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책과 알라딘 서재에 대한 25문 25답

01. 당신은 책을 좋아합니까? (좋든 싫든) 그럼 그 이유는 뭐죠?

- 예, 책을 좋아합니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책을 읽었고,  책 사기를 즐겼지요. 그것 때문에 더 잘 살게 되었냐고 한다면?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인생이 특별히 더 지루해지지는 않았어요. 책 읽기로 인해 사는데 혜택을 보았거나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받은 적은 없지만, 그저 내 인생의 살아가는데 보다 많은 자극들 - 즐거움, 고통과 슬픔, 즐거움 - 을 선사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큼 명확한 것은 없지요. 가령, 내 인생에 보다 많은 자극적인 요소들을 그것들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2.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 경우에  따라 다르고, 책에 따라 다르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포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경우에 따라 한 달에 30여 권을 읽을 때도 있고, 정독을 해야 하는 경우나 진도가 더딘 책들에 도전한 경우엔 10여 권 정도를 읽을 때도 있습니다. 만약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고 하는 것들을 포함한다면, 특히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들을 읽을 때 다른 책의 데이타와 비교하면서 읽어야 하는 경우(그 책들을 포함해서 말한다고 해도) 대략 한 달 평균 10여 권 이상은 읽는 것 같습니다.

03. 특별한 독서 취향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한 거겠지요. 잡독에 난독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어느날은 서양마법에 대한 책을 읽다가 다음날엔 칼 맑스.엥겔스를 읽는 스타일이니까요. 만화책부터 고전에 이르기 까지 읽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 증세가 있습니다. 

04.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뭐죠?

-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어제 선물 받은 책인데,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였습니다. 사찰장식, 즉 불교미술에 대한 하나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네요. 죽여주던군요. 덕분에 상식이 많이 늘겠더군요.

05.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거죠?

- 원칙적으로는 책이 날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소화력일 텐데요. 공자 가라사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안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한 것처럼... 좋은 책과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읽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이 있을 뿐이지요. 흠, 이건 지나치게 잘난 척하면 읊조린 멘트같고, 실제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작가는 믿을 만한가(번역작가도 포함해서), 출판사는 등등을 고려해서 고르게 됩니다.
 
06. 책은 사는 편인가요, 아니면 빌리는 편인가요? 빌린다면 어디에서 빌리죠?
 
- 책은 대개 사 봅니다. 빌린 경우(절판도서)도 있는데, 빌리면 원칙적으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 원칙이거든요. 흐흐. 만화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서대여점을 이용하는 편입니다만 구입하는 만화들도 제법 있습니다.

07.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뭐고요? (장르 불문하고)
 
- 이건 질문으로 뽑으면서도 하기 싫은 거였는데,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어쩐지 기밀노출하는 것 같아서) 저는 절 감동시켜주고, 압도해주는 작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작가는 속내가 빤히 보이는 작가들을 싫어합니다.

08. 특히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어떤 거죠? 그 이유는 뭐고요?
 
-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별도로 없고, 특히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이렇게 하면 10억 번다"는 류의 책들을 싫어합니다. 뭐, 인간경영학 같은 류의 책들이나 어줍잖은 명상도서류들도 싫어해요. 이유? 이유?

첫 번째 부류의 책들은 제가 돈 벌기 싫어서 그렇구요. 인간경영학 류는 읽고 나서 실천해보려고 하면 이미 까먹고 만데다가 그렇게 실천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경영하고 싶지 않고, 세 번째 부류의 책은 그런 거 읽고 명상할 시간에 제가 기르는 화초들 들여다보는 편(현재는 신고니아와 아카시아 묘목을 기르는 중임)이 명상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흐흐

09.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 글쎄,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흐흐. "삼포 가는 길"의 "백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절 떠올리게 해서 좋고, 백화의 경우엔 그녀가 정말 행복했으면 싶어서요. 싫어하는 인물은 별로 없는데....

10. 일반적인 책말고 만화책도 좋아하시나요?

- 예, 그럼요. 물론이죠. 답하면서 보니 도대체 이건 왜 물어본 거지요. 어차피 싫어하던 말던 다음 질문이 계속 만화책 얘기인데도... 흐흐

11. 만화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꼽아본다면요?

- 당연히 여러 편인데요. 폼 잡으면서 말하자면 남들도 다 좋아하는 레이몬드 브릭스의 것들부터 시적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것들, 그외에도 꽤 많아요.
 
12. 만화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 나오키의 몬스터에 나오는 "요한"을 좋아해요. 싫어하는 인물은 글쎄... 없는 듯....
 

13. 기억에 남는 대사나 문구가 있다면 말씀해보시겠어요? (만화든 소설이든 그 외 어떤 장르든 - 책)

- 도와줘! 내 안의 몬스터가 파열할 것 같아.(몬스터 중에서) 흐흐...


14. 특별히 게임, 영화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됐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거죠?

- 역시 몬스터...


15. 다른 매체로 제작된 것 중, 좋았던 작품과 나빴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역시 어떤 장르든)

- 반지의 제왕이지... 흐흐. 글쎄 나빴던 걸 기억할리 없잖아.


16. 번역도서를 읽을 때, 특별히 선호하는 번역(자)작가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의 어떤 작품?

-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앞서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싫음(역시 기밀누설 -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몇몇 분들에게 누가 됨). 하여간에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고,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무척이나 감사를 드린다는 사실만큼은 꼭 밝히고 싶다. 번역작가가 없다면 내가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할 책이 엄청 많았을 거라는 점.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최소한 내게는 우리 말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면 세상에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니까.

17. 그 번역작가의 어떤 면 때문에 그를 선호하게 되었나요?

- 앞서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 날 감동시키거나 압도하는 경우에 좋아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우선 좋은 작품을 먼저 읽고 감동했기에(물론 여러가지 고려가 따랐을 테지만) 번역해준 것에 감사하는 측면이 있고, 대개 번역작가에게 감동할 때는 그런 안목과 식견이다. 그리고 성실한 번역을 사랑한다. 영문 제라늄을, 한글 제라늄으로 옮길 때 성실한 번역가는 실제 제라늄을 한 번쯤 실물로 보거나 하다못해 사진으로라도 찾아봐준다.  그게 번역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차이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번역과 편집의 공통점 - 모르면 모르는 거다. 모르면 자기가 뭘 잘못하는지도 모르고 틀려버린다. 그래서 번역작가의 가장 으뜸 덕목은 안목과 식견과 더불어 성실함으로 무장한 치밀함일지도... 그런 번역작가를 좋아한다.
 
18. 번역된 작품과 국내 작가의 작품 중에서 우선 순위를 두어 읽게 되는 도서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원칙적으로 국내 작가 우선이다. 그 이유는 먹고 살게 해줘야 하니까.  지금 우리가 많이 안 읽어주면 앞으로 여러 방면의 연구가들이 좋은 책을 내주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물론 고르게 발전해가야겠지만....
 
 
19. 요 근래 읽어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던 책은 어떤 것이죠?

- 최악인 책은 기억하지 않는다.


20. 요즘의 도서 시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가령, 특정 장르의 문제나 인터넷 서점의 미래 등에 대하여)

- 아직도 복마전이다. 유통망 좀 제발 개선해다오. 영화판처럼 어떤 의미에서 거대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건 아닌지...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이라도...

21. 최근 읽은 작품 중 괜찮다 싶은 책 세 권을 꼽아보시겠어요? 왜 그 책들을 골랐나요?

- 페로티시즘 : 야한 그림이 많다. 흐흐. 농담이고,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란 재미에서....
- 바람이 불 때에 : 레이몬드 브릭스의 책이다, 조만간 서평 써야지... 룰루랄라.
- 또 뭘 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22. 앞으로 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 계속 잘 될 거다. 그래야 하고.... 왜냐하면 아무 때나 펼쳐들고, 메모하고, 다시 기억하고... 그러기엔 아직도 책만한 매체가 없으니까.
 

23. 앞으로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고, 쓰게 될 것 같나요?

-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고, 쓰게 될 거다. 흐흐.


24. 제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면 무엇을 권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 아무 거나 옆에 있는 책들부터 빨랑 해치워라. 선물해준 이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흑흑.
 

25. 알라딘 서재 중 즐겨찾는 곳이 있다면 대략 몇 군데이고, 그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어, 그러니까. 난 남들 서재에 가서 잘 못 논다. 잘 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50여 곳 정도가 되니 와, 많구나. 주로 스텔라, 비발, 마태우스, 마냐, 조선인, 갈대, 메시지, 가을산, 물만두, 책울타리 님 등의 서재(아, 기억력의 한계니까 여기서 언급안되었다고 삐지기 없기다)에 가서 읽는다. 왜?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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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시간나면 한번 해봐야겠군.

조선인 2004-07-2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랑 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가을산 2004-07-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저는 발마스님 건줄 알았잖아요.
 
 전출처 : 릴케 현상 > 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고종석] 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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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19세기 초 영국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칭얼거리면 ‘나폴레옹 온다!’는 말로 울음을 그치게 했다고 한다. 대륙을 제패한 프랑스 황제가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망태할아버지’나 ‘에비’의 기억이 있지만, ‘나폴레옹’은 그 실체가 또렷한 데다가 당대 ‘선량한 영국인 공동체’ 전체의 적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아이들의 공포 대상과는 성격이 좀 달랐다. 나폴레옹이 도버해협을 건너온다는 데야, ‘선량한 영국인’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일치단결해야 하는 것이다.


근자에 노무현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나 노 정권의 강고한 지지자들 사이에서 옛 영국인들의 ‘나폴레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다.

이들은 주변에서 무슨 추문이 터지기만 하면 우선 “조선일보가 온다!”고 외치고 본다. ‘포로코’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한 웹사이트에서 지적했듯, 옛 군사정권이나 조선일보가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북한이 쳐들어온다!”며 불안을 조장했던 식이다. 호시탐탐 개혁세력을 해코지할 기회만 엿보고 있는 조선일보의 말을 왜 믿느냐고 질책하기까지 한다.

이 글에 대한 뒤틀린 비방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얼마간 눅이기 위해, 구차한 신원 진술을 하자. 나는 세칭 안티조선운동의 활동가까지는 못되지만 꽤 어기찬 지지자다. 지난 7년간 나는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술집이나 식당에서든, 종이신문으로든 인터넷으로든,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다.

몇몇 신문의 미디어 난에서 비판을 위해 인용된 조선일보 기사를 스쳐 지나가듯 본 것을 제외하면, 그 기간 동안 내 경험세계에서 조선일보는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신문에 대해 내가 느끼는 거리감은 직업적 안티조선 운동가들이나 노 정권 주변 사람들 못지않다는 것을 믿어줘도 좋다는 뜻이다.

다시 돌아가자. 조선일보는 악인가? 7년 전까지의 독자로서, 그리고 그 이후의 간접적 수용자로서 판단하건대, 그렇다. 나는 이 신문의 상업주의적 반공놀음과 종파주의적 선정성이 다원적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한다. 또 나는 조선일보가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추악하게 실천하고 있는 비윤리적 신문이라고 판단한다.

다음, 정권 주변 사람들이 최근 부쩍 더 암시하고 싶어하듯 이 신문은 만악의 근원인가? 이 신문은 늘 사실을 왜곡하는가? 코웃음 칠 얘기다. 일반적으로 고부 갈등이나 비련애사가 조선일보 탓이 아니듯, 일반적으로 정권 주변의 크고 작은 추문을 조선일보가 조작해내지는 않는다.

물론 일단 터진 추문을 이 신문이 악의적으로 부풀려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고, 조선일보는 그 분야의 전과가 화려하다. 그러나 정권 주변의 최근 추문과 관련해서 당사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조선일보만 아니었으면 추문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것은 논리의 앞뒤를 바꾸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혁세력’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몸가짐과도 거리가 있다.

그 다음, 악한 집단의 적대자는 저절로 선한가? 그렇지 않다. ‘식인귀’ 부시와 적대자였다는 사실이 사담 후세인의 ‘식인귀 아님’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 대한 사나운 비판이 그 비판자가 조선일보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사소한’ 추문들의 책임소재를 놓고 최근 조선일보를 격렬히 비판하며 “조선일보가 온다!”고 외친 정파는 정작 그 추문들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 이라크 파병이나 송두율씨 인권을 두고는 조선일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 정권의 핵심과 그 지지자들이 조선일보와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자유민주주의에 친화적이라는 것은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집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서는 제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개혁세력’을 보는 일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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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7-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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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요즘 우리 소설 읽기의 괴로움

요즘 우리 소설 읽기의 괴로움

김명인(문학평론가)

요즘 이례적으로 소설을 많이 읽습니다. 이번 학기 강의를 세 군데서 하는데 그 세 군데가 모두 소설을 읽지요. 월요일에 하는 [오늘의 한국문학], 시 소설을 나누어 읽지만 주로 90년대 단편들을 읽습니다. 수요일에 하는 [비평연습], 이번 학기는 소설비평 실습을 하니까 역시 당대 소설들을 읽지요. 목요일에 하는 [북한문학의 이해] 역시 주로 소설을 읽습니다. 지난 주엔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소녀] 등 대작들을 읽었고 이번 주에는 [청춘송가], [벗] 등 조금 나긋나긋한 것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격주로 하는 세미나가 둘인데, 하나는 [1920년대 소설읽기], 지금 몇 달째 현진건, 나도향, 최서해, 조명희를 겯들여 주로 염상섭이라는 인간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장편만으로도 [만세전], [해바라기], [너희는 무엇을 어덧느냐]를 읽고 이제 다음 주엔 [사랑과 죄]와 [이심]에 도전합니다. 또 하나는 [당대소설비평], 여기서는 막 나오는 계간지들에 실린 소설들을 '남독'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 [오늘의 한국문학]은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등 시인을 다루었고 수요일의 [비평연습]은 정도상의 [개잡는 여자]와 김원일의 [너는 누구냐]였습니다. 그리고 목요일엔 아까 말한 대로 80년대 북한장편들을 읽었지요. 오늘은 [당대소설비평] 세미나가 있는 날, 어제 하루종일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소설 각 5편씩 물경 10편을 읽어제꼈습니다.

그나마 강의 때 읽는 소설들은 일정한 검증을 거친 작품들이라 그리 손해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주에 읽은  [청춘송가]와 [벗] 등 북한소설들은 오랜만에 사람과 세계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명작(銘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읽는 최근 남한땅에서 만들어진 소설들은 참 고통스러운 독서를 강요하더군요.
창비와 문학동네면 사실상 현재 한국문단의 쌍끌이 잡지들이고, 거기 동원된 작가들도 [창비]에는 박완서, 서정인, 김인숙, 공선옥, 하성란, [문동]에는 김승희, 김훈, 이승우, 이응준, 윤성희 등으로 이름난 작가들이지요. 그런데도 별 한 개를 주기가 아까운 작품이 수두룩했습니다. 박완서와 서정인 두 노년작가들의 두서없는 요설, 한 문체 한다는  김승희, 김훈의, 문체를 무색하게 하는 어긋난 욕망의 표백, 이승우의 고질적인 싸구려 알레고리, 이응준의 지리멸렬, 윤성희의 대책없고 긴장없는 온정주의, 글쎄 김인숙에게서 보이는  소설가적 자의식의 편린과 하성란의 우연성 탐구 정도가 조금 와 닿고, 그저 요즘 내겐 보증수표처럼 보이는 공선옥만이 약간의 감상주의가 걸리긴 하지만 기대에 답하는 작품을 내놓았더군요.

하루종일 소설읽기. 그것도 좋을지 어떨지 모르면서도 한 손엔 연필을 놓지 않고 읽어내려야 하는 일의 지겨움을 아는지요. 게다가 어제는 끼니마다 소식(少食)으로 일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하루종일 뱃속이 거북해서 책상 앞에 정좌하기가 힘겨워 거실 바닥에 뒹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TV시청용 안즘방이 의자에 깊이 등을 기대고 앉거나 하면서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오직 공선옥의 소설을 읽을 때만 책상머리에 고쳐 앉았지요.

지성과 윤리,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윤리적 지성 혹은 지성적 윤리가 부족한 것이 우리 소설입니다. 물론 그것은 논리화되고 도그마화된 어떤 것이 아니라, 몸과 가슴으로 먼저 느껴지는 생짜의 어떤 감각 같은 것이겠지요. 요즘 우리 작가들에게는 그게 없습니다. 그저 나태한 아노미의 충만인 셈이지요. 나는 요즘 우리 소설의 지리멸렬은 여기서 온다고 봅니다. 소설이 무엇보다 공동의 운명에 관한 서사라는 사실을 이 작가들은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자신이의 그 공동의 운명의 서사적 대리자라는 그 끔찍한 사실을, 일종의 무당이어서 그 운명에의 예감 때문에 먼저 병들고, 먼저 미치는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껏 게을러진 이 비평가의 몸을 벌떡 일으켜 잠시 읽던 페이지를 접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리하여 책상 앞에 정좌하지 않으면 죄스러울 것 같은 그런 소설 쓰는 작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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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인터뷰] 한국일보 연재 ‘호두나무왼쪽길로’ 출간한 만화가 박흥용씨

 

안경숙 기자 ksan@mediatoday.co.kr

 

   
▲ 이창길 기자 photoeye@
“바람이 불면 나는 날개를 편다. 깃털 핥는 바람 소리. 날아봐. 날아봐…”

아이는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돈을 벌러 서울로 떠났다. 호두나무 위에서는 영동역을 지나가는 경부선 기차소리가 들린다. 기차를 타면 엄마가 있는 서울에 갈 수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한번도 호두나무 바깥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아이는 그렇게 기차소리를 따라 엄마를 찾아나서곤 했다.

열아홉이 돼서야 엄마가 재가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늘 엄마를 기다리던 호두나무를 불태운 뒤 무작정 오토바이를 끌고 호두나무를 벗어난다. 아이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만화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만화가 박흥용씨. 지난해 3월부터 1년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한 <호두나무 왼쪽길로>가 올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코믹 어워드 부문에서 작품상 부문의 장편/연재만화상과 함께 만화스토리상을 받았다. 올해로 8회를 맞는 SICAF는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전시 행사로 8월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서울시청 앞 잔디공원 등에서 열린다.

  호두나무 바깥세상 연결고리는 ‘오토바이’

<호두나무 왼쪽길로>는 여행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여행 만화이자 성장 만화다. 주인공 박상복의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출발해 김천, 함양, 남원, 목포, 부산, 밀양, 문경을 지난다. 영동을 중심으로 ‘8자형’으로 돌아다닌다.  여행 도중에 역사적인 사건을 만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의 얘기도 나온다.

   
▲ ⓒ 이창길기자
박흥용씨는 “연재가 되던 지난 1년 동안 독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잘 알 수 없었는데, 좋은 작품으로 평가해 줘서 고맙다”면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도 결국은 여행인데, 만화를 통해 짧게라도 자신을 찾는 전국 여행을 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힌다.

그러면서 큰 주제를 가진 만화를 신문에 매일 연재한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작업이었는지 털어놓았다.

“일주일 단위로 원고를 끊어서 마감했어요. 20대 때 여기저기 쏘다녔던 경험대로만 쓰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변해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보려고 만화에 나오는 장소를 일일이 다녔죠. 그러다 보니 지방 취재에 2~3일, 만화 작업에 2~3일이 걸려 쉴틈없이 일주일을 보냈어요. 독자들에게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니며 취재했고, 돌아오면 다시 그걸 조립했죠. 기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초읽기 마감’에 시달리다 보니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컴퓨터로는 펜화의 묘미 살릴 수 없어”

아이가 호두나무 바깥세상과 만나는 수단은 ‘오토바이’다. 이는 박씨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는 한때 자전거로 엄마를 찾아 떠나려고 하는데, 몇 시간 못 가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는 걸 깨닫고는 오토바이로 바꾼다.

상복은 뚜렷한 목적 없이 일단 호두나무를 벗어나지만, 첫사랑이었던 경희 누나로부터 ‘딸기’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딸기의 등장과 함께 상복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목도하게 되는데, 박씨는 광주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재조명했다.

“처음에 광주 여행을 했을 때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2~3년 전이었죠.거기에 중국인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의 화교 학교를 우연히 들렀더니 학교를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냐. 나가달라’면서 경계하더라구요. 왜 그런 경계심을 갖는지 의아했고, 그러다가 이런 사람들이 객관적인, 비교적 다른 시각으로 광주를 봤다면, 한발 거리를 둔 상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했을 때는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 ⓒ 이창길기자
<호두나무 왼쪽길로>에는 광주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여러 사람이 나온다. 신혼여행 온 고아 부부, 자살을 시도하는 명예퇴직자, ‘이태백’ 청년 실업자, 치매에 걸린 노인…. 상복은 이들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성장한다.

긴 여행을 마친 상복은 다시 고향 영동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태워버려 밑둥이 잘린 호두나무는 ‘애타는 기다림이 없어지니까 마음 속 가득했던 기대의 신비가 다 사라져 버린’ 현실이다. 여행의 목적인 ‘딸기’는 찾지 못했지만, 그것은 결국 돌아가신 아버지였음을 암시하면서.

인터넷 때문에 출판만화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박흥용씨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출판만화는 인터넷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이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만화를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은 펜으로 그린 가는 선을 다 날려 버리기 때문에 펜화의 묘미를 살릴 수 없습니다. 펜화에서 얻어지는 감동들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죠. 긴 이야기를 읽을 때도 출판 만화가 좋습니다. 아무리 편해도 컴퓨터 앞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탱화(불교의 신앙을 그린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자랐고, 형은 유화를 그렸지만, 동네에 살던 만화가와 ‘접선’하면서 오랫동안 만화와 함께 해 온 박흥용씨.

<내 파란 세이버>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 등으로 ‘작가주의 만화가’로 평가받는 박씨는 그 형용어구에 맞게 나이가 들수록 고향,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본능을 다룬 만화에세이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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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이 양반도 양반되기는 어려울 듯.
여름아이, 아니 자명한 산책님이 좋아할 만한 인터뷰군.
새 책이 나왔다구? 그럼 또(-_-;;;) 주문해야지 ...

로드무비 2004-07-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두나무 왼쪽 길로> 기대됩니다.
늘 좋은 기사 퍼다주셔서 감사합니다.^^

balmas 2004-07-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
좋은 기사 같이 읽으면 더 좋은 거죠, 뭐.^^

2004-07-2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07-2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자명한 산책님, [문익환 평전을 만화로 낸다면 이희재님과 박흥용님 중에 누가 더 어울릴까요?]가 뭐 그렇게 큰일날 말이라고 "서재주인에게만 보이기"로 질문하셨어요? (ㅋㅋㅋ 너무 했나?)
제 생각에는 두 분이 동시에 그린 다음에 평가를 하면 좋을 듯한데요. 그렇게 되면 독자들에게는 행복한 일일 텐데 ...^^

릴케 현상 2004-07-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사실은... 두분 다 할 생각이 없을까 봐... 걱정이어서

로드무비 2004-07-2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희재님을 좋아하지만 막연하게 문흥용님이 더 어울릴 듯.

balmas 2004-07-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박흥용(엥, 문흥용?????) 한 표요~~~
이희재 추천 없습니까?
알라딘에서 투표를 해서, 집단 건의를 한번 해볼까요? ㅋㅋ

로드무비 2004-07-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담도...^^

릴케 현상 2004-07-2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흥용 한 표라^^ 고맙습니다.
 

 

박근혜표 첫작품 ‘이념공세’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강한 어조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비판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보수층에 “날 좀 보소”
당내엔 지도자상 부각

한나라당에서 불어오는 ‘이념 공세’가 여름정국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표최고위원은 물론이고 김덕룡 원내대표, 이한구 정책위 의장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을 상대로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박 대표는 21일 밤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나 “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면 전면전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데 이어, 22일에도 당 운영위원회 등에서 작심을 한 듯 이념 문제를 제기했다. 박 대표는 “간첩 혐의로 복역한 사람이 군 장성을 조사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민주화인사가 됐다”며 “집권층이 나라 근본을 흔들고 파괴적으로 가고 있어 (야당이) 나라를 바로잡는 일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당 대표 취임 이후 줄곧 ‘상생과 화합’의 깃발을 들고 부드러운 대여관계를 강조해온 박 대표로선 이례적인 태도 선회다.

박 대표의 이런 방향 전환은 우선 보수 성향의 지지층을 염두에 둔 행동으로 보인다.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민주화 운동 인정 결정, 최근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둘러싼 청와대의 태도, 열린우리당의 친일진상법 개정 추진 등이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당 대표가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당의 터전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는데, ‘상생과 화합’만을 얘기하게 되면 존립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며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상황이 온 것 같다”고 풀이했다. 박 대표의 강성 발언이 ‘안보’ 분야에 집중돼 있는 것은 이런 분석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이와 함께 이재오·홍준표·김문수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당내 비주류 쪽의 ‘야성 상실’ 비판에 대한 대응의 측면과,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집중되고 있는 여권의 공세에 대한 반발의 성격도 더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지난 19일 대표로 선출된 뒤, 다음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부드러움뿐 아니라 단호함도 갖춘 ‘지도자상’을 구축할 필요를 느꼈을 수도 있다.

박 대표가 강성 기조로 돌아섬에 따라, 당분간 여야관계는 대결구도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각종 개혁정책에 대해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이며, 특히 국가보안법 개폐 등 휘발성이 강한 이념적 사안을 놓고 거센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당 일각에선 박 대표의 상품성이 ‘절제되고 부드러운 이미지’인 점을 감안할 때 공세의 수위와 기간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박 대표로선 대여 강경 자세가 여권의 전열정비를 촉진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고민스런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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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만, 변죽만 요란한 <사상논쟁>에 좌우될 필요는 없다.
쟁점은 세 가지다.
파병을 철회할 것, 서희, 제마부대도 철군할 것,
국가보안법 철폐할 것,
친일진상규명법 개정할 것,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가 이 문제에서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