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 "책을 말하다"라는 꼭지가 있는데, 이 꼭지에 얼마 전에 나온 [을의 민주주의]를 


소개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주소로 가시면 제 소개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문제를 '문제화'라는 정치철학적 시도"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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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서문"을 올렸던 [을의 민주주의]가 출간되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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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1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전한 발마스님 저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balmas 2017-12-12 14:3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시네요.^^ 감사합니다.

_ 2017-12-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balmas 2017-12-12 14:31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

Rajanya 2017-12-1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참 많이 배웠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돼서 무척이나 기쁘네요! 사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이미 선생님 블로그와 학술지에서 거의 다 읽은 것들이지만 이렇게 책으로 다시 정독할 기회가 생겨서 기쁩니다. 늘 좋은 글과 사유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balmas 2017-12-12 17:24   좋아요 0 | URL
늘 제 글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날카롭고 유익한 비평도 기대하겠습니다.^^

봉천동길동무 2017-12-1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로 구매했습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저작 활동 하시길 기대합니다. LG트윈스 화이팅!ㅋㅋㅋ

balmas 2017-12-13 00:14   좋아요 0 | URL
ㅎㅎ 누군가 그랬네. 고마워.

dldiddn8429 2017-12-2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과 번역하신 책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책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을 언급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이름에 값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으로 축하 드려요!!

balmas 2017-12-20 14: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이름에 값하는 책을 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金새미 2018-01-2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제나 멋진 진 선생님, 정말 축하드려요!!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오래 기다렸을 듯 합니다. 하루 빨리 읽고 싶습니다! ^^

balmas 2018-01-26 14:45   좋아요 0 | URL
새미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있죠?^^ 한국에 오면 식사 한번 같이 해요. :)
 

문재인 정부가 11월 29일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지만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입자 보호대책에 관한 부분이 빠져 있는데, 


좀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세입자보호대책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주소로 가셔서 한번 선언문을 읽어보시고 


서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L5sBDZQdCzfv5wwgIQ2c0BBIQwuzjUTaZBzTyCelcZI9Jw/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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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있으면 출간될 제 책 [을의 민주주의]의 "서문"을 올립니다. 


그동안 번역서를 여러 권 내고, 편저서라든, 공저서도 여러 권 냈지만, 제 단독저서로는 이 책이 처음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을의 민주주의 1권] [을의 민주주의 2권] 이렇게 책을 낼까 생각했는데 


1권과 2권을 분리해서 각각 독자적인 구성과 제목을 가진 책으로 내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을의 민주주의]로 책을 내고, 


다른 원고들은 조금 더 작업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내년에 다른 제목으로 책을 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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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민주주의 서문

 

1

 

지난 해 가을과 겨울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의 열기에 힘입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18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5.18 광주 정신과 촛불혁명의 기반 위에서 탄생했다고 선언하면서 국민주권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이후 촉발된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로 인해 한반도가 살얼음판 같은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온 국민의 관심은 북한의 통치자와 미국의 통치자가 주고받는 살벌한 말의 전쟁에 쏠려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수동성의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우리 자신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상황,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자체가 타자에 의해 압도적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를 규정하는 이러한 외재적 조건은 내재적 조건과도 연결되어 있다. 지난 촛불혁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더욱 예측할 수 없고 불안한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수구세력과 언론이 촛불혁명 이후 급격하게 위축된 보수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이번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군사적 대결의 양상으로 몰고 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현재 당면한 위기 상황을 우리가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내부의 민주적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길임을 말해준다. 그것은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6개월 간 문재인 정부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사 실패와 정책의 혼란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는 이러한 다소 불안한 행보는 국민주권이라는 말이 지닌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민이라는 말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편으로는 독재 정권에 순응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수동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이라는 말과 더불어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의 주체로 호명되어 왔다. 독재자들이나 야당의 정치지도자들 모두가 국민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나 2016년의 촛불집회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가사로 한 노래 헌법 제1가 널리 사랑을 받은 것도 국민이라는 말이 갖는 저항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하지만 우리가 국민이라는 말이 지닌 이러한 저항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담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이라는 말에 담긴 동질성은 실제 국민을 구성하는 계급적, 성적, 지역적 차이와 대립을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및 사회화가 산출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10 : 90’, ‘1 : 99’ 같은 숫자로 표현되어 왔다. 이 숫자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점점 더 많은 부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줄어드는 몫을 둘러싸고 더욱 치열하고 가혹한 경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에서 늘 피해자 내지 패배자의 위치를 강요당하는 것은 성적경제적사회적 약소자들이다. 또한 국민이라는 말의 전체성에는 다양한 개인들 및 소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차별이 식별되고 정정될 여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말이 정상성의 기준이 될 때 그것에 미달하는 사람들은 배제와 차별, 무시의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이라는 말에서, 그리고 국민주권이라는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들을 정치적으로 재현하고 대표할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을의 민주주의를 이제 사고하고 실험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촛불혁명이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신기원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을의 민주주의에 관한 화두를 제기해보려고 한다. 내가 말하는 을의 민주주의가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해서는 3부에 수록된 글들에서 충분히 논의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왜 내가 을의 민주주의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제시해보겠다.


최근 몇 년 동안 갑과 을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담론으로 부상했다.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복지안정성지위 면에서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장애인 혐오, 다문화 혐오 등 각종 혐오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소수자, 약소자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의 피해자인 영세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 및 알바생들, 교수의 횡포에 시달리는 많은 대학원생들, 서울 중심의 나라에서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되는 지방 주민들 ...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문방송 및 SNS의 주요 주제가 되어 왔고, 여전히 그렇다. 최근 며칠 사이에도 의사 교수의 횡포에 시달린 수련의들의 이야기, 제빵 프랜차이즈의 제빵기사와 가맹점주 이야기,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이야기,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한 고등학생에 관한 이야기 등이 신문방송의 사회면 주요 기사로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각종 혐오와 폭력, 갑질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 을들이 사실 대다수 국민 또는 시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들 대부분은 을의 지위 때로는 을의 을의 지위에 놓여 있다. 때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을이기도 하고, 정규직이지만 여성으로서의 을이기도 하며, 또는 정규직이지만 여러 종류의 경쟁과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정규직으로서의 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일용직 노동에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이주노동자 내지 불법체류자로서 또는 성적 소수자로서 가중된 을의 지위에 놓여 있는 을 중의 을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을의 상황에 있는 이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협력하여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을로부터도 갑질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 을의 을이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갑질을 구조화하고 확산시키는 사회구조 및 권력 관계를 개혁하도록 공동으로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며, 사실 많은 지식인, 활동가, 시민들이, 때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에서, 또 여성 및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맞서, 장애인들의 인권과 지위 향상을 위해, 그리고 그밖에 다른 분야, 다른 싸움의 장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값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을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 무시와 배제가 지속되고 있다면, 그러한 노력에 더하여 과연 우리 사회의 어떤 구조와 제도, 문화와 관행들로 인해 이러한 갑질의 행태가 지속되는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혹시 이러한 갑과 을의 관계는 일시적인 현상이거나 특정한 분야 및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하거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 문화의 핵심과 연결된 근본적인 쟁점이 아닐까? 특히 노동자 해방을 부르짖는 민주 노조 내에서도 끊임없이 여성 차별과 성추행의 문제가 제기된다면, 진보적 지식인들마저도 자신들의 제자인 대학원생에 대해 일상적으로 갑질을 행한다면, 반정부 투쟁을 위해 여성 폭력이나 혐오 같이 사소한 문제는 덮어두도록 강요된다면, 더욱이 여성의 평등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 동성애에 대한 배제나 주변화를 조건으로 한다면, 우리는 해방을 말하고 진보를 주장하고 평등과 자유를 내세우지만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해방, 진보, 평등과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과 주변화, 침묵과 배제를 늘 전제한 것,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구속을 전제한 해방, 반동을 조건으로 한 진보, 누군가의 불평등과 억압을 수반하는 평등과 자유인 것은 아닌가?


따라서 나는 갑과 을의 문제를 특수한 사회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주변적인 문제로 이해하거나 갑질’, ‘을의 눈물같은 담론을 왜곡된 담론 내지 을질하는담론이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좀 더 보편적인 쟁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해방운동, 급진적인 변혁운동이 존재해왔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을로서의 을의 해방, 1부에서 다룬 시인 김남주의 표현을 빌리면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아직까지 한번도 맛보지 못한/자유에 이르지는 못했다. 보편적인 해방과 근본적인 사회 변혁,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때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전도되는 것이었거나 민족해방의 투사가 새로운 독재자로 역전되는 것이었으며, 모든 국민의 승리가 우리 편의 승리로 축소되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그러한 해방 투쟁들이 갑과 을의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거나 간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해방의 정치, 또는 진보 정치는 갑과 을의 관계를 자신의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할 텐데, 이러한 과제는 단순히 보편적인 정치를 넘어서는 보편적이면서 독특한,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정치(이 책 5장의 보론 개인-보편적이면서 독특한참조)만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새로운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정치에 대한 혁명적 개조를 요구하는 것이다.

 

3

 

1부에는 세 편의 글을 수록했다. 1980년대의 대표적인 민중시인 김남주, 우리 시대의 비극 세월호 참사, 그리고 포퓰리즘을 다룬 이 세 편의 글은 별로 연관성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내 생각에는 뚜렷한 주제 상의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중의 분할이라는 문제, ‘과소 주체로서의 민중, 이질적이고 갈등적인 을들의 집합으로서의 민중이라는 문제다.


이제는 진보 지식인들조차도 거의 읽지 않는 김남주의 시들을 읽어보면,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민중 해방에 대한 뜨거운 열망의 한 편에 민중에 대한 배신감, 진보 정치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진정한 해방의 정치에 대한 갈구만큼이나 깊은 그 정치의 불가능성에 대한 비극적 자각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민중은 근본적인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며, 진보 정치 역시 민중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통찰에서 나오는 자각이었다.


이 문제를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하려고 한 사람이 이제는 고인이 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였다. 라클라우는, 우리나라 보수 언론 및 정치가들이 복지 정책이나 진보 정책을 공격할 때 주로 대중영합주의라는 뜻으로 써먹는 용어, 따라서 정쟁의 수사법이 된 이 용어의 깊은 의미를 살려내서, 이를 진보 정치 전체의 중심적인 개념으로 이론화했다. 라클라우가 이해하는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정치가 민주주의이기 위해서는 전제하지 않을 수 없지만(인민주권 내지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한에서) 동시에 현재 민주주의의 지배적인 정치 제도를 구성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그것이 실제로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될 수 있는 한 억제하고 배제하려고 하는 정치의 주체, 곧 인민(people) 내지 민중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의 문제는 어떻게 민주주의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 내지 민중이 자유주의 정치 질서 내로 포함되면서 동시에 배제되는가 또는 내적으로 배제되는가 하는 문제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과소 주체로서의 인민 내지 민중이라는 문제, 따라서 을들의 분할과 갈등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지난 해 가을과 겨울의 촛불집회와 이른바 태극기집회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 또는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로 표출되고 이른바 미러링메갈리아또는 워마드등과 같은 기표들로 나타나는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의 또는 페미니즘 내부의 격렬한 젠더 전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을들의 분할과 갈등이라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민중은 진보 정치 및 민주주의 정치의 당연한 전제가 아니라 매우 문제적인 쟁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부에 수록된 글들은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여러 쟁점들을 고찰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주체화, 폭력 등이 2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들이다. 나는 주로 에티엔 발리바르의 개념들과 문제의식을 전유하여 이 쟁점들을 살펴보려고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이론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을 우회할 수 없다. 그의 이론만큼 체계적으로 구성되고 학문적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이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체계적으로 전개된 그의 이론은 지난 몇 년 간 그 자신의 행보를 통해 잘 드러났듯이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더욱이 진보적인민주주의 이론으로 간주되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이론이다. 나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민주주의 이론과의 비교를 통해 이 점을 부각시켜 보려고 했다. 내가 볼 때 발리바르 이론의 강점은 민주주의의 봉기적 성격(또는 해방의 운동으로서 민주주의)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구성적 성격(또는 절차와 제도로서 민주주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최장집의 이론은 민주주의의 봉기적 성격을 포기하거나 최소화한 가운데 절차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만 배타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대중들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또는 그의 제자들이 촛불혁명이 지닌 봉기적 성격을 최소화하면서 그것을 하루빨리 제도 정치(‘적폐 청산에 반대하는 통합의 정치’)의 문제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중들의 해방적 봉기로서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는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오늘날에도 여전히 좌파 정치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의 주요 관심거리다. 특히 대중들의 반역이나 해방운동을 봉쇄하는 것으로 보였던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균열을 드러내고 아랍의 민주화 운동,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의 운동 등을 통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세계 질서와 지역 통치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이 표출되고 있는 만큼 더욱 그렇다. 하지만 봉기 그 자체는 늘 일시적으로 드물게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이러한 해방의 열망의 표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어떻게 이러한 봉기를 절차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내부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이라는 관념은 여기에서 생겨난다.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세계시민적 시민성(cosmopolitan citizenship)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버마스 계열의 학자들이나 영미 권의 세계시민주의 이론가들이 주로 위로부터의 제도화 및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나는 한나 아렌트,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로 이어지는 이론적 흐름 속에서 이러한 위로부터의 세계시민주의와 구별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시민주의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내가 이를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이라는 좀 더 도발적인, 어떻게 보면 용어모순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려고 한 이유는, 이것이 담고 있는 아포리아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곧 이는 우리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개념이나 제도들로는 온전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며, 따라서 이를 제대로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개념들과 제도들(가령, 국민국가와 여기에 기반을 둔 시민권, 인권, 주권, 대표 등)의 근본적인 해체와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한편 봉기로서의 민주주의는 다중의 정치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그의 미국인 동료인 마이클 하트는 󰡔제국󰡕(2000), 󰡔다중󰡕(2004), 󰡔공통체󰡕(2008) 3부작을 통해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좌파 정치이론 중 하나를 구성했으며, 그 중심에는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 개념은 네그리가 자신의 유명한 저서 󰡔야생의 별종: 스피노자에서 권력과 역량에 관한 시론󰡕(1981)에서 재해석한 스피노자의 물티투도(multitudo)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해석은 여러 모로 혁신적인 것이었으며, 특히 이전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물티투도 개념이 스피노자 정치학 및 형이상학의 핵심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 철학 및 물티투도 개념에 대한 그의 해석은 다분히 편향적인 것이며, 이 개념에 기반을 둔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정치학 역시 여러 가지 난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계와 난점은, 이들과 더불어 다중 또는 대중들의 봉기적 역량이 민주주의 더 나아가 모든 정치의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믿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더욱 문제적인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정치에 대한 더 정확한 인식과 실천을 위해서도 그들의 관점에 담긴 문제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정치학의 중요한 한계 중 하나는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를 제대로 사고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푸코가 개념화한 주체화 개념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어휘 중 하나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충분히 인식되고 있지는 못하다. 주체화 개념이 중요한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이 개념은 예속화(assujettissement/subjection)가 지배 권력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지배 권력이 자신의 지배를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예속화의 메커니즘 내지 기술을 통해 예속적 주체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튀세르와 푸코가 각자 이데올로기 이론과 규율권력 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한 예속화 개념은 서양 근현대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주체가 자율적이고 주권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권력의 지배 장치의 효과라는 점을 드러내는 매우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개념이다.


둘째, 이렇게 되면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급진 정치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 일반의 토대를 이루는 해방의 주체(프롤레타리아든 민중이든 민족이든 아니면 여성이든 간에)라는 가정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근대 정치 질서 내에 존재하는 주체는 정의상 지배 권력의 근간을 이루는 예속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에 의해 생산된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와 푸코가 각자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 권력의 바깥은 없다고 말할 때 염두에 둔 것이 이것이다. 알튀세르와 푸코는 이른바 복지국가 내지 사회국가(또는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면 국민사회국가’)가 정착된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의 구조적제도적 조건을 이론화하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말해주듯 사회국가에서 개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국가와의 관계 바깥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는 계급 중립적이고 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국가이기 이전에 지배 계급 내지 지배 권력의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강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지배 계급 내지 권력의 이해관계를 강제하는 국가를 통해 탄생하고 살아가며 국가 안에서 사망하는 것이다.


셋째, 알튀세르와 푸코에 대해 기능주의 내지 허무주의라는 비판들이 제기되었지만, 내가 볼 때 이것이 해방의 정치 내지 급진 정치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봉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급진 정치의 현실적 조건들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려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곧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내지 규율권력(및 생명권력)의 작동이 오늘날 정치적사회적 관계의 보편적 조건이 되었다면, 이러한 조건 속에서 급진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따라서 예속화가 권력의 지배 메커니즘의 중심으로 이해되면, 급진 정치의 핵심 과제는 어떻게 이러한 예속적 주체화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이는 해방의 주체, 정치의 주체를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지 않고, 생산과 재생산 및 전화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로 삼고 있는 동시대의 철학자들이 바로 랑시에르와 발리바르이며, 나는 푸코와의 관계 속에서 이들의 작업을 비교, 고찰하고 싶었다. 이들 이외에도 주체화의 문제를 중시하는 여러 이론가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볼 때 랑시에르와 발리바르의 작업은 (급진) 민주주의의 새로운 개념화와 실천을 위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히 숙고해 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주체화를 그 가능성의 조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시에 그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문제와 함께(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의 관점에서) 사고하게 되면, 폭력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대의 폭력의 문제는 지배 계급 내지 권력의 폭력(또는 국가 폭력)과 이에 맞서는 피지배 집단의 대항 폭력의 관점만으로는 충분히 해명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많은 철학자이론가들이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터 벤야민이나 한나 아렌트 또는 자크 데리다의 저작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들과 비교할 때 폭력의 문제에 관한 발리바르의 독창성은 내가 볼 때 극단적 폭력과 시민다움의 관점에서 폭력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극단적 폭력은 단순히 폭력의 규모나 강도 또는 잔인성이 극심한 폭력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내가 글에서 상세하게 밝히려고 했지만, 이 개념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나 푸코의 권력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체화의 ()가능성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극한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극단적 폭력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에서 또는 대규모 종교 분쟁이나 민족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일회용 상품처럼 취급하는 곳에서, 초월적 주체(이것이 하느님이든 민족이든 아니면 나라 경제이든 국가 안보등이든 간에)의 이름으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나타나는 폭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폭력의 정치로서 시민다움의 정치는 국가의 문명화와 봉기의 문명화, 따라서 정치 그 자체의 문명화를 요구하는 정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시민다움이라고 번역한 프랑스어의 시빌리테(civilité)나 영어의 시빌리티(civility)는 일상적인 용법에서는 그 자체로는 정치에 포함되지 않은 일상적인 예절이나 공공 도덕을 가리키는데, 발리바르가 마키아벨리의 시민적 삶”(vivere civile)으로서 치빌리타(civilità) 개념을 염두에 두고 시민다움의 정치를 극단적 폭력에 맞서는 정치로 제시한 것은 폭력의 문제가 시민들의 삶을 문명화하는 문제, 곧 갑과 을의 관계를 문명화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시민들의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는 그 일상적 삶에 내재해 있는 극단적 폭력(‘갑질’)의 문제, 곧 시민적 주체성을 잠식하는 폭력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시민다움은 반폭력의 정치이자 윤리이며, 시민적 삶의 기술의 문제다.

 

4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이하 민연으로 약칭)의 인문한국(HK)연구단에 재직하는 기간(2008.2~2017.8) 동안 발표한 글들 중 일부를 선별한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된 기존에 발표한 다른 글들 그리고 현재 작업 중에 있는 몇몇 글은 '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또 다른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민연에 근무하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나의 지적 작업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 ‘한국학에 대해서 새로 눈을 뜨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민연 동료들의 작업과 토론 덕분이다. 만약 민연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준거에 대한 고민 없이 추상적인 보편성 위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편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한 철학들, 나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유럽 및 영미 철학자들의 문제가 사실은 철저하게 그들의 준거에 기반을 둔 그들의 철학이고 그들의 문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들 덕분이다. 따라서 나를 포함하여 한국에서 철학하는 이들이 일차적으로 숙고해야 하는 것은 그들과 나의 존재론적 괴리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그들을 우리의 맥락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변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우리의 기반 위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역시 그들 덕분이다.


더욱이 민연의 동료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질적이고 낯선 공부를 하는 나에게 자신들의 관점을 수용하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올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묻고 도움을 청하고 나의 작업에서 무언가 배우려고 했다. 따라서 융합 연구학제 연구니 하는 관료적인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서 내게 공동 연구가 어떤 것인지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역시 그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 책에 수록된 여러 글들은 여전히 너무 서구 중심적이고 유럽 중심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너무 추상적인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은 아마 앞으로 내가 이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지켜볼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무관심한 관심이 지난 10년 간 나의 공부를 이끌어온 중요한 동력 중 하나였음을, 깊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밝혀두고 싶다.


아울러 이 책은,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고 초보적이지만, 여기 수록된 여러 글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아끼지 않은 다른 동료들과 독자들, 그리고 여러 강의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수강생들과 지인들의 도움의 산물이다. 그들이 이 책에서 그들 각자가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


그린비 출판사의 여러분께는 다시 한 번 큰 빚을 지게 됐다. 여러 권의 번역서와 한 권의 편서를 내면서, 프리즘 총서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그린비 출판사의 친구들에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깊고도 넓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과의 우정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2017년 겨울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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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17-12-0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선생님의 단독저서를 읽게되는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balmas 2017-12-03 11:45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

마야 2017-12-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시중에 아직 안나왔어요~

balmas 2017-12-03 16:18   좋아요 0 | URL
예 책이 서점에 나오려면 1주일 정도 걸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

궁금 2017-12-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근데 8월에 서문 쓰셨던 포퓰리즘 책은 언제 나오나요. 요새 언론에서 자꾸 포퓰리즘이 거론돼서
궁금한데, 읽어보려하니 서점에는 안나와 있네요.^^

balmas 2017-12-05 13:38   좋아요 0 | URL
저도 왜 안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곧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기를 3달, 11월 초에 인쇄 전 최종 확인한다고 연락하고서 또 한 달 ... 그래서 그냥 나오면 나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권오성 2017-12-06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배움터 권오성입니다. 선배 덕분에 읽었던 구체성의 변증법, 휴머니즘의 부활 등을 잠 못 이루는 밤... 빠르게 잘 수 있는 수면제로 사용하다가 형의 블로그까지 왔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언제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balmas 2017-12-06 10:27   좋아요 0 | URL
ㅎㅎ 오성아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니? 여기까지 찾아와줘서 고맙다.^^
물리학도가 여전히 철학책 읽고 있다니 반갑구나. :)
언제 식사나 한번 하자.

모험가 2017-12-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유합니다! 책도 주문했습니다! ^^

balmas 2017-12-20 14:10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잘 지내시죠? 감사합니다.

도요새 2017-12-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여 년 전 선생님 수업 들었던 학생입니다. 선생님 단독저서라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서문은 지금껏 읽어온 선생님의 글들과 조금 다른 차원에서 또한 깊고 감동적이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balmas 2017-12-20 14:15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 비판적으로 잘 읽어주세요.^^
 

웹진 "인-무브"에서 연재 중인 "발리바르 공산주의를 사고하다"에 실린 발리바르 글 번역을 올립니다. 


레닌과 간디를 비교한 글인데, 그리 길지는 않지만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글이 수록된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기념강의}는 내년 중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인-무브에 수록된 발리바르의 다른 글들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로 가보세요.


http://en-movement.net/category/%EC%9D%B8-%EB%AC%B4%EB%B8%8C%20Translation/%EB%B0%9C%EB%A6%AC%EB%B0%94%EB%A5%B4%2C%20%EA%B3%B5%EC%82%B0%EC%A3%BC%EC%9D%98%EB%A5%BC%20%EC%82%AC%EA%B3%A0%ED%95%9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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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과 간디: 이뤄지지 못한 마주침?

[이 강연은 2004102일 파리 10대학(낭테르)에서 열린 제4차 국제 마르크스주의 대회(Congrès Marx International IV)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기념 강의󰡕(Violence et civilité)에 재수록되었다. 이 책은 2018년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완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

 

 

제가 오늘 다뤄보겠다고 제안한 주제(이 주제를 받아준 데 대해 콜로키엄 조직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는 아카데믹한 탐구의 외양을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긴 해도 이 주제가 어떻게 오늘 우리의 토론 대상인 몇 가지 주요한 역사적인식론적정치적 문제들과 교차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토론을 위한 기초로, 레닌과 간디는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혁명적 실천가-이론가였다는 점을 제기해보려 합니다. 이 두 사람의 유사점과 대조점은 지난 20세기에 혁명적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 역사적 세계를 변혁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는 데서 특권적인 접근 경로를 제시해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평행성은 또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상속하고 있는 정치의 개념을 특징짓기 위한 특권적인 접근 경로인데,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정치의 개념이 이미 전화되었고 어느 정도까지 여전히 전화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시초의 정식(이러한 공리(axiome)라는 뜻입니다)은 자명하지 않은 온갖 종류의 전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몇은 논의 도중에 다시 제기되어 토론의 대상이 될 것이며, 다른 것들은 여전히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 중 몇 가지만 간략하게 제시해보겠습니다.

 

1

 

제가 사용하는 단어들 각각은 레닌과 간디 모두에게 적용되겠지만, 곧바로 양분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대당들이 정확하게 상응 관계를 이루는 일종의 이원분할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 것입니다. 가령 폭력혁명 대 비폭력혁명, 사회주의 혁명 대 국민적 또는 국민주의적 혁명, 과학적 이데올로기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에 기초를 둔 혁명 대 종교적 이데올로기 내지 종교적 바탕의 윤리에 기초를 둔 혁명 등이 그런 예가 되겠죠. 이러한 대당들이 서로 일관되게 연역되지 않으며, 이것들은 오히려 근대 혁명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유형론을 드러낸다는 점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 대당들은 두 명의 인물로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지속되는 한 가지 논쟁을 형성할 만큼 거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이 개인들 또는 그들이 주역이었던 역사적 과정들, 월러스틴 식으로 말하면 다름 아니라 20세기의 두 거대한 반체계운동의 작용이 남긴 막대한 결과 때문인데, 이 두 운동 사이의 간극, 교차, 다소간 완결된 융합 내지 반대로 분기는,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 세기의 거대한 쟁점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이 운동들이 산출한 효과의 양가성 및 이 운동들을 객관적으로 괴롭힌 수많은 역설들 때문인데,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하는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국제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본주의가 범세계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서 시초의 변혁 양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의 변혁은 사회구성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기초를 둔 볼셰비키 혁명은 일국 사회주의로 귀결되었습니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일국 단위에서, 그 뒤에는 국가들의 블록 단위에서 생산을 조직하고 사회를 정상화하는(normalisation) 모델을 구성하려는 시도로 귀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스탈린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레닌의 진실이라는 점인데, 비록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가면서 혁명적 실천이 그 대립물로 전도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역사는 나쁜 방향에 의해전진한 셈입니다. ... 하지만 이 모델이 그 현실 및 전 세계의 대중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그려낸 그것에 관한 이상화된 표상에서 세력 관계 및 정치적 행위의 공간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적어도 그렇게 주장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논리는 전적으로 이 세상을 좌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목격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모델은 [그 잠재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과 그 변혁 사이의 긴장을 유지해왔으며,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부에서 레닌주의의 반혁명적인 퇴락으로 간주된 것을 정정하고 전도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레닌주의를 변형하거나 아니면 대안을 추구하도록 해준 셈입니다.


간디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어느 정도까지는 간디 자신이 지도했던 국민적 혁명의 경우는 분명 역사상 위대한 탈식민화(décolonisation)의 현상들 중 하나, 아마도 가장 위대한 현상으로 귀결되었으며, 이는 동시에 탈식민화의 모델들 중 하나를 구성했습니다(물론 유일한 모델은 아닙니다만). 하지만 알다시피 이 혁명 역시 그 창시자가 그렸던 전망과 본질적인 측면들에서 모순을 빚은 결과를 산출했습니다.[몇몇 논평자들은 종종 상반되는 전제들에 입각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관점을 옹호한 바 있다. 다음 저작들을 참조. Partha Chatterjee, Nationalist Thought and the Colonial World: A Derivative Discours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Minneapolis, 1986, ch. 4, ‘The Moment of Manoeuvre: Gandhi and the Critique of Civil Society’; 빠르타 짯떼르지,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 이광수 옮김, 그린비, 2013 4기동 국면: 간디와 시민사회 비판;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 and Ours: The Global Legacy of History Ideas,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2003. 또한 로버트 영,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옮김, 박종철 출판사, 2005 22인도 2: 간디의 대항근대성참조. 아시스 난디(Ashis Nandy)가 관용에 대한 간디의 강조는 그의 사상 및 행동의 종교적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적인 논평을 제기한 이후 오늘날 논쟁은 간디의 유산과 그의 계승자들(네루)세계시민적 세속주의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로 초점이 바뀌었다. 다음 저작을 참조. Nicholas Dirks, Castes of Mind: Colonialism and the Making of Modern In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2001, pp. 298301.] 모셰 루베네의 유명한 정식에 따르면, 소비에트 혁명의 국가주의적이고 치안주의적인 표류에 맞선 레닌의 마지막 투쟁이 존재했던 것처럼,[Moshe Lewin, Le Dernier Combat de Lénin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1967] 민족적-종교적 토대에 입각한 인도의 분할과 독립의 확립에 맞선 간디의 마지막 투쟁도 존재했으며, 이 투쟁에서 그는 사망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혁명의 방법’, 서양에서는 비폭력내지 비폭력 저항으로 알려진 이 방법은 󰡔힌두 스와라지󰡕가 기약했던 내용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국민주의 정치는 그 대립물, 곧 공동체주의적 폭력으로 진동하여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대륙 인도의 국가들 및 사회들을 뒤엎으려는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1908/9년에 영어와 구자라트어로 처음 출판된 󰡔힌두 스와라지󰡕인도의 자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간디의 독립선언문으로, 여러 가지 이본(異本)으로 그의 동지들의 서문과 함께 출간된 바 있다. 마하트마 K. 간디, 󰡔힌두 스와라지󰡕, 김선근 옮김, 지만지, 2011. 이 저작에 담겨 있는 여러 주제(사티아그라하(satyagraha)시민불복종수동적 저항으로 정의하는 것을 포함하여)는 다른 논문들 및 그의 자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라가반 이예르 엮음, 󰡔비폭력저항과 사회변혁: 마하뜨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 -, 허우성 옮김, 소명출판사, 2004; 󰡔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함석헌 옮김, 한길사 2002.] 하지만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지만) 간디의 정치 모델이것 역시 장소, 조건, 목표 및 담론에서 수많은 변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권의 복원이나 획득을 목표로 삼는, 그리고 피지배자들과 지배자들의 권력 사이의 대결을 추구하는 대중운동의 조직 형태로서 보편적 효력을 얻어왔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이는 단지 국민의 독립투쟁이나 소수 민족의 자치 투쟁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알다시피 또한 무엇보다도 시민권 운동 및 인종 평등 운동에 대해서도 타당합니다. 평화주의는 상이한 원천을 지니고 있고 그 자체로 비폭력의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명백히 이러한 유산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레닌과 간디라는 두 인물을 대질시켜 보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러한 대질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정치와 현대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시금석으로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왔으며, 명백히 독립 투쟁 기간 및 그 이후 인도에서 특히 결정적인 문제였고 아주 상세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온갖 종류의 대질 가운데 간디의 전략을 진지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관심을 끄는데, 이는 더욱이 그람시 자신의 놀라운 언급에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그람시는 레닌의 궁극적인 직관이 혁명 투쟁의 무게 중심을 국가권력 장악에서 시민사회 내에서 헤게모니의 구축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고 믿었으며, 이를 간디주의와 위대한 종교개혁 운동 사이의 (시대적 간격을 초월하는) 공통적인 요소와 연결시켰습니다.[Antonio Gramsci, Quaderni del carcere, Edizione critica dell’Istituto Gramsci a cura di Valentino Gerratana, Einaudi, 1975, Vol. I, pp. 1223; Vol. II, p. 748; Vol. III, p. 1775. 그람시는 간디에 대한 두 가지 독해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나는 비폭력을 진지전’(이것은 정치적인 것에 관한 레닌주의적인 개념을 그람시가 확장하고 재정식화한 것이다) 시나리오의 한 전략적 계기로 이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톨스토이주의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 유형의 수동혁명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단 이 후자의 독해는 로마제국 시대 원시 기독교 이래로 거대한 대중적인 종교개혁의 정치적 함의를 현재화하고 회고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클로드 마르코비치가 뛰어난 저작에서 정당하게 환기시켰던 것처럼,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대질이 단지 톨스토이와 로맹 롤랑의 제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 같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소묘되었는데, 그는 반제국주의 투쟁에 결집했던 모든 세력을 조사해보려고 했습니다.[Claude Markovits, Gandhi,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00, p. 42.]


오늘날 이러한 대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세계화의 맥락에서 증대한 사회적문화적 운동이 지닌 이론적이고 전략적인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며, 또한 20세기의 조건과 비교해볼 때 21세기의 정치일정한 전략들이나 조직 형식들에 특별히 얽매이지 않은 가운데 혁명의 이념이 유령적인방식으로 떠돌고 있는는 정치적 공간을 구조화했던 경계들이 말소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재분배되었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경계들, ‘서양동양사이의 문화적-정치적 경계이고, 지배적인 중심부세계와 피지배적인 주변부세계 사이의 경제적이고 지정학적인 경계이기도 하며, 또한 권력들의 위치 설정 및 집단 의식의 구체적 규정과 관련된 국가의 공적 영역과 사적인 사회적 영역 사이의 제도적 경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규정하는 것 또는 어쨌든 그것을 시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반화된 폭력 및 구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폭력 형태들 사이의 순환의 환경 내지 경제 속에 정치가 불가역적인 방식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히 지속적인 방식으로 잠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폭력은 명백히 예방적 반혁명이라는 또는 사회운동들을 무력화하고 억압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타락시키는 객관적 특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 정치 및 간단히 말하면 민주주의 정치의 이념 자체에 대해 특히 힘겨운 문제들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감안하면, 혁명적인 정치에 관한 퇴색한 이미지를 감안하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대면해야 할 대안적인 전략들의 준거 내지 징표로서 레닌과 간디의 이름이 거론되는 토론들이 이곳저곳에서 재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다음 인터뷰 모음집에서 이점에 관한 성찰을 읽을 수 있다. Moustapha Barghouti, Rester sur la montagne, Éditions la Fabrique, Paris, 2005. 전혀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에 관한 토론은 사파티스타 운동이 치아파스에서 창안한 전략과 관련해서도 적실성을 지니고 있다. Yvon Le Bot, Le Rêve Zapatiste, Éditions du Seuil, Paris, 1997 참조.]


또한 이러한 토론들이 때로는 비교의 항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내가 보기에 더 분석적인 작업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것이 이점입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동의 모델을 폭력비폭력같은 추상적인, 거의 형이상학적인 실재들로 귀착시키는 것이 그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정세에서 최근의 전개과정이 산출한 충격적인 효과로 인해) 점점 더 환원과 단순화의 이중적인 계열에 따라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비록 서로 과잉결정하고 서로 배가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는 해도 극히 이질적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들을 전쟁이라는 유일한 모습으로 환원하고, 전쟁 그 자체마저도 사회의 생산력들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자기파괴적이게 되거나 파국을 맞게 되는 최종 단계”, 곧 마침내 자본의 지배가 전도되고 (다시 한 번 더 ...) 자본의 역사적 궤적의 임박한 완수가 표시될 최종 단계로 환원하는 것입니다.[나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제국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서창현 외 옮김, 세종서적, 2008)의 주장을 (아마도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이 질문을 제기하고 토론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오히려 더 세부적인 검토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2

 

회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의 두 모델 사이의 대질에서 관건이 되는 쟁점을 다루기 전에, 우선 혁명 운동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두 모델을 결합하는 것을 형식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상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두 가지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이 19세기의 유산, 특히 서양 사회에서 국민 독립 및 사회 변혁 같은 혁명들의 유산이라는 점을 사후에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20세기의 극적인 역사를 통해 다듬어져서, 정치 이론이 양쪽 모두에서 정치 개념과 그 국가적 형식화(특히 법적이고 헌정적인 정의(définition)에 입각한) 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간극으로 지각해온 것으로 결정(結晶)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대중운동의 자리가 구성하는 것인데, 대중운동은 능동적국면에서 수동적국면으로 또는 그 역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유지하면서 공적인 무대에 다수자로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며, 따라서 제도적인 통제 및 규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특징은 레닌주의(이는 이점에서 노동자운동 및 사회적 민주주의의 계승된 전통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습니다)와 간디주의(이는 이점에서 인도 및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반식민주의 투쟁의 역사를 혁신했습니다)에 공통적입니다.[Eric Hobsbawm,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d, 19141991, Vintage, New York, 1996, pp. 199222.] 이 특징은 자생성과 조직의 결합에 관한 매우 다양한 정식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문제가 되는 사회의 문화적 전통과 대중의 존재조건, 대중동원의 이데올로기적 자원 및 대중운동과 맞서는 기성권력의 성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중운동은 결코 대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정 반대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대표를 가능하게 하거나 기존 정치 체제가 대표에 관해 제한적이거나 허구적인 정의를 부여하는 곳에서 대표를 개조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도 대중운동은 대표로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표가 아니라는 것, 또는 대표는 그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를 곧바로 레닌주의와 간디주의에 공통적인 두 번째 특징, ()법률주의(antinomisme)로 이끌어 가는데, 저는 이 용어를 전통적인 어원적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합법성에 대한, 따라서 합법성의 원천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개인들 및 사회 집단들에 대한 통제 도구를 구성하는 법 규범을 지니고 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대중운동의] 갈등적 관계,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관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부르주아 독재의 전도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것일 수 있는데, 레닌은 주권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정의들을 재활용하여 이러한 독재의 본질은 어떤 사회 계급이 사회 변혁에 관한 자신의 요구를 법을 넘어서설정하는 것이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는 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에게서, 더 멀리는 저항권개념에서 유래한 시민불복종개념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는데, 간디는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헌정 원리와 명백히 모순을 빚는 지점에 도달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이러한 원리를 개혁하도록 강제하는 모든 단계의 전술적 투쟁 일체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이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따라서 두 경우에서 모두 합법성은 위반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합법성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합법성은 자신이 초월한다고 주장하던 세력 관계의 장 내부로 끌려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네그리가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에서 유래한 헌정이론 전통에서 차용한 이론적 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성된 헌정권력은 구성하는 제헌권력, 다시 말해 민주주의 봉기적 요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네그리는 󰡔구성 권력󰡕(Le potere constuente)에서 레닌에 관해 길게 논의하지만, 간디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분명 두 개의 혁명은 서로 상반된 것으로 나타날 만큼 심오하게 상이한 차원에서, 그리고 상이한 양상 및 목표에 따라 전개됩니다. 사회운동 및 그것이 지닌 시민사회의 전복 능력에 관한 현재의 토론 중 상당 부분은 정확히 이러한 차이점으로 귀착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원칙의 유사성(analogie de principe)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차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유사성이야말로 국가적인 것을 넘어서는, 또는 갈등적인 방식으로 국가와 혁명(심지어, 국가, 혁명 그리고 반혁명까지)을 동시에 포함하는 모종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Begriff des politischen)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유사성은 우리를 곧바로 역사적 조건들에 관한 질문으로 이끌어 갑니다. 사실 합법성을 초과하는 이러한 봉기적인 또는 반법률적인 정치 개념 자체가 국가 제도의 일정한 역사적 형식들에 긴밀하게 의존해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심지어 개연성이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국가 제도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조건 및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지만 그럼에도 정치 관계들이 집중된 것으로서 또는 권력관계들이 구체화되고 통합되는 지점으로서 나타났던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역사들은 정당하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주의적 관점이 극히 개략적인 마르크스의 언급들을 체계화하면서 노동자 운동 및 민주주의 운동 전체와, 권위주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억압적인 국가 유형 사이의 대결에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왔습니다.[동구와 서구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발전 정도의 반비례 관계에 입각하여 두 지역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상이한 조건을 대립시키는 그람시의 테제도 레닌의 관점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 테제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헤겔-마르크스주의적 언어로 재정식화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Quaderni del carcere, op. cit., vol. II, p. 865 sq 참조.그리고 다른 역사가들은 비폭력 시민불복종전략은 대중운동이 법치국가(rule of law), 곧 단순히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특히 영미 헌정의 전통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그래온 것처럼개인적 자유를 확고하게 보장하는 전통을 지닌 국가와 대면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가능했다고 지적해왔습니다(간디 자신이 이러한 전략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있었습니다).[조지 오웰은 적절한 뉘앙스와 더불어 이 테제를 옹호한 바 있다.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가 없다면, 외부의 견해에 호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운동을 자극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의사를 적에게 알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러시아에는 간디 같은 인물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가 지금 이루어내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러시아의 인민대중은 같은 생각이 모두에게 동시에 떠오를 경우에만 시민불복종을 실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더라도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판단하건대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Reflections on Gandhi" [1949], in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 vol. 4, Hammondsworth, Penguin Books, 1945~50; 간디에 관한 소견,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458. 하지만 데이비드 하디먼은 해방운동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폭력적인’(또는 무장한) 운동만이 아니라 비폭력적인운동에 대해서도, 1960년대~1980년대에 제3세계에서 직면했던 딜레마와 연결시킨다면, ‘게바라의 모델만이 아니라 마르틴 루터 킹의 모델에 대해서도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에 대해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s and Ours, op. cit., p. 255 sq. 파르타 차테르지 역시 실질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다. Partha Chatterjee, The Politics of the Governed: Reflections on Popular Politics in Most of the World,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6.]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끌었던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도 같은 관찰이 제시되어 왔지만, 이것이 몇몇 지방의 권력에 맞선 미국연방정부의 단순한 조작이라는 생각만은 적어도 거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법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상이한 위반 양상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공산주의 선언󰡕의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정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인지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이 양상들은 각각의 경우마다 그것들이 힘을 겨루는 국가의 역사적 형태에 또는 지배권력의 형식화에 긴밀하게 의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지배라는 막스 베버의 개념을 사용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또한 (여기에서 제 생각을 길게 개진하지는 않지만) 막스 베버가 복종을 얻을 수 있는 개연성이라는, 따라서 또한 복종 생산의 양상들이라는 견지에서 정식화한 것과 같은 지배 형식에 대한 관점이 우리의 토론을 좀 더 진전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경제와 사회󰡕 11사회학의 기본 개념들5~7절에서 베버는 사회 질서정당성’(Geltung)을 이 질서의 구성적인 성향을 사람들이 따르게 될 (특히 법이나 규칙에 복종하게 될) 개연성(probabilité, chance)으로 정의한다. 완전히 실용적인 이러한 정의(이것은 규범적인 법이론이 아니라 사회학적 행위이론에 속한다)는 갈등 양상 및 그 조절에 대한 연구로 귀결된다. 이는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한편에서는 스피노자를, 다른 한편에서는 푸코를 생각하게 만든다. [옮긴이] 발리바르가 준거하는 막스 베버의 유고작 󰡔경제와 사회󰡕(Gesellschaft und Wirtschaft)는 마리아네 베버와 요하네스 빙켈만 등이 편집해서 출판된 저작이며(1922년 초판이 나왔고 19766판이 출판), 이 편집본(및 다른 막스 베버 저술 편집본)이 지닌 숱한 문제점들이 제기됨에 따라 1984년부터 새로운 막스 베버 전집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경제와 사회󰡕1999년 이후 새로운 편집본이 출간되었다. 새로운 󰡔경제와 사회󰡕 판본의 우리말 (부분)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공동체들󰡕, 박성환 옮김, 나남, 2009.]

 

3

 

제가 환기하고 싶은 두 가지 마지막 논점에 대해서는 더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가설적으로 두 가지 혁명적 모델 각자의 중심 문제또는 관건이 되는 문제(오늘날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언급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혁명에 관한 레닌주의적 이론화(이것 자체가 시간에 따라 진화했습니다)와 그의 지도 아래(집단적인 지도이기는 했지만, 레닌이 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방향을 규정했습니다) 볼셰비키 당이 실행했던 정치 전략, 마지막으로 역사적 상황(이는 진정한 시대의 전환을 낳게 됩니다) 간의 관계를 판단하려고 시도해본다면, 우리는 아주 고전적으로, 점점 더 서로 다른 것들을 포함하게 되었던 세 가지 계기로 난점들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사회에 대하여 자율적인계급독재로서의 국가권력(국가장치를 변혁하기 전에 우선 국가 권력을 획득해야 합니다)이라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혁명의 탁월한주체로서의 또는 사회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 이행하기 위한 특권적인 도구로서 계급 정당이라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레닌이 절망적인 상황을 지배 체계와 단절하기 위한 기회로 역전시킴으로써 역사 속에 빌을 디디게 된 정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1914년 전쟁의 계기로, 그는 이때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하라는 구호를 정식화했는데, 반역한 병사평의회의 봉기와 이것의 노동자농민의 사회운동과의 융합으로 인해 약화된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가 레닌으로 하여금 이러한 구호를 실행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계기는 [러시아혁명 이후 벌어진] 내전과 외국의 개입, 그리고 신경제정책에 입각한 소비에트 체계 개혁 실패에 이르는 조건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부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계기들 각각은 조직된 혁명적 폭력이라는 문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게발트(Gewalt)라는 독일어 한 단어에 내포된 두 측면, 우리가 권력폭력으로 분할하는 폭력의 제도적 측면과 반제도적 측면의 변증법에 대해 중심적인 위상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볼 때 두 번째 계기(권력/혁명 관계)야말로 우선적으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쟁점인 것 같습니다. 이 두 번째 계기에서 레닌과, 또한 동시에 사회주의 운동 전체가 직면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파괴적인 지배의 행사,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국가의 극단적 폭력 형식들이었습니다(많은 역사서들이 과소평가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것을 다시 만들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하라는 구호가 전체주의 비판가들이 특히 겨냥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이 구호를 러시아 혁명에 특유한 테러리즘의 모체로, 따라서 적어도 혁명과 반혁명(곧 유럽의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정치적 반대파들의 대량 학살과 이에 따른 민주주의의 파괴가 순환하게 된 가능성의 모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것이 독일 역사가 논쟁의 당사자들, 특히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의 기본 테제였으며, 프랑스에서는 몇 가지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지만 프랑수아 퓌레가 받아들인 테제다(에른스트 놀테, 󰡔유럽의 시민전쟁, 1917~1945󰡕, 유은상 옮김, 대학촌, 1996; François Furet, Le Passé d’une illusion. Essai sur l’idée communiste au xxe siècle, Paris: Robert Laffont/Calmann-Lévy, 1995). 이 테제에 대해 클로드 르포르가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Claude Lefort, La Complication, Paris: Fayard, 1999.하지만 한 단어(“내전”)가 지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힘에 근거한 이러한 독해는, 레닌주의 안에 함축되어 있는 가장 거대한 해방의 힘, 가장 거대한 역량과 가장 거대한 퇴락의 위험, 심지어 가장 거대한 착각이 서로 겹쳐지는 급소 지점을 제대로 식별해내지 못합니다. 레닌의 구호의 뒷부분만이 아니라 앞부분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실로 레닌이야말로 극단적 폭력이 전개되고 시민사회 민주주의 형식들이 파괴되는 상황을 조직된 대중의 집단적 행동과 창의를 수단으로 하여 내적으로 전화하는 문제를 제안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그리고 이점과 관련하여 레닌과는 반대로 간디의 혁명 전략은 간디 스스로 고백하듯이 근본적으로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둡시다). 달리 말하면 레닌은 폭력을 숙명의 영역에 기입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 입각하여 극단적 폭력에 대한 결정의 원인들 및 중심들에 작용을 미칠 수 있는 길을 탐색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어떠한 이념도 이 문제를 생략할 수 없으며, 레닌의 경우처럼 이 문제를 가장 불리한 상황 속에서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레닌은 권력 관계의 전화에 관한 가망 없는 관점에 갇혀 있었으며, 그것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다른 교전국들에서의 혁명 운동의 실패로 말미암아 내전의 국제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레닌은 포위된 요새인 국민적 공간 내에 갇혀 있었습니다. 둘째, 레닌은 또한 어떤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공간 내에 갇혀 있었는데, 이는 국가 아닌 국가의 역설을 무한히 변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국가를 강화하는 형식을 통해 국가를 소멸시키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이 정식은 알다시피 레닌이 두 차례의 러시아혁명(1917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에 집필했고 나중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지침이 되는 저작의 중심에 존재한다. L'État et la Révolution, in OEuvres complètes, Paris and Moscow, 1962, Vol. 25, pp. 429ff, 453ff.]


이제 간디의 경우로 돌아가, [레닌의 경우와] 대칭적인 모순 내지 이중구속의 대강을 살펴보겠습니다. 알다시피 서양어로 비폭력이라고 번역되는 것은 사실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통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간디가 고안해낸 사티아그라하이며, 두 번째는 힌두교 금욕주의 전통(‘자이나교’)에서 취하여 각색한 아힘사(ahimsa)입니다. 간디 사상에서 윤리적 또는 윤리종교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많은 논의에서 인도 내부의 해석자들을 포함한 상이한 해석자들은 양자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곧 종교적 의식으로 치장한정치적인 것의 우위로 해석하거나 정치적인 것의 정상적인 진행방식을 뒤흔들고 그것을 근대의 제도적 형태 이전으로 이끌어가는 영성 운동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토론은 두 용어의 의미를 둘러싸고 전개되며, 심지어 한 문화적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하기 위해 두 용어를 분리시키고 다르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둘러싸고 전개됩니다.[로버트 영, 󰡔트리컨티넨탈리즘󰡕, 인도 II : 간디의 대항근대성참조.그렇지만 이 용어들이 준거하는 문제들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서, 또한 그것들을 결합하는 일의 난점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간디 정치관의 중심을 이루는 [두 용어 사이의] ‘변증법에 대한 완전한 표상을 만들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변증법이 도덕적요소(양심에 속하지만 그 틀을 훨씬 넘어서는)를 간디의 정치관 속에 도입하게 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두 용어에 대한 간디 당대의, 그리고 원천에 근접한 정의를 보려면, Krishnala Shridharani, War without Violence: A Study of Gandhi’'s Method and its Accomplishments (1939), Garland Publishing, London, 1972((Gene Sharp의 새로운 서문Charles Walker후기포함)을 보라. 이 책은 고통을 감당하는 능력 및 이러한 능력이 고통의 원인에 맞서도록 촉발하는 힘의 동원을 강조한다(p. 283). 또한 Suzanne Lassier, Gandhi et la non-violence, Éditions du Seuil, Paris, 1970; Bhiku Parekh, Gandhi: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7 참조.]


다소간 문자 그대로 진실의 힘으로 번역되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는 용어는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의 시민권 투쟁을 조직한 최초의 경험에 입각하여 수동적 저항이라는 통념을 대신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후 간디는 이 용어를 각각의 시민불복종 캠페인의 명칭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동시에 폭동이나 테러 활동을 식민 지배에 맞선 인민대중의 지속적인 동원으로 대체하기 위한 합법적비합법적 장기 투쟁 형식의 일반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


금욕을 뜻하는 전통적인 용어로서 간디가 개인의 영역에서 상호개인적인 영역으로 확장한 아힘사(ahimsa)는 비록 간디 자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친화성이 있다고 믿긴 했지만, 서양의 영성적인 어휘로는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용어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적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거나 대항폭력을 억제하게 해주는 에너지의 집중을 가리킵니다. 만약 이러한 종교적요소를 정치적인 것의 중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변증법을 형성하는 상반된 운동들을 그것의 아주 구체적으로 규정된 사회정치적 측면들과 진정으로 결부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특히 비합법적인 실천을 통해 대중운동이 지배와 정면으로 대립했던 공격적인 비폭력국면들과, 본질적으로 운동의 내적인 민주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 건설적 비폭력국면들이 번갈아 전개된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후자의 국면에서 간디는 특히 자크 랑시에르가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고 부른 것, 곧 불가촉 천민들, 소수 민족들, 여성들의 원칙적인 평등(여기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이점은 넘어가겠습니다)이 인정되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클로드 마르코비츠는 불가촉 천민’(dalits) 운동의 지도자인 암베드카르와의 갈등의 첨예함을 서술하면서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대의를 인정받지 못하고 달리트들 자신에게는 그의 전략을 인정받지 못한 간디의 실패를 강조하고 있다. Claude Markovits, Gandhi, op. cit., p. 199 이하.] 하지만 우리는 또한 간디 자신이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관념이 형성하는 혁명 속의 혁명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이는 헤게모니, 민주적 동맹, ‘인민 내부의 모순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따라서 레닌주의 전통에게는 심원하게 낯선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사회세력들 간의 대결에서 사용된 수단들의 본성은 이 세력들의 정체성 자체에 반작용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운동의 목적 또는 그 의도 내지 이데올로기적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실제로 산출되는 결과에 반작용을 미치게 됩니다.[간디에 대한 해석에서 한나 아렌트의 영향을 받은 조앤 본두런트는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그가 갈등 해결의 변증법으로 제시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Joan V. Bondurant, Conquests of Violence. The Gandhian Philosophy of Conflic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71.] 이는 직접적으로는 간디의 유명한 대화주의’[이는 본질적으로 하디먼의 생각이다.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s and Ours, op. cit.(모든 정치 투쟁은 적수에 대한 개방의 계기를 포함해야 하며, 이것이 그의 관점의 전화를 조건 짓습니다) 및 대중 행동에서 자기 한정의 실천(이는 알다시피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것인데, 왜냐하면 최종 투쟁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이는 이해 불가능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 귀착되며, 이 후자의 경우는 특히, 사티아그라하가 갑자기 비폭력에서 공동체적이거나 테러리즘적인 폭력으로 전도될 때 사티아그라하가 중단되는 것을 통해 예시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감히 간디 모델에 내적인 아포리아에 관해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해볼까 합니다(아포리아가 부조리함이나 효력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레닌주의의 아포리아와 대칭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조직과 관련된 것이며, 더 심층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주체, 특히 무엇보다 혁명적 주체의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관개체적인 집합적 유대의 본성 및 구성 양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유대라고 불리는 이러한 유대는 더 정확히 말하면 카리스마적인유대로서, 이는 공동의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투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따라서 투쟁이 함축하는 희생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마치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지닌 것으로 가정되는 주체로서의 지도자의 인격에 의존합니다. 이는 대략 성자 같음 또는 선지자 같음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차이가 벌어져서 적대로 전환되는(암베드카드와의 관계에서 불가촉 천민들에 대한 정치적 대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경우처럼) 결정적인 계기들, 가령 국가가 양보를 거부하거나 공동체들 간의 갈등이 학살로 번져가는 경우에 간디는 자신의 소멸의 위협(심원하게 양가적인 영성적 힘의 궁극적 표현으로서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서만 겨우 폭력의 자기 한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이는 (힌두교에서는 전통적인) “출가자”(renonçant)의 모습에서 파생된 동일시 메커니즘의 문제다. Markovits, Gandhi, pp. 54-5 참조. 하지만 파르타 차테르지의 해석은 더 정치적이다. Partha Chatterjee, The Politics of the Governed, op. cit., pp. 11-12. 그는 주어진 정세에서 서로 구별되는 대중운동들 사이에 등가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간디의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매개자의 모습을 더 부각시킨다. 이는 라클라우가 포퓰리즘이라고 부른 것과 결국 아주 가까운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다. Ernesto Laclau, On Populist Reason, Verso, London, 2005 참조.이는 이러한 수단이 실패로 돌아간 또는 일종의 수동적 폭력에 의한 정치적 살해를 역으로 촉발한 마지막 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랬습니다. 대중의 힘과 그 저항력을 이루었던 도덕적, 주체적 유대는 또 다른 무대’, 곧 지배 및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대하여 전화의 방식으로, 곧 역사적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들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더욱이 모든 조건이 동등할 경우규정하는 투쟁에서는 심원하게 양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러한 유대가 사랑과 죽음이 서로에게 몰입하는 강렬하게 성적인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적어도 20세기의 위대한 혁명운동이 그 모순적인 결과와 더불어 동원하고 무대화했던 의미에서 대중 및 대중운동의 시대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그런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저는 소망이나 기획 또는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정치적 행위라는 관념은 여전히, 비록 명백히 계급적 조건 및 문화적 모델에 의해 심층적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역이나 기획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집합적 행위자의 구성이라는 관념과 긴밀하게 연결된 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어떤 정세, 특히 사회 전체의 차원에 걸쳐, 심지어 세계 전체의 차원에 걸쳐 참을 수 없는 것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적 변혁에 대한 요구를 다시 제기하는 극단적 정세의 긴급함과 결부된다고 해도 그것은 겨우 한 가지 가능성만을 제시해줄 뿐입니다. 철학에서 행위 개념이 지닌 전통적 의미, 곧 단지 어떤 대상(matiére)만 전화시킬 뿐 아니라 행위자 자신들까지 형성하는행위라는 의미에서의 행위하는 집합체 또는 집합적 실천은 조직 내지 제도 형태를 요구하며, 정서적 투여 또는 주체적인 동일시 과정을 요구합니다. 외관상으로는 아주 단순한 이 두 항[조직과 동일시 과정] 각자가 포함하고 있는 깊은 모순을 드러내줌으로써(하지만 사후에야), 레닌과 간디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역사들은 우리가 정치적인 것의 이러한 복잡성, 역사가 우리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우리를 그 속으로 투사하는 그 복잡성을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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