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미국 대선과 한반도-(하)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이유

 

남북한, 기다리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정욱식/ 2004년 8월 10일



6자회담과 미국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2004년 하반기에 우리는 어떠한 평화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변수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는 점에서, 치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위기가 해소되면 좋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당분간 6자회담의 성공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미국 대선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6자회담과 미국 대선에 의존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비책(秘策)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대선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심축을 미국의 선의와 이해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6자회담 구도에서 남북한 중심 구도로 전환시켜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결코 6자회담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6자회담과 함께 '남북한 평화프로세스'라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때,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떤 선택이든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것이다. 6자회담과 미국 대선에 의존하는 방식은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그 결과 역시 극히 불투명하다. 반면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중심의 평화프로세스'를 가동시킨다는 것은 성사 여부도 불확실할 뿐더러 한미 관계에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하나는 미국 대선 전까지 한반도의 정세를 잘 관리하면서 미국 대선 이후를 기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멈춰 버린 '남북한 평화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재가동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위험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후자가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 전까지 한반도의 정세를 잘 관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미국 대선 이후에는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정치 일정과 정권의 이해 관계, 그리고 정치적 역학 관계에 종속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핵 해결 없이 정상회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남북정상회담 없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범 이후부터 이러한 입장을 밝혀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초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상세히 밝힌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사안이라는 점 ▲핵 문제에 관한 한 중국·러시아·미국 등 핵 강대국들이 세계 핵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고 이를 제어할 힘을 그 밖의 누구도 갖지 못하다는 점 ▲북한에게 핵 문제는 생존 카드라는 점 등을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에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의 수위는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소한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어야 정상회담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지나치게 강대국의 역학 구도를 의식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지적처럼 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적대 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인 것이 사실이고, 북미간의 타협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핵 문제가 북미 관계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 방식 역시 북미 관계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즉, 문제의 '원인'과 문제의 '해법'을 준별할 수 있는 지혜가 아쉽다는 것이다.

북미간의 입장 차이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의지의 박약함, 그리고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 내 이해 관계의 복잡함을 생각할 때, 핵 문제 해결의 기본축을 북미 관계로 보는 것은 부시의 선의(善意)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고, 부시의 선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남한이 이라크 파병과 같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부시가 선의를 가지고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적 사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핵 강대국이 세계 핵 질서를 주도하는 것과 남북정상회담을 못하겠다는 것 사이에는 거의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 미국, 아니 정확히 부시 행정부를 제외하고는 주변 핵 강대국인 중국, 러시아가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면, 이들 국가는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할 것이다.

핵 문제가 북한의 생존 카드라면, 남한이 북한의 생존을 도우면서 핵 카드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 전략으로서의 북한의 핵 카드가 갖는 의미는 '안보'와 '경제'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보적 측면은 다시 두 가지로 핵무장이 갖는 억제력의 측면과, 핵개발 포기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안전 보장을 받는 것으로 나눠진다.

물론 북한은 이 가운데 양자택일을 해야 하며, 북한이 원하는 것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에너지를 비롯한 경제지원과 경제제재 해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에 따라 남한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에너지를 비롯한 경제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의 회생을 돕고,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의 구실을 완화하는 것이 북한에게 안보적 차원에서 더 이롭다는 점을 들어 대타협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미사일'을 넘어섰다

김대중 정부 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역시 북미간에 미사일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핵 문제와 마찬가지로 미사일 문제 역시 북미관계에서 파생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북한과 미국이 미사일 문제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을 때,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도 촉진시킨 매개체였다. 이는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핵 문제에 종속시킬 것이 아니라,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독립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이 대단히 모호하면서도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핵 해결 없이 남북정상회담 없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북한의 핵 포기 의사 천명부터, 6자회담에서 최종 합의문의 도출,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얘기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CVID)"까지 대단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의 기준을 "완전 핵폐기"로 잡는다면,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에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완전 핵폐기"에 합의하는 것 자체가 불확실할 뿐더러, 설사 합의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데에는 수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언급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최선의 전략 :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결합

그렇다면, 한반도의 위기를 해소하고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 한-미-일 삼각공조와 6자회담의 틀 내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과 더불어 '+알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알파'는 미국 대선전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평화 선언'을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6자회담의 성공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선언'을 결합시키는 방향으로 평화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서는 '남한의 새로운 평화 로드맵 마련 및 남북 특사회담을 통한 북한과의 공유(1단계)→6자회담에서 북한의 대담한 양보(2단계)→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선언 발표(3단계)'→남북한 중심의 평화프로세스 본격 가동(4단계)'으로 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2기 부시 행정부의 출범까지 고려한 한반도 위기 예방 및 리스크 관리 차원뿐만 아니라,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지렛대를 내포하고 있다. 6자회담과 관련해 북한의 대담한 양보를 이끌어 냄으로써, 6자회담의 좌초를 예방하고 핵 문제 해결 방안을 조기에 도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6자회담에서 북한이 얻을 수 없는 인센티브 상당 부분을 남한이 보장함으로써, 6자회담에서 북한이 과감한 양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한은 북한의 실리와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로드맵을 작성해 북한과의 특사 회담을 개최해야 할 것이다. 특사회담을 통해 남한의 대북지원 및 남북경협 활성화와 6자회담에서의 북한의 대담한 양보를 출발점으로 하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북한에게도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이 특사 회담을 통해 북한의 파격적인 양보 조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식량·비료·의약품 등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철도·도로 연결 등 3대경협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적절한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북한의 경제재건 및 안전보장을 위해 남한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평화지향적인 민족공조'가 남북한 모두가 살길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 즉 특사회담을 통한 새로운 로드맵에 대한 남북한의 공유를 평화프로세스 1단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6자회담에서 북한이 대담한 양보 조치를 제시하는 것이고,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차원에서 구성된다. 하나는 지난 3차 회담에서 나온 미국의 제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고, 다른 하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 해소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북한은 구체적인 조치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복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1, 2단계가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4차 6자회담 직후이자 11월 미국 대선 이전인 10월에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시기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핵 문제가 해결 가닥을 잡은 이후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대선 전에 '올인'해야 할 시기라는 점에서 남한의 자율성의 공간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을 적지 않게 '이행'한 이후에 2기 부시 행정부든, 민주당 정권이든, 차기 미국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4단계인 '남북한 중심의 평화프로세스 본격 가동'은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와 합의 사항 실천 방안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 좌우되게 될 것이다. 대체적인 방향과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의 재천명, 6·15 공동선언 재확인,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본격 추진,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의 본격 추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의지 천명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해 유라시아 철도를 건설하는 문제, 러시아의 잉여 전력과 천연가스를 남북한 모두 활용하는 문제, 대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문제, 상호 적대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적 관리 방안, 탈북자 문제 등도 의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과 의제를 가지고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합의사항을 실천해 나간다면, 대내외적 변수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새로운 평화프로세스를 창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04년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 미국 대선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사전에 '위기의 뇌관'을 제거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고,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집권하면 북미관계 정상화의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남북특사 회담 추진해야

물론 남북정상회담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남한이 원한다고 해서 쉽게 될 일도 아니다. 남북한 상호간의 필요와 이익이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안팎의 조건이 어렵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체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고,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정상이 서로의 의중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 단계로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의 특사회담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사회담을 통해 민족공동체의 엄중한 현실을 공유하고 미래의 비전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이미 2000년 미국 대선 직후의 시간을 허송세월한 바 있다. 남북한 모두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인 부시를 바라보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일시 중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중단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로 4년 가까이 지나고 말았다.

이제 11월 2일 미국 대선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모처럼 주어진 시간을 '부시의 낙선'을 기대하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대전환을 모색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남북한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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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8-1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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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에 관한 몇 가지 기사들

 

[프레시안]

 

부시-체니, 한국의 파병을 '대선운동 방패'로 사용

 

"한국,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부대를 파병"

 

  조지 W. 부시 미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대통령선거운동의 주요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다. "부시의 일방주의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 이라크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인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전미 목수훈련센터에서 행한 유세에서 "이라크 문제를 생각해볼 때 한국을 비롯, 일본,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등 전세계 동맹국과 우방국들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자유사회는 평화로운 사회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부시는 이어 "이들 국가는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결코 미국의 안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다른 나라 지도자들에게 떠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마치 한국등의 파병이 자발적 결정인 것인양 호도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이날 CNN '래리 킹 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라크에 관여한 30개국의 지도자들을 (이번 전쟁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면서 "혼자 싸운다는 주장은 이런 나라들의 기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덴마크이든 네덜란드이든 전세계의 이러한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이라크 파병의) 위험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했던 것처럼 희생을 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이날 오하이오주 데이튼 유세에서 "이번 선거에서 우리의 적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미국이 테러전을 혼자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는 터무니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맹국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한국, 영국, 호주,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일본 등 20여개국이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부대를 파병했다"고 주장했다.
  
  체니는 또 "우리를 위협하고 세계에서 무고한 이들을 살상하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된다"며 "그자들을 파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한규/기자

 

 

 

파월도 ‘일 헌법9조’ 개정 종용

 

안보리 상임국 진출관련
자위대 역할 확대요구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에 이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군대 보유와 전쟁수행을 금지한 일본 헌법 9조의 개정을 사실상 종용하는 발언을 해 주목된다.

파월 장관은 12일 일본 언론들과의 회견에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문제와 관련해 “헌법을 개정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 국민이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헌법 9조는 음미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일본의 개헌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교도통신〉은 파월 장관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 군사적 역할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발언은 일본의 국제적 역할에서 군사적 기여를 확대하라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미티지 부장관이 지난달 21일 미국을 방문한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에게 “국제적 이익을 위해 (일본이 해외에서) 군사력을 전개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말해 논란이 인 적이 있으며, 아미티지 부장관은 이전에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되풀이해 헌법 9조 개정을 촉구해왔다.

파월 장관은 이어 한·중·일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대해 “미국이 이 지역의 우방과 유지하고 있는 쌍무관계를 어떤 식으로도 저해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그렇게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이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주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는 미국이 참가하는 아세안지역포럼(ARF)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협력기구가 이미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다른 틀을 마련하려는 이유가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필요성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파월 장관은 또 “이란은 분명히 핵무기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일본정부와 업계가 핵문제를 염두에 두고 에너지 관련 투자를 할지 여부를 판단하기 바란다”고 말해 일본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어렵게 성사시킨 이란 아자데간 유전 개발계약을 재고하도록 압박했다. 이에 앞서 일본언론은 미 정부 고위관리가 일본 경제산업성 당국자에게 아자데간 유전개발을 재고하도록 비공식적인 요구를 해왔다고 전한 바 있다.

외신종합

 

 

추가파병 관련경비 3105억원 의결

올 일반회계 예비비서 지출키로

정부는 10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과 이라크 전후복구 지원을 위한 경비 3105억4954만원을 2004년도 일반회계 예비비에서 지출할 것을 의결했다.

정부 지출안을 보면, 국방부 소관의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파병경비가 2085억4954만원이고, 외교통상부 소관의 이라크 재건지원 및 중동특별협력사업비가 1020억원이다.

국방부 소관 예산에선 장비구입·운영비 항목이 691억8954만원으로 가장 크고, △시설건설비(335억9733만원) △부대운영비 및 장병휴양비 등(333억4270만원) △해외파견수당(313억6766만원/3700명, 3~5개월) △민사작전·재건지원(170억8713만원) 순이다. 외교부 소관 예산은 한국국제협력단 출연 방식으로 집행되며 이라크 재건지원에 660억원, 이라크 주변국 지원에 360억원을 쓰도록 돼 있다.

한편 국회는 지난해 12월29일 2004년도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며 이라크 추가 파병 경비와 관련해 2천억원을 일반회계 예비비 명목으로 책정한 바 있으며, 지난 2월13일에는 정부가 관련 소요 경비를 특정하지 않은 채 제출한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 파견동의안’을 의결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후진타오가 동북공정 지시·승인”


  관련기사

  • 저우언라이 “고구려·발해는 한국역사”

  • 중 ‘헤이허일보’ 보도…“중앙정부 무관” 주장 허구로
    고구려사 연구소 자료서도 최고위지도자 지휘 드러나

    한민족 고대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이 중앙정부·당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중국 쪽 주장과는 달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위 지도자들의 승인과 비준 아래 추진돼왔음이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13일 <한겨레>가 확인한 중국공산당 헤이룽장성 헤이허시위원회 선전부 간행 <헤이허일보> 기사 등의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해 8월5일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 제3차회의가 헤이허시에서 열린 사실을 보도(사진)하면서 “전체 이름이 ‘동북변경역사와 현상 시리즈 연구공정’인 동북공정은 후진타오 동지가 2000년 중국사회과학원을 통해 지시해 승인한 사회과학 연구항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고구려사 왜곡에 앞장선 대표적인 연구기관 가운데 한 곳인 지린성 퉁화사범대학의 고구려연구소 내부자료에 따르면, 이 연구소가 1998년 주최한 고구려 학술 토론회가 중국 중앙 영도자들의 고구려사 연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현재 주석), 리란칭 당시 국가 부총리, 첸치천 당시 국무위원, 리톄잉 당시 국가교육위원회 주임 겸 서기(현 중국사회과학원 원장 겸 동북공정 고문), 딩관건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부장 겸 중앙서기처 서기 등 동지들이 잇따른 중요한 지시를 내렸으며, 이로 인해 고구려 역사와 문화 연구가 극히 대대적으로 추동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자료는 또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새 천년이 시작될 즈음 ‘국가 중점 공정항목’인 ‘동북변경역사와 현상 시리즈 연구공정’이 시작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자료는 98년 6월26~28일 퉁화시에서 퉁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가 지린성 사회과학원 고구려연구중심과 공동으로 ‘전국 제1차 고구려 학술 토론회’를 연 뒤 이 토론회 내용을 <당대중국변강연구> 제32기에 싣자 후진타오 등 많은 중앙 영도자들이 고구려사 연구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중국 랴오닝성 문사연구관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곳 쑨진이 연구관이 쓴 고구려 역사 관련 서적이 “중앙과 랴오닝성 지도자들의 중시와 지지를 받았으며, 후진타오, 딩관건, 리란칭, 첸치천, 리톄잉 동지의 중요한 지시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쑨진이 연구관이 쓴 <동북아역사지리연구>(2000)는 동북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고구려사 등을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지리 연구서다.

    이런 자료들은 “동북공정이 ‘지방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이어서 중앙정부가 통제하기 어렵다”는 중국 외교부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중국 중앙정부 최고 지도자들의 승인과 지시 아래 진행돼왔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6일 박준우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이 중국을 방문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항의했을 때 “중국은 역사 왜곡의 의도가 없으며, 동북공정은 지방정부의 일이이서 통제가 어렵다”고 해명한 바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패권국가’의 기선제압용 도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 한반도 통일 뒤 동북지방 동요를 우려

    ▣ 베이징=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중국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초강대국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중국이 어느 날 낯빛을 바꿔 초강대국으로 변하고 세계에서 패권국가를 자청하며 곳곳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모욕하고 침략하고 수탈한다면 세계 인민들은 마땅히 중국에게 사회제국주의라는 모자를 씌워야 하며, 그 사실을 폭로하고 반대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인민들과 함께 그것을 타도해야 할 것입니다.”

    1974년,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국제연합(UN) 특별회의에 참석한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UN에서 중국의 ‘반패권주의’ 입장을 천명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중국은 아직도 30년 전 그대로의 ‘낯빛’을 하고 있을까. 중국인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것도 아주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 “‘동북공정’은 순수한 학술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철저한 패권주의 발상이다.” 7월19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김진수 기자)

    30년 전 반패권주의 선언은 어디로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고구려사 문제는 뭐지?”, “그건 학술적인 문제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잖아. 그 문제와 중국의 패권주의가 무슨 상관이냐. 한국인들은 왜 그 문제로 흥분을 하는지 모르겠어. 역사 문제는 민족주의 감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거야. 학술적 논리와 이성으로 풀어야지.”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한 중국인 박사연구생은 최근 한-중 사이에 벌어지는 고구려사 관련 역사 논쟁을 한마디로 ‘학술 문제’라고 못박으며 한국인을 ‘다분히 감정적인 민족’이라고 몰아붙인다.

    고구려사 문제를 철저히 학술 문제라고 ‘발뺌’하는 중국 정부의 말투를 닮아 있다. 그는 이어서 한번 더 다짐하듯 말한다. “주변 국가에서 아무리 중국이 패권을 추구한다느니 또는 반대로 패권을 추구하라고 부추긴다고 해도 중국은 절대로 그럴 마음이 없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중국식 패권주의 발상이다. 절대로 학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국 학자들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중국이 아무리 패권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패권주의 외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동아시아 정세를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국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중화주의의 부활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선족 학자는 최근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주체로 진행되는 ‘동북공정’ 사업을 순수한 학술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철저한 패권주의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낯빛’을 바꿔서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동북공정’으로 표면화된 고구려사 관련 ‘역사전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중간 ‘역사전쟁’이 본격화된 느낌이다.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과 동북3성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공정’ 사업 중의 하나인 고구려사의 중국사로의 편입 문제가 최근 양국간 가장 민감한 정치외교적 현안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4월20일 중국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 고대사를 소개하는 부분에 고구려와 관련된 문장을 삭제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시정을 요구하면서 양국간 고구려사 관련 논쟁은 ‘학술적’ 차원을 떠나 정부 차원의 외교적 문제로 확대됐다.


    △ 중국인 관광객들이 지린성 지안에 있는 장군총 부장묘를 둘러보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대놓고 밝히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상수 기자)

    대중적 잡지에도 고구려사 왜곡

    하지만 한국 정부가 중국 외교부의 홈페이지 사태를 계기로 부랴부랴 ‘뒤늦은’ 범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대책에 나선 것과는 달리, 중국 정부는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관망하는 자세다. 이것은 한국 정부의 시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지난 8월5일 한국 고대사와 관련한 외교부 홈페이지를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대신 1948년 8월15일 한국정부 수립 전의 한국사를 전면 삭제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마지못해 ‘응수’를 하기는 했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은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또 이 문제로 베이징을 급히 방문한 박준우 외교통산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중국 지방정부와 일부 대학교재 등 출판물에 의한 고구려사 관련 왜곡 시정을 요구하자, 중국쪽이 “중국은 큰 나라이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각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일일이 통제할 수 없으며, 지방정부나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출판물을 통제하기 어렵다”며 한국쪽 요구를 사실상 ‘묵살’한 데서도 중국 정부가 당분간 동북공정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은 정부 정책과는 상관이 없는 순수 학술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외교부 홈페이지 수정 등 사실상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돌아선 계기는 지난 6월28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중국과 북한의 고구려 관련 문화재가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부터다. 지난해 ‘고구려는 중국 고대 지방 소수민족의 하나다’라는 요지로 중국 언론에서는 최초로 <광명일보>에 고구려 관련 글이 실린 이후 한국 국민들 사이에 반중 정서가 격화되자 중국 정부는 급히 ‘언론 통제’에 나섰다. 그러다 쑤저우 대회를 전후해 <인민일보> <신화사> 등 관영 언론매체에 공개적으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입장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공개적 주장은 관영매체뿐만 아니라 <삼련 생활주간>과 중국판 지오그래픽인 <중국 국가 지리> 등 대중적 잡지에도 여과 없이 실렸다. 지난 7월20일 이후 다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지린성 일대의 고구려 문화유산 여행객들에게도 버젓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6월4일자로 갱신된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동북공정 관련 조직표에도 정부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대놓고 밝히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우려할 만한’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정면 대응보다는, 중국쪽의 ‘학술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을 믿고 싶어하던 한국 정부에게는 더없는 재앙을 예고한다. 이 문제가 전면화되면 한참 ‘잘나가던’ 두 나라간에 한판 ‘전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

    조선족 학자는 “동북공정의 추진은 향후 한-중 관계에서 한없이 우려되는 일이지만 중국은 결코 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국익 문제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반대하고 항의하면 중국이 적당히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라며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아주 집요하고도 강하게 맞서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고구려사를 되찾을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중국 체제의 특성과 사업 추진 성격상 한국 정부에서 아무리 강한 어조로 항의를 한다고 해도 중국 정부는 절대로 ‘끄떡’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북한의 항의 강도에 따라서 ‘왜곡 수위’가 조절될 수는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8월3일부터 광개토대왕 순수비문의 탁본을 특별 전시하면서 중국의 것으로 버젓이 소개하고 있다. (사진/ 도쿄 연합)

    도대체 중국 정부는 왜 지금 30년 전의 평화로운 ‘낯빛’을 바꿔서 갑자기(?) 다른 나라 사람을 모욕하고 역사를 침탈하려 하는 걸까.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인 왕이저우(王逸舟)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향후 10년 동안 중국 외교가 한바탕 조용한 변화 혹은 조용한 혁명을 겪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즉, 내부의 발전 문제와 목표에 치중했던 과거의 내부지향형 외교에서 안과 밖을 둘 다 돌보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며, 이런 변화는 중국의 ‘도광양회’(빛을 감춰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힘을 기름)와 ‘화평굴기’(평화적으로 일어섬) 정책의 중요한 과정이다. 중국은 과거 20년 이상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주로 내부지향적 목표설계를 했고, 국제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했다. 즉, 도광양회는 잘했으나 ‘유소작위’(대외관계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는 충분하지 못했다. 이것은 현재 중국의 힘과 갈수록 증가하는 중국의 국제영향력과 비교하면 잘 맞지 않는다.”

    과거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덩샤오핑이 제기했던 중국 외교정책의 근간인 ‘도광양회·유소작위’에 ‘조용한 혁명’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왕이저우 교수뿐 아니라 중국 내외의 대다수 중국 외교정책 연구가들은 제4세대 지도자 그룹인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가 들어선 뒤 중국 외교정책의 무게중심이 도광양회에서 유소작위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중국 정부가 자주 언급하는 21세기 중국의 신외교전략인 화평굴기 정책은 주로 내부 문제에 치중하면서 외부 문제에는 되도록 신경을 끄려고 했던 도광양회 자세보다 더 능동적이고 주동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한다는 유소작위에 중점을 두면서 평화적으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대외용 구호이다. 이러한 외교정책의 ‘조용한 혁명’의 배경에는 지난 10년 이상 ‘빛을 감춰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힘을 기른’ 중국의 급부상한 정치·경제적 힘이 도사리고 있다. 힘을 기른 이상 모든 국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것이며, ‘대국’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북공정으로 드러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도 바로 이러한 중국의 ‘대국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8월6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는 한국 외교부. 중국 정부는 느긋하게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사진/ 박승화 기자)

    남한이 흡수통일하면 압록강에 미군 주둔?

    중국 국제 문제 연구가인 리한추(李寒秋)가 지난해 발표한 ‘한반도 지역정치 정세와 외교전략틀 종합분석’이라는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중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에 심대한 불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한반도 통일(특히 남한에 의한 통일)과 그에 준하는 어떤 변화도 원하지 않지만 ‘만일’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예상하는 ‘최악’의 경우는 남한에 의한 통일과 이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미군 주둔 지속이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압록강변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중국에게 심각한 도전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붕괴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 상실도 중국에게는 흡수통일 못지않은 위험한 상황이고, 이 모든 ‘위기’는 결국 대만과의 통일사업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티베트, 신장 등과 함께 중국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로 평가받는 동북 지방이 한반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심각한 동요를 일으킨다면 중국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한다. 따라서 리한추의 표현을 빌리면 “중국의 전략적인 변경지역에서, 중국은 결코 도광양회 정책을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먼저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구려사 왜곡은 중국의 이같은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기선제압식 도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국가이익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모욕하고 이웃의 역사를 침탈하는 패권적 이익이라고 한다면, 중국은 30년 전 UN에서 ‘반패권주의’를 맹세했던 죽은 덩샤오핑에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순진한’ 국제정치학 박사연구생처럼 이번에도 역시 “한국인들은 왜 학술적인 문제를 민족주의 감정으로 흥분해서 난리냐”고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북한이 단단히 토라졌다

    탈북자 기획 입국 등으로 남북관계 경색… 북의 노무현 정권 불신 회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정부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10주기 조문 방북 불허와 탈북자 대규모 기획 입국의 여파로 남북 관계가 조만간 쉽게 풀릴 기미가 안 보여서다. 8월 초로 예정된 남북 장관급 회담이 무작정 표류됐고, 해운실무회담과 일부 민간 교류도 중단됐다. 남북 군사 분야 신뢰 구축 작업도 뚝 멈춘 상태다. 북한 군부는 7월14일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저지하기 위한 경고용 함포 사격을 빌미 삼아 장성급 군사실무 대표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8월15일까지 끝내기로 했던 비무장지대 선전물 철거작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북한이 단단히 토라진 셈이다.

    정부 “소강 국면 장기화되지 않을 것”


    △ 8월4일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표들. 한국 정부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 10주기 조문 방북을 불허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정부가 직접 나서서 450여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을 기획 입국시킨 조치는 북한 당국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요즈음 실리우선주의 방침에 따라 웬만하면 ‘대화 중단’이라는 강수를 빼들지 않았던 북한이다. 그만큼 탈북자 문제는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봐야한다. 사실상 대규모 기획 탈북을 부추기는 내용이 담긴 북한인권 법안이 미국 하원을 만장일치로 막 통과한 뒤라 북한 당국이 느끼는 당혹감은 더 컸을 법하다.

    북한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범민련과 한총련 등 국가보안법상 이른바 ‘이적단체’로 규정된 구성원들의 8·15 남북 공동행사 참가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8월6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문제는 “3대 축(종단, 민화협, 통일연대)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범민련과 한총련이 북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통일연대쪽은 지난 7월31일 상임대표자회의를 통해 범민련과 한총련의 참가를 고집하고 있어 8·15 공동행사의 성사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이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국면에서도 비교적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조문 문제나 탈북자 문제 등 체제와 직접 연관된 사안들이 지금 중첩해서 발생됐다는 점에서 남북 대화를 비롯해서 일부 남북간의 합의사항 이행을 잠정적으로 유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하지만 남북 관계의 소강 국면은 장기화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근거로 경협이라든지 또 일부 민간 교류가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의 한쪽 문은 지금 계속 열려 있는 상태고, 남북 관계는 이제 불가역적인 상황 속으로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소강 국면, 즉 남북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 탈북자 대규모 기획 입국 등의 여파로 남북 관계가 쉽게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7월27일 서울에 도착한 탈북자들. (사진/ 외교통상부)

    대남 정책 전반을 재검토

    실제 북한은 당국간 회담은 응하지 않고 있지만 차관으로 지원하는 식량을 계속 받아들이고 있고, 청산결제나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사업에서도 별다른 동요는 안 보이고 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의 몇몇 도시에서 남북한 기업인간의 경협 협의도 진행되고 있고, 8월 말 베이징에서 열리는 남북한-중국간 국제학술회의에의 참가 의사도 최근 밝혀왔다. 북한이 과거와 다른 신중한 행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낙관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신은 회복하기가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고 귀띔한다. 비록 우여곡절 끝에 남북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뿌리 깊은 불신까지 해소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벌여놓은 것은 많은데, 제대로 되고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더라. 이는 남쪽 정부의 소극적 자세와 무능력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북한은 앞으로 갈 길은 먼데, 남은 임기 동안 노무현 정부와 뭘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대규모 탈북자 입국 등에 크게 자극받은 것은 사실이나, 단지 이 때문에 남한 정부와의 대화를 잠시 접은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남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국면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물론 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현 단계에서는 오는 9월의 4차 6자회담 개최와 11월의 미국 대선 등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앞두고 있는 터라 남북 관계를 최소한 현상 유지 선에서 끌고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체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미 관계의 변동 여부가 대남 정책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대남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거나, 그렇다고 남북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 같지는 않다. 또 북한이 속도를 낸다고, 남한이 맞장구를 쳐서 따라오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북한도 알 만큼 안다. 핵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는 남한 정부의 한계를 꿰뚫어 보고 있어서다. 여기에다 조문 불허 결정에서 보듯이 국내 보수층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 정부의 조심스러운 행보는 북한 지도부를 더 지치게 만들고 있다고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은 말한다.

    남쪽 내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대북 정책이 국내 정치나 대미 외교의 볼모로 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정부가 국내외 보수층의 눈치를 과도하게 살피면서 대북 정책의 자율성을 좁히는 악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 마치 결백증를 지닌 환자와 비슷해 보인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고 말한다. 남북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핵 문제는 조기에 풀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너무 소심한 대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 8월5일 남쪽이 전달한 쌀을 북쪽 인부들이 하역하고 있다. 최근 남북 관계 경색에도 일부 민간 교류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정부에게 지금은 ‘시간이 약’일 뿐

    한 전직 정부 관계자가 내뱉는 쓴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 정부는 비공식 막후 대화 채널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일본은 지금 일본인 납북자 해결뿐 아니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비정부 라인도 풀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북 채널은 다양할수록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나 막힌 관계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일본 정부의 태도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사람을 너무 가리는 게 큰 문제다.”

    북한은 조문 파동, 대규모 탈북자 기획 입국 등을 자신들의 체제를 모독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 내 어느 누구도 총대를 메고 “그냥 대충 넘어갑시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게 정부 관료나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느냐, 아니면 좀더 냉각기를 갖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린 셈이다. 이봉조 차관은 “북한의 현실은 회담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 벌어지는 현실적 과제들, 문제들이 그들의 명분이나 입장에서 보면 회담을 선뜻 예정대로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그 현실과 명분을 맞추어나가는 데 북한으로서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정부 차원에서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고 조기에 회담장으로 불러낼 수 있는 뾰족한 대안도 없어 보인다. 보수층이나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는 정부에게 지금은 그저 ‘시간이 약’일 뿐이다. 정부는 남북간 대화가 매우 중요하나 지금 대화가 안 열려서 남북 관계가 안 되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현상 유지적 대북 정책 방향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한여름의 찜통더위만큼이나 남북 관계도 답답해 보인다.

     

     

    [프레시안]

     

     

    8.15민족공동행사, 4년만에 끝내 무산

     

    북 "남조선당국, 뒤로 가고 있다" 비난, 24일 작가대회도 미지수

     

      남북화해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8.15민족공동행사가 결국 무산됐다. 개최 4년째를 맞아 발생한 일이다.
      
      이번 8·15 민족공동행사 무산은 그동안 쟁점이 되어 왔던 한총련·범민련 등 통일단체들의 방북 불허 방침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넘어 김일성 10주기 조문 불허, 탈북자 대량 기획입국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 상황의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남조선 당국, 뒤로 가고 있다"

      북측 민화협은 1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13일자 성명을 통해 남한 당국의 김일성 10주기 조문 불허, 탈북자 집단 입국, 범민련·범청학련 남측본부와 한총련 대표에 대한 방북 불허 등을 비난하며 "올해의 8·15 통일행사는 명백히 남조선 당국에 의해 북과 남, 해외가 공동으로 개최할 수 없게 됐다"고 공동행사 파기를 선언했다.
      
      성명은 또 "우리는 남조선 당국에 범민련과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 대표들이 올해 8·15통일행사에 참가하도록 하는 문제를 거듭 제기했지만 남조선 당국은 지난 6일 통일부 차관을 내세워 참가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을 공개 발표했다"며 "결국 오늘 시대는 앞으로 가고 있으나 남조선 당국은 뒤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노무현정부를 비난했다.
      
      성명은 이어 "남조선 당국은 추모대표단의 평양방문을 불허한 데 이어 이른바 '탈북자'들의 집단적 유인납치범죄를 감행한 위에 또 이번에 8·15공동행사 파탄죄까지 덧쌓는 죄를 짓고 있다"며 "우리는 남조선 각계각층이 보안법을 휘둘러 남북왕래를 차단하고 통일행사까지 파탄으로 몰아넣는 자들에 반대해 항거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남북화해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 재확인
      
      이번 사태는 국가보안법이 남북 화해 협력에 크나큰 장애물이라는 점이 재확인된 또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번 행사 무산의 표면적 이유 중 하나인 한총련과 범민련 등 시민단체들의 방북 불허 결정은 국가보안법 상 이들 단체가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인데, 실정법으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이런 사태의 재연은 불가피한 점이 있다.
      
      남측 민화협은 그동안 한총련과 범민련 등 단체들은 비공식적으로 8.15민족공동행사에 참여해왔고, 북측도 국가보안법을 정면으로 문제제기했을 경우 행사 자체가 무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올해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들어 행사를 무산시킨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민간 통일단체 관계자는 14일 이와 관련 "북측이 국가보안법을 지금껏 문제제기 하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상당히 배려한 측면이 크다"며 "이번 행사 무산 사태는 6.15남북공동선언한 이래 4년동안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치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남북관계가 화해무드일 때는 민간단체의 남북교류는 원활하게 진행되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조문불허, 기획입국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는 민간단체의 교류마저도 무산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국가보안법, 남북관계교류법 등 관련법 정비가 매우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사태장기화 여부, 24일 민족작가대회 성사가 시금석
      
      한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민간단체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이뤄지다 4년만에 처음으로 민간 교류행사가 무산된 이번 상황이 얼마만큼 지속될 지 민간 통일단체들은 주목하고 있다.
      
      사태 장기화의 시금석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북측 조선작가동맹과 공동으로 24~29일 북한의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에서 개최할 예정인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의 성사여부가 주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 행사는 남측 작가 1백10명, 해외거주작가 10여명, 북측 작가 1백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민간교류행사로 이 행사가 성사될 경우 다시 남북관계 경색에도 불구하고 남북 민간단체의 교류의 문은 열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남측 민화협은 이번 북측의 행사 무산 성명에 대해 유감 성명을 발표하고,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국회 본관앞에서 '평화음악회'를 여는 것으로 이번 8.15행사를 갈음할 예정이다.
      
      다음은 북측 민화협 성명 전문이다.
      
      북측 민화협 성명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13일 성명을 통하여 《올해의 8.15통일행사는 명백히 남조선당국에 의하여 북과 남, 해외가 공동으로 개최할수 없게 되였다.》고 발표하였다.
      
      성명은 《우리는 올해 8.15통일행사를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단체, 인사들이 누구나 차별없이 참가하는 전민족적규모의 행사로 성대히 진행되게 할 일념에서 모든 성의를 다하여 준비하여왔》으며 《이러한 립장으로부터 남조선당국에 범민련과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들이 이번 행사에 자유롭게 참가하도록 할데 대하여 거듭 제기하였》으나 남조선당국은 지난 6일 《통일부》차관을 내세워 범민련과 《한총련》이 북에서 진행되는 8.15통일행사에 참가하는것을 허용할수 없다는것이 《정부》의 립장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함으로써 당국자체가 통일운동단체들을 차별하고 배제한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고 강조하면서 이와 같이 지적하였다.
      
      성명은 남조선당국은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도 범민련과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과 같은 진보적통일운동단체, 성원들의 합법적통일행사참가를 체계적으로 가로막아왔으며 지난 6월 남측지역인 인천에서 있은 6.15공동선언발표 4돐기념 통일행사에 참가하는것마저 불허한데 대해 상기하면서 《남조선당국이 민족의 한결같은 지향과 요구에 역행하여 이 단체들의 이번 8.15통일행사참가까지 끝내 불허한 망동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는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이어 《남조선당국은 추모대표단의 평양방문을 불허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데 이어 이른바 〈탈북자〉들의 집단적유인랍치범죄를 감행한우에 또 이번에 북, 남, 해외공동의 8.15행사파탄죄까지 덧쌓음으로써 나라와 민족앞에 2중, 3중의 범죄를 짓고있다.》고 하고 《결국 오늘 시대는 앞으로 가고있으나 남조선당국은 뒤로 가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6.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어긋나게 날이 갈수록 반공화국대결을 조장하며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죄악의 덩어리를 빚어내고있는 남조선당국의 그릇된 처사를 온 겨레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한다.》고 지적하고 《온 겨레와 력사는 시대의 락오자로 행세하는 남조선당국의 범죄를 반드시 계산할것이다.》고 강조하였다.
      
      성명은 또한 남조선과 해외의 모든 통일운동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이 오늘의 6.15통일시대에 와서까지 낡은 대결시대의 유물인 《보안법》을 휘둘러 북남래왕을 차단하고 통일행사마저 파탄에로 몰아넣는 자들을 반대하여 거족적인 항거의 목소리를 높이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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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말]

     

    인간을 ‘왕따’시킨 글로벌 경제권력의 ‘접속’

     

    세계시민사회속으로16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박성원 신학박사 세계개혁교회연맹 협력과 증언부 총무

    20세기 자락을 접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을 신호로 유럽의 지정학적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 냉전시대로부터 소위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씩 인류의 마음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희미한 희망은 곧 절망의 무덤에 묻혀야 했다. 세계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사회운동들은 예상치 못한 변화에 넋을 잃고 거의 5년을 지낸 후, 서서히 ‘세계화’(globalization)를 냉전 후기의 세계 갈등요인으로 지목하고 이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이 ‘세계화’ 화두를 앞세우고 견제자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세계로 마차를 몰고 있다. 마치 그 옛날 백인들이 서부개척을 하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삶의 근거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자신들의 가치를 심었듯이 지금 세계를 그렇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과거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 결과 세계는 경제적 불평등, 테러리즘, 군사주의, 가치관의 붕괴, 문화식민주의, 자연의 파괴 등 엄청난 지정학적, 지경학적, 정신적, 경제적, 생태계적 허리케인의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포스트 냉전시대에 경제세계화를 앞세우고 미국이 벌이고 있는 지정학적 드라이브는 세계와 아시아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세계화’란 훨씬 복잡해진 상황 속에서 우리의 지정학(geo-politics)적 시각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에서 출발한 지정학의 변화

    지정학을 말할 때 우리는 세계가 처해 있는 시간(time)과 공간(space)의 이해 및 현실에서 출발한다. 역사 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와 상황이 여러 가지로 변천되어 왔다. 옛날에는 인간이 자연과 지역이란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왔다. 이때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자연적이고(natural) 지역적(local)이었다. 또한 시간과 공간도 임의적으로 정의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자연과 삶이 위치한 지역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정의되고 통제되었다.

    땅에 근거를 둔 농경생산물은 지역의 공간과 자연의 시간에 의존했다. 공동체의 구성은 자연을 필수적 연계로 하는 이 원초적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형성되었다. 부족공동체가 바로 이런 예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봉건주의와 전체주의적 왕국들은 자연적인 지정학적 상황과 농경경제에 의존했다. 문화의 발전도 종교적 신앙도 이 자연적 시간과 공간 속에 형성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산업문명으로 인해 이 패러다임은 혁명적으로 변화한다. 지정학의 본질이 전혀 새롭게 바뀐다. 산업지정학(industrial geo-politics)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절대적인 공간과 절대적인 시간 개념이 산업사회를 지배했다. 삶을 근본적으로 기계라는 눈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은 산업사회의 필요와 지시에 따라 운영되었다. 산업경제는 절대적 시간과 절대적 공간의 지정학에 의해 좌우되었다. 이것이 근대성의 핵이다. 이 문명의 추진이 바로 근대화로 간주되었다. 서구 계몽주의가 세계철학을 지배했고 서구 계몽주의가 산업사회의 구조를 형성했다. 과학과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삶의 중심이 지역의 봉건 지정학에서 국민국가(nation-state) 지정학으로 옮겨갔다. 근대산업 지정학에서는 자유시장의 개념과 근대 국민국가, 다윈의 사회진화론이 등장했다. 이 새로운 지정학에서는 개인이 절대적 정체성을 가진다. 사회적 관계는 개인 사이의 계약(Contracts)에 의해 규정된다. 문화적으로는 자유와 사유재산이 지고의 가치로 숭상된다. 인간 공동체의 자연에 대한 관계는 지배와 정복의 개념이었다.

    이 산업시대의 지정학에 있어서 권력의 중심은 서구산업국가였다. 근대 산업지정학은 서구문명이 비서구문명권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주의는 서구의 산업문명이 비서구사회로 그 시장 확장을 기하기 위해 생겨난 지정학적 구도이다. 서구자본과 서구 시장이 근대산업 지정학에 포함되어 확장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훨씬 발전된 과학과 고도의 기술개발 덕택으로 새로운 사이버 과학기술전자정보시대의 새로운 지정학이 등장했다. 이 새로운 지정학을 과학기술전자정보지정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새로운 지정학은 시간과 공간을 무한의 개념으로 변화시켜 버렸다. 이전의 지정학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이제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다. 부시 정권은 ‘반테러 전쟁’을 종종 무한전쟁(unlimited war)이라고 정의한다. ‘무한’이란 개념은 종래에는 철학이나 종교적 개념이었으나 이제는 ‘무한전쟁’, ‘무한경쟁’ 등 중요한 지정학적·지경학적·군사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레이건이 시작한 ‘별들의 전쟁’과 부시 정권이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 개념은 바로 공간을 무한화하는 것이다. 시간의 무한화는 이미 코소보 전쟁 때부터 사이버상으로 전쟁을 끝낸 경험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과학기술전자정보지정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무한화되어 버렸다.

    지정학의 주 플레이어도 달라졌다. 근대 지정학에서는 국민국가가 지정학의 주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기술전자정보시대의 지정학에서는 거대 초국적 기업과 초국적 금융기관이 주 플레이어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한 오늘의 지정학

    이런 새로운 상황 속에서 과거 지정학의 대상과 역할도 크게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사람과 삶이 목적이었다. 농경사회의 지정학은 권력을 소규모로 행사하긴 했어도 사람의 삶과 부족공동체의 유지가 목적이었다. 근대산업사회에 와서는 비록 시간과 공간이 산업적 목적에 의해 정의되고 통제되긴 했어도 사람과 삶이 목적이었다. 지정학의 주체가 봉건체제에서 국민국가로 바뀌었지 그 권력이 지향한 것은 사람과 삶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권력이 지정학의 핵으로 작용했다. 이 권력은 지배와 정복이란 개념과 결합하여 식민주의를 낳았고 역사 속에서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권력 확장의 과정을 끊임없이 산출했으며, 이에 의해서 세계가 견딜 수 없는 억압을 지역사회에서부터 국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 몰아붙여지는 오늘의 세계화 속에서는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한다. 경제는 삶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부의 축적이 목적이 되었다. 금융도 자본도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이 되어야 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땅도 노동도 부의 축적이란 목적으로 둔갑했다. 삶이 노예화되고 있다. 지정학의 주체인 국민국가도 이 세계화시대에는 ‘국민과 국민의 삶에 대한 봉사’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초국적 자본과 국제금융기관들의 목적을 달성시켜 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의 안보가 그 본래의 목적인 군대도 세계화의 상황 속에서는 시장 확장, 시장 보호 등이 그 목적으로 변해 버렸다.

    미국이 ‘반테러 전쟁’이란 이름으로 일극주의에 의해 다자주의를 완전히 폐기시키고 세계가 어렵게 일구어 온 국제사회 텃밭을 황폐화시켜 가면서 심지어 교토 의정서도 실종시키며 온갖 국제법을 무력화하면서 벌이고 있는 전쟁도 사실은 지정학적·지경학적 확장을 통한 자원전쟁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지구적 군사지배에 의해 규정지어지고 있다. 미국은 미국 영토 이외에 세계에 7백25개의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협력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다른 군사동맹체들이 여기에 힘을 더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략 변화도 바로 냉전 이후의 일극주의 세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주둔 미군의 증가와 천문학적 숫자의 군비증가는 2002년 9월에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내년에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군비 중 절반을 차지하는 비용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4천6백억 달러가 쓰일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군비는 지난 3년 동안 엄청나게 증가했다. 가장 큰 폭의 증가는 연간 미군의 군사예산이 유엔(UN)의 연간 예산인 14억 달러의 50배인 7백억 달러로 증가한 점이다.

    미국의 군사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미국이 첫 번째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테러의 위협이다. 그러나 사실 미군의 군비 중에서 테러를 척결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 세계가 1년에 개발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5백억 달러에 불과하고 군비로 쓰는 돈은 1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군비가 전 세계가 쓰는 군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돈을 개발에 쓴다면 테러는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으며 추진 중인 군사화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테러가 아닌 다른 데 있다. 그것은 9·11 이후의 새로운 상황 때문이 아니다. 이미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설정된 ‘군사주둔을 통한 세계시장 지배의 영향력 증가 및 유지’라는 미국의 세계 지배 비전의 끊임없는 실천이 군사주의 확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지정학의 본질이다.

    이에 덧붙여 석유수입에 의존적인 미국 경제, 아주 제한된 예비비, 엄청난 무역적자로 점점 미국 경제가 불안해지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 경제의 안정은 석유나 달러의 우위성을 지켜야 가능하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주요 무역 파트너들이 미국 채권을 사주어야 재정균형을 맞출 수 있다. 거기다가 현 정권과 끈끈한 유착관 계속에 있는 석유산업의 강력한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군산복합체뿐만이 아니라 군산학(Military-Industrial-Academic) 복합체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세력을 극대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의 이면에는 초국적 기업의 목적을 위해 군대나 학문까지 동원되어 봉사하고 있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존재한다. 흔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그 국가는 이제 초국적 기업의 자본과 부의 축적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아시아

    세계 곳곳에 군대를 파견하고 소형 핵무기(mini-nukes),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비롯하여 우주의 군사화, 사이버 전쟁 시나리오 등 신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볼 때 세계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로 전쟁이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전쟁 상황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프리카는 오일, 다이아몬드, 목재 등 자원착취 외에는 세계 지정학적·지경학적 지도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세계 무역라인이나 금융시장라인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사회주의권의 종주국인 구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인 동구권이 무너졌으므로 더 이상 이 지역도 세계갈등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자연히 미국은 아시아를 새로운 갈등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종교적으로 아랍권은 미국이 견제해야 할 첫 번째 상대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핵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것은 거의 자신이 직접 해야 할 숙제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숙제인 셈이다. 아랍 달러에 대한 제어 및 지배는 숙명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랍 달러권과 대등하게, 오히려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화교자본이다. 중국의 경제는 가까운 미래에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황해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은 미국의 세계지배 야욕과 유럽의 자기이익에 엄청난 도전이 되기도 하며 동시에 먹이가 되기도 한다. 서구는 동북아를 경제협력 파트너로 허울 좋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서구에 도전세력이 되지 않도록 이 지역을 적절히 묶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조작을 통해 접근하고 있고 유럽은 경제협력이란 미명하에 지금 결사적으로 중국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 중요한 개입원인이 되기도 하는 북한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접근이 목적을 같이 하면서도 방법이 다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접근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끈질긴 경제협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이 핵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있고 유럽은 여러 나라가 북한과 수교를 하는 등 경제협력의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국민적 희망과 정반대인 한반도의 지정학

    시장자유화란 이름아래 구조적 권력을 장악하거나 그 권력의 혜택 속에 들어가기 위한 결사적인 경쟁문화가 조성되고 있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는 만약 자신들이 지금 세계의 금융과 자본 정보와 상품을 장악하고 있는 이 글로벌경제권력에 접속되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될 수 있다는 절망감 때문에 어떤 국가는 매춘부처럼 눈을 흘기면서 어떤 국가는 눈물을 머금고 여기에 매달리고 있다. 딴 생각이 있어서 저항하거나 미온적이면 베네수엘라, 아이티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정치적 역학관계로 보았을 때는 극도의 경쟁문화가 조성되면 정체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ty)가 사회적 참여와 배제의 싸움터가 될 수 있다. 권력에 속한다고 하는 강력한 상징이 동원되거나 심지어 새롭게 조작되고 이 상징 속에서 자신을 남과 구분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여러 가지 정치적·종교적 조건들을 내놓는다. 지금 미국은 테러라는 기준을 가지고 ‘반테러전쟁’이란 상징을 내걸고 여기에 민주주의, 자유 등의 가치관으로 옷을 입히고 미국 편에 서는 국가와 문화, 그리고 그 편에 서지 않는 국가와 문화를 구분하고 차별하며 억압하고 있다. 그러므로 ‘반테러전쟁’이란 결국,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으로 자신의 편이 아닌 편을 악(Evil)으로 규정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구태여 이쪽 편을 들지 않아 악의 편이 됨으로써 수없는 불이익을 감수하기보다는 이쪽 편에 속해 선의 편이 되고 거기에 참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떨어지는 이익의 떡고물이라도 받아먹는 것이 삶의 지혜인 것으로 간주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한미동맹이란 상징에 연결해서 자기는 선의 자리에서 선한 일을 한다고 자기최면을 걸고 전혀 계산이 되어 있지 않는 국익이란 이름으로 파병을 적극 추진하려는 세력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인질로 잡힌 한 국민이 공개적으로 파병을 자제하고 살려달라고 간청하는데도 신앙고백처럼 파병의지를 거듭 천명하는 것은 겉으로는 한미동맹이란 의리를 앞세우지만 속으로는 혹시 항명하다가 감당치 못할 불이익을 당할까 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파병의지를 재천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청와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우리가 파병하지 않음으로써 한미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경제가 초토화될 수 있다는 논지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이례적으로 공개되었다.

    이는 우리 정부가 바로 항명으로 받을 불이익에 대해 두려워 떨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집권여당의 파병에 대한 궁색한 논리전개를 보면 울며 겨자 먹기 식의 파병이 아니라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한 파병으로 태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 대부분의 바람이나 희망과는 정반대 방향의 지정학이 한국에서 행사되고 있다. 새로운 지정학의 패러다임이 필요할 때다. 그 새로운 지정학적 패러다임은 과연 무엇일까? 누가 새로운 지정학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명이 보장되는 새로운 지정학의 창출이 진정 민주화를 위한 완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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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과 ‘묶임’의 딜레마

     

    국제정치학에서는 유달리 딜레마를 많이 얘기한다. 국가안보를 위한 정책은 어느 것이나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고 원하지 않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맹의 딜레마’도 이러한 딜레마 중 하나이다.

    동맹은 기본적으로 유사시 국가안보에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맹관계를 맺었는데도 막상 유사시에 동맹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동맹국이 인명피해와 정치경제 비용을 무릅쓰면서 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버림’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맹국을 단단히 묶어 두는 ‘묶임’이라는 수단이 등장하고 ‘묶임’은 국가안보의 든든한 동량이 된다. 그러나 이 ‘묶임’이 단단하면 할수록 또 다른 안보위험이 제기된다. 이제는 동맹국의 전쟁에 끌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동맹관계는 ‘버림’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묶임’의 위험성을 견제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명제는 적어도 한국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난 50여년간 한-미관계는 미국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한국을 튼튼히 묶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일색이었다. ‘남침’의 위협 앞에 떨고 있는 한국에게 ‘묶임’의 위험은 사치일 뿐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기지를 공여하고,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이양하고, 주한미군의 지위와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고, 이것도 모자라서 주한미군 방위비를 분담하고, 월남에 파병하고,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미국을 한국에 묶어 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냉전시기 소련이 유럽을 공격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소련을 공격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해도 ‘묶임’의 위험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거 ‘버림’에 대한 공포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한국의 국방비는 북한보다 6배가 많을 정도로 한국 군사력이 성장했다. 한국 군사력이 북을 능가한다는 평가들도 나오고 있다. 이미 1990년대 초에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나왔던 것도 이러한 군사력 평가에 기초한 것이었다. 한국은 이제 ‘버림’ 받아도 혼자 설 수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정보력과 대포병화력 능력 등에서 공백이 생긴다는 것은 전쟁발발시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한다는 작전계획 5027을 이행하는 능력에 부족분이 생긴다는 것이지 남침저지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서 ‘묶임’의 위험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1994년 여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직전에까지 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이 공격을 감행했다면 한국은 당연히 그 전쟁에 끌려 들어갔을 것이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현 부시 행정부도 북한과 같은 국가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공식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도 ‘묶임’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은 미국과의 묶임을 더 튼튼히 하기 위해 아프간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강행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인을 수입까지 해와서 한국 기지에서 주한미군 일부가 이라크 전쟁 훈련을 받았고, 이들은 곧 이라크로 투입된다. 그 결과 김선일 사건이 보여준 것과 같이 테러의 위협이 늘어나고 있다. ‘묶임’이 한국의 안보에 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묶임’의 위험은 미래의 시나리오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대만해협에서, 또는 동남아시아 남사해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주한미군이 투입되고 한미연합사가 동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에 묶여있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분쟁에 끌려 들어가고 톡톡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내주 한-미 두 나라는 포괄협정과 이행합의서에 가서명할 예정이다. 349만평이나 되는 땅을 제공하고 3조6천억~6조원에 달하는 이전비용을 한국이 전액부담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이 미국의 전쟁에 끌려들어갈 ‘묶임’을 자초하면서 말이다. ‘버림’이라는 과거의 강박관념 때문에 한국을 미국의 전쟁에 묶어 놓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적어도 ‘버림’과 ‘묶임’의 딜레마를 인식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서재정/미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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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 국보법 폐지 원년으로

     

    〈오동석/아주대 교수·법학〉

    56년 전 태어난 국가보안법 원판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쏙 빼닮았다. 치안유지법은 ‘국체 변혁’ 목적의 단체 조직을 중심으로 그에 가입하거나 협의, 선동·선전, 재산상 이익 제공 등의 주변행위를 처벌하는 법이었는데, 국가보안법 역시 ‘국가 변란’의 표현 정도를 제외하면 별로 다르지 않았다.

    치안유지법이 악법인 이유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원적인 문제는 한국의 독립이든 사회주의든 특정 사상에 체제비판의 목적을 덮어씌워 그 단체와 관련된 광범위한 활동 일체를 처벌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현행 법률은 그보다도 적용범위가 넓다. 반국가단체에 대한 가입 권유, 형법상 100여 종류의 목적수행행위, 잠입과 탈출, 찬양과 고무,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회합과 통신, 불고지 등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의의 최소한 합의선으로 볼 수 있는 개정론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제7조의 찬양과 고무,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그리고 제10조의 불고지죄 등을 삭제하자는 의견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사건 90% 이상이 제7조 위반임을 감안하면, ‘국가보안법의 꽃’이라는 제7조가 없는 국가보안법은 그 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머지 조항의 적용대상행위는 대부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으며,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행위는 국가안보에 별 영향이 없어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일제하 치안유지법 빼닮아 -

    한편 대체입법론은 예컨대 ‘민주질서수호법’으로의 개명론이다. 하지만 수호대상인 민주질서를 아무리 구체적으로 정의하더라도 비폭력적인 체제비판행위를 포괄하여 처벌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예이츠 사건(1957년)에서 폭력행위의 이론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즉각적으로 폭력혁명이 실현되지 않는 한 그 주장 자체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명제를 인용하며 방어적 민주주의를 국가보안법의 방패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의 적’은 프랑스 혁명 직후 공화국을 부인하는 왕정복고세력이었다. 독일기본법상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와 그에 위배되는 정당의 강제해산제도 또한 나치즘의 부활을 꿈꾸는 파시스트들을 염두에 둔 헌법보호장치였다. 독일공산당이 1956년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기도 했지만, 12년 만에 정당활동을 재개한 것이 그 증거이다. 결국 비폭력적 체제비판에 대한 민주주의 체제의 물리적 방어란 아직 헌법질서가 제자리를 잡기 이전의 과도기에서 수구세력으로부터의 방어 차원 혹은 과거청산을 위한 재발방지 차원에 한정된 논리이다.

    한참을 양보하여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 법무장관의 말처럼 건국과정에서의 혼란 때문에 일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필요했다고 치더라도, 1953년 형법 제정시 당시 대법원장이 형법과 중복되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형법도 전혀 손보지 않고 국가보안법만을 폐지한다고 이적단체가 창궐하고 이적표현물이 난무하며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행위가 빈번하게 그리고 버젓이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인 북한에 대한 현실적 판단과 평화적 협력 그리고 건전한 비판을 둘러싼 설득과 토론이 자리잡아갈 것인가. 대답의 관건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헌법체제와 그것을 움직여 갈 국민에 대한 신뢰 여부에 달려 있다.

    - 형법만으로 체제수호 가능 -

    이미 1948년에 ‘사상에는 사상을 가지고 극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헌법정신을 몰각하고 인민을 극도로 속박하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한다면, 3일이 못 되어 후회하고 자손만대에 죄를 짓는 일이며 정치력 0점의 정치인’이라고 자기비판한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 뜻을 이어받아 제17대 국회가 56년 만에 ‘국가보안법 폐지 원년’의 월계관을 쓸 수 있도록 주권자의 이름으로 다그칠 일이다. 치안유지법의 잔재인 국가보안법을 청산하는 일은 의외로 간결하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보안법은 이를 폐지한다”는 조문만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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