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특별기고] 한국사회는 지금 도약을 위한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양적 팽창에서 질 적 성숙으로의 전환, 사회영역 전반에 걸친 민주역량의 제고, 국제경쟁력의 강 화, 효율적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 등 엄청난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입 니다. 이러한 개혁의 열쇠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담당할 인적 자원 양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국 창의력과 함께 폭넓은 식견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 한 교육혁신은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서울대는 최근 이러 한 교육혁신을 구체화하려고 학사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정원축소등 뼈깎는 자기혁신중▼ 서울대는 지난 2년간 교육과 연구의 내실을 다지기 위하여 뼈를 깎는 노력을 기 울여 왔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학생을 다양하게 뽑기 위한 ‘지역균 형선발제’를 이번 가을부터 시행합니다. 글쓰기 말하기 토론 훈련과 핵심 교양 강좌를 통해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의 내실을 기하기 위하여 2005학년도부터 학사과정 한 학년 입학정원을 3850명에서 3225명으로 625명이나 줄이는 자기혁신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 폐지론, 국립대학 평준화론 등 대학 밖으로부터의 바람이 거셉니 다. 저는 오늘 서울대가 그리는 학사구조의 미래상을 소개하면서 아무런 국가적 실익이 없는 저간의 논쟁을 중단할 것을 제의합니다.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국가경쟁력 강화에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시점에 최근의 논쟁은 소모적일 따름 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입학정원 축소는 그 자체가 기초교육 강화와 양질의 교육환경을 위한 최선 책이라는 판단에서 추진됐습니다. 또 정원 조정은 학사구조 선진화의 첫걸음일 뿐 아니라 사회통합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추진될 서울대 학사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첫째, 초기에는 교육단위, 그리고 여건이 성숙되면 모집단위로서의 학부대학 (university college)의 설치입니다. 학부대학 체제는 기초교양교육과 전공교육 을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고급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데 적 합한 제도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초학문의 발전과 이를 발판으로 한 응용 또는 종합학문의 동반적 발전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학부대학과 함께 전문영역 에서 활동할 인재를 양성하는 기존의 단과대학들이 서울대의 학사과정을 구성하 게 될 것입니다. 둘째, 고급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원의 설립입니다. 현재 법학전문대학 원(law school)의 도입을 천명한 단계에 있습니다만 사법개혁안이 구체화되면 뒤를 이어 출범할 것입니다. 이 밖에도 학사과정교육의 기초 위에 고도의 전문 지식을 쌓아야 하는 분야들이 발전적 개편을 통해 전문대학원으로 정착될 것입 니다. 이는 고등교육의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물론 전문대학원 체제 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서울대는 전문대학원 도입에 필요한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셋째,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담당하는 일반대학원의 강화입니다. 서울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 지식의 창출입니다. 이러한 기 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문에 매진하는 학문후속세 대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가발전 차원서 각계 협조해야▼ 서울대가 세계 최일류 수준의 교육과 연구의 전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에 서 제시한 학사구조개선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개선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서울대 구성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협조가 절실히 요구 됩니다. 국가 발전의 차원에서 서울대 미래상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시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2004. 6. 3 서 울 대 학 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런 내용이 공개적으로 거론이 되지 않았었는지 ....
나중에 조선총독부의 총독까지 오른 이등박문이 일본에 유학중인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충격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내선일체를 위하여 일본에 볼모의 형식으로 유학을 갔던 우리 황태자의 모습은 비록 어린 황태자였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던것 같습니다.
<소년> 창간호의 맨 앞을 장식하고 있는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육당 최남선이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를 발간하면서 우리의 독립을 추구하는 권두언을 쓴것을 보면 결코 친일파는 아니었던것 같고, 이 사진을 게제한것은 황태자가 볼모로 유학을 갔으니 정신 차리자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如 村>
내가 아는 선배님들이 하는 사이트에서,
현충일 날짜의 유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1944년 6월 6일)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놀랍다, 정말.
혹시 사실관계를 더 정확히 아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불길하게도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 레즈비언 웹진 [또다른 세상]에서 퍼왔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다른 글들도 볼 수 있습니다.
http://kirikiri.org/ttose/
나노기술, 꿈인가 악몽인가? 나노기술의 위해성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
김명진
나노기술의 어두운 측면 몇년 전부터 『네이처』(Nature) 지는 매년 연말마다 그 해의 주요 과학계 소식을 선정해 이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다. 작년 연말에 나온 합본호에도 '2003 in context'라는 제목으로 2003년을 뒤흔들었던 과학계 소식 열 개를 선정해 특집기사로 실었다. 여기에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과학계에 미친 영향, 사스(SARS) 공포와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 사고, 기후변화 협약의 후퇴 등이 주요 소식으로 뽑혔는데, 나노기술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흥미로왔던 점은, 이 기사가 나노기술의 새로운 발전과 그것이 내포한 '혁명적 잠재력'에 주목하는, 우리 눈에 제법 익숙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사는 나노기술의 위해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중적 우려의 증가, 그리고 이에 대한 과학계의 대응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 21세기 첨단기술 중 하나로 상찬되곤 하는 나노기술이 사회와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무척 생소한 얘기일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런 내용이 2003년의 10대 뉴스 중 하나였다니, 작년에 갑자기 무슨 큰일이라도 났던 것인가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노기술의 발전이 내포한 '어두운' 측면에 대한 우려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 기술이 주목을 끌기 시작한 1980년대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3년은 관련 NGO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나노입자의 위해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성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해였다.'회색 점액질'(grey goo) 시나리오나노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처음 제기된 싯점은 나노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뒤섞은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의 책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 출간된 198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오늘날 '나노기술의 전도사'로 통하는 드렉슬러는 이 책에서 '어쎔블러'(assembler)라고 불리는 초소형 나노머신이 원자나 분자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저렴하게 만들어내는 미래가 머지않아 도래할 거라는 장밋빛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나노기술이 빚어낼 수 있는 파국적 미래상도 아울러 제시했는데, 자기복제하는 '나노봇'(nanobot)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마치 꽃가루처럼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주위 환경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먹어치워' 지구 생태계를 불과 며칠만에 회색 먼지 내지 '회색 점액질'(grey goo)로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드렉슬러의 전망은 2000년 4월에 발표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빌 조이(Bill Joy)의 글 「미래에 왜 우리는 필요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Why the future doesn't need us')에서 보다 강력한 형태로 반복되었다. 썬 마이크로씨스템즈(Sun Microsystems)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였던 조이는 일명 'GNR 기술'(유전공학ㆍ나노기술ㆍ로봇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적 결과에 대해 경고하면서 드렉슬러의 주장을 되풀이했고 나노기술이 군사적으로(혹은 테러 행위를 위해)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드렉슬러와 조이의 경고는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나노기술에 대한 대중적 상상력의 영역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과학계 내에서는 SF의 영역으로 치부되면서 별다른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화학자 리처드 스몰리(Richard Smalley)는 자기복제하는 나노머신 따위는 그 원리상 결코 만들어질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하면서 드렉슬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GNR 기술의 위험성을 지적한 조이의 글은 기술중심주의적 사고의 산물이자 미래에 대한 예단으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드렉슬러와 스몰리는 최근까지도 논쟁을 이어가고 있고, 작년 말 썬 마이크로씨스템즈를 사임한 조이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독성학 분야의 연구들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에 나노기술에 관한 논란에 불을 지핀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주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활동해 온 캐나다의 NGO인 'ETC Group'이 작년 1월 'The Big Down'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나노기술 분야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ETC Group은 드렉슬러의 '회색 점액질' 시나리오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나노기술과 유전공학이 결합한 나노바이오기술 (nanobiotechnology)이 전례가 없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일명 '녹색 점액질(green goo)'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역설했다. 또한 ETC Group은 나노기술의 군사적 이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으며, 합성 나노입자가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ETC Group의 주장은 작년들어 화장품이나 전자공학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나노입자들이 피부 등을 통해 인체에 직접 침투해 위해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독성학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속속 보고되면서 구체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작년 3월 NASA의 연구팀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장치 등에 응용되고 있는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를 용액 형태로 쥐의 허파에 주입했을 때 폐조직을 손상시키는 등의 독성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프라이팬 표면 등에 사용되는 테플론(teflon) 입자를 나노미터(nm) 사이즈로 만들어 쥐에게 흡입하게 한 결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는 연구결과도 비슷한 시기에 보고되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마이크로미터(μm) 이상의 크기에서는 별다른 독성을 보이지 않던 물질이 나노미터 크기로 작아지면 독성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충격을 주었다. 또한 나노입자가 지렁이의 피부를 통과해 체내로 흡수될 수 있음을 보여준 미발표 연구도 있었고, 올해 초에는 코로 흡입된 탄소나노튜브가 뇌로 들어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러한 독성학 분야의 연구들은 SF의 영역이거나 적어도 먼 미래에나 나타날 사회적 문제로 간주되곤 했던 나노기술에 대한 문제제기를 당장의 현실적 규제 문제로 탈바꿈시켰다. ETC Group이나 그린피스(Greenpeace)와 같은 NGO들은 현재 모든 나노기술 연구에 대한 모라토리엄(일시중지)과 전지구적 나노안전성의정서의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구미 과학계의 발빠른 대응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에 대한 구미 과학계의 발빠른 대응이다. 많은 수의 나노과학자들은 드렉슬러나 ETC Group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로 인한 대중적 이미지의 악화를 크게 경계하면서 자발적인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네이처』같은 학술지 역시 나노과학자들이 나노기술에 대한 과장된 선전을 자제하고 대중의 우려에 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으며, 영국의 왕립학회 같은 독립적 과학자단체와 각국의 규제기구에서는 나노기술이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이들이 이렇게 기민한 대응을 하게 된 배경에는 유럽에서 GM(유전자 변형)식품이 겪은 실패가 준 교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농업 생명공학 회사들과 과학자들이 GM식품에 대해 초기에 제기된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중의 우려를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했다가 불신을 자초해 결국 시장에서 전면 거부되었던 전례를 나노기술이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이는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과 같은 첨단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발 일변도로 치달아 최근 과학기술과 환경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창비 웹매거진/2004/6]※ 창비 웹매거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주)창비 양측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