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될 랑시에르의 [불화: 정치와 철학]의 역자후기입니다.
오늘날 자크 랑시에르(1940~)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그는 극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무명에 가까운 철학자였지만, 그는 그 사이에 두 차례 우리나라에 다녀갔고(2008년 겨울, 2014년 가을), 10여 권의 저작이 번역되면서,[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백승대 옮김, 인간사랑, 2008(이 책은 그후 심각한 오역으로 인해 출판사에 의해 절판되었으며,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허경 옮김, 인간사랑, 2011이라는 제목으로 개역ㆍ출간되었다); 감성의 분할, 오윤성 옮김, 도서출판 b, 2008;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08(2013년 수정 재판); 무지한 스승, 양창렬 옮김, 궁리, 2008;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08; 합의의 시대를 평론하다,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10; 문학의 정치, 유재홍 옮김, 인간사랑, 2011; 역사의 이름들, 안준범 옮김, 울력, 2011; 영화 우화, 유재홍 옮김, 인간사랑, 2012;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 곽동준 옮김, 인간사랑, 2014;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014. 한 가지 덧붙여두자면, 국역본의 번역의 질이 너무 들쑥날쑥하다는 점이다. 랑시에르 저작에 대한 본격적인 번역 비평은 언젠가는 (다시) 시도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제 서양 인문학에 웬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세계적인 석학’ 대접을 받게 되었다. 영미 학계에서 불화를 비롯한 그의 주요 저작들이 속속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랑시에르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 역시 2000년대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학계(또는 오히려 출판계)의 유럽 사상 수용은 외국 학계, 특히 영미 학계의 수용과 거의 동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국내 학계(또는 오히려 출판계)의 역량의 증대를 뜻하는지 아니면 학문적 (탈)식민성의 가중을 뜻하는지 또는 오히려 그것보다 좀더 복잡한 어떤 사태를 뜻하는지 한 번 따져볼 만하다.[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는 역자의 다음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진태원,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의 국내 수용에 대하여」, 황해문화 2014년 봄호;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황해문화 2014년 겨울호.]
여기 우리가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내놓는 이 책은 랑시에르 자신의 사상 여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뿐더러, 현대 정치철학 연구에서도 이제 우회할 수 없는 하나의 상징적 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저작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95년이었던 만큼 이제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은 여전히 그 현재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 자체가 자신의 고유한 현재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과거시제로 말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랑시에르의 사상 여정을 대략(이는 물론 잠정적이고 매우 도식적인 구별이다) 세 개의 시기로 나눠본다면, 첫 번째 시기는 1965년 루이 알튀세르와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로제 에스타블레와 함께 자본을 읽자의 공동 저술에 참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1974년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서인 알튀세르의 교훈을 출간하면서 막을 내린다고 할 수 있다.[자본을 읽자에서 알튀세르의 교훈에 이르기까지 랑시에르가 겪은 정치적ㆍ사상적 갈등에 대해서는, 랑시에르의 지적 생애 및 그의 사상에 관한 총괄적 대담집인 Jacques Rancière, La méthode de l'égalité, 2012의 1부를 참조.] 이 시기는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려는 알튀세르의 기획에 참여했다가 1968년 5월의 반역 운동을 기점으로 그와 거리를 두게 되고 결국 그의 기획이 또 하나의 ‘지배자/스승’의 기획이었음을 폭로하면서 종결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19세기 파리 노동자들이 남긴 문서들에 대한 독서와 분석의 결산물인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에서 시작해서 이 책 불화: 정치와 철학(1995)를 출간함으로써 정점에 도달하게 된 정치철학(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정치철학’이라는 말을 치안을 정당화하려는 이론적 기획으로 규정한 바 있으므로, 랑시에르 자신에 대해 정치철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매우 껄끄럽지만, 달리 다른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의 시기라고 규정해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랑시에르는 19세기 노동자들이 남긴 문서들을 통해 그들의 실제 삶과 사유를 접하면서 전통 마르크스주의의 심층적인 한계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는 서양 정치 및 정치학의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르케의 논리(곧 불평등의 논리)에 기반을 둔 것임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산출된 저작이 특히 무지한 스승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및 불화였다.
세 번째 시기는 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미학/감성학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둔 랑시에르의 미학은 문학과 영화, 미술 등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론에 맞서 미학/감성학의 정치성을 새롭게 형식화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약 50여 년의 시간 동안 랑시에르가 발표한 20여 권의 저작들 각각은 랑시에르 사상의 개성과 독특한 문제의식을 잘 구현하고 있는 책들이지만, 다른 책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불화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체계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랑시에르는 (가령 알랭 바디우와 같이) 자신의 고유한 사상적 전제들에 입각하여 조밀하고 빈틈없는 연역적인 체계를 구성해가는 철학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존의 사상들과 이론들, 문제설정들을 비판하고 그 한계를 깨뜨려나가는 도발적인 사상가이며, 아마 그의 유일한 사상적 공리라고 할 수 있는 평등 전제에 입각하여 정치학과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실험하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치에 관한 그의 사유를 매우 체계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불화는 매우 드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성이 이론적 연역보다는 역사적 재구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실로 이 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여 홉스, 루소를 거쳐 마르크스와 토크빌에 이르는, 그리고 인종주의/민족주의와 이주자 배척으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시대의 포스트 민주주의적인 현실에 이르는 정치와 철학, 민주주의와 치안의 불화의 역사에 대한 랑시에르의 재구성으로 읽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아테네의 데모스와 로마의 플레브스, 19세기 파리의 프롤레타리아와 여성, 20세기의 이주노동자들이 치안에 맞서 전개하는 민주주의적 주체화 운동의 역사로 읽을 수도 있다. 어쨌든 논리와 역사가 교차하는 이러한 체계적 재구성 작업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으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주체화 운동에 관해 여러 가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다른 중요한 철학책들과 마찬가지로 불화 역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특히 이 책은 정치와 철학(특히 ‘정치철학’) 사이의 장구한 불화의 과정을 원서로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적은 분량 속에 압축적으로 집약해놓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여러 대목에서 랑시에르의 논변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면서 역자는 부록 삼아 원고지로 약 350매 가량의 꽤 긴 “용어해설”을 덧붙였다. 이 용어 해설은 말 그대로 ‘불화’나 ‘잘못’, ‘몫 없는 이들의 몫’, ‘주체화’ 등과 같은 랑시에르의 주요 용어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이 책 전체에 대한 해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 사상에 친숙한 독자들은 본문을 직접 읽어도 무방하겠지만, 그의 사상이나 개념들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은 우선 용어 해설을 읽은 뒤에 본문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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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여럿 있다. 각각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에서 공부 중인 후배 정대훈과 김홍기는 바쁜 와중에도 번역 원고 전체를 읽고 아주 날카로운 비평과 건설적인 여러 제안을 해주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이 책의 공동 역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와 무지한 스승을 번역한 양창렬과 파리의 주재형도 번역과 관련하여 유익한 조언을 해주었다. 랑시에르의 역사의 이름들의 역자인 안준범 선배도 훌륭한 비평과 제안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불화에 관한 세미나에서 번역 및 책의 논의와 관련하여 값진 제안을 해준 현대정치철학연구회 회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번역 초고가 완성된 이후에 역자는 여러 대학 및 인문학 강의기관에서 이 책을 가지고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로부터 많은 논평과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200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대학원생들, 2010년 연세대 철학과 대학원생들, 2012년 대안연구공동체와 2013년/2014년 겨울 철학아카데미 수강생들, 또한 2014년 여름 시민행성 수강생들은 쉽지 않은 책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강의를 따라와 주었으며, 흥미로운 질의와 토론으로 역자가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고 책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분들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렇지만 이 책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을 오역은 모두 역자의 책임임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번역 초고가 전달된 뒤에도 오랫동안 전달되지 않는 “용어해설” 원고를 묵묵히 기다려준 도서출판 길의 박우정 대표와 이승우 실장 및 꼼꼼하게 교정을 맡아준 편집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015년 여름의 문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