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다
송두율 교수 사건을 재판하는 서울 고등법원 항소심 판사 제위 귀하,
송두율 교수 기소 업무를 최종 주관하는 강금실 법무장관 및 송광수 검찰총장 귀하,
송두율 교수 사건을 지켜보는 대한민국 시민사회 시민 여러분,
우리 한국 철학인들은 재독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뮌스터 대학 송두율 교수가 작년 2003년 9월, 37년의 망명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귀국한 이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말없이 주시해 왔습니다.
사실 이런 긴 방관은 그가 당한 불행하고도 부당한 고난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무책임하고도 부적절한 처신입니다. 무엇보다 송 교수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한국 철학계 전체를 망라하는 한민족 철학자 연합대회의 공식 초청이었음을 감안하면 한국 철학계가 무관심 속에서 그의 고통을 방관했다고 지탄받아 마땅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귀국 초기 관계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그의 지인들조차 몰랐던 과거 행적이 알려지면서 한국 지식인들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 도덕적 실망감과 책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때 우리 철학계는 송두율 교수와 더불어 사회적 견책을 같이 받는 심정으로 그 광적인 비방과 중상을 감내했습니다. 한 인간의 도덕적 실책에 편승하여 실정법의 이름으로 권력의 폭압을 가하라는 수구 언론의 비열한 선동주의를 통해서나마 도덕적 실망이 달래지길 바랬던 것입니다. 그것은 송두율 교수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윤리적 몫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민주화되고 있는 우리 국가의 법 기구가 나서서 냉철한 이성으로 송두율 교수의 삶과 그의 인간적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민주화된 우리 국가의 품에 포용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권 기구, 국제연합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계에 산재한 우리 철학계의 외국 지성인 동료들이 한국 관계 당국에 간곡한 구원 요청을 제출하고 우리 철학계의 침묵을 질책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인내성을 갖고 대한민국 시민과 법기구의 민주적 양식(良識)을 우선적으로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3월 30일, 송 교수를 겨울 냉기가 몰아치는 독방에 5개월 넘게 감금하고 난 뒤 나온 1심 판결은 단지 송 교수의 신체와 그의 정체성을 위협에 빠트렸을 뿐만 아니라 그를 그렇게 단죄하는 것을 허용한 이 국가의 품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습니다. 우리의 철학적 양식으로 보기에 대한민국 국가는 송두율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낙인찍음으로써 자기 손으로 제 품격을 망가트리는 오류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어느 면에서 송두율 교수 개인보다 이 대한민국 국가의 품격과 우리 자신의 인격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궐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에 강력한 의문과 규탄을 제기합니다.
1. 우선 우리는 1심 재판부가 송두율 교수의 제반 활동과 관련하여 양심과 사상의 문제에 관한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마치 송두율 교수의 행적이나 사상’때문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북한으로부터 우리 국가에 위협이 오는 것처럼 단정한 그 무분별한 판단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점을 고백해야겠습니다.
한 개인의 정신적 활동의 자유 및 그 제한의 조건과 관련하여 여러 판례를 통해 입증된 가장 적절한 규정을 담았다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요하네스버그 원칙> 제6조는 한 국가의 체제를 가장 극렬하게 비판하고 부정하는 사상을 표명하고 실천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니면 절대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즉 그런 사상이 1)‘급박한’imminent 폭력의 사용을 선동하려고 의도한 경우, 2)그로 인해 ‘실제로’practical 폭력이 유발되리라고 판단되는 경우, 3) 이런 사상이 그와 같은 폭력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조짐이 있다는 사실과 ‘직접적인’immediate 관련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두율 교수의 사상이나 학문, 또는 기타 북한을 드나든 행적이 급박한 폭력의 사용을 의도한 것이거나, 그런 폭력을 실제로 유발하였거나 유발할 조짐이 있던가, 아니면 북한에서 유발했다고 믿어지는 폭력 사태와 즉각적인 관계가 있다고 입증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송 교수의 행적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 체제 또는 그와 관련된 국가 활동이 명백하게 저해받을 정도로 위협받았던 경우가 현존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현행 <국가보안법>은 그 제1조 제1항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 규제 대상으로 삼으며, 특정 활동을 이런 반국가활동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엄격한 해석을 의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에서 있는 대로 추적해 드러낸 송두율 교수의 37년 망명 생활을 샅샅이 훑어보더라도, 그가 노동당에 가입한 것까지 포함한 그 어떤 활동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신과 제5공화국에 걸쳐, 그의 귀국으로 인해 새로 드러난 북한과의 과거 접촉 활동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체제보다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복원시키는 데 유익하게 작용했던 활동을 더 많이 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2. 무엇보다 우리는 학문을 전업으로 하는 철학자들로서 1심 재판부가 학문적 활동의 비판적 전문성 및 학문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진리 확정의 합리적 과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송두율 교수의 학술적 집필활동을 놓고 “순수한 학문활동의 일환으로 이러한 저술을 하였다고 볼 수 없고, 북한과의 의사 연락 하에 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이와 같은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단정한 점에 관해 경악을 넘어 허탈함을 느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판결은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이 “북한 사회의 결과물을 경험적으로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게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북한사회, 김일성, 김정일을 미화, 찬양”하려는 의도에서 “분석, 평가대상에 대한 심한 편파성의 결과”로 나왔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재적 방법론은 남한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겨냥하여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유포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채택된 선전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정은 일단 학문적 논증 및 비판의 공동체 안에서 방법론이라고 고지되고 나면 그 방법론이 어떤 검증 절차를 거치는지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나온 그야말로 음모론적으로 굴곡된 피상적 추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1심 재판부의 피상적 이해와는 달리 학문세계에서 ‘방법론’은 연구 대상 전체를 샅샅이 보려는 관점에서 제시되지 않습니다. 방법론은 항상 그 방법을 통해 보고자 하는 대상의 특정 측면, 즉 특정한 학문적 문제 의식에 답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보고자 해서 고안됩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외재적이거나 선험적 방법으로 볼 수 없었던 북한 사회의 부분, 그것도 중요한 부분을 보고자 하는 것이었지, 북한 사회 전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학문적 방법론의 숙명입니다. 따라서 어떤 연구 대상이든 한 방법론으로는 그 대상의 모든 측면을 볼 수 없습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북한 사회를 이해할 때 결여되어 있었던 그 사회 내의 행위 주체들의 동기연관, 그것도 그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동기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북한 지도층을 근접 관찰하고 그들과 비교적 솔직히 대담했던 결과적 정보들을 국내의 언론매체들을 통해 아주 정직하게, 그야말로 친북적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학문적 성과의 공개 원칙에 충실하게, 국내 독자들에게 공개했고, 이것은 당연히 한국의 학계에 찬반 양론의 담론장을 형성했습니다. 다시 말해 송두율 교수는 민주 사회에서 보장되는 학문적 검증 절차를 합리적으로 밟아나가고 있었고, 당연히 그 과정을 통해 내재적 방법론의 적용상의 문제점에서 내재적 방법론 그 자체의 문제점까지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지는 참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송두율 교수가 북한에 관해 공개한 정보들은 상당한 정확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면서도, 다른 그 어떤 방법론도 그렇지만, 완벽한 것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문적 불완전성을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그것도 7년이나 징역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3. 우리는 송두율 교수의 저작물이 국내 주사파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때문에 한국 사회가 상당히 위기에 빠진 듯한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재판부의 판결을 보면서 한국 사법부의 일선 판사분들이 얼마나 한국 사회의 흐름과 두려울 정도로 차단되어 사회적 무감각 상태에 매몰되어 있는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운동 및 그가 변혁 운동에서 주사파는 80년대 초 5공 군부독재체제의 폭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한에 눈을 돌렸던 비뚤어진 기대 속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주사파 발생의 가장 결정적 계기는 폭력적 억압을 일상화시킨 결과 멀리 있는 북한 정권을 오히려 온정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전두환 정권의 공포정치였습니다.
4. 우리는 송두율 교수가 처음 자성적 성찰문을 발표한 작년 10월 2일부터 그 엄혹한 추위를 지낸 현재까지 일관되게 대한민국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에의 충실성에 입각하여 모든 담론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재판부가 전혀 주목하지 않는 그 일방적 무신경에 분노합니다. 자존심을 가진 지식인이 공중 앞에서 자신의 과오를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파괴되지 않은 자기 모습을 보여 주려고 분투하는 정경은 이 순간 우리 사회가 누리기에는 과분한, 인간 정신력의 또 다른 성과라는 점을, 바로 이런 점에 항상 유의하는 우리 철학인들이 주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송두율 교수의 범죄구성행위라고 하는 것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분단체제 아래서 남한의 독재정권들이 북한보다는 남한의 국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그어놓은 경계선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며 통상적인 교류생활을 한 정도입니다. 바로 이런 일상적 활동 범주들이 국가보안법에 반국가단체구성(3조), 잠입·탈출(6조), 회합·통신(8조) 등의 거창한 법률개념으로 채색되어 범죄구성요건으로 적시되어 있는 한 재판부는 그런 활동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도 그런 활동을 범죄행위로 분류하는 거창한 재판 절차를 소모적으로 진행시켜야 할 것입니다.
현행 국가보안법의 취지를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더라도 송두율 교수의 범죄라고 되어 있는 모든 활동을 범법행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우매한 법이 계속 존속되는 한 우리 국가의 시민의식은 계속 위축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 행위가 언제든지 범죄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국가의 언행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입니다. 이에 우리 철학인들은 항소심 재판부, 법무장관, 검찰총장, 그리고 시민사회의 시민분들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탄원합니다.
첫째, 재판부는 현행 국가보안법으로라도 송두율 교수를 무죄 석방하라.
둘째, 송두율 교수를 무죄 석방할 용기가 없으면 국가보안법의 유효성에 대한 국회의 토론 과정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불구속 재판하라.
셋째, 한국 사법기구로 하여금 계속 무의미하고 우매한 판결을 하도록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라.
2004. 7. 15.
송두율 교수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 철학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