재고량이 1989년까지 남았음.
△1972년 세계 식량파동으로 세계 곡물생산량이 3% 감소하자 쌀과 밀의 국제가격이 367%, 212% 오르는 등 4대 곡물가격이 100%이상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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