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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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금요일치 한겨레신문에 실릴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평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번째 번역되는 셈인데,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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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위하여>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였던 루이 알튀세르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자크 라캉의 <에크리>,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현대 프랑스 사상의 걸작이다. 이번이 3번째 번역인데, 지난 두 차례의 번역본보다 더 정확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알튀세르를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1965년 처음 간행되자마자 <마르크스를 위하여>는 알튀세르가 같은 해에 그의 제자들과 공저로 출간한 <자본을 읽자>와 더불어 프랑스 사상계를 뒤흔들고 곧바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학계, 그리고 저 멀리 라틴아메리카에도 급속히 번역소개되어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는다. 이는 특히 이 책의 세 가지 핵심 논점 덕분이었다.


첫째,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 사이에는 엄밀한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시된다. 당시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래 불어닥친 반()스탈린주의의 흐름 속에서 초기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청년 마르크스는 아직 자신의 이론적 핵심을 발견하지 못한 채 헤겔과 포이어바흐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인 생산양식, 이데올로기 같은 개념들을 발견하게 되며, <자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르크스는 마르크스 자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본>의 마르크스 역시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러한 이론적 미완성과 공백은 현실 정치의 실천적인 오류를 낳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가 되며, 무엇보다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독창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저 유명한 과잉결정 개념이 도출된다.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사이의 또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경제적 모순은 역사의 동력을 이루는 기본 모순이지만, 이러한 모순은 늘 상부구조에 의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과잉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을 위해서는, 레닌이나 마오가 했듯이 경제적 모순과 상부구조의 모순, 이데올로기의 모순이 집적된 약한 고리를 찾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셋째, 하지만 더 나아가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며,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에도 이데올로기는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나 기만, 조작된 표상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세계 자체, 상상적 관계 그 자체를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개개인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계급이나 국민, 민족 같은 집단의 정체성 역시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며, 우리는 그러한 정체성을 살아간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핵심 기능은 주체를 주체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지배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이면서 또한 역설적이게도 해방 투쟁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이 된다. 우리는 반공주의에 의해, 민족주의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경쟁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지만, 또한 주권자로서의 국민으로 호명되며, 갑질에 고통받고 분노하는 을들로서도, 여성 혐오에 맞서는 메갈리안으로서도 호명된다.


1980년 알튀세르가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유폐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는 영원히 망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같이 그의 사상의 세례를 받았던 제자들에 의해, 또한 미국 학계의 슬라보예 지젝이나 주디스 버틀러 등에 의해 알튀세르는 21세기 사상의 젖줄임이 입증되었다.


실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예속적 주체화 메커니즘에 맞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주체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알튀세르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상가는 보기드물다. ‘을의 민주주의를 위해 알튀세르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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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m21 2017-01-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질문이라 죄송합니다만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읽으려는데 2004년 김웅권님 판과 2010 김성도님 판 중 어떤 책을 봐야 할까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메일로도 글을 올렸으니 그리 답변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balmas 2017-01-14 17:12   좋아요 1 | URL
두 번역서 모두 번역에 문제가 많아서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읽으려면 불어 원서나 영역본 등을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geum21 2017-01-1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귀찮으시겠지만 메일 좀 봐주세요 ^^
댓글저장
 
 전출처 : balmas님의 "포스트 담론에 기대어 (신)자유주의 넘어서기"

안녕하세요? 질문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현전>이라는 번역어보다는 사실 <현존>이라는 번역어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용어들은 어쨌든

모두 하이데거 철학에서 유래한 것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알라딘 서재의 다음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blog.aladin.co.kr/balmas/158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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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2 2017-01-0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친철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글 읽고 좀 더 이해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근데 질문이 있는데요
하이데거의 전기 철학 ˝현존재˝와 후기 철학 ˝현존˝은 많이 다른 건가요?
얼핏 보기엔 현존재나 현존이나 모두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다가오거든요.
하이데거 철학을 흔히 ‘존재자에서 존재로의 전이‘라고 설명하던데
그럼 현존재=존재자, 현존=존재라는 뜻인가요?

그러면 자기-현전은 ˝존재가 현존하는 것을 현존하게 해주는 운동 내지 사건˝이 한 개인, 즉 자신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죄송합니다, 초보이다 보니 용어들이 죄다 비슷비슷하게만 느껴져 심히 헤깔립니다.

언젠가 보답할 날이 오기를 ^^

balmas 2017-01-04 02:08   좋아요 0 | URL
질문하시는 걸 보니, 일단 ‘현존재‘와 ‘현존자‘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글에 보면 ‘현존재‘는 독일어로 Dasein이라고 되어 있고, 현존은 Anwesen, 현존자는 Anwesende라고 되어 있죠? 그러니까 현존과 쌍을 이루는 개념은 현존재가 아니라 현존자입니다.

우리말로 현존재라고 번역되는 독일어 단어 다자인(Dasein)은 하이데거가 ‘인간‘(Mann)이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더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간단히 이해한다면 다자인을 인간이라고 이해해도 상관없습니다.

반면 현존과 현존자는, 인간과 관련된 개념들이 아니라, 하이데거가 존재라는 범주를 새롭게 사유하기 위해 제시한 자신의 고유한 개념들입니다. 초기 저작에서 하이데거는 존재(또는 동사적인 작용으로서의 ‘있음‘)과 존재자(곧 있는 것들)의 구별을 더 중요하게 사용하다가 후기 저작에서는 현존과 현존자라는 개념쌍에, 또는 사건으로서의 현존에 더 치중을 합니다.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 사이에는 당연히 차이가 많습니다. 우리말 번역이 각각 ‘현존재‘와 ‘현존‘(또는 현전)으로 번역되니까, 양자 사이에 유사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질문하시는 것을 보니까, 하이데거에 관한 개론서를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는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읽기], 세창문화사, 2013 을 권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1-0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자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읽기] 열심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ㅎㅎ 2017-01-07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아래 강의 못 들을거 같은데 교재만 구입이 가능한지요?

balmas 2017-01-07 14:59   좋아요 0 | URL
아쉽지만, 그건 제가 답변 드리기는 어려운 문제네요.
엑스 플렉스에 직접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2017-01-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엑스플레스 측에선 교재만 따로 파는것이 안된다고 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서 교재 1부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직장땜에 강의는 못 듣고 교재라도 구입하고 싶어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balmas 2017-01-09 16:06   좋아요 0 | URL
예, 이번 강의 교재는 제가 초역한 [에티카] 번역본인데요, 이것은 빠르면 올해 안에 출판할 계획입니다.
따라서 [에티카] 번역본을 읽고 싶으시다면, 아직 수정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은 이 초역본을 (강사의 안내 없이) 보시는 것보다, 제 생각에는, 나중에 출판된 판본을 읽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ㅎㅎ 2017-01-0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에티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ㅎㅎ 2017-01-0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초역본도 구하고 싶고 나중에 출간될 에티카도 구하고 싶은데 초역본 1부만 보내주실 수 없으신지요?
메일주소:soli0904@naver.com
댓글저장
 

오늘 언론에 기분좋은 사진과 함께 흐뭇한 소식이 보도되어 


이 사진을 소개하면서 올해 새해 인사로 대신할까 합니다. 


지난 해 보도된 것처럼, 올해부터 국회 '청소 근로자들'이 국회 정식직원으로 고용되면서 


오늘 국회 사무총장과 직원들이 상견례를 하는 모습입니다. 


http://v.media.daum.net/v/20170102115019381



어찌 보면 흔한 신년 시무식 행사 사진일 수도 있는데, 이 사진을 보면 뜻밖의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심각한 갑질에 시달려 왔고 또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지 


반증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의 말도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너무 늦게 국회직원으로 모셨다앞으로 잘 모시겠다."



새해는 아무쪼록 "을의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원년으로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 모두 새해 건강하시고 뜻깊은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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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7-01-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balmas 2017-01-02 14:42   좋아요 0 | URL
울보님, 오랜만이시네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따님과 더불어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
댓글저장
 

오랜만에 페이퍼를 씁니다. 


벌써 1년이 다 저물어가는데, 올 연말은 그래도 뜻깊은 사건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이 사건이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1월 6일부터 엑스플렉스에서 스피노자 [에티카]를 1년 동안 통독하는 강의를 하게 되어 


여기에 공지해둡니다. 작년 말에 약 2년 8개월 동안 진행된 [에티카] 강의를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끝낸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힘들었던 강의여서 다시 장기 강의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한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에티카]를 통독해봤으면 좋겠다는 분들의 요청으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강의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신촌에 있는 엑스플렉스 출판사에서 강의를 진행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안내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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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서양철학사에서도 매우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책입니다. 기하학적인 증명 방법에 따라 아주 엄밀하면서도 간명하게 논증을 전개하고 있어서 오랫동안 스피노자를 연구해온 스피노자 전문가들조차 통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운 책이 바로 스피노자의 『에티카』이지요. 따라서 『에티카』을 읽어보겠다고 시작했다가 1부, 또는 조금 더 나은 경우는 2부의 여러 정리들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절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에티카』 1부 또는 2부의 정리들은, 도대체 왜 스피노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증명되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러한 정리들과 증명들이 보여주는 논점이 무엇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끝없는 의문의 늪 속에 빠뜨리기 일쑤이고요.

이번 강의는 『에티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어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에티카』는 한 줄 한 줄 같이 읽어볼 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며, 실로 그처럼 읽을 때 이 책이 갖는 매력과 깊이, 또한 그 풍부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지속될 이번 『에티카』 강독에서는 1부에서 5부까지 각 부마다 8주 정도의 기간을 할애하여 독해할 계획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에티카』를 꽤 밀도 있게 읽어보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지 않을까요?

KakaoTalk_20160822_150504615 커리큘럼

‣ 이번 강의는『에티카』강독 총 5부 중 1부에 대한 독해입니다.

1강. 스피노자의 생애와 저작, 『에티카』에 대한 소개

2강. 1부 정의들과 공리들

3강. 1부 정리 1 ~ 정리 8

4강. 1부 정리 9 ~ 정리 11

5강. 1부 정리 12 ~ 정리 15

6강. 1부 정리 16 ~ 정리 23

7강. 1부 정리 24 ~ 정리 32

8강. 1부 정리 33 ~ 정리 36 + 1부 「부록」

9강. 1부 「부록」

※ 유의사항
1. 강사가 직접 번역한 스피노자의 『에티카』 번역본을 바탕으로 강의가 진행됩니다.
2. 『에티카』의 외국어 판본을 참고하기를 원하는 수강생들은 에드윈 컬리(Edwin Curley)가 번역한 영역본을 권해드립니다. 번역이 좋고 책값이 싸며, 국내 인터넷 서점(알라딘, 교보문고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Benedict Spinoza, Ethics, trans., Edwin Curley, Penguin Books, 2005).
3. 이번 강의에서는 미국의 스피노자 연구자인 스티븐 내들러의 『에티카를 읽는다』(그린비, 2013)가 주요 보조 교재로 사용됩니다. 스티븐 내들러의 이 책은 『에티카』를 독학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충실한 입문서로, 스피노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수강기간 : 2017.1.6 ~ 2017.3.10 (총 9회, 금요일 저녁 7:30~10:00)
※1월 27일은 설날 연휴로 휴강입니다.
수강료에 교재비(15,000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 5부용)


수강신청 및 기타 안내 사항은 아래 엑스플렉스 출판사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xplex.org:49408/products/xplex-lecture/spinoza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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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인사 2017-01-0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2016년에도 변함없이 많은 지적 자극 주셔서
뭐랄까, 스스로 좀 더 내적으로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에는 더욱 알찬 성과 이루시길 바랍니다.
책을 쓰시는 중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 책을 꼭 서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건강하시고, 더욱 학문적으로 알찬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balmas 2017-01-02 13: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새로운 통찰과 각성을 얻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격려의 말씀도 고맙습니다. 책이 마무리되는 대로 서재에도 알리겠습니다.

많은 조언과 질책도 부탁드립니다. :)

김병준 2017-01-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존경하는 진태원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저도 강의 꼭 듣고 싶은데, 시간 맞추기가 어렵네요. 흑.
일단 혼자서로도 읽겠습니다.^^;;

balmas 2017-01-09 16:07   좋아요 1 | URL
병준 씨,

답장이 늦었네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사업에서도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ㅎㅎ 예 혹시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찾아오세요. :)

ㅎㅎ 2017-01-07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의를 못들을거 같아서 교재만 구하고 싶은데 그게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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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배신
송제숙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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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올리는 김에 하나 더 올립니다.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린 촌평입니다. 이 글에 대한 논평이나 토론 역시 


[창작과비평]에 수록된 판본을 대상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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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2003년 일리노이주립대 박사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해서 2009년 듀크대출판부에서 영어로 출판한 저작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책의 주제는 1997IMF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사회가 겪게 된 변화를 ‘()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는 관점 아래 서술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복지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은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1997IMF외환위기가 한국사회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그것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 해고와 사회경제적 혼란을 초래한 국가적비극이었다.”(28) 둘째, 그런데 IMF위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199712월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이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을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김대중 대통령이 IMF외환위기를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IMF 및 국제금융세력의 압력과 조언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의해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김대중정권은 역사상 전례없이 이루어진 대량 해고를 합법화하고, ‘정보사회생산적 복지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을 더 유연하고 자본 친화적인 탈개발국가로 이행”(62)하게 하는 데 앞장섰다. 따라서 김대중정권을 통해 한국 최초의 보편적 복지국가”(6) 또는 대한민국에 최초로 성립된 복지국가”(256)가 등장했지만, 그것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민주화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정이 자본주의 시장의 확장과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정당화시킨 과정”(83)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착근시킨 주체에 민주화투쟁의 주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과거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사람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주의적 사회 통치의 대리인으로 변모했다는 분명한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32) 그리고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지식인들의 딜레마는 단지 한국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자유주의적 사회에 적용”(52)되는 것이다.


저자는 1998~2001년까지 약 29개월 동안 진행한 현장조사에 입각하여 이러한 과정을 분석한다. 그는 특히 노숙인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를 구체적인 소재로 삼아 자신의 기본적인 주장을 입증하려고 한다. 노숙인 문제와 관련하여 저자는 자활 가능한 일시적 노숙자와 장기적 노숙자를 선별하여 전자만을 집중 지원한 것을 문제 삼으며(2), 또한 여성 노숙자의 존재 자체를 집요하게 부인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남성중심적·가부장제적 복지정책의 편견을 지적한다(4). 또한 5장에서는 “‘자기 관리가 가능한주체 및 자기의 기업화가 가능한주체로서의 청년실업자들에 대한 사회적 통치를 분석한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부터 이 책의 평판을 소문으로 듣고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고 상당히 실망감을 느꼈다. 우선 김대중 정권의 개혁 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 책의 주장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오히려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주장이다.


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이 책의 이러한 거시적인 이론적 주장이 설득력있는 자료나 구체적 논거를 통해 충실히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분석은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을 입증하기에는 너무 단조롭고 단편적이다. 우선 노숙자와 청년 실업자에 대한 대책이 김대중정권의 복지정책을 대표할 수 있는 사례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노숙자를 자활 가능한 노숙자와 그렇지 못한 노숙자로 구별했다는 것, 그리고 여성 노숙자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했다는 것은 김대중정권의 복지정책이 상당히 미흡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저자의 분석 중에 좀더 설득력이 있고 구체성을 띠고 있는 것은 청년실업에 관한 논의이다. 저자는 서울시 청년실업대책위원회에 고용된 모니터링 팀 소속 젊은이들의 경험에 입각하여 신지식인닷컴기업’, ‘정보사회에 관한 담론이 청년실업 및 그 대책에 관한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내준다.


이 책에서 제일 실망스러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푸꼬(M. Foucault)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꽤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역설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저자 자신이 내가 한국 당시의 사회 통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채택한 주요 프레임의 하나인 푸꼬의 통치성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좀더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18)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이해하는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푸꼬 작업에 입각했다고 자처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과연 무엇인지 의아했다. 과연 푸꼬에 대한 직접적인 독서경험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저자의 푸꼬에 대한 인식이 매우 허술해보였다.


가령 저자는 푸꼬의 통치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이 책은 푸꼬의 이론에 의거해 ...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국가 행정제도로서의 정부의 개념과 달리, ‘통치라는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주체 형성을 통해 인구 전체를 관리하는 자유주의적 정치권력의 작동방식을 ‘government’ 또는 ‘governing’으로 명명한다.”(34) 이 인용문에서 놀라운 점은 통치에 관한 정의가 별로 푸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가령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주체 형성을 하지 않고 인구 관리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저자의 통치에 대한 정의는 너무 막연하고 허술하다. 푸꼬 자신은 통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절차분석고찰계측전술의 총체”([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163)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푸꼬적인 통치 개념에 입각하여 신자유주의를 분석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자유주의 민주화 세력이었던 김대중정권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집행자였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이든 신자유주의이든 자본주의 통치 양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푸꼬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맑스주의적인 관점이며, 더욱이 꽤나 고전적인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교조적인 맑스주의적 관점이다. 반면 푸꼬는 고전 자유주의가 자연적 소여로서의 교환에 근거를 둔 반면 신자유주의는 인위적 관계로서의 경쟁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결혼과 범죄, 아이 양육 등에 이르는 인간 활동의 모든 부문을 경제적 관계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모든 개인이 기업가, 자기 자신의 기업가”([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2, 319)로 간주되는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저자의 관점은 푸꼬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푸꼬와 상당히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점이다.


다음 대목을 보자. “신자유주의 국가가 잉여 인구를 비롯한 다양한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증진하는 권력기구로 작동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 정규직이 줄어들고 노동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진 후기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에서는 국가의 잉여 인구 관리 방식이 생명권력적 복리 증진의 형태를 더 확연히 띠게 된다.”(136)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국가는 잉여 인구를 비롯한 다양한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증진하는국가이며, 그것의 잉여 인구 관리 방식은 생명권력적 복지 증진의 형태를 더 확연히 띠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자연히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다. 다양한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증진하고 생명권력적 복지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라면, 그것에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엉뚱한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저자가 푸꼬의 생명권력 개념이나 통치 개념, 또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가령 생명권력=신자유주의적 통치 같은 도식적 규정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상 더 상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이 책은 훨씬 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국 독자들에게 얼마간 쓸모 있는 참고 도서가 될 수 있겠지만, 푸코에 대한 인식과 활용에 관해서도,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데도 한국의 연구자들은 저자에게 배울 만한 바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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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2016-12-25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리 크리스마스 , 선생님!

올 한 해도 좋은 글로 강연으로
제게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거리를 던져수셨네요.
지면으로나마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더욱 좋은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balmas 2016-12-28 19: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님.

댓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감사! 2016-12-2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철학 강의를 듣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이 강의 하신 스피노자 강의 화일을 오늘 복사해왔습니다.
선생님의 노고가 담긴 결과물인데 무료로 쓸려니 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나마 감사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almas 2016-12-28 19: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공부하시는 데 강의 파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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