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님의 "이론에서는 혁명, 현실에서는 민주당"
무화과님 오랜만이시네요. 조금 자극적인 페이퍼를 썼더니 역시 반응이 바로바로 오네요.^^ 그동안 논문을 써도 별로 반응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이 주제로 글을 쓰면 심심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제가 서재에서 길게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무화과님께서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셨으니, 몇 마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당연히 알튀세르나 발리바르도 포함되겠죠. 그리고 아마 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또는 데리다를 읽는 사람들 중에도 문재인 씨를 지지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심지어 데리다나 들뢰즈에 관해 연구하면서 한나라당 찍는 분들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알튀세르나 발리바르를 읽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적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또는 데리다를 프랑스 철학자들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우선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 포스트 담론 내지 프랑스 철학 수용에서 별로 큰 몫을 차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더 많이 주목받고 거론되는 사람들을 대표 사례로 고려한 셈이죠. 또 한 가지 이유는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에 관한 대중적, 사회적 관심이 별로 없음에도 그 사람들을 계속 읽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좀더 확고한 좌파적 관점을 고수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서는 다소 예외적인 상황에 있다고 본 거죠.
2) 이 문제는 여러 측면이 있을텐데요, 이번 선거는 진보 진영이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선거라고 볼 수 있겠죠. 진보 내부의 분열도 한 이유일 테고, 진보 진영의 무능력도 있을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지난 5년 동안의 정권을 심판해야겠다는 뜻을 모은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바디우나 랑시에르, 지젝 같은 철학자들을 읽고 또 그들에 관해 이런저런 글을 쓰고 그들의 주장에 바탕을 두고 이런저런 이론적 주장을 하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제도적 선거'의 쟁점이 큰 문제거리는 아닐 듯합니다. 또 제도적 선거에서 보수 정당 후보와 동일시를 할리도 없을 테고요.
저는 바디우나 랑시에르, 지젝 또는 아감벤 같은 철학자에 동의하지 않고 그들에 관해 거의 연구하지 않거나 그들의 주장에 기반하여 이런저런 주장을 하지 않는 분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분들은 당연히 제도적인 정치에 관심도 많을테고, 또 보수적인 정당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나은 사람을 뽑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테니까 말이죠.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유사 파시즘적인 제도로 보는 사람들, 따라서 진정한 정치는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동의하고 그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입장에 기초하여 발언하는 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제도정치의 쟁점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더욱이 진보 후보도 아니고 우파 후보 중 한 사람에게 그렇게 깊게 동일시를 할 수 있는지 그게 이상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그 철학자들의 사상을 믿고 지지한다면, 제도 정치에 관해 다르게 파악하는 게 옳은 게 아닐까요?
3) 이 문제는 3)번 질문과 바로 연결이 되는데요. 저는 바디우나 랑시에르, 지젝을 읽는 분들(저는 이분들을 무화과님이 생각하듯이 "좌파나 진보"와 동일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의 행위가 무화과님이 제시하신 (1)과 (2)로 귀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 나아가 제 문제제기의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바디우나 랑시에르, 지젝, 아감벤 등의 주장을 믿는다면 사실 (1)이나 적어도 (2)가 좀더 자연스러운 귀결이겠지만, 그들의 사상을 믿으면서도 문재인 씨에게 투표를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박근혜 씨에게 투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박근혜 씨에게 투표를 해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더 분노하게 되고 그럼 체제 위기가 더 가속화될 거다라고 생각하는 건, 논리적으로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니까요.)
문제는 이 사상가들을 지지하면서도 (3) 문재인 지지라는 결론을 내리려면 뭔가 그들의 사상에 부합하는 논거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화과님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요인들이 겹쳐진 상황"이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사실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몇 분은 이런저런 기회에 공통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번에는 내가 문재인을 찍지만, 다음에는 진보 정당 후보에게 투표를 하겠다, 일단 '민주 진영'이 정권을 잡아야 진보 진영도 활동하기 좋을 것 아니냐, 그렇게 어느 정도 민주 진영의 세력이 확고해지면 그 다음에는 진보 진영도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 아니냐.'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상상적인 정치적 진화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야 선의로 말씀하셨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 분들이 앞으로 진보 진영 후보에게, 더구나 대선에서 투표할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민주 진영의 세력이 확고해져서 비로소 진보 진영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적어도 지금 같은 제도 아래에서는 늘 박빙의 승부가 되기 마련이고, 늘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대결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페어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언젠가 유시민 씨가 명언을 했던 것처럼, 사표가 되는 거죠. 총선에서도 거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하자면, 그 분들이 다음에는 진보 진영 후보를 찍겠다고 말하는 것은 대개, 이론과 현실의 괴리, (의식적?) 대의와 (무의식적?) 관행의 괴리를 메우기 위한 상상적 봉합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가 이 단상에서 제기하고 싶었던 쟁점은, 이런 괴리에 대하여 자꾸 상상적으로 봉합하려고 하지 말고, 한번 왜 그런 괴리가 일어나는지, 그것이 어떤 구조적, 제도적, 담론적, 무의식적 원인을 표현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런 괴리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수용된 '포스트 담론'의 성격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나는 괴리가 없다고 생각해' '그건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 주체적 요인 때문에 생겨나는 괴리가 아냐'라고 말한다면,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4) 제가 폐쇄적으로 보인다는 말은 두 가지 정도의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첫째는 '포스트 담론'에 관심도 많고 이런저런 우호적인 글도 쓰면서, 정치적으로는 계급 중심적, 마르크스주의적이다라는 뜻이 있을 것 같고, 둘째는 포스트 담론들 중에서 특정한 이론가들(가령 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또는 데리다)에 대해 우호적이고 다른 이론가들에 대해서는 너무 비판적이다라는 정도가 아닌가요? 제가 너무 넘겨짚었나요? ㅎㅎ 만약 이런 정도의 뜻이라면, 제가 보기에 그건 폐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나름대로 분명한 입장의 표현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개방적인 것과 입장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겠죠.
저는 제가 비판적인 이론가들에 대해 근거 없이 비판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왜 그런 비판을 제시하는지 늘 이유들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제법 꼼꼼하게 제가 비판하는 사상가들의 저작을 읽었습니다. 그건 폐쇄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꽤 길게 이야기를 했지만, 이건 사실 막연한 생각이지 꼼꼼하게 따져본 생각이 아닙니다. 앞으로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무화과나무님, 이번 대선 때문에 상심이 크실 텐데도, 냉정하게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연구에도 큰 진전이 이루어지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