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 2판 역자 서문을 올립니다.
2005년 초판이 나온 뒤 근 10여 년만의 재출간입니다.
이 책의 재출간을 기다려왔던 독자분들께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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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정치 2판 역자 서문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몇몇 스피노자 연구 문헌을 편역한 [스피노자와 정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5년이었는데, 이제 10여 년 만에 2판을 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더욱이 2판은 역자가 기획하고 있는 “프리즘 총서”의 한 권으로 출간할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더 감회가 깊다.
1판 「역자 해제」에서 나는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이 근 10여 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발리바르의 저작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발리바르는 1980~9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였지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역사적 마르크스주의가 종언을 맞이하던 시기에 우리나라에 수입된 ‘포스트 담론’이 국내 인문사회과학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알튀세르와 더불어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거의 잊혀져간 인물이었다.
학부 4학년 당시 우리나라에 막 번역ㆍ소개된 [역사유물론 연구]를 통해 발리바르의 저작을 처음 접한 뒤 철학과 정치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고, 이후 그의 작업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의 사상의 현재성을 여러 차례 재확인하곤 했던 역자로서는 이러한 사정이 늘 안타깝고 아쉬웠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스피노자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마르샬 게루, 질 들뢰즈, 알렉상드르 마트롱 같은 스피노자 연구의 대가들과 더불어 역자의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피에르 마슈레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연구를 번역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스피노자의 철학이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독자들에게 생소했던 2000년대 초반 무렵, 상업적인 성공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 출간을 받아줄 만한 출판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두 권의 책을 흔쾌히 맡아준 이가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사장이었다. 그의 열정적인 관심과 도움이 없었다면, 두 권의 책이 출판되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피노자에 관한 학위논문을 마치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 직장을 얻으면서 역자는 학위논문을 쓰느라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민주주의와 정치철학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론가들의 저작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발리바르의 여러 저술을 다시 숙독하게 되었고,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를 사고하는 데 그의 작업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 아래 그의 책을 3권 더 번역하게 되었다. 또 앞으로 그린비 출판사에서 그의 책을 몇 권 더 번역해서 출간할 예정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난 20여 년 동안의 역자의 지적인 삶의 상당 부분은 발리바르 저작에 대한 공부와 번역이 차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0~11년 발리바르는 그의 지적 이력에서 한 획을 긋는 주요 저작들을 잇달아 출간하면서 구미 학계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평등자유명제]가 민주주의 정치에서 봉기와 헌정의 변증법을 깊이 있게 탐구한 저작이라면,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강의 및 다른 연구들] (이 책은 2012년 난장출판사에서 그 발췌본이 역자에 의해 번역ㆍ소개된 바 있으며, 조만간 그린비 출판사에서 완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은 폭력론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민 주체]는 인간과 시민의 변증법, 보편성과 차이의 정치철학에 관한 기념비적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니 아마도 앞으로 역자의 지적 생애의 몇 년은 발리바르 저작의 번역으로 더 소비될 것 같다. 좋든 싫든 그것은 내가 피하기 어려운 길이다.
상업성 여부와 관계없이 이 책의 초판 출간을 흔쾌히 맡아주었던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사장과, 다시 한 번, 얼마 팔리지 않을 책이 분명함에도 좋은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그린비 출판사 박순기 대표 및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발리바르와 스피노자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2014년 여름 무더위의 그늘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