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생명은 끝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부는 이제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못한 유령이 되었고, 앞으로는 박제된 채 꼭두각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먼저 [프레시안]의 보도를 봅시다.
외교통상부는 25일 모 사무관이 지난 3일 AP통신측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외교부, “공보관실 사무관급 직원 AP측과 통화”
신봉길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저녁 브리핑을 갖고 “현재 2명이 거론되고 있다”며 “외교부 공보관실의 사무관급 직원이 한국인 외신기자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한국인 실종 여부에 관해 간단히 문의한 전화를 받은 기억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봉길 대변인은 “아중동국 소속의 또 다른 사무관급 1명은 기억이 너무 흐려서 관련된 전화를 받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고 진술했다”며 “이 직원의 진술은 분석한 결과 진술의 가치가 있는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자체확인 결과 이날 아침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철저한 확인 차원에서 이 두 사람의 진술서를 이날 오전 모두 감사원에 제출했다.
외교부 직원, 한국인 실종여부 질문 받고 “알지 못한다”고 답변, 상부 보고 안해
한편 보다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공보관실 사무관은 ‘한국인 실종 여부에 관해 특정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 대변인에 따르면 이 사무관은 “AP 통신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한국인 외신기자인 것 같다”면서도 “이 기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불명확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대변인은 또 “이 사무관은 AP 통신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시간도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고 ‘김선일’이라는 이름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신 대변인은 “우리로서는 감사원에 자료를 넘겨서 객관적인 조사를 거쳐서 발표되기를 희망했는데 AP 통신 쪽이 김씨 피랍 관련 통화한 직원 이름을 알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공식적으로 얘기했다”며 “이에 따라 우리가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및 정부 부서 신뢰성 국내외적으로 큰 타격
AP 통신측의 24일 보도로 불거진 외교부와 AP 통신간 통화여부 논란과 관련해 외교부측이 하룻만에 외교부 직원과 AP통신 측의 통화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AP와 공방을 벌인 외교부는 국내외적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됐다.
전날인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AP통신 보도를 강력 비판했던 외교부 신봉길 대변인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확인통화 관련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했고 성실히 협조하겠다"면서도 "AP측이 피랍문제 해결에 결정적 자료인 비디오테이프도 외교부에 알리지 않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확인했는지를 답해야 한다"고 AP측의 분명한 설명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AP통신 보도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외교부의 신뢰성은 국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고, 그 결과 무더기 인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프레시안] 기자는 외교부 및 정부 부서의 신뢰성에 큰 타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기자인 이상 그 정도밖에는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게 "외교부 및 정부 부서의 신뢰성의 큰 타격"의 문제일까요? 외교부 하급관리의 실책의 문제일까요? 또는 외교부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면 되는 문제일까요? 문제가 과연 그 정도에 그칠까요?
당연히 그 윗선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문제는 노무현 씨가 과연 김선일 씨의 피랍 사실을 몰랐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알았다면, 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까라는 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왜 모른다고 했을까, 왜 알면서도 모른다고 거짓말했을까라는 데 있습니다.
오늘 촛불집회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았습니다. 인권실천시민연대의 활동가 한 분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가나무역 직원들이나 교민들은 6월 3일 이후에 이미 김선일 씨의 피랍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라크에는 많은 국정원 직원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되어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일개 민간인들도 알고 있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더 나아가 국정원으로부터 직속으로 매주 정례 보고를 받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의혹이 생깁니다. 그럼 왜 노무현 대통령은 이 사실들을 전혀 모른 체했을까? 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말했을까? 그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앞으로 밝혀지겠지요. 그리고 밝혀야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정부 부처만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김선일 씨의 피랍 및 살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거짓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는 이런 거짓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내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봅시다. 이 사설은 외교부 브리핑이 이루어지기 전, 오늘 오후 6시에 작성된 사설입니다.
[조선일보]
사설1] 정부의 도덕성이 걸렸다
입력 : 2004.06.25 18:14 00'
미국의 AP 텔레비전 뉴스가 이달 초 김선일(金鮮一)씨 납치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고 밝힌 데 대해 외교부와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AP의 태도가 납득하기 힘들다며 “진실을 밝히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결과에 따라 이 정부나 AP 중 한쪽의 신뢰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AP측은 사실 규명에 협조를 하고 밝힐 것은 밝혀야 한다. 취재원 보호 등 지켜야 할 원칙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취재원 보호와 직접 연관을 짓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정작 미심쩍은 것은 충분한 조사도 없이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밝히라”고 발끈하는 외교부와 이에 덩달아 “진실을 밝히라”고 나선 집권당의 태도다. AP는 오랜 세월 세계의 뉴스 현장을 누벼 오면서 그 정보력과 신뢰성에 정평을 인정받은 언론사다. 그 언론사가 공식문서로 입장을 밝혔다면 일단은 내부 조사라도 철저하게 하고 나서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이성적 태도다.
만일 AP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외교부와 정부는 정말 어쩔 셈인가. 외교부 실무자가 전화를 받고 무시했을 가능성도 있고, 윗선에 보고 또는 문의를 했음에도 상부에서 묵살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외교관으로서 기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우르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 되면 능력 부족, 사명감 부족에다 국제적 망신까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정부의 상표 중 하나가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다. 작년에 이라크에서 우리 교민이 피격되고 지난 4월에 우리 목사들과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이 납치된 일도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외교부는 자체 대응지침을 만들어 전 직원이 숙지하고 긴장했어야 마땅하다. 전화를 받고 불과 57명밖에 되지 않는 이라크 교민 명단 속에서 ‘김선일’이란 이름만 확인했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만에 하나 정부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 정부는 부도덕한 정부다. 국민에게 부도덕한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섬뜩한 사설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십시오. "국민에게 부도덕한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칼을 갈고 있을 겁니다. 더욱이 이 사설은 외교부 브리핑이 나오기 전에 작성된 사설입니다. 아직 새로운 사설은 올라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가 이 사태가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까요? 그저 외교부 하급 직원이나 외교부 장관이 책임지면 되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국정원의 정보력이나 국정원과 대통령 사이의 직속 라인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선일보가 모르고 있을까요?
조선일보로서는 고민하겠지요. 이 정도의 사설로 협박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계속 꼭두각시로 부려먹을지, 아니면 좀더 강한 사설을 새로 써서 이 참에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파병도 하고 노무현도 쫓아내고" 일거양득을 얻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지. 정말 이런 횡재가 있습니까?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습니까? 4,15 총선이 불과 두달 전에 있었습니다. 노무현과의 전투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조선일보와 수구세력들로서는 이런 반가운 소식이 더 있겠습니까?
앞으로 외교부 직원들이 파면되고, 외교부 장관이 경질되고, 국정조사가 시작되겠지요. 노무현 씨는 청와대에 계속 거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생명력은 이미 수구세력의 손아귀에 넘어갔다는 의미에서 노무현 씨가 청와대에 계속 살든, 대통령으로 불리든 말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노무현 정부의 생명줄을 조여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 계산을 하느라고 바쁜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는 정말 두 가지 길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하나는 부시와 국내외 수구세력의 손아귀에서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면서 그 고통을 모든 국민이 감내하든가, 아니면 그에게 궁극적 책임을 묻고 그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든가. 또는 그 스스로가 물러나는 길도 있겠지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제 노무현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