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출판가쟁점/12] 굶어 죽어도 공장에서 일하는 건 싫다고?
북에디터 사이트에 실린 "당대비평" 변정수 편집위원의 「출판가 쟁점」을 퍼오려고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실제 출판가 현장 분위기는 어떠한지? 여러분들이 읽는 책을 만드는 출판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지가 제법 잘 드러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외로 출판계 현실은 일반 독자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서요. 일단 변정수 편집위원의 글을 퍼 나른 뒤에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한 번 올려보도록 하지요. 음, 자꾸 이런 글 쓰다보면 제 정체가 드러나서 안 되는데.... 흐흐. 참고로 저는 "당대비평"이랑은 거의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입니다.
굶어 죽어도 공장에서 일하는 건 싫다고?
변정수(당대비평 편집위원)
출판업이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지칭하는 이른바 3D 업종의 하나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이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써야 하는 '위험한' 일들의 근처에도 못 갈 정도로 '안전한' 일인 데다가, 고상하게 텍스트를 만지작거리는 게 고작일 뿐 산업 폐기물이라 봤자 종이뭉치가 나오는 게 고작이니 오히려 '깨끗한' 편에서 헤아리는 게 빠른 일이라는 것을 설마하니 몰라서 이런 과장어린 수사로 엄살을 떠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로 하자면, 워낙 대한민국의 산업안전 수준이 엉망인 나머지 '위험한' 일이라고 명함을 내밀기에 멋쩍어서 그렇지 출판업도 절대적인 기준에서 그리 '안전한' 편은 아니다. 아무리 편한 일을 한다고 해도 하루 12시간 이상씩을 간혹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한다면 건강을 해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잘난 '정신 노동'을 하는 덕분에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만 더 어려울 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험에 직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더럽다'거나 '깨긋하다'는 것이 순수하게 미감의 문제라면, 시쳇말로 '견적을 내기'조차 난감할 만큼이나 '지저분한'(!) 문장들에 파묻혀 '욕지기'를 참아가면서 머리를 싸매고 씨름하느라 속절없는 세월을 보내는 것을 두고 굳이 '더럽다'고 이야기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장된 자조가 출판 산업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에 대한 출판 노동자들의 분노의 일단을 표현하고자 하는 저항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런 측면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지만, 그 이면에 매우 불순한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깔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가령 우리 시대에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는 직업군에 속하는 의사나 변호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3D 업종'이라고 지칭할 때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적지않은 불편함에 비교될 만하다.
나는 물론 타 업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박봉과 격무로 점철된 출판업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분노한다. 하지만 출판업이 아무리 '어렵고 더럽고 위험하기'로서니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관 업종 중의 하나인 인쇄업에 비할 수 있을까. 예컨대 도대체 출판인들, 특히나 영업 부서조차도 좌천 부서쯤으로 생각해서 영업부로 발령을 내면 나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편집자들의 직업적 준거 집단은 어디인가? 막말을 하자면 '먹물'깨나 먹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가. 출판 편집이 '인간의 창조적 정신 활동'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그에 걸맞는 노동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당한 요구와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다른 제조업들보다 고귀하다는 식의 비뚤어진 우월감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 출판업은 분명 제조업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물론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 내는 일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출판사를 가리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내는 공장이라고 한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노동 가치 이론에 관한 한 국내의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인 정운영 선생이 오래 전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주는 글에서 "대학은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공장 노동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먹물'들이 자신의 일터를 '공장'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발끈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자신들의 일은 너무나 고귀해서 '가치'를 생산하지 않아도 분배가 보장되는 일이라는 듯일까?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아주 점잖은 말로 '도씨'라고 부른다!
최근에 북에디터의 구인 게시판을 한 바탕 뜨겁게 달구었던 어느 출판사의 구인 광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요즘 저희 공장에서 편집 일꾼을 한 명 구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차라리 정겹게만 들릴지언정 도무지 '비하'나 '폄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이 광고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 중의 압권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다. "굶어 죽어도 공장에서 일하기는 싫어요." 나는 묻고 싶어졌다. 공장에서 일하기 싫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가. 아니 그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공장이 아닌' 출판사(그런 게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에 보란 듯이 취업해서 '책'을 만들게 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가 만드는 것은 그의 정신적 노동력을 실현하여 정신적인 가치를 담아낸 '책'이 아니라 아마도 아무런 가치도 담고 있지 않은 그저 종이에 먹물을 묻힌 '쓰레기'일 가능성이 크다. 보라. 스스로 악을 쓰며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굶어 죽을지언정 가치를 생산해 내는 일에 종사하기는 싫다고!
하지만 나의 이런 걱정은 기우이기 쉽다. 죽어도 공장에서 일하기는 싫다는 사람에게 일을 맡길 '공장'은 없을 것이며, 제대로 된 출판사 치고 '공장'이 아닌 곳도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때로 아예 발가벗고 '사(詐)'자와 '도(盜)'자를 내걸고 덤비는 얼치기들이 이 동네라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도 바보는 아니다.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기에도 몫이 모자라서 늘 '책 공장의 일꾼'들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컨대 '양서(良書)'를 사 주는 데도 인색하기 짝이 없어 출판 산업을 구조적 불황에 시달리게 하는 독자들이 하물며 '쓰레기'에 지갑을 열지는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사건은 실은 자신의 일터를 '공장'이라고 표현한 어느 '작업반장'이 고귀한(?) 출판업을 비하하고 폄훼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발끈한 고귀하신 분들이 '공장 노동자'를 비하하고 폄훼하는 돼먹지 못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발이지 그런 고귀하신 분들은 '책'이라는 인류의 정신적 자산을 만들어내는 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 그 자산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일터('공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실현함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꾼'들(전문적인 용어로 '노동자') 공동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앙금이 남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쐐기를 박아 두고 싶다. 우리가 근로기준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기 일쑤인 터무니없는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하는 최종적인 근거는, 벽돌 공장에서 벽돌 찍어내는 사람의 한 시간 노동의 가치와 출판사에서 교정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의 한 시간 노동의 가치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노동력 제공의 대가를 셈할 참인가. 유감스럽게도 흔히 착각하듯 '실현되지 않은 교환 가치'에 목을 매고 무한 경쟁 속에 자신의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한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이며, '자본가'를 위한 노동 조건 따위는 없다. 굶어 죽어도 공장에서 일하기는 싫다는 잘난 '먹물'의 허위의식부터 벗어 던지지 않는 한, 자신이 생계를 위해 노동력 말고는 처분할 것이 없는 노동자라는 것을 자인하지 않는 한, 최소한 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 조건조차도 요원한 일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숱한 '책 공장'에서 '공장의 불빛' 을 밝히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을 수많은 출판 산업 '일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동료애로 분투를 기원한다. 우리들이 연대의 손을 굳게 맞잡을 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 손을 놓지 않을 때, '책 공장'들에서도 법이 정한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보장받으며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송인소식 2004.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