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 님에 대한 세번째 답변
지난 번 요구한 대로 로쟈 님은 긴 답변을 써주었다. 로쟈 님의 우정에 깊이 감사한다. 특히 로쟈 님의 답변이 매우 비타협적이라는 점에서, 그의 우정은 더욱 감사하게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다. 차이와 갈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정, 그 우정이야말로 상상적인 동일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 우정이 좀더 정확한 독해와 평가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더 가치 있고 유효한 것이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의 우정은 의지에 그친 게 아닌가 한다. 그에게 답례 우정을 베풀기 위해서는 적어도 인식론적 측면과 정세적 측면에서 답변을 해야 할 텐데, 정세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위해 그가 제시하는 인식론적 논의들에 대한 검토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내가 보기에 그의 인식론적 논거들은 얼마간 막연한 상투어들의 나열에 불과하기 때문에 굳이 논의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감성적으로는 지나치게 비장한데 인식론적으로는 좀 막연한, 또는 무딘 편이다. 예컨대 “‘더 좋은 세상’(=당신들의 천국)을 만들고자 하는 (숭고한) ‘혁명’(혹은 ‘정권퇴진운동’)”이라는 등식이 성립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정세적인 문제들에 관해 몇 가지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나의 우정의 부족함을 용서하시길.
첫째, 로쟈 님의 답변에서 당혹스러운 건 그가 나를 윤리주의자의 범주에 집어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거짓말,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AP 통신의 보도와 관련된 나의 태도를 윤리적인 것으로 재단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노무현 정부에게 화가 나지만, 나는 “노무현 정부의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라는 글에서 나의 개인적인 도덕적 분노를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제기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도덕적으로 잘못이므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므로 물러나야 한다는 점이 아니다. 나는 이 거짓말(노무현과 미국이 어떤 식으로 사실을 은폐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외교부의 거짓말)이 객관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의 주관적인 도덕적 판단을 제시한 게 아니라, 이 도덕적 쟁점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지, 어떤 정치적 파장을 미칠지 예상하고 평가해본 데 불과하다. 그러니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왜 “정부의 ‘거짓말’에 대한 ... balmas 님의 ‘분노’”라고 말할까? 나는 그 글에서 내가 도덕적으로 분노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전혀 없는데 ...
또 하나 당혹스러운 건 그의 일반론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정부가 거짓말한다, 거짓말하지 않는 정부가 어디에 있는가?” 누가 뭐라고 했는가?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또 그는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알다피시 거짓말이 ‘발각’되지 않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했는가? 그런데 발각되지 않았는가? 거짓말임이, 적어도 외교부의 거짓말임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에서 이 문제를 물고늘어질 것이라고, 또는 이 문제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말했을 뿐이다. 실제로 AP 통신 문의 여부에 대해 외교부가 시인을 한 바로 그날 밤, 열린 우리당에서는 외교부장과 국정원장 경질론이 대두되었다. 외교부장관은 그렇다치고 누구도 국정원장이 이 문제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열린 우리당 스스로 당내 회의에서 국정원장 경질론을 제기했다(이는 국내 주요 일간지에 모두 보도된 사실이다). 이걸 보고 도둑 제발 저린다고 하지 않는가?
더 당혹스러운 건 “『조선일보』는 “이게 정부인가?” 따위의 말을 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는 로쟈 님의 말이다. 누가 뭐라고 했는가? 『조선일보』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이런 말을 실제로는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큰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너희들은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도덕적으로 일갈하는 것보다 그들의 자격 없는 발언이 정치적으로 어떤 계산에 근거하고 있고 어떤 효력을 미칠지 따져보는 게 더 현실주의적인 게 아닌가? 그러니 나는 당혹스럽다. 내가 윤리주의자인가 로쟈 님이 윤리주의자인가? 왜 내가 (로쟈 님이 분류하는) 윤리주의자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가? 왜 내가 『조선일보』와 전략적으로 동맹을 맺고 노무현 씨를 공격하려 한다(로쟈 님의 첫번째 답글 중에서)는 황당한 중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둘째, 나는 로쟈 님이 현재의 정세에 관해 일말의 지식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모든 사안마다 <프레시안>과 더불어 <조선일보>의 입장을 검토하고자 하는, 정세분석의 유력한 근거로 삼고자 하는 ‘열의’가 나로선 ‘부조리’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게 부조리한지 잘 모르겠다. 사태를 좀더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여러 세력의 입장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닌가? 도덕주의 (또는 혁명주의) 입장에서 벗어나 좀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사태를 보려면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신문 하나라도 좀더 꾸준히 정독해야 할 듯하다). 그는 말한다. “그래서, ‘중도보수’로서의 열린 우리당보다 먼저 손봐줘야 할 건 ‘수구세력’으로서의 조선일보이고 한나라당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가?” 한번 물어보자. 현재의 정세에서 수구세력으로서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을 먼저 손보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이라크 파병강행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열린 우리당이 동의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테러응징론과 국가간의 약속의 중요성을 파병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더욱이 열린 우리당에서는 현재 이라크 전투병 파병 동의안을 검토 중에 있고, 이런 열린 우리당의 ‘전향적 자세’에 대해 조선일보와 조갑제는 격찬하고 있다. AP 통신 사태로 불거진 김선일 씨 진상 조사에 대해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은 국정 조사에 동의하고, 그 대상을 외교부 직원과 이라크 주재 대사관 직원에 대한 조사로 한정하려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어제 사설에서 진상 조사 촉구를 비판하면서 외교부 직원의 노고에 대해 국민들이 너무나 모른다고 질책하면서, 파병반대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진상 조사 축소와 파병철회론 배제에 대한 열린 우리당, 한나라당, 조선일보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의 ‘공조’를 통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29일 재적의원 2백86명 중 찬성 1백21표, 반대 1백56표, 기권 5표로 부결됐다. KBS 뉴스는 시민들의 성난 반응을 내보내고, 열린 우리당은 비난이 빗발치자 대국민 사과를 했다(매우 도덕적으로).
몇주 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열린 우리당이, “당이 내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 마디에 부랴부랴 취소하고 원가 공개 불가 방침을 내세웠고, 한나라당은 분양 원가 공개를 주장했다.
2주 전부터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 중 하나는 행정 수도 이전에 관한 논쟁인데, 열린 우리당은 이전을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 및 (이명박이 시장으로 있는) 서울시는 천도론을 내세우며 이전 불가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이게 최근 몇주 간 일어났던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이다. 이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물론 파병에 관한 문제이다. 자 그러니 로쟈 님께서 어떻게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먼저 손볼 수 있는지 말씀해주길 바란다.
내가 볼 때 로쟈 님은 정치적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고, 현 정세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는 분이다(그건 그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가 내 글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내가 혁명주의자=윤리주의자처럼 비쳤기 때문인데, 아마도 정치에 대한 그의 유일한 관심은 수구보수세력을 경멸하기, 혁명주의자들을 냉소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윤리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내가 보기에 윤리주의자는 로쟈 님이다.
그러면 나는 혁명주의자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혁명주의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말 두 가지 길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하나는 부시와 국내외 수구세력의 손아귀에서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면서 그 고통을 모든 국민이 감내하든가, 아니면 그에게 궁극적 책임을 묻고 그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든가.”라는 나의 주장은, 칸트식 어법으로 말하면 일종의 가언판단에 가까울 것이다. 곧 끝내 노무현이 파병을 철회하지 않고 국내외 수구반동세력과 동맹을 맺는다면, 그러면 노무현을 끌어내려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는 그렇게 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혁명주의자의 주장인가? 마르크스주의 용어법대로 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변혁하자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헌법을 새로 제정하거나 뜯어고치자는 것도 아니고, 파병을 강행하는, 국내외 수구반동세력과 동맹을 추구하는 정권의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으니, 이 파병 때문에 국민들과 우리 민족이 입게 될 피해를 두고볼 수 없으니, 이 파병으로 인해 이라크 민중들이 입게 될 피해를 묵과할 수 없으니, 이 파병 때문에 부시의 대 이라크 정책이 탄력을 얻고 그 결과 어떤 형태로든 부시의 재집권에 유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으니, 정권퇴진운동을 벌여서라도 파병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혁명주의자의 주장인가? 오히려 이는 정치학에서 시민불복종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런 식의 혁명이 있다는 건 나로서는 금시초문인데, 아는 게 있으시면 좀 가르침을 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로쟈 님은 파병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파병에 반대한다면, 파병을 강행하면서 부시 및 조선일보, 한나라당과 같은 국내외 수구반동세력과 객관적 동맹을 맺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읍소해야 하는가? 그래도 그들이 파병을 강행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조롱투의 구절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변을 해주고 싶지만, 로쟈 님 말마따나 이렇게 객담을 주고받을 만한 여유가 없어서 이 정도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재답변은 얼마든지 환영하는데, 앞으로는 엉뚱한 중상과 지루한 여담 대신 실제의 논의에 기반하여 본론만 주고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