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바르와 미카엘 뢰비, 엘레니 바리카스가 공동으로 집필한 글이 있어서 올려둡니다.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힘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영어판이 있다면, 같이 퍼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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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llebabords.org/spip.php?article20757

 

mis en ligne le
23/05/2012
id_article=20757
FORUM EN LIGNE

L’avenir de l’Europe se joue en Grèce

Etienne Balibar, Michaël Löwy, Eleni Varikas

 

"Le nouveau gouvernement français, qui se cantonne dans un silence prudent, devrait affirmer haut et fort, qu’il respectera les décisions du peuple grec, et rejettera toute proposition d’exclure la Grèce de l’Europe ou de la zone euro."

 

Par Etienne Balibar, philosophe, Michaël Löwy, philosophe et sociologue et Eleni Varikas, professeure de science politique.

 

Médiapart - 23 Mai 2012

 

 

La situation de la Grèce en ce moment est sans précédent depuis la fin de l’occupation allemande en 1944 : réduction brutale des salaires et des retraites. Chômage des jeunes à 50%. Entreprises, petits commerces, journaux, maisons d’édition en faillite. Des milliers de mendiants et SDF dans les rues. Impôts extravagants et arbitraires et coupes à répétition sur les salaires et retraites. Privatisations en série, sabordage des services publics (santé, éducation) et de la sécurité sociale. Les suicides se multiplient. On pourrait continuer la liste des méfaits du « Mémorandum ».

 

En revanche, les banquiers, les armateurs et l’Eglise (le plus grand propriétaire foncier), eux, ne sont pas imposés. On décrète la réduction de tous les budgets sociaux mais on ne touche pas au gigantesque budget de la « défense » : on oblige la Grèce à continuer à acheter un matériel militaire de milliards d’euros chez ces fournisseurs européens qui sont aussi – pure coïncidence – ceux qui exigent le payement de la dette (Allemagne, France).

 

La Grèce est devenue un laboratoire pour l’Europe. On teste sur des cobayes humains des méthodes qui seront ensuite appliquées au Portugal, à l’Espagne, à l’Irlande, à l’Italie et ainsi de suite. Les responsables de cette expérience, la Troïka (Commission européenne, Banque centrale européenne, FMI) et leurs associés des gouvernements grecs, n’étaient pas inquiets : a-t-on jamais vu des cochons d’Inde, des souris de laboratoire, protester contre une expérimentation scientifique ? Miracle ! Les cobayes humains se sont révoltés : en dépit de la répression féroce menée par une police largement infiltrée par les néonazis, recrutés au cours des dernières années, les grèves générales, les occupations des places, les manifestations et les protestations n’ont pas arrêté depuis une année. Et maintenant, comble de l’insolence, les Grecs viennent de voter contre la continuation de l’« expérience », en réduisant de moitié le score des partis de gouvernement (la droite et le centre gauche qui, à l’encontre de son programme, a signé le mémorandum) et en multipliant par quatre le soutien à Syriza (coalition de la gauche radicale).

 

On n’a pas besoin d’appartenir à la gauche radicale pour voir combien les remèdes néo-libéraux de la Troïka sont catastrophiques ; Paul Krugman, prix Nobel d’économie, ne cesse de le dire : comment « assainir les finances » de la Grèce si on met le pays à genoux, en récession, ce qui, évidemment, ne peut que réduire les recettes et déséquilibrer le budget ? A quoi ont servi les « généreux » prêts de l’Europe et du FMI ? A payer… la dette envers les banques, quitte à s’endetter à nouveau. Les « experts » de la Troïka ont le capitalisme comme religion (W. Benjamin, 1921) : une religion dont les divinités –les marchés financiers aux décrets imprévisibles, arbitraires et irrationnels– exigent des sacrifices (humains).

 

Faisant de l’arbitraire, du secret et de la peur un véritable mode de gouvernement, une telle politique de brutal asservissement d’un peuple ne pouvait que provoquer des réactions de rage, de désarroi, de colère. Une partie de cette colère fut canalisée par une sinistre force raciste, antisémite et xénophobe, le groupe néo-nazi Aube Dorée. Mais les indignés, eux, ont apporté dans leur grande majorité leur appui,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1958, à la gauche radicale. Cette gauche est profondément européenne. Elle n’a aucune intention de quitter l’euro, mais refuse catégoriquement le Mémorandum imposé par la Troïka, et accepté par les gouvernements grecs qui se sont succédé les dernières années : le Pasok, la Nouvelle Démocratie, et celui « d’unité nationale » avec l’extrême droite. Elle propose des alternatives concrètes, réalistes et immédiatement applicables : un moratoire sur la dette, suivi d’un audit international, pour vérifier sa légitimité ; la mise sous contrôle social des banques ; la suppression des mesures antisociales prises par les gouvernements signataires du Mémorandum. Appuyée sur un large spectre de la gauche démocratique, les mouvements sociaux, des indignés, des travailleurs en lutte, des réseaux de défense des immigrés , les groupes féministes, queer, écologistes, elle a réussi à devenir la deuxième force politique du pays. « Ils ne savaient pas que c’était impossible, donc ils l’ont fait », dirait Mark Twain.

 

Un deuxième scrutin aura lieu en juin. Certains sondages donnent la gauche radicale comme première force politique du pays. Pour nous, il est clair que l’avenir de l’Europe se joue en Grèce. Les porte-paroles du capital financier, Jose Manuel Barroso ou Wolfgang Schäuble l’ont compris, qui menacent les Grecs de toutes sortes de représailles, s’ils osent ne pas voter pour les candidats avalisés par les banques et le FMI. Le nouveau gouvernement français, qui se cantonne dans un silence prudent, devrait affirmer haut et fort, qu’il respectera les décisions du peuple grec, et rejettera toute proposition d’exclure la Grèce de l’Europe ou de la zone euro.

 

Il est urgent de soutenir la gauche radicale grecque, et l’élan démocratique, antifasciste et unitaire qui la porte. Elle est, en ce moment, à la pointe du combat pour sortir la Grèce, et par suite, l’Europe, du cauchemar de l’austérité néo-libérale. L’avenir de l’Europe se joue en ce moment en Grèce.

 

http://blogs.mediapart.fr/edition/les-invites-de-mediapart/article/230512/l-avenir-de-l-europe-se-joue-en-gr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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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신화 - 서양이론과 유럽중심주의 비판 경성대문화총서 25
로버트 J. C. 영 지음, 김용규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6월 2일 경향신문 [명저 새로 읽기]에 실릴 서평 하나 올립니다.

경향신문 서평은 이것이 마지막 서평입니다.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워낙 밀린 일들이 많다 보니

도저히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이번 서평을 마지막으로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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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영은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미 비평계에서는 잘 알려진 이론가다. 그는 특히 데리다, 알튀세르를 비롯한 현대 프랑스철학에 깊은 조예를 지닌 탈식민주의 비평가로 명망을 떨치고 있는데, 그의 대표작 중 한 권이 오늘 소개할 [백색신화](1990)다. 20여 년 전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 이 책의 원서를 복사해놓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두고 있다가 반갑게도 몇 년 전에 번역이 되어 재미있게 읽은 뒤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서 서평을 쓰게 되었다.

 

국역본은 “서양이론과 유럽중심주의 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영어 원서의 부제는 Writing History and the West다. “역사의 서술과 서양”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제목은 이 책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잘 전달해준다. 그리고 “이른바 ‘포스트구조주의’가 하나의 단일한 역사적 시간의 산물이라면, 그 순간은 1968년 5월이 아니라 알제리의 독립전쟁이 될 것이다”라는 이 책 초판의 첫 문장은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탈식민주의를 연결하려는 저자의 지적ㆍ정치적 관심을 잘 표현해준다.

 

지난 1990년대 이후 국내에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같은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와 이제는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빼놓기 힘든 지적 담론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 수용될 때만큼 격렬하지는 않다고 해도 포스트 담론에 대한 거부감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으며, 특히 진보 지식인들에게 포스트 담론은 여전히 경원과 거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거부감은 포스트 담론이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에 기여하고 그것을 대체한 가짜 진보 담론, 또는 이데올로기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국내의 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판단과 거부감이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 해도 포스트 담론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는 단순히 경원하고 거부해도 좋을 만큼 그렇게 간단한 관계는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의 원인 중 하나는 그것에 고유한 이론적 난점과 맹목에 있으며, 포스트 담론은 그러한 맹목을 바로 잡으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로버트 영이 화두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문제다. “볼셰비키적인 보편성은 어떻게 번역 불가능한 것들과 지금까지 무시당해온 특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가?”(26쪽)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로버트 영은 장-폴 사르트르와 루이 알튀세르라는 마르크스주의 최후의 이론가들의 난점에서 출발해서 미셸 푸코, 에드워드 사이드를 거쳐 프레드릭 제임슨 및 호비 바바와 가야트리 스피박에 이르는 30여 년 동안의 서양의 역사이론과 탈식민주의 비평의 문제적인 역사를 훌륭하게 서술하고 있다. [백색신화]를 읽고 나면 20세기 후반의 진보 사상의 역사가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보다 10여년 뒤에 출간된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박종철출판사, 2005)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다. [백색신화]가 매우 논쟁적인 일종의 사상사 책이라면, 후자의 책은 마르크스주의에서 탈식민주의에 이르는 사상의 경로를 20세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훨씬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탈식민주의를 연결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필독서라고 할 만하다.

 

어려운 책을 번역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 역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 이 책은 여러 이론가를 다루고 있고 그들의 사상이 매우 집약적으로 농축돼 있어서 번역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책이다. 모두 등재지 논문 쓰는 데만 힘을 쏟는 상황에서 이런 책을 붙잡고 오랜 시간 동안 씨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와 책임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여러 대목에서 오역들이 눈에 띄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역본을 낼 때 이 오류들을 바로 잡는다면, 이 중요한 책이 훨씬 더 큰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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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012-06-0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은 다른 사람이 번역해도 더 잘 번역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마저도 "역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겔의 영향력이 가공할만한 수준이라는 것도 동시에 보여준다.

그 역사주의가 바로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식민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혹은 사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역사주의를 제거하고 자본주의적 근대 및 유럽중심주의적인 근대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트리컨티넨탈 마르크스주의"를 만들려는 게 로버트 영이 주장하는 프로젝트다. 그래서 10년 뒤의 책에 술탄-갈리에프나 문화적 혼종(잡종)으로 식민주의에 저항한 마리아떼기까지 얘기하는 것이다. 마오 쩌둥을 너무 긍정적으로 서술한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헤겔로 대표되는 역사주의로부터(랑케도 포함된다)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 있다면 아마도 미래의 세계는 크게 바뀔 것이다.

역사주의를 배우는 것을 배우지 말기.


여담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미셸 푸코를 "국사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견상 역사책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를 다룬 철학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기의 역사 영문판 번역 서문을 읽으면 푸코가 식민주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란혁명에 대해 "오바"했던 해프닝도 일어난 게 아닐까? 푸코 사진을 자세히 보면 솔직히 미친 사람 같아 보인다. 눈에 광기가 어려 있다.

구조주의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나는 언어학자 소쉬르도 구조주의 같지가 않다. 하지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영국의 경험주의나 대륙의 합리주의가 둘 다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주의"라고 생각하지만 위대하신 분들이 소쉬르를 그렇게 가르치고 경험주의나 합리주의를 그렇게 가르치니 난들 어쩌겠는가?

마지막으로 발마스 님은 decoionization 및 decolonialism 과 postcolonialism을 어떻게 번역할지 가끔 궁금하다.)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펴내는 {철학논집} 29집에 실릴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2월에 열린 그린비 심포지엄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에서 처음 발표한 글인데요, 나중에 이 심포지엄 자료집에는 아마 조금 더 수정된 판본이

 

실릴 것 같습니다.

 

여기 올린 글은 교정이 다 끝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인용하거나 토론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철학논집}에 수록된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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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푸코와 민주주의?

 

[이 글은 2012년 2월 24-25일 열린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심포지엄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2012년 3월 23일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제43회 월례발표회에서 약간 수정된 판본으로 다시 발표된 바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월 14일 사회와철학연구회 봄 학술대회에서 한 번 더 발표되었다. 뒤의 두 차례 발표회에서 각각 논평을 맡아준 심재원 선생님과 문성훈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유익한 질문을 통해 이 글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준 참석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이 글에 여전히 남아 있을 문제점은 필자 자신의 책임이다.]

 

푸코와 민주주의. 얼핏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제목은 상당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푸코를 좋아하고 푸코의 저작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나 푸코를 별로 읽지 않고 또 푸코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에게도 이 질문은 꽤나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자. 푸코는 좌파인가?(또는 푸코는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사상가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겠지만, “푸코는 좌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물론 푸코가 일종의 사이비 좌파라는 비판은 진작부터 제기된 바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고, 이에 따라 최근 많은 푸코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1970년대 말의 강의록에서도 자유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곤 한다.] 그렇다면 “푸코는 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답을 망설일 것 같다.

 

이러한 망설임 속에는 다양한 태도가 함축돼 있다. 우선 여기에는 질문 자체에 대한 못마땅함이 있을 수 있다. 푸코와 민주주의라니, 왜 푸코가 민주주의와 결부되어야지? 푸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권력자들을 뽑는 선거놀음에 불과한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것은 푸코를 길들여보려는 술수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푸코는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사상가이기는 하지만 그는 정치와 관련하여 구성적이고 적극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은 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주로 하버마스 계열의 비판가들이 제기하는 이런 비판에 따르면 푸코는 경험적 통찰은 보여주지만 규범적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더 나아가 후기의 윤리적 실천에 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Fraser 1982; Habermas 1985 등 참조.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비판 역시 숱하게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로는 Keenan 1987; Campbell 1998; Golder 2010; Allen 2011 등을 참조.] 따라서 푸코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항은 기름과 물처럼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글의 제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의문의 태도가 남게 된다. 어쨌든 푸코는 민주주의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또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한 적도 없는 것 아닌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에서 보듯이 푸코는 자연권 개념이나 사회계약에 준거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표상적인 허구들로 간주하지 않았는가?

 

푸코와 바깥의 정치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의 발표를 시도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선 내가 “바깥의 정치”[“바깥의 정치”(politique du dehors)라는 이 표현은 프랑스의 철학자 브뤼노 카르젠티(Bruno Karsenti)가 푸코 사상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Karsenti 2005 참조.]라고 부르고자 하는 어떤 이론적ㆍ정치적 지향에 담긴 애매성(심지어 양가성)에 대하여 내가 평소에 느끼는 의문에서 기인한다. 내가 바깥의 정치라는 용어로 규정한 지시체는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철학적ㆍ이론적 사조들이다. 여기에는 알랭 바디우와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과 슬라보예 지젝, 안토니오 네그리 같이, 현대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서로 별로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사상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명칭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한데, 나로서는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적어도 한 가지 이론적 공통점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들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방의 정치를 추구하며, 이러한 정치를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의 제도적인 정치는 특히, 넓은 의미에서(곧 우리나라에서 수구적인 이데올로기로 유통되는 것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이들은 현대 정치의 대표적인 모델로 간주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가 이상적 정치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지배의 체제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인민의 권력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 현대 사상가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바깥의 정치는 이중적인 유산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가 남긴 유산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현대적인 바깥의 정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기만성에 대한 비판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 마르크스 저작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시민들의 평등과 자유는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 추구를 은폐하는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둘째는 경제적 착취에 근거를 둔 계급투쟁을 진정한 정치의 쟁점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법과 정치는 경제적 생산관계에 기반을 둔 상부구조이며,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정치의 영역은 진정한 정치의 장소와 무관한 허상에 불과하다.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현대 사상가들은 이러한 고전적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적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바깥의 정치에 관한 이 두 가지 논점은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푸코가 남긴 유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이론적ㆍ실천적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작업, 특히 197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비견될 만한 자신의 고유한 ‘역사유물론’(물론 푸코 자신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들의 자기 표상에 기초하여 근대 사회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자기 표상의 기저 내지 바깥에 있는 역사적 전개 과정을 탐색하려고 했다. 푸코가 보기에는 자유주의적인 자기 표상 바깥에 있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야말로 ‘실제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좀더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으며, 자유주의적인 자기 표상의 한계 내지 ‘허구성’을 드러내주고, 더 나아가 왜 그러한 자기 표상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까지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이러한 역사적 전개 과정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 과정 또는 경제적 착취 관계의 형성 및 전개 과정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권력관계(처음에는 규율권력이라 부르고, 유고작으로 출간된 강의록에서는 생명관리권력 및 통치성이라고 부른)의 전개 과정으로 제시했다. 더욱이 푸코는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이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니체에서 영감을 얻은 계보학이라는 독특한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푸코는 자유주의적 자기 표상의 바깥에 놓인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추구하되 비마르크스주의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바깥의 정치를 모색하는 현대 사상가들의 한 전범을 제시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푸코는 이러한 권력관계의 전개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예속화(assujet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문제를 진정한 정치의 쟁점으로 제기한다. 이것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사상을 가르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고전 마르크스주의에도 예속화와 관련된 문제제기는 이미 존재했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서 제시된 물신숭배 분석이 그 단초가 되며, 지외르지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 특히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 의식」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숭배론과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종합한 사물화(Verdinglichung) 개념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계급에 고유한 인간학적 소외 상태를 분석한 바 있다(루카치 1986 참조).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의 학자들(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은 이러한 루카치의 분석을 현대 산업사회의 소외된 생활양식에 대한 분석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 예속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상품관계의 보편화가 산출하는 의식과 표상, 인성(人性)의 소외와 왜곡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분석되었다.

 

반면 푸코는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경제적 착취관계나 상품관계에서 찾지 않고, 대신 규율권력이나 통치성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권력론의 기반 위에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체화 양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푸코가 보기에 고전적인 해방의 문제설정(마르크스주의 및 성해방 투쟁, 반(反)식민 해방 투쟁 등을 포함하는)은 계급 지배나 성적 지배 또는 식민 지배를 통해 억압된 보편적 인간 본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주체들 사이의 자유로운 관계 형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여기에 관해서는 특히 Foucault 1984b 참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체화에 관한 독자적인 문제설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푸코의 문제제기는, 푸코를 명시적으로 원용하든 원용하지 않든 간에(또 푸코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간에) 현대 사상가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자크 랑시에르는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의 민주주의론의 주요 요소로 제시하고 있으며(랑시에르 1995; 1998 참조), 발리바르 역시 알튀세르와 스피노자, 푸코의 논의에 기반하여 정치적 주체화의 과제를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Balibar 2001; 2002; 2010을 각각 참조).[물론 발리바르는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로 간주될 수 없다.] 또한 아감벤은 푸코의 장치(dispositif)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체화의 문제를 탐색하고 있다(아감벤 2010 참조).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알튀세르와 푸코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역시 (무의식적) 주체의 문제를 현대 사상의 근본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Zizek 1989; 1999 참조).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에 기반을 둔 정치학을 추구하고 있다(Hardt & Negri 2001; 2008). 따라서 푸코는 현대 사상가들, 특히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의 주요한 이론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러한 바깥의 정치에 대해 어떤 애매성 내지 양가성을 느낀다면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바깥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 제도 바깥에서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점이다. 그것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들이 보편적인 인권과 시민권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정체로 자처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인권과 시민권의 축소, 인종 갈등과 민족 갈등, 이주자 문제 등과 같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이 단순히 상황적인 어려움에서 비롯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들의 구조 내지 토대에서 비롯한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면, 그 제도 바깥에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인 주장과 달리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가 단순히 경제적 착취에 기반을 둔 계급투쟁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물론 이러한 착취 및 계급투쟁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인종주의나 민족주의를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갈등, 성적 불평등 같은 또 다른 모순, 또 다른 적대 관계에서도 비롯한다면,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이러한 복수의 모순이나 적대를 설명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근원적으로 무기력했다면,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다른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를 분석하고 그 바깥에서 대안적인 정치의 장소를 찾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의 바깥의 정치는 두 가지 점에서 난점을 드러낸다. 우선 그들이 지배적인 정치체와 진정한 정치의 장소 사이의 근원적 양립 불가능성을 가정하는 까닭에, 예속화에서 주체화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해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지배의 정치체로 간주하고, 그것도 (본래적인 파시즘이 아니라면 적어도) 유사 파시즘적인 정치체로 간주하는 한에서(랑시에르의 ‘치안’이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같은 개념들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어려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만약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들이 보편적인 인권과 시민권에 기반을 둔 정치체가 아니라 오히려 예속화의 메커니즘, 자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더 저항하기 어려운 그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 근거한 것이라면, 따라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체들’이 이미 예속화의 메커니즘에 포섭되어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정치체를 변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예속화 메커니즘과 다른 자유로운 주체화에 기반을 둔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치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또 반대로 만약 (지젝이나 네그리가 각자 상이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주장하듯) 진정한 주체는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 포섭되지 않는 중핵을 지니고 있다면, 왜 진정한 주체들에게 애초에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이러한 측면에서 지젝과 네그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진태원 2008; 2009a를 각각 참조).

 

더 심각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이런 것이다. 바깥의 정치는 그 의도와 달리 역설적으로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가 지배의 체제로 기능하는 것을 이론적ㆍ실천적으로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다시 말해 바깥의 정치에서 주장하듯이 제도적인 정치는 본성상 지배의 체제라면,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는 그 바깥에서 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제도적인 정치 자체를 내부에서 개조하는 일은 헛수고에 불과하거나 사소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경우 제도적인 정치 내부에서 어떠한 퇴락이나 퇴행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거나 제어하는 것 또는 그것을 개혁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제도적인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폐해의 결과는 그 체제 내부에서 살아가는 것밖에 달리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따라서 과연 동시대의 여러 이론가들처럼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와 바깥의 정치 사이의 근원적 양립 불가능성을 전제해야 하는 것인지, 이러한 전제는 오히려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 정치를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역사성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성이라는 말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체가 초역사적이거나 영원한 정치체가 아니라 역사적 한계를 지닌, 따라서 언젠가는 극복되고 대체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체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성의 이런 측면은 바깥의 정치의 이론가들이 폭넓게 공유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사성의 또 다른 의미는 지배적인 정치체가 이러한 역사적 한계 내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그것은 역사적으로 상이한 형태들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마르크스 및 그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중요한 한계 중 하나로 “자본주의 자체의 역사를 사고하고 분석하지 못하는 무능력”(Balibar 1997, 304)을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8세기 말의 자본주의와 19세기 말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또 20세기 말의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계급투쟁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곧 계급투쟁이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계속 동일하게 그대로 존속한다”(Balibar 1997, 319-번역은 수정)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깥의 정치의 이론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지적할 수 있다. 지배적인 정치체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든 치안이라고 부르든 부르주아민주주의라고 부르든 아니면 생명관리권력 체제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은 이러한 지배적인 정치체의 역사를 분석하는 데 무능력하다.[역사성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는 국민국가를 노예의 정치체로 간주하는 국내 및 일본의 지식인들에게서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진태원 2009b 참조.] 가령 랑시에르는 󰡔불화󰡕와 같은 탁월한 저작들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음에도 그가 치안이라고 부르는, 제도적인 정치체의 역사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지젝 같은 경우는 이러한 정치체의 역사 같은 문제설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이런 의미에서 지젝은 이론가라기보다 비평가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무능력은 정치를 제로섬의 문제로 인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든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든 체계 전체를 변혁하는 정치가 아니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지젝의 말장난에 따르면 체계를 개혁하거나 개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기존 체계를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변혁적인 태도, 진정한 정치에 부합하는 태도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푸코는 동시대의 바깥의 정치론의 선구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이론가들과 구별되는 주목할 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관계론적 권력론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푸코의 특유한 권력론에서 비롯한다. 푸코는 권력을 억압과 부정, 금지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긍정과 생산의 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은 권력의 ‘실제’ 메커니즘을 좀더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이해하게 해줄뿐더러, 권력을 지배와 동일시하고 따라서 권력과 자유, 권력과 저항, 권력과 해방을 외재적인 대립관계로 환원하는 동시대 바깥의 정치론의 난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준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 및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1976)에서 권력의 예속화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한 이후 1980년대 초의 작업에서는 주체화의 양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권력의 분석론과 주체화 양식론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서로 외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푸코의 주체화 양식에 대한 분석은 그가 관계론적인 권력론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또 그렇게 파악할 때에만 주체화 양식론이 지닌 강점이 좀더 정확히 인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관계론적 권력론이야말로 예속화와 주체화를 내재적인 복합적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푸코의 또 다른 강점은 역사를 새롭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푸코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역사가들이 구성해놓은 역사를 소비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직접 역사적 사료를 분석하여 근대성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했다. ‘광기의 역사’, ‘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 같이 그의 저작에서 역사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푸코가 재구성한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구분이나 분류법의 한계를 드러내주면서 역사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준다. 가령 ‘광기’라는 것이 자연적인 질병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지식과 권력의 복합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감옥이라는 제도의 성립과 전개 과정을 통해 근대 권력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오직 푸코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재구성된 역사는 기원의 우연성과 불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가장 반(反)목적론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푸코는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도 목적론이나 종말론과 가장 거리가 멀고 권력이나 정치의 문제를 제로섬의 방식으로 환원하는 데 가장 면역력이 큰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푸코 사상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푸코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푸코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의 계보학,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역사를 직접 구성한 적은 없지만, 그러한 역사를 사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 바깥에 위치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종말론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그 내부에서 그것에 저항하고 변혁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예속화와 주체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푸코의 사상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이것이 푸코와 민주주의라는 이 글의 제목에 담긴 암묵적인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여기서 제기된 문제들을 온전히 다룰 수는 없으며, 다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푸코 사상의 몇 가지 이론적 요소를 지적하는 데 그치기로 하겠다. 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관계론적 권력론

2) 예속화와 주체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3)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 대항품행, 권리들을 가질 권리, 파레지아

 

내가 보기에 이 요소들은 ‘바깥의 정치’로서의 푸코의 사상이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또는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를 개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관해 한 가지 실마리를 던져줄 것 같다.

 

관계론적 권력론

 

푸코는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 앎에의 의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등에서 몇 차례에 걸쳐 권력 분석에서 일종의 관계론적 전회를 제안하고 있다. 특히 다음 구절은 이를 매우 잘 보여준다.

 

권력을 관계의 원초적 항들로부터 출발해서 연구할 게 아니라, 관계야말로 자신이 향하고 있는 요소들을 규정하는 것인 한에서, 관계 자체로부터 출발해서 연구해야 한다. 이상적 주체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예속될(assujettir) 수 있도록 그들 자신으로부터 혹은 그들의 권력으로부터 양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예속 관계들(relations d'assujettissement)이 주체들을 만들(fabriquer)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권력 형태들이 그 결과로서 또는 그 전개로서 파생되어 나올 유일한 형태나 중심점을 찾기보다는 우선 이 형태들이 지닌 다양성, 차이, 종별성, 가역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것들을 서로 교차하고 서로에게 준거하고 서로 수렴하거나 반대로 서로 대립하고 서로를 소멸시키는 경향을 지닌 세력관계들로 연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에 대해 권력의 발현으로서 특권을 부여하기보다는 권력이 작동시키는 상이한 강제의 기술들을 표시해두는 것이 좋다. (Foucault 1997, 305-306쪽―번역은 수정)[푸코의 저작에서 인용할 때 국역본이 있을 경우에는 국역본 쪽수를 중심으로 했으며, 함께 병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원문 페이지수를 달아두었다.]

 

여기서 푸코는 네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연구 방법론으로서 관계론을 정식화하고 있다.

 

1) 관계항들에 대한 관계의 우위

 

이러한 원칙으로 푸코가 강조하려고 하는 바는 권력이나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독립적인 개인이나 주체를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입장 및 또한 그것에 전제되어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개인들을 복종시키고 억압하는 권력이 적용되는, 또 타격을 가하는, 일종의 기본적인 핵이나 최초의 원자, 다수의 불활성 물질 등으로 개인을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Foucault 1997, 48―번역 수정) 이는 푸코가 그것과 정반대되는 입장, 곧 방법론적 전체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 푸코는 권력의 중심을 가정하거나 권력을 동질적인 전체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관점을 정면으로 배격한다. “권력을 전면적이고 동질적인 지배의 현상으로 간주하지 말 것이다.”(Foucault 1997, 48) 따라서 푸코의 입장은 오히려 “권력은 망 속에서 기능”한다는 것, “이 망 속에서는 개인들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권력을 감수하면서 또한 그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권력은 개인들을 통과해갈 뿐 그들 중 누구에게도 고착되지 않는다”(같은 곳―번역은 수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예속 관계

 

관계론의 두 번째 원칙은 사회계약론을 예속 관계에 대한 분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왜 사회계약론이 문제가 될까? 그것은 독립된 개인들이 사회계약론의 기본적인 이론적 전제 조건 중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다수의 개인들의 자발적인 의지로부터 어떻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주권이 구성되는지 해명하려고 하지만, 이는 권력과 지배의 실질적인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호도할 뿐이다. 또한 사회계약론은 푸코가 “권력 이론 내의 ‘경제주의’”라고 부른 것, 곧 “권력이 마치 재산처럼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고, 따라서 법적 행위 또는 인도나 계약의 형식인 권리 개설의 행위에 의해―여기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전체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남에게 이양하거나 양도할 수도 있는 하나의 권리”(같은 책, 31)로 간주하는 이론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권력의 실질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 장애가 된다.

 

따라서 “리바이어던 모델”, 곧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자동적이며 동시에 통일적이고, 실제의 개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모든 시민을 몸체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러나 그 정신은 주권인, 그러한 인위적 모델을 제거”하고 그 대신 “지배의 기술과 전술”(같은 책, 53)로부터 권력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좀더 일반적으로는 주권 개념에 기초를 둔 법적인 권력 개념 대신 “지배 관계 내지 그 작동장치들”을 부각시키려는 푸코의 이론적 관점의 표현이다.

 

3) 중심이 아니라 다양성, 차이, 종별성, 가역성

 

여기서 푸코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국가를 중심으로 삼는 권력이론, 곧 모든 권력의 통일체이자 중심으로서 국가를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권력 이론이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근대의 거의 모든 정치이론은 긍정적인 것으로 보든 부정적인 것으로 보든 항상 국가를 중심으로 권력을 분석해 왔지만, 푸코에 따르면 이는 권력의 실제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서나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하는 데서나 부적절한 관점이다. 권력이 어떤 단일한 중심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은 “오랫동안 정치적 사유를 현혹시킨 법-주권 체계”(Foucault 1976, 115―번역은 다소 수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권력의 다면적이고 구체적인 작동을 분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이 관점은 “권력에 대한 커다란 거부의 ‘한’ 장소”(같은 곳)를 가정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억압 가설이나 소외론으로 귀착되고 만다.

 

반대로 푸코에게 권력 관계는 “작용영역에 내재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다수의 세력관계, 끊임없는 투쟁과 대결을 통해 다수의 세력관계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며 뒤집는 게임, 그러한 세력관계들이 연쇄나 체계를 형성하게끔 서로에게서 찾아내는 거점, 반대로 그러한 세력관계들을 서로 분리시키는 괴리나 모순, 끝으로 세력관계들이 효력을 발생하고 국가 기구, 법의 표명, 헤게모니에서 일반적 구상이나 제도적 결정화가 구체화되는 전략”(같은 책, 112)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권력의 분석에서는 항상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권력 관계는 항상 가역성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권력이 있는 곳에 바로 저항이 존재하며, “권력 관계는 다수의 저항지점에 따라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같은 책, 115) 권력이 다양하고 구체적, 미시적으로 도처에 편재한 것처럼, 저항 역시 권력망의 도처에 현존하며, 따라서 때로는 서로 간에 모순과 갈등을 빚기도 하는 다양한 저항의 형태들이 존재한다.

 

4) 법에 부여된 특권을 박탈하기

 

마지막으로 푸코가 제시하는 관계론적 원칙은 법에 대해 부여된 특권을 박탈하고 그 대신 다양한 강제의 기술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왜 법에 부여된 특권을 박탈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일이 될까? 그것은 푸코에게 법은 사실은 지금까지의 원칙들에서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 되었던 특징들을 집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Foucault 1976, 102 이하 참조). 곧 법은 초월적인 심급(곧 주권)을 가정함으로써, 관계항들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비대칭성을 도입하며, 더 나아가 이러한 초월적인 심급을 중심으로 권력을 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때문에 법은 다양하고 상이한 권력의 기술들을 하나의 중심을 갖는 통일체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법은 보편성과 필연성의 상징으로서 그 기원의 우연성이나 그 역사적 변화의 가능성을 사고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법은 권력을 금기로 간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곧 권력을 금지하고 부정하고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푸코가 항상 강조하는 권력의 생산적 또는 긍정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법으로서의 권력은 “거의 “부정”(non)의 힘밖에 없”(Foucault 1976, 106)다. 법으로서의 권력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주체에게 자신이 금지하는 것은 하지 말고 허가하는 것만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무한한 힘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법은 바로 그 금지에 의해 산출된 욕망을 통해 자신의 주체들을 무한한 원환 속으로 이끌어 들이기 때문이다. 법으로서의 권력은 금기와 위반의 무한정한 되풀이와 다르지 않다.

 

갈등적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관계론적 권력론은 푸코가 권력에 대한 법적-주권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첫째, 권력이나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독립적인 개인이나 주체를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입장 및 또한 그것에 전제되어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또한 이것은 권력 분석에서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예속 관계를 초점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따라서 푸코는 모든 권력의 통일체이자 중심으로서 국가를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권력 이론에서 벗어나 다수의 세력들 사이의 전략적 관계로서 권력을 사고할 것을 제안한다. 요컨대 중심이 아니라 다양성, 차이, 종별성, 가역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법에 부여된 특권을 박탈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법에 중심을 둔 권력론은 법의 초월성과 부정성(곧 권력의 본질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에 기반을 두고 권력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코는 1980년대 초에 가면 이러한 관계론적 권력론의 관점에서 권력과 지배를 구별한다. 권력은 도처에 편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서로 활동을 주고받기 위한 조건을 함축한다면, 지배는 관계의 두 항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역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따라서 권력은 자유나 해방의 대립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해방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되며(그 역도 성립한다), 해방은 어떤 권력의 지배적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권력 관계를 열어놓”(Foucault 1983, 103)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보기에는 자유들 사이의 전략적 게임으로서의 권력 관계—이러한 전략적 게임은 어떤 사람들이 타인들의 품행을 규정하려고 시도하게 만들며, 여기에 대해 타인들은 자신들의 품행이 규정되지 않게 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처음의] 타인들의 품행을 역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하게 만듭니다—와, 우리가 보통 권력이라고 부르는 지배 상태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서, 권력 게임과 지배 상태에서 우리는 통치 기술을 갖게 됩니다. 통치 기술이라는 이 용어는 아주 넓은 의미, 곧 제도를 통치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통치하는 방식도 포함하는 의미를 지닙니다.(Foucault, Ibid., p. 1547; 같은 글, 123-24쪽. 번역은 수정)

 

따라서 이러한 관계론적 권력론은 민주주의를 법적인 정체(政體)로 규정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갈등적인 과정으로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동시대의 사상가들 중에서 민주주의를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가장 역설한 인물은 에티엔 발리바르다.[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는 Balibar 2005; Balibar 2008; “Ouverture: L'antinomie de la citoyenneté”, in Balibar 2010 참조.] 그는 스피노자의 정치학에 대한 재독해를 통해 민주주의를 형식적인 법적 정체가 아니라 갈등적인 과정으로, 물질적인 헌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주의를 갈등적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민주주의가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동력으로 하여 작동한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제도로 구현된 모든 민주주의 헌정은 필연적으로 배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대 민주주의에서 노예가 시민권 헌정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점이다. 하지만 발리바르에 따르면 보편적 인권과 시민권에 기초를 둔 근대 민주주의 역시 자신의 고유한 배제의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배제에는 근대 민주주의 초기의 무산 계급에 대한 배제나 여성에 대한 배제 등이 존재한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배제들 이외에 국민국가에 고유한 배제라는 쟁점을 제기한다. 그것을 발리바르는 특히 시민권=국적이라는 등식으로 표현한다.[‘시민권=국적’ 등식의 의미에 대해서는 Balibar 2001 4장 및 Balibar 2002, 131쪽 이하 참조.] 곧 정치적 자격으로서의 시민권을 국적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부여하는 것이 근대 민주주의 헌정, 곧 국민 국가의 본질이며, 이것은 󰡔인권선언󰡕에서 천명된 보편적 인권 및 시민권 원리와 모순을 빚는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과제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기존의 제도적인 틀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국한될 수는 없으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배적인 세력 관계가 억압하고 배제하는 갈등, 곧 사회적 약자들이나 배제된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주의적 대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의견과 당파의 다원성을 보증하고 활성화하는 것(이것은 물론 본질적입니다만)만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는 것이며, 모종의 세력관계가 강제하는 “억압”으로부터 이러한 갈등을 빼어내서 공동선 내지 공동의 정의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끔 그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갈등이 부인되어서는 안 되며 논변과 매개(“의사소통 행위”) 바깥에 놓여서도 안 되는데, 비록 이러한 갈등이 처음에는 대부분 적법한 이해관계들을 인정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설정된 틀을 격렬하게 벗어나기 마련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Balibar 2002, 241) 갈등적인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생각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제도에서 배제된 사회적 갈등의 정치적 대표라는 문제를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핵심 문제로 제기한다.[이때 정상적인 민주주의 제도에서 배제된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인 예는 소수 집단 내지 비정상인들과 주류 집단 내지 정상인들 사이의 갈등이 되겠지만, 이러한 갈등이 반드시 특정한 소수 집단으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 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텐데, 특정한 소수 집단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배제의 문제에 함축된 보편적인 정치적 쟁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신자유주의적 예속화 양식

 

오늘날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심지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이 경제적 세계화, 특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동의하는 견해다.[이 점에 관해서는 가령 데이비드 하비처럼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저자 이외에도(하비 2007, 204쪽 이하; 하비 2010), 크라우치 2008, Brown 2003; 세넷 2002; 2009 등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저자들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의 양상은 콜린 크라우치가 적절하게 요약했듯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있다. 세금의 재분배 기능은 줄어들었다. 정치가는 한 줌도 안되는 기업가들의 관심사에만 주로 반응하고, 기업가의 특수 이익이 공공 정책으로 둔갑한다. 가난한 사람은 점차 정치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게 됐다. 이로써 그들은 민주주의 이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차지해야 했던 위치, 즉 정치 참여가 배제된 위치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크라우치 2008, 37-38)

 

민주주의는 그 어원이 말해주듯이 demos + kratia, 곧 “인민의 권력” 내지 “인민의 통치”를 의미한다면, 또는 적어도 다수 대중의 의지의 표현 및 참여가 제도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사실 현재 민주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은 랑시에르가 역설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의 과두제로의 전환 또는 “인민 없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특히 Rancière 2005 참조) 곧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는 최소 민주주의, 곧 슘페터가 말했듯이 “[그것은] 정치적 결정으로 귀착되는 제도적 체계로서, 개인들은 이 속에서 인민의 투표에 관해 경쟁하는 투쟁 끝에 정치적 결정에 관해 법제화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게” 되는 정치 형태이며, 따라서 실제로는 과두제에 불과하다. 인민의 권력 내지 통치로서의 민주주의가 이름에 걸맞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실질적인 보편 선거가 일반화된 20세기 후반부터라고 한다면, 불과 40~50여년 사이에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제로 후퇴한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는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Brown 2003 참조). 그렇다면 어떻게 신자유주의는 “인민 없는 민주주의”로서의 과두제를 산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민주주의에 관한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지만,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이나 그 반대쪽에 위치한 제도적 민주주의에 관한 사상가들, 자유주의 이론가들 및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가들에게서는 이러한 문제설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다만 최장집 교수 등은 모니카 프라사드 등의 논의를 원용하여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국가별 정책의 차이라는 문제로 환원하려고 시도한다. 곧 영국이나 미국, 한국 같은 나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채택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되는 반면, 독일 같은 나라는 신자유주의가 낳는 폐해가 적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나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푸코의 작업은 주목할 만한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푸코가 지난 1978-1979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를 묶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이론적 뿌리를 이루는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Ordo-Liberalismus) 학파 및 미국의 시카고학파의 주요 이론과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푸코의 강의록은 지난 30여 년 동안 소수의 푸코 제자들 및 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지만, 신자유주의에 관한 선구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분석은 이미 유럽과 영미권의 여러 푸코 제자들 및 푸코 연구자들의 작업들을 통해 광범위하게 원용되고 확장되어 왔다.[영미권의 이른바 “통치성 학파”(School of Governmentality)나 프랑스의 자크 동즐로(Jacques Donzelot), 로베르 카스텔(Robert Castel), 크리스티앙 라발(Christian Laval)과 피에르 다르도(Pierre Dardot), 독일의 토마스 렘케(Thomas Lemke) 등이 그 주요한 연구자들이다.] 푸코는 강의록에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제시한다.[물론 이러한 차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푸코는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차이를 지적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자유주의적 통치성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통제되어야 할 요소들의 자유 운동을 고무하는 장치들을 생산하고 발전시키는 통치 방식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Foucault 2004a, 1월 18일 강의 참조), 인구를 구성하는 생명체들의 집합 전체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통치의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통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비판의 운동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Foucault 2004b, 1월 17일, 2월 7일 강의 참조).]

 

첫째 푸코에 따르면 양자는 경제 활동을 인식하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 자유주의는 “교환”(échange/exchange)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때의 교환은 스미스가 인간이 지닌 “교역, 교류, 교환”에의 본성적 경향에 대해 언급했듯이 본성적인 것으로서의 교환이다. 곧 고전 자유주의는 시장을 특수한 국가 제도나 사회 부문으로 간주하지 않고 자연적인 체계로 간주했다. 바로 이 때문에 시장은 국가 권력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한정하기 위한 토대로 작용한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교환이 아니라 “경쟁”(concurrence/competition)에 초점을 맞춘다(Foucault 2004b, 9).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원리를 정치의 토대로 간주하지만, 교환 대신 경쟁을 경제적 인간학의 근본 원리로 간주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고전적인 자유주의에게는 자연적인 것으로서의 교환이 경제의 토대였던 반면,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자연적 경향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신자유주의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독점과 개입에 맞서 “인위적 관계”로서의 경쟁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이다(푸코에 따르면 이는 20세기 전반기의 국가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독일 질서 자유주의자들의 공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 곧 경쟁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을 보호하는 데 개입할 것을 요구한다. “경쟁은 존중해야 할 자연적인 소여가 아니라 통치술의 역사적 목표다.”(같은 책, 124)

 

둘째, 이렇게 경제의 근거가 교환에서 경쟁으로 바뀌고, 경제 활동이 자연적인 것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재정의되면서, 인간에 대한 상이한 이해 방식이 생겨난다. 우선 신자유주의적인 관점(특히 미국의 시카고학파)에 따를 경우 경제학의 범위가 무한정하게 확장된다.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의 정의를 원용하면서(“경제학은 인간 행동을, 목적들과, 양자택일적 용도를 갖는 희소한 수단들 사이의 관계로 연구하는 학문이다”(같은 책, 242)) 푸코가 말하듯이 이제 결혼과 범죄, 아이 양육 등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행동이라면 모두 경제적인 비용 계산의 대상이 되며, 따라서 경제적인 활동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제 경제는 더 이상 사회의 한 부문이 아니라 사회 전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서 인간 주체는 “기업가”(l'homme de l'entreprise/entrepreneur)가 되며, 인간의 활동은 “인적 자본”의 관점에서 재정의된다.

 

가령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얻게 된 임금은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는 초기 투자를 통해서 얻게 되는 수입이 되며, 더 나은 수입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활동 역시 투자로 간주된다. 또한 학교나 학원을 다니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 클럽에 다니는 것, 동호회나 등산, 친목 모임 같은 활동 내지 심지어 국경을 넘어서 이주를 하는 것도 역시 투자의 관점으로 이해된다. 인간들은 각자가 기업가이고 각자가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투자를 한 만큼 또한 각자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경제적 인간은 기업가, 자기 자신의 기업가”인 셈이다(같은 책, 232).

 

셋째,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통치성”(gouvernementalité) 내지 “통치술”(art de gouvernement)로 이해한다. 여기서 통치성은 좁은 의미, 곧 국가를 다스리거나 경영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ㆍ절차ㆍ분석ㆍ고찰ㆍ계측ㆍ전술의 총체”(Foucault 2004a, 163)를 뜻한다. 하지만 국가의 통치와 개인의 통치를 결합하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통치성은 “품행에 대한 인도”라고 규정할 수 있다.

 

푸코가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통치성으로 규정하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 아주 역설적인 형태의 통치성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통치 없는 통치”, 곧 자신의 주체들에게 여러 전략들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통치이기 때문이다. 개인 주체, 개인 기업가들은 다른 사람이나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투자하고 벌어들이고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이러한 자유를 부여받고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활동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또한 국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가령 질병이나 실업, 빈곤 등의 문제에 관해 개인 기업가들은 그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돌릴 수 없다. 자신이 어떤 병에 걸리고 어떤 직업을 갖거나 잃고 얼마나 부유하거나 가난하든 그것은 모두 개인들의 책임에 달린 일인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반(反)정치적 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반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정치 제도나 정치의 영역 그 자체를 물질적으로 제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사회의 변화나 변혁을 사고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또는 그것을 위한 조건들 자체가 축소된다는 것을 뜻한다.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

 

그렇다면 이러한 반정치적 정치에 맞서 '진정한' 자유주의 정치의 복원, 또는 복지국가의 실현을 저항의 전략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푸코에 따르면(또는 푸코 자신이 직접 이러한 논의를 제시한 적은 없으므로, 적어도 그의 통치성의 문제설정에 따르면) 이것은 부분적으로 필요할 수는 있어도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맞서기 위한 정치로는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반(反)정치적인 경제 이데올로기나 시장의 지배라기보다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이고 정치의 변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종언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관계를 재구조화하는 정치의 변혁이다. 우리가 오늘날 목도하고 있는 것은 국가 주권 및 계획 능력의 감소나 환원이 아니라 공식적인 통치 기술로부터 비공식적 통치 기술로의 전위이자 통치의 무대에서 새로운 행위자들의 등장이다. 이것은 국가성 및 국가와 시민사회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시해준다. ... 다시 말하면 국가와 사회, 정치와 경제 사이의 차이는 더 이상 토대나 경계선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종별적인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술의 요소이자 효과로 기능한다.”(Lemke 2002, 58-59)

 

더 나아가 앞서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가 기업가 개인들을 양산하고 경쟁을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제도화함으로써 개개인들의 삶에서 광범위한 예속화 효과들을 산출하고 있다면, 일부에서 주장하듯이(국내에서는 특히 최장집의 일련의 저술에서 이런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적인 제도 정치를 복원하거나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인 통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문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일이다. 그리고 바깥의 정치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얻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해 길게 논의하는 대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푸코의 가능한 저항 전략을 세 가지 측면에서 간단히 살펴보겠다. 내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대항품행(contre-conduite)이라는 푸코의 개념이다. 푸코가 말하는 대항품행이라는 것은 어떤 통치성의 인도에 따라 행위하는 대신, 그러한 통치성이 원하는 것과 다른 식으로 행위하는 것을 가리킨다. 간단하게 푸코의 한 텍스트를 통해 이것의 의미를 살펴보자.

 

푸코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말년의 글에서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텍스트를 검토한 뒤 후반부에서 “능력과 권력 사이의 관계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문제를 검토한다. 푸코가 보기에 18세기 이래 서양 사회는 개인들 상호 간의 동시적이고 비례적인 발전이라는 희망을 품어왔다. 그리고 능력의 획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야말로 서양사의 영속적인 요소를 이루어왔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 푸코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능력의 신장과 자율성의 신장 사이의 관계가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능력의 신장이 권력 관계의 강화와 분리될 수 있는가?”(Foucault DE II, 1595)

 

푸코가 ‘능력과 권력의 관계의 역설’이라고 부른 것과 이 후자의 질문 사이에서 푸코 자신은 아무런 구체적인 연관성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푸코의 통치성 분석, 특히 자유주의적-신자유주의적 통치성 분석의 맥락에서 본다면, 양자 사이의 연관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능력과 권력 사이의 관계의 역설이 뜻하는 것은, 통치 기술이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 능력을 최대화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반면, 이러한 능력의 최대화는 오직 이러한 통치 권력의 인도를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 능력이 최대화된다고 해서 우리가 자율성의 말의 본래 의미에서 자율적이거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최대화는 통치 권력의 인도를 통해서만 수행되며, 따라서 우리가 그러한 권력에 의해, 그러한 권력이 원하는 방향대로 통치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푸코가 제기하는 질문의 의미가 좀더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 능력의 신장을 어떻게 이러한 통치 권력의 강화와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통치 권력의 인도 아래, 그러한 통치 권력이 원하는 대로 통치되는 대신, 그것과 다른 식으로 통치되는 길은 없는가? 또 그러한 다른 식의 통치를 통해 우리 자신의 행위 능력을 신장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이것이 바로 대항품행이라는 개념의 의미다.

 

그렇다면 대항품행이라는 개념이 과연 정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민주주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한편 미국의 푸코 연구자인 아널드 데이빗슨(Arnold I. Davidson)은 게이 및 레즈비언 운동과 관련하여 푸코의 대항품행 개념이 갖는 윤리적ㆍ정치적 함의를 흥미롭게 분석한 바 있다. Davidson 2011 참조.] 여기에서도 상세한 논변 대신 푸코의 짧은 한 텍스트를 가지고 간단하게 나의 논점만 전달해보겠다. 푸코가 1981년 해적 행위에 반대하는 국제위원회 창설 기자회견 석상에서 읽은, 짧지만 매우 인상적인 이 텍스트는 푸코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자로 불릴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견뎌내는 데서 공통적으로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말할, 함께 말할 자격도 갖고 있지 않은 사적인 사람들로서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왜 어떤 남성들과 여성들이 자기 나라에서 사는 대신 그곳을 떠나려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 바깥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이런 일을 하도록] 임명한 것일까요? 누구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의 권리를 형성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는 제가 믿기로는 이러한 발의를 인도한 세 가지 원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1)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지든,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구이든 간에 모든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분연히 일어나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닌 국제 시민성이 존재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피통치자들(gouvernés)이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연대하고 있습니다.

 

2) 사회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미명 하에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야기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이 허용한 사람들의 불행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그 정부들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국제 시민성의 임무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은 결코 정치의 침묵하는 잔여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불행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맞서 일어서고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정초합니다.

 

3) 흔히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과업의 분산, 곧 분노하고 말하는 일은 개인들이 맡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일은 정부가 맡는다는 분산을 거부해야 합니다. ... 국제 사면위원회, 테르데좀므(Terre des hommes)[국제아동구호단체], 세계의사회는 새로운 권리, 곧 사적 개인들이 국제 정치 및 전략의 질서 속에 실제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창조해낸 주도적 단체들입니다. 개인들의 의지는 정부가 독점하려고 해온 현실 속에 기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부의 독점을 날마다 조금씩 탈취해야 합니다.(Foucault, “Face aux gouvernement, les droits de l'homme”, DE II, 1526-27-강조는 필자)[이 글은 푸코 생전에는 출간되지 않았다가 푸코 사후인 1984년 6월 30일~7월 1일자 󰡔리베라시옹󰡕에 발표되었다. 이 글의 맥락에 대한 소개 및 분석으로는 Campbell 1998 참조.]

 

이론적인 논문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정세에서 공적 지식인으로서 개입하면서 발언한,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우발적인 이 텍스트는 푸코의 다른 텍스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해준다.

 

푸코에게서 정치적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나 노동자 계급이 아닐뿐더러 고전적인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이나 시민도 아닐 것이다. 또한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다중도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가 푸코에게서 정치적 주체를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피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여기에서 연대의 주체로 제시한 피통치자는 정상적인 의미의 피통치자, 곧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나름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고 있는 피통치자가 아니다.[이는 물론 이처럼 잘 확립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피통치자 범주에서 배제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한 효과 중 하나는 남과 북, 또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경계선이 더 이상 국가들 및 대륙들 사이의 외적 경계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부유한 북쪽 나라들의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게토들이 확장되고 있으며, 남쪽의 대도시들에서도 첨단 세계화의 흐름과 빈곤의 확산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화가 산출하는 경계 문제의 복합적 측면에 대해서는 Balibar 2001 6장 및 7장 참조.] 일차적으로 그러한 피통치자들은 국적을 상실한, 따라서 아렌트가 주장했듯이 일체의 정치적 권리도 상실한 채 공해상을 떠도는 베트남 난민, 이른바 보트피플이다. 이들이 아무런 국적도 갖지 않고, 그러한 국적을 통해 보장되는 아무런 시민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당시 공산화된 베트남의 새 정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실정법적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푸코는 어떤 실정법적 권리에 따라 이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대신, 피통치자들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견뎌내는 데서 공통적으로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만을 유일한 자격으로 지닌 피통치자들의 국제적 시민성의 이름으로 권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불행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맞서 일어서고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정초”한다. 이것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또는 랑시에르가 말한 “몫 없는 이들의 몫”에 대한 주장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그리고 발리바르가 말하는 봉기적 시민성, 평등자유 원리에 기초를 둔 국적을 넘어서는 관(貫)국민적(transnational) 권리의 또 다른 명칭이 아닌가?[탈식민주의 이론가 파르타 차테르지(Partha Chaterjee)는 푸코의 “피통치자”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제도적인 정치의 틀 바깥에 위치한 탈식민지 사회 피통치자들의 저항의 정치의 가능성을 탐구한 바 있다. Chaterjee 2004 참조.]

 

푸코가 아렌트나 랑시에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이러한 피통치자들의 권리라는 문제를 파레지아(parrhesia), 곧 진실을 말하기라는 윤리적 행위의 문제와 결부시키기 때문이다.[푸코의 파레지아 개념에 관해서는 그로 외 2006 및 심세광 2012 참조.] 푸코가 말하는 파레지아는 이중적인 조건을 지닌 것이다. 첫째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함을 함축하는 것이며, 둘째는, 나이나 사회적 위계, 서열 등의 차이를 무릅쓰고 상대방에 대해 솔직하게 발언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정치적 맥락에서 본다면 파레지아는 의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민회에서는 법 앞의 평등(isonomia)과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권리(isegoria)가 보장되어 있지만, 이러한 조건들만으로 파레지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발언자의 윤리적 결단을 함축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하여 일정한 입장을 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파레지아는 정치적 행위에는 항상 이미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윤리적 행위가 함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파레지아는 아마도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민다움(civilité)(이 개념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태원 2010 참조)의 푸코식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약화 및 위기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비단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급진 사회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이론가들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대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일부 비판 사회과학자들을 제외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과 대안의 모색을 수행하는 이론가들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하버마스 계열의 학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이론가들에게서 신자유주의 분석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푸코의 강점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금융 자본의 이데올로기나 경제 정책으로 환원하지 않고 새로운 통치 합리성을 형성하고 새로운 예속적 주체 생산 메커니즘을 산출하는 복합적인 통치 양식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훨씬 더 견고하고 뿌리 깊은 새로운 통치 유형이기 때문에 단순히 복지국가를 실현한다거나 금융 자본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으로 극복될 수 없으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의 발명이 필수적인 과제로 요청된다.

 

만약 푸코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신자유주의적 예속화 양식을 변혁할 수 있는 이러한 주체화 양식에 대해 좀더 온전한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푸코는 1979년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의 전개과정에 대해 분석한 뒤, 1984년까지 그가 사망할 때까지 다시 이 주제로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많은 푸코 연구자들이 남긴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대한 풍부한 분석을 통해 푸코의 작업이 지닌 강점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적 지배 양식 및 예속화 양식에 대한 분석을 넘어 이제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사고하는 데에도 푸코의 작업은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관계론적 권력론, 대항품행, 파레지아 같은 개념들은 아마도 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이론적 요소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이 글에서 보여주고자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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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12-05-2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balmas 2012-05-23 18:57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 관심 있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이세영 2012-06-2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태원이형, 좋은 논문 출력해갑니다.

balmas 2012-06-28 20:1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요.

이석 2013-01-1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유학중인 일본 근대 문학 전공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와 푸코를 동시에 검색하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은 글을 보고 아무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몇 글자를 올립니다.
비전공자여서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너무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종말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바깥의 정치"철학자들이 지닌 한계를 푸코가 ("지배"와 대비되는) 새로운 "권력"개념으로 어떻게 넘어섰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지에 관한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솔직히 저도 "지배"와 "권력"개념을 혼동하고 있었는데, 제가 접하지 못 했던 푸코의 저작들도 인용하시면서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자면, 현대 철학자들의 추상적인 이론과 말장난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전술적인 저항을 외치던 푸코에 대해 막연한 희망을 보고 있었는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언어화해주셔서 매우 통쾌했습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balmas 2013-01-11 00: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반갑습니다.^^
앞으로 좀더 구체화되어야 할 쟁점들이 많은데,
도움이 되셨다니 격려가 되네요.^^
앞으로 종종 들르세요.
 

푸코에 관한 글을 올린 김에 예전에 발표한 글을 한 편 더 올립니다. 2006년 [문학과사회] 가을호 (통권 75호)에 실린 글입니다.

양창렬 선생, 최원 선생, 푸코의 글 한 편과 함께 "생명권력"에 관한 특집으로 묶인 글입니다.

이 글 역시 [문학과사회] 지면에 실린 판본과 다소 다를 수 있으니, 인용이나 토론을 원하는 분들은

[문학과사회]에 실린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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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정치의 탄생: 푸코와 생명 권력의 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 정치적인 것, 곧 생물학적인 것, 신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다.”[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vol. III, Gallimard, 1994, p. 36.]

 

 

1. 머리말

 

[이하 푸코의 저작은 다음과 같은 약어로 표기할 것이다.

Dits et écrits vol. III → DE III

Histoire de la sexualité I, La Volonté de savoir, Gallimard, 1976;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 나남, 1990 → HS I

Technologies of the Self, ed. Luther H. Martin et al., Th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88; 󰡔자기의 테크놀로지󰡕, 이희원 옮김, 동문선, 1997 → TS

Les anormaux: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4-1975), Gallimard/Seuil, 1999; 박정자 옮김,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 AN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Gallimard/Seuil, 1997; 박정자 옮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동문선, 1998 → IFDS

󰡔주체의 해석학: 1981-1982년 강의록L'Herméneutique du sujet: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1-1982)󰡕, Gallimard/Seui, 2001 → HdS

󰡔정신의학적 권력Le pouvoir psychiatr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1973-74)󰡕, ed. Jacques Lagrange, Seuil/Gallimard, 2003. → PP

󰡔안전, 영토, 인구: 1977-1978년 강의록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Gallimard/Seuil, 2004 → STP

󰡔생명 정치의 탄생: 1978-1979년 강의록Naissance de la biopolit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Gallimard/Seuil, 2004 → NB

그리고 외국어 원문의 인용에서 국역본이 있을 경우 원문 쪽수를 먼저 쓴 다음 해당 국역본의 쪽수를 표시해두겠다. 하지만 번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별다른 지적 없이 자유롭게 수정했다.]

 

철학자 또는 이론가로서 푸코의 탁월함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예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그 문제들 속에서 우리가 푸코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스타일, 글쓰기의 스타일이자 사고의 스타일이면서 동시에 윤리의 스타일이기도 한 그 독특한 스타일, 따라서 푸코의 고유한 실존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일정한 틀에 따라, 익숙해진 모형에 따라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순간 푸코는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혀 다른 문제, 전혀 상이한 분석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비판이나 찬양에서 빠져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가 “다르게 사고하기”를 철학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푸코의 사고의 방식이자 존재의 방식, 곧 푸코가 실행했던 독특한 주체화의 기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나의 작업들 각자는 나 자신의 전기의 일부입니다.” TS, p. 11.]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존재함으로써 바로 그 자신으로서 실존하는 푸코의 실존의 미학, 자기 통치의 기술은 권력에 대한,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가 보기에 생명 권력 또는 생명 정치라는 개념[푸코는 생명 권력과 생명 정치를 명시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고 있다. 이러한 혼용에서 어떤 사람들은 푸코의 생명 권력론의 한계를 보기도 하며(예컨대 J. Rancière, “Biopolitique ou politique?”, Multitudes no. 1, 2000 참조), 몇몇 주석가들은 이 두 개념을 좀더 정확히 구별하려고 시도한다. 특히 Maurizio Lazzarato, “Du biopouvoir à la biopolitique”, Multitudes no. 1, 2000; Judith Revel, “La naissance littéraire de la biopolitique”, in Philippe Artières ed., Michel Foucault, la littérature et les arts, Kimé, 2004 참조.]은 푸코의 독창성, 철학의 본질을 다르게 사고하기로 규정하는 그의 관점의 진면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개념 중 하나다. 생명 정치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출현했으며, 또한 사람들이 좀더 엄밀한 분석과 발전을 기대하던 곳에서 갑작스럽게 중단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푸코 자신에 의해 더 이상 이론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이 개념 또는 문제설정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한 분야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호모 사케르󰡕 연작(連作)에서 생명정치 개념을 서양 정치 구조의 핵심으로 제시한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이나 󰡔제국󰡕에서 권력의 새로운 지배구조와 그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생명 권력과 생명 정치 개념을 통해 해명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물론이거니와 사회학이나 정치학의 여러 분야에서, 그리고 생명공학의 발전에 대한 과학기술론적 고찰에서도 이 개념은 주요한 이론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 자신도 예견하지 못한 효과와 변용들을 낳을 수 있는지 여부를 개념적 독창성을 평가하는 한 가지 기준으로 볼 수 있다면, 생명 정치는 푸코의 사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개념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검토해보려는 것은 생명 권력/생명 정치 개념이 푸코의 작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으며, 푸코의 사상, 특히 그의 후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 이 개념이 왜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푸코가 제시하는 생명 정치 개념의 의미가 무엇이며(2절), 이 개념이 70년대 후반 푸코 사상의 위기의 맥락에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3절). 그 다음 생명 권력 개념과 규율 권력 개념의 차이는 무엇이며, 이러한 차이가 푸코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룰 것이다(4절). 요컨대 생명정치의 이론적 중요성은, 이미 완성되어 적용되기만 하면 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 곧 새로운 상황과 문제들을 분석함으로써 정정되고 변용되고 확산되는 그것의 능력에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 글에서 소묘해보려는 주요 논점이다.

 

2. 생명 권력의 의미

 

생명 권력 또는 생명 정치 개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이 개념이 일차적으로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주목을 끈 것은 푸코라기보다는 오히려 조르지오 아감벤의 작업 때문이다. 아감벤은 1995년 출간된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서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1976)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푸코의 개념을 독창적으로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푸코에 맞서) 활용하여 생명 권력은 서구의 정치 구조 속에 항상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며,[G. Agamben, Homo Sacer: Il potere sovrano e la nuda vita, Einaudi, 1995; Homo Sacer: Sovereign Power and Bare Life, trans.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호모 사케르󰡕에 대한 소개로는 김태환, 「예외성의 철학: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통치 권력과 벌거숭이 삶󰡕」,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를 참조하고, 아감벤과 푸코의 생명 권력론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번 호에 수록된 양창렬의 글을 참조하라.] 󰡔호모 사케르󰡕가 세계적인 화제작이 되면서 아감벤의 테제만이 아니라 생명 권력에 대한 푸코의 언급이 새삼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 뒤 1997년 프랑스에서 푸코의 1976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출간되고 이 강의에서 생명 정치에 관한 푸코의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생명 권력 개념은 후기 푸코 사상의 주요 원천 중 하나로 각광받게 되었다.

 

생전에 발표된 저작에서 이 개념은 매우 드물게 쓰였으며,[이 개념은 1974년 브라질에서 강연했던 「사회 의료의 탄생」이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글은 1977년 포르투갈어로 번역, 발표되었지만, 1994년 󰡔말과 글Dits et écris󰡕에 수록되어 출간되기 전까지는 푸코 연구자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1976) 마지막 장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논의되었다. 여기서 푸코는 생명 권력을 “주권자le souverain” [국역본에서는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le souverain”을 모두 “군주”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푸코 권력 이론의 중요한 개념적 구별을 충실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푸코는 근대 권력의 유형을 주권적 권력과 규율 권력, 생명 권력으로 구별하고 있다. 󰡔감시와 처벌󰡕에서는 주권적-법적 권력에서 규율 권력으로의 이행을 분석하는 것이 주요 주제였다면, 󰡔성의 역사󰡕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두 가지 권력 유형과의 차이점을 해명하면서 생명 권력 또는 통치성의 메커니즘과 기술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권력 유형은 연대기적인 순서를 뜻하지는 않는다. “La gouvernementalité”, in DE III; 「통치성」, 정일준 편역,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새물결, 1994 참조.]의 생살여탈권과 대비하면서 규정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주권자의 권한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죽게 만들거나faire mourir 살게 내버려두는laisser vivre”(HS I, p. 178/146쪽―강조는 푸코)[이하 별다른 지시사항이 없는 한 모든 강조는 원문의 것이다.] 권한으로 규정될 수 있다. 곧 주권의 관점에서 생명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며, 문제는 이러한 자연적인 생명을 가진 신민들을 죽음에 대한 위협을 통해 복종시키는 것이다. 또는 고전적인 사회계약론에 의거한다면(푸코는 홉스를 원용한다),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이행하게 만드는 근본 동기는 자연상태에 만연한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있기 때문에, 주권자는 사회계약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자연 속에서 지니고 있던 삶과 죽음의 권리를 모두 넘겨받게 된다.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생살여탈권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성이다. 곧 주권자, 군주가 신민들에 대해 보유하고 있는 권리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권리, 살게 해주는 권리가 아니라 죽음의 권리, 죽게 만들 수 있는 권리이며, 이는 칼로 상징된다. 이 때문에 주권적 권력은 “징수의 수단, 갈취의 메커니즘, 부의 일부를 전유할 권리, 피지배자들로부터 생산물, 재산, 용역, 노동, 피를 강제로 빼앗을” 수 있는 권한으로 표현된다.

 

반면 푸코가 제시하는 생명 권력은 “살게 만들거나faire vivre 죽음 속으로 쫒아내는rejeter dans la mort”(HS I, p. 181/148쪽) 또는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IFDS, p. 214/279쪽) 권한으로 표현된다. 이는 주권자의 권한을 나타내는 표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심오한 변화를 시사한다. 우선 주권자의 권한에서는 “살기vivre”가 “내버려두기”의 대상인 데 반해 생명 권력에서는 “만들기”의 대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삶이 내버려두기의 대상이라는 것은 주권 권력에서 삶, 생명은 자연적인 것으로, 권력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주어진 것으로, 권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리 전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의 위세, 권력의 크기는 자연적으로 실존하는 생명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목숨을 제거하는 것, 죽이는 것으로 표현되며, 이 때문에 주권 권력은 죽임의 권력이다. 반면 생명 권력에서 삶, 생명이 만들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 권력에게 삶, 생명은 더 이상 주어진 것, 자연적인 것, 따라서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삶, 생명이야말로 권력이 관여하고 조절하고 증대시키고 확산시켜야 할 일차적인 대상이 된다.

 

다른 한편 주권 권력에게 “죽기”는 “만들기”의 대상인 반면, 생명 권력에서는 “내버려두기” 또는 “쫒아내기”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내버려두기”란 더 이상 권력이 죽음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 주권 권력과 같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권력의 위세를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죽음은 한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떨어지고, 권력은 죽음이 아니라 사망률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권력의 경계 바깥에 놓여 있는 것, 방치되는 것, 또는 쫒겨나는 것이 된다.

 

따라서 18세기 말-19세기 초에 발생한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자의 권한에서 생명 권력으로의 이행, 곧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으로의 이행에서 푸코는 근대 사회의 성립의 문턱을,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발견한다. 생명 권력이 근대성의 문턱을 이루는 이유는 생명 권력에 이르러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살아 있는 존재자로서 그의 생명 자체를 문제 삼는”(HS I, p. 188/154쪽) 정치 속에서 실존하는 동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정치사상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 곧 인간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다른 동물들과 동일하지만 다른 동물들과 달리 정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며, 바로 이것이 인간을 특징짓는 종차(種差)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푸코는 18세기 말 등장한 생명 권력에 의해 인간의 생명은 더 이상 정치 바깥에 있는 자연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 권력의 조절 대상이 되었으며, 바로 이 점이 근대적 인간의 고유성을 이룬다고 본다.[반면 [호모 사케르] 연작의 기본 테제 중 하나는 단지 근대 사회만이 아니라 서양 고대 사회부터 생명은 항상 정치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정치는 항상 생명 정치였다는 점이다. 푸코와 아감벤의 생명 정치론에 대한 비교는 양창렬의 글을 참조.]

 

다른 한편 푸코는 생명 권력을 자본주의 발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한다. 우선 생명 권력은 개인 및 개인의 신체를 유순하면서도 생산력이 뛰어난 존재자로 만들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봉사하게 만든다. 󰡔감시와 처벌󰡕이 탁월하게 보여주었듯이 이는 특히 규율 기술의 작업인데, 규율 기술은 공장만이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같은 사회의 다양한 제도들 내부에서 다수의 개인들을 대상으로 감시와 훈련, 이용과 처벌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푸코의 분석은 [자본] 1권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노동일 분석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좀더 확장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규율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 대한 분석과 상당 부분 중첩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Warren Montag, “The Soul is the Prison of the Body: Althusser and Foucault 1970-1975”, Yale French Studies, Fall 1995 참조.] 더 나아가 생명 권력은 단지 개인 및 개인의 신체만이 아니라 종(種)으로서의 인구의 조절을 추구한다. 이것이 좀더 엄밀한 의미에서 생명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이 점과 관련하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성의 역사 1권]은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곧 전자의 경우 주권 권력과 규율 권력, 생명 권력 사이에는 연대기 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선형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규율 권력은 주권 권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시된 권력의 메커니즘이며, 역으로 생명 권력은 개인 및 개인의 신체의 규율에 국한된 규율 권력의 한계를 넘어서 종으로서의 인구 전체를 다루기 위한 권력으로 제시된다. 반면 󰡔성의 역사 1권󰡕에서는 한편으로 주권 권력과 다른 한편으로 규율 권력/생명 권력 사이의 대립 관계가 두드러지며, 규율 권력은 생명 권력의 부분으로 포섭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안전, 영토, 인구󰡕에 가면 세 가지 권력 사이의 관계를 연대기적인 관계로 보는 관점이 명시적으로 거부되며, 그 대신 이것들 사이의 관계는 “인구를 일차적인 표적으로 하고 안전장치를 본질적인 메커니즘으로 삼는, 군주권-규율-통치적인 관리의 삼각관계”(STP, p. 111; 정일준 편역, 앞의 책, 44쪽도 참조)로 제시된다. 단 여기서는 생명 권력 대신 통치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출생과 사망의 비율, 재생산의 비율, 그리고 한 인구의 생식력 등의 과정의 총체”(IFDS, p. 216/281쪽)로, 생명 권력은 이러한 인구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대상으로 조절하려고 시도한다. 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이러한 조절이 필요한가? 푸코는 “전염병”과 구별되는 “풍토병endémie”이라는 명칭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생명 정치를 통해 안정된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지 생식 능력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률 및 질병에 걸릴 확률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질병은 중세와 근대 초에 유럽을 뒤흔든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아니라 풍토병, 곧 “한 인구 안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며, 안정된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질병들의 “형태와 성격, 확장, 지속, 강도”(IFDS, p. 217/281-82쪽) 등을 고찰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질병으로 인해 치료비 부담이나 노동일의 결손이 일어나 생산력이 감소하게 되며, 이는 다시 경제 전체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사회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생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규율 권력을 통해 개인들 및 그들의 신체의 생산력과 순응성을 길러내는 일 못지않게 인구 전체를 조절하는 것 역시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푸코는 18세기 말 이후 공중보건을 주로 담당하는 보건의학이 생겨나고, 보험 및 사회보장제도가 등장한 것, 그리고 도시환경이 정비되기 시작한 것에서 생명 정치의 구체적인 모습을 발견한다.[18세기 말 이후 서양 사회의 의료화 문제에 관해서는 이번 호에 수록된 「의료의 위기인가 반의료의 위기인가」 참조. 또한 이 글과 더불어 브라질에서 강연한 다른 두 편의 글도 역시 참조하라. “La naissance de la médecine sociale”, “L'incorporation de l'hôpital dans la technologie moderne”, in DE III. 다른 한편 19세기 이후 보험 및 사회보장제도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François Ewald, L'État providence, Grasset, 1986 및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Seuil, 1994; 󰡔사회보장의 발명󰡕 주형일 옮김, 동문선, 2005를 각각 참조.] 이런 의미에서 푸코의 생명 권력 개념은 복지국가, 또는 (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민 사회 국가état national social”의 전개 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개념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푸코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성의 역사 1권]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은 18세기 말 등장한 생명 권력이 보여주는 역설이다. 다시 말해 “생명을 과대평가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생명의 기회를 늘리고, 생명에 가해질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거나 또는 그 손실을 보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생명 권력이 현대의 주요한 권력의 형태를 이루고 있음에도 (또는 오히려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원자폭탄과 같이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권한만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죽이는 주권이 작동”(IFDS, p. 226/ 291쪽)하는 권력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는지, “어떤 인구를 일반적인 죽음에 직면하게 만드는 권력은 또 다른 주민에게 생존의 유지를 보증하는 권력의 이면”(HS I, p. 180/ 147쪽)이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해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의록에서는 이러한 역설을 국가 인종주의 개념을 통해 해명하는 반면,[󰡔“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제시된 국가 인종주의에 관해서는 이번 호에 수록된 최원의 글을 참조. 󰡔비정상인들󰡕에서 푸코는 인종주의,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전개된 네오 인종주의의 뿌리를 정신의학에서 찾고 있다. 사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의 제목은 비정상인들의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 했던 19세기 말 정신의학자들의 주장에서 유래한다.] [성의 역사 1권]에서는 역설의 원인을 명시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다만 생명 권력에 내재한 역설을 부각시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더 이상 주권이라는 법적 존재가 아니라 주민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다. 민족 말살이 정말로 근대 권력의 꿈이라면, 그것은 낡은 죽일 권리가 오늘날 재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이 삶, 인류, 민족, 그리고 대규모적인 인구 현상의 위상에 자리를 잡고 행사되기 때문이다.”(HS I, p. 180/148쪽)

 

생명 권력/생명 정치 개념이 비교적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 두 개의 텍스트 사이의 차이점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역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코의 생명 권력/생명 정치 개념의 역설은 이 개념이 어디에서도 그 자체로 주제화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성의 역사 1권]에서 이 개념은 생명과 정치의 관계를 독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라 “성적 장치”의 특수성을 해명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로서 등장하고 있다.[“정치적 쟁점으로서 성의 중요성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생명에 근거를 둔 모든 정치적 기술이 전개되는 내내 성은 두 중심축[신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의 접합점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HS I, p. 191/156쪽.] 그리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는 “니체의 가설” 아래 국가 인종주의의 전개 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개념 장치로 도입되고 있다. 더 나아가 푸코는 1977-78년 강의록인 󰡔안전, 영토, 인구󰡕 첫머리에서 그 해의 연구 주제는 “생명 권력”에 대한 탐구라고 말하지만(STP, p. 3), 2월 1일 강의부터는 새로운 주제, 곧 “통치gouvernement”라는 주제가 전면에 등장해서 마지막 강의까지 중심적인 논의 대상이 된다.[특히 2월 1일 강의(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 강의록의 이본(異本))는 1978년 이탈리아어로 번역되고 다시 1979년 영어로 번역된 뒤, 1990년대에 영국의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 그룹을 중심으로 영미 사회과학계에서 통치의 문제설정이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Governmentality”, in Graham Burchell et al. eds.,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 참조.] 또한 1978-79년 강의록인 󰡔생명 정치의 탄생󰡕에는 강의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생명 정치가 직접적인 주제로 등장하지 않고, 대신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통치 기술에 대한 분석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생명 권력, 생명 정치라는 개념이 푸코의 작업 과정에서 한때 등장했다가 사라진, 또는 다른 주제로 대체된 부차적이고 일시적인 주제라는 것을 뜻할까? 우리가 보기에 생명 정치 개념이 어디에서도 직접적인 논의 주제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개념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의의를 더 두드러지게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생명 정치는 일종의 부재하는 중심으로서 다른 개념들, 다른 분석 영역들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3. 푸코의 위기

 

이 점을 좀더 정확히 해명하기 위해서는 푸코의 작업에서 생명 정치 개념이 등장하게 된 맥락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후반,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가 출간된 1976년 이후의 시기는 푸코 사상의 중요한 전환기, 또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푸코의 위기의 시기였다. 푸코는 그 자신이 “나의 첫 번째 책”이라고 불렀던 󰡔감시와 처벌󰡕(1975)을 출간한 뒤, 총 6권으로 된 󰡔성의 역사󰡕의 출간 계획을 세우면서 먼저 1권인 󰡔앎의 의지󰡕를 그 다음해에 출간하지만, 그 이후 󰡔성의 역사󰡕 2권과 3권은 1984년에야 출간된다. 8년이라는 간격은 푸코가 작업한 기간 동안 시간상으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성의 역사󰡕 1권과 2ㆍ3권은 다루는 시기에서(1권은 17세기-18세기, 2, 3권은 고대 희랍과 로마로) 그리고 그 주제상으로도(1권은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의 억압 가설에 대한 비판을 다루는 반면, 2, 3권은 성적 쾌락을 둘러싼 윤리적 실천에 대해 고찰)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푸코 사상의 위기의 시기이자 전환의 시기로 불릴 만하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은 푸코가 이 시기에 수행했던 작업들, 그의 사상적 고투와 갈등, 변모 과정을 좀더 정확히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푸코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첫머리에서 담담하게, 하지만 명료하게 자신이 직면한 이 위기에 관해 진술하고 있다. 그 위기는 무엇보다도 70년대 초, 즉 󰡔담론의 질서󰡕(및 「니체, 계보학, 역사」) 이래 푸코가 수행해왔던, 이른바 권력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가 직면한 위기였다. 푸코가 몇 차례에 걸쳐 지적하듯이 70년대 전반기의 계보학 연구는 근대 자유주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이중의 비판 대상을 겨냥하여 수행되었다. 이 두 가지 사조는 대립적인 경향을 띠고 있지만, 또한 “권력 이론에서 “경제주의””(IFDS, p. 14/31쪽)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공통점으로 지니고 있었다. 곧 자유주의의 경우 권력을 모든 개인이 지닌 소유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양도를 통해 주권이 형성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권력을 소유와 교환, 유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경제주의적이라면, 마르크스주의는 정치권력의 존재 이유와 형식, 기능의 원칙을 경제 안에서 발견한다는 점에서 역시 경제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이 점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Thomas Lemke, “Foucault, Government, and Critique”, Rethinking Marxism, vol. 14, no. 3, Fall 2002 참조.]

 

이러한 경제주의에 맞서 푸코는 󰡔감시와 처벌󰡕과 󰡔앎의 의지󰡕에서 관계론적 권력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점에 따라 형벌 제도의 변화 과정이나 성적 장치들의 구성과 변모에 대해 분석했다. 관계론은 크게 세 가지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권력 분석의 방법론에 대한 푸코의 논의로는 특히 󰡔감시와 처벌󰡕 1부 1장, 󰡔성의 역사󰡕 4장 2절,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월 7일 및 1월 14일 강의 참조.] 첫째, 관계 이전에 존재하는 관계의 원초적인 대립항(예컨대 신민 대 군주, 개인 대 국가, 노동자 대 자본가 등)에서 출발하지 말고 그 항들을 규정하는 관계로부터 출발할 것. 둘째, 권력 이전에 존재하는 자유로운 또는 자율적인 주체나 자기 자신의 소유자로서 개인을 상정한 가운데 권력을 분석하지 말고, 주체 또는 개인의 구성을 근대 권력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간주할 것.[푸코에게서는 명확히 나타나지 않지만 여기서 “주체”와 “개인”은 동일한 내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에티엔 발리바르를 따라서 말하자면, 주체가 루소-칸트로 이어지는 대륙 철학 전통에서 공동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제시된 개념이라면, 개인은 소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영미 정치철학, 특히 (홉스 및) 로크에서 발원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Balibar, “Is a Philosophy of Human Civic Rights Possible?”, The South Atlantic Quarterly vol. 103, no. 2/3, 2004 참조.] 따라서 주체 또는 개인을 원초적인 존재자로 파악하지 말고 예속화 메커니즘의 효과로서 이해할 것. 셋째, 권력을 어떤 중심에서 파생되고 조직되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고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서로 교차하고 준거하고 접근하거나 대립하는, 다양하고 차별적인 힘들의 관계로 파악할 것.

 

푸코에 따르면 기존의 권력론에 대한 이러한 비판 또는 해체는 두 가지 효과를 낳았다. 그 하나는 포괄적이며 전체적인 이론, 따라서 실제의 투쟁에서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론(마르크스주의나 정신분석)을 억제하고 비판의 국지성을 살려낸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앎의 회귀”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예속된 앎”의 반항”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푸코가 말하는 예속된 앎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우선 기능적이고 체계적인 전체 안에 들어 있으나 은폐되어 있던 앎을 뜻하며, 박학을 통한 비판 작업만이 이러한 앎들을 드러낼 수 있다. 그 다음 이 앎은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앎 또는 비개념적 앎들로 폄하된 일련의 앎들”(IFDS, p. 9/ 24쪽)을 가리킨다. 곧 의학이나 범죄학 등에 비해 주변적인 앎, 정신의학 대상자의 앎이나 환자의 앎, 간호사의 앎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중적 성과는 정확히 푸코가 1968년 이후 이른바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방법론적 전회를 하며 추구했던 이론적ㆍ실천적 목표와 부합하는 것이다. 그는 에밀 졸라나 사르트르 등이 대변하는 보편적 지식인, 곧 어떤 보편적 이상이나 가치의 이름 아래 권력의 억압과 폭력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투쟁들에 관여하는 지식인은 현대 사회에서 유효한 진리 효과, 정치적 효과를 산출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지식인은 “특수한 지식인intellectuel spécfique”(DE III, p. 111), 곧 특수한 영역에 대한 특수한 전문적인 앎을 기반으로 하여 구체적인 투쟁들에 관여하는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인은 더는 억압되고 지배받는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는, 그들을 대신하여 권력에 맞서는 지식인일 수 없으며, 오히려 권력의 그물망에 따라 규격화되고 갇혀 있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앎을 깨닫고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식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이러한 작업이 문제가 되는가? 무엇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불연속성의 그토록 멋진 이론 [...] 을 왜 우리는 더 계속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나는 정신의학이나 성이론 등에 관한 어떤 소소한 주제를 택하여 그것을 더 발전시키지 않는 걸까?”(IFDS, p. 12/ 28-29쪽) 그것은 그가 처음에 계보학(및 그 이전에 고고학)을 통해 목표로 삼았던 것과는 다른 정세, 다른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어떤 “세력 관계”가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계보학을 통해 밝혀내고 풀어내고 유통시킨 요소들, 예속에서 “회귀한 앎들”이 “통합적 담론들에 의해 다시 코드화되고, 다시 식민상태로 떨어질 위험”, 또는 이처럼 되살려낸 단편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손으로 우리식의 통합적 담론을 하나 구축할 위험”이다.

 

따라서 푸코가 직면한 위기는 얼마간 성공을 거두었던, 일종의 해체 작업이 직면한 위기였다. 규율 권력, 항상 특수한 영역에서 특수한 지식을 통해 특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규율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박식한 앎과 국부적인 기억”을 결합한 계보학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이는 이중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첫째, 특수한 지식인으로서 푸코가 70년대 전반까지 수행한 작업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 규율 권력, 규율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규율 권력 이외의 또다른 권력의 메커니즘, 곧 생명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규율 권력과 생명 권력은 서로 동질적인 것도 서로 대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상이한 영역에서 상이한 목표를 위해 상이한 기술을 통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두 가지 권력의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계보학 작업이 좀더 충실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이 두 번째 권력의 유형, 곧 생명 권력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불충분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점은 권력 안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규율 권력이 규격화되고 정상화된 개인들을 제작하여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규율 권력에 대한 저항은 무엇보다 규격화에 대한, 정상화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그러나 규격화/정상화에 대한 저항은 충분한 것인가? 우선 규격화/정상화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으로 특수한 규율 권력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왜냐하면 규율 권력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개인들, 주체들이란 없으며, 규율 권력을 통해서만 비로소 개인들과 주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격화/정상화에 대한 저항은 규율 권력 내부에서 규율 권력이 개인들, 주체들을 생산하기 위해 설정한 “규준들normes”에서 벗어나는,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실천하고 행위하는 데서 성립한다.[이 점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Guillaume Le Blanc, La pensée Foucault, Ellipses 2006, 1장을 참조.] 더 나아가 각각의 규율의 영역들에서 고립되어 있는 규율된 주체들,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여 규율들의 연관망에 저항하는 “우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소통의 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이러한 경험들, 이러한 고립된 반역들이 공통의 지식과 상호 조정된 실천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 DE II, p. 176.] 그리고 바로 여기에 특수한 지식인들의 역할이 있다. 특수한 지식인들은 규율 권력 내부에 있는 주체들이 (규율 권력 지식이 아니라) 규율 권력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고,[이 지식은 각각의 주체들이 이미 암묵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조직하고 다른 영역의 개인 주체들과 소통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한다.[푸코가 주창하여 설립한 “감옥에 관한 정보모임Group d'information sur les prisons”의 창설과 활동은 바로 이러한 특수한 지식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임의 결성 선언문과 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DE II, pp. 174 이하 참조.]

 

하지만 권력이 특수한 개인들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리고 각각의 영역에 고유한 규준에 따라 개인들을 규격화/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이고 익명적인 규준들에 따라 전체 인구를 조절하고 정상화하려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규율 권력에 저항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러한 권력의 작용에 저항할 수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특수한 규율 권력의 영역 안에서 형성된 개인 주체들이 아니라 인구 전체의 차원에서 규격화/정상화의 작용에 저항하는 주체를 상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규율 권력에 대한 분석의 성과들을 포기하지 않고 생명 권력이라는 새로운, 또 다른 유형의 권력의 작용에 맞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이러한 질문들이 70년대 전반기까지 푸코가 수행했던 계보학 작업이 직면한 위기였으며, 생명 권력에 대한 작업은 이러한 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한 모색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규율 권력과 생명 권력의 차이

 

규율 권력과 생명 권력 개념은 몇 가지 점에서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양자는 권력에 대한 관계론적 관점을 방법론적 기초로 삼아 분석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노선 위에 있다. 또한 두 개념은 이전까지 정치의 영역이라고 간주되지 않았던 영역을 정치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또 그곳에서 정치 권력의 핵심 메커니즘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규율 권력 개념이 학교, 공장, 병원, 감옥 같은 곳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권력(곧 규율 권력)이 형성되고 정련되어 확산되는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나 생명 권력 개념이 출생율과 사망률, 수명 등과 같은 인구에 관한 통계학적 분석에서 19세기 이후 서양 사회를 조절하는 주요 권력의 징표들을 찾는 것에서 이를 잘 살펴볼 수 있다.

 

반면 양자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점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차이점들은 왜 푸코가 규율 권력에 대한 분석에서 생명 권력에 대한 분석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통치의 문제설정으로 이행하게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첫째, 두 가지 권력은 우선 대상에서 차이가 난다. 17세기-18세기에 걸쳐 등장한 규율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대상으로 삼아, 감시와 훈련, 이용 및 처벌이 가능한 순종적인 신체, 유순한 개인들로 해체하는 권력이라면, 18세기 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생명 권력은 개체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간 또는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권력이다.

 

이러한 대상의 차이는 두 가지 권력의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동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차이에서 유래한다. 규율 권력이 목표로 삼는 것은 정치권력에 순종하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개인들을 “제작해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규율 권력의 목표는 다양한 규율의 기술들을 통해 예속적 주체,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생명 권력은 더는 개인들 및 그들의 신체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조절과 관리를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인들의 규율과 예속이 아니라 인구 전체의 생명의 보존과 증진, 강화가 문제가 되며, 보건 의료의 시행과 사회 보장 제도의 도입, 각종 인구 정책의 도입 등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는 구체적인 권력의 기술이다.

 

세 번째 차이점으로는 규율 권력에 대한 분석과 달리 생명 권력에 대한 논의에서는 국가의 활동, 국가의 작용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감시와 처벌󰡕에서 국가는 권력 관계 분석에서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는 권력 관계를 올바르게 분석하기 위한 주요 장애물로만 인식될 뿐, 독자적인 실재성을 지닌 권력 관계로 파악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서 국가를 분석하기 위한 주요 개념 장치로 제안한 “국가 장치appareil d'état” 개념에 대한 불신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국가장치라는 통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추상적이어서 신체 및 개인들의 행위, 몸짓, 시간에 대해 행사되는 이 직접적이고 미세하며 모세관 같은 권력들을 가리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 장치는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해명하지 못한다.”[M. Foucault, PS, p. 17. 또한 “Questions à Michel Foucault sur la géographie”, in DE III도 참조.]

 

하지만 생명 권력/생명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국가는 권력의 주요 집행자로 등장한다. 푸코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3월 17일 강의 첫머리부터 이 점을 명시한다. “19세기의 기본 현상 중 하나는 소위 생명에 대한 권력의 관심인 것 같다. 권력이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장악하는 것, 생물학의 국유화라고나 할까, 아니면 적어도 생물학의 국유화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으로의 경도 현상이다.”(IFDS, p. 213/277쪽) 또한 푸코가 인종주의를 “국가 인종주의”로 제시하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사실 각각의 개인이나 이러저러한 특수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종으로서 인구의 생명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작용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푸코가 권력 분석에서 중심과 주변, 상부와 하부의 모델, 따라서 소유의 모델을 다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국가라는 집행자를 더 이상 권력의 주체로, 지배의 주체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계보학적 관점에서 국가 개념을 개조하는 것이다.[푸코는 2년 뒤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한 강의에서 이러한 방법론적 논점을 좀더 엄밀히 표현하고 있다. NB, pp. 78 이하 참조.]

 

그런데 이렇게 되면 푸코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또는 조심스러운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푸코의 입장은 알튀세르의 관점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의학 권력󰡕에 관한 강의로부터 불과 2년 뒤에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장치”라는 용어, 심지어 “국가 장치”라는 용어가 긍정적으로 쓰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제도들은 예컨대 경찰과 같은 장치들에서 볼 수 있듯이 손쉽게 국가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경찰은 국가 장치이며 동시에 규율 장치un appareil de discipline et un appareil d'état다.”(IFDS, p. 223/ 288쪽)

 

하지만 푸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77-78년 강의록인 󰡔안전, 영토, 인구󰡕에서는 국가에 대한 분석에서 “통치gouvernement” 또는 “통치성gouvernementalité” 개념을 도입한다. 통치라는 용어는 서양 정치철학의 전통에서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것이지만,[특히 중세 정치철학에서 근대에 이르는 통치 개념의 역사에 관해서는 Michel Senellart, Les arts de gouverner, Seuil, 1995 참조.]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16세기 반마키아벨리 저술가였던 기욤 드 라 페리에르Guillaume de La Perrière가 도입한 통치 개념이다. 그의 통치 개념은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그는 통치를 군주와 신민의 관계에 제한하지 않고, 가족, 수도원, 학교 등과 같은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에 적용되는 다양하고 내재적인 “기예”로 보았다. 둘째, 그는 마키아벨리와 달리 통치의 핵심 문제를 영토의 문제로, 곧 군주가 자신의 영토를 지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신민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는 능력의 문제로 이해하지 않고, 인구 또는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의 복합체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기예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코는 18세기 말 이후 서양 사회에 확산된 통치의 기술은 라 페리에르가 제시한 두 가지 개념적인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본다.

 

통치 개념의 도입은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이는 생명 권력 개념에 의해 권력 분석의 주요 대상이 된 국가를 계보학의 관점에서 다루기 위한 푸코의 의도를 대변해준다. 사실 푸코가 󰡔성의 역사 1권󰡕이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제시한 생명 권력이나 생명 정치에 대한 분석은 국가를 주요 집행자로 제시하고, 생명 권력이 작동하는 다양한 영역들을 예시하고 있지만, 국가가 권력의 장치로서 기능하는 구체적인 기술 또는 “기예”에 관해서는 충분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통치 또는 통치성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권력의 기술을 해명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안전, 영토, 인구󰡕 및 󰡔생명정치의 탄생󰡕의 편집자인 세넬라르가 생명 권력 개념과 통치 개념을 대체의 관계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M. Senellart, “Situation des cours”, in STP, p. 399.] 둘째, 이 개념은 우리가 앞서 지적했던, 생명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생명 권력 개념이 그 이전까지의 푸코의 작업에 대해 제기하는 난점은 그것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규율 권력과 달리 생명 권력은 개인 주체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구에 대해 작동하며, 그것이 제시하는 규준 역시 집합적이고 익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코가 도입한 통치라는 개념은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푸코는 「주체와 권력」이라는 글[이 글은 허버트 드레퓌스와 폴 레비나우의 저서에 부록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Hubert Dreyfus & Paul Rabinow, Michel Foucaul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주체와 권력」, 정일준 편역, 앞의 책.]에서 그때까지 자신의 작업을 세 가지로 구별하고 있다. 첫째는 스스로에게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질문 양식이고(이른바 고고학적 작업), 둘째는 “주체의 대상화”, 곧 미친 자와 정상인 자, 병자와 건강한 자, 범죄자와 착한 소년들을 구별하는 실천에 관한 분석이며, 셋째는 인간이 자신을 주체로 전환시키는 양식에 관한 연구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연구의 일반적 주제는 “권력이 아니라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예속화assujettissement/sujétion 양식과 주체화subjectivation 양식의 갈등적인 과정에서 산출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기를 변형시켜나가는 주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규율 권력에 대한 분석, 특히 󰡔감시와 처벌󰡕이나 󰡔비정상인들󰡕에서 근대 규율 권력이 어떻게 개인 주체들을 예속적 주체로 생산해내는지 분석한 반면, 생명 권력/생명 정치 개념이 도입된 이후 말년의 몇몇 글에서는 예속적 주체들, 규율된 주체들이 생산되는 예속화 양식과 구별되는 주체화 양식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푸코가 제시하는 주체화 양식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에게서 권력은 관계론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두는 게 좋다. 하지만 권력이 관계론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앞서 간단히 지적했던 것처럼 반드시 모든 주체가 예속적 주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권력을 관계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권력의 기술에 따라 예속적인 주체가 산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이전에, 권력의 작용 속에는 항상 이미 저항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는 것, 또는 예속적인 주체는 항상 이미 그 예속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계로서의 권력은, 고착된 상태의 권력 관계, 곧 지배와 구별되며, 그 자체 안에 항상 저항과 자유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저항과 자유 역시 관계론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다시 말해 예속과 지배가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저항과 자유 역시 관계들로 구성된다.

 

다시 앞의 논의로 돌아간다면, 저항의 문제, 규격화/정상화의 작용에 대한 반항의 문제와 관련하여 생명 정치와 통치성의 개념은 두 가지의 상이한, 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푸코는 후기에 씌어진 「반역하는 것은 무익한가Inutile de se soulever?」라는 짧은 글에서 생명 정치의 관점에서 “반역” 또는 “봉기”의 가능성을 제기한다.[DE III, pp. 790-94.] 푸코는 “반역”의 의미를 역사적인 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와의 구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가능성 자체로 이해한다. 그런데 푸코에게 이러한 가능성은 바로 “생명”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떤 한 사람, 한 집단, 소수 집단이나 민족 모두가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그가 부정의하다고 판단하는 권력의 면전에서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운동, 이 운동은 내가 보기에는 제거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권력도 이를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획득되거나 요구된 모든 형태의 자유,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권리는 [...] 분명 여기에 자신의 궁극적인 고정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자연권”보다 더 견고하고 더 가깝다.(DE III, pp. 790-91)

 

이 구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먼저 푸코는 여기서 권력과 생명, 또는 자신의 목숨을 무릅쓰는 어떤 생명체들을 대비시키고 있다. 전자의 권력이 규격화/정상화하는 권력, 규율 권력이자 생명 권력이라면, 후자의 생명의 운동은 이러한 규격화/정상화에 저항하는 생명체에 고유한 규준성normativité의 표현(캉길렘의 의미에서),[하지만 이는 또한 스피노자, 푸코에게도 공통적이다. P. Macherey, “Pour une histoire naturelle des normes”, in collectif, Michel Foucault philosophe, Seuil, 1988; Guillaume Le Blanc & Pascal Sévérac, “Spinoza et la normativité du conatus”, in Jacqueline Lagrée ed., Spinoza et la norme, PUPC, 2001 참조.] 또는 일종의 생명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생명체의 규준성은 모든 권리의 궁극적인 기반이 된다. 다시 말해 반역 내지 봉기의 운동은 자연권이나 인권 같은 초월적인 규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정상화에 저항하는 생명체에 고유한 규준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생명의 규준성은 항상 역사 속에서 발현되고 역사에 내재하지만, 동시에 이러저러한 역사적 사건들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 초월적이기도 하다. 이는 곧 아무리 강력한 권력일지라도 온전히 제거해버릴 수 없는 저항의 가능성이 항상 이미 생명 속에 내재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모든 자유와 권리, 따라서 모든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푸코는 권력 관계가 함축하는 자유로운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말년의 한 대담에서 “자기 통치” 또는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라는 개념을 도입한다.[이는 HdS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타인과 관련된 전략들을 구성하고 정의하고 조직하며 수단화할 수 있는 실천들의 총체”[정일준 편역, 앞의 책, 124쪽.]로서의 자기 통치 또는 자기 관계는 권력의 관계들에서 벗어나 있는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전략적 관계들 속에서, 지배 권력의 기술들과 다른 새로운 자기 구성의 기술을 실행하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확립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봉기의 근거로서 생명체의 규준성이라는 관념이 푸코가 생각하는 생명 정치의 일단을 표현해준다면, 자기 통치의 개념은 지배적인 관계에 의해 포섭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지배 관계를 구성하지도 않는 일종의 생명 윤리의 한 방식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결합될 수 있을까? 푸코가 말년에 고심했던 핵심적인 문제 중 한 가지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또한 생명 권력에 대한 분석에 머물지 않고, 더욱이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신성함이라는 낡은 기독교적 관념에 의거하여 생명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발전과 생명체의 인공적인 변형 가능성에 대해 금지와 배제의 태도로 일관하는 기존의 생명 윤리의 고답적인 태도[이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도미니크 르쿠르, 󰡔인간 복제 논쟁󰡕 권순만 옮김, 지식의 풍경, 2005 참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숙고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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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가 2014-08-1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블로그 보내기가 없어서 담아가요!

balmas 2014-08-17 11:25   좋아요 0 | URL
예 알겠습니다.^^

개굴희 2015-12-1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읽고 갑니다!

balmas 2015-12-17 19:28   좋아요 0 | URL
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SOPHIA 2016-01-2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봤습니다.^^ 좀더 읽고싶어 제 블로그에도 공유하고 싶네요~ 먼저 글 담아가고 허락을 구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balmas 2016-01-26 23:17   좋아요 0 | URL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Brian 2016-03-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정보감사합니다. 덕분에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도 쉽게 이해했습니다.

balmas 2016-03-20 12:45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반갑습니다.^^
 

지난 주말 경향신문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 지도]에 실렸던 글 한 편 올립니다.

이 글 역시 인용이나 토론을 원하는 분들은 신문 지면에 실린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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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가장 유명한 현대 철학자 중 한 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저작이 꽤 난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나 󰡔기록과 차이󰡕(국내에는 󰡔글쓰기와 차이󰡕로 번역돼 있다) 같은 그의 저작들은 상당히 난해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저작들이 6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혀왔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과 글쓰기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음을 입증해준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처럼 매혹시켰을까?

 

로고스 중심주의의 해체

 

이는 무엇보다 그의 철학의 전복적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초기 데리다에게 서양의 철학사는 현존(presence)의 형이상학의 역사였다. 이 점에서 데리다는 하이데거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철학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로 규정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들이 남긴 단편들에서는 존재가 ‘현존’으로, 곧 현존하는 것을 현존하게 해주는 운동 내지 사건으로서 이해되었으나, 플라톤 이후에는 존재가 실체로 이해되어 존재가 지닌 사건의 성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형이상학은 그리스 초기 사상가들에서 나타났던 증여의 사건으로서 존재 의미가 점차로 망각되어온 역사이며, 이는 니체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데리다는 현존의 형이상학에 관한 하이데거의 관점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수정한다. 첫째, 하이데거와 달리 데리다는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들의 단편에서 존재가 원초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다고 보지 않으며, 철학자들의 저작 속에서만 서양 형이상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문학과 예술 및 인문과학에서도 나타난다. 둘째, 더 나아가 데리다는 하이데거도 역시 현존의 형이상학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하이데거가 여전히 로고스 중심주의적 편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로고스중심주의 또는 음성 중심주의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의미나 진리의 생생한 현존으로서 로고스를 추구해왔으며, 이러한 로고스는 음성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현존하는 그대로 드러난다고 간주해왔다. 이는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오래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루소나 후설, 하이데거 같은 근대 철학자, 그리고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 같은 20세기의 인문과학자들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음성을 로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주는 본래적인 매체로 특권화하고 대신 문자나 기록 일반은 이러한 음성을 보조하는 데 불과한 부차적인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에서는 어디서든 현존의 형이상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에게 현존의 형이상학은 ‘로고스중심주의’이자 ‘음성중심주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는 서양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체 작업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존재의 부름’이나 ‘존재의 목소리’ 같이 음성 중심주의가 깃든 은유들을 자주 사용하고, 또 진정한 존재의 의미는 기호들의 연관망에서 벗어나 있다고 간주하는 한에서 그는 여전히 서양 형이상학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

 

데리다는 이러한 현존의 형이상학을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반박하는 대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타자를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타자는 바로 에크리튀르(écriture), 곧 기록이다. 서양 형이상학은 주체들끼리 주고받는 음성적 대화를 특권화하면서 기록을 하찮은 것으로 매도해왔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기록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적 토대다.

 

왜 기록이 그처럼 중요할까? 왜 이 주장이 그처럼 전복적이고 혁신적이었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원이나 로고스가 기원이나 로고스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그것들은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원이나 로고스가 일회적(一回的)인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기록이다. 기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보존할 수 없으며, 따라서 기원도 로고스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록에 의해 비로소 기원이나 로고스가 가능하다면, 현존의 형이상학의 주장과는 달리 기원보다 앞서는 것, 로고스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이 된다. 기원, 로고스의 이면에는 카오스의 검은 구멍만이 존재하며, 이 카오스와 로고스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기록인 셈이다.

 

유령의 정치학

 

그러나 이렇게 해서 기원과 로고스가 현존의 형이상학 내에서, 서양의 문명 내에서 그것들이 지니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결국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데리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해체 작업에 의해 현존의 형이상학, 더 나아가 기존의 서양 문명의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삶의 질서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하지만 데리다의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현존의 형이상학처럼 기원과 로고스를 근원적인 진리로 가정하게 되면, 더 이상 역사도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이 기원과 로고스에 담겨 있는 이상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며, 서양 문명의 원리인 로고스의 명령에 충실한 것을 정의로 간주하는 이상, 서양의 문명과 다른 타자들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유령들󰡕 같은 저작에서 유령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윤리ㆍ정치사상을 전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닌 유령들이라는 형상은 기원의 부재라는 해체론의 원리에 충실하다. 더 나아가 유령은, 살아 있으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곧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약소자들을 나타나기에 적합한 명칭이다.

 

데리다는 이주노동자들, 인종차별과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들, 사형수들 및 그 외 많은 약소자들에서 유령의 구체적인 현실태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들의 부름, 정의에 대한 호소에 응답하고 환대하는 일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ㆍ정치적 책임이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199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한 것은 그의 철학사상의 전개과정과 매우 합치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학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원리가 해체된 이후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다른 타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어떻게 타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데리다 사상의 영향과 현재성

 

데리다가 현대 인문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는 현대 문학이론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 중 하나로, 해체, 텍스트, 산종(散種), 은유, 장르, 수행성에 관한 그의 이론은 문학연구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또한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 같은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의 작업에서도 해체론은 핵심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데리다의 사상은 법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정전(正典)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은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데리다 사상을 원용한 바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영미권에서 전개된 비판법학운동은 해체론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나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 같은 정치철학자들의 작업에 미친 데리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발리바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고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재구성하는 데 데리다의 작업에서 여러 가지 이론적 자원을 빌려오고 있으며, 랑시에르와 아감벤은 데리다의 해체론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고 있다. 데모스에 대한 랑시에르의 재해석이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 등에서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데리다에 관한 해설서

 

국내에는 데리다에 관한 여러 개론서가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될 만하다. 데리다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페넬로페 도이처의 󰡔HOW TO READ 데리다󰡕(변성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를 읽는 게 좋다. 도이처는 쉬운 어법으로 데리다의 핵심 사상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고등학생 정도의 독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제이슨 포웰의 󰡔데리다 평전󰡕(박현정 옮김, 인간사랑)은 데리다에 관한 지적 평전이다. 학부 상급 학년 정도의 독자들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책이다. 에른스트 벨러의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는 데리다 사상의 원천 중 하나인 니체와 데리다의 관계를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두 사상가를 연결하고 있다. 학부 상급 학년 이상 수준의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국내 연구자의 저서로는 김상환 교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과 뉴턴 가버와 이승종 교수가 공동으로 저술한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민음사)이 추천할 만하다. 김 교수의 책은 데리다 사상을 폭넓은 철학사적ㆍ문학사적 맥락에서 고찰하고 있고, 가버와 이 교수의 책은 현대 영미철학의 원천인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의 사상을 비교ㆍ분석함으로써, 유럽철학과 영미철학의 접근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두 책 모두 대학원생 수준의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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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012-05-1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인 견해로는 먼저 읽어 본 뒤에 해설서를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해설서에서 설명하는 것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있습니다.

역설적인 얘기이기는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먼저 읽어 보아야 그 해설서에서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 해설서의 문제점이나 의도의 의도 같은 것까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밑에 푸코에 대해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고등학생 정도', '학부 상급 학년 정도', '대학원생 수준' 등등의 말 자체가 ("교양 대중"이라는 말과 아울러) 일종의 규격화 내지 정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balmas 2012-05-18 23: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해설서에 관해 일종의 등급을 표시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셨군요. 사실 난이도로 상, 중, 하로 표시할 수도 있는데, 제딴에는 조금 더 알기쉽게 표현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일종의 규격화 내지 정상화 아니냐라고 하셨는데, 좋은 문제제기라고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과잉반응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2012-05-22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12-05-23 03:02   좋아요 0 | URL
ㅎㅎ 오랜만에 오셨네요. 근데 저도 비교를 해보지 못해서 뭐가 제일 좋은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서울대출판부에서 나온 김형길 교수의 번역본밖에 없거든요.^^

2012-05-31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