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인가? 가짜인가? (3)
앞면은 <금동계미명 삼존불>과 같고 뒷면의 명문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을 그대로 배꼈다는 북한의 불상이 정말 가짜인가? 어떻게 동 시대에 제작된것이 아님에도 명문은 똑 같을까? 배꼈다고 하는 명문의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래의 그림 두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그림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전면과 광배 뒷면의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3년도에 경남 의령에서 농부에 의해 발견이 된 불상으로 신라의 영토였던 지역에서 발견이 되어 아직도 논란이 많은 불상인데 뒷면의 명문에 의하여 고구려의 불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정영호 선생에 의하여 수습되었는데 당시 이 불상이 안치된 장소는 절터나 무덤이 아니라 임시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 정도의 돌 함을 쌓고 그 속에 넣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정영호 선생은 이 불상이 북한군의 호지불로 후퇴 당시에 임시로 숨겨 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충식 선생은 이 불상의 크기가 16.2cm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호지불로 소지하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기에 정영호 선생의 북한군 호지불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신라 영토에서 발견된 것은 다소 의아하지만 경주의 호우총(壺우塚)에서 광개토대왕의 무덤에 사용되던 청동호우가 발견된 사례도 있어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이 불상은 발견후 광배 부분에 손상을 입어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동강난 것을 접합을 했습니다. 장충식 선생은 만약 호신불로 소지하고 다녔다면 금을 입힌 불상의 어느 귀퉁이는 마모가 되었을텐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이 불상의 제작연대에 대한 논란입니다. 延嘉는 고구려의 연호로 己未年인데 539년부터 60갑자의 차이를 학자마다 보이고 있어 539년, 599년, 479년, 419년으로 보는가 하면 심지어는 시대를 아주 낮춰서 고려 광종시대인 959년으로 편년을 잡는 학자도 있는것 처럼 편년에 대한 정확한 결론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전반적인 의견은 539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불상의 세부 표현기법이나 양식을 논하는것은 조금 어렵기에 생략을 하고 바로 명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배의 뒷면에는 47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명문은 모두 해독이 가능한데 명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延嘉七年歲在己未高麗國樂良
東寺主敬第子僧演師徒十十十十人共
造賢劫千佛流布第十十九因現義
佛比丘法潁所供養
연가 7년 기미년에
고려 낙랑 동사라는 절의 주지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제자 승연을 비롯한
사도 40명이 현겁 천불을 만들어 유포한
29번째 인현의불을
비구인 법영이 공양한다
이 명문은 국내에서도 단 두글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입장이며 최근에는 불교의 경전인 <현겁경>에 나온 내용을 주장하여 비교적 타당성을 인정하는 추세인데, 문제는 오역한 명문을 북한의 유물에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컨닝을 하였는데 다시 고친것을 모르고 틀린 답을 그대로 적어낸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럼...문제가 되는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불상을 발견한 후에 학자들은 명문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위의 파란 밑줄친 내용을 다르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因現義佛 이라고 해석된 부분을 回現歲佛로 해석하였던 것인데 이 명문에는 붉은 표시를 한 "歲"와 回現歲佛에서의 "歲"는 비슷하게 새겨져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回現歲佛'은 '回現義佛'로 해독하는것이 타당하다 할것입니다. 회현세불이란 의미는 억지로 해석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부처라는 의미가 되는데 그런 의미로 사용될 경우의 새로운 세상이란 의미는 '現世'가 맞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回現義佛이란 한자는 <현겁경(賢劫經)>에서 말하는 因現義佛이라는 것을 밝혀내게 된 것입니다.
좌측 사진에 나타난 '回'자는 '因'의 고어로 판단이 되는 것이며 이는 불교의 경전에 나타난 "제29인현의불"과 같은 내용으로 가운데 들어있는 'ㅁ'이 바깥의 'ㅁ'좌측에 붙은 글자라는 것입니다. 고어라는 것도 경전의 내용과 일치하기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유물인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불>에는 모두 46자의 명문을 담고 있는데 47자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에서 '主'자가 빠졌고 마흔을 뜻하는 "十十十十"대신 "此"로 음각되어 있는 것입니다.
똑 같은 명문이 서로 다른 불상에 새겨진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히 잘못 판독되었던 부분을 그대로 배끼는 실수를 북한 유물에 저질렀던 것입니다. 주최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북한의 유물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진 것이라는데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편이지만 유물 자체는 고구려 유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 유물이 평양의 고구려 왕궁터에서 발굴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좌측의 명문 확대사진에서는 분명히 "回(회)"로 읽어야 될 한자입니다만, 문헌자료에 해당하는 불교의 경전인 <현겁경>이 있었기에 회가 아니라 "因(인)"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에서는 이렇게 문헌자료와 실물자료의 일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한솔동의보감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출품된 북한의 유물은 어떤 경로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전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한에서는 국보급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주최측에서 주장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유물 자체는 비교적 나이가 들은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 유물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었기에 똑 같은 명문을 새긴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먼 훗 날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가지...저도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에 대한 구구한 논란이 될 때 "回"로 이해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관련 문헌을 찾아내고 그러므로써 명문에 대한 올바른 판독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정확한 출토 경위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것이며 중국의 불상의 형태에 대한 연구로 제작년대가 언제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539년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비교적 많은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바로 불상의 탄생이 언제인가를 알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