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가지로 바쁘다보니 26회 원고를 아직도 올리지 못했네요. 


26회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을 다뤘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9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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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Thanks 2015-03-1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한겨례 마지막 연재 `발라바르` 편 드디어 읽었습니다.
장장 1년간의 연재,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야 이루 말 할 수없이 고생하셨겠지만,
그 노고 덕분에 전 20세기 사상의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 그 희마한 윤곽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것은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젠 조금은 짐을 내려놓으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balmas 2015-03-13 11: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동안 죽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어주고 조언해주는 분들 덕분에 무사히 연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14 한겨레 기획연재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25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의 공화주의론을 다루었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71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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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아인 2015-02-0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명관 씨의 시원한 한마디를 적어 봅니다.

△‘민족’, ‘개인’, ‘주체’, ‘자아’ 등이 좁은 의미의 ‘모던’으로 정리되기보다는 ‘복수의 근대성’처럼 폭넓게 봤을 때 서구적 의미와 달리, 다양한 모더니티의 이름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서구적 흔적을 모두 폐기할 수는 없지 않나.

(기자의 질문)


꼭 ‘근대’를 찾아야만 하는가. 그것을 찾지 않으면 역사나 문학사 연구가 안되나? 왜 이렇게 근대에 골몰하는가. 한국사의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 만큼 ‘근대’를 찾았으면 이제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복수의 근대’, ‘다양한 모더니티’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그것은 이미 서구의 근대를 보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876년 개항 이전에는 서구의 근대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역사에서 근대적인 것을 찾는 것은 망발이다. 우리가 경험한 근대는 1876년 개항 이후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근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후 1세기 이상의 장구한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를 근대화했던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시각에서 1876년 이후 강제로 주입된 근대 밖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강명관 씨의 대답)


내가 보기에는 우문현답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복수의 근대성˝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구사를 주장하는 그레고리 벤틀리나 국방대학교의 홍태영 같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주장하거나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차크라바르티도 자기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그의 문제의식을 왜곡하고 있다.

차크라바르티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강명관에 가깝다.

왜냐고? 차크라바르티는 ˝근대˝를 <반식민적인> 감사의 정신으로만 얘기할 수 있다고 반어적으로 비꼬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아인 2015-02-06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화주의는 국민이 주권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이 서로 이른바 평화롭게 권력을 나눠 갖는 것.)

민주주의는 인민들 간에 평등한 관계 즉 권력이 없는 관계를 말한다.

권력이 없으므로 지배받는 자도 지배하는 자도 없다.

서기 1871년의 프랑스 파리에서는 공화주의가 민주주의를 박살내기도 했다. (파리 코뮌)

차아인 2015-02-06 18: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러고 보니 나폴레옹 1세나 나폴레옹 3세도 공화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도 굳이 말하자면 공화주의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공화주의적 독재자!

차아인 2015-02-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혼동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지만 공화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

흥미로운 것은 공화주의는 국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데 민주주의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 발마스 님은 다르게 얘기하실 것이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화주의를 너무 좋아하지 말기를 바란다.

차아인 2015-02-06 18: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내가 발마스 님에게 기대하는 것은 발마스 님이 기존의 번역본을 욕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자본을 먹자> 번역본이다.

그래! 前 大統領 이명박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을 많이 먹었지!

차아인 2015-02-0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5회. 필립 페팃-공화주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나l2014 한겨레 기획연재


(나의 대답)


아니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겨레는 ˝순한글주의˝라는 망상에서 벗어나라!

... 2015-03-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4년 1월에 시작한 연재가 이제 하나의 연재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힘내시고...
저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 기다립니다...감사합니다_ _)


balmas 2015-03-09 20:42   좋아요 0 | URL
예 맞습니다. 오늘 마지막 발리바르 원고를 신문사로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빠른 시간 내에 책으로 정리해서 출간하도록 하겠습니다.
 

2014 한겨레신문 기획연재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24회 안토니오 네그리 편입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748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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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아인 2015-02-0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스 님이 쓰신 유럽의 지방화에 대한 서평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덤으로 안토니오 네그리에 대해 한마디)



˝反植民的 感謝의 精神으로만 그것의 地方化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근대성을 유럽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탈유럽적인 것으로도 볼 것인가?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유럽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선물처럼 ˝수용˝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차크라바르티가 말했듯이 ˝불가결하면서도 부적합하다˝ 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보편성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지요.


발마스 님이나 안토니오 네그리는 보편성이라는 ˝와인˝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차크라바르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발마스 님의 그러한 생각이나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마스 님의 서평을 읽어 보니 제가 보기에는 엉뚱하게 차크라바르티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차크라바르티의 주장은 ˝반식민적˝ 감사의 정신으로만 근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초점은 반식민적인 것인데 발마스 님이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를 읽는 방식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들군요.

발마스 님의 방식대로 읽으면 그것은 오히려 <유럽을 중심화하기>가 아닐까요?


차아인 2015-02-0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차크라바르티의 (˝反植民的 感謝의 精神으로만 그것의 地方化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말은 조롱하고 비꼬는 反語法인 것이지요.

아무래도 그 말이 反語法이 아니라고 이해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차아인 2015-02-0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차크라바르티에 의하면 역사주의는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나의 통일체이자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념입니다.

그는 그 역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말을 하고 있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지금˝)를 <환원불가능하게 하나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장소˝를 무시하거나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 다중 개념은 홉스봄이나 톰슨이 말하는 단일하고 통일적인 계급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장소˝를 간과하는 ˝역사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 자체가 역사주의에 사로 잡혀 있으므로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에 갇혀 있는 또는 유럽중심주의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시민행성에서 다음과 같은 강좌가 있어서 안내해드립니다.

 

 

 

시민행성 겨울 강좌: 생각할 때 시민이다 

 


<1/12(월), 함돈균>

'임금의 법에는 없으나 신의 법에는 있는 것- 장자의 도와 신의 법, 우리 시대 한국문학이 묻는 것'

장자는 도의 관점에 서면 사물은 분별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신의 관점에 서면 인간들은 어떻게 보일까요. 임금의 법에는 없으나 신의 법(도)에는 있는게 무얼까요. 광화문광장에서 매달 시인들이 스님의 독경처럼 시를 낭독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 한국문학을 통해 이 수수께끼 같은 물음에 답하며, 시대정신으로서 '시민'을 다시 생각합니다.


<1/19(월), 박수밀>

'홍대용과 박지원의 창의 지성, 새 길을 열다'


홍대용은 전근대 우리 사회에서 중화주의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입니다. 박지원은 중세성리학의 자장을 넘어서 사고한 조선의 유일한 문장가입니다. 혁신적 사상가이자 과학자인 홍대용과 세계 수준의 문호인 문장가 박지원이 당대의 세계관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그들만의 창의적 지성을 통해 '생각하는 시민'의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26(월), 이원>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몇 편의 시와 루시안 프로이드의 그림'


"목에서 얼굴이 뻗어나가며/보라는 것입니다"에서 시작합니다. 몇 편의 시와 루시앙 프로이드의 그림을 함께 읽고 보며 진실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엇이 지금 나타날 차례인지 비로소 알게 됩니다.


<2/2(월), 진태원>

'시민, 을의 집합'


'시민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정해진 불변의 답은 없습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온 이래 각 시대는 자신이 직면한 정치적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 그때마다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재정의해왔습니다. 우리 시대에 걸맞은 시민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이 강의는 잠정적으로 그것을 '을의 집합'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규정을 통해 현재 한국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원과 그 돌파구를 성찰하기 위한 실마리를 마련해 보고자 합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 주소로 가보시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itizenplanet.or.kr/bbs/board.php?bo_table=new_08&wr_i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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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리즘 총서가 생각보다 출간 속도가 지지부진한 편이었는데,

 

올해는 좀 의욕적으로 여러 권 출간해볼 계획입니다.

 

아래에 있는 저작들이 올해 독자들과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저작 목록입니다.

 

-------------------------------------------------------------------------

 

 

 

제프리 쉬냅, 매튜 티우스, 양진비 옮김, [대중들]

 

 

 

 

 

 

 

 

 

 

 

 

이 책의 원제는 Crowds로, 말 그대로 대중, 대중들, 군중, 민중 등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할 만한,

 

일종의 대중에 관한 백과사전 책입니다. 고대 그리스 및 중국에서부터 중국의 문화혁명, 현대 주식시장에 이르기까지

 

대중과 관련된 수많은 개념, 역사적 사실, 이론적 쟁점을 수십 명의 필자가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중에 관해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정치학자인 양진비 선생이 이 방대한 책을 꼼꼼하게 번역해주셨습니다.

 

 

 

 

장-뤽 낭시, 필립 라쿠-라바르트, 홍사현 옮김, [문학적 절대]

 

 

 

 

 

 

 

 

 

 

 

 

 

 

 

이 책은 서양 문학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책입니다.

 

탈구축 이론의 대가들인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가 독일 낭만주의의 핵심 텍스트들을 발췌 번역하고

 

빼어난 서론 및 보충 해설을 붙여 출간한 책입니다.

 

독일 낭만주의에 관한 저작인 만큼 독일어를 잘해야 하고 불어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독일 낭만주의에서

 

즐겨 다루는 서양 고전 문학에도 밝은 역자만이 이 책의 번역을 감당할 수 있는데,

 

연대 철학과 강사인 홍사현 선생님이 이 힘든 작업을 맡아서 수고해주셨습니다.

 

문학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이라면 기대하셔도 좋을 책입니다.

 

 

 

토마스 렘케, 심성보 옮김, [생명정치 입문]

 

 

 

 

 

 

 

 

 

 

 

 

 

 

 

 

토마스 렘케(Thomas Lemke)는 푸코 사상이나 생명정치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아주 낯익은 이론가입니다.

 

특히 렘케는 푸코의 생명정치론이나 신자유주의론이 담긴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출간되기 이전에 이미

 

녹음 자료를 분석하여 푸코 통치성 이론에 관한 탁월한 박사 논문을 쓴 독일 연구자로,

 

그 이후 푸코의 통치성 이론이나 생명정치론에 관해 주목할 만한 작업을 수행해왔습니다.

 

이 책은 생명정치론에 관한 가장 좋은 연구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국내의 생명권력, 생명정치 연구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다르도, 오트르망 옮김, [새로운 세계이성]

 

 

 

 

 

 

 

 

 

 

 

 

 

 

크리스티앙 라발과 피에르 다르도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사회학자(라발)이자 철학자(다르도)

 

입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공동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목할 만한 공동 저작 및 단독 저서를

 

출간해왔습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관한 푸코의 분석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훨씬 더 광범위하고

 

정치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 분석으로서는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입니다.

 

 

 

 

 

코스타스 두지나스 & 슬라보예 지젝 엮음, 김정한 외 옮김, [공산주의라는 이념 I]

 

 

 

 

 

 

 

 

 

 

 

 

 

 

이 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우가 주창하여 지난 2009년 런던에서 개최된

 

"공산주의라는 이념" 학술대회의 발표 자료를 묶은 책입니다. 바디우와 지젝 이외에도 네그리, 랑시에르,

 

낭시, 바티모 같은 서양 인문학의 대가들이 참여한 저작입니다.

 

이들의 논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독자들 각자의 몫이겠지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해방의 정치를 사유하기 위한 서양 학계의 최신 작업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루이 알튀세르 외, 김은주, 안준범 진태원 옮김, [자본을  읽자]

 

 

 

 

 

 

 

 

 

 

 

 

 

 

올해가 [자본을 읽자]가 출간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올해 이 책을 완역한 뒤

 

이 책과 관련된 학술 모임을 갖는 것이, 올해 저의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부분적으로 지난 1990년대에 번역된 바 있지만, 번역의 질도 별로 좋지 못하고

 

부분적인 번역이어서 이 책의 범위와 가치를 음미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피에르 마슈레, 로제 에스타불레 5명의

 

기고문을 모두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은 두 말할 나위 없이 20세기 후반에 출간된 [자본]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저서입니다.

 

이 책이 알튀세르 사상을 재평가하고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다시 한번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존 맥코믹, 함규진 옮김, [마키아벨리적 민주주의]

 

 

 

 

 

 

 

 

 

 

 

 

 

 

이 책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존 맥코믹의 저작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옹호자가 아니라 공화주의자다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수는

 

단순히 공화주의의 옹호자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급진적인 민주주의의 주창자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중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급진적인 옹호자로서의 마키아벨리의 상을

 

제시함으로써 이 책은 영미권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책이 마키아벨리를 새롭게 사고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재조명하는 데도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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