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내는 "민연 웹진" 7월호에 기고한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이 글은 사실 세월호에 관해 제가 쓰고 있는 짧은 책의 개요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개요인 만큼 비어 있는 부분도 많고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논점도 적지 않은데,

 

한번 공개를 해서 이런저런 비평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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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

 

 

증상과 해석

 

알다시피 철학자(또는 인문학자라고 해도, 아니면 더 나아가 그냥 학자라고 해도 좋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마르크스를 증인으로 삼아볼 수 있다. 청년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 사상계, 특히 젊은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포이어바흐에 관해 11개의 짧은 단상으로 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남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마지막 11번째 테제는 다음과 같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 n t e r p r et i e r t, es kömmt drauf an, sie zu v e r ä n d e r n) 따라서 마르크스는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왔을 뿐 세계를 변혁하려 하지 않은 철학자들을 고발하면서 철학의 지양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의 고발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그의 고발을 통해서도 철학자들의 일차적인 일은 세계에 대한, 사실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석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실을 하나의 증상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증상이란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태나 모양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실이나 현상 또는 상태나 모양을 증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을 어떤 병의 표현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은, 세월호라는 이름의 이 사건, 아직 적절한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무명의 이 사건, 증상으로서의 이 사건에 대한 한 가지 단상이다. 이 사건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의 증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글은 앞으로 계속 새롭게 해석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이 사건에 대한 한 가지 문제제기를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불운과 불의

 

먼저 불운(不運)과 불의(不義)라는 두 개의 범주에서 시작해보자.

 

정상적인 경우라면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신문 사회면에서 흔하게 접하는 불운한 사고로 그쳤어야 하는 사건이다.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에 운이 나빠 또는 선원의 어떤 실수로 인해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선원들의 침착한 대처와 해경의 신속한 대응으로 승객들이 모두 무사히 구조되어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어야 할 사고가 바로 이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냥 운이 나빠 즐거운 수학여행 날 겪게 된 작은 사고였고 살아가면서 어쩌다 한 번씩 겪는 재수 없는 일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세월호 참사라는 언론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끔찍한 참사, 비극적인 불의의 사건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단순한 배의 참사로 그칠 수도 있었음에도, 이번 사고는 수백 명의 생명, 그것도 아직 온전하게 자신의 재능과 인생을 펼쳐보지도 못한 수많은 고등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너무나 안타까운 참사로 변질되고 말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단순한 불운으로 그쳤어야 마땅할 이 사건을 불의의 참사로 만든 것일까?

 

객관적인 것, 주체적인 것, 반인간적인 것-치안 기계로서의 국가

 

세월호 참사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세 부류의 존재들이다.

 

우선 참사의 당사자인 세월호 운항사와 선원들이 존재한다. 만들어진지 수십 년이 된 낡은 배를 수입해서 제대로 안전관리 점검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배의 설계를 변경하고 과도한 선적을 마다하지 않은 해운사는 이 사고의 핵심적인 책임자라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차례 보도되어 많은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것처럼, 승객의 안전과 생명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들의 목숨만을 구하기 위해 속옷 차림으로 허겁지겁 제일 먼저 배를 빠져 나온 선장 및 선원들의 책임도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은 나중에 주검으로 발견된 요리사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동료의 안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목숨만 도모했다는 점에서 어떠한 윤리적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두 번째 핵심 책임자는 바로 정부 기관이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듯이 정부는 낡고 오래된 배가 아무런 제재 없이 운항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배에 관한 안전 점검 및 관리에도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더욱이 사건 당시 승객과 선원이 배의 침몰 소식을 알렸음에도 여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침몰하는 배에 다가와서도 승객 구출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해양경찰청은, 해운사 및 선원들과 더불어 이번 사건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만이 아니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신속하게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대책 본부를 구성하고 운영하지 못했고, 이처럼 끔찍한 사고를 접한 상황에서도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 및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여러 당국자 및 여당 국회의원들은 이번 사고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간주하려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이면서 국민들로부터 날카로운 비판과 불신감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주류 언론 역시 이번 사고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승객 전원이 구조됐다는 무책임한 보도를 한 것도 언론이고, 사고 현장에서 제대로 사고 수습이 진행되지 않음에도 마치 일사천리로 활발한 사고 구조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허위보도를 함으로써 사고 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불신을 자초한 것 역시 언론이었다. 더욱이 언론은 사건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보도에 치중했을 뿐이다. 또한 이번 사건이 시기상으로 인접해 있던 64 지방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건을 축소 보도하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임으로써 KBS 총파업이 벌어지고 사장이 해임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이번 사고의 책임자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이번 사고의 원인과 성격을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참사의 특징은 이번 사건이 단순히 객관적인 사고가 아니라 무엇보다 주체적인 사건,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소주체적인 사건이며, 더욱이 ()인간적인 폭력을 수반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과소주체성(영어로 표현한다면 ‘under-subjectivity’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부연하겠다.

 

이번 사고의 객관적 원인은, 세월호를 언젠가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던, 말하자면 간신히, 운 좋게 참사를 모면해온 배로 만든 해운사에 있으며, 또한 그러한 배가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운항하게 해준 관리 당국에게 있다. 배의 구조 및 운항에 대해 엄격한 규제와 철저한 관리 감독이 있었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가능성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주체적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고는 단순히 배의 침몰 사고로 그치고 사람들은 큰 문제없이 배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말 그대로 단순한 불운으로 그쳤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참사를 단순히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불의의 참사로 만든 것은 바로 주체적인 원인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사건을 주체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사고를 가능하게 만든 주체적 요인들은 선원들과 해경을 비롯한 정부 당국이었다. 선원들은 승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제일 먼저 배를 탈출함으로써 단순한 직업윤리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인 윤리를 저버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울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할 일반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많은 인명의 피해를 낳을 수 있는 대형 선박 사고 같은 커다란 사건에 직면했을 때 마땅히 발휘해야 할 위기 관리 능력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정부에게 돌아가야 할 책임의 몫은 엄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반인간적 폭력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 초기부터 정부의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세월호 사건을 단순한 교통 사고 중 하나로 지칭함으로써 피해자 가족 및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세월호와 관련된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폭언을 가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폭력은 아마도 세월호 가족에 대한 사복 경찰의 사찰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찰 행위 그 자체가 이번 사건의 중요한 증상을 이룬다. 팽목항에서부터 경찰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면밀한 사찰 행위를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고 많은 비난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사찰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는 어떤 종류의 사건이든 간에 그것이 국가의 치안에 동요를 불러올 수 있는 사건이라면, 국가는 항상 감시와 사찰을 벌인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적어도 한국이라는 국가는 일종의 치안 기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유일한 관심사는, 치안의 질서를 교란하거나 공백을 초래하는 사건사고를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처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분석과 평가 및 처리는 오직 치안 질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만 이루어질 뿐, 국민 개개인의 생명의 존엄함의 보호나 민주주의적 가치의 보존과 증진이라는 관심은 전혀 부재하거나 아니면 치안 기계의 성격을 은폐하는 단순한 수사법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처럼 국가를 치안기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세월호에 관한 정부와 여당의 무관심이나 가급적 하루빨리 세월호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덮고 다른 문제로 전위시키려는 수구 언론의 노력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국가의 반인간적 폭력의 중심에는 바로 치안 기계로서의 국가의 본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이처럼 치안 기계라는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일까? 국가는 처음부터, 원래 그런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고대의 어느 시기에 생겨난 국가는, 그 후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쩌면 자본주의 시대가 지나서도 여전히 치안 기계라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처럼 거대한 질문에 대해 이 글에서 제대로 답변하기 어렵다는 점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어쩌면 국가의 초역사적인 본질이 어떤 것인지 묻는 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부적절한 문제화(problematization) 방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거창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고 애쓰는 대신, 간략하게 처음 질문에 대답해 본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치안 기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면, 그것은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그것이 드러내는 치안 기계의 본성만큼 계급적인 성격을 띤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계급적인 국가라는 명제는 조금 부연이 필요한 주장이다. 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장하듯이,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위원회라는 것, 곧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역시 철저하게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관철하기 위한 도구이자 기계라는 것과는 약간 다른 주장이다. 실로 자본주의에서 국가들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관철하기 위해 애쓴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날마다 스스로 검증하는 명제다.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 하에서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름 하에서든 정부는 늘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자명한 주장인 그만큼 우리에게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별로 말해주는 바가 없다. 곧 왜 다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이면서 국가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설명해주지 못하며, 계급적인 국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사회주의 혁명의 한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으로도 별로 말해주는 바가 없다. 더욱이 사회주의 70년 역사의 공과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가가 치안 기계라는 성격을 띠는 것과 그것이 계급적 성격을 띠는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바로 여기에서 국가의 반인간적 폭력이 생겨난다고 우리가 가설 삼아 주장한다면, 이는 오히려 국가가 기본적으로 주체적인 것(아마도 영어로는 ‘the subjective Th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주체성이 줄어들고 심지어 소멸할 지경에 이르게 될 때, 국가는 그 객체적 사물성만이 남게 되며, 그때 국가는 적나라한 도구적 성격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강한 이들, 권력과 부를 소유한 이들이 손쉽게 활용하고 오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며, 자신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가동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폭력 기계가 된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이 드러낸 것,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주체성이 부재한다는 것,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일종의 검은 구멍이라는 것이 아닐까?

 

검은 구멍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는 늘 국가를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민등록증을 주고 병역 의무를 주고 세금을 걷어가고 복지를 실시하고 선거의 기회를 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 왔다. 그리고 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우리 대부분은 다행스럽게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외부의 적들의 침입에 맞서 때로는 전쟁까지 불사하는 것이 국가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또한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 앞에, 우리 이전에 주어져 있는 것으로 존재해 왔고, 또 그렇게 간주해 왔다. 그것은 단단한, 아마도 가장 단단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던 국가가 사실은 너무나 허망한 어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늘 그것이 우리 곁에 있다고, 우리의 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지만, 사실 그것은 커다란 공백이고 검은 구멍이었다.

 

국가가 검은 구멍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을 의미한다.

 

첫째는 국가의 놀라운 무능력이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국가는 전능한 존재로 군림한다. 국가는 막강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국민이 지닌 기본적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고 병역을 부과할 수 있고 세금을 걷어갈 수도 있다. 또한 개인이나 집단이 감히 꿈꾸기 어려운 거대한 사업을 벌이고 국민 개개인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적어도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 뚜렷하게 드러내 주었다.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무역 대국이라고 늘 자신을 홍보하지만, 현실은 한 사람의 국민의 생명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였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것은 전능한 것으로 믿었던 국가가 사실은 지극히 무능력한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국가가 검은 구멍이라면, 이는 국가가 우리 편, 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대중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이처럼 국가가 피해자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고 사고 수습 및 사후 처리에서도 무능력을 보이는 것이 단순한 무능력이 아니라 무의지의 표현이라는 점. 곧 국가는 단지 구조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조할 생각이나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사건에 대하여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안 기계로서의 국가가 가장 큰 관심과 공력을 기울이는 것은 더 이상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이 사건의 위상이나 의의를 될 수 있는 한 축소하려 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경찰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세월호 관련 특별법 제정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이나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사건이 대충 무마되고 마무리되어 그냥 빨리 잊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질서와 치안이 유지되면 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대중적 분노를 일으킨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것은 아무런 책임 의식도 능력도 없는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시간을 벌기 위해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이었던 승객들의 순진함을 이용한 명령이었다는 점 때문에 생겨난 분노이고 안타까움이었지만, 그것은 곧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리키는 환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학생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저항적으로 나섰다면, 그들이 조금 더 말을 잘 듣지 않는, 명령에 고분고분하게 순종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면, 그들이 한 명이라도 더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은, 사실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 자신의 정치적 존재론의 위상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우리를 위한 국가는 없다, 가난한 나를 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다음 차례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그 분노의 원천이었을 터이다. 과연 세월호 승객들이 안산의 단원고 학생들이 아니라 외국어고 학생들이나 강남의 명문고 학생들이었다면, 정부 당국이 세월호 구조에 이처럼 태만하고 무책임했을까 하고 대중들이 반문(反問)하면서 절감하고 또 두려워한 것은 국가는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검은 구멍으로서의 국가가 두 번째로 뜻하는 것이다.

 

세월호가 호명하는 것

 

하지만 검은 구멍이고 커다란 공백으로서의 국가가 가장 깊은 외상(外傷, trauma)으로 체험되는 지점은, 그러한 구멍과 공백을 메울 수 없으리라는 점, 그것은 사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구멍과 공백으로 존재해온 어떤 것이며,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부인할 수 없는 존재론적 사실로서 스스로 체험하고 납득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우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무관심과 망각이다. 또는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된다면(아마도 󰡔니체와 철학󰡕의 들뢰즈라면 적극적 반동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구멍과 공백을 메우려고 할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가 전능한 자의 무기력 증후군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보호 받는 개인들은 이러한 보호가 그들에게 보장된 것인지, 그리고 보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의 삶의 양식 및 일상적 실존이 통제되는 것은 아닌지, 또 이러한 보호가 자의적으로 철회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해서 자문해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전에 대한 감정은, 이들이 집합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또는 자신들에 대한 보호 양상들 및 통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개입한다는 느낌을 덜 가질수록 더 강력해진다. 아마도 가장 역설적인 것은, 보호자로서의 국가가 그다지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 또는 우리를 보호하는 국가의 힘이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순간부터 이러한 감정이 더 강력해진다는 점일 것이다. 외관상 우리에 대해서는 전능한왜냐하면 우리는 국가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국가 자신이 실제로는 무기력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이 낳는 불안감은 때로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체에 대한 권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1, 144~45(강조는 발리바르).

 

이런 상황에서 대개의 개인들은 자신들이 희생자 또는 불쌍한 사람들의 편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가 그들의 편이라면, 그리고 우리는 국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렵다면, 내가,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내가 그들에 속하는 길이다. 실제로, 곧 경제적으로물질적으로 그들에 속할 수 없다면, 상상적인 방식으로라도 그들에 속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에서 공백에 대한 집합적 불안은 파멸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파시즘에 근접해 가고 있다. 자신들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무기력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그들이 항상 좋은 쪽에 있고, 희생자, 전형적인 불쌍한 사람들 나는 열등 인간이라는 말까지 쓰려 했었다 은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라는 점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 요구한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는 누구를 우선시하는가? 국가는 누구 편인가? 그리고 국가의 결정들은 누가 내리고, 누가 국가로부터 정확히 우선이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가? 누가 선택된 이들이고 누가 버려진 이들인가?같은 책, 145~46(강조는 발리바르).

 

그렇다면 사실 과소 주체성은 대중들 스스로,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서의 국가에서 주체성이 부재할 때 드러나는 공백, 그 검은 구멍을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한 가지 방식인 셈이다.

 

내가 앞에서 국가를 기본적으로 주체적인 것이라고 말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은, 특히 근대적인 정치체로서의 국민국가의 성격이었다. 짧게 말한다면, 근대 국민국가의 특징은, 이전의 국가들과 달리 더 이상 초월적(신성(神聖) 같은)이거나 자연적인 토대(혈통과 같은)에 자신의 정당성의 원천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정체로서의 근대 국민국가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아르케 없는(an-arkhe) 것이다. 아르케라는 말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아르케는 만물의 시원이나 근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둘째, 이러한 시원이나 근원은 또한 원리나 토대, 근거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마지막으로 아르케는 지배나 통치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아르케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에는 지배나 통치를 정당화하는 자연적이거나 객관적인 원리 또는 토대가 부재하다는 것을 뜻한다. 랑시에르 자신은 이를 민주주의는 아무나의 정치이며, 정치적인 참여에는 아무런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한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근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양 정치철학이 추구했던 것은, 정치 공동체에 고유한 아르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정치적 문제에 관여할 수 있고, 대중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마음대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곤 하는 민주주의에 반대하여, 기하학적 비례에 따라 공동체의 성원들(귀족, 부자, 평민)에게 돌아갈 합당한 자격과 몫을 정함으로써 공동체의 아르케를 세우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사실은 결국 보통 사람들에게 허울뿐인 자유 이외에는 아무런 정치의 몫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며, 몫 없는 이들의 배제를 자연적인/본성적인 정치 질서로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주주의 또는 정치(랑시에르에게 이 양자는 동의어다)는 아르케의 질서에서 몫을 배제당한,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추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또는 발리바르 식으로 말한다면, 민주주의 정체로서 근대 국민국가는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라는 토대, 따라서 실제로는 토대 아닌 토대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란, 인간의 권리 및 시민의 권리를 인간의 본성이라는 불변적인 자연적 사실에 기초 짓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피압제자들의 해방은 그들 자신에 의해 쟁취될 수 있을 뿐”(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2;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윤소영 옮김, 서울: 공감, 2003, 23. 강조는 발리바르)이라는 원칙을 가리킨다. 정치 공동체는 공동의 세계를 구성하려는 시민들의 호혜적인 행위 이외의 다른 기초를 지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민주주의 정치체가 기본적으로 주체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자연적 토대의 부재 위에, 따라서 존재론적 공백, 검은 구멍 위에 설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나온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금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되씹어봐도 티끌만큼도 잘못한 것 없이 제 아이는 제 앞에 없고 저는 이 자리에 있다면서 아직도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도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영원히 살고 싶은 나라로, 소생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 바 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세월호는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현대 철학자들이 말하듯 사건은 그것을 어떻게 상속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된다. 세월호의 참사가 계속 되풀이되어왔고 또 앞으로 되풀이될 또 다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을 위한 출발점이 될지 그것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 제기된 첫 번째 책임은 세월호가 우리 각자에게 질문하는 것, 우리들 각자에게 대답해보도록 호명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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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2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입니다. 읽으며 정말 많이 느꼈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balmas 2014-07-21 23:38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가 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촛불승 2014-07-2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제가 얼마나 많이 '사숙'하는지...했는지... 다음에 만날 일이 있으면 말씀드릴께요. 감사합니다.

balmas 2014-07-24 01:16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종종 들르세요.

narodna 2014-07-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하 동문입니다. 공짜로 배우는 것 같아, 살짝 죄송한 마음도 드네요. 아이스 커피라도 한 잔~~~
시럽은 넣으시나요?

balmas 2014-07-24 01:1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시럽은 잘 안 넣습니다.
 

사르트르 편을 올리는 김에 다음 번 원고인 루이 알튀세르 편도 함께 올립니다.

 

이 원고는 원래 내일치 신문에 실릴 예정이었는데,

 

신문사 사정으로 인해 한 주 연기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문에는 "마르크스주의 토대에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쌓아"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신문에 실린 원고는 아래 주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486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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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가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의 전면에서 연일 성가를 높이고 있었을 때, 파리의 윌름가에 위치한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무명의 한 철학 강사가 마르크스의 저작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1918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동안 포로 생활을 경험했던 그는 1960년에 이르기까지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1959)라는 작은 책과 포이어바흐의 저술을 편역한 <포이어바흐: 철학 선언>(1960) 두 권만을 출간한 상태였다. 몽테스키외에 관한 저작이 호평을 받았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5년 두 권의 책을 함께 출간하면서 루이 알튀세르라는 이름의 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는 일약 파리 지성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부상했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이 두 권의 책 제목은 당시 그와 그 주변의 젊은 제자들의 이론 작업의 지향을 요약하고 있는 슬로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알튀세르의 저작이 왜 짧은 시간 내에 그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지적정치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의 마르크스주의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에 의해 규정되었다. 하나는 스탈린이 사망한지 3년 후인 1956년 열린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행한 비밀연설이었다. 이 연설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집권 시절 이루어졌던 정치 암살과 고문을 비롯한 각종 비리를 고발함으로써 스탈린 격하 운동을 개시했다. 다른 하나는 1956년 헝가리에서 있었던 민중혁명이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헝가리 노동자당의 실정(失政)을 비판하고 소련군의 철수를 주장하면서 일어난 봉기는 새로운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지만, 소련을 위시한 바르샤바 조약군 군대가 혁명 세력을 진압하면서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이 두 사건은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1940년대 말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문헌과 증언이 잇달았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반()파시즘 전쟁의 중심으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발이 마르크스주의와 공산당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 지도부 내부에서 이루어진 스탈린 독재에 대한 고발과 헝가리 혁명에 대한 잔인한 탄압은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실망을 낳았다. 아울러 사회주의 양대 강국이었던 소련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 정세는 이론적으로는 청년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계급 착취와 인간 소외에서 벗어난 해방의 정치 체제와 거리가 먼 것이라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적인 계급 지배와 폭력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면,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소외 및 착취에 대한 비판과 인간주의적 이상이 현실 사회주의를 쇄신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알튀세르의 이론적 개입은 이러한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밝히는 데서 출발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방식이 아닐뿐더러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새로운 시기 구분을 제안한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 사상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것이 아니었으며, 연속성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공동으로 집필한 <독일 이데올로기>(1846) 무렵부터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인식론적 절단의 징표가 되는 이유는 이 저작에 청년기 저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르크스 자신의 고유한 개념들, 곧 생산양식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개념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문제설정에 사로잡혀 있는 청년기 저작이 아니라 <자본>을 중심으로 한 후기 저작에 담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튀세르가 절단 이후의 마르크스 사상이 동질적이거나 완결되어 있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논점은 절단을 이룩한 이후에도 마르크스 사상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불완전하고 불균등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스탈린주의나 인간주의 같은 여러 가지 이론적 편향들이 발생하며, 다시 이는 정치적 오류 및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위기를 낳게 된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보기에 불완전한 상태로 남겨진 마르크스 사상을 개조하고 좀더 완전한 상태로 발전시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과제였다.

 

철학자로서 알튀세르의 이론적 독창성은 불완전한 상태의 마르크스 사상, 곧 모순에 빠져 있는 마르크스 사상을 좀더 일관된 사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비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특히 스피노자와 프로이트 사상에 주목했다.

 

우선 이들의 사상은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고유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프로이트의 과잉결정이라는 범주는 왜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나라였던 러시아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됐는지 해명할 수 있게 해준다. 사회주의 혁명은 식민지 착취와 전쟁,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발전 정도와 농촌의 중세적 상태 사이의 모순, 지배 계급 내부의 모순이 자본주의적 모순을 과잉결정할 때”(<마르크스를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 철학에 담겨 있는 구조 인과성이라는 범주는 역사의 전개 과정이 경제라는 최종 심급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 정치, 이데올로기 같은 다른 심급들 간의 상호 작용에 따라 규정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좀더 정확히 사고하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알튀세르 이전까지 이데올로기 개념은 허위의식이나 기만 또는 지배 계급에 의한 대중의 조작술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계급 지배의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며, 또한 그 핵심을 착각이나 기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는 이데올로기 없는 투명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충격적이게도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의 삶의 영역을 상상계로 규정했던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알튀세르 역시 이데올로기를 생활세계 자체로 간주했기 때문에 제시된 주장이었다. “사람들은 결코 의식의 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의 한 대상처럼, 자신들의 세계자체처럼, 그렇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살아간다.’”(<마르크스를 위하여>)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핵심은 단순한 허위의식이나 기만이 아니라 예속적 주체 생산에서 찾아야 한다. 알튀세르는 유명한 호명개념을 통해 자본주의가 계급적 착취에도 불구하고 재생산되는 비밀을 예속적 주체 생산 양식에서 찾으려고 했다. 호명 개념의 핵심 논점은 우리가 이데올로기나 권력의 작용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 개인들이 사실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곧 호명 개념은 개인들 내지 주체들이 바로 그 개인들 내지 주체들로서 존재하는 양식이 사실은 계급 지배의 메커니즘과 내재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인식과 실천의 자율적 중심으로서 주체에 기반을 둔 근대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으며, 또한 해방적 주체 개념에 기반을 둔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에 대한 선언이었다. 따라서 알튀세르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탄핵이 제기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알튀세르 이후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이론적 혁신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신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의 철학적 운명은 마르크스주의의 운명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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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odna 2014-07-2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알튀세르의 사상은 이것이 핵심이었군요

balmas 2014-07-21 10:02   좋아요 1 | URL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문에 실리는 글이라 충분히 쓰지 못해 찜찜한 대목이 좀 있긴 한데,
아마 이것이 알튀세르의 대략적인 논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 중인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12회 사르트르 편을 올립니다.

 

사실 7월 6일치 신문에 실렸는데 제가 좀 바쁘다 보니 깜빡 했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456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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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알라딘에서 기획해서 출간될 [서양철학 로드맵]에 수록될 "에티엔 발리바르" 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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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로드맵-에티엔 발리바르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에티엔 발리바르는 1942년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루이 알튀세르, 조르주 캉길렘, 자크 라캉에게 사사했다. 1965년 알튀세르, 피에르 마슈레, 자크 랑시에르 등과 함께 󰡔“자본”을 읽자󰡕를 공동 저술하여 약관의 나이에 국제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명성을 떨쳤다. 1981년 프랑스 공산당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 이후 20여 년 동안 소속되어 있던 공산당에서 출당(黜黨)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이주자의 인권을 위한 투쟁 및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리 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에 적극 가담해왔다. 국내에 번역된 󰡔스피노자와 정치󰡕, 󰡔대중들의 공포󰡕, 󰡔우리, 유럽의 시민들?󰡕, 󰡔정치체에 대한 권리󰡕 이외에도, 월러스틴과 공저한 󰡔인종ㆍ국민ㆍ계급󰡕과 󰡔평등자유명제󰡕, 󰡔시민 주체󰡕 같은 다수의 저작들을 발표했다. 현재 파리 10대학 명예교수 및 영국 킹스턴대학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에티엔 발리바르의 사상적 이력은 외관상 크게 두 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려는 알튀세르의 이론적 문제설정에 기반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원칙 및 주요 개념들을 쇄신하려는 작업을 수행하던 시기(1970년대 말까지)이며, 다른 하나는 알튀세르가 정신병원에 유폐된 이후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면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 대한 새로운 독해에 의거하여 급진 정치철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시기(198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이다. 이는 발리바르 사상을 단절론의 시각에서 읽는 방식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주목할 만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는 알튀세르와 절단하지도 않았고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 이래 그의 작업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국민주의에 대한 분석은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에 입각하여 그의 이데올로기론을 좀 더 급진화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또한 평등자유(equaliberty) 및 시민다움(civility) 개념을 기초로 한 그의 민주주의론은 변혁의 정치를 포기한 결과가 아니라, 해방과 변혁의 정치에 새로운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그는 현대 유럽 이론가들 중에서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참조하는 드문 이론가이고, 인종과 민족/국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의 유일한 사상가이며, 알튀세르 사상의 현재성을 고수해온 유일한 인물이다.


III. 1STEP : 2~3권, 8매, 초급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정치체에 대한 권리󰡕)

 

발리바르의 사상에 접근하기 위한 좋은 통로는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와 󰡔정치체에 대한 권리󰡕다. 앞의 책은 번역에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발리바르의 시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면, 뒤의 책은 그의 민주주의론의 새로움과 현실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준다.


  발리바르가 보여주는 마르크스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제시되는 마르크스의 모습과 매우 다르지만, 오히려 다양성과 역동성을 훨씬 더 생생하게 담고 있는 마르크스다. 또한 그의 마르크스론은 알튀세르의 관점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좀 더 세심하게 가다듬고 있다. 알튀세르는 유명한 인식론적 절단 개념을 통해 한편으로 포이어바흐의 인간주의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초기 마르크스와, 다른 한편으로 󰡔독일 이데올로기󰡕 이후 생산양식, 이데올로기, 지식 노동과 육체 노동의 분업 등과 같은 역사유물론의 고유한 개념들에 입각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킨 후기 마르크스를 구별한 바 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절단(coupure) 테제를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절단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동질적이거나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단절들(ruptures)을 겪게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1848년에 이루어진 여러 혁명들이 실패로 끝난 이후 마르크스는 소수자 혁명론을 포기하고 그 대신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착수하게 된다. 또한 1871년 파리 코뮌 이후에는 󰡔공산당 선언󰡕에서 제시되었던 공산주의론을 정정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로 규정하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재생산과 혁명의 관계를 좀 더 다양한 역사 인과성 도식에 따라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자본과 임노동의 모순을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사상은 다른 물질적 모순들, 곧 성적 차이 및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국민주의, 정상과 비정상 같은 모순들에 대한 분석과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사상은 오늘날의 세계를 관통하는 계급투쟁을 분석하기 위해 여전히 현재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입장이다.


  󰡔정치체에 대한 권리󰡕는 정세 속에서, 정세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입각하여 사고하려는 발리바르의 이론적 태도를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다. 1980년대 이후 유럽 정치의 핵심 쟁점은 이주자 문제였다. 이주자 문제는 한편으로 1945년 이후 유례없는 30년 동안의 호황을 누린 전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다른 한편으로 인종주의적ㆍ민족주의적 갈등이 결합된 문제였다. 이 문제를 사고하기 위해 발리바르는 국민사회국가(État national-social)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 개념은 2차 대전 이후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서유럽이나 북미의 국가들을 지칭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복지국가 내지 사회국가라는 용어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이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2차 대전 전후의 정세에서 왜 복지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의 대안적인 형태로 제시되었는지 해명하려면 국민이라는 범주를 중심에 놓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 국가나 사회 국가라는 용어들이 서유럽의 특정한 국가들의 성격 및 정책을 표현하려는 제한적인 용어들인 데 반해, 발리바르가 목표로 삼는 것은 19세기 이래 국민국가의 역사 전체(여기에는 사회주의도 포함된다)이기 때문이다. 국민사회국가라는 개념은 경제적 모순과 인종적ㆍ민족적 모순을 함께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이다.

 

IV. 2STEP : 2~3권, 8매, 중급 (󰡔인종, 국민, 계급󰡕, 󰡔스피노자와 정치󰡕)

 

1980년대는 발리바르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탈구축(deconstruction), 곧 그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한 시기였다. 우선 발리바르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인 한계를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에서 찾는다. 곧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모순을 다른 사회적 모순들이 근거해야 하는 중심적이고, 심지어 유일한 모순으로 간주했으며, 더욱이 이를 진화주의나 종말론적인 역사철학에 따라 사고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고되거나 아니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결정적인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맹목은 곧바로 파시즘과 나치즘의 집권이라는 대가를 낳았으며, 궁극적으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진단이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과 호명 개념에 입각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는 데 핵심적인 진전을 이룩했지만, 그의 이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위기와 전환을 겪는 과정을 충실하게 분석할 수 없었다. 둘째, 그의 이론은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재생산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마르크스주의가 경제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지만, 이데올로기가 다른 물질적 모순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다.


  따라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쇄신은 발리바르가 1980년대에 시도했던 마르크스주의 탈구축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맹목점으로 남아 있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국민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국민형태(nation form) 개념을 제안한다. 국민형태라는 개념은 프랑스, 러시아, 독일 같은 국민을 그 속에서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자연적이고 초역사적인 공동체로 간주하는 가상에서 벗어나, 국민의 역사적 형성과 재생산, 전환 과정을 사고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국민형태 개념은 한편으로 국적=시민권(nationality=citizenship) 개념과, 다른 한편으로 허구적 민족체(fictive ethnicity)라는 또 다른 개념과 연결된다. 국적=시민권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국적을 가진 성원에게만 부여해온 근대 국민국가의 경향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표현된 보편적 민주주의 원칙을 제한해온 근대 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또한 허구적 민족체는 국민국가의 배타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국민 공동체가 마치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초역사적 민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제시하는 가상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발리바르는 근대 국민국가의 모순과 함께 그 변혁의 방향을 사고하기 위한 이론틀을 마련한다.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연구는 계급 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대중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탐색하는 데서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는 네그리와 더불어, 하지만 또한 네그리와 매우 다른 관점에서 스피노자 다중 개념의 독창성에 주목한 최초의 연구자 중 한 사람이다. 네그리가 다중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활용한다면, 발리바르에게 이 개념은 방법론적 개체론과 전체론을 넘어서는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을 사고하기 위한 원천이 되며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발리바르가 질베르 시몽동에게서 빌려온 관개체성 개념은, 사회적 관계는 원자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지 않고 국가나 국민 같은 초개인적인 전체로 구성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개인이나 국가 같은 추상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개인이나 국가는 스피노자가 다중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갈등 관계 속에서 생성, 재생산, 전환을 거듭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다중 개념은 개인성의 역사적 형상들을 생산ㆍ재생산하는 사회적ㆍ제도적 관계를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놓는다.


  또한 다중은 민주주의와 관련한 스피노자의 이중적 태도를 집약적으로 드러내주는 개념이다. 한편으로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가장 완전한 정체”로 규정하며, 모든 국가의 토대를 “다중의 역량”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론󰡕 이곳저곳에서 다중으로의 복귀를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 하는 위험 또는 파국적 상황으로 묘사한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이러한 모순적 태도에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첫째, 스피노자에게 다중으로의 복귀는 아나키, 곧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뜻한다. 따라서 이는 폭력과 갈등의 폭발을 의미하며, 개인들에게는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뜻한다. 자연 상태와 유사한 이러한 아나키 상태에서 개인들의 평등과 자유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스피노자가 민주주의 및 정치적 관계 일반을 본질적으로 취약한 것, 또는 선험적인 토대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하지만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거부하지 않고 다중을 통제나 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다중을 모든 국가의 토대로 제시한다. 이는 스피노자에게 정치란 초월적(가령 신)이거나 자연적인 토대(가령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에 기초를 둘 수 없으며, 오직 인간들, 대중들의 집합적인 실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뜻한다. 곧 스피노자에게 민주주의는 오직 제도들 및 집합적 실천의 결과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발리바르는 민주주의는 법적인 관점에서 규정된(곧 군주정이나 귀족정과 구별되는) 하나의 정치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갈등적인 과정이라는 것, 따라서 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민들의 봉기적 운동인 민주주의의 민주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V. 3STEP : 2~3권, 8매, 고급 (󰡔대중들의 공포󰡕, 󰡔우리, 유럽의 시민들?󰡕, 󰡔폭력과 시민다움󰡕)

 

발리바르는 50여 년에 걸친 사상의 여정 내내 마르크스(주의)의 저작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비판을 수행해 왔다. 또한 그가 마르크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모색할 때에도 그는 계급투쟁의 실재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를 넘어서’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잘 보여주는 그의 핵심 저작이 󰡔대중들의 공포󰡕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다움」은 19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정치철학의 개념적 모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첫 번째 정치의 개념인 해방(emancipation)은 근대 민주주의 정치는 초월적이거나 자연적인 토대를 갖지 않으며, 피억압자 자신의 해방의 역량을 유일한 기초로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리바르는 1789년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이러한 해방의 정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고 본다. 반면 두 번째 개념인 변혁(transformation)은, 정치를 규정하는 물질적ㆍ상징적 조건들, 특히 지배 구조 및 권력 관계들의 변혁을 정치의 중심적인 대상으로 삼는 정치를 의미한다. 그는 마르크스와 푸코의 사상을 변혁의 정치의 두 가지 모델로 제시한다. 세 번째 정치는 시민다움의 정치로, 이는 정체성들의 폭력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를 가리킨다. 세 번째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해방과 변혁의 정치는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을 전제할 뿐 지배 구조의 강화로 인해 그러한 주체의 가능성이 잠식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적 주체가 객체적 폭력이나 주체적 폭력으로 인해 잠식되는 상황을 발리바르는 극단적 폭력이라 부른다. 시민다움의 정치는 이러한 극단적 폭력을 퇴치하거나 감축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정치다.


  󰡔우리, 유럽의 시민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현실을 분석하면서 정치의 세 개념을 가다듬고 확장하고 있는 저작이다. 해방의 정치의 경우, 발리바르는 국민국가 시민성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는 관(貫)국민적(transnational) 시민성의 구체적 가능성을 유럽 시민성에서 찾고 있다. 또한 변혁의 정치와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민주주의의 비민주적인 조건을 이루는 국경 및 배제의 구조에 대한 풍부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세계화를 통해 확산되는 극단적 폭력에 맞선 시민다움의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화 및 유럽 공동체 구성이라는 구체적 정세에 대한 분석 속에서 국민형태, 시민성, 국경, 주권, 공동체, 폭력 등과 같은 정치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쇄신하려는 발리바르의 이론적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발리바르의 2010년 저작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기념 강좌 및 다른 논문들󰡕의 부분 번역본인 󰡔폭력과 시민다움󰡕은 그의 폭력론을 집약하는 저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 속에서 폭력(Gewalt) 개념의 전개 과정을 검토하면서, 극단적 폭력의 양상들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와 문제들을 조회하면서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키려는 발리바르의 작업 방식의 특징은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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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3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 제1의문: 과연 아나키즘이 그런 것인가? (물론 위의 글에서는 "아나키"만 적혀 있다.) 또는 아나키가 그런 것인가?

아나키에 대한 그런 생각이 "리얼리티에 대한 상상"은 아닐까? (마치 드라마 "정도전"처럼)

저런 식으로 생각하면 드라마 정도전에 묘사된 정도전과 스피노자가 대체 뭐가 다른가?

2) 제2의문: 발리바르는 한마디로 네그리가 생각하는 스피노자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발마스 님은 아무래도 발리바르가 생각하는 스피노자가 이른바 "리얼 스피노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네그리가 생각하는 스피노자가 진짜라고 생각할 필요 따위는 없다. 그것은 발리바르도 마찬마지다.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자기 눈에 비친대로 이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상대주의나 다원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인간이 편견 덩어리라는 것이다.

진리의 기준은 진리다.

3) "근대 민주주의 정치는 초월적이거나 자연적인 토대를 갖지 않으며, 피억압자 자신의 해방의 역량을 유일한 기초로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리바르는 1789년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이러한 해방의 정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고 본다"

1. 흔히 인권 선언이라 불리는 저것은 정확하게는 "남성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 번역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은 저 선언을 어기는 과정이기도 했다. 괜히 부르주아 혁명이겠는가? 시민혁명? 부르주아만 시민인가?)

그리고 애초부턴 여성을 배제한 선언이 바로 저것이다. 여기에 저항한 여성들이 모조리 처형된 것이 프랑스 혁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혁명은 젠더화된 혁명이었다.

발리바르도 역시 남성인 모양이다.

2) 또한 저 선언은 애초부터 프랑스가 지배하는 식민지민을 배제하는 선언이었다. 감이 안 오면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1798)이나 훨씬 뒤이기는 하지만 알제리 침공(1830) 아니면 프랑스 大혁명과 같은 시기에 일어난 아이티 혁명(1791) 같은 것을 떠올리면 된다.

저 <남성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은 바야돌리드 논쟁 당시의 라스카사스 신부의 주장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물론 라스카사스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유럽 중심주의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유럽인이 아닌 식민지민의 권리를 언급하고
있는데

약 300년이 다 된 <남성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은 아이티를 비롯한 비유럽인 또는 식민지민의 권리를 배제한 것이다.

3) 발리바르는 여성도 배제하고 非유럽인도 배제한 <남성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근대 민주주의 정치는 초월적이거나 자연적인 토대를 갖지 않으며, 피억압자 자신의 해방의 역량을 유일한 기초로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리바르는 1789년 󰡔선언󰡕에서 이러한 해방의 정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고 본다"


4) 참 재미있지 않는가? 여성과 비유럽인이 배제된 선언에서 "해방의 정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 되었다니?

사람은 역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5) 유럽적 시민성이나 국가를 통해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난 받아들일 수 없다.

내 눈으로 보기에 발마스 님이나 발리바르의 견해는 유럽 중심주의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국가 없는 사회도 얼마든지 상상하고 실현 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발리바르의 생각도 내가 보기에는 "리얼리티에 대한 상상"이다.






 

이 원고는 알라딘에서 기획해서 조만간 출간 예정 중인 [서양철학 로드맵]에 실릴 "자크 데리다" 소개글입니다.

 

제가 다른 원고를 모두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국내 인문학 독자들에게 서양철학에 관한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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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 로드맵-자크 데리다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자크 데리다는 1930년 알제리 엘 비아르에서 태어났으며,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한 뒤 후설에 관한 논문으로 졸업했다. 모교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쳤고 예일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등에서도 가르쳤다. 1987년부터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연구주임으로 재직했다. 1967년 데리다는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문자기록과 차이󰡕 등 세 권의 저서를 발표함으로써 일약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떠올랐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정치 및 사회 문제에 관한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 유럽 공동체와 주권, 마르크스주의와 국제법, 탈식민주의, 인권과 민주주의 등에 관해 폭넓은 저작을 발표했으며, 현실 정치의 문제들에도 적극 개입했다.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불량배들󰡕이 후기 데리다의 윤리ㆍ정치 사상을 대표하는 저작들이다. 2004년 파리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데리다에 따르면 서양의 형이상학은 진리의 생생한 현존으로서 로고스를 추구해왔으며, 이러한 로고스는 음성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현존하는 그대로 드러난다고 간주해왔다. 이는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오래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루소나 후설, 하이데거 같은 근대 철학자, 그리고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 같은 20세기의 인문과학자들의 작업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성을 로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주는 본래적인 매체로 특권화하고 대신 문자나 기록 일반은 이러한 음성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에서는 어디서든 로고스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초기 저작에서 서양의 로고스중심주의를 해체하면서 문자기록을 복권하고 텍스트의 복잡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1980년대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연관성이 폭로되고 데리다와 가까운 동료였던 폴 드 만의 초기 극우파 논설이 발굴되면서 데리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히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된 󰡔법의 힘󰡕과 1993년 출간된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는 ‘해체는 정의다’라고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메시아주의와 구별되는 메시아적인 것의 해방적 이념에 기초하여 유령론의 정치를 제창한다.


III. 1STEP : 2~3권, 8매, 초급 (󰡔입장들󰡕, 󰡔에코그라피󰡕,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자살」)


데리다 사상에 입문하는 가장 좋은 통로는 그의 여러 대담집이다. 데리다는 현대 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담을 남긴 철학자이며, 그의 대담은 그의 사상에 좀 더 간명하게 접근하기 위한 장소다. 데리다 초기 사상은 󰡔입장들󰡕(1972)에 수록된 세 편의 대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앙리 롱스와의 대담인 「함의」는 데리다 초기 저작의 문제의식을 쉽게 소개하고 있으며, 줄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인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는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의 관계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하다. 한편 마오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텔켈󰡕의 편집인들과 나눈 「입장들」이라는 대담은 마르크스주의와 탈구축의 긴장 관계를 이해하기 아주 좋은 텍스트다. 


  로고스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은 서양 형이상학의 지배 구조에 대한 전복의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1960년대 후반 파리 사상계를 지배하던 급진 좌파 사상 및 운동과 공명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데리다는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탈구축 작업, 곧 그라마톨로지의 기획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문제설정으로 포섭하려는 󰡔텔켈󰡕 편집인들의 시도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물질, 모순, 실천, 역사 같은 개념들에 대한 충분한 탈구축이 없는 가운데 관념에 대한 물질의 우위를 주장하고 여러 차이들을 중심적인 모순으로 환원하고 결정적인 실천의 중요성을 강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이는 또 하나의 형이상학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탈구축의 실천적인 함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거나 재구축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1993년 출간된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이 오랜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 후기 사상은 그의 제자이자 기술철학자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 나눈 대담집인 󰡔에코그라피󰡕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에코그라피󰡕는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현대 매체 기술에 관한 데리다의 견해를 가장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데리다 사상은 처음부터 기술에 대한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자기록은 음성이라는 자연적 매체를 통한 현존의 생생한 전유가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꿈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차연은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항상 이미 지연과 차이화의 작용의 결과라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의 기술론은 구성적 기술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자연적 시공간 자체가 항상 이미 기술에 의해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인가? 여기에서 데리다의 탈전유(exappropriation)라는 신조어가 중요해진다. 기술을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무소유를 주장하는 비전유(exppropriation)와 기술의 도구적 효용만을 중시하는 전유(appropriation) 사이에서 유한한 전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2011년 9ㆍ11 테러 이후 이루어진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자살」이라는 제목의 대담에서는 자기면역(autoimmunity) 개념이 대담의 중심을 차지한다. 자기 자신과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해 면역 세포가 외부 물질이 아니라 주인 세포를 공격하여 발생하는 질병을 가리키는 생물학적인 용법을 비틀면서 데리다는 자기면역 개념을 이중적인 의미로 탈구축한다. 이는 먼저 외부(이슬람 세력 같은)의 침입에 맞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민주주의를 지연시키려는 서양 민주주의의 경향을 가리킨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자기 파괴, 자살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자기면역의 또 다른 의미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의 논리, 곧 주권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그 속에 이질성, 타자성의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자기면역은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인 무제한적인 자기 비판을 가리킨다. 이러한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폐쇄적인 일자로 고착되지 않고 무한정한 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


IV. 2STEP : 2~3권, 8매, 중급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우리가 중급으로 분류한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국역본에는 이처럼 번역되어 있으나 좀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문자기록과 차이󰡕라고 해야 한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세 권 모두 1967년 출간된 데리다의 초기 대표작들이다. 따라서 이 책들은 난이도의 정도가 덜하다는 의미에서 ‘중급’이 아니라, 데리다의 다른 저작들을 읽기 위한 이론적 전제가 된다는 의미에서, 그의 대담들을 제외하면 먼저 읽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중급에 놓을 수 있다. 󰡔목소리와 현상󰡕은 후설 현상학에서 기호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글쓰기와 차이󰡕는 주로 20세기 프랑스 사상가와 작가의 텍스트에 대한 탈구축적 독서 모음집이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 루소에게서 문자기록(écriture)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이 세 권의 책에는 서양 형이상학의 로고스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주석가들은 이 세 권의 책을 데리다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기도 한다. 국내 독자들의 불운은 세 권의 책 중 한글로 읽을 만한 책은 󰡔목소리와 현상󰡕 정도라는 점이다. 3종의 번역본이 있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국역본으로는 독서가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글쓰기와 차이󰡕는 그보다는 번역 상태가 조금 낫지만, 그래도 이 번역본으로는 데리다의 논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초기 데리다 작업에 관한 논의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데리다의 문제의식이 가장 체계적으로 표현된 책은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다. 데리다가 보여주려는 것은 플라톤에서부터 루소를 거쳐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서는 에크리튀르, 곧 문자기록을 폄하하고 음성이나 말을 중시하는 태도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 사상가들은 모두 진리 내지 로고스는 말 속에서, 생생한 대화 속에서만 표현될 수 있으며, 문자기록은 진리와 거의 관계가 없는 단순한 보조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문자기록은 아주 위험한 도구다. 왜냐하면 문자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생생한 대화 및 기억 능력을 퇴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이처럼 진리 내지 로고스와의 관계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문자기록이 사실은 로고스 자체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결국 음성에 대해, 로고스에 대해 문자기록이 우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데리다는 기존의 위계적 지배 질서를 전복시켜 그 중 열등한 위치에 있던 것을 새로운 지배자로 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기존 질서를 되풀이하고 재생산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해체의 일반 전략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위계 구조 자체의 탈구축을 시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의 탈구축이란, 가령 문자기록을 음성에 대해 우월한 것으로 확립하거나 서양의 알파벳 같은 표음문자에 대해 표의문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 요컨대 “음성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기록 중심주의”을 주창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말하려는 요점은 모든 언어는 일종의 문자기록이라는 점이다. 곧 문자기록은 언어 그 자체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언어가 구술언어보다 역사적으로 선행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로고스 중심적 전통이 문자기록에게만 부여했던 이차적 매개의 성질을 언어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매체든 간에 생생한 현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으며, 모든 매체는 항상 재-현적이고 매개적인 지위를 갖는다. 더 나아가 “생생한 현존”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생생한 현존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차이들의 체계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계를 통해 성립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데리다는 󰡔목소리와 현상󰡕에서 후설 현상학에서 기호의 문제를 분석하면서 후설에게서도 음성중심주의적인 태도가 나타남을 보여준다. 특히 문자라는 외재적 기호 없이 “자신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듣기”(s'entendre parler)는 주체성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조건임을 드러낸다. 데리다가 보기에 가장 엄밀한 철학 중 하나인 후설의 현상학도 이처럼 음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라마톨로지의 문제설정의 필요성이 입증된다.


V. 3STEP : 2~3권, 8매, 고급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정신에 대해서󰡕)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정신에 대해서󰡕는 이른바 데리다의 ‘정치적 전회’ 내지 ‘윤리적 전회’를 대표하는 저작들이다. 사실 데리다는 1980년대 중반까지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시사적인 문제나 정치적 쟁점에 관해 발언할 때에도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가운데 신중한 유보의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그는 허무주의자라거나 공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채 사적 유희를 즐기는 유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9년 강연의 형태로 처음 발표되고 1992년 영어로 먼저 출간된 󰡔법의 힘󰡕은 저작이 미친 사상적 충격이라는 점에서는 데리다의 수많은 저작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 책이다. 실제로 󰡔법의 힘󰡕은 여러 차례 학술지의 특집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미 학계에서 해체론의 수용 양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데리다가 “해체는 정의다”라고 선언하고, “결국 해체는 규정된 맥락에서 정의, 정의의 가능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기존의 규정들을 넘어 서 있는, 항상 충족되지 않는 이러한 호소에서만 자신의 힘과 운동, 자신의 동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그 이전까지 전개된 탈구축의 문제설정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데리다는 모든 언어가 이미 오염된 언어이며 2차적 매개로서 문자기록이라고 주장했듯이, 정의와 법의 관계, 정초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의 관계도 “차연적 오염”의 관계임을 역설한다. 법이 정의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정의는 법 바깥에서는 최악의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법 안에서, 법을 통해 자신을 구현해야 한다.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탈구축적 독서의 한 가지 논점이 이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제시되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개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메시아적인 것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여러 종교적 메시아주의들로부터 독립적인 해방의 보편적 형식을 가리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메시아적인 것은 구체적인 해방의 운동이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자신을 변형하고 쇄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유령론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재독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생생한 현실과 가상, 물질과 이데올로기(곧 유령)를 집요하게 대립시키는 마르크스 사상에 함축된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이는 기호적 매개와 독립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초기 작업의 연속이다. 둘째, 이러한 대립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혁명의 동력을 이루는 것이 대중의 해방의 열망, 곧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유령론은 초기 저작에서 수행되었던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작업을 계승하면서 확장하는 문제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 사상에서 정신 개념의 함의를 분석하는 󰡔정신에 대해서󰡕는 󰡔법의 힘󰡕이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저작이며, 스타일상으로는 오히려 초기의 탈구축 저작들과 더 유사성이 있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여러 저작들에 나타난 정신 개념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의 사유가 어떻게 서양 형이상학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그 용어법 및 사유에 오염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하이데거의 나치즘 연루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1987년은 데리다가 하이데거와 폴 드 만과 관련하여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받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보기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책이다. 더욱이 이 책은 데리다의 탈구축적인 독서의 묘미를 한글로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역본이라는 점에서도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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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30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본에서 먼저 쓴 번역어이기는 하지만 역시 "解體"보다 "脫構築"이 더 나은 번역어로 보인다.

데리다는 해경 해체를 주장하지 않았다. 물론 해경 탈구축도 주장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