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알려드린 대로 현실문화연구에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인문학자들의 세월호에 관한 공동 저서가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이 저서에 기고하신 선생님들 몇 분을 모시고 토론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 안내 포스터가


나와서 아래와 같이 공지해드립니다. 





아울러 한양대 에리카에서도 관련된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고, 


4월 28일 화요일에는 중앙대에서 천정환, 정원옥, 유가족 1인이 참석하시는 자유인문캠프 오픈토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인문학협동조합이나 현실문화 출판사에 연락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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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타도하라! 2015-05-0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팽목항에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공동 저서에 실린 발마스 님의 글을 읽고 한마디:

˝검은 구멍˝이라는 표현을 ˝검은 별˝로 바꿔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객관적인 원인˝이라 하셨는데 원인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찾으려는 사람>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3.1운동을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그 원인을 구성하면 그 당시에 고종을 욕했던 사람들(反봉건적인 성격),
일본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 출신 자본가들에 맞서 파업을 하거나 저항을 했던 노동자들은 그 원인에서 배제되거나 부차적인 것이 되거나 심지어는 그 원인을 방해하는 어떤 것이 되고 맙니다.

즉 발마스 님이 말하는 이른바 ˝객관적인 원인˝에서 배제되는 거지요.

국가를 타도하라! 2015-05-0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국민이나 시민 같은 주체가 누구냐? 또는 주체가 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누가 주체를 그렇게 구성하고 그렇게 호명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즉 주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적이므로 발마스 님이 주체를 어떻게 구성하든 그 주체는

발마스 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된 ˝주체˝일 뿐이죠.

덧붙여 발마스 님이 말씀하신 이른바 ˝과소주체성˝은 라나지트 구하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서발턴˝이라는 개념과

유사해 보이더군요.

물론 서발턴은 권력에 맹종하고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이지만 동시에 저항적 차이의 공간을 가리키기 때문에 미뇰로가 말하는
˝로컬˝에 더 가까운 것이기 합니다만,

국가를 타도하라! 2015-05-0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스 님이 쓰신 그 글의 말미에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또는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른바 국가를 구성하려는 나는 어떤 주체가 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과연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그 질문이 하필이면 왜 ˝어떤 국가˝를 구성해야 하는가로 귀결되는지가 의문입니다.

발마스 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된 질문은

<국가라는 정치적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안하는 주체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타도하라! 2015-05-01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들은( 그 우리들이 누구든) 얼마든지 국가를 없애버리고

국가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공동체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해야 합니다.

국가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는 불가능해도 국가없는 사회는 가능합니다.ㅣ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한테도 호명당하지 말고 세뇌당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이 사회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라!

국가 자체를 타도하라!

국가 자체를 없애라!

(사적 소유의 초혈연적 계급사회의 유지를 위한 제도와 기관의 집합체)= 국가

tempus fugit!
 




돌아오는 4월 16일이면 어느덧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1주년이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엊그제 같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작년 4월 16일의 그 사건이야말로 

엊그제 같은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출판사 현실문화에서 인문학 연구자 13명이 공동으로 저술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책이 

엊그제 출간됐습니다. 저도 다른 분들과 같이 글을 한 편 실었는데, 

작년 7월에 썼던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http://blog.aladin.co.kr/balmas/7079251)

을 조금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고,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게 남겨준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인문학자들의 시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16일 앞서 미리, 

세월호와 함께 잠든 넋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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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4-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 책도 기회있는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balmas 2015-04-01 17:1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시네요.^^ 예 읽어주시면 고맙죠. :)

하나 2015-04-1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세월호를 생각하며, 시 한수 올립니다.


♣절규(세월호)



그리움 재가 되도 너는야 내게 없네
보고픔 산이 되도 너는야 멀고 멀어
꿈속의 하늘 건너서 너를 보려 가노라


하늘에 징검다리 흰 구름 딛고 가면
너 있는 먼먼 나라 그곳에 닿을까나
천사들 사는 그 나라 너 있는 그 나라


불러도 대답 없고 울어도 소용없는
이별에 너를 찾아 구만리 먼먼 하늘
헤매어 돌고 돌면서 네 이름 부르나니


내 새끼 내 새끼야 들리면 말해다오
작별의 인사 없이 가버린 내 새끼야
엄마는 너를 찾아서 하늘나라 왔단다.


================================


초를 다투며 차오르던 바닷물...
가라앉는 1미리 1미리가 절망의 높이 이던...


절규의 기도소리
응답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 허망한 날에 아픔...



balmas 2015-04-19 22:36   좋아요 0 | URL
하나님, 시 감사합니다. 절절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프리즘 총서 18번째 권으로 [대중들]이 이번 주에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여러 학자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펴낸 책으로, 고대 로마와 중국에서 산업 사회의 군중과 


파시즘의 대중까지, 그리고 스포츠의 군중과 종교적 대중, 금융시장에서의 대중, 


문학 및 예술을 통해 재현된 대중에 이르기까지, 대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보기드문 종합적인 연구서입니다. 


이를 테면 대중에 관한 백과사전 격의 저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책입니다. 


따라서 대중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아주 좋은 독서 거리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번역하느라 많이 고생하신 양진비 선생님과 


그린비 편집부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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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3-2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프리즘 총서는 모으고 싶은 책이긴 한데, 진짜 책 단가가 엄청 높게 책정된 거 같습니다. 아우토미노 총서와 함께 정말 비싸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는 총서 시리즈..

balmas 2015-03-27 23: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yamoo님. 책 값이 비싸게 느껴지셨다니, 저도 참 안타깝습니다. 프리즘 총서에서 출간되는 류의 인문학 책들이 잘 팔리면 책 값도 좀 더 싸게 책정할 수 있을 텐데, 역자 선생님 인세도 드려야 하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독자들 입장에서는 조금 비싸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1000페이지에 이르는 책인 만큼 좀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2014 한겨레 기획연재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마지막 편인 에티엔 발리바르에 관한 글입니다. 


글 가운데 "자유와 평등, 박애"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어제 역사학자 한 분이 지적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고쳐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동안 계속 연재를 읽어주고 여러 가지 조언을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 1년 동안 잘 보충하고 다듬어서 내년에는 책으로 출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81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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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뽀 2015-03-1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고하셨습니다

balmas 2015-03-14 23:23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해피 바이러스 2015-03-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빨리 보고 싶어요~~~
드디어 선생님 단독저서도 볼 수 있는 건가요!!!

진태원 2015-03-19 12:2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답글이 늦었네요. 예, 가급적 빨리 책이 출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심 갖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cobomi 2015-05-1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주로 기다리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도움이 되었고, 따로 보관해서 이따금 다시 봅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윤곽이나 흐름을 살핀 연재글을 보면서 흥미로웠고,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쉽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도 기대되요!

balmas 2015-05-16 20:45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연재 내용 잘 보충해서 더 좋은 책으로 내겠습니다.^^
 

[진보평론] 봄호에 실릴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주체화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르의 이론을 비교한 글입니다. 


여기에 올리는 판본은 아직 교정이 완료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혹시 이 글에 관하여 논평하거나 토론하기를 원하는 분은 출판된 판본을 대상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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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르



1. 들어가며


  이 글에서 나는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문제설정에 따라 권력과 저항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권력과 저항, 특히 저항의 문제를 주체화 개념에 입각하여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나는 저항의 문제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법을 사용한다면, 더 이상 기동전의 모델에 따라 사고되기는 어려우며, 진지전의 문제설정에 따라 고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권력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또 누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가라는 문제는 더 이상 의미 있는 철학적·이론적 고찰의 주제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정치공학적으로는 늘 중요한 주제이겠지만). 사회주의 체제 7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 중 하나가 이것일 터이다. 그보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고, 권력에 저항하는, 또는 오히려 저항에 (따라서 평등과 자유에) 입각한 권력을 사고하고 구성하는 새로운 양식이다. 저항의 문제를 이런 각도에서 이해하면, 저항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쟁점은 사실 주체화 양식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체화는 미셸 푸코가 고안해낸 이래로 현대 철학 및 인문사회과학에서 널리 논의되는 개념이며, 특히 1990년대 이래 여러 철학자 및 이론가들이 자신들의 작업의 중심 주제로 설정하면서 활발한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별히 주체화라는 문제가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주제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마르크스주의가 몰락한 이후 프롤레타리아 또는 노동자 계급(또는 민중 내지 인민 일반)이 더 이상 의미 있는 정치적 주체로 간주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는 해방 운동의 대명사처럼 존재해왔으며, 노동자 계급은 억압과 예속을 넘어서 스스로 자신의 해방을 성취할 정치적 주체의 보편적인 모델로 간주되어 왔다. 생산력이 발달하지 못한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노동자 계급 대신 농민 계급이나 인민 대중 일반이 해방 운동의 주체로 설정되기도 했고, 새로운 사회 운동에서는 경제적 착취나 계급 적대로 환원 불가능한 여성이나 소수자들의 억압과 예속이 새로운 해방의 과제로 제기되었지만, 노동자 계급이 해방의 정치적 주체의 고전적 모델로 간주되어왔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바로 그만큼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은 정치적 주체의 공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 및 [다중] 연작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들의 작업이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대안(또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려는 시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그들의 이론이 현실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대안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다중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토론으로는 진태원 2009a 참조.]

  

둘째, (포스트) 구조주의의 이론적 유산이라는 문제가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가 지적했던 것처럼 구조주의 운동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계의 가장 커다란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구조주의 운동에 관한 대담으로는 Balibar 2001b 참조.] 범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지적 운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포스트) 구조주의의 핵심적인 이론적 유산은 주체를 원리에서 결과로, 또는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이행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발리바르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참고할 수 있다. “라캉, 후기 푸코, 또는 알튀세르 등 어떤 위대한 철학적 ‘구조주의자들’도 … 주체를 실격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그 반대로 고전 철학에 의해 기초의 위치에 장착된 이러한 맹목적인 노력을 해명하고자 했다. 즉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주체를 이행시키고자 했다.” Balibar 1992, 213-14쪽. 강조는 발리바르의 것이고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이것은 흔히 통속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처럼 (포스트) 구조주의가 주체의 죽음을 가져왔다거나 주체를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이 점에 대해서는 데리다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참조할 수 있다. “이 세 담론(라캉, 알튀세르, 푸코)과 그들이 특권화하는 사상가들(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에서 주체는 재해석되고 복원되고 재기입될 수 있으며, 분명 “일소되지”는 않습니다.” Derrida 1989, p. 45. 또한 Foucault 1978, 59-61쪽도 참조.] 그것은 오히려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이제 주체는 더 이상 설명의 근본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설명의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곧 주체는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것, 세계를 초월한(칸트적 의미의 ‘초월’이든 아니면 좀 더 전통적인 의미의 ‘초월’이든 간에) 지점에 위치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일정한 물질적·상징적 존재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특정한 메커니즘에 따라 비로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나 메커니즘의 변화에 따라 전환되는 그런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구조주의의 설명 대상으로서의 주체가 일종의 자동인형 같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조주의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자율적인 존재자로서의 주체가 어떻게 자신의 타자에 의해, 곧 자기 바깥의 물질적·상징적 존재 조건에 의해 자율적인 존재자로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가 하는 점이다. 요컨대 주체가 자율적 존재자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체 생산의 조건과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 따라서 주체의 자율성의 조건으로서 타율성을 설명하는 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철학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모험적이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편한 관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적으로 모험적인 이유는 근대 철학의 토대 내지 원리의 위치에 있던 주체가 하나의 생산물 내지 결과가 됨으로써, 이제 철학은 더 이상 확고한 토대를 가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불편한 이유는,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주체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가 됨으로써,[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비로소 주체성의 역사와 같은 것을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 말년의 저작을 이런 각도에서 다시 읽어볼 수 있다. Foucault 1983; 1984 「서문」 참조.]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보편적인 정치의 주체, 해방의 주체 같은 것을 사고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주장한 바 있는 거대 서사의 종말의 의미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해방의 정치나 정치적 진보의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원적이고 우연적인 활동이 되었다.

  

셋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하는 정치적·사회적·인간학적 영향이라는 문제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공공성의 쇠퇴 및 사회문화적 배제를 산출하고 있으며, 영국의 사회학자인 콜린 크라우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있다. 세금의 재분배 기능은 줄어들었다. 정치가는 한 줌도 안 되는 기업가들의 관심사에만 주로 반응하고, 기업가의 특수 이익이 공공 정책으로 둔갑한다. 가난한 사람은 점차 정치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게 됐다. 이로써 그들은 민주주의 이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차지해야 했던 위치, 즉 정치 참여가 배제된 위치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크라우치 2008, 37-38쪽).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인간학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대한 부정적 효과를 산출한다(Balibar 2001a; 2002; 2010a 이외에 특히 세네트 2002; 2004; 2009 및 Castel 2009 참조). 그것은 로베르 카스텔이 적절하게 개념화했던 것처럼 “소속 박탈”(désaffiliation)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체제가 산출하는 개인성의 두 양상을 각각 “과잉 개인”(individus par excès)과 “결핍 개인”(individus par défaut)으로 정식화한다(Castel 2009, 특히 pp. 27 이하, pp. 424 이하). 여기에서 과잉 개인이란 보통의 개인들 이상의 능력과 조건을 갖춘 개인들, 승자로서의 개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우월한 조건 속에서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리면) 든든한 문화적 자본을 바탕으로 몇 걸음 앞서 나가는 존재들이다. 반면 결핍 개인이란 생물학적으로는 한 명의 개체로 존재하면서도 인간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기 위한 사회적 자원 및 문화적 자본을 결여한 사람들이다. 서양 전근대사회의 떠돌이들이나 산업혁명 초기의 프롤레타리아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하루하루 간신히 삶을 연명해나갈 뿐,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의미 있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영위할 수 없는 이들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개인들이 온전한 인간적 존재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거나 박탈한다는 점, 곧 결핍 개인들의 산출을 구조화·제도화한다는 점이다. 카스텔이 “소속 박탈”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곧 개인들이 사회적 안전망을 박탈당한 채 저 홀로 자율적인 주체, 기업가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오늘날 정치적 주체화는 많은 정치이론가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관점에 입각하여 미셸 푸코와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라는 세 명의 프랑스 철학자의 작업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세 명의 사상가를 논의의 주제로 삼는 이유는, 이들이 내가 처음에 밝힌 것처럼 주체화에 입각하여 권력과 저항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미셸 푸코: 저항, 신자유주의, 주체화


현대 정치철학의 저항론의 이론적 기원 중 하나, 아마도 가장 유력한 기원은 푸코에게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5년 출간된 [감시와 처벌]에서, 평등과 자유에 입각한 근대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기원에는 예속화(assujettissement) 메커니즘으로서 규율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푸코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연히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되었고, 특히 푸코의 규율권력론은 일종의 기능주의적 권력론이라는 고발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규율권력론에 따를 경우, 규율권력을 통해 제작된 개인들은 자본주의 체계의 재생산 속으로 완전히 포섭되기 때문에 더 이상 변혁이나 심지어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푸코는 그 다음 해인 1976년 출간된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에서는 권력과 저항의 동시성에 관한 유명한 테제를 제시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으며,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 결코 외재성의 위치에 있지 않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권력 “안에” 있다고, 사람들은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법에 복종하기 때문에 권력에 대하여 절대적인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역사가 이성의 간지이듯이 권력은 역사의 간지라고, 항상 승리하는 것은 권력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것은 권력 관계의 엄밀하게 관계적인 성격을 오해하는 셈일 것이다. 권력 관계는 저항점들(곧 권력 관계 속에서 적수, 표적, 지주(支柱), 탈취해야 할 돌출부로 작용하는)의 다수성에 따라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저항점들은 권력망 도처에 존재한다. 따라서 권력과 관련하여 하나의 위대한 거부의 장소(반역의 정신, 모든 반란의 온상, 혁명가의 순수한 법칙)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제각기 특별한 경우인 ‘여러’ 저항들 … 이 있다. 정의상 이러한 저항들은 권력 관계의 전략 영역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Foucault 1976, pp. 125-27; 109-11쪽).


  푸코는 2년 뒤 프랑스철학회에서 발표한 「비판이란 무엇인가?」(Foucault 1978)[1978년 이루어진 이 강연은 푸코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고(푸코 자신이 이 강연 원고를 출판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후인 1990년, 강연에 대한 토론문과 함께 처음 출판되었다. 아울러 이 강연의 제목도 푸코가 붙인 것이 아니다.]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항의 문제를 명시적으로 주체화, 또는 이 발표문의 표현을 빌리면 “탈예속”(désassujettissement) 개념에 입각하여 다루고 있다. 우선 그는 ‘비판’이라는 개념을, 푸코가 당시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다루고 있던 통치성(gouvernementalité) 또는 통치 기예(art de gouverner)의 문제설정에 따라 새롭게 규정한다.


통치 기예에 맞서는 반대자로서 혹은 상대방이자 동시에 적대자로서, 통치 기예를 불신하고, 거부하고, 제한하며, 그것의 정당한 한도를 모색하고, 그것을 변형시키며,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 하는 방식, 통치 기예와 동일한 발전선상에서 조용하게 그 당시 유럽에서 탄생했던 일종의 문화적인 형식, 도덕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태도, 사고방식과 같은 그 무엇을 저는 아주 간단하게 통치되지 않으려는 기예, 또는 이런 식으로, 이를 대가로 해서 통치되지 않으려는 기예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비판의 가장 일차적인 정의로서 이 일반적인 특징, 이렇게 통치되지 않으려는 기예를 제안하고자 합니다(Foucault 1978, p. 38; 127쪽, 강조는 인용자, 번역은 다소 수정).


그리고 나서 조금 뒤에서 푸코는 비판을 불복종 및 탈예속의 기예로 재규정한다. 


만약 통치화가 사회적 실천의 현실 속에서 진실을 자처하는 권력 메커니즘에 의해 개인을 예속시키는(assujettir)[또는 “예속적인 주체로 만드는”이라고 번역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문제와 관련된 동향(mouvement)이라면, 저는 비판이란 주체가 진리에 대해서는 그것이 유발하는 권력 효과를, 권력에 대해서는 그것이 생산하는 진리 담론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 동향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판은 자발적인 불복종(inservitude volontaire)이자 성찰적인 비순종(indocilité réfléchie)의 기예일 것입니다. 비판은 한 마디로 진리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 게임 속에서 탈예속을 본질적인 기능으로 가질 것입니다(같은 글, p. 39; 129-30쪽. 번역은 다소 수정).


  콜레주 드 강의록이 출간되면서 우리가 좀 더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은 푸코가 1970년대 말부터 통치 내지 통치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에 따라 자신의 작업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통치성이라는 개념은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절차·분석·고찰·계측·전술의 총체”(Foucault 2004a, p. 163)를 뜻한다. 하지만 국가의 통치와 개인의 통치를 결합하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통치성은 “행위 인도”(conduire de la conduite)[푸코 강의록의 역자인 오트르망(심세광 외)은 “conduite”라는 푸코의 개념을 “품행”으로 옮기고 있는데, 이 번역은 condire라는 푸코의 개념이 지닌 함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conuite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행위”로 conduire라는 단어와 함께 쓰일 때는 “행위-인도”라고 옮겨서 사용하겠다.]라고 규정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간단해보이지만, 통치 및 행위-인도라는 개념은 권력 및 주체화 개념에 대한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푸코는 1970년대 계보학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법적 권력 개념을 비판하면서 관계론적 권력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진태원 2012) 새로운 권력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권력론은 혁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주체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감시와 처벌](1975)이나 [성의 역사 1권](1976) 같은 계보학 작업에서 주체는 예속이나 객체화(objectivation)(Foucault 1982)의 대상으로 파악될 뿐,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자율성이나 능동성을 지닐 수 있는지, 또는 적어도 저항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명료하게 해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치와 행위-인도라는 개념은 주체의 타율적 조건이라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문제설정을 포기하지 않은 가운데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려는 주목할 만한 시도다. 통치의 관점에 따르면 권력은 실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더 나아가 관계로서의 권력은 “단순히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파트너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어떤 이가 타인들에 대해 행위하는 방식이다.”(Foucault 1982, p. 136) 곧 권력은 “타인들에게 직접적이거나 무매개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행위 양식”, “타인들의 행위에 대한 행위”(Ibid., p. 137)를 의미한다. 권력은 “가능태들의 장” 위에서 작동한다. 다시 말해 권력은 “가능한 행위들에 대한 일련의 행위들이다. 그것은 고무하고 유발하고 유혹하며 더 쉽게 하거나 더 어렵게 만든다.”(같은 곳). 따라서 권력은 일련의 주어진 가능성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위자들의 능력, 곧 행위자들의 자유를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푸코가 말하는 예속이란, 비판가들이 주장하듯이 행위자들을 억압하거나 구속하는 것, 또는 어떤 행위들을 직접 금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행위자들의 행위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그것을 특정한 방향으로 한정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푸코가 “conduire”라는 개념을 “권력 관계의 특수성을 다루는 데 가장 좋은 보조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conduire”라는 개념은 “타인들을 인도한다는 의미 … 와 함께 다소간 개방된 가능성의 장내에서 행위하는 방식”(Ibid., p. 138)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권력의 행사는 “행위 인도”이며 “가능성들의 관리”다. 그리고 통치한다는 것은 “가능성의 장 또는 타인들의 행위를 구조화하는 것”(Ibid.)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을 단순한 지배나 억압, 또는 착취나 폭력의 문제로 다루는 것, 또는 이데올로기적 기만이나 은폐, 음모로 간주하는 것은 푸코적인 통치성의 문제설정과 어긋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가능성의 장 또는 타인들의 행위를 구조화”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행위를 인도하는지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실제로 푸코는 특히 [생명정치의 탄생][푸코의 1978-79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인 La naissance de biopolitique를 국역자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라고 옮기고 있는데(Foucault 2004b), biopolitique 또는 영어의 biopolitics를 “생명관리정치”라고 옮기는 것은 다소 ‘과도한 친절’인 것으로 보인다.] 강의록에서 신자유주의를 통치성의 관점에서 분석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를 통치성의 관점에서 다룬다는 것은, (푸코의 강의록에 기반을 둔) 피에르 다르도(Pierre Dardot)와 크리스티앙 라발(Christian Laval)이 그들의 공동 저서에서 잘 보여준 것처럼(Dardot & Laval 2009 참조) 무엇보다도 그것을 단순한 비합리성이나 이데올로기, 음모 등의 관점이 아니라, 특수한 합리성, 특히 사회적 합리성, 통치 합리성의 한 유형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푸코 및 푸코가 제시한 통치성의 문제설정이 신자유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핵심적인 쟁점은 어떻게 온전히 합리적인 하나의 학설,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 통치의 이론과 정책, 규범이 동시에 지배의 효과를 발휘하는지, 어떻게 그것이 반(反)민주주의적인 지배의 합리성으로 작용하는지 해명하는 일이다.

  

푸코는 1977-78년 강의록인 [안전, 영토, 인구](Foucault 2004a)와 1978-79년 강의록인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통치성이라는 문제설정에 따라 서양 근대 사회의 전개 과정을 재조명하고 있는데, 특히 후자의 강의록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서양 사회의 통치술이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되었는지, 그리고 이 후자의 통치술의 특징은 어떤 것인지 검토하고 있다. 보통 신자유주의는 프리드먼이나 하이예크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1970년대 말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화된 경제 정책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1940년대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질서자유주의까지 포함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경제 정책이나 경제 사상 또는 이데올로기로 이해하지 않고, 사회를 통치하는 새로운 통치성으로 파악하며, 더 나아가 여기에는 인간 및 시장, 국가 등에 관한 새로운 정의가 담겨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와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가 이해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특징은 몇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이 점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2012 참조.] 우선 그것은 시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다. 고전 자유주의에서 시장은 자연 발생적인 교환에 근거를 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핵심을 교환이 아니라 경쟁으로 이해하며, 더 나아가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인위적 질서로 파악한다. 둘째, 고전 자유주의와 달리 인간은 단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기업가로 이해된다. 신자유주의에서 모든 개인은 각자가 한 사람의 기업가가 되며, 인간의 활동 전체는 경제적인 수익성에 따라 평가되고, 각각의 개인은 기업가로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고전 자유주의와 달리 시장과 국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에는 외재적인 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국가 자체, 공적 영역 자체가 시장의 합리성을 따라 재편된다.

  

여기서 푸코의 분석이 지닌 두 가지 이론적 특징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우선 푸코의 분석을 이른바 서구 마르크스주의나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유래하는 상품 물신성 비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푸코는 인간을 상품으로 환원한다든지, 모든 것을 상품 논리나 교환가치로 획일화한다는 이유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푸코에 따르면 등가성에 기초한 교환의 논리는 고전 자유주의의 특징이며, 신자유주의는 불평등한 경쟁에 기반을 둔 통치성이다. 푸코 자신이 이 점을 명확히 한다. “비판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들은 ‘좀바르트적’ 사회, 즉 획일화 사회, 대중사회, 소비사회, 스펙터클 사회 등을 고발하면서 자신들의 통치정책의 현재 목표를 비판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 문제는 상품이나 상품의 획일성에 기초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기업의 다양성과 그 차별화에 기초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입니다.”(Foucault 2004b, 226쪽).

  

또한 푸코 자신은 명시적으로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 비판의 한계도 지적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의 내재적 법칙이 각각의 개인들에게 외재적으로 강제된 것으로 이해되거나, 학교나 병원, 국영 기업 등이 자본 축적의 새로운 장으로 통합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자본 축적의 내적 논리의 현상적인 발현이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인 합리성과 규범을 지닌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며, 이러한 통치성의 확립 자체가 자본 축적 및 재생산의 조건을 이룬다는 점 역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이 점에 관해서는 Dardot & Laval 2009; 2010 참조.] 따라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단순한 상부구조로 이해하지 않고 토대의 재생산의 조건으로 이해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나 심지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재편하는 포괄적인 통치성이며, 새로운 종류의 규범과 합리성의 구성 과정, 새로운 예속적 주체 생산의 메커니즘이다. 푸코는 질서자유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던 알렉잔더 뤼스토우(Alexander Rüstow)의 말을 인용하여 이를 “비탈폴리티크”(Vitalpolitik), 곧 “기업의 형식을 가진 사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생명정책”이라고 부른다(Foucault 2004b, 224-225쪽).

  

그럼에도 이러한 통치성이 반민주주의적인 것이라면, 이는 신자유주의가 다음과 같은 정치적 효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1) 첫째, 사회적 시민권이 와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T. H. 마샬이 이론화했듯이 산업혁명 이후 각각의 개인들에게는 개인적인 시민권만이 허용되었다면, 20세기에 들어서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대중들의 투쟁의 결과 서구 주요 산업 국가의 모든 개인들은 정치적 시민권과 더불어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곧 이제 각각의 개인들은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참여의 권리 이외에 그들이 삶을 영위하고 좀 더 질 높은 생활을 추구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보편적인 권리로서 얻게 되었다(무상 교육, 국민 의료 보험, 실업 수당, 양육비, 주거비 등). 이것은 개인들이 각자 생애 주기를 계획하고 자신들의 개인적 서사를 전개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기업가 개인의 모델을 일반화함으로써 이러한 확장된 시민권이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을 잠식해간다. 더 이상 국가가 개인들의 삶, 대중들 각자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개인들은 기업가로서 스스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게 된다.

  

(2) 둘째, 경쟁과 배제가 제도화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안전망을 박탈당한 채 믿을 것은 자신의 개인적 능력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들은 첨예한 생존 경쟁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핍 개인들 쪽에 가까운 사람들이 경쟁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수한 소수의 상위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개인들 역시 격렬한 생존 경쟁의 과정에 끼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개인들은 자신과 자녀들이 복종적인 자세로 기업 엘리트들이 확립해놓은 경력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일 이외에는 어떠한 사회 개선에도 관심이 없도록 부추김을 받는다. 이 때문에 교육에 대한 현대 정치의 강박적인 관심이 뒤따랐다. 교육은 사회 계급의 상향 이동의 가장 주된 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크라우치 2008, 99쪽) 사회 이동은 오직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탈락할 수밖에 없음에도 이러한 경쟁은 중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이 좁으면 좁을수록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경쟁과 배제가 제도화되고, 점점 더 극단화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으로서의 시장 개념이 자연적 조건으로서의 불평등과 적자생존이라는 허버트 스펜서에서 유래하는 사회생물학적 원칙을 물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교육, 보건을 비롯한 인간 삶의 주요 영역에서 사회생물학적인 용어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표현하는 주요 어휘들로 자주 사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령 󰡔교육과 배움에 관한 유럽 이사회 백서: 인지 사회를 향하여󰡕는 유럽 사회에서 사회와 개인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사실 개인들의 적응 능력의 형성과 발전을 위한 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 기업들이 기술 혁신을 좀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전 생애에 걸쳐 4-5번에 걸쳐 직업 활동을 변화시켜야 하는 위험에 처해 있는 상당한 비율의 개인들 자신을 위해서도 점점 더 필수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Stiegler 2011, pp. 133에서 재인용).


영속적인 변화와 혁신의 맥락 속에서의 적응 능력의 중요성, 경쟁 상황에 놓인 기업에 대한 가치 부여, 기업가로서의 개인 등과 같이 이 구절에는 신자유주의적인 통치성의 요소가 고루 담겨 있으며, 그 밑바탕에는 사회생물학에 기반을 둔 경쟁과 도태, 배제의 논리가 깔려 있다. 이처럼 효율성 및 수익성의 기준에 따라 국가 제도 및 인간 행위가 체계적으로 평가·규율되고 그러한 기준에 따라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으로 인간 유형이 구별되며 그것이 더욱더 경쟁과 배제의 제도화를 산출하는 사회에서,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 가치의 추구로서의 민주주의 정치가 설 자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신자유주의가 산출하는 예속적 주체화의 효과들에 대한 푸코 자신의 해법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하나의 역설에 부딪히게 된다. 푸코는 다름 아닌 예속화와 주체화라는 용어법의 창시자이고 신자유주의적 예속화의 효과에 대해 선구적인 분석을 남기고 있지만, 푸코 자신에게서 이러한 예속적 주체화를 넘어설 수 있는 명시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신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분석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사회주의적 통치성의 부재라는 문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곧 사회주의에서는 “한 텍스트 혹은 일련의 텍스트와 부합하는 관계가 통치 합리성의 부재를 은폐하는 임무”(Foucault 2004b, 146쪽)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국가들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정당 내에서도 사회주의의 이러저러한 정책과 실천,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것이 마르크스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 고전가들의 텍스트와 일치하는가 여부에 놓여 있을 뿐, 사회주의 “자신의 행동 방식과 통치 방식을 규정하는” 통치성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통치성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사회주의 및 그 텍스트 내부에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 통치성을 사회주의로부터 연역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발명되어야 합니다.”(같은 곳). 하지만 푸코는 󰡔생명정치의 탄생󰡕 이후 더 이상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및 그것에 대한 대안 통치성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라는 문제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이 문제를 다루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어쨌든 푸코의 최후의 출판 저작이나 마지막 강의록은 모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초기 기독교에서의 주체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욱이 이처럼 대안적 통치성이나 주체화에 관한 해법이 부재한 것은 단순히 외재적인 이유(때 이른 죽음이나 이런저런 정세적·전기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푸코 자신의 이론적 문제설정 자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존재한다. 우선 법에 관한 푸코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관계론적 권력론 및 통치성 개념을 통해 권력에 관해 아주 혁신적인 관점을 제안했음에도, 법 또는 제도 일반에 관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법적 권력론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푸코에게 법이나 제도 일반은 권력이라는 토대 내지 하부구조 위에 설립된 일종의 상부구조, 하지만 자신이 이러한 토대에 입각해 있음을 은폐하고 부인하는 가상적 질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적 권력 관계의 대립항을 이루는 부정적 권력의 질서로 간주되기도 한다.


부르주아지가 18세기를 통해 정치적 지배 계급이 된 과정은 명시적이고 명문화되고 형식적으로 평등한 법적 틀의 설정과 의회제 및 대의제의 형식을 띤 체제의 조직화에 의지한 것이다. 하지만 규율 장치의 발전과 일반화는 이러한 과정의 어두운 이면을 만들어 놓았다. 원칙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권리 체계를 보증했던 일반적인 법률 형태는 이러한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물리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규율로 형성된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고 불균형적인 권력의 모든 체계에 의해 그 바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 현실적이고 신체적인 규율은 형식적이고 법률적인 자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 “계몽주의 시대”는 또한 규율을 발명한 시대였다.”(Foucault 1975, p. 258; 322-23쪽-번역은 수정, 강조는 인용자). 


이 때문에 푸코에게 의회적이고 대의적인 근대 민주주의 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제도적인 정치는 관계론적 권력론이나 통치성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으로 나타난다. 곧 법이나 제도는 권력이나 통치성의 개념적 대립항으로 나타날 뿐, 관계론적 권력론의 적용 영역으로는 간주되지 않는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푸코가 근대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개념적 기초 중 하나인 인민주권 개념을 군주적 주권 개념의 거울 대립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이기도 하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는 한편으로 푸코와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의 대표자인 프랑수아 퓌레 및 마르셀 고셰의 지적 관계라는 문제다.] 푸코에게 인민주권 개념은 중세적인 주권-법 담론의 잔여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인민주권 개념을 주권-법 담론의 잔여로 이해하기 때문에, 푸코에게 주권적 주체로서의 인민(인민의 인민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 정치의 불변적인 기초가 아니라 주권적 권력의 전도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 푸코에게 보편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가능성은 상당히 축소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푸코적인 권력론 및 주체화론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민주주의 정치와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푸코적인 권력 대 법의 대당을 해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자크 랑시에르: 민주주의, 치안, 주체화


랑시에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이 푸코에게 지고 있는 지적인 빚을 인정한 바 있다. 가령 󰡔알튀세르의 교훈󰡕(1974)에서 그는 (부분적으로) 푸코의 관점에 입각하여 알튀세르의 “주체 없는 과정”이라는 개념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고발한 바 있다(Rancière 2011). 또한 󰡔불화󰡕에서는 푸코의 폴리스(police) 개념을 변용하여 “치안”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으며, 주체화 개념을 받아들여 역시 자신의 고유한 정치적 주체화 개념을 이론화했다(Rancière 1995 중 특히 2장). 그리고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푸코적인 의미의 역사적 선험(l'apriori historique)으로 제시하기도 했다(Rancière 2000). 이렇게 보면 양자 사이에는 상당한 수렴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주체화 개념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차이점 및 불화가 나타난다. 사실 랑시에르는 푸코에게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고발하기도 했다(Rancière 2009a).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는 푸코의 주체화가 윤리적 주체화의 성격을 띠는 데 반해, 랑시에르는 윤리 문제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기각하면서(특히 Rancière 2009 참조) 철저하게 정치의 관점에서 주체화 개념을 전개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랑시에르는 1990년대 이후 프랑스 철학계에 나타난 ‘윤리적 전회’라는 경향에 대하여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반면 바디우는 랑시에르가 비판하는 ‘윤리적’ 철학자들 중 일부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특히 레비나스), 랑시에르와 달리 자신의 철학 체계에 입각한 독자적인 윤리학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윤리학은 선(善)의 존재론적 우선성에 입각한 윤리학(이자 선에 기반을 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변호론)이다. Badiou 1994 참조.] 그에 따르면 이러한 윤리적 전회는 정치 및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구실 아래 사실은 정치를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약화시키거나 그것을 대체하는 기능을 한다. 가령 그는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사건을 재현/표상 불가능한 절대적인 악으로 간주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리오타르는 레비나스를 따라, 홀로코스트를 유대 민족이라는 서양의 타자를 배제하고 그로써 자신이 이 타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워버리려는 서양의 동일성 중심 철학의 범죄적 욕망의 발현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랑시에르에 따르면 이는 “타자성의 정치적 형상”을 “대타자의 무한한 타자성”(Rancière 1995, p. 184)에 대한 윤리적 복종으로 대체하는 것이며, 정치의 가능성을 말소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그는 데리다나 푸코에게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발견한다.

  

그 대신 그는 정치적 주체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전개한다. 랑시에르의 주체화 개념은 정치와 치안(police)의 구별(및 대립), 치안 질서의 중심에 존재하는 잘못(tort)이라는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랑시에르는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활동이나 영역은 사실은 엄밀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라고 규정한다. 곧 그에 따르면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가 이루어지는 과정들 전체”(Rancière 1995, p. 51)가 곧 치안이다. 그리고 치안의 본질은 공권력이나 법체계 같은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의 짜임(configuration du sensible)이다. 


치안은 무엇보다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을 정의하는 신체들의 질서이며, 이 질서는 신체들이 그것들의 이름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과제를 부여받도록 만든다. 이 질서는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의 질서로서, 어떤 활동은 가시적인 것으로 다른 활동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어떤 말은 담론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말은 소음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듣게 만든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노동의 장소를, 공적 영역이라 불리는 것에 고유한 보기 및 말하기 양식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사적 영역으로 만든 것이 치안의 법이다(같은 책, p. 52).


이러한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랑시에르는 푸코에게 충실하면서도 그와 다르다. 그가 푸코에 충실한 이유는 일종의 예속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을 국가의 공권력이나 법 등과 같은 공적 영역 내지 상부구조에서 찾지 않고, 신체들의 질서 및 그것들을 규정하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푸코가 규율권력을 법이나 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은밀한 하부구조로 간주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 더 나아가 푸코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우리가 살아가고 우리가 느끼고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Dardot & Laval 2009, p. 5)을 규정하는 새로운 삶의 규범인 것과 마찬가지로, 랑시에르에게서도 치안은 우리의 “행위 양식들과 존재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푸코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 따라 치안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가 치안을 정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정치란


[치안이라는] 감각적 짜임과 단절하는데, 이러한 짜임에서는 부분들 및 부분들의 몫 또는 몫의 부재가 그 짜임에서 아무런 자리도 갖지 못한 어떤 전제, 곧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전제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단절은 부분들과 몫들, 몫들의 부재가 정의되는 공간을 다시 짜는 일련의 행위들에 의해 명시된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그것에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장소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보일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같은 책, pp. 52-53).


랑시에르에게 정치는 치안을 규정하는 감각적 짜임과 “단절”하는 것이며,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치안과 정치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논리”(같은 책, p. 55)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푸코에게는 랑시에르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치안과 정치를 전혀 상이한 논리가 지배하는 두 가지 활동이라는 관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푸코에게 정치가 부재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랑시에르에게 주체화란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하지만 치안 질서 속에서는 은폐되어 있는 근본적인 잘못[정치의 핵심에는 이중의 잘못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소유 없이 말하는 존재자의 능력과 정치적 능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하지만 결코 그 자체로 전개되지는 않는) 갈등이다. 플라톤이 보기에는 인민이라고 불리는 익명적인 말하는 존재자들의 다수성은 공동체로 신체들을 질서정연하게 분배하는 일 일체에 잘못[왜곡]을 가한다. 하지만 역으로 “인민”은 아득히 오래되고(immémorial) 항상 현행적인 이 잘못의 이름이고 주체화의 형식인데, 사회적 질서는 이러한 잘못을 통해 말하는 존재자들 대다수를 침묵의 밤으로 또는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표현하는 목소리들을 가진 동물의 소음으로 몰아냄으로써 상징적으로 구성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소수의 부자들에게 의존하게 만든 부채가 존재하기 이전에, 신체들을 두 종류의 범주로 나누는 신체들의 상징적 분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범주란, 보는 이들과 보지 못하는 이들, 로고스(기억할 만한 말, 고려해야 할 셈)가 존재하는 이들과 로고스가 없는 이들, 곧 진정으로 말하는 이들과 쾌감과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분절된 목소리를 단지 흉내내는 데 불과한 이들이라는 범주다.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로고스가 결코 단순히 말이 아니기 때문이며, 로고스가 항상 불가분하게 이러한 말들에 대해 이루어진 (compte)이기 때문이다. 로고스는, 어떤 음성의 발음은 정당한 것을 언표하는 데 적합한 말로 이해되는 반면 다른 음성의 발음은 단지 쾌감이나 고통, 동의나 반항을 표시하는 데 불과한 소음으로 지각되게 만드는 셈이기도 한 것이다.” Rancière 1995, p. 21(강조는 랑시에르).]이 잘못으로 표현되고, 몫 없는 이들이 자신의 몫을 획득하는 과정을 뜻한다. “정치적 주체화는 공동체의 치안적인 구성 속에 주어져 있지 않은 어떤 다자(多者, multiple), 그것을 세는 것은 치안의 논리와 모순되는 것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다자를 생산한다.”(같은 책, p. 60).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 랑시에르에게 주체화는 어떤 권력의 획득이나 법적 권리의 취득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들을 셈해지지 않은 이들로 셈하는 선언 자체”(같은 책, p. 62)를 뜻하며, “일련의 언표행위의 사례 및 능력을 생산하는 것”(같은 책, p. 59)을 가리킨다. 랑시에르는 1832년 혁명가 오귀스트 블랑키에 대한 재판의 과정을 대표적인 주체화의 사례로 제시한다. 


직업을 말하라는 재판장의 요구에 대해 그는 간단히 답변한다. “프롤레타리아”. 이 답변에 대해 재판장은 곧바로 “그건 직업이 아니잖아”라고 반박하지만, 즉각 다음과 같은 피고의 응수를 듣게 된다. “그것은 노동으로 연명하고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한 3천만 프랑스인들의 직업이오.” 그러자 재판장은 서기에게 이 새로운 ‘직업’을 기록하도록 지시한다. 이 두 개의 응답으로 정치와 치안 사이의 갈등을 집약해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모든 것은 직업(profession)이라는 같은 단어의 의미[직업, 고백/선언]를 이중으로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 치안의 논리를 구현하는 검사에게 직업은 일자리를 의미한다. 곧 그것은 어떤 신체를 그의 자리 및 그의 기능에 따라 위치시키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직업도 가리키지 않으며, 기껏해야 비참한 육체노동자가 처해 있는 막연하게 정의된 어떤 처지를 가리키는데, 어떤 측면에서 보든지 이것은 피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적 정치의 관점에서 블랑키는 같은 단어에 상이한 의미를 부여한다. 직업/선언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고백, 선언이다. 다만 이러한 집단은 아주 특수한 본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블랑키가 자신이 속해 있다고 고백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결코 어떤 사회 집단과 동일시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는 육체노동자도 노동자 계급도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을 셈해지지 않은 이들로 셈하는 선언 자체 속에서만 존재하는 셈해지지 않은 이들의 계급이다(같은 책, p. 63).


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 나는 실존한다”(ego sum, ego existo)를 복수 인칭으로 표현한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는 실존한다”(nos summus, nos exsitimus)를 정치적 주체화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정식으로 간주한다.

  

둘째, 하지만 랑시에르의 주체화에서 법은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랑시에르가 해방의 삼단논법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이 점이 잘 나타난다. 랑시에르는 19세기 프랑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고용주들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한 주장들을 삼단논법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바 있다.


삼단논법의 대전제는 간단하다. 1830년에 막 공포된 헌장 전문에는 모든 프랑스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적혀 있다. 이 평등이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된다. 삼단논법의 소전제는 즉각적인 경험에서 이끌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1833년에 파리의 재단사들은 양복점 주인들이 급료, 노동시간, 일부 노동 조건들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시작했다. 따라서 삼단논법의 소전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그렇지만 양복점 주인 슈바르츠 씨는 우리의 근거들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그에게 급료를 재검토해야 할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근거들을 그는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검증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평등한 자들로 대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그는 헌장에 기입된 평등을 위배하고 있다(Rancière 1998, 110쪽).


이러한 삼단논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따라서 해방의 삼단논법에서는 모든 프랑스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전제가 헌법에 기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본질적인 중요성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랑시에르는 법이라는 것을 사회적 불평등이나 계급적 착취를 은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만으로 치부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맞서 실제의 노동자들은 법에 근거하여 해방 투쟁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대전제와 소전제 간의 모순을 사고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그것은 단순히 법-정치적 문장이 환영에 지나지 않으며, 그 문장이 주장하는 평등은 불평등의 현실을 가리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을 뿐인 외양이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 그렇지만 이것은 결코 노동자들의 추론이 선택한 길이 아니다. … 평등을 말하는 문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문장은 우리가 그것에 부여한 힘을 갖고 있다. 이 힘은 우선 평등이 그 자체를 표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디엔가 평등이 있다. 이것은 말해졌고, 씌어졌다. 따라서 이것은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실천은 바로 거기에 바탕을 둘 수 있으며, 이 평등을 입증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을 수 있다(같은 책, 111-112쪽).


앞에서 본 것처럼 푸코에게 법은 항상 권력이나 통치성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으며, 권력이나 통치성의 실제 작용에 근거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은폐하거나 가리는 것으로 제시될 뿐, 그것 자체가 정치나 주체화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반면 랑시에르에게 법은, 적어도 일부분의 경우 주체화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인 예속적 주체화와 관련하여 랑시에르 자신이 19세기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에 대해 제시했던 것과 같은 해방의 삼단논법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또는 치안으로서의 신자유주의와 단절하는 주체화 양식의 가능성을 어떤 식으로 보여준다면 랑시에르의 정치적 주체화 이론은 자신의 현실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푸코와 달리 그는 신자유주의에 고유한 예속적 주체화의 특성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체화 양식의 역사적 계보학을 구성하는 데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푸코가 적어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을 통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전개된 주체화 양식과 로마 제국 시기의 주체화 양식, 초기 기독교 내에서의 상이한 주체화 양식들 및 그것의 근대적 계승 형태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주체화 양식 등에 관한 계보학적 분석을 시도한 반면, 랑시에르는 한두 가지의 막연한 언급을 제외한다면, 주체화 양식의 계보학도, 정치적인 것(또는 정치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주체화 개념 및 그와 맞짝을 이루는 치안 개념(또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근본적으로 몰역사적인 개념 또는 어떤 초월론적인(transcendantal) 개념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곧 랑시에르에게 주체화나 치안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 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형식적 본질을 지닌 것으로 제시되며, 랑시에르는 이러한 형식적 본질이 역사적으로 특수하게 발현되는 방식들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또한 랑시에르에게 치안과 정치, 또는 치안과 민주주의의 관계가 매우 역설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본 것처럼 그는 치안과 정치가 전적으로 상이한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역설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정치는 항상 치안과 결부돼 있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Rancière 1995, p. 52)고 말한다. 왜 양자가 항상 결부되어 있을까? “양자가 결부돼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는 자신에게 고유한 대상들이나 질문들을 갖고 있지 않다. 정치의 유일한 원리인 평등은 정치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만 본다면 정치적인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정치가 평등에 대해 하는 모든 것은, 평등에 대해 소송 사건들(cas)이라는 형태로 현재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계쟁이라는 형태 아래 치안 질서의 중심에 평등의 입증을 기입해 넣는 것이다. 어떤 행동의 정치적 성격을 이루는 것은 그것의 대상이나 그러한 행동이 실행되는 장소가 아니라, 오직 그 행동의 형식, 곧 분할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공동체의 제도, 계쟁의 제도 속에 평등의 입증을 기입해 넣는 형식이다. 정치는 도처에서 치안과 마주친다. 이러한 마주침을 이질적인 것들의 마주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같은 곳). 랑시에르는 그 이유가 간단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랑시에르의 설명에 전제돼 있는 것은, 정치의 논리와 치안의 논리가 마주치는 공통의 장소, 공통의 무대라는 생각이다. 랑시에르는 한때 이러한 공통의 장소를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통의 장소는 어떤 것일까? 위의 인용문에서 그 장소는 “치안 질서[에 의해 지배받는 공동체]”나 “분할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공동체의 제도”다. 또는 우리가 흔히 국가라고 부르는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고유한 대상도 장소도 질문도 갖고 있지 않은 정치는 항상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공동체 제도를 전제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는 랑시에르의 관점에 따르면 공동체의 몫들의 분배를 규정하는 아르케의 논리 내지 치안의 논리에 의해 항상 지배받는다. 그렇다면 역설적이게도 랑시에르적인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치안 공동체, 아르케 공동체가 항상 존재해야만 한다. 정치는 고유한 대상도 장소도 질문도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아르케 논리와의 단절”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시 역설적이게도 정치의 귀결, 정치라는 단절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결과는 항상 치안의 질서로의 복귀일 수밖에 없다. 랑시에르가 드는 사례를 보자. 랑시에르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열 개의 테제」 중 8번째 테제에서 치안과 정치의 차이를 길거리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공적 공간에 치안이 개입하는 것은 우선 시위자들을 호명/검문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해산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 “그냥 지나가시오! 여기에 아무것도 볼 것 없어!” 치안은 도로 위에 아무것도 없으며, 거기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 정치는 이 통행 공간을 한 주체—인민·노동자·시민—의 현시/시위 공간으로 변형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Rancière 1998, 250-251쪽).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사례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이렇게 해서 정치의 공간으로 변형된 이 도로는, 그럼 계속 현시/시위의 공간으로 남을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시위가 끝나고 난 뒤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를 교통지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그 도로는 다시 차량들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치안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또는 역설적인 귀결이 생겨나는 이유는 랑시에르가 정치와 치안을 전면적으로 대립시키고, “모든 국가는 과두제 국가”(Rancière 2005, p. 9)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국가가 과두제 국가이며, 정치는 항상 국가 제도를 조절하는 치안의 논리를 위반하고 그것과 단절하는 데서 성립한다면, 하지만 동시에 정치는 치안과 분리할 수 없게 결부돼 있다면, “그 특성상 드문(rare) 것”(Rancière 1995, p. 188)인 정치는 일시적인 위반이나 스캔들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해방의 삼단논법에서 알 수 있듯이 랑시에르의 저작에는 국가나 정치 공동체에 관한 다른 관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해방의 삼단논법에 따르면 법이나 국가 제도는 단순한 지배의 장치, 아르케의 논리가 군림하는 장소가 아니라, 평등의 논리가 기입되고 법제화되고, 물질적인 힘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법이나 국가 제도는 지배의 장치이면서 동시에 해방 운동을 위한 핵심적인 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역설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치안과 정치, 치안과 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이유를 해명하는 좀 더 적극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발리바르의 이론에서 바로 이러한 길을 찾을 수 있다.



4. 에티엔 발리바르: 봉기적 시민성, 주체화, 시민다움


  이미 글이 상당히 길어졌기 때문에, 발리바르에 관해서는 한두 가지 간단한 논평만 해두고, 발리바르의 주체화 이론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동시대의 다른 정치철학자들과 비교해볼 때 발리바르가 갖는 강점 내지 독창성은 크게 세 가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대개의 다른 정치철학자들, 특히 유럽의 정치철학자들이 지극히 환원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반면, 발리바르는 정치를 복합적이고 다면적으로 사고한다. 동시대 유럽 정치철학자들에게서 놀라운 점은 이들이 다방면에 걸쳐 매우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고 고전 철학의 전통에도 정통해 있지만, 정치적 사유에서는 대개 강한 환원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아감벤이나 지젝, 바디우 등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좌파 메시아주의적인 관점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2014a 및 2014b를 각각 참조). 반면 발리바르는 「해방, 변혁, 시민다움: 정치의 세 가지 개념」이라는 논문에서 볼 수 있듯이(Balibar 1997 참조), 정치를 한 가지 개념이 아니라 적어도 세 가지 개념을 통해 사고하려고 한다. 이는 아주 주목할 만한 장점이다. 이러한 복합적 사유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혁의 문제설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고전적인 시민혁명의 이상인 자율성의 정치와 어떻게 연결돼 있으며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더욱이 이 두 가지 정치의 한계를 시민다움(civilité)의 정치 내지 반(反)폭력의 정치라는 문제설정으로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 첫 번째 측면과 연결된 것인데, 대개의 유럽 정치철학자들은 말하자면 “바깥의 정치”를 추구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남겨 놓은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이들이 보기에 진정한 정치는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 존재한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생산관계 또는 넓은 의미에서의 경제가 진정한 정치로서 바깥의 정치의 장소였던 반면, 이들은 각자 다른 영역에서 바깥의 정치를 발견한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들과 달리 바깥의 정치를 위해 제도적인 정치 또는 정치체의 영역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바깥의 정치와 제도 정치 사이의 (목적론 없는)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한다. 간단히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제도 정치는 바깥의 정치로서 봉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바깥의 정치는 제도의 영역 속에서 구현되고 관철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는 단지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로 국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 또는 상호 견인 관계야말로 발리바르가 생각하는 정치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발리바르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권 사이의 이율배반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급진적인 보편성, 심지어 무한한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표현으로서 정치체 또는 “시민권 헌정”(constitution of citizenship)은 민주주의와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곧 한편으로 시민권 헌정은 자신의 토대로서 민주주의에 근거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급진적인 보편성을 온전히 수용할 경우 그 제도적 틀 자체가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제한해야 한다. 다음 인용문은 민주주의적 제도로서 시민권 헌정과 민주주의가 맺는 이율배반(antinomy) 관계에 대한 발리바르의 논점을 집약적으로 전달해준다.


[정치 공동체로서의—필자] 시민권은 주기적인 위기와 긴장을 경유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본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취약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서양의 경우) 2천년의 역사 동안 시민권 공동체는 도시국가에서 국민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파괴되고 새로운 제도적 틀 속에서 재구성되어 왔으며, 만약 탈국민적(post-nationales) 연방이나 준연방이 현실태로 성립한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시민권 헌정으로서 이러한 공동체는 (막스 베버가 잘 파악한 바 있듯이) 그것의 구성적/제헌적 권력(pouvoir constituant)—이것은 평등자유가 실제로 성립하게 만들기 위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권리들의 획득을 목표로 하거나 또는 기존 권리들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보편적인 정치 운동들이 지닌 봉기적 권력이다—을 형성하는 … 힘 자체에 의해 위협받고 동요하며, 심지어 탈정당화된다. 이 때문에 나는 서두에서 봉기와 헌정의 차동(差動) 관계(différentiel)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정치에 대한 순수하게 형식적이거나 법적인 표상은 어떤 것이든 간에 결코 해명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역사와 실천의 지반에 옮겨놓을 경우, 이것은 바로 정치적인 것의 본질적인 특징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적 발명들 및 권리의 획득, 좀 더 확장되고 좀 더 구체적인 [권리에 대한] 관점들에 따라 권리와 의무의 상호성을 재정의하는 것 등은 항상 이미 주어져 있는 영원한 시민권 “이념”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명이라는 관념을 민주주의의 보존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권에 대한 모종의 정의를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민주주의는 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민주주의에 고유한 “탈-민주화”(dé-démocratisation)에 저항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평등자유의 원리와 결부된 봉기적 계기는 단지 제도들을 정초할 뿐만 아니라 제도들의 안정성의 적이 되기도 한다(Balibar 2010b, pp. 20-21).

 

한편으로 그는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을 따라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탈민주주의”의 핵심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을 긍정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 관한 종말론적 관점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맞고 있는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이 아니며, 그 이유는 정치적인 것 자체 내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근대 정치 제도의 위기 요인을 이전까지 국민사회국가의 모순에서 찾았지만, 최근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민권 사이의 이율배반적 관계에서 그 존재론적 뿌리를 찾는다. 곧 한편으로 시민권 헌정은 자신의 토대로서 민주주의에 근거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급진적인 보편성을 온전히 수용할 경우 그 제도적 틀 자체가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제한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권 헌정으로서 민주주의 제도는 그 유한성으로 인해 배제의 경향을 내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탈민주화의 궁극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발리바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과제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과제는 근대 민주주의에 고유한 배제에 맞서는 새로운 제도적 양식과 주체화 양식의 발명에 달려 있다고 역설한다. 아마도 이것을 일종의 봉기적 시민성 또는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의 발명의 문제로 번역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좀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2013 참조).

  

발리바르 문제설정의 세 번째 특징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주체화의 문제를 다수자 전략과 소수자 전략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다수자 전략과 소수자 전략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주체화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은 사실은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에 관한 발리바르의 성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발리바르가 보기에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는 단순히 사회학적이거나 경제학적인 또는 심지어 군사학적인 요인으로 충분히 해명되지 못한다. 곧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사회제도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더 뛰어난 체제였다든가 아니면 군사력을 비롯한 무력에서 더 우월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체제 경쟁의 관점에서 혁명의 실패를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발리바르가 주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혁명을 실패하게 만든 것 … 그것은 단지 혁명의 적들의 막강함이나 혁명 당시의 불리한 조건 때문만이 아니라, 혁명의 내적 취약함과 고유한 맹목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치는 김에 말하면 내적 취약함과 고유한 맹목은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개혁의 본질이 주어진 상황 내의 세력 관계 속에서 자리 이동을 교섭하는 것이라면, 혁명의 본질은 우월한 적대 세력의 초과적인 힘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얻음으로써 적대 세력과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변혁하지” 못한 사회주의 혁명들의 무기력의 근본 원인들 중 하나(또한 그 수수께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과관계”에는 아무런 합리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혁명들이 발생했던 폭력 상황의 반작용 및 도착적 효과를 이론적·실천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절대적 무능력에 있다고 보는 것이 개연성이 있다. 혁명 운동이 직면했던 반혁명적 폭력만이 아니라 혁명 운동 자신이 행사했던 폭력, 특히 혁명 국가의 틀 속에서 정당화되고 제도화되었고 혁명의 “내부의 적”을 일소하기 위해 확장됐던 폭력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반작용 및 도착적 효과들인데, 이것은 장기적인 외상적 효과를 낳았지만 대부분 그 자체로 부인되곤 했던, 진정으로 자살적인 과정이었다(Balibar 2010a, pp. 157-58).


곧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폭력 및 반(反)혁명적 폭력을 철폐하기 위해 자신이 실행했던 대항폭력의 도착적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 및 외상을 낳았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관점이다.

  

이는 물론 이제 더 이상 혁명과 같은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체제 내부의 개혁이라는 과제, 민주주의의 점진적인 제도적 개선과 보완이라는 과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발리바르는 자신의 민주주의론의 논점을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구호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이는 순진한(또는 난독증에 빠진)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 내의 개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에 대한 성찰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발리바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란, 어떻게 혁명을 문명화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 변혁의 중심에 반폭력의 문제설정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왜 혁명의 시간이 지나갔다고 상상해야 하는가? 우리가 혁명이라는 이름을 유일한 모델에, 곧 미리 규정된 정치 조직과 이데올로기적 동원, 권력 장악 전술 및 대항권력 전술 등의 형태들과 결부시키지 않고, 다만 그것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자생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지배 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삼는, 또는 변화를 변화시키는 것, 다시 말해 자생적인 역사적 변혁들을 굴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집합적인 정치적 운동이라는 관념과 결부시킨다면, 나로서는 혁명이라는 역사적 전망을 배제할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사회적 지배 구조—경제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아니면 성적인 것이든 간에—가 그 자체로 해체될 것으로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러한 지배가 산출한 결과들의 악화를 폭력에 대한 의존 없이도, 또는 그 자체로 폭력적인 억압의 대상이 되는 어떤 사회 세력의 폭력화 없이도 항상 모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회고적으로 볼 때, 따라서 앞으로의 전망을 생각해볼 때—어떻게 혁명 운동을 내부로부터 “문명화”할 것인가, 어떻게 내가 시민다움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반폭력을 사회 변혁의 폭력의 중심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극히 중요하며, 극히 현재적이라고 평가한다(Balibar 2010a, p. 158-강조는 발리바르).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주체화의 문제를 다수자의 전략과 소수자의 전략의 견지에서 사고하려는 발리바르의 시도를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발리바르는 폭력에 맞서는 반폭력의 정치에서 세 가지 전략을 구별한다. 하나는 헤겔이 지틀리히카이트(Sittlichkeit)[이 개념은 보통 “인륜성”이라고 번역되는데, 우리말에서 ‘인륜’이 전근대적인 신분제에 입각한 도덕적 질서를 뜻하는 데 반해, 헤겔이 말하는 지틀리히카이트는 고대적인 전통의 윤리적 질서를 근대성의 관점에서 개조하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번역어는 헤겔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는 번역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틀리히카이트라고 음역(音譯)해서 사용하겠다.]라는 개념을 통해 이론화한 폭력의 문명화 전략으로, 발리바르는 이를 헤게모니의 전략이라고 부른다. 근대 법치국가의 구성을 통해 역사적 폭력을 문명화하려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헤게모니의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헤겔의 역사철학은 단순히 섭리론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오히려 헤겔의 진의는 역사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우연적 폭력들이 근대적 법치국가(Rechtsstaat)가 대표하는 이성의 힘을 통해 제거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역사적 진보(이성의 승리)를 표현한다는 점이다. “역사적 과정은 처음에는 필연에 부응하지 않는 수많은 우연적 사건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것들은 점차로 이러한 필연성에 부응하게 되며, 결국 모든 시민의 행위가 합리적인 규범에 따르도록 규제할 수 있는 헌정 국가가 나타내는 운fortuna의 전면적 제거에 도달하게 된다.”(같은 책, pp. 74-75). 따라서 헤겔 관점의 핵심에 존재하는 것은 역사가 일종의 “전환”(conversion)이라는 생각이다. “‘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승화 내지 정신화도 의미할 수 있지만 그것은 특히 폭력이 (역사적으로) 생산적인 힘으로 전화되는 것, 파괴력으로서의 폭력의 소멸과 제도들의 내적인 에너지 내지 역량으로서의 재창조를 의미한다.”(같은 책, p. 61).

  

헤겔의 역사철학이 갖는 긍정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발리바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한계를 지적한다. 하나는 그의 역사철학은 진보와 정상화를 동일시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시민다움의 전략, 곧 헤게모니의 전략이 기본적으로 위로부터의 전략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헤겔의 주체화 전략에 대한 현대의 두 가지 대안을 각각 다수자 전략과 소수자 전략으로 개념화한다. 다수자 전략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고전적인 해방 운동에서 나타나는 주체화의 전략이다.


내가 다수자 전략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마요리타스(maioritas)에 대한 로마 및 중세의 용법 이래 이 개념이 지닌 두 가지 의미, 곧 “최대의 숫자”와 “결정의 자율성”(연령 및 사회적 신분과 연계돼 있는)이라는 의미는, 소수의 억압자에 의해 부과되는 지배로부터 대중들의 해방이라는 관념 속에 현존해 왔으며, 그와 동시에 다수를 구성하는 개인들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의지 및 심지어 그 자신의 신체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예속자 내지 “소수자/약소자의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을 표상해 왔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가 탁월하게 표현한 것처럼, 해방을 통해 폐지되는 예속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해방은 “소수자들/약소자들 자신의 책임”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를 동일한 해방 운동의 두 측면으로 이해하는 근대 정치 이론들은, 사회의 대중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들의 지배나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이전에, 또는 적어도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자발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 또는 지배의 중심에 놓인 야만을 물리쳐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강조해왔다(같은 책, p. 177).


발리바르는 다수자 전략이 여전히 현대의 해방운동 및 정치적 주체화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직면해 있는 아포리아에 주목한다. 그것의 핵심에는 “피지배자들의 다수-되기”가 존재한다. 발리바르의 이 개념을 피지배자들의 비지배적인 주체-되기라는 문제로, 곧 피지배자들이 이전과 같은 지배 계급으로 구성되지 않으면서 헤게모니적인 집단적 주체가 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로 번역해볼 수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포리아적인 것이다. 하나는 이러한 다수-되기가 “혁명의 시기에서부터 단순히 대항권력의 행사(“강제” 권력의 전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 내지 “시민다움”(이탈리어 civilità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의 발명”(같은 책, p. 178)을 나타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해방운동이 단일한 중심을 갖지 않으며, 다수의 이질적인 운동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수자 전략의 근본 쟁점이자 아포리아를 이루는 것은 “서로 이질적일 뿐만 아니라 양립 불가능한 상이한 해방 운동들 사이의 갈등(왜냐하면 각각의 해방운동은 보편적 목표에 대한 정의와 더불어, 프롤레타리아, 여성, 식민지나 신식민지 인민 등과 같이 혁명 주체를 구성하는 “보편 계급”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기 때문이다)을, 자신을 구성하는 각각의 성원들의 해방이 그들의 공동의 해방에 기여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인민”으로 역전시키는 것으로 귀착”(같은 책, p. 179)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수자 전략의 곁에는 발리바르가 소수자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 특히 푸코와 (후기) 들뢰즈-가타리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전략은 다수자 전략이 지닌 난점과 맹목에 대한 비판 및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해방 운동에 대한 푸코와 들뢰즈-가타리의 비판의 핵심에는 ““국가 장치”와 국가 권력의 폭력에 맞서고 그것을 소멸시키려고 했던 혁명 운동의 역사가 이러한 폭력을 재생산하거나 모방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곧 고전적인 해방운동은 지배자들과 동일한 도구들, 동일한 권력 기술, 동일한 조직과 규율 형태로 맞서 싸웠으며, 이 때문에 “해방에 대한 욕망이 강렬해질수록 예속은 더욱 더 치유 불가능하게 될 것”(같은 책, p. 180)이라는 비판이다.

  

소수자 전략의 비판을 집약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분석이다.


농촌의 파시즘과 도시 내지 도시 구역의 파시즘, 젊은이의 파시즘과 퇴역 군인들의 파시즘, 좌익의 파시즘과 우익의 파시즘, 커플, 가족, 학교나 사무실의 파시즘, 이들 파시즘은 모두 미시적인 검은 구멍, 즉 일반화된 중앙 집중적인 거대한 검은 구멍 속에서 공명하기 전에 자체로서 효력을 가지며 다른 것들과 소통하는 미시적인 검은 구멍에 의해 규정된다. 각각의 구멍에, 각각의 거처에 전쟁 기계가 장착되면 파시즘이 존재하게 된다. … 파시즘을 위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분자적이거나 미시정치적인 역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중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유기체가 아니라 오히려 암적인 몸체인 것이다. 미국 영화는 종종 이러한 분자적 초점들, 즉 패거리, 갱, 분파, 가족, 마을, 구역, 교통수단 등 아무것도 모면할 수 없는 파시즘을 보여주었다. 욕망은 왜 스스로 억압되기를 바라는가, 욕망은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바랄 수 있는가? 이처럼 포괄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미시 파시즘밖에는 없다. 확실히 대중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중들은 일종의 마조키스트적인 히스테리에 빠져 억압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대중들은 이데올로기적 속임수에 기만당하는 것도 아니다. 욕망이란 필연적으로 여러 분자적 층위들을 지나가는 복합적인 배치물들과 절대 분리될 수 없으며, 이미 자세, 태도, 지각, 예감, 기호계 등을 형성하고 있는 미시-구성체들과도 분리될 수 없다. … 좌익 조직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미시 파시즘을 퍼뜨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유지시키고 배양하며 극진히 여기는 자기 자신인 파시스트,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분자들을 갖고 있는 그러한 파시스트를 보지 않으면서 그램분자적인 충위에서 반-파시스트가 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Deleuze & Guattari 1980, pp. 261-262; 410-411쪽)


들뢰즈와 가타리, 또는 푸코의 소수자 전략이 따라서 고전적인 해방운동이 나타내는 다수자 전략과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전략이 평온하게, 아무런 갈등 없이 결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들뢰즈-가타리 및 푸코가 고전적인 다수자 전략의 중심에 놓여 있는 다수자 주체로서의 인민(또는 프롤레타리아)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불신을 표현하고 있을뿐더러, 또한 변증법 자체를 정상화의 논리로, 따라서 해방운동을 예속운동의 도착으로 이끌어나는 일종의 지배의 간지로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들뢰즈-가타리와 푸코가 각자 고전적인 다수자 전략의 맹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또한 그 나름의 방식대로 새로운 해방 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음에도, 정상화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비정상화의 운동, 예속의 메커니즘으로서 정체화(identification)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탈정체화의 운동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들뢰즈-가타리와 푸코가 본인들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신자유주의적인 (반혁명적) 해방의 이론가로 비판받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발리바르 주체화 이론의 중요성은 이처럼 고전적인 해방운동의 현실성 및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대안 운동 및 그 이론들의 강점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에서 나타난 ‘포스트 담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불모의 대립 및 경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리바르의 작업이 귀중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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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 2015-03-10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balmas 2015-03-10 11:50   좋아요 0 | URL
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eGray 2015-10-1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저술을 읽을 때마다 늘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되는 독자입니다.

이 글을 뒤늦게 지금 접하게 되어 즐겁게 읽던 와중 한 가지 정말로 사소한 의문이 들어 조심스럽게 댓글을 적습니다.

본문 2절에서 푸코의 ˝conduit˝의 역어를 ˝품행˝이 아니라 ˝행위˝로 선택하셨는데, 혹시 본문에 언급하시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요? 이런 질문을 드린 까닭은 물론 제게는 ˝품행˝이 아주 만족스러운 역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럭저럭 수긍할 수 있는 선택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안전, 영토, 인구>의 국역본이 당장 곁에 없어서 급한 대로 영역판을 참고한다면 푸코는 8강 초반부 conduit(영어로 conduct)의 정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단어의 용례를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반에서부터 찾고 있습니다. 푸코 자신의 설명에도 반영되어 있지만, 이 단어의 독특함은 그것이 어떤 사회적/도덕적 규범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예를 들어 이 시기부터 18, 19세기까지를 다루는 영문학 전공자라면(저는 18-19세기 영문학 및 그에 필요한 사상사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conduct라는 단어에서 곧바로 (저는 ˝내훈서˝가 좀 더 어울리는 번역어라고 생각하는) 품행서(˝conduct book˝ / 프랑스어로는 ˝livre de conduite˝ 또는 ˝manuel de conduite˝로 옮기는 듯하네요)를 떠올릴 것입니다. (이 댓글을 볼 제3자를 위해서 부연하자면) 주로 여성들에게 특히나 가정에서의 `올바른`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도서 장르, 영국에서는 혁명기 이후 17세기 말부터 폭발해서 19세기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장르 말이죠. 18세기 말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참고해도 ˝conduct˝는 비록 그 자체가 사회적 규범에 일치하는 행위는 아닐지라도 규범적인 판단, 예컨대 예의범절에 부합하는지의 여부(propriety)에 대한 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저는 푸코가 이 단어를 (특히 역사적인 설명에서)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주어진 도덕체계가 이미 전제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행위로 이해하게 됩니다; counter-conduct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conduct를 ˝품행˝으로 번역할 때, 저는 한국어에서의 그 어감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이런 맥락을 그럭저럭 반영하는 역어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제게 좀 더 `중립적인` 표현처럼 보이는 ˝행위˝라는 역어에 곧바로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푸코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도 아니며 제 설명이 기본적으로는 영국사회에나 해당될 뿐 동시대 프랑스의 언어생활에 반드시 적용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더불어 사회학/사회철학/정치철학에서 ˝행위˝라는 표현이 갖는 함의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불어 푸코가 conduit를 어디까지 확장시켜 자신의 개념으로 삼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당 표현에 대한 저의 이해 및 역어선택을 고집할 자신은 없습니다. 제가 상술한 바를 선생님께서 고려하시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 않기에, ˝행위˝라는 역어가 좀 더 잘 들어맞는 이유를 짧게라도 답변해주신다면 저도 좀 더 편한 기분으로 conduit에 대해 입장정리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balmas 2015-10-11 22: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주 흥미롭고 유익한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 저도 충분히 수긍하고 ˝품행˝이라는 번역이 갖는 장점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conduct/conduite 개념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풍부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저도
공부가 됐습니다.
다만 제가 각주에서 이 개념의 한국어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conduite라는 개념이 일종의 도덕적, 규범적 코드 속에서 이해되고 실행되는 행위 방식을 뜻한다는 점에서 보면 `품행`이라는 번역어가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푸코가 이 개념을 [주체와 권력]을 비롯한 몇몇 텍스트에서 일반화하려고 할 때, 푸코는 이 개념의 역사적 맥락을 떠나 조금 더 일반적인 행위이론 속에서 이 개념을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제가 각주에서 이 용어의 번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도 바로 [주체와 권력]이라는 텍스트를 인용하고 논의하는 맥락에서였습니다.

2) 제가 ˝일반적 행위이론˝이라고 한 것은 바로 <주체화>(subjectivation)의 문제설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1970년대 푸코가 시도한 계보학 작업에서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예속화> 또는 <예속적 주체화>라고 번역할 수 있는 assujettissement(불어 발음대로 읽으면 `아쒸제띠스망` )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conduite 개념은 <예속적 주체화>의 틀에서 이해할 때와 <주체화>의 틀에서 이해할 때 조금 상이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2-1)
<예속적 주체화>의 틀에서 이해하게 되면, conduite/conduct는 바로 지배적인 규범, 도덕적 코드에 따라 규격화된 행위, 실천 등을 뜻하게 되고, 이런 맥락에서 보면 <품행>이라는 번역어가 잘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contre-conduite의 경우에는 이러한 <품행>에 전제되어 있는 도덕적, 규범적 코드에 저항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행위가 되겠고, 따라서 <대항-품행>이라는 번역어가 적절할 듯합니다. 알튀세르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미셸 페쉬(Michel Pecheux)는 <자명한 진실>(1975)이라는 책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발전시키면서 <대항-정체화>(contre-identification)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바 있는데, <대항-품행>과 비슷한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
반대로 <주체화>의 틀에서 이해할 경우, <품행>이나 <대항-품행> 같은 용어들은, 그것들이 기존의 도덕적, 규범적 체계에 대해 저항하고 반역한다고 해도,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러한 도덕적, 규범적 체계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푸코가 1980년대 초에 [주체와 권력]을 비롯한 몇몇 텍스트에서 제안하려고 했던 것은, <예속적 주체화>의 틀 바깥에서 conduite/conduct와 sujet/subject를 사고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페쉬의 경우에는 contre-identification과 구별되는 desidentification이나 desubjectivation 같은 개념으로 이런 길을 사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바 있습니다.

3) 그런데 이렇게 볼 때 conduite/conduct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번역할까 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저 <품행>이라는 번역이 어떤 경우에는 푸코의 의도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지만, <주체화>의 문제설정에서 볼 때에는 푸코의 conduite 개념의 함의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반면 <행위>라는 번역은 <품행>에 비해 conduite 개념에 더 넓은 여지를 마련해주기는 하지만, 막연하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말에서 <행위>, <행동>, <행태>, <활동>, <작용> 등은 개념적으로 아직 미분화된 상태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제가 각주에서 지적한 것은 새로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한 가지 문제제기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