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상호군축 대화 제안할때

최근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제각기 정치적 입장이 다른 그토록 많은 한국인들이 언제일지도 모를 장래에까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매우 놀랐다.

아무튼 나는 북한이 이젠 1950년처럼 장기침략전을 펼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고 말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미군 재배치와 감축 계획들에서 보듯 미국 국방부 역시 이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북한의 위협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싶어할까?

미 국방정보국(DIA)과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에 있는 비밀 전자감시시설을 이용한 대중국 첩보행위를 계속하길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주한 공군과 육군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이익이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왜냐하면 한국은 갈수록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이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며 따라서 주한미군 존재가 장기적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좀더 일반적인 반응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고,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에서 보듯 국제금융기관들로부터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 종식이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진짜 숨겨진 이유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얘기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미군 주둔과 한-미동맹이 한국에 주고 있는 막대한 경제적 보조금 효과다. 이 보조금은 한국이 조기 통일로 가는 과감한 선택을 미룰 수 있게 만들고, 따라서 일반예산과 군사예산 어느 쪽에 더 우선권을 둘지를 선택하는 것도 머뭇거리게 만든다. 미군 주둔은 주한미군이 없었더라면 한국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대규모 국방비 지출을 위해 들어갔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이유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 주한미군이 제공해주고 있는 현 수준의 안보를 유지할지, 아니면 북한과 상호 군축 협상을 통해 화해와 통일을 달성하는 쪽을 택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보조금이 없다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제공해온 재래식 국방전력을 대체하는 데만 현 국방예산을 2~3배 늘려야 한다.

미국은 매년 평균 20억달러에 이르는 주한미군 주둔에 따르는 직접 비용 외에도, 한국 방위와 관련된 동아시아와 서부 태평양 배치 미군전력 유지비용으로 매년 400억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 한국이 미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쿠션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는 한, 한국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련된 궁극적인 통일 전단계로서의 (낮은 차원의) 연방국으로 갈지 여부를 굳이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거대한 군산복합체로 간다. 약 80개의 방위산업 계약자들이 150여곳의 공장에서 약 350가지 종류의 군사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군 수뇌부와 손잡은 이 강력한 이익집단은 군사비 지출을 늘리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줄일 수 있는 자주국방력에 대해 너무 막연히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

미군 철수에 대해 한국은 1991년 마련된 남북기본합의에 따른 북한과의 상호군축을 위한 대화 재개 제안으로 대처해야 한다. 91년 합의된 남북공동군사위원회는 핵위기로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의 최우선 고려 사안이 돼야 한다. 한국에서 상호군축에 반대하는 군산복합체가 있듯이, 북한에도 노동당 강경파와 결합된 군산복합체가 있다. 평양의 강경파에게 군축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경제적 문제가 군사 지출을 줄이도록 압박해왔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남한이 준비가 되면 상호군축에 참여할 자세가 돼 있다고 지난 4월 (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다. 대조적으로 남한은 국민총생산(GNP) 대비 국방비 비중이 매우 적어서 북한만큼 감축 압력이 크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성산업공단 건설을 추진하고 서해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촉진시킨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는 북-미 양국만의 조약을 일관되게 고수해온 과거 입장을 바꿔 종전과 남북한 및 미국간의 3자 평화조약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북한의) 역사적인 5월6일 선언을 조속한 대북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은 평양, 워싱턴과의 대화를 병행하면서 이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핵 협상 진전도 가속시킬 것이며 김 위원장을 정상회담장으로 끌어낼 것이다. 그것이 휴전상태의 지속으로 가로막힌 군축회담의 장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쓴 평화협정 추진을 겁내는 듯하다. 그는 이 협정이 미국의 한반도 개입 반대 압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이 우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평화조약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기타 한국전쟁의 잔재를 종식시킨 뒤에도 남아 있을 한-미 상호안보조약에 의해 운용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와 장비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고려해볼 때, 양쪽이 합의한다고 해도 미군 철수를 완료하는 데는 몇년이 걸릴 것이다.

곧 출간 예정인 <한국의 수수께끼>의 저자들인 보수적인 케이토연구소의 테드 갤런 카펜터와 더그 밴도는 4년에 걸친 미군의 일방적인 철수를 주장했다. 그들은 일단 철수 사실이 발표되면 “국방비 증액을 정당화할 만큼 (상황이) 위협적이라고 느끼면서 그런 부담을 기꺼이 감수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한국민에게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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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7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어제(월) 책이 입고되었다고 전화가 왔으니까,
이번 주 안에는 서점에도 배포가 되겠죠.
[법의 힘] 출간을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분들께는 정말 면목이 없군요. ㅎㅎㅎ (쑥스러운 웃음 ... )

aporia 2004-07-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문지에 전화를 해 보니까 낼모레쯤 서점에 나온다고 하네요. 한 가지 부탁 말씀! 친구한테 이 책을 선물하려 하는데, 혹시 선생님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러면서 저도 해 주시면 더욱 좋구요... 사실 전부터 그런 책을 보면 무척 부러웠는데, 가까이서 저자/역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고 또 별로 사인받고 싶은 사람도 없고 그랬거든요... 물론 제가 아는 분이 지하철에서 만난 정운영 선생처럼, '저는 핑클이 아닙니다'라고 하신다면, 할 수 없겠습니다만... 괜찮으시다 그러면 담에 책 두권 들고 찾아갈께요. 부디 허락해 주시길!

balmas 2004-07-2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사인해주는 게 뭐 힘들다구.
1000권을 할 것도 아닌데 ...
정운영 선생은 자기가 핑클보다 더 인기있다고 생각했나 보죠, 뭐 ... ㅋㅋㅋ(농담입니다)
 

나의 커밍아웃 이야기
     
로맨티스트 소람

 황보신 기자
 2004-07-18 21:18:17


“레즈비언으로서 커밍아웃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냐?”는 인터뷰 요청에 그녀는 흔쾌히 응해 주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소람님의 아파트를 찾았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담배 피워도 되는지 묻는다. 담배를 피우면 이야기를 더 잘 한다면서. 그녀는 담배 한 개피를 태우면서 또렷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최초로 커밍아웃한 것은 언제였나요?

“대학 때라고 봐야 될 것 같거든요. 제가 89학번이니까 그때만 해도 동성애자 모임이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여자대학을 다녔는데 주변에 동성애자들이 굉장히 눈에 많이 보였어요. (중략) 대학교 4학년 때 총학생회 선거에 많이 관여하면서 알게 된 친한 후배가 있어요. 그 후배가 저한테 동성애자 조직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더라구요. (중략) 성사되지는 않았어요.”

“사회 생활하면서 제 자신이 갑갑해서 살 수가 없더라구요.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여기저기서 했었는데 그 속에서 굉장히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확실한 이성애자이지만 인간으로서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어요. 직장동료들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집안 식구들이 다 눈치를 채죠. 하지만 알면서 모른 척 했죠.”

-집엔 커밍아웃을 언제 하셨어요?

“사실은 저는 집안에서는 ‘아웃팅’이 먼저였다고 생각을 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한 학번 선배를 한 4년 정도 만났었어요. 그 선배가 저한테 보냈던 편지가 어머니 눈에 띄었어요. 엄마는 워낙 제가 중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랑 친했기 때문에 감을 잡고 있었어요. 그 선배 같은 경우는 우리 집에 굉장히 자주 왔었고 당시 선배가 대학원생이면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제가 그 집에서 자고 했기 때문에 엄마가 거의 감을 잡고 있지만 이야기를 할 수 없었는데 그 날은 결정적인 물증이 나왔기 때문에 엄마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그 선배를 부르더라구요. 야단을 칠 줄 알았는데…. 그때 선배와 저는 워낙 떨어지면 살 수 없는 상태였어요. (엄마를) 만나자마자 언니가 그냥 울어버렸어요. 엄마가 마음이 약하신 관계로 ‘그냥 딸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할테니까 잘 지내라. 그런데 다른 가족들은 몰랐으면 좋겠다. 엄마는 모른척하겠다. 그런데 너희 어머니는 성격이 보통이 아니신 것 같으니까 너희 어머니가 아시면 양쪽 집안이 풍지박산 날 것 같으니까 절대 모르시게 해라’ 정도(말씀하셨죠).”

-온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때는?

“4년 전이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동생에게 다 얘기했죠. 그 이야기가 길고 복잡한데. (중략) 2000년 1월에 최초로 한 이반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는데, 저보다 늦게 들어온 회원과 가까워졌어요. 당시 그 사람은 기혼자였어요.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걸리게 되잖아요? 그 친구의 남편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에요. 남들 보기에도 그림 같은 부부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가정을 깨는 것은 저도 원하지 않았고 그 사람도 원하지 않았어요. 저는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고. (중략)”

“그런데 남편이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이 자기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저를 선택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돈을 구해서 방을 몰래 얻었고 친구를 이사시켰죠. 이사 준비가 다 끝난 상태에서 내일 나가야 하는데 오늘 이야기를 한 거죠. 난리가 났죠. 엄마랑 둘이 껴안고 울다가 아빠가 퇴근하신 다음에 얘기를 했고, 퇴근한 남동생에게도 이야기를 했죠. (중략) 밤에 짐을 싸놓고 자는 척하고 누워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시더니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시더라구요. 진짜 그때 가슴 아팠어요. 그렇게 해서 집을 나왔죠.”

-그때 독립한 후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그 이후에도 집에 자주 갔어요. 제가 집안에서 장녀이자 장남이에요. 소위 말하는 딸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는 아세요.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집안의 큰 일을 처리하는 범주가 다르니까. 엄마는 ‘아들 장가 보낼 때보다 네가 나간 것이 더 서운했다’고 지금도 말씀하세요. 어머니는 지금도 갈등하세요. 절반은 인정, 절반은 부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시죠.”

“아버지는 굉장히 말수가 적으세요. 하루는 (자가용차 플라스틱 열쇠고리를) 당신 것이랑 동생 것을 해오셨는데 너도 해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니 친구 번호는 뭐고 색깔은 무슨 색이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제가 그 친구 차는 빨간색이고 차 번호는 뭐다라고 했더니 나중에 만들어가지고 저희 집에 가지고 오셨더라구요. 아버지 나름의 인정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백 마디 말보다 더 고마웠죠.”

“제 동생 같은 경우에는 전형적이고 보수적이고 성실한 한국의 가장인데 우리 누나는 좀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누나만 행복하면 된다. 누나가 혼자 살면서 피폐해지는 것이 보기 싫었다.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며 동생이 가장 인정해 주는 편이죠. 인간은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데 가장 동의해 주죠. 어머니, 아버지는 다들 동의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복하길 바라죠.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깊이깊이 치열하게 사랑하지만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요.”

-어렸을 때도 다른 집의 딸들과 달랐다고 말씀하셨는데?

“엄마와 최초로 투쟁한 것이 5살 때였는데 동생이 3살 때이었어요. 엄마와 먼 데를 다녀왔는데 소변이 마려웠어요. 버스를 내리자마자 맨홀 뚜껑이 있는 데로 가서 제 남동생은 바지를 내리고 바로 쉬를 누게 했어요. ‘나도’ 그랬더니, ‘여자가 어디서 엉덩이를 까느냐?’는 거예요. 거기서 집까지 걸어가다가 바지에다 오줌을 쌌어요. 이 일이 기억나는 것은 오줌 샀다는 것도 창피하지만 그것보다도 ‘여자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 쉬를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에요. 지금도 저는 그 일을 확대해서 나는 5살 때 내가 여성인 것을 알았다고 하지요.(웃음)”

“그게 최초였고 그 다음에는…. 엄마가 나를 이쁜 딸로 키우고 싶으니까, 한번은 내게 마론 인형을 사주고 남동생에겐 짚차를 사다줬어요. 그런데 마론 인형은 너무 수동적인 장난감이잖아요. 짚차는 굴러가잖아요. 지금도 움직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바퀴 달리는 것을 다 잘 타거든요. 그때 짚차 때문에 남동생이랑 엄청 싸웠어요. 아빠는 지금도 그 때 제가 말한 것을 기억하신대요. ‘아빠 선물은 굉장히 감사한데 마음은 받겠지만 다음에는 원하는 게 뭔지 물어봐 주세요. 이 인형은 너무 재미없어. 이렇게 생긴 애가 어딨어. 나는 이렇게 안 생겼는데.’”

“또 치마 입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저는 운동장에서 공도 차고 야구도 해야 하는데 치마는 걸리적거리니까 불편해서 싫었어요. (중략) 어쩔 수 없이 입었던 고등학교 2년을 제외하고는 치마를 입은 적이 없어요. 물론 학교가면 체육복으로 갈아입었죠. 어렸을 때는 불편해서 치마를 거부했지만 크니까 소변사건과 마찬가지로 강요된다는 것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좀 더 머리가 커지면서는 여성에게 치마가 강요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자각을 하게 된 거죠.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사실 치마가 편한 점도 있더라구요. 여름에 시원하고. (웃음) 그래도 지금 저는 치마를 안 입을 뿐만 아니라 정장도 안 입어요.”

-여자를 좋아한다고 느꼈던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초등학교 5학년때였어요. 또래 남학생한테 전혀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유치하고 지저분하고. (웃음) 내가 누구랑 지내는 것이 편한가 생각해 보니까 예쁜 또래 여학생들과 있을 때 기분이 좋더라구요. 남자애들이랑 권투하고 공차고 노는 그 느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대화가 되는 또래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유일하게 대화가 되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어요. (중략) 그 친구랑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랑은 애정은 아니었던 것 같고 처음으로 우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남학생들과는 심지어 우정도 못 느끼겠더라구.”

“반마다 공주 같은 애들 한 명씩 있지요? 남자애들이 그런 애들 놀리면 막아주고 울면 집에다 데려주면서 기쁨을 느끼면서 그때 생각했죠.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잘나서 남자를 못 사귀는구나’ 생각을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남학생들에 대한 열등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 애들이 XY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지점이 다르잖아요.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어렸을 때는 ‘그 남자애들이 남자로 하는 것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게 컸어요.”

“그리고 제 성향 자체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서 탐미적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을 거울을 통해서 봐도 아름답다고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모든 면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또래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고 동경하게 되고. 그러나 나는 한국 사회가 강요하는 그런 여성이 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남성도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거기서 느끼는 제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죠. 남자애들은 적이고, 남자애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고, 게다가 내가 가질 수 없는 여성성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여자친구들을 보호해 주고 그 곁에 있으면서 누린다고 할까요, 어렸을 때는.”

-동성애자라는 것이 고통이 되었던 적이 있나요? 호모포비아를 느낀 적은?

“초등학교 때 상당히 혼란스러웠죠.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나오는 연애라는 것은 모두 이성애자의 연애죠. 원래 성격이 로맨틱한데 왜 나 같은 형태의 연애는 없는 것이냐는 고민에 빠졌었죠. 중학교 때는 동성애자라는 인식이 생겼는데, 저는 확신하는 게 있었어요.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살아가는 방식과 정체성을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좋기 때문에 이 존재를 어떻게 하던지 스스로 제 안에서 긍정하려고 애썼죠. 사실이 이 긍정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염세 속에서 오랫동안 헤매야지 나오는 거죠.”

“첫 연애는 중학교 때 했던 것 같아요. 연애라고 해 봤자 손잡고 떡볶기 먹으러 가고 팔짱 끼고, 그게 다였지만. 누구 때문에 잠 못 자고 편지를 수없이 썼던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한 도서관 청소년 독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사이가 나빴죠. 토론만 하면 서로 공격하고 싸우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인정하고 굉장히 가까워지고 온갖 이야기를 다하게 되었죠. (중략) 당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오토바이도 타고 그랬는데. 그 집에서 알게 됐어요. 그 집 어머니는 우리 딸은 천사같이 착한데 못된 것을 만나가지고 (중략) 망쳤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사탄취급을 하고 ‘악의 화신’이라 했어요. 중 3때 집에 전화해서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처음 호모포비아를 느꼈어요.”

“그리고 대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두 학번 위인 선배인데 굉장히 유명한 선배였어요. 이 선배는 학교에서 공인한 동성애자였거든요. 다들 욕을 해요. 나도 그 선배의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는 굉장히 싫어했지만 그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이 사생활이나 성적 정체성이라는 것에 굉장히 공포를 느꼈죠. 나도 커밍아웃하면 저렇게 된다고.”

“직장에서 동성애자라는 것을 고객에게는 숨기지요. 삶의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에. 하지만 직장에서 인간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요즘 만나는 남자 어때?’라는 질문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거든요. 직장이 돈 버는 곳만이 아니라 삶을 같이 나누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알려요. 저는 커밍아웃 때문에 사람을 잃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서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보다 더한 설득력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것은 아쉽죠. 처음에는 ‘너니까 봐주겠다, 너니까 괜찮다’죠. 그러나 이야기를 많이 듣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요. 정치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이 되기도 해요.”

-동성애자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능하다면 하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혼인신고가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어요. 만나는 친구가 있는데, 자기가 취업을 하면 같이 결혼하자더라구요. 하지만 결혼제도가 인정이 되더라도 제도적 인정이지 범사회적 인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경제적인 기반을 무시할 수 없는데. 워낙 가난하게 살아가지고 그 부분을 잘 알거든요. 그 부분에 대한 안정적인 장치 없이는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는 적어도 40에서 50까지 완전히 어느 정도 (경제적인) 틀을 만들어야겠다고, 그때는 대사회적인 커밍아웃과 함께 전투적인 활동을 하겠다고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해요. (중략)”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생각해요. 다른 가치보다. 그런데 (두 사람의) 행복이라는 게 각자가 자기 생을 살면서 서로가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약간의 교집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중략) 그런데 이게 왜 꼭 이성애자 가족에서만 가능해야 해요? 이런 폭력이 어디 있습니까? 용납이 안됩니다. 정말. 확대가족이라는 것은 서로 인정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연애라는 것이 에로스적인 것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것이지만 아가페적인 것, 휴머니즘적인 것이 들어가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또 의식주를 반드시 같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파트너를 원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이성애자 틀에 있었다면 벌써 결혼을 했을 테고 굉장히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했을 거예요. 저의 수많은 연애편력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라는 특수성 때문이에요. 그토록 많은 연애, 실연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람을 버린 적은 한 번 밖에 없었다는 거죠. 상대방이 확실하게 동성애자로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제가 설득을 해 볼 수는 있지만 강요하고 끌고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작년에는 너무 힘이 들었어요. 너무 좌절했고. 두 달 동안 살이 20kg나 빠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자신에 갖고 있는 자신감은 내가 아직도 사람을 믿고 사랑한다는 거죠. 사실 저는 담배하고 연애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요.(웃음)”


연애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몇 바퀴나 돌아왔지만 현재는 인생의 반려자가 있어 행복하다는 그녀,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이것만은 꼭 좀 써 달란다.

“제가 생각하는 커밍아웃이라는 것은 내가 동성애자라는 성명서를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에 대한 이해, 동조,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이 커밍아웃이죠. 저는 제가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아웃팅’이었지만 ‘커밍아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어머니와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완전한 성공은 아니지만 절반의 성공 정도는 했고, 앞으로는 완전한 성공으로 갈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도 제가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그런 과정을 거쳐요. 너니까 괜찮아, 너를 좋아하니까. 그러다가 그들 스스로가 동성애 문제를 아주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고 같이 고민하게끔 만들었다는 것, 제가 생각하는 커밍아웃은 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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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법, 조선시대로 회귀하나
     
도덕적 규범을 법제화하면 곤란해

 김혜숙 기자
 2004-07-25 23:48:53

<필자 김혜숙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 사회의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또 어떤 부문에서는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는 전통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전통의 현대화라는 이름 하에 변화에 대해 적응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 그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의 의식은 혼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효도법’은 국가의 문제회피

한나라당이 마련해 입법 추진을 계획하고 있는 소위 ‘효도특별법 제정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의식을 혼돈 속에 빠뜨리는 한 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노부모 부양자에 대한 사회적 안정감 부여 및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현대적 개념의 효 문화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의 핵심은 가족윤리로서의 효라는 전통 도덕적 가치를 제도적 차원에서 함양시키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

사회복지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 개인은 자신의 복지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가족 관계의 망이 잘 짜여진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자신의 안녕과 복지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미한 가족관계의 망을 가진 개인은 그렇지 않은 개인에 비해 복지에 관한 한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더구나 가족제도가 변화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활발한 현대사회에선 가족이 개인의 복지를 책임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극빈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의 마련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보살필 가족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가족에게로 다시 부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관계의 심각한 문제로 가출한 청소년을 찾아내서 다시 그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 가상만을 만들어내어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보지도 못하게 된다.

효도특별법의 또 다른 문제는 효도라는 도덕적 가치를 법적 강제로 부과한다는 데 있다. 법은 넓은 의미로 도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법과 도덕은 그 외연에 있어서 같지 않다. 합법적인 것이 도덕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예컨대 투표행위가 도덕적 행위는 아닐 것이다)이거나 심지어는 부도덕한 것(남성전용 휴게방 개업은 합법적이지만 부도덕한 것일 수 있다 )일 수도 있다. ). 또한 도덕적인 것이 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내 스스로에 대한 정직성이나 성실성의 문제는 합법,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이거나 비합법적인 것(2차대전 당시 유태인을 도왔던 독일인이 당시 나치법을 어긴 것일 수 있다)이 될 수도 있다.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면 위선만 늘어나

오늘날 법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는 도덕을 사적 차원의 문제로 두는 경향이 강하며 도덕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기보다는 최소 도덕주의를 지향한다. 조선 사회는 최대한의 도덕주의를 지향했던 사회로 예치를 이상으로 삼음으로써 법과 도덕의 외연을 거의 같게 두고자 했다. 이것은 공자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법에 의한 처벌을 받으면 될 뿐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줄을 모르게 되지만, 예가 지배하는 사회는 내면으로부터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저절로 교화가 된다고 했던 데서 비롯된 정치적 이상이었다.

예치는 도덕적 규범을 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도덕적 가치의 강제성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언뜻 보면 인간다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인 듯 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외적 행위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좀더 철저하게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법과 달리 도덕은 전 인격을 관여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훨씬 강력하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한다. 효도법의 제정은 예치와 같이 겉보기의 그럴듯한 명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사적 영역까지 법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는 무리를 범하는 것이며, 많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한 예로, 회사생활을 무난히 하기 위해 회사 규칙을 잘 지키고 사장의 지시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지, 회사를 나를 사랑하듯 사랑하고 사장을 인격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필요는 없다. 만약 사장을 한 인간으로 좋아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강제조항이 된다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사장을 좋아하고 친밀하게 따르는 사람에게 월급을 더 주거나 보너스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면을 쓰고 사장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사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들의 그 마음도 의미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인센티브는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존경심이나 애정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도덕을 법적으로 강제하고서, 인센티브 제도까지 도입하는 경우 많은 위선적 행위들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위선을 해서라도 효도국가를 세워야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 경우 우리는 무엇을 위한 효도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법이 도덕의 영역을 넓게 지배하면 할수록 우리의 자율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숨막히게 된다. 도덕은 자율과 자유의지의 영역이다. 법은 물론 법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 자발적 준수가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좀더 현실적으로는 강제와 유인과 처벌의 문제이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많은 행위들이 합법과 불법의 문제로 주어진다면 이 삶은 무척 답답하고 무기력한 것이 될 것이다. 더욱이 효자와 효부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남성중심적 가치의 사회, 자식이 없을 수도 있고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다양성이 부정되는 사회, 중요한 가치들이 양적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 이런 사회 안에서 우리의 삶은 매우 황량한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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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법 제정 막아야
     
한나라당 효도특별법 제정안 발표

 조순경 기자
 2004-07-25 23:44:25


한나라당 정책개발특별위원회(위원장 이한구)는 지난 5월 ‘효도특별법 제정안’(이하 효도특별법)을 발표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된 이 제정안은 지난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아직 구체적인 법 조문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소요 예산도 얼마가 될지 정확히 나와있지 않은 상태지만, 올 9월 정기 국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한나라당 관계자는 전한다.

“노부모 부양에 대한 가족, 사회, 국가의 공조체제 구축 및 국가의 효 분담 확대”라는 취지로 구상된 효도특별법은 노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며, 농경 봉건사회의 ‘효’ 윤리를 현대 사회에 법적으로 강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고, 여성들에게 그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법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족에게 국가부담 전가하려는 전근대적 발상

효도특별법의 주요 골자 가운데 하나는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 시에는 부양명령 등 강제조치”를 신설하고, “부양 명령자에 대한 명단을 공개”히겠다는 것, 그리고 “자녀의 민사상의 부양의무에 대한 특별 규정을 제정하고, 부모 대상 범죄행위(상해, 학대, 유기, 폭행, 협박, 감금 등)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별로 ‘효자효부상 선정위원회’를 설치하고 효자효부상 수상자에게 상금을 지급(시도: 1천만원, 시군구: 5백만원)하며, 효자효부증을 교부하여 이들이 공원, 문화공연 등 이용 시 할인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이 같은 발상은 이혼 증가를 막기 위해 ‘열녀문’을 세우고, ‘열녀 정표’를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부모 부양을 ‘효’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효도 교통카드제’를 도입하고 노부모 부양자에게 효도여행 휴가권을 주고, 효자효부상, 효자효부증을 교부하는 등의 방안은 결국 국가가 개입해 ‘효’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여 노인복지의 주 부담을 가족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OECD와 우리 나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98년 현재 GDP에서 노인복지 서비스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 나라의 경우 0.08%로, 영국 0.50%, 덴마크 1.82%, 스웨덴, 2.49%, 스페인 0.18%, 일본 0.27%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복지 수준에서 ‘효’와 같은 유교윤리와 유교적 언어로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요구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효도하는지 학대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 사회에서 ‘효’라는 유교윤리는 아직까지 뿌리깊게 남아있다. 효와 불효에 대한 가치는 위계화되어 있다. “왜 효도를 해야 하는가, 효라는 가치를 왜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낯설기만 할 정도로 그 가치에 대해 맹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부모를 모시고, 부양할 상황에 있는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를 부양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함께 살지 않는 자녀는 상당부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현재 자녀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의 49%정도다. 절반 이상의 노령층이 자녀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부모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자녀가 부양할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부모 자녀가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어긋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자녀를 둔 60세 이상 가운데 48%가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70대의 경우 39%가, 그리고 신체적 의존도가 높은 80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도 22%가 자녀와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한 노인은 “평생 아이들 키운 것으로 족하지 손자 손녀까지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한다. “손자 손녀한테서까지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또 다른 노인은 “그런 저런 눈치보고 사느니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에서 못 일어나 굶어 죽더라도 나가서 따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고, 법적 강제를 하면서 노부모를 부양하도록 하는 효도특별법은 가족 내에서의 노인학대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들의 욕구에도 관심이 없다. 강제로 부모를 모시게 함으로써 더 많은 노인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999년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가 자녀 및 가족으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절반 정도는 거의 매일 학대를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학대의 주 가해자는 아들과 며느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38% 정도가 언어적,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은 것으로 나타났고, 지속적이며 중층적인 학대 경험이 있는 경우도 11.6%나 됐다. 이 경우도 주 가해자로 아들과 맏며느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대를 당한 노인의 대부분은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참는” 것으로 별다른 대응을 하고 있지 않으며, 다시 학대를 당하더라도 신고하지 않겠다고 한 비율은 77.9%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존속 상해, 존속 유기, 존속 학대 자녀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효도특별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부모를 부양하며 효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온갖 학대가 일어나도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한 여성노인의 말처럼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거짓 자랑을 하고 산다.” 자식으로부터 방치되고, 유기당하고, 학대 받은 부모 가운데 몇 명이나 자식이 처벌 받고 범죄자가 되게 할 증언을 할 것인가. 효도특별법이 아니라 노인학대방지특별법을 만들어 노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부부간의 관계를 더 이상 지속시키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이혼을 선택한다. 부모 자녀 간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효도특별법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를 억지로 함께 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효의 이름으로 여성 희생 강요 말아야

노인 부양과 효도를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의 노인 부양은 과거 근대 이전 농경사회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특히 신체적, 정서적 의존도가 높은 노인일수록 노동집약적인 노동과 고도의 감정노동을 필요로 한다. 단순한 의식주 해결뿐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고, 불편한 몸의 거동을 돕고, 병수발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모든 노동을 누가 할 것인가. 지금과 같이 성별 분업이 뚜렷한 혈연 중심의 핵가족에서 그 노동은 거의 대부분 여성들에게 떠넘겨진다.

얼마나 모순인가. 한나라당은 한편으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여성들로 하여금 노인 부양에 필요한 노동을 하라고 유인하고 강요한다.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할 경우 부양명령을 내릴 것이고, 부양명령을 받은 자들의 명단도 공개하고, 부모유기를 부모에 대한 범죄행위로 규정,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전근대적인 법안을 자랑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현재 60세 이상 가구주의 절반 정도(49%)가 노후준비가 없으며, 준비가 있는 경우에도 공적 연금을 제외하면 33% 정도만이 개인적으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은 남성의 2배에 가깝다. 이러한 노령인구의 경제적 상황의 성별 차이는 가족 내에서의 성별 분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에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육아 부담이 여성 취업의 장애가 되기 때문에 육아의 사회화를 해야 한다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노인 부양노동 또한 사회화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노인을 돌보는 데 필요한 휴직이나 휴가제도 조차 없는 상황에서, 효도특별법은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고 이로 인해 노후 준비를 더욱 어렵게 하여 타인에의 경제적, 심리적 의존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하는 성차별적 법안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국가는 혈연에 기초한 효를 법적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노인을 포함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동등한 대우, 연령차별주의의 극복, 그리고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안한 효도특별법은 효라는 가치와 그를 행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효도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모 부양을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부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불효녀 혹은 불효자로 낙인 찍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이 법안을 구상하고 발표한 한나라당은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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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2004년 7월 26일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



사회 : 참여연대 평화군축 센터

여는 말씀 : 홍근수(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

취지발언 : 정태춘 (가수,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선언문 낭독 : 정성훈(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여성 1인

참가단체 발언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

정성훈(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선언 참가 단체(41개 단체)

반전평화기독연대, 불교인권위원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진보평론, 녹색평론,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전국빈민연합, 문화연대, 군축․평화를 위한 문예 행동단,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주한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 민족화합운동연합, 사월혁명회, 통일연대, 대항지구화행동, 평화바닥, 평화네트워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 전쟁없는세상,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초록정치연대,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민중의료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장애인이동권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 정전협정 51주년, 한반도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한다 -


<전문>


2004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로 보내왔던 것이다. 우리는 정전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자원을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낭비되면서 심각한 인권유린과 생존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영향력을 가져와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처럼 정전체제는 한반도 주민과 공동체의 삶을 총체적으로 짓눌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의 종식은 아직도 기약이 없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도 부족하기만 한 현실이다.


정전협정 체결 51주년을 맞이한 한반도는 희망과 불안,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향한 노력은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비록 실천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 최초로 남북한 군장성들이 만나 서해상의 무력충돌 방지와 상호간의 선전 활동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희망과 기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고, 주한미군 재편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두 축으로 삼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새로운 위협을 잉태시켜 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한반도 주민들이 생존의 벼랑끝에서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군사비는 여전히 최우선적인 특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선택이 갖는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첨예한 군비경쟁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의 과오를 극복하고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냉전적 세계관과 막강한 군사력이 안보를 지켜준다는 ‘낡은 사고’에 갇혀 또 다시 불안한 21세기를 잉태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는 이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서, 조속한 평화협정의 체결과 군축을 통해 공고한 평화체제를 실현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점을 호소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울러 이와 같은 중대한 전환기에 한미동맹이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아래와 같이 10대 요구 사항을 발표한다.

< 10대 요구사항>


첫째,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하게 임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성실한 협상을 외면해왔다. 이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MD 등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고 공격적 군사전략을 채택하며 궁극적으로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국은 이제부터라도 군사적 일방주의를 버리고 상호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협상과 타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은 한반도에 첨단무기 배치 계획을 중단하고 대북한 선제공격전략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야 한다.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군사력을 배치하면서 북한의 무장해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접근법이다. 미국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약소국가에 대한 전쟁위협 중단과 군축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용산기지 등 기존의 기지이전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에 따라 기지 역시 대폭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또한 동두천 등 미군 기지가 폐쇄되는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기지 폐쇄시 오염된 토지를 원상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화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계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미국이 한국을 MD의 전초기지화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경계하며, 이러한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째, 협력적 자주국방을 조기에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군의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 낭비와 남북관계의 불안을 가져오는 군비증강 계획 대신에, ‘군사 주권’의 핵심 요소인 작전지휘권의 완전한 환수부터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비의 규모 역시 세계평균인 GDP 대비 2.5% 수준 이하로 축소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군 문민화․투명화․비리근절 등 전면적 군 개혁에 나서야 한다. 군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지역에서 남북 군간의 교신내용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게까지 왜곡해서 보고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성역화되어 있는 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인 국방장관 기용을 포함한 군의 문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지정되고 있는 군사기밀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자의적 적용을 막을 국가기밀기본법을 제정하여 군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방비 증액에 앞서 군 조달 시스템, 비효율적 군수산업 구조, 육군병력 위주의 비효율적 병력구조 등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일곱째, 남-북-미 3자는 즉각 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미 인류 역사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무기와 병력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배치된 상황에서 더 많은 무기와 병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의 낭비와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뿐이다. 따라서 남-북-미 3자는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한반도에 배치되어 있는 병력과 무기를 대폭 감축하는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하고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특히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추가적인 예산 부담 없이도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고, 사병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홉째, 남북관계를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분단에서 통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대결형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 삭제, 헌법의 영토 조항 개헌, 남북교류협력법제의 개정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존의 남북, 북미 평화협정이라는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실현가능하고 공고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어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의미와 함께,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무모한 군비경쟁을 중단시켜 군축을 실현시키고 조속히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04년을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아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동아시아의 공동안보 실현을 위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2004년 7월 26일

<첨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우리는 먼저 냉전과 정전체제의 유산인 한미동맹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 함께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적 쌍생아이다. 그리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정부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우선 부시 행정부의 주한미군 재편과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2003년 5월 14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명시된 것으로써,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총론 수준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재편을 추진하고 한국은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반세기를 넘긴 한미동맹이 기존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바꾸고 건전한 관계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과거의 낡은 관성은 거의 고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 실현, 그리고 동북아의 공동안보에 기여하는 방향이 아니라, 대규모의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적 접근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비타협주의, 그리고 북한 핵문제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반도 군사력의 급격한 변화는 더욱 심각한 불확실성을 잉태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유리하게 하는 방향으로 군사력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주한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병력수를 줄여나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약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한반도 인근에서 대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 특히 미국이 수원, 오산․평택, 군산, 광주 등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들여놓고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하는 것은 한반도를 미국의 MD 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스텔기 전폭기와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신형 미사일의 배치는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을 더욱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아울러 보수 언론과 야당에서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을 ‘안보공백’과 동일시하면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공백’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향후 한미동맹이 "지역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타지역에서의 미국의 부분별한 무력 사용이나 대중국 봉쇄 및 포위에 활용될 가능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국이 타지역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개입의 중간기지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한국이 불필요한 외부의 무력 분쟁이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파병 결정은 이와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용산기지와 2사단을 비롯한 미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세계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특히 우리는 용산기지는 물론이고 2사단의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용산기지는 한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한국이 부담하고, 2사단 이전은 미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반환되는 용산기지는 약 80만평인 반면에 평택에 새롭게 건설할 예정인 기지 부지는 이에 4배인 약 320만평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시킨 다음에 2사단을 합류시키려는 계획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용산기지는 2007년까지, 2사단은 1년 뒤인 2008년까지 '같은' 평택 기지로 이전시킬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용산기지보다 4배가 큰 기지를 건설해줘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지고, 미국은 확장된 평택 기지에 용산기지와 2사단을 통폐합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비용 부담은 거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다섯째, 우리는 미군 기지 이전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 정부가 동두천 등 미군을 상대로 해 생계를 유지해온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나, 평택지역으로 남한 미군기지의 통폐합을 추진함으로써 해당지역 주민들의 생존권과 평화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끝으로 우리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과는 달리 협력적 자주국방은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의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군사적 종속을 고착화시키고 국민 복지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며 한반도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에도 역행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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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벌써 왔다가셨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