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자기반성은, 사실 호도의 문제에 앞서, 그 정치적 기민함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시민의 반성문의 논지는 두 가지다.
첫째, 인사청탁 파문과 장복심 의원 공천의혹의 문제는 사실을 따져보면 아무런 기사거리나 문제거리도 아닌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를 사건으로 만들었고, 열린우리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둘째, 따라서 사실 문제거리도 아닌 것을 문제거리로 삼고 있는 언론들 및 여론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논리에 휘말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앞으로 언론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연일 언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오늘 발표된 한길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 29.5%, 우리당 27.1%, 민노당 18.1%의 지지도를 보여주고 있고, 국민의 21.8%가 '노무현 대통령 복귀후 최근 지지 정당을 바뀌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또 열린우리당 지지층 이탈자 가운데 28.4%가 한나라당으로, 45.5%가 민주노동당으로 옮겨갔다.
나는 유시민의 '반성문'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지지도 하락에 대한 매우 공세적인 대응이라고 본다. 유시민은 자신이 잘못 했다, 열린우리당이 잘못 했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가 보기에 열린우리당과 그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의 술수에 놀아났다는 것, 경계의 실패를 통해 그들이 공격할 여지를 주었다는 잘못이 있을 뿐이다. 서영석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적개심'([한겨레] 신문)을 표출하고 있는데, 이는 유시민의 반성의 논리와 일관성이 있는 태도다.
그들의 태도는 열린우리당이 택한 전술적 지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열린우리당의 당면 목표는 더 이상의 지지도의 추락을 막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택한 방법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 그리고 한나라당과의 경계선을 더욱 확실히 하는 데 있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첫째, 열린우리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각인시킴으로써, 그들의 동요를 차단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둘째, 최근의 문제들을 수구언론의 정치적 술책의 (기만적) 효과로 부각시킴으로써, 열린우리당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도덕적 비난을 무마하고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조선일보]의 술책에 손쉽게 말려든 언론의 동업자 의식으로 전위시키는 것이다.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는 이 더러운 족속들아! 악의 화신인 [조선일보] [동아일보]와의 위대한 투쟁을 망각하고 너희들이 나를, 우리 열린우리당을 비난할 수 있느냐? 너희들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기 전에 다시 수구언론, 수구세력과의 성전에 나서라!' 그의 반성문에서 이런 성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왜 이런 반성문이 나왔을까? 상식적인 생각에 따르면 사과 한 마디라도 담겨 있는 게 정상적일 텐데, 왜 유시민은 이런 공세적인 '반성문'을 썼을까? 그가 상식을 몰라서 그랬을까? 그가 원래 비도덕적이어서 그랬을까? 이 질문은 결국 위에서 내가 제시한 열린우리당(적어도 그 지배적 분파)의 전술적 지향의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다.
우선 사과 또는 잘못에 대한 시인은 무언가 바로잡을 것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유시민이 반성문에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이유 또는 경계의 부족을 반성하고 있는 이유는 유시민이나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정세에서 바로잡아야 할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두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노무현 정권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핵심 정책을 생각해보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거부나 삼성의 후견인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기업도시 건설방안, 파병강행에 이르기까지 최근 열린우리당이 추구하고 있는 핵심 정책들은 사실 지배 계급, 독점자본의 정책 바로 그것이다. [조선]이나 [동아] 또는 [중앙]이 이 문제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들에 관해 열린우리당에서 거의 아무런 재검토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열린우리당=개혁정당(?)이라는 등식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 다음 유시민의 '반성문'을 이끌어낸 직접적인 사안들을 보자. 이 사안들은 사실 최근 대중적인 분노를 가장 크게 불러일으킨, 또는 언론의 선정주의적 취향을 가장 자극한 사안들이기도 하다. 장영달 체포 동의안 부결이나 장복심 공천의혹, 서영석 인사청탁 파문 같은 사안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사안들은 말 그대로 각 개인이나 정당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로,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든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또한 적을 가장 편하고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니 [조선]이나 [동아] 등이 이 문제에 불을 켜고 매달리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따라서 유시민이나 열린우리당이 이 문제들에 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다면, 그건 사실 [조선]이나 [동아]가 원하는 결론을 스스로 매듭지어주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시민이 보기에는 꼬리 한 토막을 잘라냄으로써 정권 핵심부로 파장이 번지는 것을 막고, 이 문제는 사실은 적들에 의해 만들어진 또는 과장된 문제임을 지적함으로써 적과 우리 사이의 경계선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는 것이 현재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어떤 것인가? 결론은 유시민에 대한 질문으로 대신하겠다. 당신은 정말 [조선] [동아]와 선을 긋고 싶은가?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싶은가?(그는 5년 동안이나 [조선]과 일체의 대화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파병철회안을 제기하지 않는가? 왜 아파트 분양원개 공개를 거부하는가? 왜 기업도시 방안을 추진하는가? 바로 이 정책들이야말로 [조선] [동아]와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쟁점들인데, 이를 통해 당신은 [조선] [동아]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셈이 될 텐데, 당신은 왜 고작 [조선]을 제대로 경계하지 못했다고, 웃기지도 않는 반성문 나부랭이를 쓰고 있는가? 도대체 [조선] [동아]와 당신이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당신들이야 사실은 이복형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