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 미국 대선과 한반도 - 상

 

부시 재선하면 한반도는 '고난의 행군'

정욱식/ 2004년 8월 6일



지난 7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미국의 대선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초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부메랑에 맞아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이렇다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부시의 우세를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2004년 미국 대선. 2000년 대선에서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올스톱'이라는 참담한 경험을 한 우리로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이번 기획에서는 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부시와 케리의 외교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2004년 전세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미국의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는 항상 국제사회의 관심사였지만, 이번만큼이나 국제사회의 이목이 미국 대선으로 쏠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부시의 미국' 자체가 너무나도 낯설었고 지구촌에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녀'라는 조롱을 받아왔던 유엔마저도 승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명분도 근거도 없었던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것이 여실히 보여주듯, 부시 행정부는 무분별한 군사력의 사용과 일방주의적 외교로 전세계를 분노와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고통을 받아온 인류사회가 미국 대선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관심 속에는 부시에 대한 정치적 응징과 함께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새로운 미국 정부가 들어설 경우 '다른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올스톱'했던 쓰디쓴 경험을 한 우리로서도 부시의 재선 여부에 남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북핵 문제'로 표현되는 북미간의 대결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한미동맹을 패권주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부시 행정부의 재선 여부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시의 재선이 왜 위험한가?

그렇다면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한반도의 정세는 어디로 흘러갈까? 미국의 대선 이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는 6자회담의 성패 및 북한의 태도, 2기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정세, 미국-중국간의 전략적 이해관계,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진행 상황 및 군사력의 변화 등이 있다. 이들 변수는 대단히 복잡한 함수관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먼저 북핵 문제부터 살펴보자. 부시가 재집권한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미국 대선을 전후해 6자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하고 북핵의 사찰 및 검증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북미 양측의 교집합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물론 강온파 사이의 갈등 해소 결과는 북한정권 교체에 대한 유혹을 확실히 버리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와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 및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로 대북정책의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선의 조합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 대선 전에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북핵 프로그램의 불확실성과 '100% 검증이 불가능한 북핵 프로그램을 100% 검증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미뤄볼 때, 북한과 미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찰 및 검증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핵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야만 완전한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더구나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1기 때보다 더 강경한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도 높다. 1기 때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그리고 잭 프리처드 대북특사 등 '상대적인' 온건파가 힘겹게 초강경파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잭 프리처드는 강경파와의 불화로 2003년 8월 사임한 상태이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강경파와의 갈등과 건강상의 문제로 2기 행정부 인선 때 빠질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2기 행정부 때는 협상파가 득세하기보다는 오히려 딕 체니,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그리고 존 볼튼 등 초강경파가 주도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망과 분석에 기초할 때, 2기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최악의 시나리오란 전쟁의 발발이나 북한의 핵무장은 물론이고, 강압적인 수단에 의한 북한의 붕괴, 혹은 이 둘 가운데 하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팽배해지는 상황의 지속을 말한다.

막강해지는 미국의 군사력

일단 확실한 것은 2기 부시 행정부는 1기 때보다는 훨씬 강화되고 유리한 형태의 대북한 군사력 사용 옵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2기 때는 주한미군을 북한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시키게 되고,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한 미사일방어체제(MD)를 남한, 일본, 미국 본토에 배치하게 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적지 않게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주한·주일미군의 전력 증강과 신무기 개발 및 배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 및 신속한 전쟁 수행 능력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대북한 선제공격 계획인 '5026', 북한 붕괴시를 대비한 '5029', 그리고 북한 군사력의 소진 및 도발을 유도하는 '5030' 등이 상당히 구체화될 것이고, 일본을 한반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형태로 미일동맹도 개편해 나갈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 등 이른바 "깡패국가(rogue state)"와 테러집단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보유를 방지하기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등 군사적 압박과,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지표관통형 소형 핵무기 등 최첨단 공격 무기의 개발 등도 가속화될 것이다.

1기 때와는 판이하게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MD와 PSI 등 미국 주도의 군사체제에 한국이 참여해줄 것을 요구하는 압박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미국 군사력의 증강이 곧바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 반면에, 미국의 군사력이 이처럼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평화적 해결이 물 건너 간다면, 결국 미국은 군사력 사용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현대화도 부시가 그려놓은 큰 그림 아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시기를 일부 조정할 가능성은 있지만, 당초 계획대로 2005년을 전후해 1만2500명을 감축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오산·평택으로 집결 및 전력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의 배치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제력에 걸맞게 국방비를 늘려 한국 방어 작전에서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포병 작전 등 주한미군이 맡아온 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기는 것도 가속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란이냐, 북한이냐?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이라크 등 중동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일단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자유선거와 헌법제정을 통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가 '친미' 성향이 되도록 대규모의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에게 추가 파병 요청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한국군의 임무 역시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 및 테러집단 제거로 요청해올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한국이 파병을 해준다는 것 자체를 중요했지만, 재선에 성공하면 한국의 실질적인 도움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가 재선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는 부시가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에 대한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이란은 2004년 초에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해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무리한 요구와 전력생산용 핵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던 유럽연합의 약속 위반을 문제삼으면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2004년 7월 미국 의회의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란이 알 카에다와 연계를 갖고 있었다고 발표해,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공격 목표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2004년 7월 미국 하원은 이란의 핵무장을 억제·좌절·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모든 수단"을 미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376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고,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란 내부의 폭동을 유발하는 등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기 부시 행정부 때 "이라크냐, 북한이냐"는 논란이, 2기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에는 "이란이냐, 북한이냐"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중간의 뒷거래 가능성은?

미중 관계 및 양안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전쟁 억지, 그리고 북한의 붕괴 방지를 대 한반도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왔던 중국은 이 세 가지 목표의 동시 유지가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팔·다리를 걷어붙인 상황이다.

그러나 결국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지고 부시 행정부가 재선에 성공해 북한 체제 제거를 결심할 경우,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도 불사하면서 끝까지 북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2008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대만의 독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붕괴시 중국의 직접적인 우려 사항, 즉 대량 난민의 중국 유입 문제와 주한미군의 북상과 관련해서, 미국은 난민 수용소 건설 등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주한미군을 3·8선 이북에 주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중국에 해주는 한편,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시 한국에 압력을 행사해 간도 영유권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도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이러한 뒷거래를 하면, 한반도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미중 사이의 이해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양안 문제이다. 이는 한반도가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는 지정학적인 의미와 함께, 미국 주도의 한미동맹 재편이 이뤄지면 한국 역시 미중간의 충돌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재선에 성공할 경우 양안간의 무력 충돌시 주한미군을 차출할 수 있도록 기지 재배치와 임무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한국을 MD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물론 중국을 자극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이 중국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북아의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양안 문제가 시기적으로 중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시가 재선할 경우 임기인 2005-8년 사이에 중대한 고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튼튼히 해야 한다며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주었던 노무현 정부는 부시 2기 때에도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착오는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가 되면서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중간의 충돌시 한국도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튼튼히 한다는 한미동맹이 뜻하지 않게 중국을 적대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이와 같은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의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한국은 엄청난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돕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위험에 빠지고 이에 따라 북핵 문제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고, 반면에 미국을 도와주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남북한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야 할 공산이 크다. 남북한이 2000년 대선 때처럼 미국의 대선 결과를 기다리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시의 재선에 대비한 '예방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4-08-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네트워크(http://www.peacekorea.org/)에서 퍼왔습니다.
 

 

한국인 과학자 ‘23번째 門’ 박테리아 첫 발견

 

한국인 과학자가 바다눈을 만드는 과정에 관여하는 신종 미생물을 발견, 새로운 문(門·Phylum)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이번에 발견한 미생물은 150년의 미생물학 역사에서 23번째 문이며 한국 과학자가 분류체계의 2번째 상위단계인 ‘문’에 해당하는 큰 계통학적 가지를 발견한 것은 처음이다.

원핵생물계통분류국제위원회는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미생물학과 조장천 박사(35)가 발견한 ‘렌티스페레’를 박테리아 계(界·Kingdom) 아래 23번째 문으로, 렌티스페랄레스를 69번째 목(目·Order)으로 인정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내용은 이 위원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ijs.sgmjournals.org)의 ‘98번째 공인 리스트’에 올려져 있다.

조박사는 2003년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 뉴포트 앞바다에서 점액성 물질을 생산하는 새로운 미생물을 발견,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라고 이름붙였다. 우리말로는 ‘거미줄처럼 생긴 점액성 물질을 분비하는 둥근 모양의 세균’이라는 뜻이다.

조박사는 이 미생물의 DNA 정보를 분석한 결과 진화의 정도와 계통의 유사도가 기존의 문들과 현저히 달라 ‘렌티스페레’라는 새로운 문으로 명명했다. 한국 과학자가 종이나 속 단위의 미생물을 발견한 적은 있지만 문을 새로 만들어낸 것은 처음이다.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는 바다눈(심해에서 눈처럼 내리는 하얀 부유물질)의 기원으로 알려진 투명한 고분자물질(TEP)을 분비하는 특이한 미생물이다. 바다눈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사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박사는 세균이 바다눈 형성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한편 조박사는 2003년 7월에도 버뮤다 해역의 바닷물에서 ‘파벌라큘라 버뮤덴시스’를 발견해 새로운 목으로 인정받은 것을 비롯, 그동안 자연계에서 분리되지 않은 미생물들을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배양해왔다. 조박사는 서울대 미생물학과에서 미생물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1년부터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 김상종 교수(미생물학과)는 “이번에 발견한 렌티스페레 문과 조박사의 이름이 미생물학 교과서에 실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

- 계-문-강-목-과-속-종 생물분류체계 2번째 상위단계 -

‘門’이란 :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진핵생물, 박테리아(세균), 아케아(고세균)의 3가지 계로 분류된다. 계 아래는 문-강-목-과-속-종으로 이어진다. 박테리아 계에는 23개의 문, 69개의 목, 6,500여개의 종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동물과 식물은 대부분 진핵생물계에 속한다.

 

‘바다 눈’ 형성 세균역할 첫 규명

 

지구는 ‘미생물의 행성’이라고 일컬을 만큼 수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 자연계에는 5만여종의 미생물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미생물학자들이 밝혀낸 세균은 6,500여종뿐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4만3천여종이 아직도 자연에 묻힌 채 과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학 조장천 박사의 연구는 ‘고효율 배양기법’이라는 새로운 배양법을 이용, 자연계에서 분리하기 어려웠던 난배양성 세균을 찾아내 새로운 ‘문’을 만들어냈다는 의미가 있다.

◇어떻게 찾아냈나=조박사가 속한 오리건대학 분자진화학연구실은 멸균한 바닷물을 이용해 미생물을 키울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을 했다.

1880년대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가 영양소가 풍부한 배지를 이용해 콜레라균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이후 미생물학자들은 100년 이상을 평판영양배지에서 세균을 배양해왔다. 그러므로 ‘영양소가 많아야 세균이 잘 자란다’는 인식을 버리고 자연환경과 유사한 배지를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

조박사는 멸균한 바닷물로 여러개의 배지를 만들고 태평양에서 떠온 바닷물을 희석해 배지에 넣었다. 바닷물 1ℓ에는 1백만마리의 미생물이 있으므로 적절한 농도로 희석하면 배지 1개에 세균 1마리씩을 넣을 수 있다. 이들 세균을 키운 후 DNA를 추출, 기존의 세균들과 비교한 결과 DNA(16S 라이보좀) 유사도가 약 20% 차이가 나는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를 발견한 것이다.

조박사는 지난 6월 환경미생물학계의 권위지인 ‘엔바이런멘탈 마이크로바이올로지’에 ‘점액성 물질을 생성하는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박테리아 계 렌티스페레 문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연구 내용을 처음 발표했으며 한달여 만에 국제적인 분류위원회에서 공인받았다.

조박사는 세계적인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버뮤다 해역의 바닷물에서도 새로운 미생물을 분리해 ‘파벌라큘랄스’라는 목을 새로 등록(국제계통진화미생물학지, 2003년 7월)했다.

또 태평양 연안에서 아직까지 배양이 되지 않은 신종 미생물인 OMG그룹의 44개 균주 배양에 성공(응용환경미생물학지, 2004년 1월)하는 등 환경미생물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생태학적 의미=깊은 바닷속을 카메라로 들여다보면 마치 육상에서 눈이 내리는 것처럼 새하얀 물질들이 떨어진다. 이를 바다눈(marine snow)이라고 하는데 표층에 생성된 유기물질을 깊은 바다로 내려주어 해양생태계 내에 영양물질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박사는 이번 논문을 통해 바다눈 형성에 세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조박사는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를 멸균한 바닷물에서 배양해 바닷물이 점액성을 띠며 끈끈한 액체로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균에서 나온 끈끈한 물질들이 거미줄 모양으로 연결되면서 매트릭스를 형성한다.

조박사는 “바다눈에는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물질(TEP)이 함께 있는데 어떤 경로로 형성되는지 알지 못했으나 이번 연구로 세균이 바닷속의 TEP 생성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

 

학계 “생태학적 가치 알아내 더 값져”

 

미국 오리건주립대학 조장천 박사의 연구 업적은 지난 6월 대구에서 열린 한국미생물학·생명공학회에서 일부 발표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학계에서는 ‘미생물 분류와 해양환경미생물의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연구 성과’라고 평가했다.

미생물유전자은행사업을 담당해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배경숙 박사는 “한국 과학자가 종이나 속 단계의 미생물을 발견한 적은 있지만 문을 새로 만들어낸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분류체계에서 ‘문’은 ‘계’의 바로 아래 단계로 현재 미생물 분류학자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는 가장 큰 단위인 셈이다. 서양 학자들이 만든 전체 생물분류체계 안에서 한국 과학자가 붙인 이름이 ‘문’으로 올라간 것도 상당히 드문 일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볼 때 이번 연구는 해양미생물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양연구원 이홍금 박사는 “미생물 배양이 극히 어려운 해양환경에서 새로운 미생물들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신종을 찾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원의 확보라는 국가의 주요 과제로서 이러한 미생물 배양방법의 확립과 순수배양이 적극 추진되고 권장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박사는 “현재 국내 과학자들도 바다나 갯벌에서 많은 미생물들을 분리해내고 있다”며 “다양한 미생물의 발견은 새로운 생물 소재, 의약품 개발 등에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박사의 연구는 또 새로운 종을 발견한 것뿐 아니라 생태학적 가치까지 알아내 더욱 의미가 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 김상종 교수는 “한국 출신의 생물학자들이 분자생물학 연구에 몰리는 가운데 생태학 분야에서 이같은 업적을 내서 기쁘다”며 “네이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박사의 연구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든 것이므로 더욱 값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ANN 2004-08-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네요^^;
어렸을 땐 과학자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관심이 꽤 많았었는데 ㅋ
(어렸을때 과학자라는 꿈 한 번 안 꿔본 사람 있겠느냐만은...;;)
 


2004년 08월 07일 (토)
제 2631 호
발행처 : 인권운동사랑방

 

단속 강화에 스러져가는 이주노동자들

강제 단속과 해고로 이주노동자 사망

17일로 예정된 고용허가제 실시를 앞두고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대책이 끝내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왔다.

지난 4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에서 무하마드 나비드(파키스탄) 씨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나비드 씨의 사망원인은 '미상'으로 결론이 났지만 주위 사람들은 나비드 씨의 상황이 "죽음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나비드 씨의 사망을 발견한 파르비 아마드(파키스탄) 씨는 "나비드 씨는 해고된 상황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했고 매우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했다. 나비드 씨는 사망하기 전날에도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실업을 걱정하며 "임금이 적더라도 일자리를 찾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비드 씨가 사망한 방에서 발견된 신경통약, 진통제, 수면제 등과 같은 일련의 약들은 나비드 씨의 심리적 부담이 어떠했을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됨에 따라 2003년 3월 31일 이후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 상태가 되어 출국을 강요받고 있다. 그 해 4월초에 입국한 나비드 씨는 일주일의 차이로 '불법'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4개월 동안 미등록상태로 공장에서 근무를 해왔고, 2주 전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나비드 씨도 결국 회사에서 해고됐다. 법무부와 노동부가 '불법체류 외국인 위주'에서 '불법 고용주 중심'으로 단속 방향을 바꾼 후 나비드 씨와 같이 해고되는 사례는 계속 발생되고 있다. 법무부와 노동부는 '불법 고용주'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형벌을 강화했고, 대대적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국민신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나비드 씨가 일하던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인근에서 강제단속이 실시돼 (해고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며 "해고당하지 않고 회사에서 계속 일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미 이주노동자인권연대는 7월 23일 성명을 통해 "단속추방의 두려움 속에 이주노동자들이 죽음을 택하는 안타까운 일들의 반복이 계속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단속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본국에 있는 부인과 다섯 명의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브로커에게 진 빚도 아직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나비드 씨에게 해고는 '강제출국' 선고였다. '아시아의 친구들' 정국희 교육팀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브로커들에게 진 빚이 여전히 남은 상태에서 해고되어, 돌아갈 비행기표도 사기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라며 "법무부와 노동부의 단속 강화 조치 이후 해고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걱정했다.

4백여 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례비용이 아직 빚도 다 갚지 못하고 죽은 나비드 씨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살아서 강제단속과 임금체불 등 인권침해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은 죽어서도 장례비용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다.


<후원모금>
농협 171337-51-027704 파르비 아마드

[박석진]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4-08-08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가 안좋아서 다들 지내기가 빠듯하실 텐데, 어쩌겠습니까?
어려울 때 도와야 진짜 돕는 거죠.
다들 조금씩 보태주실거죠???

2004-08-08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08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4-08-0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 2004-08-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입금계좌번호가 잘못되었다고 나오나요???
인권운동사랑방에 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내일이나 되어야
답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기꺼이 후원모금에 동참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2004-08-09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08-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권운동사랑방에 문의했더니 답변이 왔습니다. 역시 계좌번호에 잘못이 있더군요.;;;
아래의 계좌번호가 다시 알려준 번호입니다.
농협 171337-51-02774 PARVIZ AHMAD(파르비 아마드)
본의아니게 헷갈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후원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영방송이 아니라 관제방송이라고 해라
자이툰 부대 출국보도 침묵한 KBS와 MBC 뉴스책임자는 답하라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양문석  본지 전문기자

이제는 솔직히 탄핵방송에 대한 공영방송의 뉴스프로그램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적어도 공영방송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빼면 뉴스 프로그램은 관제방송이라고 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아니 공영방송이 아니라 아예 관제방송으로 스스로 선언하여야 한다. 이런 선언이야말로 수구언론과 다르다는 최소한의 차별적 행위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PD연합회보 최근호에 따르면, MBC 보도국 강성주 국장은 자이툰 부대의 파병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 때문이었음을 인정했다. 언제부터 MBC가 국방부의 '오더(order)'에 그렇게 성실의무를 다했는지 묻고 싶다. 그런데 가관은 KBS 보도국장의 답변이다. KBS보도국 이정봉 국장은 "인터넷 언론이나 다른 언론사를 통해 파병 사실이 알려져도 KBS는 국가 안보와 자이툰 부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보도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자이툰 부대원들의 안정을 위해 보도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과연 합당한 '변명'인가.

첫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CBS 등이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을 거부하고 파병사실을 즉각 보도함으로써 저녁 뉴스가 부대원 안전 운운하며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둘째, AFP통신과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 등 해외 언론이 자이툰 부대원들의 이라크로 향한 출국을 주요 뉴스로 전 세계에 타전했고, 특히 알자지라는 연일 한국군 파병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셋째, 당일 보도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비밀에 붙여지는 것은 아니다. 파병 다음날인 지난 4일 50여명의 파병반대 국회의원들이 파병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도대체 하루만에 다 들통날, 아니 이미 다른 매체에서 공개한 내용을 '자이툰 부대원들의 안전'운운하며 시청자들이 알아야 할 권리, 들어야 할 권리, 그리고 보아야 할 권리를 짓뭉개고 나선 그 대담함과 그 꼴 같지 않은 변명거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손가락으로 달을 가렸으면 가렸지, KBS가 MBC가 보도하지 않는다고 이것이 자이툰 부대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그 오만과 교만은 그들의 몸통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정녕 국가기관방송의 뉴스책임자로서 그토록 자이툰 부대원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죽음의 땅 이라크로 가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려 파병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리라.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국가시책을 충실히 보도해왔고, 항상 파병반대 관련 보도는 배제하거나 최소한의 생색내기에 그쳐 왔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 소위 '공영방송뉴스'는 더 이상 언론의 자유니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이니 국민의 알권리니 시청자 중심 보도니 하는 낯간지럽고 혐오감만 키우는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하지 말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이들 공영방송뉴스의 탈을 쓴 관제방송뉴스들이 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탄핵정국 때, 방송뉴스 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 보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후에도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 보편적 가치 옹호 등을 보도하는데 인색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탄핵방송 이후 이들 방송뉴스는 과연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과연 이들이 탄핵방송뉴스를 진정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기 위해서 그렇게 보도했는지, 아니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특정정당과 정치세력의 편들기를 위해서 했는지에 대한 그 진정성 조차 이제는 의심스럽다.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영방송의 뉴스를 옹호하고 수구언론들의 집중적인 매도공세를 온 몸으로 막아냈건만, 이들의 공정한 뉴스 사실적 뉴스에 대한 바람을 저버리고 관제방송으로 회귀한 공영방송의 뉴스프로그램을 오늘에서 또 다시 목격한다. '땡전뉴스'와 무엇이 다른 지 공영방송의 탈을 쓴 관제방송의 뉴스책임자들이 답해야 한다.

 

2004년 08월 05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주류와 비주류 경계선에 서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시험을 본 다음날이면 선생님께선 정답을 적은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그 시험지에 적혀 있는 빨간 정답들의 마력은 기이했다. 그 답이 내 것과 같으면 안도가 되고, 틀리면 좌절한다. 혹여나 내 것과 틀릴까, 나도 모르게 숨죽이며 그 정답들의 행진을 따라가게 하는 묘한 힘도 있다. 사람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어떤 질문을 해도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정답’들을 주루룩 읊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렇게 논리정연하게 정리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마침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된다. 각종 조사에서 한국 사회를 이끌 ‘차세대 뉴 리더’로 자주 꼽히는 김기식(38)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올해로 참여연대가 생긴 지 만 10년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 참여연대는 한국 사회에 참으로 많은 의제를 설정해 왔다. 1997년 시작한 ‘작은권리찾기운동’을 비롯해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도 불편해하는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2000년 ‘총선시민 낙선연대’ 등 정재계를 아울러 참여연대는 무서운 존재다. 그런 참여연대와 늘 동급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김기식 사무처장이다. 93년 참여연대의 전신인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인연합’을 만든 후, 94년 9월 지금의 참여연대를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철학을 지닌 시민운동의 산물, 참여연대

지금이야 참여연대가 무서운 존재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당시 진보운동의 시각에서 참여연대는 ‘개량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이단아’로 여겨졌다. 그 역시 그런 비판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의 시민운동들은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여타 민주화 운동과 구분지으며 보수세력에 빌붙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처음 그가 ‘시민운동’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쉽게 참여연대를 폄훼하기 어려웠던 건, 많은 부분 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어떤 투철한 운동가와 견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걸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수하던 시절, 연세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광주를 알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공부고 뭐고 다 내팽개쳤다가, 오로지 운동을 하기 위해 서울대에 들어갔지요. 그리고 입학식날 선배에게 말해 그날로 언더서클에 들어갔고요.” 그날 이후, 80년대 대학을 다닌 많은 이들처럼 그도 대학 시절 내내 수배와 감옥생활을 반복하며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80년대 후반엔 인천지역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다 80년대 말, 회의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가 관여한 노동조합이 기본적인 임금협상을 하다 무참히 깨져 해고자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해고 후 생활고를 겪자, 단순히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책임질 수도, 그 상황을 합리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적으로 자족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키느냐가 제 운동의 판단 근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조금이라도 세상을 낫게 변화시켜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는 운동을 하자고요.”

여기에 하나 더 얹어진 게 30대에 대한 설계였다.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니, 운동을 열심히는 했지만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에 끌려 다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얻은 결과물이 당시 시각에선 파격적이었던 참여연대였다. 때문에 20대 끄트머리에 있던 그는 “참여연대는 나의 30대 운동의 설계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참여연대를 만들면서 내세운 키워드는 2가지였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그리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가치’가 그것이다. 80년대를 거치면서, 그리고 대안적 체제에 대한 고민의 답을 얻지 못하면서 그는 이 2가지에 자신의 30대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어떤 체제가 들어서든 간에, 시민사회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하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했다. 또 한편으론 역시 어떤 체제가 들어서든, 인권과 복지·환경과 같은 가치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풀어가는 방법으로 그는 ‘의도된 애매모호함’이라는 전략을 택했다. “하나의 분명한 입장보다는 넓게 포용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세우겠다는 거죠. 운동이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막겠다는 반성적 측면도 있고, 우리 현실에선 중도우파적 주장도 충분히 개혁적일 수 있으니 이들을 포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때문에 참여연대 회원들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이데올로기로는 중도우파에서 중도좌파까지, 계층으로는 노동자에서부터 전문직까지 아우른다. 때문에 두 쪽에서 비판과 지지도 사안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단체를 이끌어야 하는 그에겐 이런 점이 훨씬 힘들 수밖에 없다. “전 참여연대의 포지션을 ‘무시당하지 않는 비주류’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선에 항상 서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주류사회가 참여연대 정도는 끊임없이 끌어 당기고 싶어하는데, 그러는 순간 우리 운동성은 약화되죠.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비주류화하면 그들에게 무시당하고 사회를 못 바꾸니까 실력을 갖춰야 하고요.” 하지만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선이 계속 바뀌다 보니 참여연대 역시 계속 그 경계를 따라 변화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스로의 위치와 목표를 고정시키지 않고 계속 사회에 맞춰 움직여야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운동상품도 마케팅이 중요하다

여기서 뭔가 익숙한 이야기가 떠올려지지 않는지. 바로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함께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기업의 논리와 꼭 같다. 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다. “한국 사회에서 무시되지 않으려면 3가지가 필요해요. 우리가 내놓는 문제제기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킬 합리성, 그리고 그들의 지지, 마지막으로 그런 문제제기를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요. 기업에서의 마케팅 전략처럼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참여연대가 하나의 벤처기업처럼 여겨진다. 그 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변화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계속 필요한 상품을 내놓으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팔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 기업의 CEO다. 대표가 있기는 하지만, 조직운영이나 활동 방향 등을 판단하는 것은 모두 사무처장인 그의 몫이다. 하지만 그는 반성도 잊지 않는다. 그간 각종 전투 속에서 화려한 승리는 거두었지만, 정작 전쟁에서는 이기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예컨대 그토록 복지운동을 했지만 정작 사회의 빈부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게, 그에겐 짐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그는 앞으로 이 기업이 팔아야 할 상품을 고민하고 있다. 요즘 화두는 2가지다. “현재 우리 사회 수구보수 세력의 핵심적 이데올로기가 성장주의와 한미동맹론이에요. 이게 사회 곳곳에 퍼져 우리를 지배하고 있거든요. 특히 우리 정신세계의 미국에 대한 종속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개혁에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원래 그의 40대 계획은 따로 있었다. 40대 초반에 2년 정도 외국에 나가 그간의 고민들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뒤, 40대 중반쯤 사무처장을 하다 그 뒤엔 시민운동가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사무처장이 되는 바람에 인생 설계가 다 어그러졌다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걱정은 없어 보인다. 한 장의 정답지와도 같은 이 사람은 아마도 조만간 또 다른 정답을 만들어낼 것 같기 때문이다.

글 =김윤지 기자 yzkim@economy21.co.kr
사진 =이주노기자 jooroad@economy21.co.kr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4-08-0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시민운동의 한 가지 자기인식을 볼 수 있는 기회인 듯해서 퍼옵니다.

로드무비 2004-08-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사람 참 좋던데요. 믿음직하고...

balmas 2004-08-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차세대 뉴리더라고 불리겠죠.
그런데 저는 솔직이 사람은 별로 믿는 편이 아닙니다. 사람한테 많이 속아봐서 그런 것도 아니고(사실 가끔 속긴 하지만^^) 원래 의심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해왔고,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런 걸 중시하는 편입니다. 또 그래야 실망도 덜하구요.
김기식 씨는 시민운동의 대들보 같은 존재인 듯한데, 글쎄요, 앞으로는 국내에서 시민운동 하기가 좀더 어려워질 텐데, 그걸 어떻게 해쳐나가는지 한번 지켜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