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리바르가 마슈레의 [넓은 의미의 철학] 세미나에 초대되어 했던 강연의 번역본입니다. 발리바르가 최근 여기저기서 언급했던 "정치의 비극적 차원"에 관해 궁금해한 분들이 많았을 텐데, 이 글을 읽어보면 궁금증이 많이 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매우 개략적이고 함축적인 데다가 마키아벨리 [군주론]으로 대상이 한정되어 있지만(따라서 다른 식의 작업들이 기대되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글인 듯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발리바르의 글을 읽고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사실 80년대까지 쓰여진 발리바르의 많은 글들은 극히 복잡한 문장들 때문에 읽기가 곤혹스러울 뿐더러 번역하기도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더욱이 직역 또는 오히려 <직문>(?)^^ 위주의 번역 때문에, 저처럼 문체가 망가져 오랫 동안 고생한 사람들도 꽤 많을 듯합니다(형편없는 문체에 대한 웬 낮뜨거운 변명?-_-;;)), 최근에 발표하는 글들이나 책들은 문장이 상당히 간결하고 명쾌해서, 읽거나 번역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글은 내용만이 아니라 문체상으로도 탁월한 성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서툴고 서두른 번역으로 그 탁월함이 많이 훼손되었겠지만. 꼼꼼히 검토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고, 이 글을 읽어보기를 원할 분들이 여럿 있을 것 같아 먼저 올렸습니다. 좀더 읽어본 뒤에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이 글 역시 공적 매체에서의 인용은 불허합니다.

 

 

Etienne Balibar, “Machiavel tragique”, in La Philosophie au sens large, Séminaires de Pierre Macherey, 2001. 4. 4. http://www.univ-lille3.fr/set/sem/BalibarMachiavel.html


비극적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바탕으로 자클린 리세Jacqueline Risset와 안 토레스Anne Torrès 및 그들의 동료들이 해낸 훌륭한 작업[이는 자클린 리세와 안 토레스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희곡으로 각색하여 연극화한 것을 가리킨다―역자]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목소리, 비극적인 것(또는 비극), 잔혹몰락이라는 네 개의 단어와 결부되어 있는 네 가지 관념을 토론에 부치고 싶다. 나는 이 관념들을 순차적으로(selon une progression) 배열해볼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에 인위적인 체계성을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 관념들이 가리키는 주제가 생각해볼 수 있는 유일한 주제도, 주요 주제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주제가 본질적인 한 측면, 『군주론』에 대한 모든 독해 및 『군주론』이 제기하는 이론적 문제들에 대한 모든 토론을 어떤 식으로든 “과잉결정”하는 본질적인 한 측면―특히 우리가 여기 모이게 만든 상황에 의해 호출되는―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목소리

자클린 리세와 안 토레스의 기획의 난점 및 그 아름다움과 흥미를 이루는 것은, 내가 확신하기로는 『군주론』을 읽는 모든 세심한 독자가 생각할 만한 한 가지 직관을 [물질적 장치 안에] 구현하려(matérialiser) 했다는 데 있다. 그 직관은, 이 텍스트는 “일인칭으로”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이 텍스트를 서술하는(qui le signe) 유일한 인물이 다수의 목소리로 증가하고, 이 목소리들의 교대와 중첩은 그의 글쓰기에 독특한 복잡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직관이다. 그런데 텍스트의 통사가 아무리 기묘하다 해도(마리 가이유Marie Gaille는 『군주론』의 글쓰기에서 파격문법anacoluthe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사람들은 그 텍스트를 읽는다. 하지만 이 텍스트가 품고 있는 “목소리들”은 들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 목소리들이 공명(共鳴)하게 해야 한다. 한 목소리에서 다른 목소리로의 이행이 감지될 수 있게 해야 하고, 한 대사에서 다른 대사로 이 목소리들이 전이하도록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연극의 정의 자체다. 목소리들[대사들]을 분리하는 간격들을 [물질적 장치 안에] 구현해야 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들”에 대한 장면분할이나 배역설정 등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목소리들을 부여할 수 있는 인칭들[인물들]의 성(性)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안 토레스의 알레고리적인 역할배정은 나에게는 완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왜 그런 식으로 역할 배정을 했는지 그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역량(la Vertu), 호기(好機, la Fortuna), 전쟁(la Guerre) [이 셋은 여성이다―역자] ... 또는 군주(le Prince)와 인민(le Peuple) [이 둘은 남성이다―역자]. 『군주론』 서두의 <헌정 편지>는 정치적 인식이 군주와 인민 사이에서 배분되고, 따라서 치유 불가능하게 분할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또는 오히려 나는 이 모든 배역설정은 좀더 은밀하고 좀더 규정적인 한 가지 분할, 마키아벨리 자신의 두 개의 목소리의 분할, 자신의 텍스트를 수신자들(군주 및 아마도 그 뒤에 있는 인민. 이 양자 모두는 “도래해야 할” 존재자들이다)에게 전달하는 이가 그 사이에서 분열되고 있는(se partage) 분할에 의해 지배되고 유지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글쓰기 안에서는 누가 말하는가? 『군주론』을 쓰면서, 그리고 이 글쓰기 안에서 자기 자신을 탐구하면서 『군주론』을 “말하는”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들은 어떤 것인가? 하나는 이성의 목소리이고 하나는 정념의 목소리,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다면, 하나는 사건들 및 역사적 상황들, 고대 및 근대의 정치적 활동의 인물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성찰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촉구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호명하고 권고하는 목소리, 곧 마지막 장 맨 마지막의 독립된 싯구에서 숨김없이 자신을 들려주는, 하지만 우리가 앞의 장들에서 그 대위법적 주제(le contrepoint)를 지각할 수 있는 목소리(이탈리아의 “구세주”에 대한 호소)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 목소리를 통합할 수도,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할 수도 없고, 역으로 이것들을 분리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군주론』은 지난 모든 시기에 걸쳐 그것이 제기한 해석의 문제들과 더불어서만, 이 목소리들의 중첩 안에서만, 그리고 이 목소리들이 계속 들릴 수 있는 한에서만 바로 그 저작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는 곧 마키아벨리가 분석한 사례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한에서만, 그리고 이 사례들이, 필요할 경우에는 명칭들을 바꿔가면서(가령 “이탈리아” 대신 “유럽”으로) 우리를 호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계속 호소력을 지니는 한에서만 『군주론』은 바로 그 저작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좀더 근원적인 문제는, 마키아벨리가 비록 뛰어난 기교로 목소리들을 중첩시키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역시 이 문제에 관한 열쇠를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텍스트 배후에 자신의 목소리들을 배치하고 상연하는 일종의 “초-마키아벨리”적 인물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이해관계들”로 갈등을 겪고 있는 텍스트―이 텍스트는 이러한 이해관계들의 증인이나 관객이기도 하다―만 존재할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점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들의 중첩과 간격들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침묵의 밑바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향해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사물의 실제적인 진리에 관심을 경주하기andar dritto alla verità effetuale della cosa”라는 15장의 유명한 정식이 가리키듯이, 이는 “사물” 내지는 “사물 자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다음의 몇 가지 지적들을 통해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 “사물”의 정체를 밝혀보고,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들의 연기(jeux)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해명해보고 싶다. 하지만 만약 여기 내 앞에 있는 안 토레스의 시도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적인 것

내가 “비극적 마키아벨리”라는 제목을 제시한 이유는 『군주론』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비극이론을 구성해 보거나, 마키아벨리를 이 미학 범주로 가두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의 저작(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군주론』)의 비극적 차원을 이끌어냄으로써, 동시에 우리가 마키아벨리와 함께, 역사 및 정치 안에서 “비극적인” 것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한 가지 성찰을 재개해 볼 수 있으리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클린 리세는 매우 정당하게도 『군주론』의 텍스트에 현존하는 “영웅들”에 준거하고 있는데, 『군주론』 텍스트는 대부분 영웅들의 발흥과 이들에 대한 평가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이는 정체(政體)들에 대한 “분류” 및 그 실존조건들에 대한 연구와 대위법적 관계에 있다). 체사레 보르자가 이 영웅들 중 가장 두드러진 사례이지만, “군주”의 이러저러한 행동 요령 및 이러저러한 성공과 실패의 조건들을 예시해주는 다른 영웅들도 존재한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최종 분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실패다. 영웅들은 그 자체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체사레 보르자는 그 으뜸가는 사례이다.
  이는 어떻게 “군주”(아주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군주국”를 정초하는 “새로운 군주”)의 이상이 영웅주의 모델과 관계되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군주의 이상은 영웅주의를 실현하고 성취하는 것인가? 아니면 결국 그것을 멀리해야 하는 것인가? 알다시피 이는 텍스트 해석의 중대한 난점들 중 하나다. “새로운 군주”는 반(反)영웅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비르투”의 극단적이고 역설적인 특징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이 특징들을 합리적으로 통제하여 자신의 “도구들”로 삼는 방식(군주는 자기 자신의 도구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사적 인간에서 군주가 되고자” 마음먹은 사람은 또한 자기 자신의 도구가 되고 이로부터 군주에 걸맞는 능력들을 길러내야 한다)을 통해서도 영웅주의의 형상들을 전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불가능하지 않다. 여기서, 겉보기에는 매우 반마키아벨리적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영웅을 요구하는 나라는 불행하다”는 문장을 재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헤겔의 성찰들이 지닌 적합성(헤겔은 브레히트 및 그의 정식의 심원한 양가성의 원천이다)에 주목해 볼 수 있다. 곧 헤겔에 따르면 자신의 사적 행위를 통해 공적 질서의 변동이나 정초를 수행하는 국가의 인간(정치인, homme d'Etat), “위대한 인간”, 이 “범죄자”는 사실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이 때문에 헤겔은 마키아벨리와 그의 “군주”를, 고대적이고 야만적인 역사에서 합리적인 역사와 근대성으로, 시초의 역사에서 목적/종국의 역사로 나아가게 해주는 역사적 이행의 형상들 안에 기입하고 있다.
  하지만 비극의 “장르”를 이루고, 주기적으로 비극을 재활성화시키는 질문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통적으로 이 질문들은 행위를 문제화하는 커다란 반정립들의 작용에 따라 분석된다. 수단과 목적 또는 “형상”과 “질료”의 관계(마키아벨리는 이것들을 비르투와 포르투나 같은 원리들의 지반 위에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군주들과 인민들 같은 세력들의 지반 위에서도 분석한다), 결정의 모델과 기예의 모델 사이에서 행위자(agent)(또는 영어에서 좀더 적절하게 말하듯이 agency, 곧 “대행자agence”)의 동요, 자비나 잔혹의 수단을 통해 주권이나 권능을 추구하는 권력의 양가성 등이 바로 그러한 반정립들이다.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기에,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이후에도 비극을 재발명한 위대한 작가들, 곧 셰익스피어(『리처드 3세』)와 코르네이유(『시나』), 라신(『브리타니쿠스』, 『베레니스』, 『바자제』)은 항상 마키아벨리 및 그가 불러일으킨 논쟁들과의 긴밀한, 그리고 심원하고 성찰된 관계 속에서 이런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언”이거나 “반마키아벨리언”, 또는 “초마키아벨리언”이다. 하지만 만약 마키아벨리 자신이 정확히 『군주론』에서 내가 비극적인 것의 가장자리들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 곧 비극이,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하는 메시아적 구원의 질문(『오이디푸스』나 『햄릿』에서처럼)이나 이해관계들 및 열강들 사이의 갈등의 변증법에 관한 질문(브레히트라면, 다른 미학적-정치적 범주의 의미를 변경시키면서 “서사극”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잔혹 및 좀더 일반적으로는 악의 비애에 관한 질문과 조우하게 되는 분리와 만남의 경계선들을 깊이 있게 탐구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은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군주론』에서는, 선행한 모든 새로운 군주의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구세주rédemteur(이 신성모독적인 명칭은 임의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목적들에 종속시키거나 파괴하려고 하는 주요한 권능puissance은 교회의 권능이기 때문이다)에 대한 “음화적(陰畵的)인” 소개와 권능들이나 “체질들humeurs”의 변증법(마키아벨리는 다른 저작에서 여기에 대해 체계적인 외연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 변증법의 쟁점은 항상 인민의 정념들의 부정성, 인민에게 고유한 “예종에 대한 거부”를 통치 내지는 국가의 삶의 실정적 조건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념들 및 그 정치적 효과들에 대한 분석론(특히 잔혹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데, 마키아벨리는 주목할 만한 “냉정함”으로 이를 다루고 있으며,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환각적인 기원invocation에 가까운 몇몇 [잔혹한 장면들의] “상연”을 제외한다면, 이는 스피노자 및 사드와 연결될 수 있다)이 서로 혼융되지 않는 가운데 중첩되고 있다. 비극적인 것, 어쨌든 마키아벨리식의 비극적인 것은 이 모든 차원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별도로 취해진 이 각각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
 

잔혹

  이 세 가지 차원들 중 마지막 차원이 가장 중요하다. 또는 여기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이 차원이다. 마키아벨리에게는 분명 “잔혹의 정치”가 존재하는데, 이 정치의 수단들에 대한 서술 및 그 필연성에 대한 정당화가 『군주론』의 담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사람들이 『군주론』을―진지하든 아니면 가식적이든―거부하는 이유들 중 많은 것들을 해명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는 매우 독특하다.
  이는 외설적인 성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부정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게 무엇인지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마키아벨리가 잔혹의 기술 및 통치 방법으로서 이 기술의 효력에 관해 제시한 논의들―여기서 사례exemplum는 단지 성찰과 분석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유덕한” 행위의 모델로 나타난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생산할 수밖에 없는 효과는 사상사에서 매우 보기드문 다른 텍스트들과 비교해 볼 만하다. 나로서는 『규방철학』의 사드나 악덕의 번창을 “증명하는” 다른 텍스트들보다는 오히려 『도덕의 계보학』의 니체 및 원시적인 “금발의 야수”의 “순진무구한” 잔혹성에 관한 그의 논고들과 연결하고 싶은데, 그렇기는 해도 “선악을 넘어” 위치해 있는 도덕주의에 대한 비판과, “상위의”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개인들을 다른 사람들―이들은 이 목적들의 실현을 위한 대행자들이다―의 생명 및 존엄성의 “주인들”로 확립하는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변론이 내포하는 도착성perversité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이에 관해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관점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그릇된 것이며, 우리가 “인문주의humaniste” 시대―이 시대에는 르네상스 시대 못지 않게(또는 반대로 어쩌면 더 광범위하게) 폭력이 현실적으로 발생했지만, 더 이상 정치의 “순수” 수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의 원칙 내지는 선입견들에 따라 마키아벨리 텍스트에 나오는 폭력에 대한 변론에 반발하고 있다고 논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정반대로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곧 마키아벨리는 그가 그 물질성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는 [폭력의] 관행들이 편재해 있던(정치적 암살이 문제이든 고문 또는 배반이 문제이든 간에) 시공간의 맥락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그의 화두는 사실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의 화두는, 잔혹의 유효성의 조건들 및 이를 실행하는 전략들의 합리성,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목적들의 가치에 관해 계속 되풀이되는 문제제기라는 의미에서, 사실에 대한 “비판”을 실행하는 것이다. 또한 마키아벨리의 잔혹의 정치학은 고전적인 “실천적 지혜prudence” 이론을 권력을 획득하고 보존하는 데 유용한 수단들 전체로 확대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으며, 전쟁을 정치의 영속적 지평으로 간주하는 홉스나 슈미트식의 관점 또는 폭력을 문화 및 제도들로 “변환conversion”하려는 헤겔식의 관점 역시 훨씬 뛰어넘는다. 사실 그의 정치학은 정치와 관계하는 폭력의 개념 자체를 파열시킨다.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 마키아벨리 정치학을 사적 정념들과 공적 정념들 사이의 근본적인 분리와 관계시키면서, 초월적이거나 전통적인 정당성을 갖지 않는 권력의 “정초”로서 마키아벨리 정치학의 영속적인 목표를 “증오 없는 공포”의 제도화로 정의한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폭력의 극단성과의 이러한 대면이 갖는 궁극적 역설을 간과했다고 믿는데, 이는 폭력이 모든 도구화를 초과하는, 또는 폭력의 결과들을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것으로 변용시키는―왜냐하면 이 결과들은 “만족”(또는 향락jouissance)과 공포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형태들 아래서 재현/상연되는 바로 그 순간에, 폭력이 온전하게 제어 가능하고 계산 가능하다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사레 보르자가 자신의 부하 장수에 의해 억압받은 인민들에게 이 부하 장수의 시체를 두 토막내어 전시함으로써 그 억압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있는(『군주론』 7장은 인민들이 이것을 보고 “만족을 느낌과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저 유명한 간계scénario야말로 정확히 이것의 사례이다. 만성적인 내전 상태에서 폭력이 궁극적으로 권력의 독점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폭력은 “익숙해진” 형태들을 초과해야 하며, 이러한 초과는 여기서 (두토막난 시체의) 전시 광경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 앞에서 인민을 구성하는 “사적” 개인들 다수는 살이 떨리는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일체의 동일화 가능성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는 마키아벨리가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고 모종의 합리성을 성취하고 있는지, 아니면 “효과적인” 정치의 목적들 및 수단들에 관한 자신의 체계 안으로 이러한 정치가 통제하지 못하는 어떤 사물이 침투하도록 방임하고 있는지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다. 『로마사론』은 믿음들(특히 종교)에 대한 조작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대중들은 오랫 동안 통제될 수 없다는 점에 관해 길게 논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의 정치”(또는 여론 정치)의 최초 판본과 동일시해 왔다. 공포의 효과와 함께 우리는 이러한 도구적 합리성을 넘어서게 되는 듯 보이는데, 왜냐하면 “기원”은 더 이상 신화나 제의의 형태로 재활성화될 수 없고, 대신 각자가 경험하고 억압하는 어떤 집합적 외상―이것의 결과들은 예견 불가능하다―에 준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체사레 보르자의 모험이 이루는 (또는 이탈리아에서 권력imperium을 재정초하는 데 거의 성공할 뻔했던 그의 이야기의 이면을 이루는) “파멸의 과정” 한 가운데 이 삽화를 기입함으로써 마키아벨리 자신이 수긍했던 바로 그 점이다.

몰락ruine

  이로부터 내가 오늘 끝으로 말하고 싶은 마지막 용어가 나온다. 이는 『군주론』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어휘들 중 하나―아마도 제일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이다. 잠시, 안정된 권력(나중에 스피노자는 이를 권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부르게 되겠지만, 그가 목표로 삼게 될 것은 정치 전략이 아니라 제도들의 체계, 심지어 헌정constitution이다)의 보증 수단들에 대한 논증 내지는 탐구라는 관념을 “중립화”하면서 마키아벨리를 다시 읽어보자. 우리는 이에 관한 서술(구세주에 대한 호소는 정념 및 지성의 발휘에 의해서만 이러한 서술[의 차원]을 넘어선다)에서 모든 “군주국”은 몰락하고 만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또한 모든 군주들 역시 몰락하며, 군주들은 자신들이 정초할 수도 있었을 국가도 몰락시키고 마는데, 왜냐하면 이 국가는 그들의 비르투의 구현물, 실현될 법하지 않은 구현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종말을 고하지 않을”(알튀세르), 따라서 영원으로 투사될 국가나 사회의 정초라는 관념―이는 주권에 관한 고전적인 신화와 분리될 수 없을 듯하다―에 맞서 마키아벨리와 함께 [모든 국가의] 정초들은 불가피한 몰락을 지연시킬 뿐이라고 사고해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정초들은 가장 간교하고 가장 뛰어난 역량을 지닌 정치가들이, 겉보기에는 우연적(자신의 질병과 아버지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대비했던 체사레의 계산상의 실수처럼)이지만 실제로는 불가피한 어떤 “오류”의 형태로 스스로 몰락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을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상들 및 기한들에 달려 있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곧바로 몰락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오류와 지성에 의해 대비되어 오랫 동안 지연되는 오류―이는 실제로는 성공과 혼동된다. 또는 그 본성상 시간이 항상 정치에 도래하는 것은 아니라면 혼동될 수 있을 것이다―사이에는 아무런 등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것이―필수불가결하며 따라서 통제 불가능한 폭력의 과잉과 더불어―심원하게 비관주의적인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비극적 차원을 이루는 것이며, 활동적인 인간들 및 그들이 이끄는 대중들의 대담함과 젊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기 위해 그것이 차례차례 빌려오고 있는 목소리들과 공유하는 기쁨 속에서 표현되지 않고 있는 『군주론』의 비밀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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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4-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니 거친 표현들이 몇군데 눈에 띄어서 좀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좀더 다듬어서 올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조금 바빠서 그랬다면 변명이 될까요?

2004-04-06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04-0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포리아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카이사르>는 <체사레>가 맞군요. [군주론]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렇지요. 그리고 연극적인 의미가 들어갈 경우에는 <영웅>은 <주인공>이라는 의미도 갖겠지요. 좋은 지적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국내에는 코르네이유 비극 작품이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고, 라신의 경우는 몇몇 작품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서울대 출판부에서 [라신 희곡선집]이 나와 있고, 장성중 교수의 [페드르] 번역이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옛날 불어로 된 작품들이라서 그리 소개가 활발하지 않은 것 같은데, 코르네이유나 라신 작품들이 좀더 많이 번역된다면, 고전주의와 바로크의 문화적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balmas 2004-04-0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 출판상황을 보니까 제가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더군요. 코르네이유 작품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으로 [연극적 환상/오라스]가 번역되었더군요. 작가 이름이 <코르네유>로 되어 있긴 하지만요. 저도 아직 번역본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오라스]는 코르네이유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번역되어 있어서 무척 반갑군요.
 

* 한신대 사회학과 김종엽 교수의 글입니다.  예리함은 변함이 없군요. 이제 국내에서도 헌법이 법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논의의 주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헌법에 관한 논의 없는 정치철학은 아무래도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듭니다. 이는 또 각자의 이론적 입장의 차이점이 좀더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

 

헌법을 민주화하자

주말에 광화문 촛불집회에 앉아 있었다. 해가 짐에 따라 촛불이 아름답게 피어올랐고, 〈너흰 아니야〉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탄핵무효, 민주수호”라는 구호가 거리를 메웠다. 구호를 외치고 있으니 1987년에 서울 거리에 울려 퍼졌던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떠올랐고, 지금의 구호와 그때의 구호 사이에는 어떤 역사적 연속성과 계승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헌철폐’는 ‘탄핵무효’가 되었는데, 실정법적인 의미의 헌법과 그것에 근거한 행위에 대한 국민적 거부라는 점에서 둘은 연속적이다. 더불어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외쳤던 민주화 투쟁의 성과 덕에 이제 ‘독재타도’라는 구호는 ‘민주수호’로 바뀌었다. 이것은 우리가 타도해야 할 독재의 상태로부터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의 상태로 옮겨왔음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엔 무언가 역설적인 것이 있다. 왜냐하면 광화문에 모인 군중들이 무효라고 외치고 있는 그 탄핵이야말로 독재타도의 성과로 얻어진 87년 헌법에 입각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이 생겨나는 이유는 대중이 현재의 헌법 전체를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87년 민주화 운동과 동일시되는 헌법적 성과는 대통령 직선제에 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직선된 대통령을 탄핵한 의회의 행동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라고까지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중의 생각을 분별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헌법에 의거한 행위와 헌법에 근거한 판결이 국민들 대다수에 의해서 존중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헌법의 제정 혹은 개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런 참여와 그것이 수반하는 학습과정이 있을 때만 헌법에 대한 존중이 국민 속에 확고하게 문화적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런데 해방 후에 제정되고 개정된 헌법 가운데 이런 국민적 참여를 통해서 확립된 것이 없었으며, 이 점에서는 87년 헌법조차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87년 헌법 또한, 대중적 의지를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된 대통령 직선제라는 권력구조의 큰 틀은 수용하였으되, 그 외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87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국민운동본부를 배제한 채 당시 여당과 야당 간의 밀실협상을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통령 탄핵과 더불어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것은 사회의 통일성의 뿌리가 헌법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사람들이 만든 사회란 언제나 적대와 갈등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그런 분열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통합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합의가 존재해야 하며, 현대 사회에서 그것은 오직 헌법을 통해서만 표현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라면 그것은 오직 헌법 공동체라는 의미에서만 그렇다. 그런데 그 헌법이 국민의 민주적 참여 없이 만들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생활의 운영원리들이 헌법에 매개되어 있어야 한다는 감수성이 약한 것은 문제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깊을수록 더욱 의존해야 하는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헌법 개정의 담론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2007년에는 87년 이후 20년 만에 대선주기와 총선주기가 일치하는 때가 된다. 그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정해온 87년 헌법을 개정하는 동시에 통일 시대까지 대비하는 헌법을 구상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4년 동안 광범위한 국민적 토론과 숙고를 통해서 진정으로 조국의 제단 앞에 바칠 만한 헌법을 만든다면, 이는 87년 민주항쟁과 최근의 촛불시위를 통해서 표현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헌법 자체의 민주화로까지 밀고 나가는 것인 동시에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를 향해 크게 한 걸음 내딛는 일이 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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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Balibar, “Sed intelligere”, Lignes(nouvelle série) 4, 2001.

* 이 글은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리뉴』(‘노선’을 뜻한다)가 “혁명의 욕망”이라는 제목의 특집호를 내면서 실었던 프랑스 지식인들의 기고문 중 한 편이다. 『리뉴』는 바타이유 연구자인 미셸 쉬르야(Michel Surya)가 편집을 맡고 있는 잡지로, 알튀세르 계열의 철학자들(발리바르, 바디우, 랑시에르 등)과 데리다 계열의 철학자들(장-뤽 낭시, 필립 라쿠-라바르트, 카트린 말라부 등)이 자주 글을 싣고 있다. 이 글 역시 복사나 퍼가기 등은 허락하지만, 공적 매체에서 인용하는 것은 불허한다.

 

우선 인식하라

근본적으로는 『리뉴』의 관심사와 대의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여기 『리뉴』가 우리에게 성찰해보도록 제시한 정식들에 대해서는 얼마간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이는 사실은 단어들에 관한 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고, 나는 내가 이 단어들에 물신fétiche과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믿게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마도 또한 단어들(및 나 자신이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관념들, 곧 혁명과 욕망이라는 관념들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덕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끝에서부터 시작하자면, 베를(Berle)의 정식의 의미에 관해 묻게 된다[베를이 제시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정신을 지닐 만한 자격이 없는 세계에 대해 정신이 대립시키는 순수하고 단적인 거부refus pur et simple opposé par l'esprit au monde qui l'indigne”]. 우리처럼 [작가와는] 다른 “글쓰는 이들écrivants”(왜냐하면 나 자신을 “작가écrivain”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은 불어에서 관계사는 “서술”과 “한정”의 이중 용법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정식은, 세계는 그 자체로 정신을 지닐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를 거부함을 뜻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정신을 지닐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은 어떤 세계, 정신이 거부하는 세계임을 뜻할 수도 있다. 세계는 그것의 실존 자체에 의해, 그 물질성(그것의 “산문”(散文), 그것의 공리주의)에 의해 정신을 가질 만한 자격이 없다는 관념은 전혀 부조리한 게 아니며, 이는 심지어 세계를 정의하는 관념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의미라고, 곧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어떤 세계(어떤 세계? 부르주아 도덕의 세계, 부르주아 세계 일반)라고 가정해보자. 정신[의 의미]에 대해 논란을 벌이기보다는(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신체 또는 대중이나 인민, 심지어 프롤레타리아를 더 선호할 것이다 ... 하지만 이렇게 해서 본질이 변화될지는 확실치 않다)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자. 혁명에 대한 열망들의 “최소의 공통적인 특성”(“엄밀한 최소한의 것”)으로서 “순수하고 단적인 거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순수하고 단적인 거부”를 혁명에 대한 열망들의 “최소의 공통적인 특성”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그래서 불일치가 시작된다. 반대로 나는, 더 이상 어떤 구실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수용과 모든 용법, 모든 전통, 모든 강령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만이라도, 우리에게는 엄밀한 의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처음에는, “욕망할 만한 것[바람직한 것, désirable]”이라는 관념을 단순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잡화하기 위해서, 혁명이라는 관념을 “혁명의 혁명”이라는 관념―이전에 레지 드브레가 대중화시킨 이 정식을 (많은 사람들 이후에) 전유해 사용한다면―과 분리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엄밀한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나로서는 예컨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관념과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관념에 차이를 두고 싶다. 어떤 통속적인 생각에 따르면 전자와 후자는 부르주아 사회와 대립할 것이다. 서로 동일시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양자는 필연적으로 “단계들”이나 “국면들”로서 분절된다. 나는 양자를 대립시키지는 않더라도 분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적”이거나 “집산주의적”인 것도, “개인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이러한 구분을 넘어서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공산주의는 아마도 부르주아 사회와의 대립에 따라 순수하게 단적으로 정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세계(및 특히 이 세계 내에서 우리에게 참을 수 없고, 어떤 점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가 어떤 한에서 “부르주아” 세계인지 진지하게 질문해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자본주의적인 한에서라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그밖에 다른 것들(성차별적, 인종주의적)도 더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를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이를 극복할 어떤 공산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이제 앞의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가능한 것과 욕망할 만한 것[바람직한 것], 이 양자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만약 내게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확실해 보인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농지거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만약 19세기와 20세기 동안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무정부의 등의 투사들이 부여한 의미에서 [정관사 la가 들어간] “혁명la révolution”은 가능하지 않거나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면, 이는 아주 단순하게도, 사람들이 말하곤 했던 것처럼 혁명의 “주관적․객관적” 조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과거에 대한 향수도, 어떠한 유토피아도 이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용어의 역사적 의미에서 혁명들은 단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며, 질문 전체는 우리가 이 혁명들을 욕망할 만한 것들로 생각하게 될까 알아보는 데 있다... 루소가 『에밀』(1762)의 유명한 구절―이는 회고적으로 볼 때 예견적인 구절로 드러났다―에서 “우리는 혁명들의 세기에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해보자. 그는 이 말로써 통치형태와 사회질서의 급격한 변전을 지시했지만, 그 변전의 형태나, 특히 가치에 관해서는 예단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이 문장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혁명들의 역사(“망상들illusions”의 역사)로서의 역사l'Histoire의 종말을 보았다고 우쭐대거나 절망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둘 모두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 도래할 혁명들을 욕망할 만한 것들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이 혁명들은, (붉은 깃발과 함께 또는 그것 없이 이루어진) 과거의 혁명들 중 많은 것들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산업”혁명이거나 “민족”혁명, “보수”혁명이거나 “수동”혁명 등일 수도 있다.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다면, 문제는 어떤 조건들 하에서 우리가 이 혁명들을 욕망할 만한 것들로 생각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두 개의 정식을 대립시켜보고 싶다. 유명한 한 연설(1792년 11월 4일)에서 로베스피에르는 지롱드파를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시민들이여, 여러분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가?” 나는 이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논쟁에서 이 정식을 인용했었다. 당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내가 보기에는 자명했는데, 왜냐하면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일의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시에 혁명적 폭력(이는 항상, 최종 분석에서는, “내전”의 유형에 속한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든 달성하지 못하든 간에, 결코 자기 자신에 맞서 “파시스트 폭력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 다른 정식을 보자. 아마도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욕망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나는 방금 이 표현을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나는 이 표현이 이 선언의 의미,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좋다면, “정신”을 집약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양자를 다음과 같은 가설 속에서 결합시켜 보고 싶다. 곧 욕망의 혁명 없이는 혁명의 욕망도 없다! 따라서 특히 “혁명의 욕망”의 혁명 없이는 혁명의 욕망도 없다.
  이는 혁명의 욕망은 일차 수준에서 사고될 수 없고 그 자체로 “욕망될”(왜냐하면 의지의 의지가 존재하듯 욕망의 욕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도 없다는 의미다. 다른 곳에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인용하면서(그에게 러시아 혁명의 근본 문제는 어떻게 혁명이, 자본주의와 국가로부터 유래한 그 자신의 “야만성”을 물리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이를 “혁명을 문명화하기civiliser la révolution”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는 혁명의 욕망은 동시에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시빌리테, 더 많은 상상력의 욕망이라고 제안하는 것인데, 이것들이 없다면 혁명은 그것이 “거부하는”, 그리고―혁명이 더 이상 그것의 도구가 되지 못할 때는―“그것을 무시해버리는l'indigne” 세계의 전도된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차 수준으로 올라간 욕망은 지연된 욕망, 자기 자신을 (재)부정하는 또는 자신의 실현을 두려워하는 욕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증명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또한 (스스로를) 사고하는 것, 따라서―이 후자는 전자와 분리될 수 없는데―(스스로를) 사고하려는 욕망으로 되는 것은 바로 욕망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다. 1982년 에밀리아 지안코티(『스피노자 어휘집Lexicon Spinozanum』의 저자로, 1992년 사망했다)가 조직한 최초의 대규모 스피노자 회의[이 회의에서 발리바르가 발표한 논문이 바로 <대중의 공포/대중들에 대한 공포: 스피노자, 반(反)오웰>이다]에 참석하러 우르비노에 갔을 때, 나는 회의장 벽에 그려진 그림에 “우리는 반역할 이유를 갖고 있다”는 마오의 구호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여기에 에밀리아는 다음과 같이 써넣었다. “우선 인식하라Sed intelligere.” 타협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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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3-2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i, Mr. balmas, I read your paper in Moscow. Thank you for your keeping your post, but I'm in trouble in searching my post , my language^^

balmas 2004-03-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모스크바에 계시군요. 사정을 보니 아마도 한글 자판을 쓸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좀 답답하시겠습니다. 연구 때문에 가셨을 테니, 유익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Etienne Balibar, “Une philosophie politique de la différence anthropologique: Entretien avec Bruno Karsenti”, in Multitudes 9, juin 2002.

* 이 대담은 매우 짧은 분량의 글이지만, 정치철학에 관한 발리바르의 최근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읽을 수 있는 매우 시사적인 대담이다. 발리바르의 작업 스타일을 감안할 때, 여기서 가설적으로 소묘된 내용들은 다른 글들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발전된 모습으로 제시될 것 같다. 제한된 분량 내에서 다면적인 문제들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려다 보니까 문장이 복잡해지고 때로는 매우 모호한 표현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 감안해서 얼마간 풀어서 번역을 했는데, 좀더 검토를 해본 다음 오역이 있다면 바로 잡겠다. 이 글 역시 (당장) 출판할 목적으로 번역한 게 아니고 충분한 교열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용은 불허한다. 

 

인간학적 차이의 정치철학: 브뤼노 카르젠티와의 대담


브뤼노 카르젠티: 『다중』(Multitudes) 창간호에서 우리는 지배적인 정치철학 조류와 전혀 다른 지반 위에 정치에 관한 접근법을 위치시키려는 기획을 공표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는 특히 정치에 대해 발본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정치는 초월론적인 것(transcendantal)의 술책에 말려 들어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로 사용될 수 있는 계약 장치들을 정비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하면서 민주주의적 권력 제도의 적법한 조건들을 검토하거나 아니면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얼마간 기쁜 결혼들을 축복하는 데 머물러 왔기 때문에, 이런 성격을 지닐 수가 없었습니다. 정치 사상의 이러한 법적-제도적 전회는 70년대 후기 구조주의의 주요 성과 및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풍요한 유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분명 퇴보이며, 1995년 이래 등장한 새로운 투쟁 형태들 및 투쟁들의 급속한 연계는 이 전회의 한계들을 계속 비난해 왔습니다. 『다중』 편집진 사이에서는 우리가 이뤄내야 할 도약을 가늠해보기 위한 방편으로 들뢰즈적인 한 가지 구호가 자주 언급되곤 했습니다. 진정한 정치는 바로 존재론이다! 이 구호는 선생님이 보시기에 의미가 있습니까? 이 구호는 선생님이 정치적인 것을 좀더 잘 정의할 수 있게 해줍니까, 아니면 반대로 혼란의 원천에 불과합니까?

에티엔 발리바르: 이 구호를 전도시키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겠군요. 알튀세르라면 오히려 이 구호를, 진정한 존재론은 바로 정치이다라고 굴절시켰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저에게 본질적이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본질적인 것은 정치 그 자체의 환원 불가능한 성격을 경계짓고 위치짓는 것이며, 이론적 활동 그 자체를 정치로 다시 이끌어가는 것, 곧 이론적 활동이 가장 사변적이고 가장 형이상학적인 자신의 대상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구성적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다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분명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주체에 관한 질문, 예속화와 주체화 사이의 관계라는 질문은 전략적 차원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의 환원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따를 경우, 정치에 관한 접근법들의 차이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담론을 존재론적 가정들로 유도하거나 역사철학으로 재기입하는 것―이 양자는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을 거부하는 것은, 정치의 형태들 및 쟁점들을 실체화함(hypostasier)으로써 정치가 생산되는 지반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음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재의 새로운 모습의 출현을 준비하는 존재론으로 복귀하는 것은, 역으로 본다면 정치를 파악하는 한 가지 방식, 심지어 정치를 새롭게 실천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제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바로 존재론 안에서 균열이 작용하게 됩니다. 투쟁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 내부에서 사람들은 긍정적인 또는 구성적인 노선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존재론적-정치적 관점의 위력은 전적으로, 스피노자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역량 개념의 내적 경제에 놓여 있습니다. 역량은 본질적으로 관계이며, 증대하거나 감소하는데, 이는 정확히 말하면 역량이 수동성과 능동성의 미분(différentiel), 예속화와 주체화 사이의 영속적인 이행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량 개념은 결코 미리 구성되어 있는 정초적인 주체의 존재론화가 아닙니다. 이 개념은 또다른 존재론의 토대, 또는 적어도 그 존재론의 토대로 사용될 수 있는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정치적인 것의 환원 불가능성을 정의하려는 두번째 시도는, 선생이 질문에서 말한 것처럼, “초월론적인 것의 술책”을 실제로 따르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제시한 것과는 반대로 저는 이것이 반드시 정치의 뇌관을 제거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경향의 가장 흥미있는 대표자는 데리다입니다. 그가 “유령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초월론적인 것의 최후의 형상(figure)인데, 여기서 실천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사변 이성을 압도합니다. 이 경우 모든 존재론적 관점은, 스스로 윤리적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필요한 경우에는 예언적이라고 말하는 어떤 “명령”을 위해 비판당합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의 도덕적 정초라는 관점을 재생시키고, 이런 한에서 주체의 새로운 형상을 재확립하는 게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확립은 실천적 주체를 실체화하는 모든 형태에 대한 비판과 분리할 수 없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쪽] 사람들은 스피노자주의의 현대적인 형태들에서 작동하고 있는 역량이라는 관념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데리다가 제시하는 형태의 정치철학에서 초월론적 극점은 다음과 같은 점을 긍정합니다. 곧 행위의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이 항상 아직 가능하며, 동일성 중심적인 태도 및 이것이 함축하는 “상상적 공동체”에 사로잡히지 않는 행위를 타인 및 자기에게 전달되는 호명의 행동과 연계시키는 것이 항상 아직도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호명의 행동은 실천 주체 및 정의를 위한 행동이, 자신들의 고유한 존재론과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파스칼식의 내기(pari)의 몇몇 어조를 재발견하려는 태도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치적 문제제기가 접합을 시도하고 있는 존재론적인 것과 초월론적인 것이라는 두 가지 극점 사이에서, 또는 이것들을 넘어서 또다른 관점을 구분해내는 게 가능한데, 이는 정확히 말하면 제 작업이 위치해 있는 관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편으로 자율성 및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옹호와 다른 한편으로 어떤 규정된 사변적 담론에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사이에서 정치적 담론이 끊임없이 겪게 되는 불안정성은, 우리가 정치와 인간학의 접합에 대해 질문할 때, 해소될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좀더 인식 가능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우리의 해석의 맹목들 및 근본적으로는 마르크스에서도 분명히 발견되는 부인(dénégation)을 재검토해 본 이후, 인간학적 문제를 재정식화하고 재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학적 차이들을 기입하고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분리하는―끊임없이 재정의되는―경계선을 따라 갈등의 질문을 규범의 질문으로 전환하거나 전치시킴으로써, 그리고 이러한 식별적인(critique) 인간학적 차이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적 관계들의 제도화나 변혁의 조건들을 열어 놓음으로써, 정치를 구성하는 난점들이 사변적으로 배가되는[거울반영적으로 복제되는, se redoublent spéculativement] 것은 바로 인간학적 수준에서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사태를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포이어바흐에 관한 유명한 여섯번째 테제는 미완의 테제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 본질은 독특한 개체 안에 들어 있는 보편자가 아니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들의 총화(ensemble)이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관계들은 우리가 이것들을, 가변적인 형태들 하에서 항상 인간적인 것의 규범을 구성하고 고착시키며, 이에 따라 이러한 규범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경향을 지니는 것으로까지 확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형이상학적 추상물로 대체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니체에서 푸코, 캉귈렘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노선을 그리는 질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생명정치의 의미를 정의하려고 시도한다면, 이러한 노선과 대면해보는 게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관계들은 종(種)의 내부에 차이들―생명 자체 내의 실재적-상상적 차이들, 생명체 내의, 인간 개체군(populations) 내의 “본성”이나 “가치”의 차이들―을 정립함으로써 기능하며, 사람들은 끊임없이 [한편으로] 이러한 차이들의 제약을 인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차이들의 궁극적 불가능성을 비난하도록 이끌리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의 환원 불가능성이라는 질문은 제가 보기에는 폭력의 질문, 곧 인간학적 차이의 작용에 의해 생산되는, 규범적인(정상적인, normative) 또는 때로는 극단적인 폭력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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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제이북스 출판사에서 출간될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에 관한 논문집에 수록될 글입니다. 아직 교정이 완료되지 않은 번역이기 때문에, 역시 무단으로 인용하는 것은 금지합니다. 인용을 원하는 분은 역자에게 사전에 허락을 얻기 바랍니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정치의 타율성. 루소에서 마르크스로, 마르크스에서 스피노자로[주 1: (역주)  이 글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  E. Balibar, “Le politique, la politique. De Rousseau à Marx, de Marx à Spinoza”, Studia Spinozana 9, 1995. 원래 제목대로 하면 [정치적인 것, 정치. 루소에서 마르크스로, 마르크스에서 스피노자로]가 되겠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고려해서 제목을 약간 바꿨다. 첫째,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기획―곧 근대성의 기획 자체―은 루소가 가장 명시적으로 제시했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곧 정치의 타율성의 발견에 따라 근본적인 변모를 맞게 된다.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의 의미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자율성의 기획과 마르크스의 정치(la politique)의 타율성의 문제설정 사이의 차이, 후자에 의한 전자의 지양을 함축한다. 둘째, 하지만 마르크스는 정치의 타율성의 조건을 경제의 영역에서만 발견했으며, 이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따라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종언의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그리고 이미 루소 이전에,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한계, 따라서 정치의 타율성의 또다른 조건을 이데올로기의 영역―스피노자의 용어법대로 하면 상상과 정서의 영역―에서 발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이 양자의 결합 (불)가능성의 조건들에 대한 해명은 주류―곧 자유주의적―근대성 논쟁에서 억압되어온 핵심 쟁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주 4) 참조. ]

 

 


    1. 1925년 맨체스터에서 본(C. E. Vaughan)의 루소 연구 및 루소 저작의 주석본들에 대한 보충으로 그의 유작 연구논문집이 출간되었다. 『루소 전후의 정치철학사 연구』(Studies in the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 before and after Rousseau)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은 이후 정치철학 교육의 고전이 된다. 여러 세대가 이 책에서 제네바 철학자의 이름이 붙은 “부재하는 중심” 주위로[이 저서에는 루소에 관한 논문이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역자] 스피노자와 로크, 비코, 버크, 피히테, 마치니와 다른 사람들의 학설이 배치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와 『공산당 선언』(1947년 작성), 『자본』(1867년 1권 출간) 또는 『반(反)뒤링』(1878년)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세대와 『인간 불평등의 기원 및 기초에 관한 논고』(1754년)나 『사회계약』(1762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거리와 동일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앞서 루소에 대한 관계에서처럼 “마르크스 이전”과 “마르크스 이후” 사이의 대조가 스피노자를 포함하는 정치적 전통에 대한 우리의 독해―우리는 여기서 현재의 실마리들을 찾아보려고 한다―의 부재하는 중심을 구성하지 않는지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루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그것들이 산출한 모순적인―혁명적이면서 반혁명적인―정치적 효과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각자의 세기에 서로 비교될 만한 중요한 후계자들을 지녀 왔다[주 2: 나는 각자의 세기들이라는 표현을 사후(après-coup)에 도래하는 것들로 이해한다. 곧 19세기가 “루소의 세기”였듯이 20세기는 “마르크스의 세기”가 될 것이다. 이는 19세기에 루소에 대한 관심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앞으로 수십년 동안 마르크스의 망각이라는 생각이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둘 사이의 유비는 훨씬 더 엄밀한 토대들을 갖고 있다. 『사회계약』 첫부분(1부 5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에서 루소는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 것, 따라서 그 내적 통일성의 원리에 관해 질문했다[주 3:(역주)  “그로티우스는 말하기를 인민은 국왕에게 자신을 바칠(se donner)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로티우스에 따르면 인민은 자신을 바치기 전에 이미 인민인 셈이다. 이 헌신(don)은 그 자체가 시민적인 행위이므로 공적인 토론을 전제한다. 따라서 인민이 왕을 선출하는 행위를 검토하기에 앞서 우선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 행위를 검토하는 게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행위는 필연적으로 전자의 행위에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의 진정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Du contrat social, in Oeuvres complètes III, Gallimard, 1964, 359면; 『사회계약론』 이환 옮김(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17면(번역은 수정). 이에 관한 발리바르의 논의는 E. Balibar, “Ce qui fait qu'un peuple est un peuple―Rousseau et Kant”, Revue de Synthèse, 1989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Galilée, 1997에 재수록] 참조.]. 이는 하나의 통치(정부, gouvernement)의 구성에 대한 모든 반성에 전제되는 질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 나름대로 계급투쟁과 대중운동 및 사회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세계관”의 역할에 대해 반성하면서, 국가 속에서 제도화된 하나의 인민의 내적 통일성이라는 문제로부터 인민 자체의 혁명적 통일성이라는 문제로 질문을 전위시킨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인민중의 인민”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노동자 계급 안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름 아래 이를 찾아내려고 한다. 이로써 그들은 근대 민주주의 정치사상만이 아니라―루소의 저작이 특히 분명하게 보여주는―이 사상을 특징짓는 “봉기”와 “구성” 사이의 내적 긴장 역시 발본화한 것으로 보인다(Balibar 1989/1991).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단순히 그 사상을 반대로 취했을 뿐이다. 
    마르크스 정치이론의 독창성 및 이것이 표상했던 절단(coupure)의 정확한 본성, 그리고 그 이후에 도래하는 이론에 이것이 부과하는 제약들(따라서 우리 모두는 돌이킬 수 없게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을 평가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루소주의의 선례를 알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본질적인 점에서 루소는 “구성”[헌정]에 대한 이전의 모든 이론과 단절했다. 이제부터 입법은, 인민주권의 표현이기 때문에 내재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정치를 규칙들의 집합으로 또는 통치와 통치자들(이들이 집단적이라 하더라도)의 “기술”(art)로 계속 사고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이 판명된다. 이 사실 때문에 그의 선행자들에 대한 독해와 활용은 완전히 의미가 변화된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이 점에서 양자는 사실상 분리될 수 없다)는 역사의 원동력과 의미를 의지나 이성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표상하는 이론들과 단절한다. 정치를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적인”[관념론적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이러한 단절을 완화시키기는커녕, 그 효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2.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관념을 주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루소에서 마르크스로 나아갈 때 한 가지 전도가 이루어진다. 만약 마르크스가 완전히 의식적으로(특히 그가 사적 소유를 소외의 근원으로 들고 있는 루소의 이론을 자주 암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루소의 민주주의적 참여를 발본화했다면, 이는 정치라는 통념의 의미 자체를 전도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루소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의 탁월한 대표자다[주 4: (역주) 발리바르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정치”(la politique)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구분은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구분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정치”, 곧 경제, 문화, 종교, 사회 등과 구분되는 제도적 영역으로서의 정치는 불어로는 “라 폴리티크”(la politique)에 해당한다. 그런데, 클로드 르포르는 이처럼 경험적인 제도적 구분을 전제하는 “라 폴리티크”라는 용어는 정치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정치의 핵심적인 의미는 사회의 한 제도적 영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들이 세계 및 자신들 사이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산출함으로써 사회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산출적 원리를 가리킨다. 곧 르포르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사회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경제, 종교, 문화 등과 같이 사회의 한 제도로서 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제도화를 실현하는 게 곧 정치다.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와 구분하기 위해 르포르는 이런 의미의 정치를 “정치적인 것”, 곧 “르 폴리티크”(le politique, 영어로 하면 the political)라고 부른다(『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19-20세기』(Essai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cles), Seuil, 1986에 수록된 여러 논문 참조). 그리고 르포르는 이런 의미의 “정치적인 것”의 차원(또는 사회의 상징적 차원)을 처음으로 발견한 공적을 마키아벨리에게 돌린다(Claude Lefort, 『저작의 노동. 마키아벨리』(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Gallimard, 1972 참조). 반면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상부구조인 정치의 본질을 하부구조인 경제에서 찾음으로써, 오히려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상징적 차원을 해명하지 못하고, 당관료제와 경제결정론의 이중적 굴레에 빠지게 된다. 르포르의 이런 구분법은 라클라우와 무페를 비롯한 영미권의 좌파 정치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발리바르는 여기서 르포르를 따라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양자를 각각 “타율성”과 “자율성”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정치의 타율성”이란, 르포르식의 “정치적인 것”을 포함하는 모든 정치의 차원은 자기자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원적 타자, 또는 이질적 차원에 의해 규정되어 있음(바로 이 때문에 정치는 타율적이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차원을 규정하는 이 타자(마르크스주의에서는 “경제”)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 초월적 지위, 곧 최종 심급의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 타자는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논문에서 발리바르가 보여주려는 것은 루소의 업적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발견해낸 데 있는 반면, 마르크스는 경제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근원적인 장소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노동의 정치)의 가능성의 장소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치는 “인민 중의 인민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곧 역사의 주체의 선험적(또는 적어도 실제적)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본질주의와 목적론의 굴레에 빠져들게 된다. 이에 비해 스피노자는 대중들(multitudo)이라는 개념을 정치의 중심 문제로 부각시킴으로써, 마르크스식의 정치의 타율성 이론이 지닌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곧 마르크스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정치의 타율성의 또다른 차원을 발견하며, 이는 마르크스 이론이 지닌 본질주의와 목적론의 한계를 정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원천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경제의 차원을 경험적인 사회영역으로 환원시키는 르포르와는 달리, 발리바르는 경제가 함축하는 “정치의 타율성”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또하나의 정치의 타자, 곧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론과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다(이 양자의 관계는 대립이나 모순이 아닐 뿐만 아니라, 종합이나 접합, 보완 또는 병치나 나열의 관계가 아니다). 발리바르의 이러한 이론적 문제설정은 다시 [정치의 세 가지 개념: 해방, 변혁, 시빌리테](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E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in La Crainte des masses, 앞의 책)에서는 “시빌리테”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좀더 복합적인 시도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정치의 타율성”의 구분은 르포르의 작업에 대한 비판적인 전유의 시도로 읽는 게 타당할 것이다.]. “주권”과 “통치”를 분리시키고 “통치자들”과 “피통치자들”을 최초로 전위시키면서 이러한 관점이 고전주의 시기 이후까지 살아남게 해준 것은 바로 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치는 조건들을 가질 수 있으며, “정념들”과 “이해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사회적 소재와 관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최종 분석에서는 인민과 인민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활동 또는 “구성적” 권력으로서의 자기자신 위에 합리적으로 기초한다[주 5: 근대정치에서 구성적 권력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네그리와 일치할수록, 우리는 그가 루소를, 루소가 중심적으로 대표하는 전통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시키는 데 더욱 더 놀라게 된다!(Negri 1982; 1992 참조).]. 따라서 우리는 일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곧 정치는 자신이 그 조건들을 창출해 내는 개념들과 결단들의 자율성을 전제하는 것이다[주 6: 알튀세르가 자신의 1966년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읽기에 『사회계약』은 정치적 자율성의 조건들―이는 또한 정치의 자율성의 조건이기도 하다―을 재창출하려는 아포리아적인(그리고 절망적인) 시도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선례를 시민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고대의 공화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 및 특히 『정치론』에서 민주주의를, 각각의 개인이 “역량만큼의 권리”(tantum jus quantum potentia)를 누리는 “가장 자연적인” 국가, 완전하게 절대적인(omnino absolutam) 국가로 정의할 때, 그에게서도 이 전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과 더불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또다른 자율성, 곧 집단적 주체로 생성하고 영속적인 “봉기”의 행위 속에서 인민주권을 강제하는 “인민” 그 자체의 자율성을 표현하는 경우에만 현실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 전통에 속해 있는 마르크스는 정확히 말하면 그 이론적 표현을 완전히 전도시켰다. 곧 그는 정치의 타율성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게 정치의 “진리”와 “현실성”은 그것의 고유한 영역 속에, 그것의 고유한 자기의식이나 활동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바깥에, 그 “외적” 조건들과 대상들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외재성은 정치를 내생적으로 구성한다.
    바로 여기에 마르크스 유물론의 근본 측면이 존재한다(반면 구성적 봉기의 영속적 흔적으로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루소주의적 관점은 근원적으로는 관념론의 쇄신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론을 환원주의나 속류 경제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개인들 및 사회적 집단들의 활동이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과정을, 그것의 타자, 곧 넓은 의미에서 경제의 모순들의 발전과 변증법적으로 동일시했다. 그렇다면 정치적 실천의 존재를 무화시키거나 부정하는 게 문제인가? 반대로 좀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재구성하는 게 문제다. 이 경우 그것은 “계급정치”가 된다. 곧 그것은 양쪽 모두에서(혁명적 계급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관점에서도) 인지된 정치적인 것(du)의 제도적 한계들을 영속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사고된다. 만약 착취와 지배, 따라서 사회적 생산관계 속에 함축된 적대의 결과들이 사회적 삶의 측면들 전체로 확장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정치를 달리 사고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마르크스로부터 물려받은 명시적인 역설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곧 인민의 자율성―인민의 자기규정 및 해방―을 정치의 중심에 실제로 기입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민주화주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유지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인민 중의 인민을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으로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동일화를 중심으로 정치의 타율성 이론을 구축한다. 분명히 이것은 정치와 그 타자, 곧 경제에 대한 도발적인 유물론적 동일화 위에 정초된, 근대철학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완성된 이론이다[주 7: 따라서 마르크스에서 정치주의에 대한 “경제적” 비판과 경제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결코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다른 곳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그의 계급투쟁 이론에 특징적인 단락(短絡)으로 기술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Balibar 1985/1994).].
    마르크스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정치의 타율성에 대한 이러한 발본적인 정식화가 시대의 변화를 규정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속하는 논쟁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논쟁은 전위되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변화들에 의해 오늘 의문스럽게 된 것이 바로 정치와 경제의 이러한 단락(이것의 맞짝은 국가의 기능과정 자체 속에서 “노동의 정치”의 중심적 중요성이었다)이라는 점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분명하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이론으로서 “정치철학”이라는 관념이 전면에 재등장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문제는 루소로의 회귀나, 이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로크 또는 칸트로의 회귀로 제기된다. 이 때 스피노자로 회귀하는 경우는 훨씬 드문데, 그를 이러한 관점[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으로 이끌어오기란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적으로 결정적인 질문이며, 현재의 작업들 중 한 부분 전체를 관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분명한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있다.

    3. 스피노자의 사상과의 대면이 결정적이라고 판명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스피노자를 그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속에서 읽고, “스피노자주의적인” 개념들과 지향들을 근대정치에 대한 반성에 작동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정치의 이율배반들 속에서 작용중인 것과 함께, 그것들[이율배반들]을 봉기와 구성적 권력, 국가적 제도화라는 고전적 딜레마들에 결부시키는 것을 동시에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지 않겠는가? 이미 스피노자는 17세기에 “정치적 주체”를 민족이나 인민이 아니라 좀더 원초적인 실재인 대중 또는 “대중들”(multitudo)과 동일시하면서, 성숙기의 세 권의 위대한 저작(『윤리학』, 『신학정치론』, 미완성된 『정치론』)에서 정치와 존재론의 교차지점에서 자율성과 타율성의 딜레마가 제기하는 모든 질문들을 자신의 방식에 따라 조우했었다.
    우리에게 스피노자의 철학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중요성은, 내가 다른 곳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그가 (시민들의 자연권을 다수자의 역량(potentia multitudinis)으로 정의하면서) 대중들[주 8: 나는 multitudo라는 용어에 대한 가장 좋은 불어 번역은 복수로 사용된 “masses”[대중들]이라고 생각한다(Balibar, 1985).]에게 국가 속에서의 구성적 기능을 부여한다는 사실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가 역사 속에서 “대중운동들”의 현상의 양면성을 탐구하는 방식에서도 비롯한다. 근저에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대중운동들이 국가들(imperia)의 보존에 필수적인 “민주적” 합의의 필수적인 기초를 구성하면서 또한 동시에 (『정치론』 7장 25절에서 말하는 “대중으로의 복귀”를 통해) 그들의 실존을 가장 강력하게 짓누르는 파괴의 위협을 이루기도 한다는 것이야말로―고전주의 시기의 위기들과 혁명들의 정세가 강제하는―결정적인 정치적 문제이며, 이는 대중들의 “존재론”(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병인론(étiologie)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대중운동은 법과 정치적 권위를 활용해서 몰아낼 수 있는 “자연상태”의 환영들로 사고되어서는 안되며,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정치의 현실태 자체로 사고되어야 한다[주 9: 사람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3세기에 걸친 “형이상학적” 독해들을 극복하고 스피노자가 위대한 (반종말론적) 역사이론가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Tosel 1994, Albiac 1994, Moreau 1994를 참조하라.]. 이는 상상의 요소 안에서 구성되고 진화하는 현실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고전주의 시기의 다른 이론가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정치의 이러한 상상적 토대에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역시도 심원한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Terrere nisi paveant)라는 타키투스의 표현(Annales I, 29)은 『정치론』 7장 27절에서 사용되고 『윤리학』에서도 약간 상이한 형태 아래 다시 사용되고(4부 정리 54의 주석(“우중들은 위협받지 않으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Terret vulgus, nisi metuat)) 있으며, 스피노자에게는 항상 설명적이면서 규범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법적 정의―그는 우리가 여기에서 “가장 본성적”이고 “가장 절대적인” 국가를 보도록 인도한다―를 아포리아적이게 만드는 원인들 중 하나가 여기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스피노자에서 민주주의의 아포리아(이는 주권적 대중들이 자신들의 정념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또는 자기자신에 대해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메커니즘을 단번에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존재한다)는 우리가 그의 논거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때로는 보수적이고 때로는 혁명적인 결과들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의 철학의 가치 전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스피노자에게서 인간본성에 대한 독창적인 “관-개체적” 관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유물론적 자유 개념을 읽어내지 못할 것이며, 정서적 동일화와 합리적 교통(개인들의 상호 유용성에 기초해 있는) 사이의 상호전제 관계들에 대한 해명에 기초하고 있는 역사 속에서 “공동체”의 변증법―이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에 대한 현재의 토론 대부분이 그에 종속되어 있는,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대립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이다―도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스피노자는 집단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들이나 권리들(특히 사고와 표현의 자유)의 상호보충적 기능들에 대해 매우 민주주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서 전자와 후자는 최종 분석에서는 관개체적 코나투스의 구성적이고 활동적인 역량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공할 만한 실천적 난점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혁명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표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혁명들을 항상 고대적인 관점에 따라 대중적인 폭동들을 동반하는 정체형태의 변화나 통치자들의 개인적 교체로 생각했다. 분명 여기에는 민주주의 정치의 또다른 측면, 곧 하나의 국가“장치”나 국가장치 전체 속에 조직되어 있는 지배(또는 소외)와 차별(또는 불평등)에 저항하는 모든 봉기가 함축하는 부정성의 측면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력(그리고 우리가 그를 뒤따를 때, 우리의 무능력)이 존재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근대정치의 보편성이 전제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정성이다.

    4. 나는 다른 곳에서(Balibar 1992) 이러한 이중적 봉기를 지시하기 위해 하나의 특이한 표현, 곧 평등한 자유égaliberté라는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근대혁명의 텍스트들(특히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평등과 자유가, 하나의 부정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이중 부정이라는 논리적 형식 속에서 원리상 불가분하며, 심지어 동일하다고 정립한다. 곧 평등 없이 자유 없으며, 자유 없이 평등 없다. 그것들은 이러한 동일성 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zôon politikon) 및 로마의 시민과 같이 국지적이며 배제적인 시민성만이 아니라, 또한 스토아적인 세계시민(cosmopolis)과 같은 도덕적 시민성 및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백성(civitas dei)과 같은 초월적 시민성과 대조적으로) “무한한” 실천적 시민성이라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시민성의 정의를 정초한다.
    하지만 평등한 자유 명제는 안정적인 공리, 자기규제적인 법적 질서의 근본규범(Grundnorm)을 구성하지는 못한다. 일단 언표되면(역사 속에서 물질적으로 각인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주 10: 가장 명시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반복들 중 하나는 정확히 말하면 1864년 제1 인터내셔널의 창립연설이다. “노동자들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의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평등한 자유 명제로부터 비롯하는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정확한 표현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 이후 무시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모순들이나 갈등 없이 제도들 속에 실현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들은 근대 정치의 제도들 속에 존재하는 평등과 자유의 두 가지 거대한 매개들, 곧 소유와 공동체(ownership and membership)에 불가분하게 관련되어 왔다. 왜냐하면 이것들 각자는 공개적인 갈등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곧 계급 공동체에 대립하는 민족 공동체(전자의 이상적 형태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유일하게 현실적인 국제주의였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인데,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러한 반정립에 대한 고전적 정식을 제시했다)와, 자본주의적 (또는 독점적) 소유에 대립하는 개인적 노동 위에 기초한 소유(이들 각자는 상대편을 “수탈”이라고 부른다)가 바로 그러한 갈등들이다. 계급투쟁의 담론(그것이 부르주아적이든 프롤레타리아적이든)은 지난 2세기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두 개의 반정립을 교차시켜 왔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특히 흥미있는 것은 공동체가 사고되어 왔던 대립형태들 사이의 대결 및 따라서 근대 시기의 집합적 주체 내지는 역사의 주체의 모습이다[주 11: “역사의 주체”라는 표현은 19세기의 위대한 역사철학들이 활동 내지는 실천이라는 주제와, 집단적 의식 내지는 정신이라는 주제를 결합하고 있는 한에서―그것이 칸트의 인류이든, 피히테의 민족 또는 헤겔의 인민이나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이든 간에―그것들 사이의 전체적인 비교를 직접 요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 저자들 중 누구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표현을 발명하고 고전들에 대한 해석을 포함한 모든 현대철학들에 이 표현을 강제한 사람은 『역사와 계급의식』(1923)의 루카치다.]. 루소를 우회한 다음 다시 피히테를 우회해 보면 문제가 좀더 명료해질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발하는 너무 성급한 독해들이 주장하는 것(이는 특히 프랑스에서 그런데,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기에는 견고한 민족주의적 편견들이 계속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과는 달리, 1808년의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서의 피히테는 문화주의나 역사주의, 게다가 인종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독일민족의 선택”이라는 그의 표현은 종교개혁과 자코뱅주의의 이중적 유산을 결합하는 것으로 심원하게 보편주의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능동성과 주체성이라는 변증법적 개념들 위에 기초하고 있는 집단적 동일성들의 형성 및 이상화에서 도덕적 보편주의(또는 상징적 보편주의. 이에 대해서는 Milner 1983을 참조)의 범주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또는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양자택일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는 사람 모두에게 특권적인 반성의 요소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피히테의 민족에 대해 타당한 것은 거의 동일한 용어들 속에서, “사물들의 실존상태의 해소”를 통해 현재의 영역 자체에서 미래를 창출해 내는 힘으로서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이것은 그 해소의 의식적 표현에 불과하다―에게도 타당하다.

    5. 다시 우리는 여기서 스피노자를 향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의 철학은 정치, 따라서 철학에서 보편주의의 양면적 기능들을 분명하게 해명해 준다. (니체와의 몇몇 성급한 비교들이 제시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분명히 반보편주의자로 간주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인간주의와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고전적 형태의 보편주의의 옹호자도 아니다. 관개체성에 대한, 또는 개체들(여기에는 인간 개인도 포함된다) 사이의 현실적 관계들 전체의 무한한 연관망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그의 사상이 궁극적으로 준거하고 있는 개념은 보편성 개념이 아니라 독특성 개념이다. 일체의 목적론과 달리 그에게 보편자는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독특한 본질들 사이의 갈등이나 구성적인 마주침들(합치들, convenientiae)에 대한 이성적이거나 정념적인, 얼마간 부적합한 표상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보편성에 대한 “형식적”이거나 “실질적”인, 그리고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관점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쉬운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라는 혁명적 관념(『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인터내셔널 창립연설』)과 민족공동체에 대한 그 역시 보편주의적인 표상(『독일 민족에게 고함』) 사이의 모순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마르크스의 범주의 영역 내부에서 전개되는 모순도 그러한데, 이는 보편성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과 명백하게 관련된다.
    스피노자 철학의 이러한 비판적 기능은 경제와 정치, 정보의 “세계화”(Globalization)라고 불리는 것 때문에 보편성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고 있는 오늘날 분명히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화는 계급이나 민족의 (또는 종족적이고 종교적인 공동체의) 투쟁들의 조화나 화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불행하게도―그러한 투쟁들로부터 비롯된 적대들의 세계 전체로의 확장이라는 의미의 세계화이다. 그것은 혁명 개념에 대한 우리의 용법에 관련하여 결정적인 것이다. 기성권력의 “전도”라는 은유는 알다시피 혁명 개념의 고대적인 용법 이래로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근대적인 의미는 무엇보다도 억압에서 저항으로, 감수된 불의에서 봉기로, 그리고 봉기에서 집단적 해방으로 인도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의미다. 이는 분명히 목적론적 도식으로, 만약 이것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목표들”의 실현을 통한 “역사의 종말”의 이론, 곧 새로운 종말론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본 것처럼 연속적인 단계들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는 역사의 주체에 대한 표상을 함축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교육과정(Lernprozess) 또는 도야과정(Bildungsprozess)은 주체 자신에 의한 주체의 구성이자 해방이다. 이는 근대의 위대한 “관념론”(루소 이후, 칸트에서 피히테와 헤겔, 마르크스 자신에까지 이르는), 곧 우주와 그 완전한 질서에 대한 표상의 관념론인 형상들이나 본질들, 이데아들의 관념론이 아니라, 혁명의 정세와 이상에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관념론인 역사적 관념론의 핵심이다. 피히테의 원민족(Urvolk)은 주체의 활동성(Tätigkeit)이라는 이러한 혁명적 이상의 순수한 표현이며, 이것은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의 위험스러운 마지막 정식에 이르기까지 다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상이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6. 그렇지만 여기서 철학 텍스트들을 관통하는 대립축들 사이의 복잡성과 긴장을 해소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세계의 변혁”의 형태이자 행위자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는 확실히 자신의 고유한 해방과정 속에서 그 자신을 구성하는 역사의 주체의 한 모습이다. 피히테의 원민족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부여받은(스피노자라면 “선택”(élection)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도덕적 공동체를 명명하는 “경험적-초월론적”(empirico-transcendantal)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2세기 동안 민족주의(또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는 호명하면서 동시에 호명되는 상징적 동일성들로서, 계속해서 대칭적으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내가 앞에서 정치의 타율성 이론에 따라 그 지평이 구성된다고 말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 속에는 또한 아주 명시적으로 주체의 표상에 대한 해체의 요소가 존재하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에 작용한다.
    여기서 이러한 해체가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생산과정(사상사가들은 자주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사이의 유비를 탐구해 왔다[주 12: 요벨이 잘 보여준 것처럼(1989/1991), 이러한 유비는 포이어바흐, 좀더 일반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전통의 매개에 따라 이루어진다])의 조직형태로서 착취에 대한 분석과, 적대나 “계급의식”(마르크스 자신은 결코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의 단순한 발전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계급투쟁들 및 그에 고유한 정치적 복합성에 대한 구체적 묘사(tableau)로부터 분리 불가능하게 도출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그리고 이러한 독창성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불러일으킨 대대적인 부인(否認)에 직면하여 이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곧 여러 가지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의 주체라기보다는 역사 속의 비주체인 것이다[주 13: 이는 특히 마르크스가 그의 성숙기 작업들에서 “대중”과 “계급” 사이의 관계들의 “변증법”을, 완전히 이론화한 것은 아니지만, 실천적으로 취급했던 방식으로부터 비롯한다(Balibar 1985/1994 참조). 이는 스피노자와의 또다른 결정적인 대면지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봉기와 해방이라는 통념들과 양립 가능한 것인가?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혁명의 원리들이 사실과 권리의 독특한 응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진리의 요소와 양립 가능한가? 하나의 참된 명제가 주어진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생성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명제를 다른 모든 인간들에 준거시키는 인류의 한 부분에 의해, 그리고 그 부분을 위해―하지만 진리를 인지(reconnaît)하며 이 진리에서 자기자신을 [재]인지하는(s'y reconnaît) 그 집단이 거울에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 비추지 않으면서―이 명제가 언표된다는 것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간단한 게 아니며, 이는 계속해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토론에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스피노자적인 용어들로 하면 관념들과 정념들, 집단적 활동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스피노자주의의 한 요소가 절대자를 다룬 다른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피히테에게도 자주 전가되어 왔음을 알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피히테의 민족을, 인민의 자율적 구성을 필연적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상상적 공동체의 완전한 예시(민족 자체(Das Volk)는 하나의 민족(ein Volk)이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로 분석하는 것이 좀더 적합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목적론적 표현들 및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인 역사적 사명에 대한 상상적 도표에 입각하여 마르크스를 위의 경우와 유비적인 스피노자적 해체에 종속시키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Albiac 1994 참조).
    하지만 우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만약 이러한 비판이 스피노자와 마르크스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문제나 대상―직접적인 원천이나 영향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제쳐두고서―곧 “대중들” 및 역사에서 그들의 결정적 역할이라는 문제를 고려한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비교는 스피노자가 마르크스에게는 지각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그리고 따라서 이것은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모호하고 죽은 문자로 남아있는 마르크스 자신의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관념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의 맞짝(contrepartie)은 마르크스가 스피노자에게는 지각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그리고 따라서 이것은 대부분의 스피노자주의자들에게는―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은폐된 채 남아있는 스피노자 그 자신의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정서적 모방으로부터 시작되는) 대중의 동일화들(identifications)에 대한 이론 속에 심리학적 분석 또는 “상호개인적인 정신현상”에 대한 분석의 한 요소가 존재하며, 우리는 이것을 단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로서만이 아니라 유물론적 역사관에 본래적인 아포리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분명히 정치에 내재적인 경제적 조건 및 더 나아가 그것에 내재적인 적대들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의 “생산”에서 개인적 역량들의 합성을 보는 공리주의적(이고 낙관주의적인) 관점 때문에 본질적으로 스피노자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신의 역사적 분석에서 상상적인 것의 필연적인 장소(이데올로기 또는 물신숭배라는 이름 아래)를 표시해둘 만큼 충분히 변증법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피노자 역시 상상의 정치적 효과들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필요한 경우마다 용어의 넓은 의미에서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들의 필연성을 언급해둘 만큼 충분히 변증법적이었다. 우리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타율성이라는 반정립을 넘어서, 마르크스의 질문들과 스피노자의 질문들의 상호보완성을 정치에 대한 현재의 사고를 위한 특권적 지평으로―적어도 하나의 연구방향으로서―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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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월 2004-03-2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논문집으로 나오는군요. 마슈레 책의 참고문헌을 보니 이제이북스에서 출간예정이라길래 기다리는 중입니다만 "스피노자와 정치"만 출판되는 것이 아니라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논문들이 함께 나오는듯 하니 더욱 기다려집니다. ^^

balmas 2004-03-2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리바르가 스피노자에 관해 쓴 논문들이 꽤 많습니다. 10여편 가량 되는데, 특히 이번에 수록될 <대중의 공포>나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 같은 논문들은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준 중요한 업적들입니다(책에 대한 광고 같아서 뭐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다른 논문들도 함께 묶어보고 싶은데, 이 정도로 낼 수 있는 것만도 지금으로서는 감지덕지해야 할 형편입니다. 앞으로 스피노자나 발리바르의 작업에 관심이 좀더 높아지면 기회가 생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