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수수께끼 > 이등박문은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런 내용이 공개적으로 거론이 되지 않았었는지 ....

나중에 조선총독부의 총독까지 오른 이등박문이 일본에 유학중인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충격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내선일체를 위하여 일본에 볼모의 형식으로 유학을 갔던 우리 황태자의 모습은 비록 어린 황태자였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던것 같습니다.

 <소년> 창간호의 맨 앞을 장식하고 있는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육당 최남선이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를 발간하면서 우리의 독립을 추구하는 권두언을 쓴것을 보면 결코 친일파는 아니었던것 같고, 이 사진을 게제한것은 황태자가 볼모로 유학을 갔으니 정신 차리자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如        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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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선배님들이 하는 사이트에서,

현충일 날짜의 유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1944년 6월 6일)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놀랍다, 정말.

혹시 사실관계를 더 정확히 아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불길하게도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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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해를 하신 거 같네요. 아무리 사대정부라 해도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가지고 현충일을 삼았겠습니까. 우리 풍속상 한식에 성묘를 하고 망종에 제사를 지냅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망종에 죽은 군인들을 위해 국가차원의 제례가 있었다고 하네요. 이처럼 옛풍속을 쫒아 망종이었던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한 것입니다.

조선인 2004-06-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시는 분이 더 자세한 설명을 올려주셔서 몇 자 더 옮겨적습니다.
수수께끼님 왈~
24절기중 망종의 앞에 있는 청명에는 삭초를 그리고 한식에는 성묘를 지냈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던 우리 고유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현충일이 제정된 1956년의 망종이 바로 6월 6일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운운하며 사대주의를 들먹이는것은 단지 시비를 위한 낭설일 따름이며 우리국민은 남의 승전일을 따라 현충일을 정할 만큼 그렇게 덜 떨어지지는 않았답니다.

balmas 2004-06-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설마 했는데, 그렇겠죠 ...
아무리 그래도, 천년 넘게 문자를 갖고 공부를 해온 사람들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겠죠.
아무튼 이렇게 명쾌한 답변을, 빨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수께끼님께도 상세한 설명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저의 무식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긴 했지만, 오해를 빨리 풀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만큼 무식한^^ 제 선배님들께도 빨리 알려드려야겠군요.

비로그인 2004-06-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무식하다기 보다는 모르고 계시는 선배님들이실것이고, 관심이 없었기에 일어난 일일것입니다.

balmas 2004-06-1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식을 너무 너그럽게 봐주시는 것 아닙니까?^^
 

* 레즈비언 웹진 [또다른 세상]에서 퍼왔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다른 글들도 볼 수 있습니다.

http://kirikiri.org/ttose/

 

우리는 살고 싶다. -한국사회 성 소수자 인권 현실-
<또세에 게시된 글을 옮기거나 인용할 때는 출처를 꼭 밝히셔야 합니다>

1. 들어가며

2002년 10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는 동성애 사이트를 전면 차단하는 소프트웨어 ‘수호천사’를 제작․유포하는 (주)플러스 기술과 동성애를 음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을 ‘인권침해’로 규정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지난 4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끼리끼리>의 진정을 받아들여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동성애 관련 조항은 인권침해 조항임으로 삭제하라는 권고를 하였고,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삭제 결정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공식발표에 이어 보수 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다수의 인권을 유린하는 결정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측에 공문을 발송하여 권고 결정을 취소하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보수 종교 언론인 <국민일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 결정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동성애란, 두뇌 구조이상 유전인자가 요인’․‘동성애 사이트 접속 허용, 잘못된 환상 심어’ 등의 동성애혐오 기사를 게재하였다.

권고 결정 이후 시작된 보수 종교계의 반발이 거칠어 질 때 즈음인 4월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자 활동가인 윤모씨(19세)가 6장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윤씨가 남긴 유서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청소년 보호법상의 동성애 차별조항이 삭제된다면 바라 것이 없다’, ‘이젠 내가 동성애자라고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서 행복하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문화제’가 개최되었다. 이화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인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주최로 개최된 이번 문화제는 “넌 어쩌다 이성애자가 되었니?”라는 주제로 기획․진행되었다. 이대 활동가들은 이번 문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홍보를 위한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이후 늦은 밤 시간만을 이용해 홍보 작업을 해야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찢겨지고 떨어져나간 포스터를 발견하고, 그 날 밤이 되어야 다시 보수를 해야하는 어려운 진행을 지속해야 했다.


문화제 기간 중에 <이화에서 레즈비언 문화제를 반대하는 모임>이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이번 문화제를 ‘비정상적인 행사’로 평가절하하며 ‘넌 어쩌다 이성애자가 되었니?'라는 질문과 '어쩌다? 이게 정상이야. 우리가 비정상인양 말하지마'라는 대화로 이루어진 대자보를 선전하는 일이 발생했다. 레즈비언 문화제를 기획․추진한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활동가 모씨는 “이화 안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ꡐ평범한 이화인은 당연히 이성애자ꡑ라는 말이 소름 끼칠 지경이다"라고 말한다.

공중 매체를 통해 커밍아웃한 남성 동성애자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 젠더가 유명세가 떨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판치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이 향상되고 있는 증거들이 아니냐”며 당연하다는 듯 묻고는 한다. 그러나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골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말 할 수 없이 끔찍한 피해들을 경험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1994년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어디에까지 와 있으며 동성애자 인권은 어느 수준에까지 올라와 있을까.

2. 한국사회 성 소수자 인권 현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구체화된 시기는 1993년이었다. 1993년 11월 <초동회>라는 이름의 인권운동 모임이 조직된 이후 1994년 1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1994년 11월 <한국여성동성애자모임 끼리끼리> 단체가 결성되었고, 1995년 이후부터 4대 PC 통신에 동성애자 모임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학에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위한 모임이 결성되기 시작했고,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 이후에는 사이버상의 동성애자 친목 사이트들이 봇물 터지듯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편견과 그릇된 고정관념 때문에 항상 심각한 재정 적자와 열악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매스컴의 오보에 적극 대항하고, 매스컴을 이용한 대 사회적 커밍아웃 등의 과감한 활동을 통해 동성애자의 존재를 가시화 시키고, 상담소 개소․이반 업소 개업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성애자를 위한 지지체계들을 마련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하여 왔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교과서에 실린 동성애 혐오 내용을 삭제하게 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관련 법령을 첨가시키고, 청소년보호법상의 동성애자 차별 조항을 삭제하게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하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의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행태로 인하여 열 아홉 살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고, 보수 기독교 학생 집단으로 간주되는 이들로부터의 노골적인 동성애자 혐오 작태가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9년째 성 소수자 관련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상담실에는 연간 300건에 이르는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내담은 자신이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문제, 기혼 여성․남성이 겪고 있는 성정체성 문제,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 겪게되는 집단 따돌림과 구타 그리고 아웃팅 협박을 당하며 금품갈취와 폭력 그리고 성폭력의 피해를 입게되는 내용 등 다양한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끼리끼리>는 접수된 상담 사례 중 아웃팅 협박을 전제로 가해지는 동성애자 관련 범죄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사례 1.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40대 모씨는 레즈비언 업소에 출입하며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에게 접근, 상대방의 개인 신상을 알아낸 다음 아웃팅 협박을 하며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례 2. 대학에 다니는 레즈비언 모씨는 같은 학과 남자 선배로부터 아웃팅 협박을 당하며 1년을 끌려 다니며 강간 피해를 겪고 있으나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위의 두 사례는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나의 ‘차이’일 뿐인 성 정체성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강제 결혼 당하고, 100% 해고를 당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성소수자들 에게는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이미 그와 같은 범죄는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금품갈취와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구제 법률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적 현실 속의 성 소수자 피해자들은 ‘성 정체성을 드러내느니 당하고 만다’는 생각으로 피해를 묻어버리고,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자신을 놓아 버린다.

3. 나오며

최근 동성애자 커뮤니티내의 인권운동단체 결성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1994년에 조직된 <친구사이>와 <끼리끼리> 이후에 <동성애자인권연대>,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 <한국성적소수자인권문화센터> 등 인권운동단체들이 조직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위해 조직된 인권운동 단체들은 ‘다르지만 같은 지형’ 위에서 ‘동성애자 인권’을 인권 의제화하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 성 소수자들의 인권 현실을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인권 운동 단체들은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해외 단체들과의 연대, 국내 동성애자 단체의 연대를 통한 사회․문화․제도 차원에서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윤씨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차이’를 긍정하지 않는 편견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동성애자에 대한 집단적 가해에 다름 아니다. 윤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버겁고 끔찍한 일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윤씨의 죽음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구타 당하고, 강간 당하고 있을 성 소수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활발해지고, 드러내는 성 소수자들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구체화되고, 가시화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성 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하나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 ‘종교’라는 이름으로 성 소수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사회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살고 싶다.
  

# 이 글은 문화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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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0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욕에 관한 세 편의 논문]에서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성욕과 변태적인 성욕의 고착된 구분을 해체하려고 시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조에 따라, 또는 그것이 함의하는 발달론적 도식 안에서 인간의 정상적인 성발달의 단계들을 제시하려는 프로이트의 모순적인 노력을 보면, 아연할 수밖에 없다.
라캉이 그 모순에서 벗어났을까? 라캉은 프로이트의 모순을 해소하려고 했지만, 역으로 <규범의 자연사>, 또는 단적으로 <규범(생산)의 역사>라는 문제를 환원시킨 게 아닐까?
성적 소수자들에게 <인권> 개념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지주이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에 좀더 생산적으로 답변하기 위해서는, 규범에 관한 비규범적인/비정상적인 이론 또는 문제설정(problematic)이 필요할 것이다.
 

 

나노기술, 꿈인가 악몽인가?       
나노기술의 위해성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

김명진

나노기술의 어두운 측면

 몇년 전부터 『네이처』(Nature) 지는 매년 연말마다 그 해의 주요 과학계 소식을 선정해 이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다. 작년 연말에 나온 합본호에도 '2003 in context'라는 제목으로 2003년을 뒤흔들었던 과학계 소식 열 개를 선정해 특집기사로 실었다. 여기에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과학계에 미친 영향, 사스(SARS) 공포와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 사고, 기후변화 협약의 후퇴 등이 주요 소식으로 뽑혔는데, 나노기술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흥미로왔던 점은, 이 기사가 나노기술의 새로운 발전과 그것이 내포한 '혁명적 잠재력'에 주목하는, 우리 눈에 제법 익숙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사는 나노기술의 위해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중적 우려의 증가, 그리고 이에 대한 과학계의 대응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 21세기 첨단기술 중 하나로 상찬되곤 하는 나노기술이 사회와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무척 생소한 얘기일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런 내용이 2003년의 10대 뉴스 중 하나였다니, 작년에 갑자기 무슨 큰일이라도 났던 것인가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노기술의 발전이 내포한 '어두운' 측면에 대한 우려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 기술이 주목을 끌기 시작한 1980년대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3년은 관련 NGO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나노입자의 위해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성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해였다.

'회색 점액질'(grey goo) 시나리오

나노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처음 제기된 싯점은 나노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뒤섞은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의 책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 출간된 198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오늘날 '나노기술의 전도사'로 통하는 드렉슬러는 이 책에서 '어쎔블러'(assembler)라고 불리는 초소형 나노머신이 원자나 분자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저렴하게 만들어내는 미래가 머지않아 도래할 거라는 장밋빛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나노기술이 빚어낼 수 있는 파국적 미래상도 아울러 제시했는데, 자기복제하는 '나노봇'(nanobot)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마치 꽃가루처럼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주위 환경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먹어치워' 지구 생태계를 불과 며칠만에 회색 먼지 내지 '회색 점액질'(grey goo)로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드렉슬러의 전망은 2000년 4월에 발표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빌 조이(Bill Joy)의 글 「미래에 왜 우리는 필요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Why the future doesn't need us')에서 보다 강력한 형태로 반복되었다. 썬 마이크로씨스템즈(Sun Microsystems)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였던 조이는 일명 'GNR 기술'(유전공학ㆍ나노기술ㆍ로봇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적 결과에 대해 경고하면서 드렉슬러의 주장을 되풀이했고 나노기술이 군사적으로(혹은 테러 행위를 위해)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드렉슬러와 조이의 경고는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나노기술에 대한 대중적 상상력의 영역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과학계 내에서는 SF의 영역으로 치부되면서 별다른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화학자 리처드 스몰리(Richard Smalley)는 자기복제하는 나노머신 따위는 그 원리상 결코 만들어질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하면서 드렉슬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GNR 기술의 위험성을 지적한 조이의 글은 기술중심주의적 사고의 산물이자 미래에 대한 예단으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드렉슬러와 스몰리는 최근까지도 논쟁을 이어가고 있고, 작년 말 썬 마이크로씨스템즈를 사임한 조이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독성학 분야의 연구들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에 나노기술에 관한 논란에 불을 지핀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주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활동해 온 캐나다의 NGO인 'ETC Group'이 작년 1월 'The Big Down'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나노기술 분야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ETC Group은 드렉슬러의 '회색 점액질' 시나리오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나노기술과 유전공학이 결합한 나노바이오기술 (nanobiotechnology)이 전례가 없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일명 '녹색 점액질(green goo)'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역설했다. 또한 ETC Group은 나노기술의 군사적 이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으며, 합성 나노입자가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ETC Group의 주장은 작년들어 화장품이나 전자공학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나노입자들이 피부 등을 통해 인체에 직접 침투해 위해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독성학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속속 보고되면서 구체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작년 3월 NASA의 연구팀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장치 등에 응용되고 있는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를 용액 형태로 쥐의 허파에 주입했을 때 폐조직을 손상시키는 등의 독성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프라이팬 표면 등에 사용되는 테플론(teflon) 입자를 나노미터(nm) 사이즈로 만들어 쥐에게 흡입하게 한 결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는 연구결과도 비슷한 시기에 보고되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마이크로미터(μm) 이상의 크기에서는 별다른 독성을 보이지 않던 물질이 나노미터 크기로 작아지면 독성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충격을 주었다. 또한 나노입자가 지렁이의 피부를 통과해 체내로 흡수될 수 있음을 보여준 미발표 연구도 있었고, 올해 초에는 코로 흡입된 탄소나노튜브가 뇌로 들어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러한 독성학 분야의 연구들은 SF의 영역이거나 적어도 먼 미래에나 나타날 사회적 문제로 간주되곤 했던 나노기술에 대한 문제제기를 당장의 현실적 규제 문제로 탈바꿈시켰다. ETC Group이나 그린피스(Greenpeace)와 같은 NGO들은 현재 모든 나노기술 연구에 대한 모라토리엄(일시중지)과 전지구적 나노안전성의정서의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구미 과학계의 발빠른 대응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에 대한 구미 과학계의 발빠른 대응이다. 많은 수의 나노과학자들은 드렉슬러나 ETC Group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로 인한 대중적 이미지의 악화를 크게 경계하면서 자발적인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네이처』같은 학술지 역시 나노과학자들이 나노기술에 대한 과장된 선전을 자제하고 대중의 우려에 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으며, 영국의 왕립학회 같은 독립적 과학자단체와 각국의 규제기구에서는 나노기술이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이들이 이렇게 기민한 대응을 하게 된 배경에는 유럽에서 GM(유전자 변형)식품이 겪은 실패가 준 교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농업 생명공학 회사들과 과학자들이 GM식품에 대해 초기에 제기된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중의 우려를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했다가 불신을 자초해 결국 시장에서 전면 거부되었던 전례를 나노기술이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이는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과 같은 첨단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발 일변도로 치달아 최근 과학기술과 환경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창비 웹매거진/2004/6]

※ 창비 웹매거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주)창비 양측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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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가레의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를 같이 읽으려고 수업게시판에 올려 놓았더니, 발제를 맡은 학생들 중 한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곳들이 있다고 질문을 보내왔습니다. 그 질문들에 대해 몇 가지 답변을 해서 보내줬는데,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지 학생들만의 어려움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답변이지만, 얼마간 읽는 데 도움이 될 듯해서 그 학생이 보내온 질문 내용과 그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답변을 같이 올립니다.

각 질문에 묻고 있는 구절은 제가 따로 원문에 밑줄과 번호 표시를 해두었으니까,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I. 질문들

1) 2p "문제는 자기의 의식적 본질의 보편성의 휴지(休止)(또는 보편성과 휴지)이다(왜냐하면 이는 순수 진리를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여전히 너무 직접적으로 자연적인 이러한 보편성을 고양시켜야 한다."
 : 무엇이 "자기의 의식적 본질의 보편성의 휴지"인지…주어를 잘 모르겠어요. =_=;; 주어를 '매장'이라고 본다면, '휴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걸리거든요. 자기의 의식적 본질이라는 보편성을 휴지(하던 것을 그치다, 라고 국어사전엔 나오던데)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매장은 보편성을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했거든요. 즉 생물이라면 누구나 죽게 된다는 죽음의 보편성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간존재의 보편성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매장을 통한 보편성의 고양이라고 (줄친 것 뒤 문장은) 읽었었는데 줄친 문장에서 말하는 보편성이 어떤 보편성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가서 문맥이 연결이 안돼요.=_=;; "보편성의 휴지"와 "보편성과 휴지"도 해석이 달라질 것 같은데 주어 문제랑 보편성 문제가 걸려서 말로 잘 설명을 못 드리겠네요.=_=;;

2) 2p  "이러한 지고한 의무가 신의 법, 또는 독특한 개인에 대한 실정적인positive 윤리적 행동을 구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간의 법은 독특한 개인에 대한 보호와 배려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를 부과한다. 사실 도시를 구성하는 각각의 성원은 독자적인 존립과 고유한 대자적 존재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정신은 여기서 자신의 실재성 또는 자신의 현존재를 재발견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신은 전체의 힘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정신은 이 부분들[각각의 성원]을 부정적인 일자(一者, un) 안으로 결집시킨다."
: 안티고네의 매장 행위(의무)가 "positive한 윤리적 행동을 구성한다"고 나온 것으로 보아 그것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negative를 썼다고는 생각이 되는데, (물론 선생님이 번역하신 것처럼 '실정적인'의 뜻으로 positive를 읽는다면 '부정적인'이 positive의 대구가 아닐 수도 있지만요=_=;;) 여기서 '부정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_=;; 생산적인 권력이 아니라 금지하는 권력으로 작용하는 일자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건가요? 그렇다면 '지고한 의무'가 positive로 평가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행위성의 다른 관점-하느냐/하지 못하느냐- 때문일까요? 그렇게 단순하게 읽어선 안 될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_=;;;; 선생님 번역하신 대로 '실정적인'이라고 읽는다면 첫 문장은 이해가 가는데, '부정적인'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3)3p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를 욕망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이러한 대자적 존재 tre-pour-soi를 주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에 대해 자유로운 개체성들로 존재한다."
: 줄친 부분 이해가 안 가요.=_=;; '이러한'이 나오면 뭔가 앞에 설명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인데 설명될만한 문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ㅠ.ㅠ 이 글에서 '대자적 존재'가 많이 나오는데 그 뜻을 명확히 파악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대자적 존재'(간단히 말해서 의식화된 존재, 라고 이해했는데)는 아닌 것 같고, 어머니와 자식 간의 이자적 존재가 아닌, 이미 상징계로 진입해서 소외된 상태인 존재들 간의 관계(원초적인 연결고리가 없는)라고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_=? 하지만 이 정도 이해만으로는 오누이 사이에 대자적 존재를 주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4) 3p "또는 오히려 이는 오빠와 누이가 동일한 정자를 공유하고, 이에 따라 혈족관계[근친교배]에 (또다른) 균형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정념(수난, passion)을 통해 마법적인 정념[수난]과 균형을 맞춤으로써 결국 혈족관계가 마법적인 정념[수난]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만드는 것인가?
: '마법적인 passion'이 무슨 의미인지…ㅠ.ㅠ 다른 정념은 또 뭔지…ㅠ.ㅠ "동일한 정자를 공유"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선 생명을 만드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강조하려는 것 같고, (나아가 부권적인 혈통을 강조하는 것 같고) 이렇게 해석한다면 '마법적인 정념'이란 생명을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는 관점, 혹은 모계혈통(이나 모권제혈통)을 의미하고 혈족 관계가 결국 이것으로부터 빠져나온다는 얘기는 모계혈통에서 부계혈통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제가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없어요.=_=;;

5) 5p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은 매우 연약한 표상들(대표들, repr sentations)만 지니고 있어서 그녀의 욕망은 이러한 징벌을 견뎌낼(지양할, rel ve) 수 없다."
: 어째서 그녀에게 사랑이 연약한 표상들만 지니고 있는지, 연약한 표상들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_=;;

6) 5p "적어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함으로써, se donnant elle-m me la mort) 자신의 향락의 애도(또는 이 애도는 바로 그녀의 향락이 아닐까?)를 받아들인다."
: 제가 아직, 안티고네가 주이상스를 중심으로 읽는 논의들이 잘 납득이 안 가서(중간대체 레포트에도 그 혼란이 고스란히 있지만) 이해를 잘 못 하는 걸 수도 있는데요,
① 그녀의 죽음이 주이상스를 애도하는 것, 이라 읽는다면 결국 그녀는 주이상스에 다다르지 못했고 주이상스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을 받아들이는 행위로써 죽음을 선택했다는 얘기인가요? '애도'라는 개념이 끼어든다면 죽음으로써 그녀가 주이상스와 만나는 낭만적인(?) 결과 따윈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② 애도가 곧 그녀의 주이상스라면, 그녀가 그토록 자신의 죽음에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한 이유를 주이상스를 통해서 읽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혼란스러워요. 제가 그동안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주이상스 개념이 다 엉터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_-;; 안티고네를 어떻게 주이상스와 죽음충동으로 읽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

7) 6p "더 성마르고 더 충동적이며, 노여움에 못 이겨 자신의 핏줄들을 다시 열어놓으려고 할rouvrir les veines de son sang 인물이다."
: 핏줄들을 열어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질문이 너무 간단한가=_=;; 이 문장 자체를 이해 못했어요.=_=;;)

8) 7p "곧이어, 유사한 외관을 지닌 것(자아Moi)의 지위stase 안에 응고된 피의 법에 각각의 사람을 복종시키려는 욕망 이외에 다른 욕망을 지니지 않은 신이 도래할 것이다."
: "응고된 피의 법에 각각의 사람을 복종시키려는 욕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모르겠어요. 안티고네가 옹호한 신의 법, 혈족을 위하는 욕망을 뜻한다고 읽는다면, 국법보다 가족법을 우위에 둔 신이 도래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뭔가 역사가 흘러온 과정상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으니 이리가라이가 이런 뜻으로 말했다고 생각하기가 애매하고=_=;;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바로 앞 문장들은 크레온이 상징하는 공적 권력이란 것이 어떤 것들을 희생시키고 어떻게 은폐해서 이루어진, 사실은 개인적인 권력임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곧이어"라는 접속사로 따라 나올 문장들은 그러한 공적인 권력의 도래를 의미해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저 위문장을 해석해야할지 혼란스러웠거든요.

9) 8p "환원 불가능한 변증법의 히포콘드리아, 멜랑콜리아. 이는 피흘리는 십자가를 상기시키는 응혈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 십자가는 변증법의 보좌를 보장해주지만, 동시에 절대 정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무(한)정한 어떤 액체의 거품이 고난의 술잔에 넘쳐흐르리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 혈전(들), 림프(들)은, 만약 이것들이 아무런 분비물 없이도 치유될 수 있었다면, 정신을 (단지) 바위와 같은 고독과 결백함으로 남겨 놓았을 (뿐일) 것이다. 바위가 자신의 둘레 안에 여성성의 죽음을 감싸안고 입회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 여기서 얘기하는 히포콘드리아나 멜랑콜리아는 억압되어 응고된 피, 혹은 여성성(이리가라이는 피와 여성성을 자꾸 같은 것으로 놓고 읽히게 만든다고 생각되는데) 으로서 이전 단락에서 남성성이 자신을 "살아있는 자율적 주체성"으로 구성하는 변증법적 작용을 일으킬 동안 그 변증법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그것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 줄친 문장은 이해가 안 가요.=_=;;

10) 9p "하지만 가장 순수한 죄는 윤리적 의식[양심]이 저지른(말하자면 필연적으로 여성성이 저지른)죄인데, 이 의식[양심]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불복종하는 법과 힘을 사전에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만약 윤리적 본질이 자신의 신적, 무의식적, 여성적인 측면에서는 모호하게 남아 있다면, 인간적, 남성적, 공동체적 측면에 존재하는 명령들은 충만한 빛 속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떤 것도 범행을 용서해줄 수 없고 고통을 완화시켜 줄 수도 없다. 그리고 감금 자체에서, 비현실성과 순수한 파토스로의 타락 자체에서 여성은 자신의 유죄의 정도를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
: 왜 여기서 '죄'라는 표현을 쓰는지, 왜 여성성이 저지른 죄가 가장 순수한 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여기서 '여성성'이라는 단어를 쓴 건 선생님이 설명하신 것에 덧붙여서, 남성성/여성성의 관계가 의식/무의식의 관계와 유사점을 가진다는 이유도 있었을 거라고 이해했거든요. 이 앞 단락에 나오는 남성의 죄-유죄라고 단언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상징계 내의 주체가 가지는 비극성("하지만 곧바로 분명히 드러나듯이 이 독특한 [남성] 존재가 유죄라거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보편적 자기를 위해 행동하는 비현실적인 그림자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는 그가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다음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자기 자신 안에서 단절되었음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의 범행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으로 이해를 했는데, 여성성과 윤리적 의식의 연결 관계, 그 죄에 대해서는 감이 안 잡혀요.=_=;;

11) 12~13p "그리고 만약 이 점들 안에서, 곧 정액, 이름, 온전한 개체 안에서 이것들이 딛고 올라설 수 있는/이것들이 자신을 지양할 수 있는 대표적인repr sentatif 지주를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면, 자율적으로 유동하는 피는 재통합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눈은 보기 위해서 (적어도 절대적으로는) 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정신 역시 (자신을) 사유하기 위해 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 눈과 정신이 여기에 나온 이유(시각중심주의나 로고스 중심주의와의 연결?), 피를 요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왜 눈과 정신이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문맥을 이해 못하겠어요. 아울러 피를 여성과 연결시켜 읽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그건 또 나름대로 여성들에게 가부장제가 할당해온 자리는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요.

II. 답변들

질문이, 정말, 많네 ... ^^ 그렇지만, 이게 *** 씨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번역이 불명확한 곳도 있고, 텍스트가 워낙 난해한 데다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끊임없이 참조하면서도(또 보부아르의 헤겔 해석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도) 텍스트 안에서 이를 명료하게 밝히지 않고 논의를 전개하는 이리가레의 죄(^^)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고.
  책을 같이 보면서 답변을 해야 좀더 친절한 답변이 될 것 같은데, 내가 책을 학교에 두고 와서 일단 번역만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답변을 해보도록 합시다.
   
  1) 이 문장에서 주어는 "문제는 자기의 의식적 본질의 보편성의 휴지 ... 라고 주장함으로써"이고 술어는 "이러한 보편성을 고양시켜야 한다"라고 봐야지요. *** 씨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주어'는 여성 또는 안티고네라고 봐야죠. 그리고 "휴지"는, 지금 책이 없어서 원어가 뭔지 확실치 않긴 하지만, 아마도 "repos"인 것 같아요. 이 단어는 영어로 하면 "rest"에 해당하는데, "정지", "중단" 같은 뜻이죠. 여기서 정지되고 중단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의식이 자기 의식으로 전환되는 보편성의 운동이고, 여성은 자연적 죽음 때문에 이러한 운동을 완성하지 못한 죽은 남자가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헤겔에 따르면 매장은 자연적 죽음을 맞은 남자(폴뤼네이케스)가 우연적인 자연적 죽음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개체성을 얻게 되는 계기이죠. 여자(안티고네)는 죽음을 무릅쓰고서 이러한 매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인륜성의 필수적인 계기가 되는 거고요.  
  
  2) "실정적인"이라는 말은 "실정법"에서 쓰이는 것처럼 "한번 확립되어 정해진 것"이라는 의미도 있고, "긍정적인"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는데, "실정적인 윤리적 행동"이라는 말은 이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군요. 반대로 다음 문장의 "부정적인"이라는 말은 국가의 법, 곧 크레온의 법이 이처럼 독특한 개인에 대한 매장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이죠. 말 그대로 매장이 필수적인/긍정적인 윤리적 의무다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부정적인 일자"라는 말은, 전체의 힘으로서의 정신은 각각의 독특한 개인의 권리를 뒷받침하는 이러한 실정적인 윤리적 행위를 부정함으로써 전체의 고유한 권리, 전체의 통일성("일자")을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일자"는 정치적 공동체로서 도시국가를 가리키는데, "부정적인"이라는 말은 공동체의 법(공동체의 반역자인 폴뤼네이케스는 매장될 수 없다)에 따라 개인/가족의 의무(적이든 우리편이든 모두 같은 가족의 성원이므로 매장해줘야 한다)를 거부하고 억압한다는 뜻이고, "일자"라는 말은 공동체가 이처럼 개인의 다양한 요구들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뜻이죠.  

  3) "대자적 존재"는 헤겔철학의 전문 용어이고, 현재의 맥락에서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염두에 두고 이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헤겔에게 "즉자적 존재"란, 도식적으로 말하면, 아직 독립적인 자기로 확립되지 못한 즉물적 상태에 놓여 있는 존재를 가리키죠. 따라서 어떤 존재가 즉자적 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 존재가 아직 독자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반면 "대자적 존재"는 독립성을 획득한 존재, 그런 상태를 가리키죠.
  그런데 이렇게 존재가 대자적 상태에 도달하면, 바로 타자의 문제가 제기되겠죠. 독립성을 획득한다는 말은, 자기 아닌 다른 것과 자기를 구분한다는 뜻이니까, 어떤 존재가 독립성을 획득하고 대자적 상태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자신과 다른 타자들과 직면하게 되지요. 그래서 대자적 존재는 항상 이미 타자와의 관계 속에 놓이게 되고, 이 타자와의 관계를 해결해야 합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바로 두 개의 대자적 존재가 벌이는, 생사를 건 투쟁이지요. 그리고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는 일차적으로 승리한 주인은 노동에서 벗어남으로써 보편적인 즉자-대자적 존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을 통해 부정의 힘을 획득한 노예가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존재로 지양됩니다.
  그런데 헤겔은 오빠와 누이동생의 관계는 이런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거지요. 대자적 존재를 주거나 받아들인다는 말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처럼) 서로가 대자적 존재로서 모종의 갈등 관계에 들어서고 투쟁을 통해 이러한 갈등 관계를 해결한다는 말인데, 오빠와 누이동생의 관계는 이런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4) "passion"이라는 말은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철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는 "정념"이라는 뜻이예요. 특히 17세기 철학에서 "관념"(idea)과 함께 정신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로 부각되고 많이 연구되는데, "욕망", "기쁨", "슬픔", "사랑", "미움", "희망", "공포", "열정", "회한" 등과 같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감정을 통칭한다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미로는 "감정"이라고 이해해도 상관은 없어요.
  이 경우에는 "수난"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은가 합니다. "passion"은, 알다시피, "수동성"을 가리키고, 수난이라는 것은 따라서 타자로부터 겪는 고통을 가리키죠. 이 경우 "마법적인 수난"은 오이디푸스가 신들로부터, 또는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으로부터 겪는 고통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고, "다른 수난"이란 오빠와 누이 동생, 특히 안티고네가 또한 겪게 되는 고통, 크레온으로부터 당하는 고통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5) 이건 번역이 잘못 되었네. "매우 연약한 표상들(대표들)"이 아니라, "너무나 숙명적인fatale 표상들(대표들)"이라고 해야겠네.

  6) 이건 이 맥락에서는 너무 어렵게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향락의 애도"라는 것은 좀더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태(곧 죽음의 다른 표현)를 가리키고, 반대로 이러한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어머니와의 동일시에 따라, 또는 "어머니의 아들을 구하려는" 어머니의 욕망과의 동일시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위이니까, 결국 어머니의 욕망을 실현하는 향락으로 읽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지요.
  이러한 향락이 상징계, 상징적 질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는 문제는 이 문장 자체만으로 평가되기는 어려운 데다가, 부권적 혈통과 구분되는 여성의 계보의 (상징적) 가능성이라는 문제와도 연결이 되어야 하니까, 한 문장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7) "자신의 핏줄들을 다시 열어놓으려고 할"이라는 표현은 사실은 좀 모호한 표현이죠. 불어에서 "s'ouvrir les veines"는 "(자살하기 위해) 스스로 정맥을 끊다"는 숙어인데, 이 문장에서는 "s'ouvrir", 다시 말해 "열다ouvrir"는 동사의 재귀형("스스로 열다/끊다")을 쓰는 대신, "rouvrir", 곧 "다시 열다"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 다르죠.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이런 경우에는 "다시 열다"는 단어 대신 "다시 끊다"라고 번역하면 좀더 의미가 분명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 이런 경우는 폴뤼네이케스의 격정적인 행동이 자신의 죽음만이 아니라 가문의 파멸을 이끌게 되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겠죠.

  8) 이 문장은 번역이 의미를 충분히 못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좀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다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곧이어 신이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신은  유사한 외관을 지닌 것 자아 의 지위 안에 응고되어버린 피의 법에 각각의 사람을 복종시키려는 욕망말고는 아무런 욕망도 지니지 않은 어떤 [남성적] 신un dieu이다." 이렇게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은 점들이 좀더 분명해질 것 같군요. (1) "유사한 외관을 지닌 것 자아 "은 상징적 질서, 곧 국법에 따라 포섭된 (상상적) 개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개인들은 국법에 의해 자신들의 원초적인 자연적 독특성(혈연관계, 피의 유대에서 성립하는)에서 분리되고 해체된 개인들이지요. (2) 이런 사태를 이리가레는 "지위 안에 응고되어 있는 피의 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아요. 곧 국가의 법, 부권적인 상징적 질서는 혈연관계를 국법/상징적 질서에 포섭하고, 이렇게 포섭된 혈연관계 속에 각각의 개인을 종속시킨다는 뜻이지요.

  9) 이 문장은 정말 상당히 모호한 문장이네 ... 문법적으로도 시제상으로도. 이 문장은 좀더 생각해 봐야겠네요.

 10) 여기도 번역이 약간 잘못되어 있는데, 새로 고쳐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가장 순수한 죄는 윤리적 의식[양심]이 저지른 말하자면 불가피하게 여성성이 저지른 죄인데, 이 의식[양심]은 자신이 불복종하는 법과 힘을 사전에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윤리적 본질이 자신의 신적, 무의식적, 여성적인 측면에서는 모호하게 남아 있다면, 인간적, 남성적, 공동체적 측면에 존재하는 윤리적 명령들은 충만한 빛 속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떤 것도 범행을 용서해줄 수 없고 고통을 완화시켜 줄 수도 없다. 그리고 감금 자체에서, 비행위성과 순수한 파토스[수동성]로의 전락 자체에서 여성은 자신의 유죄의 정도를 온전히 인지해야/인정해야 한다."
  이 문장에서 "가장 순수한 죄"라는 표현은 법과 힘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저지른 죄라는 점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점에서 바로 윗구절에 나오는 남성의 경우와 잘 대비가 되죠. 그리고 "윤리적 의식"은 안티고네가 국법에 맞서 가족의 성원에 대해 헌신하는 것을 뜻하겠지요. 헤겔 입장에서 보면 이 윤리적 의식, 이 의식에 따른 행위는 국법에 맞선다는 점에서 허용 불가능한 범죄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죽은 남자인 폴뤼네이케스를 자연적인 무매개적 보편성으로부터 지양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가야 하는 계기이고, 안티고네가 바로 이를 수행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뒤에 나오는 문단은 이를 부연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고.

  11) 눈과 피를 연결하는 것은 이 글 맨 앞에 나온 헤겔의 인용문을 가리키는 거죠. 그리고 피를 여성과 연결시키는 것 역시 헤겔의 논의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고. 이걸 이리가레 자신의 견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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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부분을 약간 더 보충했습니다. (1)과 (2)에서 고딕체로 밑줄친 부분이 추가된 부분입니다. 추가한다고 좀더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