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 여름호에 실릴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인용이나 토론을 원하는 분은
[실천문학] 여름호에 실릴 판본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랑시에르와 발리바르: 어떤 민주주의?
1. 멀고도 가까운, 가깝고도 먼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1940~)와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1942~)는 아주 기묘한 관계를 지닌 프랑스 철학자들이다. 두 사람 사이의 기묘한 관계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두 사람이 공통의 지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랑시에르와 발리바르는 모두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 더욱이 두 사람은 루이 알튀세르의 영향 아래 마르크스의 자본에 관한 세미나에 참여했으며,[알튀세르는 1960년대 초에 고등사범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청년 마르크스Le jeune Marx”(1961-1962), “구조주의의 기원들Les origines du structuralisme”(1962-1963), “라캉과 정신분석Lacan et la psychanalyse”(1963-1964). François Matheron, “Présentation”, in Louis Althusser, Psychanalyse et sciences humaines: deux conférences(1963~1964), Livre de Poche, 1995 참조. 자본에 관한 세미나는 1964~65년에 열렸으며, 여기에는 발리바르, 랑시에르, 피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 외에 이브 뒤루Yves Duroux, 로베르 리나르Robert Linhart가 참여했다.] 이 세미나의 발제문들을 바탕으로 저 유명한 자본을 읽자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Louis Althusser et al., Lire le Capital, François Maspero, 1965(PUF, 19963). 이 책에는 알튀세르, 랑시에르, 발리바르, 마슈레 이외에 세미나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로제 에스타블레Roger Establet가 공저자로 참여했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는 긴밀한 지적 연대와 교류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지적 연대는 고사하고 뚜렷한 지적 교류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크 랑시에르가 자본을 읽자에 공저자로 참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알튀세르와 거리를 두고, 몇 년 후에는 알튀세르의 교훈[J. Rancière, La leçon d'Althusser, Gallilamrd, 1974. 이 책은 작년에 새로운 「서문」과 함께 재출간되었다. La leçon d'Althusser, Éditions La Fabrique, 2012.]을 출간하면서 이른바 알튀세르에 대한 ‘부친 살해’를 감행하고 알튀세르 및 알튀세르의 제자ㆍ동료들과 지적으로 완전히 절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의 랑시에르 저작에서 비난을 위해 인용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알튀세르나 그의 제자들, 가령 발리바르나 마슈레, 또는 미셸 페쇠Michel Pêcheux나 도미니크 르쿠르Dominique Lecourt 등의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발리바르는—발리바르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계속해서 알튀세르의 “가장 말 잘 듣는 제자”로 남아 있었으며,[하지만 이는 발리바르가 알튀세르 사상의 모든 점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발리바르는 이미 1978년 알튀세르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쟁을 제기하지만, 이는 알튀세르의 죽음으로 인해 문제제기로 남게 된다. E. Balibar, “État, parti, transition”, Dialectique, vol. 27, 1979. 이러한 미완의 논쟁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정세 및 이론적 지형에 대한 좀더 포괄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이 글의 의의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최원인데,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쟁에 대한 그의 평가 방식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최원, 「역자 해제: 이론의 전화, 정치의 전화—알튀세르에게서 발리바르로」, 에티엔 발리바르,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b, 2007. 이는 앞으로 검토해볼 만한 쟁점이다.] 알튀세르가 사망한 이후에도 알튀세르의 지적 유산의 계승자로 널리 인정받을 만큼, 자신의 사상 형성에서 알튀세르에게 지고 있는 빚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이 점은 무엇보다도 알튀세르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가 1996년 재출간될 때 발리바르가 두 책의 “서문”을 썼다는 사실을 통해 단적으로 입증된다. E. Balibar, “Présentation pour l'édition 1996”, in Pour Marx, La Découverte, 1996; “Présentation”, in Lire le Capital, op. cit. 또한 발리바르는 유명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 논문의 원래 출처이며 유고작으로 출간된 재생산에 대하여 2판에도 「서문」을 쓴 바 있다. E. Balibar, “Althusser et les "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 in 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UF, 2011(19951). 1995년 초판을 번역한 국역본에는 당연히 이 「서문」이 빠져 있다. 루이 알튀세르,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그렇다면 처음의 가정과는 반대로 랑시에르와 발리바르 사이에는 공공연한 적대 관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뜻밖에도 긴밀한 이론적 친화성이 존재한다. 특히 랑시에르가 불화(1995)를 발표한 이후, 발리바르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불화를 비롯한 랑시에르의 저작(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2005))을 인용하거나 언급하고 있으며, 랑시에르 민주주의론의 통찰력과 독창성을 긍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친화성은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며, 따라서 몇 가지 갈등적인 쟁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러한 쟁점들은 현재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를 이해하고 그에 관한 해법을 모색하는 데 매우 긴요한 것이다. 이 글에서 간략하게나마 민주주의에 대한 재정의를 둘러싼 두 사람의 친화성과 갈등이라는 문제를 살펴보겠다.
2. 랑시에르와 안-아르케an-arkhe로서의 민주주의
랑시에르와 발리바르 사이의 이론적 친화성은 무엇보다 두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한 좌파적 재정의를 자신들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 수 있다. 좌파 이론가라면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민주주의 이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철학자들, 특히 일군의 좌파적인 유럽 철학자들의 이론적 지향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독특한 이론적 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랭 바디우나 슬라보예 지젝, 또는 조르조 아감벤이나 안토니오 네그리 같이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론가들은 이를 테면 바깥의 정치라는 공통의 이론적ㆍ정치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이 점에 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철학논집,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29집, 2012 참조.] 곧 이들은 민주주의를 개조하거나 새롭게 재정의하기보다는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고 (또는 기존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거부로 나아가고) 그것에 대한 대안(가령 공산주의 같은)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유럽철학의 맥락에서 본다면, 민주주의를 좌파적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하려는 노력은 차별적인 한 가지 입장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보면 이들의 작업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페의 작업과 좀더 가까운 지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좌파적 재정의와 이른바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토론은 흥미로운 쟁점 중 하나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은 한편으로 정치와 치안police의 구별(및 대립)에, 다른 한편으로 치안 질서의 중심에 존재하는 잘못tort이라는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랑시에르는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활동이나 영역은 사실은 엄밀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라고 규정한다. 곧 그에 따르면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가 이루어지는 과정들 전체”[J. Rancière, 같은 책, p. 51.]가 곧 치안이다. 그리고 치안의 본질은 공권력이나 법 체계 같은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의 짜임configuration du sensible이다.
치안은 무엇보다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을 정의하는 신체들의 질서이며, 이 질서는 신체들이 그것들의 이름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과제를 부여받도록 만든다. 이 질서는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의 질서로서, 어떤 활동은 가시적인 것으로 다른 활동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어떤 말은 담론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말은 소음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듣게 만든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노동의 장소를, 공적 영역이라 불리는 것에 고유한 보기 및 말하기 양식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사적 영역으로 만든 것이 치안의 법이다.[J. Rancière, 같은 책, p. 52.]
이러한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랑시에르는 푸코에게 충실하면서도 그와 다르다. 그가 푸코에 충실한 이유는 일종의 예속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을 국가의 공권력이나 법 등과 같은 공적 영역 내지 상부구조에서 찾지 않고, 신체들의 질서 및 그것들을 규정하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푸코가 규율권력을 법이나 제도의 기저에 존재하는 미시적 하부구조로 간주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Michel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Gallimard, 1975;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나남, 1994 참조.] 더 나아가 푸코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우리가 살아가고 우리가 느끼고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Pierre Dardot & Christian Laval, La Nouvelle raison du monde: Essai sur la société néolibérale, La Découverte, 2009, p. 5.]을 규정하는 새로운 삶의 규범인 것과 마찬가지로, 랑시에르에게도 치안은 우리의 “행위 양식들과 존재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푸코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 따라 치안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가 치안을 정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치안이라는] 감각적 짜임과 단절하는데, 이러한 짜임에서는 부분들 및 부분들의 몫 또는 몫의 부재가 그 짜임에서 아무런 자리도 갖지 못한 어떤 전제, 곧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전제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단절은 부분들과 몫들, 몫들의 부재가 정의되는 공간을 다시 짜는 일련의 행위들에 의해 명시된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그것에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장소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보일 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J. Rancière, La mésentente, pp. 52~3.]
랑시에르는 정치를 치안을 규정하는 감각적 짜임과 “단절”하는 것이며,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치안과 정치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논리”[J. Rancière, 같은 책, p. 55.]에 따라 작동한다. 푸코에게는 랑시에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치안과 정치를 전혀 상이한 논리가 지배하는 두 가지 활동으로 보는 관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푸코에게 정치가 부재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치와 치안은 어떤 점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랑시에르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잘못tort”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랑시에르는 이 개념을 리오타르에게서 빌려오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재규정한다. 리오타르에게 tort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과 같이 합리적인 담론의 영역을 넘어서는 어떤 절대적인 잘못이나 피해를 뜻한다. 이것은 피해를 가한 쪽과 피해를 당한 쪽 양자가 서로 합의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평가 기준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일체의 토론이나 손해 배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정치적 행위의 범위도 초월하는 어떤 것이다.[Jean-François Lyotard, Le différend, Paris: Minuit, 1984 참조.] 반면 랑시에르는 이것을 정치에 구성적인 잘못으로 파악하는데,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의 정치철학의 기초를 뒤집기 위한 목표를 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양 정치철학은 시초 이래로 아르케arkhe에 기반을 둔 정치 공동체의 질서를 모색했다. 그리스어로 “시초”와 더불어 “원인”이나 “근거”를 뜻하는 아르케는 정치 공동체가 어떤 합당한 근거나 원리에 따라 질서를 이루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 공동체의 아르케를 추구한 것은 두 가지 대립항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나는 공동체가 단순한 산술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솔론 이전의 고대 아테네에서 실제로 작동하던 이러한 산술의 원리에 따르면 공동체는 더 많은 부를 지닌 사람이 적은 부를 지닌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가지며, 심지어 채무를 지닌 사람들을 노예로 삼을 수도 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이것은 정치 공동체를 질서 짓기 위한 원리로 적절치 않다.
또한 이들은 민주주의를 기초 짓고 있는 안-아르케, 곧 아르케 없음, 원리 없음의 사태를 피하고자 했다(an-arkhe는 아나키anarchy의 어원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들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정치 공동체에 고유한 아르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정치적 문제에 관여할 수 있고, 대중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마음대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곤 한다. 플라톤이 말하듯이 구두수선공이나 대장장이가 성벽 쌓는 일이나 배 만드는 일에 대해 전문가들과 똑같은 권리로 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무질서하고 잘못된 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기하학적 비율에 따라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돌아갈 몫을 정함으로써 공동체의 아르케를 세우고자 했다. 이것에 따르면 부유한 이들은 부에 따른 합당한 몫을 받고, 유덕한 귀족들은 그들의 고귀한 혈통과 유덕함에 따른 몫을 받으며, 재산도 혈통도 지니고 있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자유 시민이라는 몫을 지닌다.
랑시에르는 이처럼 공동체에 고유한 아르케를 설정하려는 것이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의 “정치철학”을 특징짓는 논리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정치철학”은 민주주의, 곧 정치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아르케의 질서, 곧 기하학적인 몫의 분배 질서는 결국 보통 사람들에게 허울뿐인 자유 이외에는 아무런 정치의 몫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며, 몫 없는 이들의 배제를 자연적인/본성적인 정치 질서로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는 아무나의 정치이며, 정치적인 참여에는 아무런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추첨제야말로 민주주의에 가장 적합한 제도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J. Rancière, La haine de la démocratie, La Fabrique, 2005 참조. 또한 랑시에르와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하지만 역사적인 사료 검토와 경험적인 논증에서는 훨씬 더 정교하게 추첨제와 민주주의의 긴밀한 연관성을 고찰하고 있는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 2004도 참조할 수 있다. 아울러 국내의 연구로는 이지문, 추첨 민주주의: 이론과 실제, 이담북스, 2012도 참조.] 반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는 아르케의 원리에 따르면, 어떤 일에는 자격이 필요하며, 그 일에 합당한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만 그러한 자격이 부여된다. 따라서 아르케의 원리에 따르면 아무런 자격이나 능력도 없이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아르케 질서에 “잘못”을 범하고 그것을 “왜곡하는” 일이다.[랑시에르가 사용하는 tort 개념을 “잘못”이라고 번역하는 것에 대해 양창렬은 사신 교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 개념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그리스어 blabe라는 단어에서 비롯한 것인데, 이 단어의 그리스어 용법에는 “해로움”이나 “손해”라는 뜻만 있을 뿐 “잘못”이라는 뜻은 없다는 것이다. 이 논평은 매우 의미 있고 유익한 지적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tort 개념을 “잘못”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어의 tort나 우리말의 “잘못”이라는 단어는 dommage나 “손해”보다 좀더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도덕적 잘못이나 합리성의 부재(가령 불어로 “tu a tort”는 “네가 틀렸어”를 뜻한다)라는 뜻만이 아니라 “손해”나 “피해” 같은 의미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dommage보다는 tort가, “(손)해”보다는 “잘못”이, “부정의”를 뜻하는 adikia라는 그리스어 단어와 blabe 사이의 연관성을 표현하기에 좀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 생각에 랑시에르가 그리스어의 blabe에 좀더 가까운 불어 단어인 dommage보다 tort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 계속 사용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반면 랑시에르에 따르면 아르케의 원리야말로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인 데모스demos, 곧 인민을 몫 없는 이들로 배제함으로써 정치, 곧 민주주의에게 “잘못”을 가하고 그것을 “왜곡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르케의 질서와 민주주의, 또는 치안과 정치는 “잘못”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해 있는 셈이다.
3. 발리바르와 평등자유명제
랑시에르가 민주주의를 재정의하기 위해서 서양 정치철학을 정초하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들과 그리스 민주주의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과 달리, 발리바르는 근대 민주주의를 정초하는 텍스트인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하 권리선언으로 약칭하겠다)에서 출발한다. 발리바르는 프랑스혁명 200주년이 되던 1989년 발표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이라는 글[“Droits de l'homme et droits du citoyen: la dialectique moderne de l'égalité et de la liberté”, in Les frontière de la démocratie, La Découverte, 1992;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현대적 변증법」, 윤소영 옮김,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공감, 2003 참조.] 또는 그 글의 원본에 해당하는 「평등자유명제」라는 글[“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UF, 2010; 진태원 옮김, 평등자유명제, 그린비, 근간. 앞의 글은 이 글의 축약본에 해당하는데, 발리바르는 2010년에 출간된 저작에 이 글과 같은 평등자유명제라는 제목을 붙이고 이 글을 다시 수록했다. 발리바르에게 이 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에서 어떤 의미에서 권리선언이 근대 민주주의를 정초하는 텍스트인지, 그리고 그것의 새로움과 중요성은 어디에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권리선언의 독창성 및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1) 인간=시민
첫째, 권리선언은 원래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 달리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사이의 환원 불가능한 차이, 따라서 인간과 시민 사이의 본래적인 차이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시민의 완전한 동일성을 선언하고 있다. “권리선언을 다시 읽어보면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사이에 현실적으로 내용상의 어떤 괴리도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즉 그 둘은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시민 사이에도 어떤 괴리도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데, 적어도 그들이 그들의 권리—그들이 지닌 권리들의 본성과 외연—에 의해 실천적으로 ‘정의되는’ 한(그런데 이것이 바로 권리선언의 목적이다) 그렇다.”[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66;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17쪽. 강조는 발리바르의 것이고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이하 별다른 언급이 없는 한 강조 표시는 모두 원저자의 것임을 밝혀 둔다.]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연이 필요하다.
발리바르의 인간=시민이라는 정식은, 흔히 주장되는 것과 달리 권리선언이 근대 자연권 사상(특히 존 로크 및 장-자크 루소)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연권 사상과의 단절을 표현한다는 보충적인 정식을 함축하고 있다. 곧 근대 자연권 사상이 인간이 지닌 본성, 인간이 본성적으로 지닌 권리들에 기반하여 정치체 및 정치적 성원으로서 시민의 권리를 근거 지으려고 한 반면, 권리선언은 “정치질서의, 사회의 상류에 그 심층적 기초 또는 외재적 보증으로서 어떤 ‘인간 본성’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것은 “개인적 또는 집합적 인간을 정치사회의 구성원과 동일화한다.”[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p. 66~7;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18쪽.] 이것은 곧 인간의 권리 또는 인권은 그 자체가 정치적 권리이며, “정치에 대한 인간의 권리”[É. Balibar, 같은 곳. 이 부분은 발리바르 글의 2010년 판본에 있는 것으로, 1992년 출판본을 대본으로 한 국역본에는 빠져 있다.]를 함축하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의 권리 및 시민의 권리를 어떤 자연적인 본성에 기초 짓는 대신, 권리선언은 인간들이 지닌 권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부여하고 보증하는 권리이며, 따라서 그러한 권리에는 인간들 사이의 호혜성과 상호 보증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려고 하는 세력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과 투쟁의 필연성이 포함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시민이라는 명제는 고대의 정치적 관점과 달리 평등을 자유의 한계 속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평등은 자유를 지닌 시민들, 자유로운 성인 남성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평등은 자유의 결과이며 자유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고대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아니고 따라서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 곧 노예나 여자, 아이에 대한 배제에 근거를 둔 배제의 민주주의라는 뜻이다. 반대로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의 마르크스처럼, 권리선언에서 인간과 시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부르주아적-자유주의적인) 제도적 분리에 대한 표현을 발견하고,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 주장되는 시민의 평등을 사적 영역 내지 경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은폐로 이해하는 것 역시 권리선언의 논점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불화에서 마르크스의 이러한 독법을 메타정치(곧 정치를, 그것 바깥에 있는 어떤 진리나 현실의 가상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정치철학)의 선구적인 표현으로 지적한 바 있는데,[J. Rancière, La mésentente, 4장 참조.] 발리바르 역시 이러한 독법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시민을 권리선언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이해할 경우, 권리선언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적 인간과 공적 시민의 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처음부터 정치적 인간, 곧 시민이기 때문이다.
2) 평등=자유
여기에서 우리는 발리바르의 두 번째 논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발리바르는 인권선언의 또 다른 핵심을 평등과 자유 사이의 완전한 동일성, 곧 평등=자유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등과 자유의 동일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평등자유égaliberté”라는 신조어(영어로 하면 equaliberty)를 만들어낸다. 평등=자유의 동일성은 인간=시민의 동일성을 근거 짓는 것이며, 그것이 지닌 철학적ㆍ정치적 함의를 온전히 드러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평등=자유라는 등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인데, 발리바르는 이러한 불인정의 철학적 근거를 자유와 평등에 대한 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찾는다. 곧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각각 독립적인 이데아 또는 본질을 지닌 실체로 이해한 연후에, 이 두 가지 상이한 실체가 어떻게 공통의 본질을 지닐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 경우 공통의 본질은 인간이거나 주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다시 인간과 시민을 구분하고 분리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다른 한편 조금 더 실천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동일성에 ‘경험적 내용’, 실증적 ‘지시 대상’을 부여할 수 있으려면, 어떤 자유와 어떤 평등이 동일한지, 또는 오히려 어떤 한계들 내지 조건들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 동일한지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0;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1쪽.]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첫째, 평등=자유 명제가 표현하는 것은 각자 상이한 본질을 지닌 두 가지 관념 사이의 동일성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양자가 현존하거나 부재하는 상황들이 필연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 곧 “자유의 (사실상의) 역사적 조건들은 평등의 (사실상의) 역사적 조건들과 정확히 같은 것”[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0;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1~2쪽. ]이라는 사실을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평등=자유 명제가 표현하는 것은, 평등이 반박되고 부정당하는 역사적 상황은 자유가 반박되고 부정되는 역사적 상황과 정확히 같다는 사실, “평등을 억압하거나 제한하지 않으면서—즉 폐지하지 않으면서—자유를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조건들의 사례는 없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1;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2쪽.]라는 사실이다.
만약 이렇게 평등과 자유가 각각 동일한 억압과 제한의 역사적 조건 속에 놓여 있다면, 중요한 것은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 자유,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을 구별하고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과 자유를 서로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어떤 것인지 묻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 자유의 집단화에 필요한 평등의 정도, 그리고 개인들의 집단적 평등에 필요한 자유의 정도가 질문되어야 하는데, 그 대답은 두 가지 경우 모두 동일하다. 즉 주어진 조건들에서 최대치라는 것이다.”[같은 곳.] 예컨대 자유가 평등이 아니라면, 곧 자유가 불평등의 조건 속에서 성립하는 자유라면, 그때 자유는 우월성이나 특권의 표현(강자의 자유, 귀족의 자유 등)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보다 우월한 어떤 힘이나 세력에 복종할 수 있는 자유(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신분적 예속으로부터,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중으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평등과 분리되어 실제로는 전혀 자유가 아닌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평등과 결합되고, 그것과 동일화되어야 한다. 역으로 평등은 “모든 예속과 지배에 대한 근본적 부정의 일반 형식으로, 곧 자유 그 자체의 자유화/해방libération으로 사고되어야 한다.”[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2. 이 대목 역시 국역본에는 빠져 있다.]
따라서 발리바르의 평등=자유 명제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인간=시민의 동일성의 의의는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긍정”[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2;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3쪽.]에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인간=시민 명제의 핵심이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정의에 있다면, 권리선언은 인간을 시민으로, 인권을 시민권으로 환원하려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권리선언이 개인의 자율성, 개인적 권리의 영역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다 정치로 환원하며, 따라서 공포정치 및 전체주의로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나 마르셀 고셰Marcel Gauchet 식의 수정주의적ㆍ반(反)전체주의론적 비판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사실 발리바르의 이 글은 무엇보다도 퓌레와 고셰의 수정주의적 해석에 대한 (비(非)자코뱅적) 반론의 관점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반대로 우리가 인간=시민 명제의 핵심을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로 파악한다면, 인간=시민 명제는 인간을 시민으로 환원하거나 자유를 평등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나 개인적 자유의 조건이 무엇인지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명제가 된다. 왜냐하면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란, 인간의 권리 및 시민의 권리를 인간의 본성이라는 불변적인 자연적 사실에 기초 짓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피압제자들의 해방은 그들 자신에 의해 쟁취될 수 있을 뿐”[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3쪽. 이 부분은 2010년 판본에는 빠져 있다.]이라는 원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앞에서 제기된 두 번째 질문, 곧 “어떤 한계들 내지 조건들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 동일한지”에 대한 답변이 나온다. 발리바르는 권리선언에 담긴 인간=시민 및 평등=자유 명제는 “부정적 보편성, 곧 절대적 비규정성”[
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2;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3쪽.]을 특징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이 명제들이 부정적 보편성을 지니는 이유는, 인간=시민, 평등=자유의 동일성이 어떤 실정적인 토대나 기초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공통의 조건 속에서 부정되고 논박된다는 부정적 사실, 또는 둘 중 하나에 대한 억압과 부정은 다른 것에 대한 억압과 부정을 낳는다는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부정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보편성은 바로 그 명제들이 지닌 절대적 비규정성에서 비롯한다. 여기서 절대적 비규정성이란, 우선 이 명제들이 아무런 실정적인 또는 구체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 명제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조건들에 따라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1789년 권리선언에서 인간=시민, 평등=자유 명제가 선언되었음에도, 바로 이 권리선언에 기초를 둔 최초의 헌법에서는 시민을 남성으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는 바로 이 권리선언에 근거하여, 또한 그것의 모순을 바로잡고 정정하기 위해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Déeclaration des droits de la femme et de la citoyenne을 발표했으며, 아이티의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는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흑인 노예 및 아이티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Sophie Mousset, Olympe de Gouges et les droits de la femme, Pocket, 2007 및 시 엘 아르 제임스, 블랙 자코뱅: 투생 루베르튀르와 아이티 혁명, 우태정 옮김, 필맥, 2007 참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권리선언의 언표의 비규정성은 한편으로 그것을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물질화하고 재정의하려는 지배 계급이나 특권 세력의 재전유 시도와,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해방과 자유를 획득하려는 예속 계급, 여성, 식민지 인민 등의 투쟁에 대해 모두 개방되어 있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비규정적인 이러한 혁명의 언표에 부응하는 물질적 제도가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일은 역사적인 세력 관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 비규정성의 또 다른 함의는, 바로 이러한 비규정성 때문에 권리선언의 언표는 이후의 모든 혁명, 모든 해방 투쟁에서 보편적인 준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발리바르는 「보편들」에서는 이러한 보편적 준거를 “이상적 보편”이라 부른 바 있다. 「보편들」,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b, 2007 참조.] “평등자유명제에 부합하는 제도들의 구축을 역사적으로 규정하는 조건들과 언표의 과도하고 과장된 보편성 사이에는 영속적인 긴장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혁명적 정치가 존재하지 않을 진리 효과가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이 언표는 항상 반복되어야 하며, 변화 없이 동일하게 반복되어야 한다.”[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 73;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24쪽.] 그리고 이후에 각자 다른 역사적 조건들 아래 이루어지는 투쟁들 속에서 이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권리선언이 지닌 언표 역시 끊임없이 재규정되고, 아마도 언젠가는 그것 자체가 또 다른 보편적 원칙으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포섭될 것이다.
IV. 민주주의의 변증법
지금까지 랑시에르와 발리바르가 시도한 민주주의에 대한 재정의에 대해 간략하게 소묘해봤다. 이러한 소묘에서 드러나듯이, 두 사람의 재정의는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우선 두 사람은 민주주의를 비규정적인 보편성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는 아르케 없는 정치로, 곧 아무 말하는 존재자와 다른 아무 말하는 존재자 사이의 평등에 기초를 둔 것으로 나타나며, 발리바르에게는 인간=시민과 평등=자유라는 두 개의 등식으로 표현된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인간의 본성 같은 자연적 기초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생산양식 같은 정치 바깥의 사회적 구조에 근거를 둔 것도 아니다(물론 발리바르의 경우는 정치가 생산양식을 비롯한 물질적 구조들에 의해 규정되며 조건 지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다른 보편성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고유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민주주의적 보편성의 특징은 비규정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비규정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보편성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구체적이고 실정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그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 민주주의는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뿐이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이 나오는데, 이처럼 민주주의가 그 자체로는 비규정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완성된 원리나 제도를 지니고 있지 않고 그 특성상 갈등적인 과정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자신들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자로 선언하고 그에 따른 권리들을 요구하는 주체들의 투쟁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나타나며, 그러한 투쟁을 통해 자신의 물질성을 획득하고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19세기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19세기 후반 여성들의 투쟁, 20세기의 이러저러한 국지적인 투쟁들 속에서 민주주의의 보편이 지속적으로 재발명된다고 주장한다.[이 점에 관해서는 자크 랑시에르, 「민주주의의 용법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길, 2013(수정 2판) 및 La mésentente, 여러 곳 참조.] 발리바르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민주주의는 갈등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으며,[특히 우리, 유럽의 시민들? 4장과 12장 및 정치체에 대한 권리 중 「국민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와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 참조.]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현재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É.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참조. 또한 발리바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진태원, 「최장집과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두 방향」,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민족문화연구 56집, 2012 참조.]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은 또한 몇 가지 근본적인 차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관계라는 문제에서 드러난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는 말하자면 공동체 없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가 비규정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우리가 흔히 정치 공동체 내지 정치체라고 부르는 것과 배타적인 대립 관계에 있다. 실제로 랑시에르는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가 이루어지는 과정들 전체”를 치안으로 규정하면서, “치안은 온갖 종류의 재화들(biens)을 공급할 수 있으며, 어떤 치안은 다른 치안보다 무한하게 더 좋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치안의 본성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J. Rancière, La mésentente, p. 54.]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떤 공동체가 “그 본질에서 볼 때, 부분들의 몫 내지 몫의 부재를 정의하는―일반적으로는 암묵적으로 남아 있는―법”[J. Rancière, La mésentente, p. 52.]을 가리키는 치안에 근거를 두는 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고유한 조직, 그것에 고유한 공동체는 어떤 것인가? 그러한 조직 내지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필자가 알기로 랑시에르는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랑시에르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제시하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그의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의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는 배타적으로 평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발리바르가 잘 지적한 바 있듯이 평등은 정의상 무제한적인 원리이다. “사실 평등은 제한될 수 없다. 어떤 X들(“사람들”)이 평등하지 않을 때, 평등이라는 술어는 누구에도 적용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 술어가 적용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은 사실은 “우월한 이들”, “지배자들”, “특권을 지닌 이들” 등이기 때문이다. 권리의 평등의 향유는 두 명의 개인에서 출발하여 전체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퍼져나갈 수 없다. 이러한 향유는 무매개적으로 개인들의 보편성에 (동어반복적이지만, 이러한 향유와 관련된 X들의 보편성에) 관련되어야 한다.”[É. Balibar, Citoyen sujet et autres essais d'anthropologie philosophique, PUF, 2012, p. 58.]
바로 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에서 인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주체이며, 따라서 정치의 모체가 되는 주체인 인민은 공동체 성원들의 총합이나 인구 중 노동하는 계급도 아니다. 인민은 인구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관하여 대체 보충적인supplémentaire 부분으로, 이것은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J. Rancière, Aux bords du politique, p. 233~34; 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216쪽. 번역은 수정했다. 특히 국역본 번역자인 양창렬은 supplémentaire를 “보충적인”으로 옮겼는데, 필자는 이를 데리다적인 의미에서 “대체 보충적인”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대체 보충, 자기면역, 기입: 랑시에르와 데리다의 민주주의론」, 2012년 한국프랑스철학회 가을발표회 발표문 참조.] 이러한 정의가 뜻하는 바 중 하나는 만약 어떤 정치체 내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과 평등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정치체는 정의상 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개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공동체 내에 평등하지 않은 인민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사실상 그 정의 자체 내에 만인의 평등을 함축할 수밖에 없는 인민 그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다시 발리바르가 적절히 지적하듯이, “어떤 사회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사회, 곧 비록 하나의 이름일 뿐이라 하더라도, 모종의 특수성에 의해, 모종의 배제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이러한 사회, 이러한 공동체에서 ““모든 시민들”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도시의 시민들 중 누구는 시민이 아니어야 한다.”[É. Balibar, Citoyen sujet, p. 58.] 또한 “평등은 차이들을 보존하고 있음에도(평등은 가톨릭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이라는 것, 흑인들이 백인들이라는 것, 여성들이 남성들이라는 것 또는 그 역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차이화될 수는 없다. 차이들은 평등 곁에 있지만, 평등의 실행에서 유래하지 않는다.”[같은 책, p. 59.] 따라서 정치 공동체 또는 민주주의적 공동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공동체가 함축하는 배제 및 내적 차이들이라는 문제를 고려해야 하지만, 랑시에르 식의 민주주의에서는 그것은 반민주주의적이라고 선언될 뿐,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랑시에르가 정치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적 투쟁의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랑시에르 민주주의론의 강점 중 하나는 그러한 투쟁을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해방의 삼단논법이라는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삼단논법의 대전제는 간단하다. 1830년에 막 공포된 헌장 전문에는 모든 프랑스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적혀 있다. 이 평등이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된다. 삼단논법의 소전제는 즉각적인 경험에서 이끌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1833년에 파리의 재단사들은 양복점 주인들이 급료, 노동 시간, 일부 노동 조건들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시작했다. 따라서 삼단논법의 소전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그렇지만 양복점 주인 슈바르츠 씨는 우리의 근거들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그에게 급료를 재검토해야 할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근거들을 그는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검증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평등한 자들로 대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결론적으로-인용자] 그는 헌장에 기입된 평등에 위배된다.”[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89쪽.] 이러한 삼단논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따라서 해방의 삼단논법에서는 모든 프랑스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전제가 헌법에 기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본질적인 중요성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랑시에르는 법이라는 것을 사회적 불평등이나 계급적 착취를 은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만으로 치부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맞서 실제의 노동자들은 법에 근거하여 해방 투쟁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방의 삼단논법이 작동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헌법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법적 제도는 민주주의의 실천에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치안을 전면적으로 대립시키고, 정치 공동체 일반을 치안으로 환원하는, 더 나아가 “모든 국가는 과두제 국가”[J. Rancière, La haine de la démocratie, Fabrique, 2005, p. 9.]라고 간주하는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에서 볼 때, 어떻게 헌법이나 그것에 근거한 제도들이 민주주의 투쟁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모든 국가가 과두제 국가이며, 정치는 항상 국가 제도를 조절하는 치안의 논리를 위반하고 그것과 단절하는 데서 성립한다면, 하지만 동시에 정치는 치안과 분리할 수 없게 결부돼 있다면, “그 특성상 드문rare 것”[J. Rancière, La mésentente, p. 188.]인 정치는 일시적인 위반이나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다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발리바르는 이미 「평등자유명제」에서 권리선언의 언표, 곧 민주주의적 보편성의 언표는 그것에 고유한 비규정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매개들을 요구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형제애(또는 공동체)와 소유(또는 교류commerce)라는 두 가지 매개 및 그러한 매개들에 내포된 갈등, 곧 공동체를 둘러싼 국민 공동체와 인민 공동체의 대립, 그리고 소유를 둘러싼 자본 소유와 노동 소유의 변증법적 대립이 근대 정치의 공간을 규정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에 은폐되어 있는 또 다른 모순, 곧 지적 차이 및 성적 차이 같은 인간학적 차이들의 문제야말로 탈근대적 정치에 고유한 쟁점임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발리바르에게는 민주주의와 공동체, 또는 봉기와 헌정을 무매개적으로 대립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적합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문제이며, 헌정 질서 속에 어떻게 봉기의 흔적을 기입하고, 그러한 흔적에 입각하여 어떻게 헌정 질서를 개조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가 보기에 헌정은 봉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봉기는 물질적 제도 속에서 구현되고 관철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는 단지 제도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 내부로 국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 또는 상호 견인 관계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입각할 경우에 우리는 제도적인 정치를 단순히 유사 파시즘적인 지배의 정치로 환원하는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예속화와 주체화의 내재적 관계를 정치체의 역사라는 시각에서 사고할 수 있다.
모든 민주주의 헌정은 급진적인 보편적 해방의 운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모든 정체의 기원에는 이러한 봉기적 운동 내지 혁명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모든 혁명은 필연적으로 유한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어떤 제도 속에서 물질화되고 재생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모든 제도는 민주주의 운동의 급진적 보편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가 없다. 그 경우 제도 자체가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모든 민주주의 헌정은, 그것이 민주주의를 표방함에도 항상 모종의 배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봉기의 운동과 헌정의 제도화 사이에는 이율배반적인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É. Balibar, “L'antinomie de la citoyenne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참조. ]
하지만 이러한 이율배반의 관계가 봉기의 정치, 해방의 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바로 이러한 이율배반 때문에 모든 헌정의 정치는 봉기의 정치를 통해 끊임없이 개조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헌정 제도로 구현된 민주주의 정치는 그것에 내재한 보수성으로 인해, 미국의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의 표현을 빌리자면,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의 경향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Wendy Brown, “Neo-liberalism and the End of Liberal Democracy”, Theory & Event, vol. 7, no. 1, 2003.]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 및 초역사성을 옹호하고 이것에 근거해 봉기적 운동의 필요성을 배제하려는 이들(하버마스나 국내의 최장집 교수 및 백낙청 교수 같은 이들)이 때로 보수적인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봉기와 헌정, 운동과 제도 사이의 이율배반이 낳는 탈민주주의적 경향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민주화하려는 노력, 민주주의 헌정을 봉기적인 민주주의 운동에 의해 개조하고 변혁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구체적인 제도적 쇄신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정치체의 역사와 그것에 함축된 배제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랑시에르보다는 발리바르의 민주주의론이 민주주의와 공동체, 봉기와 헌정, 운동과 제도 사이의 변증법에 관해 좀더 구체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