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더.

 

프리즘 총서 소식이 그동안 뜸했는데요, 지난 9월에 카우시크 순데르 라잔의 [생명자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생명자본이라는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중요성을 얻어갈 만한 주제인데요,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별로 주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5년 황우석 사건 때 큰 충격을 받아서

생명권력, 생명정치, 생명자본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6년 [문학과사회]에서 "푸코와 생명권력"이라는 특집을

꾸민 것은 그런 관심의 소산이었는데, 그뒤 일하게 된 직장이

이 문제와 크게 관계가 없는 곳이어서 솔직히 그동안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 비판이론이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라잔의 이 책은 생명권력과 생명공학, 의료자본 복합체가

제기하는 쟁점들을 탐구하는 선구적인 저작입니다.

많이 읽어주시고 토론해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프리즘 총서에서는 생명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주요 저작들을 꾸준히

출간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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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2012-12-2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리즘 총서의 출간 결정은 발마스 님이 하시는 건가요?

balmas 2012-12-25 11:32   좋아요 0 | URL
예, 제가 주로 의견을 내지만 출판사와 논의를 하죠.
 

그동안 서재에서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정치 문제에 관심이 사라져서라기보다

정치 문제에 관해 좀더 잘 이야기하기 위해서 말을 아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앞으로 좀더 잘 말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투표일인데, 그동안의 판세를 보면 박빙의 승부가 될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미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에 서명을 했지만,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누가 되든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이 그다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투표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다들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이기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변화의 의지를 갖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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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12-1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되든 달라지지 않겠지만, 특정후보가 되는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것만 같네요...-_-;;;;

balmas 2012-12-19 12:07   좋아요 0 | URL
ㅎㅎ 예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조금 더 높은 목표 추구로 이어지기를.^^

쾅! 2012-12-2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리 코뮌의 赤旗를 계승한 새누리당이 승리했군요.

누가 되든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다니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투표를 하는 것이 정치적 변화의 의지를 갖는 것이라는 말도 전 순순히 넘어갈 수 없군요.

저야 투표라는 것 자체가 지배권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주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일종의 주체-효과를 만들어내 지배를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이라고 보는 입장이니 그냥 그렇다고 합시다.

발마스 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투표하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투표가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데도 투표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 변화의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까?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 아니면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투표 이외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투표하라고 얘기하시는 겁니까?

비가 오지 않아도 "기우제"는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셈인데 어째서 정치적 변화의 의지가 "투표"로 환원되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되는 군요.

가령 "흔히 국민 또는 시민으로 호명되는 모든 사람(100%)이 투표하지 않았다"고 가정합시다. 그럴 경우 그 사람들은 정치적 변화의 의지를 갖지 않은 것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정치적 변화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지지하는 입장은 제쳐 놓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투표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고 투표를 평생동안 일부러 안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치적 변화의 의지가 없는 사람들일까요?

정치적 변화의 의지가 투표로만 환원된다는 듯이 얘기하시는 것처럼 들리는 군요.

어차피 언어는 모호한 겁니다. 젊은이는 몇 살까지가 젊은이입니까? 만29세까지 입니까?








쾅! 2012-12-2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혹시나 ... 님이 보실까 해서 올려 봅니다.

... 이라는 분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군요.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 속(권력관계=지배와 종속)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죠. 여기저기서 "대화"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지 않나요?

그리고 "진정한" 것이란 없어요. 그리고 저는 "고유한 의지"를 빼았겼다고 전제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거 자체가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본질을 가정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 ...님은 본질주의적인 가정을 하고 계십니다.

말을 주고 받거나 글을 주고 받으며 서로 의자에 앉아서 얘기한다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얘기 안 하는 사람 많습니다.

발마스 님은 인정 안 하시겠지만 담론 자체가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행위인 거죠.

쾅! 2012-12-24 17:3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위계적인 구조는 결국에는 권력관계 즉 지배/종속 관계인 것이죠. 그 속에는 "대화"란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절망하자는 소리가 아니라 거기에서 우리의 인식이 출발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질서를 바꾸려는 행위 자체가 혁명이고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란 얘기일 뿐이죠.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누구나 "대화"가 가능한 곳이고 민주적인 사회라면 도대체 문제로 삼을 게 뭐가 있을까요?

권력에 대해 비판하거나 탐구할 필요 자체가 없고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할 필요도 없지요.




쾅! 2012-12-24 17: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너는 소비자다. 너는 국민이다. 시민이다. 2040이다. 1318이다. 너는 정치적 주체다라고 이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죠.

투표하는 시민 또는 국민이라는 "주체"라는 상상을 다른 사람에게 진리로서 각인시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예, 당연히 새로운 얘기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낡은 얘기죠. 문제는 ...님이 하시는 말씀이 더 낡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는 거죠.

 

그동안 이런저런 글이 많이 밀려서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됐네요.

제가 후배와 함께 옮긴 존 버거의 [벤투의 스케치북]이 출간됐습니다.

 

 

 

 

 

 

 

 

 

 

 

 

 

 

존 버거 전문 번역가인 후배가 주로 옮기고 저는 존 버거의 스피노자 인용문들을 번역했습니다.

이전에도 존 버거의 책이나 글을 좋아했는데, 이번에 번역에 참여해보니까

더 애정이 갑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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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내는 [민족문화연구] 57호, 2012년 겨울호에 실릴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지난 6월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을 다소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이 글을 인용하거나 이 글에 관해 토론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민족문화연구]에 실린 글을

대상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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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이 글은 2012년 6월 15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단 내 “도래할 한국민주주의” 기획연구팀 주최로 열린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 심포지엄에서 처음 발표된 바 있다. 심포지엄에서 좋은 비평과 조언을 해준 연세대 나종석 교수와 건국대 박영균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또한 익명의 심사위원들의 건설적인 제안 덕분에 미진한 점을 수정ㆍ보완할 수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1.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우리가 제목에서 사용한 ‘포스트’ 담론이란, 지난 20여 년 간 국내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다양한 종류의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지닌 담론들, 곧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하에서는 편의상 작은 따옴표를 생략해서 사용하겠다.]

 

자크 데리다는 1993년 출간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책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서울: 그린비, 2013(수정 2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인 몰락과 그 이후 걸프 전쟁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출간된 이 저작에서 데리다는 자신이 왜 이 책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복수의 제목은 우선 마르크스라는 유령을 가리킨다. 1848년 구유럽의 지배자들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던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두려워했듯이, 1993년 당시 이제 마르크스는 죽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소멸했다고 기쁨에 찬 환호를 보내던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호자들은 무덤에 묻힌,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이 유령이 혹시나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무덤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을까 조바심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이미 죽은 마르크스의 유령, 그 환영마저도 몰아내기 위해 푸닥거리를 한다. 그러나 데리다에 따르면 마르크스라는 유령은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서 마르크스의 이론적 유산 없이는 누구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고 그것이 산출하는 각종 갈등과 적대, 모순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르크스라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돌아올 것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이론이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해방의 운동이라는 이유에서도 유령처럼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법적인 공정함의 질서 바깥에서, 자본주의적인 경제의 모순 속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차별받는 타자들의 고통의 호소가 울려 퍼지는 한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유령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공모자들에게 악몽처럼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제목은 또한 ‘마르크스를 괴롭히는 유령’을 의미하기도 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공모했던 그의 적수들(1848년 당시 “낡은 유럽의 열강들”이자 1990년대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자신도 생생한 현실 대 가상ㆍ환영의 대립, 삶과 죽음의 대립을 신뢰했고 이러한 대립 위에 자신의 이론을 세우고 운동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해방의 열망으로서 메시아주의적인 것이 모든 해방 운동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 관계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보편적인 한 요소로 관여한다는 점에서, 유령적인 것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사상과 운동의 조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유령을 몰아내려는 마르크스의 태도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데리다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오늘날 다시 돌아오기 위한 조건은 마르크스를 사로잡았던 이 유령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나는 포스트 담론 역시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유령처럼 존재해 왔다고 믿는다. 여기서 유령처럼 존재해 왔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1) 포스트 담론이라는 유령. 포스트 담론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허깨비로, 유령으로 존재해왔다. 포스트 담론은 처음에는 실체 없는 허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몰아내려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간주되었고, 최근에는 이미 지나간 유행으로, 전 지구적인 금융 위기라는 현실의 출현 앞에서 사라져버리게 될 한 줌의 신기루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마침내 은폐되어 있던 현실의 적나라한 출현 및 과학적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복원을 전제로 한 이러한 평가는, 이데올로기 내지 담론은 비현실적이고 비물질적인 관념들이며 물질적 현실의 적절하거나 그릇된 반영에 불과하다는 속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되풀이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 담론이 애초에 마르크스주의의 내적 모순에서 비롯했고, 또한 그것을 해결하려는 독자적인 시도였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 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괴롭힌 유령의 또 하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 포스트 담론의 유령.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 담론 역시 그 자신의 유령(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이든 근대이든 또는 민족이든 세계화라는 현실이든 아니면 보편성이든 간에)에 사로잡혀 시달려 왔다. 세계사적인 현실의 변화에 대한 반영 내지 표현임을 자처하는 포스트 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근대성의 종말이라는 이름 아래, 따라서 근대성에 대한 애도라는 구실 아래 자신의 타자들을 청산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포스트 담론은 바로 그러한 타자들에 입각하여, 그것들이 품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성립한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타자를 망각하고 배제하려는 욕망은 포스트 담론의 모순이나 한계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애도를 통해 자신이 망각하려고 했던 이 타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여부에, 또는 그러한 애도를 어떻게 애도하느냐 여부에 포스트 담론의 장래가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애도의 담론으로서 포스트 담론

 

1) 포스트 담론에 대한 두 가지 평가 방식

 

국내에는 포스트 담론에 관해 크게 두 가지의 태도가 존재한다. 하나는 포스트 담론을 새로운 시대적 흐름 내지 시대의 표상으로서 간주하는 태도다. 포스트 담론을 일종의 ‘시대정신’(Zeitgeist)으로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는 포스트 담론에 대한 이런저런 찬반 여부를 떠나 포스트 담론이 새로운 시대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담론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기저의 사회적 현실 역시 탈근대성(postmodernity)으로 이행했다는 사실, 적어도 부분적으로 탈근대성의 시대적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근대성에서 탈근대성으로의 이행이 보편적인 역사적 흐름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받아들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포스트 담론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표현하는 정신이나 문화적 풍조 또는 세계관인 셈이다.[국내의 다양한 필자들에게서 이처럼 탈근대성을 새로운 세계사적 현실로, 포스트 담론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담론으로 간주하는 논법을 찾아볼 수 있다. 김성기,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사회과학󰡕,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1; 김욱동,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 문학/예술/문화󰡕, 서울: 민음사, 1992; 김진석,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3; 󰡔초월에서 포월로󰡕,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4; 이병천, 「맑스 역사관의 재검토」, 󰡔사회경제평론󰡕 제4집, 1991; 「포스트맑스주의와 한국사회」, 󰡔사회평론󰡕 17호, 1992; 이진우, 󰡔탈현대의 사회철학󰡕, 서울: 문예출판사, 1993; 김상환, 󰡔해체론 시대의 철학󰡕,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서울: 민음사, 1999 등 참조.]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 담론을 자본의 이데올로기 내지 허상으로 간주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특히 포스트 담론이 수용되던 초기에는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좌파 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를 마르크스주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 내지 프티부르주아적인 사상의 표본으로 간주하곤 했다.[알렉스 캘리니코스,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임상훈ㆍ이동연 옮김, 서울: 문화과학사, 1994; 윤소영,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서울: 문화과학사, 1995;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하여󰡕, 서울: 공감, 1996 등 참조.] 또한 지난 2007년 이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고 ‘경제’의 문제가 사회적ㆍ지적 논의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다시 포스트 담론을 하나의 허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확산되었다. 금융 자본이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영역에 걸쳐 점점 더 막강한 전 지구적인 보편성의 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반면, 포스트 담론은 ‘경제’에 관한 비판적 인식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대 서사의 종언이나 보편의 허구성 등을 내세우면서 보편적인 사회ㆍ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전망을 거부한 가운데 자기 자신을 ‘문화’ 영역으로 폐쇄시키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가령 외국 이론가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비판은 이러한 논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모더니티에 반대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돌아선 이론들은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이성의 역할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로부터 관심의 초점을 바꿈으로써 결국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를 숨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르헤 라라인,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 모더니티와 제3 세계의 현존󰡕, 김범춘 외 옮김, 서울: 모티브북, 2009, 12쪽.]

 

흥미로운 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두 가지 태도가 동일한 전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980년대 영미권에서 전개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한 전형을 제시해 준 바 있는 프레드릭 제임슨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20세기 후반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상부구조의 새로운 표현으로 제시한 바 있다.[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New Left Review, no. 152, 1984;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정정호ㆍ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서울: 도서출판 터, 1990. 이 논문은 나중에 동일한 제목의 책 속에 수록되었다. F.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1.] 그는 이 논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특유한 현상들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의 와해, 깊이의 상실과 표층성의 부각, 역사의 말소와 미적 형식들로의 대체, 개별 주체의 소멸과 혼성모방의 등장, 의미 사슬의 붕괴, 시간의 공간화, 비판적 거리의 소멸 등을 꼽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순한 허상이나 가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지 않고, 그것이 1950년대부터 성립한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를 표현해준다고, 곧 그것은 토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일종의 상부구조의 논리적 형식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좀더 일반화한다면 포스트 담론 일반은 가상 내지 이데올로기이기는 하되, 현실 역사의 변화와 연동되어 있고 그것을 나타내는 가상, 따라서 말하자면 필연적 가상 내지 현실 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제임슨의 관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ㆍ지적 현상을 물질적ㆍ경제적 변화 과정과 연동해서 설명하려 한다는 주목할 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런 식의 설명은, 알튀세르의 표현을 빌리면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표현적 총체성으로 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곧 토대와 상부구조는 긴밀하게 연결된 완결된 총체를 이루고 있어서 토대의 변화는 상부구조의 변화와 무매개적으로 대응하게 된다.[더 나아가 숀 호머와 오민석이 각각 지적하듯이, 제임슨이 과연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상응 관계를 온전히 설명하고 있는가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제임슨의 책에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논의가 한 장에만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장의 논의 역시 시장과 이데올로기 내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 언급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Sean Homer, Fredric Jameson: Marxism, Hermeneutics, Postmodernism, London: Routledge, 1998 및 오민석, 「프레드릭 제임슨, 정치성, 그리고 매개: 포스트모더니즘론을 중심으로」, 󰡔영미문학연구󰡕 1권, 2001 참조.] 더욱이 제임슨은 “문화적 지배소”(cultural dominant)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적 총체성을 긍정하면서도 그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과 차이들을 인정하려고 하지만, 여러 비판가들이 지적하듯이 실제로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통칭되는 후기 자본주의의 상부구조는 동질적인 총체를 이루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적 문화 현상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경향들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 또는 모순을 해명하기 어렵게 된다.[마이크 데이비스, 「도시 르네쌍스와 포스트모더니즘 정신」,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오길영 외 옮김 (서울: 이론과 실천, 1992) 및 김용규, 「이론적 통찰과 맹목: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론」, 󰡔오늘의 문예비평󰡕 58호, 2005년 가을호 참조.]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이 후기 자본주의의 전일적인 문화적 지배를 표현하고 그 속에서는 비판적 거리가 소멸된다면,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저항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사실 제임슨의 논리대로 한다면, 비판적 거리가 상실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제임슨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고찰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러한 아르키메데스적인 관점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해 우선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Warren Montag, “What is at stake in the debate on postmodernism?”, in E. Ann Kaplan ed., Postmodernism and Its Discontents: Theories, Practices, New York: Verso, 1988 참조.]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제임슨의 논의는 미국에 특유한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 내지 다국적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인 문화적 논리로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포스트 담론이 수용된 이래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담론을 범세계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견해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제임슨과 같이 미국에 특유한 현상들을 전 세계적인 경향으로 일반화하는 미국 중심주의적인 관점에도 그 책임이 있다. 사실 포스트 담론의 국내 도입과 그 확산 과정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가 미국화 과정의 한 측면이었다고, 사유의 미국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이것이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과정을 수반했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사상가나 이론가가 미국에서 각광을 받고 조명을 받아야 비로소 그것이 국내에서 논의되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비판 이론계의 사정에 밝은 독자들이라면, 현재 미국에서 막 “뜨고 있는” 이론가가 몇 년 후에는 한국에서 뜨게 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아무리 중요한 이론가나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미국에서 뜨지 않는” 사람이 한국에서 각광받고 조명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 담론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위해 필요한 전제 중 하나는 그것이 미국에서 발원한 미국식 담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는 일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서 좀더 부연하기로 하겠다.

 

2) 애도작업으로서 포스트 담론

 

필자가 보기에 국내의 포스트 담론은 시대정신이나 허상 내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또는 그것들에 앞서) 일종의 애도의 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포스트 담론을 애도의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포스트 담론은 처음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역시 그 도입 조건의 굴레에 여전히 묶여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에서 이루어진 포스트 담론의 수용 과정을 돌이켜볼 때마다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놀라움은 무엇보다 포스트 담론의 수용이 막 시작되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변화로 인해 생겨난다. 1980년대는 한국 지성사에서 획기적인 시기였다. 민주화 운동의 고양을 배경으로 한국사회성격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면서 오랫동안 한국의 사상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마르크스주의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이른바 ‘자생적 발전론’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민족사’의 구성이 20세기 후반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중심적 화두 중 하나로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도도한 지적 흐름은 말 그대로 1980년대 말부터 순식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어, 채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마르크스주의나 민중, 민족 같은 용어들은 사라져버리고 그 대신 ‘포스트’라는 접두어를 지닌 다양한 담론들 및 그것들과 결부된 새로운 개념들(담론, 텍스트, 해체, 시뮬라크르, 파놉티콘, 숭고 등)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가히 인식론적 단절 내지 절단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였다. 이것이 충격적인 이유는 국내의 그 누구도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상, 담론, 용어들이 갑자기 시대의 주류 사상과 담론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민중사에서 문화사로,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사회철학에서 포스트담론으로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명백한 답변은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급격한 세계사적 변화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인 몰락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관한 논의가 이미 1970년대부터 널리 전개되고 있었지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말 그대로 급격한 변화였고 한 시대의 종언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러한 답변은 설득력이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 마르크스주의의 종언, 냉전의 종식, 근대성의 종말, 국민국가의 몰락 등과 같이 각종 종말에 대한 담론은 새 천년의 시작을 눈앞에 두고 급속히 확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답변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 답변은 ‘외부 현실의 변화’가 왜 꼭 그렇게 급격한 ‘내부의 사상적 변화’를 수반해야 했는가라는 반문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기 어렵다. 실제로 1992년에 창간되어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론󰡕이라는 학술지, 세계사적인 변화에 대응하려는 마르크스주의적 시도를 대변하던 그 학술지의 존재는 단순히 외부 현실의 변화만으로는 급격한 사상과 담론의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따라서 오히려 포스트 담론의 수입과 급속한 수용은 일종의 애도의 표현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Trauer und Melancholia」(1917)이라는 글에서 애도작업을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리비도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지그문트 프로이트, 「슬픔과 우울증」, 󰡔무의식에 관하여󰡕, 윤희기 옮김, 서울: 열린책들, 1997.] 이러한 애도 개념을 원용해서 이야기한다면, 포스트 담론의 수입은 그 이전까지 국내의 지적 무대를 지배하던 마르크스주의(또는 민중민주주의) 및 민족 담론이라는 사랑하는 대상, 하지만 “현실성 검사를 통해 ...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249~250쪽.]이 확인이 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철회하는 작업, 곧 그 대상의 상실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을 완전히 떠나간 것으로, 사망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애도 담론으로서의 포스트 담론이라는 가설은 왜 1990년대 초에 국내에 그토록 많은 고백의 서사와 전향의 담론이 유행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고백의 서사와 전향의 담론 중 가장 유명한 것들만 몇 가지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아볼 수 있다. 1970년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자 반체제 지식인이었던 김지하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생명 담론을 내세우면서 ‘운동권’에 대한 비난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나 1970~80년대 대표적인 PD파 노동운동가였던 김문수가 자유주의로 전향을 선언한 이후 집권 여당에 입당한 것(그는 현재 새누리당 소속으로 경기도 지사로 재직 중이다), 또는 1980년대 대표적인 노동시인이었던 박노해가 자유주의적 예술가로 변모한 것 등이 그 사례들이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덜 유명하지만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의 주요 논객들이었던 박형준과 이병천은 1990년대 초에 마르크스주의의 몰락과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의 전향을 선언한 바 있다. 박형준ㆍ이병천 옮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I~III, 서울: 의암출판, 1992~1993. 이병천은 그 이후 시민 민주주의론과 한국경제론 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박형준은 이명박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바 있다. 최근에는 1970~80년대 민중문학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었던 황석영이 이명박 정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에 있었던 고백과 전향의 흐름은 이러한 저명 인사들의 사례보다는 대학가에서 운동권이 거의 사라지고 고시공부에 몰두한다든가, 민주화 세대를 대표하는 ‘386’ 또는 ‘486’의 주요 운동가들이 우파(심지어 극우파)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 등에서 좀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포스트 담론은 그 고통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해주고 이미 상실된 사랑하는 대상을 대체할 수 있게 해준 어떤 것이었다.

 

3) 포스트 담론의 애매성

 

또한 포스트 담론이 지닌 이러한 애도 담론으로서의 성격에 입각해 그것이 지닌 애매성을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당시에 일어났던 세계사적인 변화는 어떤 것이었는지 질문해볼 수 있다. (1) 그것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인 몰락이었으며, 그와 함께 역사적 마르크스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이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사실 유럽 및 북미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거의 전 세계적으로 이론적 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급격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2)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 질서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용어법으로 말하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은 현실 역사의 종말도, 정치적ㆍ사회적 갈등의 종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더 불투명하고 훨씬 더 참기 어려운 (왜냐하면 인식과 실천의 기본 준거로 기능했던 마르크스주의의 정당성이 와해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종류의 갈등과 적대, 또는 새로운 종류의 계급투쟁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도의 담론으로서 포스트 담론에서는 세계사적인 변화의 이 두 가지 측면 중에서 첫 번째 측면만이 부각되었다. 달리 말하면 포스트 담론에서는 (1)에 대한 애도가 (2)에 대한 망각을 초래했다고, 또는 (2)에 대한 망각 내지 청산의 욕망이 (1)에 대한 애도를 과잉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1)을 부인하려고 애쓰는 대신 (2)의 측면에 좀더 주목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1)의 현상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한계로 받아들였을 뿐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국가 관료적 사회주의라고 불리든, 아니면 은폐된 국가 독점 자본주의로 불리든 간에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현실 정체로 불릴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오히려 왜곡되고 변질된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본질, 진정한 핵심을 복원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식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이후의 사태의 전개 과정은 이러한 생각이 별로 타당성이 없었음을 증명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것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엄정한 인식과 비판을 가로막는 알리바이로 기능했다.

 

이처럼 포스트 담론이 애도의 담론이었고, 또한 (1)에 대한 애도가 (2)에 대한 망각을 초래했다면, 과연 이러한 애도 작업을 수행하게 했던 무의식적인 욕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 몰락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주의 및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의 감정이었을 것이며, 민주화의 성취감과 이른바 ‘3저 호황’으로 요약될 수 있는 당시의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 아울러 민주화 운동 주체들의 운동에 대한 피로감도 또 다른 욕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및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이광일의 설명이 좀더 설득력이 있다. 이광일은 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에 대한 빼어난 연구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및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세력은 사실 이미 자유주의 헤게모니에 포섭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급진 노동운동을 전개하려는 정파들은 노동 대중과의 연계를 상실한 가운데 엘리트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 서울: 메이데이, 2008 참조.] 따라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마르크스주의 및 민중ㆍ민족 담론에서 포스트 담론으로의 급격한 이행은, 1987년 민주화 협약을 통해 형성된 자유주의 체제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구축해가는 과정의 이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애도 작업으로서 포스트 담론의 수용은 새로운 종류의 갈등과 적대 내지 계급투쟁(말하자면 ‘계급 없는 계급투쟁’)에 직면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제기했어야 했지만, 그것이 지닌 애매성 때문에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종류의 계급투쟁, 새로운 종류의 적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적대와 갈등을 설명하지 못했고 또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론적ㆍ실천적 해법들이 모색되어야 하는가?

 

3. 포스트 담론의 인식론적ㆍ정치적 효과

 

그 대신 애도의 담론으로서 포스트 담론에 내포된 이러한 애매성은 몇 가지 인식론적ㆍ정치적 효과를 산출했다.

 

1) 이중적인 무력화

 

가장 주목할 만한 효과는, 바로 이러한 애매성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담론으로 소개된 새로운 이론들 양쪽이 모두 이론적으로 무력화되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우 1980년대 인문사회과학계가 이룩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담론이 등장한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손쉽게 본질주의, 계급 환원주의, 경제주의, 유럽중심주의의 대명사 등으로 환원되었다. 특히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 조건󰡕에서 보편적인 인간 해방의 신화와 철학적 체계를 통한 모든 지식의 사변적 통일이라는 신화를 근대의 두 가지 정당성 신화로 제기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이러한 두 가지 정당성 신화의 결합체로 지적한 것[Jean-François Lyotard, La Condition postmoderne, Paris: Minuit, 1979; 󰡔포스트모던적 조건󰡕, 이현복 옮김, 서울: 서광사, 1992.]이 마르크스주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논거로 자주 활용되었다. 200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게토화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무능력도 중요한 요인이었지만,[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무능력은 변화하는 세계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정세 분석을 제시하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한계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제출하지도 못했으며,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논의를 개발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특히 들뢰즈나 네그리 또는 기타 현대 이론가들을 원용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려는 이론가들(이진경, 조정환 또는 문화과학 그룹 등)보다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포스트 담론에 내포된 이러한 애매성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 담론 역시 지적 담론으로서 무력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 도입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에 관한 논의들은 계몽과 보편성, 인간 해방의 과제를 근대의 신화로 기각할 뿐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개인적인 욕망과 문화적 유희에만 몰두하는 무책임한 담론으로 비판받았다. 특수주의, 심미주의, 문화주의, 정체성 정치, 비결정성, 실천적 무기력 등이 이러한 비판을 요약하는 단어들이었다.

 

사실 포스트 담론에 관한 국내의 논의를 특징짓는 것은 포스트 담론 내부 및 포스트 담론에 대한 비판 모두에서 나타나는 상투어구의 반복, 짜깁기, 획일화, 정교한 분석의 부재 등이다. 필자가 다소 사태를 과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의 포스트 담론에 관한 논의에서 실제로 의미 있고 독창적인 작업을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그나마 몇 가지 눈에 띄는 연구의 사례를 든다면 철학 분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업적을 꼽아볼 수 있다. 김진석,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 앞의 책; 이진우, 󰡔탈현대의 사회철학󰡕, 서울: 문예출판사, 1993; 김상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현대 프랑스 철학의 쟁점󰡕, 서울: 창비, 2002 등 참조. 이들의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한 가지 논평만 해두기로 하자. 이들의 저작은 공통적으로 포스트 담론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 또는 양자 사이의 대결을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들 저작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운동에 대한 깊은 논의라든가 포스트 담론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긴장이나 갈등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기로 하자.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포스트 담론,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는 과연 어디서 유래한 담론일까?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이런저런 기회에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를 포함한 포스트 담론은 프랑스 철학이나 프랑스 이론이 아니라 미국제 담론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초기 포스트 담론 수용을 주도하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김성기는 그 이후 포스트 담론을 “불란서제 담론”이라고 부른 바 있는데, 이러한 규정은 포스트 담론에 관한 통상적인 이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성기, 「불란서제 담론의 그늘」, 󰡔패스트푸드점에 갇힌 문화비평󰡕, 서울: 민음사, 1996 참조. 불란서제 담론에 대한 김성기의 다소 회의적인 시선에 대하여 이진경은 그 담론의 전복성을 부각시키고자 하지만, 그것을 불란서제 담론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진경, 󰡔맑스주의와 근대성: 주체 생산의 역사이론을 위하여󰡕, 서울: 문화과학사, 1997 중 6장 「근대적 정체성과 횡단의 정치」 참조.] 포스트 담론을 적절하게 수용하고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그것이 프랑스제 담론이 아니라 미국제 담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일이지만 필자의 대화 상대방 중 이 주장을 진지하게 듣고 또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포스트 담론이 지닌 이런저런 문제점을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에 전가하기 위한 주장이 아니다. 또는 포스트 담론이 내포한 이런저런 문제점들로부터 프랑스 철학자들을 면제시켜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의 문명사학자 프랑수아 퀴세가 지난 30여 년 동안 미국에서 이루어진 “프랑스 이론의 발명”의 역사를 짚어보는 노작(勞作)에서 잘 보여준 것처럼 미국 학계에서 발명된 포스트 담론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 학계의 놀라운 생산성과 지적 활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될 수 있다.[François Cusset, French Theory: How Foucault, Derrida, Deleuze, & Co. Transformed the Intellectual Life of the United Stat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8; 프랑수아 퀴세, 󰡔루이비통이 된 푸코?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문강형준ㆍ박소영ㆍ유충현 옮김, 서울: 난장, 2012.] 예컨대 에드워드 사이드에서 호미 바바에 이르는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은 미국에서 발명된 포스트 담론의 대표적 사례인데, 그것이 지닌 이런저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양 문명 및 근대성의 한계를 근원적으로 재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크게 이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이 광범위하게 프랑스 철학자들(가령 데리다, 푸코, 알튀세르, 라캉 등)을 원용하고 있음에도, 1990년대 말까지 프랑스 철학자들 자신이나 프랑스 국내 학계에서 포스트 식민주의에 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카메룬 출신 이론가 아쉴 엠벰베의 아프리카 포스트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빼어난 저작은 먼저 프랑스어로 출간됐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책의 영역본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프랑스에서도 새삼 관심을 끌게 되었다. Archille Mbembe, De la postcolonie, Paris: Karthala, 2000.] 가령 프랑스 철학자들 가운데 프란츠 파농에 관한 글을 쓴 사람은 사르트르가 유일했으며, 아프리카나 아시아 또는 남아메리카의 식민주의나 포스트 식민주의의 문제를 자신의 철학의 주요 사고 대상으로 삼은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식민지 알제리의 문제를 전기적인 시각에서 출발하여 철학적으로 성찰하려고 한 데리다 정도가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J. DerridaㆍGeogffrey Bennington, Jacques Derrida, Paris: Seuil, 1990; Le monolinguisme de l'Autre, Paris: Galilée, 1996.] 로버트 영이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유의 정치적 기원은 68혁명보다는 알제리의 반식민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 옳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철학에서 명시적인 사유 주제나 대상으로 부각되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역시 2000년대 이전까지는 프랑스에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1985년에 출간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대표작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은 2008년에야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Ernesto LaclauㆍChantal Mouffe, Hégémonie et stratégie socialiste; vers une démocratie radicale, Paris: Les Solitaires intempestifs, 2008.]

 

따라서 포스트 담론이 미국제 담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프랑스 철학자들을 옹호하고 반대로 포스트 담론은 폄훼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포스트 담론이 영미 지식계, 특히 미국에서 탄생한 미국식의 담론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에만 그 담론이 생산된 맥락을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그 담론들의 강점과 한계를 좀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그러한 담론을 재창조하기 위한 조건을 잘 고려하기 위해서도 이것은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의 포스트 담론 수용에서 이러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포스트 담론에 관한 여러 가지 오해가 산출된 것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포스트 담론의 주체적인 수용을 모색하려는 초기의 시도 중 주목할 만한 집단 작업으로는 다음 저작을 참조. 이정우 외, 󰡔프랑스 철학과 우리 1: 현대 프랑스철학을 보는 눈󰡕, 서울: 당대, 1997; 이구표 외, 󰡔프랑스 철학과 우리 3: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역사철학󰡕, 서울: 당대, 1997. 하지만 이 저작들의 경우도 여전히 포스트 담론 = 프랑스 철학(또는 프랑스제 담론)이라는 전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포스트 담론의 중요한 이론적 원천이 되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저작이 충분히 소개되지도 못했거니와 번역된 저작들 역시 심각한 오역으로 훼손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철학자들 중 상대적으로 번역이 많이 되고 또한 번역의 질이 좋은 경우는 푸코와 들뢰즈 정도다.[푸코의 국내 수용에 관해서는 진태원, 「푸코에 대한 연구에서 푸코적인 연구로」, 󰡔역사비평󰡕 99호, 2012년 여름호 참조.] 반면 국내에 독자적인 학회도 존재하는 라캉의 경우 제대로 번역된 책은 겨우 세미나 11권 하나뿐이다.[자크 라캉,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들󰡕, 맹정현ㆍ이수련 옮김, 서울: 새물결, 2008.] 데리다의 경우 80여 권이 넘는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 인터뷰 등에서 번역된 책은 20여 권에 불과하며, 그나마 제대로 독서가 가능한 책은 6~7권을 넘지 못한다. 포스트 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론가 중 한 사람인 리오타르의 경우는 󰡔포스트모던 조건󰡕을 포함한 2권의 작은 책과 한 권의 평전만 번역되었을 뿐,[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적 조건󰡕, 앞의 책; 󰡔지식인의 종언󰡕, 이현복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1993; 󰡔앙드레 말로󰡕, 이인철 옮김, 서울: 책세상, 2000.] 󰡔쟁론󰡕(Différend)이나 󰡔담론, 형상󰡕(Discours, figure), 󰡔비인간󰡕(L'inhumain) 같은 그의 숱한 대표작은 전혀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리오타르 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칸트의 숭고 분석론은 번역된 바 있으나, 심각한 오역 때문에 국내의 논의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칸트의 숭고미에 대하여󰡕, 김광명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2000. 또한 민음사에서도 󰡔포스트모던 조건󰡕 및 관련된 논문들을 묶은 저작을 출간한 바 있지만, 심각한 오역 때문에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포스트모던의 조건󰡕, 유정완 외 옮김, 서울: 민음사, 1992.]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철학이 국내의 독자적인 포스트 담론 수용을 위한 이론적 원천으로 작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독자적인 수용과 활용의 노력이 이루어진 경우는 문학비평에서의 라캉(또는 오히려 지젝), 사회학에서의 들뢰즈 정도라고 할 수 있다.[슬라보예 지젝의 경우는 좀 독특하다. 그는 포스트 담론에 대한 가장 열정적인 비판가 중 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포스트 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고, 또 문학 분야에서는 ‘라캉의 대용품’으로 널리 원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 담론은 주로 상투어구의 반복, 짜깁기, 획일화의 대상이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상투어구의 반복이나 짜깁기, 획일화 같은 경향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다. 프랑수아 퀴세는 미국에서 프랑스 이론의 발명의 역사를 다루면서 ‘인용’을 이러한 발명의 핵심 장치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하나의 소우주처럼 작동하는 인용은 복잡한 논지와 전체 저작을 전달하는 것으로 제 임무를 다한다. 말 그대로 제시하는 것(présenter), 즉 요약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 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 적어도 [복잡한 논지와 전체 저작의] 유령을 불러내는 일이다. 결국 인용은 프랑스 이론으로 불리는 지적 합성물의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한 줌의 인용 속에 프랑스 이론 전체가 포함되는 것이다.”[프랑수아 퀴세, 󰡔루이비통이 된 푸코?󰡕, 158쪽.] 그러면서 그는 유명한 인용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포스트모더니티를 “메타서사에 대한 불신”이라고 정리한 리오타르의 요약, 다양한 방식으로 번역된 데다가 그 텍스트의 바깥에서 너무나 자주 반복된 데리다의 “텍스트-의-바깥은 없다”는 주장 등이 좋은 예일 것이다. 심지어 철학사란 “어떤 작가의 뒤에 들러붙어 그의 애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비역질”이라는 들뢰즈의 표현, 푸코가 󰡔말과사물󰡕에서 말한 “해변의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씻기듯” 사라질 인간의 이미지는 너무 자주 반복ㆍ변형되어 원래의 텍스트는 실질적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프랑수아 퀴세, 같은 책, 158~59쪽]

 

따라서 데리다가 자신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로 분류하려는 시도에 대해 격렬히 반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또 󰡔마르크스의 유령들󰡕 및 나의 작업 일반을 포스트모더니즘 내지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유”(類)의 단순한 한 가지 종(種)이나 경우 또는 사례로 간주하려는 모종의 성급한 시도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 이 통념들[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옮긴이]은 바로 가장 미흡한 정보를 지닌 공중(대개의 경우 거대 언론)이, “해체”를 필두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쓸어 담는 잡동사니 부대자루들이다. 나는 내가 포스트구조주의자도 포스트모더니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번에 걸쳐, 내가 하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일러두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왜 내가 이 단어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지 설명했다. 나는 결코, 더군다나 내 나름대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메타서사의 종말의 예고”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 또한 사람들은 앞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하지만 역시 아주 부당하게도, 위대한 메타서사 담론, “큰 이야기”와 비교해 볼 때 “해체주의자들”―또 다른 잡동사니 통념―은 보잘 것 없이 약하다고 비난하곤 했다.”[자크 데리다 외 지음,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불가능한 만남?󰡕, 진태원ㆍ한형식 옮김, 서울: 길, 2009, 163~64쪽. 강조는 데리다.] 실제로 프랑스 철학자들 중에서 자신의 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규정한 것은 리오타르가 유일하며 푸코나 들뢰즈, 데리다는 자신의 사상을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규정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드문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조차 사용한 적이 없다. 더욱이 그들의 저작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라는 말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프랑스에서 이들을 포스트구조주의로 분류하는 경우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에서 획일화는 일종의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야말로 “한 줌의 인용 속에 프랑스 이론 전체가 포함되는” 일, “너무 자주 반복ㆍ변형되어 원래의 텍스트는 실질적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일이 표본적으로 일어났고 또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텍스트의 바깥이란 없다”(Il n'y a pas de hors-texte)는 데리다의 문장은 오히려 대부분 “텍스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릇된 번역으로 더 잘 인용되며,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담론 일반의 텍스트주의를 대표하는 명제로 아무런 의심 없이 통용된다.[사실 이러한 오해를 처음으로 조장한 사람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에드워드 사이드다. E. Said, “The Problem of Textuality: Two Exemplary Positions”, Ciritical Inquiry, vol. 4, no. 4, 1978 참조.] 우리나라에서 이 문장의 원문이 무엇이고, 과연 그 원문이 이런 식으로 번역될 수 있을지, 또 이 문장에서 데리다가 말하는 텍스트가 관념이나 표상, 책이라는 의미에서의 텍스트를 뜻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져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필자가 알기로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거의 유일하게 김상환 교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김상환, 「데리다의 텍스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편, 󰡔철학사상󰡕 27집, 2008. 하지만 그의 관점에는 몇 가지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또한 󰡔말과 사물󰡕에 나오는 “해변의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를 씻기듯” 사라질 인간이라는 푸코의 문장은 인간의 종말, 주체의 죽음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거듭 반복되고 인용되고 심지어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하지만 역시 그 문장이 제시된 책의 맥락을 함께 검토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말과 사물󰡕 전후의 푸코 저작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그 문장의 의미가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지 탐구하는 경우는 더욱더 찾아보기 어렵다.[‘인간의 죽음’ 내지 ‘주체의 죽음’에 관한 국내의 거의 유일한 철학적 논의로는 강영안, 󰡔주체는 죽었는가: 현대 철학의 포스트모던 경향󰡕, 서울: 문예출판사, 1996 참조. 이 책에서 필자는 “어떤 하나의 입장을 내세우려는 것이 나의 의도는 아니었”으며 “현대 서양 철학이 자리 잡고 있는 자리를 확인해보자는” 것이 자신의 의도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철학자들이 독일 관념론 및 그 이후의 독일 철학과 레비나스라는 점에서 필자의 관점은 이미 분명히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필자는 푸코와 데리다가 ‘주체의 죽음’에 관한 현대의 논의를 주도한다고 말하면서도 푸코와 데리다에 대해서는 거의 분석하지 않은 채, “푸코나 데리다의 주체 비판이 이런 점에서 니체와 하이데거에 힘입고 있”(11쪽)다거나 “푸코의 경우, 말년에 또 다시 자신의 문제는 결국 ‘주체’의 문제였음을 토로”(19쪽)했다는 언급, “데리다 같은 사람은 ... 모두 하이데거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30쪽)는 지적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라캉이나 알튀세르, 푸코나 데리다 또는 들뢰즈 등이 제기한 주체에 관한 문제제기에 대한 깊은 분석이라기보다는 독일 관념론이나 레비나스의 시점에서 그러한 문제제기를 멀리서 스케치하는 저작이라고 평할 수 있다.]

 

뒤에서 좀더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마찬가지로 리오타르의 거대서사 내지 메타담론의 종언이라는 주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는지 살펴보는 경우도 거의 없으며,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의 차이는 무엇인지, 데리다의 ‘텍스트’가 과연 ‘시뮬라크르’와 동일한 논리를 표현하는지 분석하는 경우를 발견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대신 텍스트, 인간의 죽음, 거대서사의 종언, 시뮬라크르, 노마드, 리좀, 파놉티콘, 숭고 등이 뒤범벅이 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 담론이라는 비빔밥이 하나의 동일한 담론, 대체 가능한 등가적인 논리들로서 소개되고 인용되고 비판되고 또 경우에 따라 찬양되곤 한다.

 

2) 문제들의 분리

 

따라서 두 번째 중요한 효과는 이러한 상호 무력화로 인해 포스트 담론의 이론적ㆍ실천적 지향에 대한 맹목이 일반화되었고 포스트 담론은 이데올로기로서의 포스트주의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와 새로운 이론들 사이의 갈등적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역시 장애를 겪게 되었고, 포스트 담론이 제기하는 새로운 이론적ㆍ실천적 과제들에 대한 모색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포스트 담론이 대결했어야 할 과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종류의 갈등과 적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으며, 또한 포스트 담론을 통해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및 좀더 넓게는 근대성 일반)의 한계들을 성찰하고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대신 국내에서는 이진경이나 조정환 등과 같이 들뢰즈나 네그리 등을 원용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이러한 작업이 수행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원용하는 들뢰즈나 네그리가 포스트 담론과 무관하다고 간주하는 것 같다.]

 

그 대신 포스트 담론은 주로 애도와 청산의 알리바이로 기능했으며, 이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이행’의 시도가 산출되었다. 가령 거대 서사에서 작은 이야기로(곧 민중사에서 문화사 내지 일상사로), 계급 내지 민중에서 소수자로, 보편성에서 차이로, 민족에서 탈민족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정치에서 문화로의 이행 등과 같은 이행의 논의들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문제는 대립의 두 항 사이의 관계가 배타적인 대립이나 선형적인 이행의 관점에서 파악된다는 점이다. 곧 거대 서사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곧바로 거대 서사의 폐기와 작은 이야기들의 특권화를 낳게 되고, 노동자 계급 중심 정치의 한계에 대한 지적은 자유주의 정치의 전면적인 수용으로 나타나며, 근대적 이성의 병리에 대한 분석은 감성에 대한 맹목적 찬양으로 넘어가는 식의 이행론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강요된 청산으로 이어졌으며, 그와 결부된 계급론의 문제나 정치경제학 비판의 문제설정의 소멸을 낳게 되었다.

 

또한 포스트 담론을 원용하여 독자적인 문제를 구성하려는 시도들이 제시되었다. 국문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제기된 탈민족주의 담론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과연 이러한 담론이 진정으로 포스트 담론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여부이며, 그것은 오히려 포스트 담론과 거의 무관한 또 하나의 획일적이고 이분법적 담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탈민족주의 담론에서는 포스트 담론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분류와 분석을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근대와 탈근대의 선형적인 시기 구분에 입각하여, ‘민족=국민=근대=마르크스주의=전체주의’ 같은 식의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논리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탈민족주의 담론 내지 그 한 흐름으로서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관한 비판적 분석으로는 진태원, 「국민이라는 노예?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민족문화연구󰡕 51집, 2009 참조.]

 

이러한 문제들의 분리로 인해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 내지 민중ㆍ민족 담론의 역사적 한계에 대한 고찰 및 개조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만약 포스트 담론이 원래 지니고 있던 문제의식이 적절하게, 그리고 능동적으로 수용되었다면, 마르크스주의 및 민중ㆍ민족 담론이 지니고 있던 내적 한계를 좀더 효과적으로 인식하고 전위(轉位)시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포스트 담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배타적 대립 내지 선형적 이행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포스트 담론을 주로 새로운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치부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나 민중ㆍ민족 담론 내부에서 포스트 담론을 생산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또한 포스트 담론의 경우는 그것의 지적ㆍ정치적 모체를 이루는 마르크스주의와의 연관성[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담론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좋은 논의로는 로버트 영, 󰡔백색신화󰡕, 김용규 옮김, 부산: 경성대출판부, 2008 및 󰡔포스트 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옮김, 서울: 박종철출판사, 2005를 각각 참조.]에서 분리된 채,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자유주의 세력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문화 담론을 제시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소비 담론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이런 측면에서 이광일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포스트 담론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거나 원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뼈아픈 비판이다. “물론 포스트주의는 맑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긴 이론적, 실천적 지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했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급진 노동운동과 연대하기보다 대중운동과 무관한 강단이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영역과 밀착되어 있었다. 그 결과 포스트주의의 많은 쟁점들은 자유주의적 시민운동들에 의해 선점되었고 이것은 급진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391~392쪽.]

 

4. 포스트 담론의 통찰

 

따라서 앞으로 포스트 담론이 감당해야 할 과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일어났어야 할, 하지만 일어나지 못한, 포스트 담론과 그 타자의 마주침을 시도하는 일일 텐데, 이렇게 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일은 지난 20여 년 동안의 포스트 담론의 수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대로 인식되지도, 실천되지도 못하고 있는 포스트 담론에 고유한 통찰들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필자의 생각에 그러한 통찰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보편에서 보편들로

 

첫 번째 통찰은 보편에 관한 새로운 문제설정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포스트 담론의 한계 내지 맹목점으로 차이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보편성을 거부하거나 배제한다는 점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차이와 보편성을 이처럼 직접 대립시키는 것은 근대성 대 탈근대성, 보편성 대 차이, 계급 대 정체성 등과 같은 불모의 양자택일 구도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열린 보편성’이나 ‘차이의 연대’ 같은 식의 비개념적인 통념상의 결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문제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보편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포스트 담론이 제기하는 진정한 인식론적 기여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성의 존재 조건이라는 문제와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보편성의 존재 조건이라는 문제는 포스트 담론에 고유한 특징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 같은 이른바 ‘의심의 대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진리 내지 보편성에는 유한한 (물질적) 조건들이 존재하며, 더 나아가 진리 내지 보편성은 자신의 유한한 조건들을 부인하는 가상을 내재적으로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조건을 계급 구조로 보든 무의식으로 보든 아니면 노예와 주인 사이의 차별적인 가치 구조로 보든 간에, 이들 이후에 보편성의 문제는 유한한 조건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러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제기된다.

이렇게 볼 때 보편성의 조건이라는 문제에 관한 포스트 담론의 고유한 기여는 그 조건의 우발성다양성이라는 쟁점, 따라서 (비목적론적ㆍ비종말론적) 역사성이라는 쟁점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마르크스와 니체, 또는 프로이트는 자신의 대상에 대해서는 그 고유한 맹점과 가상, 유한성을 고발하고 비판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이론 역시 동일한 맹점과 가상, 유한성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맹목적이었다. 이들의 통찰에 크게 빚지고 있는 포스트 담론이 이들의 문제설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포스트 담론을 통해 보편은 우발적이고 다양한 조건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계보학의 철학적 원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니체, 계보학, 역사」1970)라는 글에서 푸코는 계보학의 전제로 기원의 거부를 제시하고 있다.[Michel Foucault, “Nietzsche, la généalogie, l'histoire”, in Dits et écrits, vol. 1(collection “Quarto”), Paris: Gallimard, 2001.] 계보학은 “기원”(Ursprung), 곧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귀중한 것으로서 만물의 시초라는 관념, 진리가 거주하는 고유한 장소라고 보는 관념을 거부하고 그 대신 사물의 역사적인 “유래”(Herkunft), 곧 개별적인 그 사물 속에서 “서로 교차하고 풀기 힘든 연관망을 형성하는 은밀하고 독특하며 개체 이하의 수준에 놓인 모든 표시들”[Ibid., p. 1009.]을 탐구한다. 또는 계보학은 “생성”(émergence) 내지 “돌발”(surgissement)로서의 “성립”(Entstehung)을 탐구한다. 항상 특정한 세력들이 이루는 상태에서 생산되는 생성이나 돌발은 기원이라는 관념이 함축하는 필연적이거나 선형적인 인과관계를 비판할 수 있게 해주며, 모든 사물은 단일한 중심이나 본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통념에 맞서 사물들 내부를 관통하는 상이한 세력들 사이의 투쟁 및 그 효과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기원에 대한 계보학적 거부는 목적론과 본질주의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르지 않다.

둘째, 계보학은 필연성을 역사적으로 우연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말년에 푸코가 탐구했던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이러한 목표는, “우리 자신을 역사적으로 규정된 우연적인 존재자들로 분석하는 것”,[Michel Foucault, “Qu'est-ce que les lumières?”, in Dits et écrits, vol. II, p. 1391.] 곧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의무적인 것으로 주어진 것 속에서, 독특하고 우연적인 것의 몫, 자의적인 강제에서 비롯한 것의 몫은 무엇인지”[Ibid., p. 1393.]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필연적인 한정이라는 형태 아래 이루어졌던 (칸트의) 비판을 가능한 넘어섬의 형태를 띠는 실천적인 비판의 형태로 전환한다.

 

셋째, 또한 계보학은 새로운 가능성의 장들을 열어놓는다. 이는 두 번째 측면에서 당연히 따라 나오는 것으로, 지금까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상이한 세력들 사이의 접촉과 합체, 갈등과 대립, 분산과 해소에 의한 우발적인 역사적 결과였으며 또한 현재 우리 자신 및 우리의 동일성이나 본질 역시 이러한 우연성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면, 이러한 우연성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들이 열리게 된다. 따라서 계보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재의 우리와 다른 우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판은 더 이상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형식적 구조들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사건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구성하도록 이끌어온,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우리가 하고 사고하고 말하는 것의 주체들로서 인지하도록 이끌어온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역사적 탐구다. [...] 이러한 비판은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도록 해온 우연성으로부터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게 존재하고, 우리가 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고 또는 우리가 사고하는 것과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출해낼 것이라는 [...] 의미에서 계보학적이다.[Ibid.]

 

그런데 보편이 우발적이고 다양한 조건들을 지닌다는 것은, 보편이 하나가 아니라 다수이며, 보편들 사이에는 복합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포스트 담론이 처음부터 씨름했던 핵심 과제는 다수의 보편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 그러한 관계는 어떻게 파악되고 또 실천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알튀세르가 제기한 역사유물론과 정신분석의 관계라는 문제는 경제와 무의식이라는 보편자들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로 이해될 수 있으며, 자크 라캉이 정식화한 RSI론, 곧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에 관한 위상학 역시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복합적 관계를 논리적ㆍ임상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이 문제는 국내에서 포스트 담론의 대표자들로 간주되는 최근 현대 이론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쟁점으로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슬라보예 지젝, 주디스 버틀러, 어네스토 라클라우, 󰡔헤게모니, 보편성, 우연󰡕, 박미선ㆍ박대진 옮김, 서울: 도서출판 b, 2009 참조.] 그리고 데리다가 차이가 아니라 차연(différanc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때,[이 점에 관해서는 데리다 자신의 간명한 해명을 참조할 수 있다. Jacques Derrida & Elisaeth Roudinesco, De quoi demain ... , Paris: Fayard/Galilée, 2001, pp. 43 이하] 들뢰즈와 가타리가 󰡔반오이디푸스󰡕에서 시도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새로운 종합이라는 과제를 넘어(“이접적 종합”(synthèse disjonctif)이라는 개념이 말해주듯, 여기에서도 이미 보편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중요한 과제였지만) 󰡔천 개의 고원󰡕에서 다양체(multiplicité) 그 자체를 이론화하려고 시도했을 때, 그 역시 보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는 독자적인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흔히 차이와 특수성, 작은 이야기들의 대표적인 옹호자로 간주되는 리오타르의 관점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 조건󰡕(1979)에서 근대의 두 가지 정당화 신화인 인간 해방의 신화와 사변적 지식의 통일이라는 신화를 비판하면서 더 이상 메타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변질된 동유럽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는 것이며, 또한 철학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론에 대한 수용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리오타르의 입장은 메타서사 대 작은 이야기들 사이의 대립에 있다기보다는 획일적이고 전체화하는 하나의 언어게임(일종의 보편) 속으로 그것과 상이한 종류의 다른 언어게임들(다른 보편들)을 포섭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쟁론󰡕(1984)에서 리오타르는 언어게임들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를 좀더 정치하게 이론화한다.[J.-F. Lyotard, Le Différend, Paris: Minuit, 1984] “두 논증들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 규칙이 없기 때문에 공평하게 해결될 수 없는 (적어도) 두 편 사이의 갈등”으로서의 쟁론(différend)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그는 모든 것을 하나의 담론 장르로 환원하려는 근대성의 시도 대신 서로 환원 불가능하고 공약 불가능한 담론 장르들 사이의 쟁론을 전체주의적 착란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로 제시한다. 따라서 리오타르가 차이와 이질성 등을 강조하고 보편들 사이의 공약 불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해해야지, 단순히 보편성에 맞선 특수성이나 차이에 대한 옹호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다수의 보편이라는 문제에서 흥미로운 쟁점 중 하나는 포스트 식민주의가 제기한 문제, 곧 유럽적 보편성과 비유럽적 보편성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 다수의 근대성이라는 문제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20001); 김택현ㆍ안준범 옮김, 󰡔유럽을 지방화하기󰡕, 서울: 그린비, 근간; Boaventura de Sousa Santos, “Épistémologies du Sud”, Études rurales, no. 187, 2011; 이매뉴얼 월러스틴, 󰡔유럽적 보편주의󰡕, 김재오 옮김, 서울: 창비, 2008; 엔리케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근대성 신화’의 기원을 찾아서󰡕, 박병규 옮김, 서울: 그린비, 2011 등 참조.] 이 문제에 관해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기는 어렵고 다만 에티엔 발리바르가 제안한 외연적 보편주의(universalisme extensif)와 내포적 보편주의(universalisme intensif)라는 개념 또는 현실적 보편과 이상적 보편, 허구적 보편이라는 개념들은 이러한 복수의 보편을 사고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점만을 지적해두겠다.[현실적 보편, 이상적 보편, 허구적 보편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보편들」,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서울: 도서출판 b, 2007을 참조하고, 외연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에 대해서는, 특히 에티엔 발리바르, 「공동체 없는 시민권?」,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서울: 후마니타스, 2010을 참조.]

 

외연적 보편주의라는 개념이 지시하는 것은 국민국가(또는 국민국가들의 체계)와 식민화 사이의 본질적인 연관성이다.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국민 국가들의 형성과 그들 사이의 패권 경쟁은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졌는데, 식민화에 나선 각각의 국민국가들은 이를 보편성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식민화는 단순한 약탈이나 침략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선교의 사명 내지 인류 전체의 문명화라는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수행되었으며, 더욱이 내면화된 신념에 따라 수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식민화를 통해 비유럽의 피식민지 인구들은 지배자들의 국적에는 포함되었지만, 식민지 본국의 시민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지는 못한다. 따라서 같은 국적을 지닌 시민들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비(非)시민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의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또 다른 보편주의, 곧 내포적 보편주의를 통해 좀더 첨예한 형태를 띠게 된다. 발리바르가 내포적 보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인권선언”에서 구현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명제, 곧 평등=자유라는 명제를 가리키며, 또한 그것과 내재적으로 연결된 모든 인간은 시민이라는 명제, 곧 인간=시민이라는 명제를 가리킨다.[󰡔인권선언󰡕에 대한 발리바르의 해석은 E.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aris: PUF, 2010 참조.] 내포적 보편주의가 함축하는 모순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면, 또는 적어도 그럴 권리를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이 누리는 평등과 자유는 그가 시민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한에서만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낳는다. “시민권의 배제 ... 는 인간성 또는 인간 규범 바깥으로의 배제와 달리 해석되고 정당화될 수 없다.”[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127쪽.]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그가 사람인 한에서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원초적인 권리를 갖고 있지만, 역으로 이러한 권리는 그가 시민으로 존재하는 경우에만, 곧 특정한 정치체, 특정한 국민국가의 성원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실제로 향유되고 행사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국가의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한에서는, 곧 그가 이러저러한 국민이 아닌 한에서는 실제로는 인간성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무수히 생겨난 국적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모순을 실제로 체험하고 구현했음을 보여준 바 있다.[Hanna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York: Harcourt, 1951; 󰡔전체주의의 기원 1󰡕, 박미애ㆍ이진우 옮김, 파주: 한길사, 2006, 9장 참조]

 

외연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라는 개념쌍은 (탈)식민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다. 외연적 보편주의가 왕정과 단절하고 공화국을 구성하고자 했던 국민국가의 제국주의화 현상, 따라서 그것에 내재한 퇴행적이거나 도착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면, 반대로 내포적 보편주의는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해방을 이룩하려고 했던 민족해방운동에 고유한 ‘역설’을 설명해준다. 곧 민족해방운동은 식민지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지만,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식민지 세력으로부터 빌려온 언어, 곧 평등, 자유 같은 내포적 보편주의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더 나아가 민족해방을 성취한 세력은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 경우 새로운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외연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 간의 새로운 변증법적 순환을 겪게 된다. 곧 새로운 국가는 평등과 자유에 기반을 둔 근대 네이션의 구성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또 다른 지배와 불평등을 낳고 또 다른 갈등과 저항을 유발하게 되며, 이 과정에는 외연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의 갈등 관계가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법은 지배와 해방, 국민국가와 제국(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관계를 좀더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하나의 국가 곧 하나의 네이션에 한정되지 않은 내포적 보편주의의 실현의 문제가 포스트 식민주의의 문제와 맺고 있는 연관성을 좀더 심층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준다.

 

2) 주체에서 주체화(들)로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개념 또는 예속화(assujettissement)-주체화라는 개념쌍(영어로 하면 subjection-subjectivation(또는 subjectification))은 미셸 푸코에 의해 고안된 이래 현대 이론가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활용되어 왔다. 국내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개념 또는 개념쌍에 대해 별로 논의가 되고 있을뿐더러 그다지 주목받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국내에서 포스트 담론, 특히 현대 프랑스 철학의 중심 주제가 ‘주체의 죽음’이나 ‘주체의 종말’로 잘못 알려진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철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포스트 담론의 핵심적인 이론적 유산은 주체를 원리에서 결과로, 또는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이행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발리바르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참고할 수 있다. “라캉, 후기 푸코, 또는 알튀세르 등 어떤 위대한 철학적 ‘구조주의자들’도 ... 주체를 실격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그 반대로 고전 철학에 의해 기초의 위치에 장착된 이러한 맹목적인 노력을 해명하고자 했다. 즉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주체를 이행시키고자 했다.”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윤소영 옮김, 서울: 이론, 1993, 213-14쪽. 강조는 발리바르의 것이고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이것은 흔히 통속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처럼 (포스트) 구조주의가 주체의 죽음을 가져왔다거나 주체를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이 점에 대해서는 데리다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참조할 수 있다. “이 세 담론(라캉, 알튀세르, 푸코)과 그들이 특권화하는 사상가들(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에서 주체는 재해석되고 복원되고 재기입될 수 있으며, 분명 “일소되지”는 않습니다.” Jacques Derrida, “Il faut bien manger ou le calcul du sujet”, Cahiers confrontation, no. 20, 1989, p. 45. 또한 푸코의 논평도 참조. Michel Foucault. Entretien avec D. Trombadori”(1978), in Dits et écrits, vol. II; 󰡔푸코의 맑스󰡕, 이승철 옮김, 서울: 갈무리, 2000, 59~61쪽.] 그것은 오히려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이제 주체는 더 이상 설명의 근본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설명의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곧 주체는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것, 세계를 초월한(칸트적 의미의 ‘초월’이든 아니면 좀더 전통적인 의미의 ‘초월’이든 간에) 지점에 위치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일정한 물질적ㆍ상징적 존재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특정한 메커니즘에 따라 비로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나 메커니즘의 변화에 따라 전환되는 그런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구조주의의 설명 대상으로서의 주체가 일종의 자동인형 같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조주의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자율적인 존재자로서의 주체가 어떻게 자신의 타자에 의해, 곧 자기 바깥의 물질적ㆍ상징적 존재 조건에 의해 자율적인 존재자로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가 하는 점이다. 요컨대 주체가 자율적 존재자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전제하지 않으면 안되는 주체 생산의 조건과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 따라서 주체의 자율성의 조건으로서 타율성을 설명하는 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철학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예속화-주체화라는 개념쌍의 강점은 주체를 이미 주어진 불변의 실체로 파악하지 않고,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재생산되고 또 변형되는 산물로 본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러한 형성과 재생산, 변형을 지배 구조에 의해 위로부터 강요되거나 부과되는 어떤 과정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갈등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쌍을 통해 가령 ‘민족’이나 ‘국민’ 또는 ‘시민’이라는 역사적 주체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과 메커니즘은 어떤 것이었는지 새롭게 사고할 수 있으며, 민족이나 국민이 더 이상 불가능한 어떤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조건 때문에 그런 것인지 좀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근대 서양에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한 인민(people) 개념의 역사적 조건과 전개 과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것이 한국의 민중 개념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다른지 사고하는 데에서도 이러한 개념쌍은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도 예속화-주체화라는 문제설정은 신자유주의를 경제 정책이나 금융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파악하는 관점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주체 생산이라는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이 점에 관해서는 푸코의 신자유주의 분석을 탁월하게 발전시키고 있는 Pierre DardotㆍChristian Laval, La nouvelle raison du monde: Essai sur la société néolibérale, Paris: La Découverte, 2009; 󰡔새로운 세계이성: 신자유주의 사회에 관한 시론󰡕, 오트르망 옮김, 서울: 그린비, 근간 참조. 또한 국내의 연구로는 특히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파주: 돌베개, 2009가 눈여겨볼 만한 업적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나 대안을 모색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3) 단일한 정치에서 복수의 정치로

 

마지막으로 복수의 정치라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가 남긴 유산 중 하나는 정치의 진정한 장소를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 마르크스 저작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시민들의 평등과 자유는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 추구를 은폐하는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수사에 불과하며, 오히려 진정한 정치는 경제적 착취에 근거를 둔 계급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법과 정치는 경제적 생산관계에 기반을 둔 상부구조이며,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정치의 영역은 진정한 정치의 장소와 무관한 허상에 불과하다. 이는 노동자 계급 내지 프롤레타리아라는 역사의 주체에 근거를 둔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주의의 근본적인 한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바깥의 정치’는 알랭 바디우나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 같은 동시대 유럽 정치철학자들의 저작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현대 정치의 대표적인 모델로 간주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가 이상적 정치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지배의 체제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인민의 권력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처럼 진정한 정치와 가짜 정치, 계급 정치와 대의 정치 사이의 양자택일적인 구분은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무력화되기 쉽다.[이 점에 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29집, 2012 참조.] 따라서 이처럼 단 하나의 진정한 정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복수의 정치를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복수의 정치는 노동자 계급의 본질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포스트 담론의 다양한 노력과 서양 근대 문명 및 유럽적 보편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포스트 식민주의의 통찰에 좀더 부합할 수 있다.

 

필자로서는 에티엔 발리바르가 제안한 정치의 세 가지 개념이 이를 위한 한 가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물론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또한 기존에 제안된 이런저런 개념이나 이론을 새롭게 변형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발리바르는 1997년 출간된 󰡔대중들의 공포󰡕라는 저작에서 정치를 세 가지 개념으로 복수화할 것을 제안한다. 정치의 세 가지 개념이란, 해방(émancipation), 변혁(transformation), 시민다움(civilité)을 가리킨다.[E. Balibar, “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é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 in La Crainte des masses, Paris: Galilée, 1997;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빌리테」 󰡔대중들의 공포󰡕. 참고로 이 번역본에서는 정치의 세 가지 개념 중 civilité가 ‘시민인륜’으로 번역돼 있는데, 우리의 생각으로는 ‘시민다움’이 좀더 적절한 번역어인 것 같다.] 이 중에서 첫째, 해방 또는 정치의 자율성이란 권리의 내포적 보편성에 준거하는 정치를 가리킨다. 이것은 인간 집단(인민이나 국민 등)이 이제는 어떠한 자연적이거나 초월적인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권위 및 역량에 기초하여 자기 자신을 통치한다는 정치의 권리 선언에 준거한다는 뜻이다. 발리바르는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이러한 해방의 정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고 간주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언󰡕에서 정치는 인민의 자기 결정의 전개이며, 인민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자신들이 향유하는 권리들을 집단적으로 쟁취하여 서로에게 부여하고 보장한다는 호혜성의 원리가 뚜렷하게 선언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변혁이란, 정치를 규정하는 물질적ㆍ상징적 조건들, 특히 지배 구조 및 권력 관계들의 변혁을 중심적인 대상으로 삼는 정치를 의미한다. 발리바르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와 푸코를 변혁의 정치의 두 가지 모델로 제시한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가 정치를 규정하는 본질적인 조건을 자본주의의 토대 내지 경제적 구조에서 찾았다면, 푸코는 규율 권력 및 생명 권력 같은 권력 관계들에서 변혁의 조건을 발견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의 영역은 그것을 조건 짓는 자신의 타자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전혀 자율적이지 않고 타율적이라는 점, 따라서 진정한 정치는 제도 정치의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발리바르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지배의 조건이 강화되고 확장되는 가운데 어떻게 그러한 조건을 변혁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숙명론과 주의주의 사이에서 동요할 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 지배 상태의 강화로 인해 지배에 저항하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주체 생산의 가능성이 잠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그러한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이처럼 정치의 주체가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 잠식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로서 시민다움의 정치라는 세 번째 개념을 제시한다. 초주체적 폭력이나 초객체적 폭력과 같은 극단적 폭력의 퇴치를 목표로 삼는 시민다움의 정치는 모든 헌정에 내재적인 구성적 봉기의 역량을 복원하고 확장하려는 운동과 더불어 이러한 운동이 동질적인 정치 공동체의 구성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탈실체화의 운동을 함축하고 있다.[발리바르의 시민다움의 정치에 관해서는 특히 에티엔 발리바르, 「폭력과 세계화: 시빌리테의 정치는 가능한가?」, 󰡔우리, 유럽의 시민들?󰡕; 「국민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 󰡔정치체에 대한 권리󰡕, 진태원 옮김, 서울: 후마니타스, 2011; 󰡔폭력과 시민다움󰡕, 진태원 옮김, 서울: 난장, 2012 등을 참조.]

 

이처럼 정치를 단일한 개념(그것이 해방이든 봉기든, 변혁이든 또는 평등이나 자유든 간에)이 아니라 세 개의 개념을 통해 사고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다원성이라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다원성이라는 사실을 해방이나 봉기 또는 변혁의 정치를 포기하기 위한 구실로 삼는 것을 피하기 위한 좋은 이론적 실마리를 제공해준다.[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라클라우나 무페의 작업과 발리바르의 이론 사이의 차이라는 문제는 매우 흥미 있는 쟁점이다. 발리바르와 마찬가지로 라클라우나 무페 역시 현대 사회의 다원성이라는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급진 민주주의의 문제설정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점에 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발리바르와 무페의 정치학을 비교하는 작업으로는 문성규, 「적대의 지구화와 정치의 조건들: 무페와 발리바르의 시민권, 공동체 이론」,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제28집, 2011 참조.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글은 발리바르의 봉기적 시민권과 운명 공동체 개념을 무매개적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다소 문제가 있다.]

 

5. 결론을 대신하여: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데리다의 작업에서 정신분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프로이트와 기록의 무대」(1964)에서 「진리의 배달부」(1980)를 거쳐, 󰡔정신분석의 저항들󰡕(1996)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정신분석의 통찰은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을 위한 주요 이론적 도구를 제공해 주었으며, 때로는 정신분석 자체가 탈구축의 시험에 부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데리다의 정신분석 수용과 활용 및 변용에서 “애도”라는 주제가 핵심적인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데리다는 프로이트 및 그의 계승자들의 애도 이론을 정상적인 애도에 관한 이론이라고 간주하며, 그것의 핵심은 타자에 대한 배제에 있다고 지적한다.[여러 글 중에서 특히 Jacques Derrida, Memoires: For Paul de 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참조.] 그것은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가들에게 애도라는 것은, 주체가 상실된 타자에게 사로잡혀 우울증에(곧 비정상적인, 실패한 애도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기능, 정상적인 자아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인데, 이는 곧 주체로부터 타자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리다가 정상적인 애도의 반대편에 있는 비정상적 애도 또는 실패한 애도로서의 우울증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데리다의 초점은 정상과 비정상,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대립을 전위시켜 새로운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있다. 그것은 어떻게 타자에게 충실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타자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상적인 애도는 사실은 타자에 대한 배반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자를 완전히 자기 안으로 내면화하는 것, 또는 같은 말이지만 타자의 타자성을 완전히 말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실패한 애도가 타자에 대해 충실한 태도라고 하기도 어렵다. 실패한 애도에서는 타자를 수용하거나 환대하는 주체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충실성, 타자에 대한 환대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의 문제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화이론가이자 데리다의 친구였던 루이 마랭(Louis Marin)에 대한 애도의 글에서 데리다가 강조한 것이 바로 이점이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 독특하게 루이 마랭에 의해 응시되고 있다. 그는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우리 안에서. 그는 우리 안에서 응시하고 있다. ...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이―그리고 그에 대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이(pour qui nous sommes)―는 더 이상 그가 아니다/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n'est plus, lui). 그는, 그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전혀 다른 이, 무한하게 다른 이이며, 죽음은 그를 이러한 무한한 타자성 속에 맡기고, 그 속으로 인도하고, 그 속에서 멀어지게 한다. 아무리 나르시시즘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해도 우리의 주관적 사변/반영(spéculation)은 더 이상 그 시선을 붙잡아 가둘 수 없다. 우리 안에 그 시선을 품고, 우리의 매 순간의 행동 하나하나마다 그 시선을 지니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애도를 수행함으로써만,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 자신의 애도를 수행함으로써만―내 말은 우리의 자율성의 애도,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 대한 척도로 만드는 모든 것에 대한 애도라는 뜻이다―그에 대한 우리의 애도를 수행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그 앞으로 함께 출두하게 되는 그 시선을 더 이상 붙잡아 가둘 수 없는 것이다.[Jacques Derrida, “À force de deuil”, in Chaque fois unique, la fin du monde, Paris: Galilée, 2003, p. 200. 강조는 데리다.]

 

이러한 우리 자신에 대한 애도, 타자에 대한 애도의 조건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애도는 말하자면 애도에 대한 애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간 포스트 담론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었던 애도 작업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가 수행해야 할 것 역시 바로 이러한 의미의 애도의 애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애도의 담론으로 기능해왔던 포스트 담론의 장래를 위해, 그것의 애도의 애도를 위해 필요한 한 가지 작업(이것이 유일한 작업이라는 뜻은 아니다)을 지적하면서 논의를 마치겠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와 ‘경제’의 마주침이다. 알다시피 그동안 국내에서 포스트 담론은 주로 문화의 영역에서 논의되어 왔다. 이는 비단 국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영미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포스트 담론은 처음에 미국의 문학 이론과 비평 분야에서 발원했으며, 그 이후에도 문화연구나 탈식민주의 분야에서 주로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트 담론은 경제학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 분야보다는 주로 영문학이나 국문학을 중심으로 한 문학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나 철학에도 부분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화’ 담론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굳이 포스트 담론의 장래를 위해 ‘경제’와의 접합이나 마주침이 필요할까라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접합이나 마주침이 필수적인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그것은 우선 포스트 담론들 및 그것의 이론적 모체를 이루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특성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흔히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담론 또는 프랑스 철학 사이에는 대립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근거가 박약할뿐더러 그리 생산적이지도 못한 태도다.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담론 사이에는 명백한 긴장과 갈등 관계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대립이나 적대와는 다른 관계다. 넓은 의미에서 포스트 담론은 마르크스주의에 내적인 모순이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했고 그것의 핵심에는 경제 중심주의 내지 노동자 계급 중심주의가 존재했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이나 현대 프랑스 철학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양자 사이의 본래적인 연관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포스트 담론이나 프랑스 철학이 경제 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고 자부했지만, 과연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의 경제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통찰을 얼마나 산출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의 내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이는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담론에서는 주로 근대성이나 탈근대성이 논의되었을 뿐, 자본주의나 탈자본주의의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분리된 근대성은 사고하기 어려울뿐더러 인식에서 여러 가지 결함과 공백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근대성과 자본주의, 또는 탈근대성과 탈자본주의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논의는 포스트 담론의 진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마주침을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두 가지 담론 또는 두 가지 사조 내지 이론 사이의 결합이나 연결 또는 접합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마주침은 오히려 두 개, 아니 그 이상의 담론이나 이론 또는 사조나 운동이 그러한 마주침을 통해 서로 전화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기존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존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연결이나 결합에서는 아무런 마주침도 일어날 수 없거니와, 애도의 애도라는 과제에 걸맞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마주침은 마땅히 자기 애도의 시험을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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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12-12-3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소중한 원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수많았던 답답증들, 정체를 몰라 무작정 편도 들어보고 마구 욕해보기도 한 그 여러 답답증들에 드디어 제대로 된 문제의 이름들을 붙여 보고, 그래도 무엇을 배웠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될지 보이네요. 속시원히 바닥까지 싹씩 긁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정이 있어 누구라 여기선 밝히지 못함을 미리 사과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요.

balmas 2012-12-31 01:3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구나. 새해 복많이 받고, 언제 시간 있으면 한번 보자. :)

BaumNamu 2013-01-1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공을 들여 성실하게 써진 정말 좋은 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다만 포스트 담론의 "애매성"이 무엇인지 좀 애매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훌륭합니다! 병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작년 11월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과 올해 6월 [탈근대, 탈민족, 탈식민: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에 이어 세번째로 [한국 문학 속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눈으로 본 한국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게 되었습니다.

 

심포지엄 취지문과 일정을 올려둡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성원과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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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 제3차 심포지엄

 

[한국문학 속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


 

○일시: 2012년 10월 18일(목)~19일(금) 10:00~18:00
○장소: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소강당(B102)

 

 

❐기획취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팀장: 진태원)은 민주주의
에 대한 원리적 탐구와 더불어 한국현대사 및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현상 분석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정치한 이론적 탐색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연구팀입니다. 이를 위해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활발한 지식 생산 활동에 참여하시면서 우리 사회의 지적 성숙에 기여하고 계시는
대표적인 학자, 지식인들을 모시고 생산적 논쟁의 창출을 위한 심포지엄을 단계적으로 기획하
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있었던 1차 심포지엄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책임기획: 김
정한)과 올 상반기에 있었던 2차 심포지엄 <탈근대, 탈민족, 탈식민: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

(책임기획: 진태원)에 이어, 2012년 10월 18,19일 양 일간 3차 심포지엄 <한국문학 속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책임기획: 함돈균)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사회과학이 상대적으로 정교한 논리와 체계성을 가지고 사회와 역사에 대해 가능한 한 총체
적인 시야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면, 문학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대한 직시와 감각적 사유,
직관을 통해 사회와 역사의 ‘진실’에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서려고 하며, 그것을 몸의 언어로
형상화 하려고 노력합니다. 표면적인 차원에서 볼 때, 문학의 언어는 사회과학의 언어에 비해
정교해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르고 어떤 면에서는 모호함을 띤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문학의
언어는 세계의 억압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어 중 하나이며, 집요한 시선으로 진실
의 자리를 확보하려고 애쓰고, 끝까지 권력에 저항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간절한 목소리로 부
르는 해방의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3차 심포지엄을 기획하면서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은 문학의 언어와
작가적 시선이 지닌 이러한 선구성과 진정성, 전위성에 주목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의 현대사
가 해방 이후 겪어왔던 다양한 정치사회적 사건들과 구조적 상황,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지체
와 발전 과정 모두에 한국문학이 능동적인 관찰자이자 실천적인 역사적 주체로서 쉼 없이 개
입해 왔다는 점을 인정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개의 사회에서 그렇듯이 한국문학도
이 실천적이고 능동적인 문학적 개입을 통해 역사의 억압을 민감하게 감지해 온 동시에, 정치
사회적 왜곡 상의 극복을 통한 해방적 서사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선구적 예감 역시 작품
속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이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3차 심포지엄은 그동안 한국문학과 관련하여 대학 강단과 문단 현장에서 예리한 시선과
예민한 감각을 통해 날카로운 해석력을 선보여 오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민주주의’라는 키워
드를 놓고 한국문학이 선취한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예감을 새롭고 깊이 읽어내는
자리로 마련하였습니다. 한국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생산된 작품들 중에서 문제적이거나 기념
비적인 작품들을 중심으로, 혹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시대적 증후를 예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을 심포지엄 발표자들이 지닌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시각에 따라 재해석
하고, 이 작품들을 2012년이라는 현재에 여전히 생생한 문제의식을 지닌 것들로 맥락화 하는
심포지엄입니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토론자를 해당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문학연구자뿐만 아니라 관련 영역의 인문사회과학자들로 확대하여 학문적 통섭과 대화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이해의 폭을 넓혀 보려고 합니다. 민주주
의의 위기와 후퇴가 논의되고 있기도 한 오늘의 시점에 이 심포지엄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
치적 사유를 촉발시키는 영감을 던져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심포지엄 일정


 

** 10월 18일(목요일, 1일차) - 민주화 시대 이전의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사회: 김정한(고려대) / 진태원(고려대)


 

10:30 개회사 - 최용철(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원장)

 

* 1부(10:40~12:30)

1. 기조 발제: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김인환(고려대 명예교수)
2. 정비석과 민주주의: 1950년대 신문소설의 여론 민주주의와 통속성: 이선미(동국대-국문학)
- 토론: 이영미(성공회대-대중예술)

12:30~1:30 점심 식사

 

* 2부(1:30~3:10)

3.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김수영과 신동엽의 민주주의(적) 미학: 조강석(인하대-국문학, 문예중앙)
4. 분단시대 한국소설의 문제인식과 민주주의: 정영훈(서울대-국문학, 세계의문학)
- 토론: 강계숙(연세대-국문학, 문학과사회), 허은(고려대-한국사, 역사비평)

 

* 3부(3:20~5:00)

5. 유신 이후, 그리고 1980년대 한국시의 자유·평등의 이념사: 최현식(인하대-국문학)
6. 민주화 시대 이전 한국문학 속의 변혁 이념과 대중(노동)운동: 함돈균(고려대-국문학)
- 토론: 김항(연세대-정치사상사, 창작과비평), 박헌호(고려대-국문학)

 

* 4부(5:10~6:00)

종합토론


 

** 10월 19일(금요일, 2일차) - 민주화 시대 이후의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사회: 권보드래(고려대) / 함돈균(고려대)

 

* 1부(10:30~12:10)

1.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 속 변화된 자유·평등·민주의 기표들: 박수연(충남대-국문학)
2. 민주화 시대 이후의 노동시와 한국민주주의: 김수이(경희대-국문학, 내일을여는작가)
- 토론: 문혜원(아주대-국문학, 시와사상), 김원(한국학중앙연구원-노동사, 실천문학)

12:10~1:00 점심식사

 

* 2부(1:00~2:40)

3. ‘글로벌-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소설 속의 이주와 월경, 혼종 정치공동체와 한국 민주주의:
백지연(경희대-국문학, 창작과비평)
4. 민주주의 위기와 한국소설 속 재난과 파국의 서사: 소영현(연세대-국문학, 작가세계)
- 토론: 이경재(숭실대-국문학, 자음과모음), 김정한(고려대-정치철학, 문화과학)

 

* 3부(3:00~5:30)

5. 정치의 소멸과 인권의 붕괴,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증언으로서의 한국시: 고봉준(경희대-국문학, 딩아돌하)
6. 구조화된 폭력 속의 사회, 한국소설이 묻는 민주주의: 백지은(고려대-국문학)
7. 정치에서의 '대의'와 문학에서의 '재현'의 상관성에 대한 단상: 민주화 이후 2000년대의 한국시를 중심으로:

신형철(서울대-국문학, 문학동네)
- 토론: 진은영(이화여대-철학, 시인, 창작과비평), 황정아(한림대-영문학, 창작과비평), 진태원(고려대-정치철학,

뉴 레프트리뷰)

 

* 4부(5:40~6:30)

종합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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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우 2012-10-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행사 소식을 늦게 접했네요. 혹시 이 심포지엄 자료집 파일을 구할 수는 없을까요?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문의하면 구할 수 있을까요?

balmas 2012-10-21 22:45   좋아요 0 | URL
예, 자료집 문의는 도래할 한국민주주의 팀 간사인 현석이 선생께 연락해보시기 바랍니다.
메일주소는 newwave93@hanmail.net입니다.

쾅! 2012-10-24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교수들은 학생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지 않으시려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교수라는 자리 자체가 사회 구조 안에서 강의실 안에서 이미 위계적인 것이 아닐까?

그런 위계적인 관계가 이미 성립되어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교수와 학생이 대화의 상대자일 수 있을까?

저 교수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쾅! 2012-10-24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가 실천적 역사적 주체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이른바 실천적 역사적 주체라고 불러주시는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가? 이것을 따지는 게 중요하다.

그 분들은 왜 그 인간들을 역사적 주체라고 부르는가? 누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따라 그들을 민주주의적 주체라고 부르는가?

그렇게 부를 때 그 사회적인 또는 정치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해방을 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울러 國民國家와 짝을 맞춰서 國民主義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싶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民主主義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파리 코뮌 같은 것들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不在하는 것, 아니 存在한 적도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행사가 되는 셈이지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론이라고 주장하면 성립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도 애니메이션도 따지고 보면 판타지 아닌가?

... 2012-11-1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쾅님, 너무 당연한 걸 대단한 거 이야기하듯 하시네요. 주장하시는 바를 주장하는 건 '진짜 문제'가 아니죠. 개념을 한껏 이상화시켜 놓고 거기에 현실이 맞춰주길 바라시는데, 그게 온당한 태도인가요? 따지자면 그냥 '완전한 신이 강림하여 통치하는 세계가 가장 좋다' 고 하신 다음 '신이 오지 않았으니 이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의실이라는 구조는 당연히 위계적인 거죠. 강의 자체가 '선생과 제자' 관계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대체 '완벽히 평등한' 대화의 장소는 또 어디있나요? 그렇다면 '책을 쓰는 저자와 읽는 독자' 사이의 관계는 위계적이지 않나요?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위계적'인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대체 왜 상대인 교수가 '대화의 상대자'이길 바라시는거죠? 이미 위계적인 상태 속에서 '진정한 대화자'로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미리 예단 하는 건 쾅님인 것 같은데요. 강의실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이 '진정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런 권력 구조 속에서만 '진정한 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면, 문법 구조가 발화자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주어졌다는 것에 '나는 내 고유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빼앗겼다'며 울분을 토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다른 잡동사니 사이트나 개인적인 블로그 같은 공간들 다 놔두시고 이런 곳에다가 욕구 분출을 하시는 게 못마땅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