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권센터에서 아래와 같이 시민강좌를 개최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미리 공지했어야 하는데 좀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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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권센터 시민강좌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일시: 6.22(목) ~ 11.16(목) 저녁 7시, 총 10회
장소: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1동 2층 큰이야기방
수강료: 무료

오늘도 우리는 뉴스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죽음과 생명, 국경과 국경 사이의 경계에 놓인 난민들의 삶을 보고-듣지만, 그 앞에서 우리의 삶은 좀처럼 ‘멈춤’을 모르는 듯합니다. 이는 흔히 생각하듯 난민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전 세계적 위기로 재현된 난민이라는 거대한 광경을 마주한 개인이 필연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무력함’과 그것의 반복으로 생성된 ‘무기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서울시가 지원하고 난민인권센터가 주최하는 이 강좌는 '동시대적인 것'으로서의 ‘난민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무기력’ 즈음에 있는 모든 동료시민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무관심이 대상과의 만남과 접촉의 부재에서 비롯된 감각이라면 무기력은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와 이를 함께 할 동료의 부재에서 얻어지는 감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강좌는 ‘난민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을 통해 난민인권의 이해와 인식을 넓히고 이와 함께 ‘난민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료시민으로서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연대의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90년대 초-중반을 시작으로, ‘난민법’을 제정한 2013년,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에 보호를 ‘희망’하는 난민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난민의 유입과 인정-정착과정에서의 문제들이 유럽과 아프리카 주변국들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사회에도 당면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전 지구적 추세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난민이 한국사회의 ‘성원’이 될 것이며 이는 정부와 동료시민들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난민인권에 대한 인식, 서로-인정의 문화, 민주주의적 난민제도 등을 준비해 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번 강좌가 이에 대한 더 나은 고민과 답을 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강의내용>

1강. 6.22, 난민과 국제정치, 최원근(하와이대)
"왜 난민은 계속 발생하는가? 다른 국가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난민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추세를 알아본다."

2강. 7.6, 국제협약으로 보는 난민의 정의, 김세진(공익법센터 어필)
"누가 난민인가? 국제협약을 통해 난민의 정의를 알아본다."

3강. 7.20, 한나아렌트로 읽는 난민문제, 김영옥(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한나 아렌트를 통해 난민문제를 살펴본다"

4강. 8.24, 에티엔 발리바르와 관-국민적 시민권의 정치,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발리바르를 통해 알아보는 국민국가의 한계와 난민의 관-국민적 시민권의 가능성"

5강. 9.7, 국내 난민인권의 현황과 실태, 김연주(난민인권센터)
"한국사회의 난민현황을 통해 난민들의 삶과 인권실태를 알아본다."

6강. 9.14, 난민과 젠더 : 국내 난민여성의 인권실태를 중심으로, 송효진(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내거주 난민 여성의 인권과 삶을 알아본다."

7강. 10.5, 난민아동 : 영화 '대답해줘'의 상영과 GV, 이야기손님 : 이슬(난민인권센터)
"영화 대답해줘 를 통해 난민아동의 삶을 알아본다."

8강. 10.19, 한국사회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 가야트리(난민당사자, 가명)
"난민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난민의 삶과 그들을 대하는 한국사회에서의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9강. 11.2, 난민인권운동의 현재, 난민인권활동가들(난민인권센터, M.A.P)
"난민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인권운동의 내용과 중요성 그리고 난민인권운동의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10강. 11.16,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기, 김현미(연세대)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는 그들을 동료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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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로 가서 살펴보세요. 


https://www.facebook.com/nancen.org/posts/1546182952067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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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가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됐습니다. 


그다지 상업성이 없는 책을, 그것도 아주 촉박한 시일 내에,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준 출판사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토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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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뉴스를 통해 많이 접하셨겠지만, 일요일 프랑스에서는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총선도 대선과 


마찬가지로 1차 투표와 2차 투표로 나뉘어 치러지는데, 총선 1차 투표 결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신당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가 32.6%의 득표율을 얻어서 1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선거구를 대상으로 치러지는 2차 투표에서 최대 445석


(총 의석수 577석의 77%)을 얻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결과입니다. 



이 총선 결과가 충격적인 이유는 


1) 창당된지 1년 남짓한 신당이 이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한 경우가 프랑스 역사에서 전무후무하다는 점입니다.


대통령 마크롱의 인기가 주요 요인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기존 제도권 정치 세력에 대한 극심한 불신과 염증이 


존재합니다. 특히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315석에서 10분의 1 수준으로 의석 수가 줄어드는 참패를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파인 공화당은 약 100여 석을 얻을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당보다는 낫다고 해도 


역시 참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따라서 이번 총선으로 인해 1958년 이후 프랑스 정치를 주도해온 우파와 좌파 양당 세력이 무너지게 


됐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정치권이 엄청난 태풍을 겪게 된 셈입니다. 앞으로 이 태풍이 어떻게 프랑스 정치만이 


아니라 유럽 정치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마크롱의 대선 승리와 그의 정당의 총선 압승은 포퓰리즘 정치가 현대 정치의 구조적 특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뚜렷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정치 제도, 정당 체제는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그 대안이 무엇인지는알 수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프랑스 대선과 총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 사회당보다 좀더 좌파적인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엥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11-20석 정도를 얻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좌파 정치에 위로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래는 국내 신문 보도와 프랑스 르몽드 기사 링크입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655386



http://www.lemonde.fr/elections-legislatives-2017/article/2017/06/11/resultats-des-legislatives-2017-les-candidats-de-la-republique-en-marche-en-tete-du-premier-tour-des-legislatives_5142364_50766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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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소명출판사의 "문화동역학" 총서에서 출간될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엮은이 서문을 올립니다. 


이 책을 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출간을 앞두고 있어서 기쁩니다. 


연구자들과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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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엮은이 서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도래할 한국민주주의기획연구팀(현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팀으로 재편되었다)이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에 관한 학술 연구를 기획한 것은 2013년 초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장집의 한국민주주의론’(2011), ‘탈근대, 탈민족, 탈식민: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2012), ‘한국 문학 속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2012)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개최한 이후 우리 기획연구팀은 네 번째 공동연구 주제로 어떤 것이 좋을지 모색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러 가지 주제들이 제안되었고, 엮은이는 포퓰리즘에 관해 한 번 논의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

 

포퓰리즘을 공동 연구의 주제로 제안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점 때문이다. 편자를 비롯한 연구팀의 성원들은 늘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미심쩍게 생각해왔다. 특히 이 용어가 국내에서 사용되는 방식에는 이상한 편향과 정치적 의도가 깊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실제로 국내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주로 경제신문들을 비롯한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가들이 무상급식 등과 같은 복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용어로 활용되어 왔다. 보수 언론과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대중영합주의를 뜻하는 표현이었으며, 그것도 보수 정권이 아니라 이른바 좌파 정권에게만 적용되는 용어였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좌파 정권[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학문적 기준에서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도 좌파 정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표현 자체가 지극히 선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보수 언론 및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의 편향적이고 선동적인 측면을 보여주기 위해 이 단어를 따옴표를 쳐서 사용한다.]에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공격 무기로 활용하던 주요 어휘들 중 하나가 바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였던 것이다.[국내 보수 언론의 편향된 포퓰리즘 용법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정재철, 한국 신문과 복지 포퓰리즘 담론, 󰡔언론과학연구󰡕 111, 2011 참조.] 최근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철폐를 정권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실제로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도하자, 경제신문들을 비롯한 보수언론에서 예의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꺼내들기 시작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닌 셈이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특히 유럽 등지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고찰해보면, 주로 프랑스의 민족전선이나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 같은 극우파 정당의 노선이나 정책, 활동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우파 내지 극우파 언론과 정치인들이 복지 정책이나 시민들의 정치 참여 확대 정책 등을 공격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같은 보수 정권이 포퓰리즘과 무관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명박은 이른바 ‘747 공약’, 다시 말하면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을 임기 내에 달성하겠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공약을 내걸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박정희 코스프레를 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당선된 이후 이 공약은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인(自認)함으로써 그것이 말 그대로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내건 공약(空約)에 불과했다는 것을 실토한 바 있다. 박근혜 정권의 경우도 ‘747 공약을 숫자만 바꾼 ‘474 공약’(잠재성장률 4%, 고용율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이나 당선되자마자 유야무야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 경제 민주화공약을 내걸었으며 국민행복정부를 정권의 명칭으로 사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명박 정권보다 포퓰리즘적인 성격이 더하면 더했지 덜했던 것은 아니다.[따라서 한 언론이 표현하듯이, 이는 포퓰리즘도 아니고 그냥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명박 '747', 박근혜 '474''대국민 사기극'”, 󰡔노컷뉴스󰡕, 2015728. http://www.nocutnews.co.kr/news/4450290] 이는 지난 10여 년 동안의 보수 정권들이 정권의 보수적 성격이나 기본적인 정책의 방향, 또는 공약의 실행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창한 속임수 공약을 남발하는 노골적인 포퓰리즘 정치 또는 오히려 대중영합주의 정치의 속성을 띠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본문에서 여러 필자들이 지적하듯이, 포퓰리즘과 대중영합주의는 정확히 구별되어야 할 용어다.]


더 나아가 포퓰리즘에 대한 국내 언론과 정치권의 이러한 용법은 지난 1990년대 이후 서구를 비롯한 외국 학계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포퓰리즘 연구의 방향과도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아주 이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화된 시기이다. 국경의 장벽이 약화되면서 자본의 이동과 사람들의 이주가 증대하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각 나라에서 국민주의(및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창궐하던 시기가 이 시기였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복지국가 정책들이 해체되거나 약화되었고, 국민국가가 갖는 정치의 자율성 역시 시장의 논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됨으로써 훨씬 더 위축되었다. 높은 실업률이 만성화되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증대함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국민주의와 인종주의가 세력을 얻으면서 문화적종교적 갈등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고통 받는 서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시장의 요구에 대해 더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정치 영역 자체에 수익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 원리가 도입되면서 정치의 공공성과 대표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권 내의 좌파와 우파 정당 대신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정치적 노선을 내걸면서 주로 국민주의적(인종주의적) 정서와 서민들의 피해 의식에 호소하는 정치 세력들이 등장했다. 프랑스의 민족전선이나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세력이 유권자들의 상당한 호응을 얻게 되면서 기성 정치 세력 역시 극우 정치 세력의 노선이나 정책을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정치 영역 자체가 시장의 논리(더 정확히 말하면 대기업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이상, 그리고 국민국가 단위에 기반을 둔 정치적 대표 체계가 와해되기 시작한 이상, 기성 정치 세력이든 새롭게 등장한 극우 정치 세력이든 서민들의 관점에 기반을 둔 정치를 수행하기는 어려웠으며, 이주자들과 하층 계급들을 겨냥한 치안 정치만 더욱 노골적으로 전개되었다. 사람들의 삶의 조건의 향상과 민주주의적 참여의 증대 없이 전개되는 이러한 치안 중심의 정치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조장하면서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만을 낳았다. 이것이 지난 30여 년 동안 유럽에서 포퓰리즘 정치가 확산된 배경이었다.


따라서 서구 학계의 포퓰리즘 연구에서는 극우파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 운동의 성립과 전개, 발전 과정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더하여 포퓰리즘의 확산을 낳게 한 또 다른 요인인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 제도와 원리의 문제점에 대한 규범적(또는 이론적) 연구도 함께 진행되었다. 예전에는 포퓰리즘이 주로 남아메리카의 페론주의나 서유럽의 극우 정당 같은 예외적이고 심지어 병리적인 정치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오늘날의 포퓰리즘 연구에서는 더 이상 포퓰리즘을 비정상적인 병리적 현상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 정치체의 표준적인 형태였던 국민국가 체제의 역사적 쇠퇴를 반영하는 현상이며, 규범적으로 보면 국민국가의 전개와 연동되어 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2016년에 일어난 거대한 사건, 곧 영국의 유럽공동체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나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성립은 포퓰리즘이 일시적인 일탈 현상이 아니라 현대 정치의 위기를 나타내는 매우 심층적이고 광범위한 현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흔히 자유주의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듯, ‘성숙한 민주주의’(이 문구의 숨은 뜻은 선진 자유주의정치 체제일 것이다)를 포퓰리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문제를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것(다시 말하면 포퓰리즘을 일시적인 병리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순환논리에 만족하는 것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기 내지 한계를 드러내주는 데 자유민주주의를 그 대안으로 호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팀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포퓰리즘에 관한 학술대회를 기획하게 되었으며, 그 최종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한 편을 제외하고는 지난 2013927~28일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열린 포퓰리즘과 민주주의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들이다. 오승은의 글은 동유럽 포퓰리즘에 대한 연구를 보완하기 위해 이후에 따로 청탁하여 수록되었다.


이 책은 유럽을 전공하는 역사학자들과 라틴 아메리카를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한국 정치의 전문가들과 철학 연구자가 참여함으로써 자연히 학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여 년 동안 정치학이나 사회학, 또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포퓰리즘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발표해왔고, 한국 정치의 포퓰리즘 현상에 대해서도 언론학자나 정치학자들의 비판적 논의들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 책과 같이 여러 전공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유럽과 남아메리카, 한국 등의 포퓰리즘을 포괄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국내 보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남용하는 포퓰리즘 개념의 왜곡된 용법을 바로 잡고, 현대 정치의 구조적이고 편재적인 현상으로서 포퓰리즘에 대한 좀 더 진지하고 성찰된 연구를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책 전체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보면,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엮은이는 포퓰리즘에 관한 현대 서구 학계의 이론적 논의(특히 마거릿 캐노번, 벤자민 아르디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를 소개하고 그것이 국내의 포퓰리즘 연구에 대하여 어떤 함의를 띠고 있는지 제시하고 있다.


2부의 주제는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이다. 사실 라틴 아메리카는 포퓰리즘의 대륙이라고 불릴 만큼 포퓰리즘 정치가 다양한 형태로 발생했고 오늘날에도 우파적인 포퓰리즘만이 아니라 좌파적인 형태의 포퓰리즘 정치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은중은 193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하게 전개되어온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검토하면서, 이 대륙에서 나타난 포퓰리즘의 탈식민주의적 특성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한편 박구병은 멕시코 살리나스 정권의 네오 포퓰리즘, 곧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 간의 특이한 결합을 사례 연구로 택하여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의 한 가지 특성을 해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살리나스 정권의 네오 포퓰리즘 전략은 포퓰리즘이 좌파와 우파 모두가 전유할 수 있는 정치적 전략이나 지배 유형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의 병리성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곧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3부에는 유럽의 포퓰리즘 현상을 고찰하는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우선 김용우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극우정당 민족전선을 중심으로 포퓰리즘과 파시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로 민족전선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한편으로 민족전선의 극우파적인 성격이 희석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조장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내적 구성 요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전선을 포퓰리즘 정당으로 간주하기보다는 프랑스 및 유럽의 파시즘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위치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장문석은 이탈리아의 포퓰리즘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 이탈리아는 20세기 전반기의 무솔리니와 20세기 말의 베를루스코니라는 이름이 대변하듯이 파시즘 및 포퓰리즘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나라이며, 그만큼 포퓰리즘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그는 이탈리아 포퓰리즘의 기원을 정상국가담론에서 찾는다. 곧 엘리트 정치가들의 권력 독점과 부패에서 벗어나 국민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 체계에 대한 열망이 포퓰리즘 정치의 기원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차 이탈리아라든가 북부동맹같은 이탈리아의 포스트모던 포퓰리즘은 단순히 권위주의적 우파 지도자에 의한 여론 조작이나 대중 지배 현상으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폭넓은 문화적 헤게모니 현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점이다.


오승은은 동유럽 포퓰리즘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동유럽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세르비아 같은 나라들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포퓰리즘 현상이다. 동유럽에서 포퓰리즘의 확산은 1990년대 이래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주도한 자유주의 세력과 개혁 공산주의 세력이 새로운 지배 엘리트로 권력을 장악하고, 대다수의 민중은 체제 이행의 패배자들로 전락하게 된 역사적 상황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동유럽 포퓰리즘은 체제 이행 과정에서 소외된 다수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개혁적이지만, 그들을 동원하기 위해 민족주의 정서에 의지한다는 점에서는 반동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글은 국내 연구로는 처음으로 동유럽의 포퓰리즘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4부는 한국의 포퓰리즘을 다루는 두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광일은 포퓰리즘에 관한 보수 언론과 정치권의 용법을 비판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 정치를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대중의 실질적인 정치적 참여를 지향하는 정치로 규정한다. 하지만 대중 자신이 능동적이거나 자치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지도할 수 있는 민중 지향적인 지도자가 필요한데, 한국 정치에서는 1971년 대선 당시 대중경제론과 평화통일을 공약으로 제시한 김대중이 이런 의미의 포퓰리즘 정치가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1997년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선을 변경함에 따라 김대중은 오히려 대중영합주의라는 의미에서 포퓰리즘 정치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는 노무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은 평범한 대중의 입장에 기초한 정치를 수행하려고 했지만, 그 역시 모순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이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광일에 따르면 수구 세력의 포퓰리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오히려 실질적인 대중 민주주의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영표는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불러내기 위한 민주주의의 급진화라는 관점에서 한국 정치의 포퓰리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민중민주주의적 포퓰리즘을 구별한 스튜어트 홀의 논의를 참조하여 그는 민주화의 결실로 성립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에게 민주주의내지 진보의 이름을 붙여준 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불만을 가져왔으며, 이것이 한국 정치의 포퓰리즘의 동력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진보 정치는 이러한 포퓰리즘적인 현상을 비난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여기에서 민중의 정치적 역량의 확장을 위한 대항 헤게모니 기획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을 진정한 민중주의로 전화하는 길이다.

 

***

 

한 마디 덧붙인다면, 이 책에서 포퓰리즘에 대한 어떤 통일된 입장이나 관점을 찾아서는 안 된다. 이는 이 책에 참여한 필자들의 전공 분야나 이론적 시각이 상이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포퓰리즘이라는 대상 자체가 시공간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재적인 잣대로 재단하거나 심지어 지극히 편향된 방식으로 용어를 남용하기보다는 현상들을 가능한 한 상세히 관찰하고 비교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책이 이러한 이해에 얼마간 기여한다면 엮은이나 필자들에게는 큰 보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 및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핵심 개념이라는 점에 대해 깊이 동의해주고 공동 연구에 참여해준 필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별도의 청탁을 흔쾌히 수락하고 공들인 원고를 보내준 오승은 선생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76월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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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공지했던 것처럼 엑스플렉스 출판사에서 1월부터 스피노자의 [에티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에티카] 본문을 한줄한줄 읽어가는 강의인데, 5월 17일에 1부 강의를 마치고 


이번 주 금요일인 6월 2일부터 [에티카] 2부 강의를 시작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엑스플렉스 출판사 주소에 가시면 자세한 강의 안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xplex.org:49408/products/xplex-lecture/spinoza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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