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올리는 용어들은 "nation"과 관련된 용어들입니다. 알다시피 nation과 관련된 번역은 까다롭고 불만족스럽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요즘 nation에 관한 문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앞으로 공부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해본다는 생각으로, 발리바르의 용어법의 특징들을 몇 가지 살펴봤습니다.  

----------------------------------------------------------------------  
 


국민nation, 국민 형태forme nation, 민족주의nationalisme, 민족체nationalité

 

이 책에서 가장 번역하기 까다로운 용어들은 nation과 관련된 여러 가지 표현들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서양어에서 nation이라는 용어가 지닌 복합적 함의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발리바르가 nation을 새롭게 사고하기 위해 시도하는 독창적인 개념화에서 비롯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우리의 선택을 밝혀두자면, 우리는 이 책에서 “nation”은 대부분 “국민”으로, “forme nation”은 “국민 형태”로, 그리고 “nationalisme”은 “민족주의”로(간혹 “국민주의”로 옮긴 곳도 있다), “nationalité”는 “민족체”로 옮겼다. 이러한 번역은 일반적인 용법과 달리 “국민”과 “민족”이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사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감이 없지 않지만, 발리바르 자신의 개념적 용법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번역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 몇 가지 해명을 해보기로 하자.

nation의 문제와 관련된 발리바르의 핵심적인 이론적 기여는 “forme nation”, 곧 “국민 형태”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이 개념은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1988)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얼핏 보기에는 그다지 독창적이거나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새로운 이론적 시도를 담고 있다. 국민 형태 개념은 발리바르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공동체도, 심지어 공동체의 이념형도 아니며, 규정된 “공동체 효과”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 개념”(이 책, 51쪽―강조는 발리바르)이다. 이러한 규정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발리바르가 구조 개념으로서 국민 형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nation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무능력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이 점은 󰡔인종, 국민, 계급󰡕 5장으로 수록된 판본에는 빠졌지만, 미국 뉴욕 대학교(빙햄턴) 브로델 센터Braudel Center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리뷰Review󰡕에 실린 영역본에는 포함되어 있는 「국민 형태: 역사와 이데올로기」라는 논문의 1부(󰡔이론󰡕 제 6호, 1993년에 서관모 교수가 번역하여 실린 이 논문의 국역본에는 이 부분이 포함돼 있다)에서 상세히 설명된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의 핵심 논점을 담고 있다.

1) 경제적 환원주의 비판

첫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치적 형태들의 발생 및 전개 과정을 민족성이나 민족적 동일성 같은 유심론적 통념들이 아니라 물질적 원인들, 곧 생산 관계들에 기반을 두고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것은 ““부르주아” 역사 서술의 표준적 선택지들을 다른 언어로 재생산”하고 그리하여 결국 “민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논쟁들은 되풀이하여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논리적 궁지”(「국민 형태: 역사와 이데올로기」, 101쪽)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왜 이러한 일이 생겼을까? 그것은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이데올로기를 사회적 생산 관계 및 계급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담론이나 의식, “심지어 환상으로 환원하는”(같은 곳) 입장을 취했고, 따라서 nation이 갖는 상징적 효력과 실재성, 곧 그것이 정치 형태 내지 국가 형태의 구성 및 재생산에서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마르크스주의는 한편으로 “민족체라든가 종족체와 같은 역사적 현상을 “현실적” 심층, 곧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라는 범주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들 주장하는 그런 “현실적” 심층으로서 재도입”하든가 아니면 그것들을 담론이나 의식 또는 환상으로 이해된 “이데올로기”로 환원하려고 한 것이다. 곧 자본주의에서 nation은 부르주아 계급이 계급 적대의 현실을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현상으로 이해되든가 아니면 식민지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계급 동맹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이해되며, 반면 사회주의에서 nation은 “전 인민”이 형성되면서 계급적 적대가 소멸되는 역사적 형태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범주를 환원한 결과 사회주의 국가는 스스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소련 인민, 중국 인민 ...)에 체계적으로 사로잡힌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경제 결정론에서 벗어나 경제와 이데올로기의 “이중의 토대”라는 관점에서 nation을 물질적인 이데올로기적 현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개념을 도입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국민 형태라는 개념이다.

2) 사회 구성체 개념의 애매성

두 번째는 사회 구성체라는 역사 유물론의 핵심 개념이 지닌 애매성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마르크스 자신이 사용한 사회 구성체 개념은 “사회 또는 시민 사회 개념의 현학적 쌍생아”에 불과하며,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 각각의 사회 내지 국가의 역사적 종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된 이 개념은 “국가 이데올로기들이 제출하는 관념적 실체들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수용하는 대가를 치르”(같은 글, 103쪽)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러시아 사회 구성체”나 “프랑스 사회 구성체”나 “중국 사회 구성체”에 대해 그것들이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처럼 말할 때, 이는 우리가 곧바로 nation[이 경우에는 민족―인용자]의 초역사적 실존이라는 공리를 흡수했다는 것을 뜻한다. nation[곧 민족]을 그 안에서 생산 양식의 역사가 일어나는 틀로 변전시키면서 말이다.”(103-104쪽)

따라서 발리바르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구성체 개념은 사실은 “민족”으로서의 “nation”의 상이한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종래의 사회 구성체 개념을 쇄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관점을 제안한다. “그럴 게 아니라 우리는 사회 구성체를 그 통일성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채로 있는 한 구성물을 뜻하는 것으로서, 적대적인 계급들의 형세, 곧 전적으로 자율적이지는 않으며 다른 사회 구성체들에 대한 대립 속에서만, 또 바로 이 적대를 통해 장기에 걸쳐 발전한 권력 투쟁, 갈등하는 이해 집단들, 갈등하는 이데올로기들과 같은 것을 통해서만 상대적으로 종별적이게 되는 그런 형세를 뜻하는 것으로서 사용해야 한다.”(같은 글, 104쪽) 그리고 사회 구성체 개념을 쇄신하기 위해 발리바르가 도입하는 것이 바로 forme nation, 곧 국민 형태라는 개념이다.

국민 형태 개념의 의미  

 

국민 형태 개념의 강점은 nation을 역사적 실체, 그것도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지니고 있고 장구한 진화 과정을 거쳐온 실체로서 이해하지 않고 어떤 구조적 메커니즘에 의해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생산되고 또 그 이후 경쟁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발리바르에게 nation은 대략 16세기 중반 이후, 곧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형성과 비슷한 시기에 “비가역성의 문턱”을 넘어서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그것과 경쟁적인 다른 국가 형태들(제국이나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국민적인 정치ㆍ상업 복합체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근대 부르주아 혁명들 이후 약 200여년에 걸친 격렬한 갈등을 거쳐 보편적인 근대적 국가 형태 또는 그러한 국가 형태를 특징짓는 상상적 공동체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국민 형태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nation이 어떤 의미에서 근대적인 국가 형태를 규정했으며, 그것의 지속적인 재생산에 기여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구”민족들의 경우에도 최근 몇 세기 동안에 제조된 것임을 우리가 잊는 경향이 있는 이 신화는 따라서 효과적인 이데올로기 형태, 그 속에서 국민 구성체의 상상적인 독특성이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감으로써 일상적으로 구성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다.”(같은 글, 109쪽―번역은 다소 수정)

하지만 이것은 어설픈 포스트 모더니즘에 착안한 몇몇 반(反)국민 국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국민 국가라는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거나 순전한 이데올로기적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발리바르의 논점은 nation이 지닌(그리고 nation을 통해 개별적인 주체들로 형성된 각각의 개인들이 지닌)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가상에 의거하지 않는 가운데 nation이 근대 국가 형성에서 수행한 규정적 역할, 따라서 그것의 상상적 (또는 제도적) 실재성을 설명하고, 그러한 역할을 위해 왜 nation에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상상계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며, 또한 왜 오늘날 nation이 역사적 한계에 봉착했고, 그것을 내재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이 점과 관련하여 국민 형태 개념이 지닌 세 가지 측면을 강조한다.

1) 국민 구성체의 형성 과정에 대한 설명

첫째, 국민 형태 개념은 근대 국민 구성체들의 형성 과정을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보다 좀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과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페르낭 브로델과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의 이론적 기여를 받아들인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국민(국가)의 형성과 근대 자본주의에 고유한 시장 구조 및 계급 구조의 발전 사이의 조응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국민의 형성을 부르주아의 프로젝트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 방식은 자본주의 생산 관계에서 특정한 국가 형태, 곧 국민 국가를 연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마르크스 자신을 비롯해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이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이러한 연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브로델과 월러스틴은 국민 국가의 형성이 역사적 자본주의, 곧 중심부와 주변부로 조직되고 위계화된 근대 세계 경제의 형성과 연결돼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경우 근대 국민의 형성은 식민화 과정과 필연적으로 결부된 과정으로 이해된다. 발리바르의 간명한 주장에 따르면 “어떤 점에서 근대의 모든 “민족”은 식민화의 산물”(같은 글, 112쪽)인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이론은 국민 국가는 처음부터 근대 자본주의의 국가 형태가 된 것이 아니라 그것과 경쟁하는 다른 국가 형태들(제국, 도시 동맹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헤게모니적인 형태가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자본주의론은 근대 국가 및 국민 공동체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론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데올로기론으로서의 국민 형태 개념

하지만 국민 국가의 형성 및 재생산 과정을 이해하는 데서 역사적 자본주의론의 기여는 거기까지다. “통합된 세계 시장의 틀 안에서 정의되는 국민 국가의 경제적ㆍ행정적 기능은 사회적 “형태” 또는 “구성체”로서의 국민에 대한 이해의 반쪽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이 책, 47쪽) 왜 국민이 근대 국가의 헤게모니적인 형태가 되었는지, 다시 말해 근대 국가가 왜 단지 국민 국가가 아니라 국민 사회 국가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자본주의론이 아니라 (특히 알튀세르에서 유래하는, 하지만 본질적인 정정이 필요한) 이데올로기론이 필수적이다.

(2-1)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국민

알튀세르에서 유래하는 이데올로기론의 강점은 무엇보다 상상과 현실을 조야하게 대립시키는 관점(알튀세르 자신이 “실증주의적” 관점이라고 부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생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토대 내지 경제만이 실재적이고 이데올로기는 허위 의식 내지 왜곡된 표상, 심지어 가상 및 환상이다(알튀세르나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l'imaginaire” 개념을 “가상적인 것” 내지 “가상”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관점과 단절하려는 그들의 입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되면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족 내지 국민 자체도 순전히 대중들의 착각 내지 왜곡된 표상(계급적 관점의 부족에서 생겨나는)의 산물로 이해된다. 그러니 민족주의나 민족 내지 국민과 관련된 문제들은 진짜 문제가 아니라 가짜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반면 발리바르는 상상계의 실재성, 물질성을 강조하는 알튀세르의 관점(이는 무엇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진태원, 「스피노자와 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 상상계라는 쟁점」, 󰡔근대철학󰡕 3권 1호, 2008 참조)에 충실하게 국민 내지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가 상상적 공동체라고 규정한다. “제도들의 기능 작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는 상상적이다. 다시 말해 이 공동체들은 개인적 실존을 집합적 이야기의 짜임 속에 투사하는 것에, 공통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에, 기억도 할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체험되는 전통들(이러한 전통들이 근래의 상황 속에서 제작되고 주입된 경우에도)에 의거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일정한 조건들 속에서는 오직 상상적 공동체들만이 현실적 공동체들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La Découverte, 1988, p. 126; 「국민 형태」, 117-118쪽―번역은 다소 수정) 사실 모든 공동체는 어떤 공동의 동일성 내지 정체성에 대한 결속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공동의 동일성을 그 성원들이 자신의 동일성으로 내면화(또는 상상화)함으로써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체의 현실적 기반은 바로 상상계의 효력 및 실재성에 있다는 것이 납득될 수 있다.

(2-2) 상상적인 것으로서 인민의 생산과 재생산

그렇다면 상상적 공동체로서 국민 공동체의 생산 및 재생산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발리바르는 그것을 상상적인 것으로서 인민의 생산과 재생산에서 찾는다. 이것은 인민이 자신들을 국민으로서 (재)인지하고 인민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인들이 바로 이러한 국민에 대한 소속을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 동일성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것은 인민의 생산과 재생산이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계기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집합적인 “주체”로서, 곧 국민으로서 인민의 형성이다. 근대 정치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인민을 정치 권력의 기원 내지 정당성의 토대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인민 주권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인민 주권은 근대 정치의 지배적인 제도적 틀로서의 국민 국가에서는 국민 주권으로서 나타난다. 곧 인민이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바로 자신의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과 대립하는 나의/우리의 조국으로서 (재)인지하고, 그것과 동시에 이러저러한 사회적 집단의 차이 및 특히 적대적인 계급적 구별에 선행하는 동일한 집단으로서(그리고 이러한 동일한 집단에 한 성원으로 속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평등한 개인들로서) 자신을 (재)인지하게 되는 것은 인민이 국민으로 또는 민족으로 자신을 “표상/재현/상연하는”(이것들은 “represent”라는 개념에 모두 함축된 의미들이다) 한에서다. 따라서 집합적인 주체로서의 인민 및 국민의 구성은 “정복, 인구 이주, “영토 확정”과 같은 행정적 실천 등을 기술하는 것”(같은 글, 119쪽)으로는 제대로 해명될 수 없다. 통일적인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민/국민이 구성될 수 있기 위해서는 종별적인 이데올로기의 모델, 곧 민족주의나 애국주의가 필요하다.

근대 국민 국가의 유기적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는 단지 상상적인 민족의 동일성에 대한 믿음 및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 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가 단지 이러한 믿음과 감정 등에 불과하다면, 서구의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가 확립된 “선진국”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의 일부 지식인들이 (이른바 “남쪽” 국가들 또는 “후진국들”에 특유한) 민족주의를 마치 질병이나 집단적 광기 등으로 폄훼하는 것이 수긍될 수 있다(작년에 벌어졌던 이른바 “디워 논란”을 보라). 그리고 그 경우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서구식으로 합리적 개인주의를 도입하거나 사회적 차이 및 소수자들에 대한 존중을 확립하는 것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지극히 자유주의적이고 서구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민족주의에 관한 설명 및 대응 방식으로는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

발리바르의 국민 형태 개념은 이론적 전제 및 민족주의 현상에 대한 이해 방식에서도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이러한 관점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관점에 깔려 있는 고유한 서구 중심주의 내지 서구식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발리바르는 민족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사고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주의를 집합적이고 개인적인 동일성을 형성하는 핵심 메커니즘의 효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국민 국가의 핵심 목표는 “다른 모든 동일성을 압도하는 “국민 동일성”을 구성하는 것이고, 국민적 소속이 다른 모든 소속과 일치하고 그것들을 통합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일”이며, “정의상 민족주의는 이것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이 책, 55쪽) 근대 국민 국가 내에서 각 개인들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상정하는 것처럼) 국민에 대한 소속 이전에 자신의 독자적인 개인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국민적 개인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동일성, 개인성을 얻게 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집단들 및 개인들은 자신들을 이러저러한 집단의 구성원이자 이러저러한 개인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모두 똑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곧 그들은 국민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이고 국민으로서의 자본가이고 국민으로서의 선생이고 학생이고 가정 주부이고 범죄자 등등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모든 국민 국가(프랑스나 미국 같은 “이민자 국가”를 포함하는)는 정의상 민족주의적이며, 또한 그 국민 국가의 성원들은 자신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민족주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들은 아마도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민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라고 말하는가? nationalism이 nation의 유기적인 이데올로기이고, nation을 “국민”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당연히 nationalism은 “국민주의”라고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반론은 일리가 있으며, 사실 어떤 경우 nationalism은 “국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가령 프랑스 국적을 가진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자가 프랑스 월드컵에서 열렬하게 프랑스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끝내 프랑스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자 감격에 겨워 “토종” 프랑스 백인과 같이 어깨를 걸고 프랑스 대표팀 응원가를 목청 높이 부를 때, 그는 우리가 보통 쓰는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 유학간 한국인 유학생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을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미 야구 대표팀 간에 야구 경기가 벌어질 때 열렬히 미국팀을 응원할 때 그 역시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민주의”를 드러내는 셈이다. 또한 발리바르가 이 책 4장에서 논의하듯이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쉬나페가 종족적인 기원 및 소속과 무관한 시민들의 공동체로서 “국민nation”을 옹호하고 그러한 국민들 사이의 결속감의 표현으로서 “nationalisme”을 말할 때 그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대부분 “nationalisme”을 “민족주의”라고 옮긴 것은 그러한 국민 성원들 사이의 일체감, 동질성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동질성의 기원 및 주체에 대한 보충적인 상상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 같이 이른바 “단일 민족”,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단일 종족”의 경우에는 더욱 더 사실이다. 여기서 허구적 종족성(또는 의제적(擬制的) 종족성)ethnicité fictive이라는 발리바르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개념은 국민이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고 연속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온 역사적 실체 또는 심지어 (유일한) 역사적 주체라는 민족주의에 고유한 상상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이 개념에서 우선 주의해야 할 점은 “상상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허구적”이라는 개념이 “가상적”이라거나 “가짜” 또는 단순히 “공상적”이라는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제도적 효과라는 의미, 곧 제작”(「국민 형태」, 121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런 점에서는 어려운 번역어이기는 하지만 “의제적 종족성” 내지 “의제적 종족체”라는 번역이 일리가 있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허구적 종족성은 실존하는 어떤 국민이 오래된 종족적 기원을 지니고 있으며(가령 골족의 후손, 단군의 자손,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후예 등), 그 국민은 동일한 기원을 공유하면서 오랫동안 세대를 거치면서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유구한 역사적 실체(또는 오히려 주체)로서의 민족으로 표상된다. 바로 이러한 허구적 종족성 때문에 국민 국가 내의 집단들 및 개인들은 자신들이 이러저러한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초월한 이해관계의 동일성을 지닌 같은 민족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상이나 인식이 단순히 공상적이거나 가상적인 의식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교육 제도나 가족 제도 같은 사회적 제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훈육되고 각종 의례나 절차, 관행 등을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재생산된다(발리바르는 「국민 형태」에서는 특히 언어와 계보가 허구적 종족성을 산출하는 두 가지 지주라는 점을 보여준 바 있다).

따라서 nationalism은 특히 그것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필연적으로 이러한 허구적 종족성을 더 강하게 반영하기 마련이며, 허구적인 또는 상상적인 역사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자신의 기초로 삼게 된다. 우리가 nationalism을 “민족주의”라고 옮긴 것은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에는 이러한 허구적 종족성이 (다소간 강렬하게) 담겨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3) 국민 사회 국가의 위기

국민 형태 개념이 지닌 또 다른 의의는 근대 국가의 헤게모니적인 형태로서의 국민이 어떤 내적 모순에 의해 오늘날 위기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발리바르는 “배제는 국민 형태의 본질 자체다”(55쪽)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주장한다. 왜 배제가 국민 형태의 본질을 이룰까? 발리바르의 이러한 주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자본주의적 구성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거대한 등식”(“Communisme et citoyenneté. Réflexions sur la politique d'émancipation à la fin du XXe siècle”, Actuel Marx, n. 40, 2006, p. 146), 곧 “시민권=국적nationalité”이라는 등식이 근대 국민 국가 및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 사회 국가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에 나오는 “국민 사회 국가” 항목에서 좀더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발리바르에게 근대 국민 국가는 본질적으로 국민 사회 국가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19세기 말 이후 특히 20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이러한 경향이 현실화된다. 국민 사회 국가란, 한편으로 국민 국가가 내부의 사회적 적대와 갈등(특히 계급 투쟁)을 해결함으로써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국민으로서의 시민들에게 개인적ㆍ정치적 권리 이외에 (국가마다 얼마간 정도 차이는 존재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권리(의무 교육, 가족 수당, 실업 보험 등)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국민 국가는 동시에 사회 국가의 성격을 띠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집단들 및 개인들이 자신들을 이러저러한 집단의 구성원이자 이러저러한 개인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모두 똑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할 때 그 국가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이라는 것이 국가의 구성원의 자격이자 개인으로서의 동일성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시민권이 국적을 가진 성원들에게만 부여되고 이러저러한 외국인들 및 이주자들에게는 그러한 시민권이 배제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발리바르가 근대 국민 국가는 국민 사회 국가이며 그것의 핵심은 시민권=국적 등식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민 국가는 이것과 모순되는 또 다른 본질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근대 국민 국가의 역사가 외연적이고 내포적인 두 가지 측면에서 보편주의가 확산되고 진전되어온 역사라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은 국민 국가가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근대 시민 혁명의 이념적 토대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곧 발리바르 자신의 해석을 따르면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동일성 명제에 근거하여 형성되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근대 국민 국가의 본질을 이루는 시민권=국적의 등식은 이러한 외연적이고 내포적인 보편주의를 모순에 빠뜨렸으며(왜냐하면 권리 선언에서 모든 사람은 시민이며, 시민으로서의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자유롭다고 주장되었음에도, 국민 국가의 틀 속에서는 오직 국적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러한 자유와 평등, 권리들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전개되고 유럽 연합 건설이 진행 중인 오늘날 이러한 모순은 훨씬 더 첨예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발리바르는 이 책의 첫 번째 장인 「국민적 인간」에서 「국민 형태: 역사와 이데올로기」에서 전개한 논의들을 전제하면서 새로운 논점들을 추가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및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 이후 유럽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종족 및 민족 갈등이 불길처럼 번져나갔으며, 완고한 민족주의ㆍ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극우 세력 및 집권 세력들의 반(反)이민 정책이 민주주의적 유럽 건설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유럽적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민족주의의 확산 및 강화는 근대 국민 국가의 본질을 이루는 배제, 곧 시민권=국적이라는 등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족주의는 국민적 제도에 상응하는 유기적 이데올로기이며, 국민적 제도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하지만 항상 법과 관행들 안에 물질화되어 있는 배제의 규칙, “경계들/국경들”의 정식화에 의거하고 있다. 따라서 배제는 국민 형태의 본질 자체다. 또는 배제가 아니라면, 이것은 같은 국민이냐 아니면 외국인이냐, [국민] 공동체에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에 따라 특정한 재화와 권리에 대해 불평등한 접근을 강제하는 것이다.”(이 책, 55-56쪽)

따라서 오늘날 유럽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전개되는 반동의 정치에 맞서기 위해서는 단지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투쟁만이 아니라 이러한 배제와 차별에 대한 투쟁도 동시에 전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발리바르는 심지어 오늘날 정치의 근본 쟁점은 국민의 소속과 해방의 목표들(곧 인권과 시민권) 중 어떤 것을 옹호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나로서는 오늘날 민주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정치와 보수주의적이거나 반동적인 정치 사이의 경계선은 (유일하지 않다면) 본질적으로 종족 차별과 국민성/국적의 차이에 대한 태도 여부에, 국민의 소속과 해방의 목표들(인권과 시민권) 중 어느 것을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심지어 세계경제에서 지배적인 국민들의 경우에도 자족적인 국민성은 존재하지 않게 된 세계에서, 배제와 차별에 맞선 투쟁의 정치들이 정의되고 작동되는 양상들은 점점 더 민주주의의 시금석을 이루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국민 국가가 민족주의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또는 외국인의 수용 및 거부라는 문제에 관해 본다면, 그 “본성”상 또는 그 “예외성” 덕분에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보편주의적”인 국민 전통이 존재하며, 반대로 역시 그 본성상 또는 그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불관용적이고 “특수주의적”인 국민 전통도 존재한다고 믿는 가상에 저항해야 한다. 이런 관념은 바로 민족주의적 편견에 불과하다. 같은 이유 때문에 나는 우리가 본질적인 특성들을 통해 “선하고” 진보적인 민족주의와 “악하고” 반동적인 민족주의를 구분할 수 있다는 관념 역시 거부한다. 문제의 핵심은 항상, 경제적 이익, 외교적‧군사적 균형 및 사회적 갈등과 더불어서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특히 우리의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규정들의 장 안에서 정치를 실행하는 것의 어려움이다.”(57-58쪽)

따라서 국민 형태 개념이 지닌 이론적ㆍ실천적 의미는 오늘날 전개되는 반동의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해명하고 그것에 맞서기 위한 지점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번역에 대하여

이런 관점에서 보면 “forme nation”이라는 개념을 “민족 형태”라고 번역하는 것은 사실은 발리바르의 이론적 단절 및 쇄신의 시도를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함축된 오류로 환원시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말의 “민족”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nation의 초역사적 실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단군을 시조로 하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오랜 민족, 외세의 끊임없는 침입을 겪고 급기야 1910년에는 일제에게 강점당하는 비극을 겪은 뒤 1945년 감격적인 해방을 맞이했지만, 다시 5년 뒤에는 끔찍한 내전을 겪으면서 둘로 쪼개진,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통일되어야 할 단일 혈통과 단일한 언어를 지닌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이라는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상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에 다시 그러한 상상계를 반영하는 “민족”이라는 번역어를 제시하는 것은 발리바르의 핵심 논점을 오히려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nationalisme”은 “국민주의”라고 하지 않고 “민족주의”라고 번역하는가? 사실 한두 군데에서는 이것을 “국민주의”라고 옮겼다. 그 이유는 발리바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하는 프랑스 공화주의가 말하는 “nation”은 종족적인 기초가 아니라 정치적 계약(발리바르 자신도 인용하는 에른스트 르낭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매일의 국민투표”로서의 국민이라는 관념이 이를 잘 표현해준다)에 기반을 둔 정치 공동체를 뜻하며, 따라서 이들이 옹호하는 “nationalisme”은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종족적 순수성, 혈통이나 영토의 고유성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보다는 “국민주의”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경우에는 “nationalisme”을 “민족주의”로 옮긴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내셔널리즘이 근대적인 “nation”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의 종족적 기원 및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상상계, 곧 발리바르가 “허구적 종족성”이라고 부른 것을 표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발리바르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nationaité”라는 개념은 “시민권=국적” 등식에서 볼 수 있듯이 한편으로는 “국적”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개념은 (아직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개별적인 민족 공동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대표적이다. “역사적 과정은 우연과 굴곡, 단절들의 영향을 받는 과정이며, 이것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실재, 곧 한편으로는 세계 속에 실존하고 있고, 과거부터 실존해 왔으며 미래에도 실존하게 될 개별 민족체들nationaités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형태(또는 민족체의 형태) 그 자체를 문제 삼는다. 나는 우선 이런 구분에 집중해 볼 생각인데, 내가 보기에 집합적 동일성의 감정이 낳는 혼란들과 투사들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이런 구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민들 또는 민족체들은 다소간 오랫동안 지속되는, 어쨌든 여러 세대(...) 동안 지속되는 제도들이다. 국민들 또는 민족체들은 감정, 집합적 기억, 이데올로기와 정치 구조, 행정, 경제적 이해관계 등에 따라 다소간 통합되며, 이 모든 요소는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일반 규칙은, 역사적 국민들은 주어진 어떤 시기에 동일한 제도적 틀 안에서 인구를 통합하는 여러 가지 실존하는 가능성들 중 하나를 실행한다는 게 될 것 같다.”(이 책, 44쪽)

이 구절에서 발리바르는 얼핏 보기에는 nation과 nationaité를 등가어로 사용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양자 사이에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으며, 이는 프랑스어의 일반적인 용법에서도 나타난다. 프랑스어에서 nationaité는 보통 “국적”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특히 19세기에 유래한 용법에서는 “종족적ㆍ사회적ㆍ문화적 특성으로 결합된 집단들이 자신들을 nation으로 구성하려는 의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곧 일정한 영토에 거주해왔고 같은 언어와 종족적ㆍ인종적 기원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별도의 국가를 구성하지 못하고 따라서 국민으로서 독립하지도 못한 집단, 그러나 계속 독립적인 국민으로서 존재하려고 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명칭이 nationaité다. 가령 얼마 전에 분리 독립 운동을 벌였던 티베트족이나 이라크의 쿠르트족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nationaité는 nation과 유사하지만,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nation을 이루지 못한, 전(前)국민적인 민족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는 nationaité를 “국적”으로 옮기거나 “민족체”로 옮겼으며, 드물게 “민족성”으로 옮긴 곳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발리바르가 국민은 근대적 구성물이고 nation이 마치 저 오랜 옛날부터 연속적으로 전해 내려온 동일성을 지닌 역사적 실체인 양 생각하는 것은 허구적 종족성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국민의 시대, 국민 국가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으며, 국민 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체를 모색할 때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관국민적” 개념을 설명하면서 지적했듯이 발리바르는 자신의 관국민적 관점을 “초국민적” 관점 내지 “포스트 국민적” 관점(또는 이른바 세계 시민주의)과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것은 첫째, 세계가 여전히 국민 국가라는 기본적인 정치 공동체를 중심으로 분할되고 상호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포스트 국민적 정치나 세계 시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북쪽의 이른바 선진국들에 고유한 민족주의의 다른 표현일뿐더러, 남쪽 국가들의 생존 및 발전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미명 아래 또는 우리는 이미 “민족주의 너머”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들의 민족주의를 향해 비판을 제시하는 것은 십중팔구 민족주의의 또 다른 모습을 감추는 것에 불과하다.”(이 책, 42쪽)

둘째, 더 나아가 그러한 관점은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정세에서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는 국민 국가를 추상적으로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대안을 역시 추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사회 국가의 역사를 내적으로 규정해왔던 모순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내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 형태의 역사 또는 헌정 형태의 역사라는 관점을 채택할 경우에만 반동적인 민족주의나 추상적인 포스트 국민 국가론 내지 세계 시민주의에 빠지지 않고 각 나라나 각 지역에서 상이하게 전개되는 정세에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유럽 공동체가 현실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유럽의 상황에서 초국민적 정치체의 성격 및 관국민적 시민권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상황, 또는 동아시아의 정세에서 포스트 국민적 정치 내지 세계 시민 정치 운운하는 것은 자칫 추상적인 비정치,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반(反)정치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기 십상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발리바르의 국민 사회 국가 개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로이카 2009-10-2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러 부분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많은데요. 의문들이 간명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지금은 좀 힘드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 책 읽고 제대로 한 번 여쭤 보겠습니다.

nation을 민족으로 옮길 것인가 국민으로 옮길 것인가의 문제에서 제가 참으로 난감한 것은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한국어 어휘가 생긴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사실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말 모두 일제 식민지 시기에 생겨 널리 쓰이게 된 말인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당시 "국민"은 내선일체의 관점에서 한반도 거주자들을 일본 본토인과 법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하려는 관점에서 쓰여졌고, "민족"은 그러한 관점을 거부하는, 곧 일본인과의 생래적, 법적 차별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구요.

또 지금 오래되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홉스봄이 쓴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nation은 근대 nation state 체제의 산물이다" 뭐 이런 말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각주를 달아 "동아시아의 한중일에서의 민족은 이런 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더구나 동아시아에는 근대 이전에도, 그러니까 최소한 일본의 전국통일 이후에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들 간의 일종의 위계적 국가체제가 자리잡혀 있었고, 곧 nation의 응집성과 nation 간의 차별성을 구성하는 정치적 권위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서구의 nation 형성과는 다른 형태의,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문득 생각이 난 것은 일본의 "민족적"입니다. 자이니치 조선인이나 자이니치 대만인처럼 조상이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이주해와서 정착했지만 여전히 그 어떤 국적을 획득하는 것을 거부하며 사는 집단들의 존재인데요. 이들의 "민족적"은 그야말로 nationality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이자 시민권으로서 citizenship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횡설수설했는데요. 정리하면 nation 번역의 어려움은 서구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의 다른 궤적, 그리고 어휘 형성의 역사적 구속성, 이 둘의 중첩에 의해 훨씬 더 증폭되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을 길게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이 말에 다 담을 수 없는 복잡함과 답답함이 남네요. 잘 봤습니다.

balmas 2009-10-26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동아시아 역사의 특수성이 겹쳐 있기 때문에 nation에 관한 번역이나 논의 모두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현재 nation이나 nationalism에 관한 논의들은 대부분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또는 서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에로이카님의 댓글에 간략히 답변을 드린다면, nation이라는 말이 동아시아 및 우리나라에 어떻게 소개됐고 또 그것에 해당하는 번역어인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용어가 처음에 어떤 용법으로 사용되었는가는 역사학적으로 의미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용어의 원래 기원과 그 용어가 현재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방식의 문제는 구별되는 문제인 듯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발리바르 번역에서 제안한 번역어들은 일차적으로 발리바르 자신의 용법에 초점을 둔 번역입니다. 제가 보기에 발리바르는 주로 서구, 특히 프랑스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nation에 관한 논의를 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nation이나, nation state, 또는 nation form 같은 것들은 전형적인 근대적 현상입니다. 또는 어떻게 말하면 바로 이것들이 근대성을 구성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 용어들은 "민족"보다는 "국민"이라는 번역어로 옮기는 게 더 낫다고 본 것입니다. 또 이러한 근대성을 부인하거나 은폐하고 nation이 마치 유구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연속적인 역사적 전개 과정을 거쳐 온 것처럼 간주하는 상상적 관점들, 곧 nationalism 등을 표현하기에는 "민족"이라는 말이 낫다고 본 거구요. 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지금 근무하는 데가 "민족문화연구원"이어서 그런지(^^;) 요즘 nation에 관한 문제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외국에서 전개되는 다양하고 수준높은 논의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논의는 다소 조야하고 상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아무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꽤 많을 듯합니다.

NA 2009-10-28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시지요?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오늘에야 보게 되었네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들 잘 읽었습니다. 나중에 더 꼼꼼히 읽어봐야겠지만, 역시 견해 차이를 쉽게 좁히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진선배님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민족이라는] 이러한 상상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에 다시 그러한 상상계를 반영하는 “민족”이라는 번역어를 제시하는 것은 발리바르의 핵심 논점을 오히려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우선, "민족"에 대한 대중의 상상을 설명하기 위해 "민족형태"라는 개념을 만드는 것(또는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왜 발리바르의 논점을 모호하게 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X를 설명하는 개념에 X-형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저로서는 꽤 정당해 보이는군요. 오히려 "국민형태"라는 말을 사용하면 그 말이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인지가 모호해지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 개념이 민족이 아니라 국민을 설명하는 말이라고 여길테니 말입니다.

발리바르는 '민족'이 아니라 '민족형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제국, 도시국가와 같은) 다른 여러 형태들 가운데 하나의 형태일 뿐이며, 동시에 (선배님도 지적하셨듯이) 구조적인 어떤 것이자 장치와 메커니즘을 통해 생산되는 효과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당형태라는 말도 당을 이런식으로 낯설게 만드는 효과를 갖듯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민족형태'라는 말은 자체로 '민족'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역사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점을 표현하고 있고, 그래서 '민족'이라는 상상계를 정확히 문제로 삼는 것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의도에 잘 부합한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읽어보니 선배님이 민족주의 대신 국민주의를 사용한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맥락상 "허구적 종족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곳에서 그렇게 옮겼다고 말씀하시니, 더욱 더 '국민형태'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님이 번역하신 두 권의 발리바르의 책이 곧 나오게 될 것 같아 사실 무척 기대가 됩니다. 좋은 번역은 원본으로 읽을 때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또 보게 해주니 말입니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balmas 2009-10-29 04:24   좋아요 0 | URL
예, 댓글 달아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 최원 형과는 분명히 의견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최원 형의 논거들을 보면, 사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왜 최원 형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잘 이해를 못하겠어요. 최원 형의 논점이야 이해가 되지만, 발리바르의 논의를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내년쯤 기회가 되면 nation 문제에 관해 글을 한두 편 써볼 생각인데, 최원 형도 시간이 날 때 nation 문제에 관해 글을 좀 써본다면, 서로의 차이가 좀더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만간 출간될 에티엔 발리바르의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후마니타스)에 수록될 용어 해설 몇 가지를  

옮깁니다. 두어 개는 너무 분량이 많다 싶은데, 그래도 얼마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냥 수록할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용어 해설 쓰고 해제 쓰는 데 한 2주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벌써 두달을 넘겨버렸네요. 책의 출간을 

기다리는 분들께 죄송하고 후마니타스 출판사 여러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 

 

관국민적transnational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이라는 관형어는 최근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보통 종래의 국민 국가적인 차원을 넘어선 정치ㆍ경제ㆍ문화적인 지평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가령 “transnational corporations”는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본국의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 축적을 수행하며, 이러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과 조직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초국적 기업”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장시복, 󰡔세계화 시대 초국적 기업의 실체󰡕, 책세상, 2004, 41쪽). 또한 “transnational civic activity”는 국경을 초월하여 전개되는 시민 운동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transnational terrorism” 같은 용어도 종종 사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용어는 “초국민적” 내지 “초국적”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 책을 비롯한 최근 저작들에서 “national”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접두어들을 섬세하게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transnational”을 단순히 “초국민적”이나 “초국적”으로 번역하기는 좀 어렵다. 발리바르가 주로 사용하는 용어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용어들이다.

우선 “post-national”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이제 국민 국가 시대가 종언을 고했으며, 탈국민적인 시대, 곧 유럽 공동체라든가 기타 세계 시민적인 정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주장하는 관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책에서는 하버마스가 이러한 입장의 대표자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러한 관점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공화주의자들이 고수하는 국민 국가적 관점과 이것에 대립하는 “post-national”, 곧 “포스트 국민적” 관점의 양자택일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transnational”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 유럽에서(하지만 이는 분명히 훨씬 더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몇몇 국민들이 심지어 국민 형태 그 자체가 재정초 및 재생의 국면을 통과하고 있지 않은지, 또는 돌이킬 수 없게 국민 형태가 폐절되는 과정에, “포스트 국민적”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이 점점 더 피할 수 없게 제기되는 만큼, 비판적 거리 두기는 점점 더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나 자신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믿는다. 이런 식의 양자택일들은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관여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명하는 데 기여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37쪽)

또한 발리바르는 “supra-national”이라는 용어와 “transnational”이라는 용어를 구별한다. 전자는 국민 국가의 차원을 넘어선 정치 제도, 특히 유럽 공동체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물론 국민 국가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보면 “supra-national”과 “transnational”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양자가 상호 대체 가능한 동의어처럼 쓰이는 곳도 존재한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두 용어를 상당히 섬세하게 구별해서 사용한다. 우선 전자는 현재 유럽 공동체 건설을 주도하는 세력의 공식적 관점을 표현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관점은 국민 국가의 존속을 옹호하는 “주권론적” 관점과 대립하여 (미국이나 일본 또는 중국과 맞설 수 있는) 유럽이라는 새로운 초강대국의 구성을 겨냥하는 “유럽 공동체적” 관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은 공산주의의 종언 이후에 유럽 공동체 건설이 본격화되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다분히 신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유사 제국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역사적 공산주의의 몰락은 이런 상황을 심원하게 변형시켰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유럽 공동체”는 유럽 대륙에 존재하는 유일한 초국민적 구성물이라는 유사 제국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305쪽)

더 나아가 유럽 공동체는 국민 국가의 한계를 지양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함에도, 이러한 관점은 국민 국가의 위기를 초래한 핵심 모순, 곧 시민권=국적이라는 모순(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국민 사회 국가” 항목 참조)을 약화시키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게 된다. 왜냐하면 초국민적 관점은 유럽 공동체를 유럽 회원국들, 곧 유럽의 (부유한) 국민 국가들의 합으로 규정하고, 따라서 유럽 구성원은 기존 국민 국가들의 성원으로 규정하는데, 이것은 국적을 가진 성원에게만 시민권의 향유 자격을 부여하는 시민권=국적 등식을 본질로 하는 국민 국가의 모순을 해결하는 대신, 기존의 국민 국가 시민권의 특징들을 초국민적 차원으로 그대로 옮겨놓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는 불가피하게 유럽적인 아파르트헤이트를 낳을 수밖에 없다. 마치 이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체계적인 격리가 존재했던 것처럼 유럽 대륙 내에서 유럽적인 시민권을 향유하는 주민들과 그렇지 못한 주민들(하지만 유럽 대륙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사이에 체계적인 장벽과 경계가 설립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transnational”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포스트 국민적이거나 초국민적인 관점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발리바르 자신의 관점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이때의 “transnational”은 보통 이해되는 것처럼 국민 국가를 넘어선다든가, 다른 나라의 시민들과 연대한다든가 하는 뜻보다 좀더 강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발리바르가 다른 곳에서 간명하게 규정한 것에 따르면 “trans-national”은 “trans-frontière”, 곧 “국경/경계를 넘어섬”을 의미한다(É. Balibar, Europe, constitution frontière, Éditions du Passant, 2005, p. 17). 이 때 “국경/경계를 넘어섬”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국경을 초월한다든가 횡단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런 의미도 포함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시민권=국적을 조건 짓는 국민적ㆍ인종적 경계, 따라서 상징적이고 동일성 중심적인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trans-national”은 무엇보다도 국민 국가 또는 국민 사회 국가의 모순의 핵심을 이루는 시민권=국적의 한계를 넘어서고 개조한다는 것을 뜻한다. 발리바르에게 “transnational”이 무엇보다 “citoyenneté transnationale”, 곧 국민적 시민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관국민적 시민권”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 이해한다면 “transnational”은 국민 국가의 종언이라는 막연한 관념에 기반을 둔 추상적인 포스트 국민주의나 세계 시민주의와 달리 국가 형태의 역사, 헌정 형태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국민 국가의 내적 모순을 개조하거나 지양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새로운 형태의 국가 내지 헌정의 구성을 추구하려는 발리바르의 관점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transnational”을 보통 사용되는 “초국민적”이나 “초국적”이라는 번역어로 옮기는 대신 “관(貫)국민적”이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어는 시민권=국가라는 등식을 가능케 하는 국민적ㆍ인종적 경계를 가로지른다는 의미를 좀더 잘 표현해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담을 수 있다면 “횡국민적” 같은 번역어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NA님의 "민족과 국민"

최원 형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말했듯이 최원 형 생각은 잘 알겠는데, 저는 최원 형 글의 몇몇 대목이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아마 단상을 정리하는 수준의 이야기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발리바르의 시민권 이론이나 국민 국가론에 대한 해석도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구요. nationaity를 민족성으로 번역한다든가, natin state를 민족 국가로 옮기는 것에서는 더 그렇군요. 이전의 한두 차례 문제제기를 포함하여 최원 형 글에 답변하려면 아마 좀 긴 논의가 필요할 텐데, 언제 기회가 있겠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견해에 대한 찬반 여부야 어쨌든, 이런 글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관된 논지를 갖추고 있는 지식인은  

최장집 교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4186 

 

최장집 "신보수화의 레일 놓은 건 DJ와 盧"
"더이상 경제관료에 의존 말라", "하토야마 벤치마킹하라"
 

2009-09-01 16:02:56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1일 야당들에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서민-중산층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대안정당으로 전환을 촉구, 논쟁을 예고했다.

최장집 "보수화의 레일 깔은 것은 DJ와 盧"

최 명예교수는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진보개혁입법연대(대표 조승수 의원) 초청 강연에서 행한 특강을 통해 "현재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방안 만들기에 급급하다"며 "앞 지도자를 승계하는 데 경쟁하고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향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정치는 책임정치가 핵심이기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가 뭘 잘했고, 뭘 잘못했는지 객관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민주정부의 부동산, 노동 정책 등을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틀)"으로 규정한 뒤 "이른바 민주파 정부 10년 동안에도 관료들에 의해 사회경제적 보수화의 레일이 깔렸는데 보수를 자임하는 이명박 정부가 그 레일에서 더 보수적으로 가는 것은 분명한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명박-한나라당 정부는 지난 10년간 진보개혁세력의 민주정부가 실패한 결과로 등장했다"며 "지금 이명박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앞 시기에 진보개혁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정부운영의 미숙, 무능력이 보수정부의 등장을 불렀다"고 꼬집었다.

그는 "촛불시위, 두 전직 대통령 사망 등 큰 정치적 사건들이 생긴 과정에서 지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를 성찰하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 비판만이 강해지는 경향이 일어났다"며 "보수적 정책에 대한 대안없이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을 진보로 인식하는데, 이명박 정부와 진보개혁세력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면 반드시 보수화 경향이 나타난다"며 "(그런 점에서 현재의) 보수우위 양당체제는 진보개혁세력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MB정부, 파시즘 아니다"

최 명예교수는 MB정부 성격과 관련해서도 "이명박 정부를 권위주의정부나 파쇼정부로 보지 않는다"며 "지금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등 기본적인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 대통령을 반통일수구세력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예컨대 남북관계에서 반평화세력이라 함은 전쟁을 원한다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다. 오바마 등장 등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햇볕정책의 레일 위로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한나라당만 해도 많이 변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와는 다른 정당이 됐다"며 "한나라당의 지지층이 누구냐는 경험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한나라당이 보수세력을 다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오히려 조중동이 한나라당 이상의 정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조중동이) 원외 정당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조중동보다 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행보 한 걸 두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로 고착될 것이라는 것은 선입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두 전직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세가 회복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악으로 규정하면 기대수준을 너무 낮춰 조금만 뭘 잘하더라도 평가를 크게 높여버릴 수가 있다"라며 과도한 적대적 개념 정의가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더이상 경제관료들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최 명예교수는 서민-중산층 정당을 표방하는 대안 정당의 나아갈 길로 민주정권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경제관료에의 의존 탈피, 노동 있는 민주주의 등을 제시했다.

그는 "보수우위 양당체제가 굳어지고 투표의 보수 경향화 현상도 나타난다"면서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됐다고 볼 순 없다. 진보, 중도, 보수의 비율이 다른 나라들하고 비슷할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 확대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더 진보적인 면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에 대해 "제1야당인 민주당이 좀 더 좌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차이를 갖는 대안정당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보수정당체제에 실망한 시민들이 야당 지지로 되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생활세계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이슈가 안되는 것이 한국정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며 "시민권의 개념 속에 노동의 문제가 들어와야 정치변화나 정당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노동 있는 민주주의, 경제관료 중심 정책운영의 탈피, 재벌중심 성장정책의 변화 등을 담지 않는다면 정책개발이라는 것은 권위주의적 온정주의를 지속하는 것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집권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대표가 지난 27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보면 첫 문장이 근본적 시장중심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양극화 등 신자유주의 폐해 비판과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춘 하토야마 전략을 벤치마킹하라는 주문인 셈.

"민주대연합은 억압적 담론"

한편 최 명예교수는 민주당이 제시한 민주대연합론을 "억압적 담론"이라고 비판한 뒤, "현 보수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러한 대동단결론은 이해관계를 억압하기 쉽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차이를 대표하는 정치조직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뒤, "여러 당으로 구성된 야당블록을 형성해 여기서 진보개혁세력의 역할이 커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며 광의의 대연합을 주문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자민당식 장기집권 가능성에 대해선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라며 "보수진영이 장기적 헤게모니를 쥐고 나갈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한국 국민들의 성향이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투표를 통한 반복적 정권교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현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올리는 김에 현재 번역하고 있는 중인 에티엔 발리바르의 또 다른 책에 수록된  

글을 한 편 올립니다.  현재 번역을 다 마치고 교정을 보면서 해제를 쓰고 있는 책은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 

라는 책이고, 이번에 올리는 글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정치체에 대한 권리Droit de cité}, PUF, 2002라는 

책입니다. 그냥 {정치에 대한 권리}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두 번째 책은 첫번째 책보다 분량이 다소 적긴 하지만, 첫번째 책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글들이 

수록돼 있고, 짧지만 감동적인 글도 몇 편 수록돼 있어서, 저로서는 아주 좋아하는 책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도 비교적 짧지만 아주 풍부하고 깊은 함축이 담긴 글인데, nation에 관해 기왕에 발리바르가 

쓴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을 것 같고,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문제제기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교정을 거치지 않은 글이니까 당연히 인용은 불허합니다.^^ 

-------------------------------------------------------------- 

알제리, 프랑스―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1995년 5월 18-20일 파리 국제철학대학에서 알제리 오랑 대학교 및 작가의 집과 공동 주최로 열린 “알제리-프랑스: 교차된 시선들” 콜로퀴엄 발표문. 󰡔리뉴Lignes󰡕 제 30호, 1997년 2월호에 발표되었다. ]


알제리, 프랑스―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이 콜로퀴엄 시작 이래 나는 우리가 계속 해서 이 질문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 제목은 확실히 도발적인데, 왜냐하면 그에 대한 답변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알제리] 독립에 대해 새삼 왈가왈부하고 싶어 할 것이며, 알제리 해방 전쟁의 의미와 효과를 “고쳐réviser” 보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지중해 이쪽과 저쪽에서 알제리와 프랑스는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 두 나라는 진정으로 두 개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곧 각자는 진정으로 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알제리는 아직도 너무 “프랑스적”이거나 프랑스화되어 있고, 프랑스는 이미 너무 “알제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 유감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때에 이런 도발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비가역적 이원성이라는 시공간적 또는 사회시간적 관념이 탈식민화의 표시가 아니라 역사의 지속적인 식민화의 표시라면,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재 알제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우리는 “프랑스 이전과 이후에”, “독립 이전과 이후에” 알제리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 묻게 되지만, 또한 우리는 그에 못지않게 “알제리 이전과 이후에” 프랑스 인민의 역사 및 프랑스 국가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알제리와 함께, 그리고 알제리에 맞서 이루어진 것(이고 또 분명 항상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질문들을 아마도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는 셈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억압된 어떤 것의 복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우리 정세의 본질적 측면인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민화도 탈식민화도 소멸되지 않으며, 그와는 정 반대다. 그것들은 이러한 성찰의 소재 자체를 이룬다. 그것들은 교차된 시선들이라는 문제의 핵심에 존재한다. 우리가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를 각각 고립시켜서, 그리고 특히 서로 상반된 것으로서 다시 사고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역사를 동일한 것으로 다시 사고할 수 있을까? 더욱 더 그렇지 않다. 분명히 상호성은 이러한 극단적 양상들 중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호성이란 무엇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해, 프랑스가 자신 안에 품고 있는, 하지만 대부분 부인하고 있는 타자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탈동일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탈동일화 없이는 민주주의 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 랑시에르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도,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들의 국적 때문에, 경계의 저쪽으로 넘어가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렇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또한 알제리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성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알제리 자신의 필수적인 탈동일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질문해보거니와, 이러한 탈동일화하는 담론들―각자가 자신을 가두는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구성하는 타자성을 인정하려고 시도하는 그러한 담론들―은 하나의 유일한 담론 또는 적어도 하나의 공통의 담론, 공유된 담론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상호성의 양식을 찾아서는 안되고, 고통스러운 경험의 조건 자체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전적으로 일반적인 문제, 오늘날의 국제주의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데리다가 최근에 말했듯이 “새로운 국제주의”에 대해 말을 한다면, 이러한 국제주의의 언어는 무엇이 될까? 고전적인 국제주의는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간주된 “계급 의식”이라는 관념에 의지해 있었다. 다른 이들―활동가들이든 지식인들이든 간에―은 모든 인민에게 공통적인 언어를 만들어내려고 했다(이 언어는 의미심장하게도 에스페란토esperanto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메타 담론 내지 상위의 의식 또는 “중립적” 전달 매체를 구성하려는 이 모든 시도들은 다소간 완전하게 실패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시도들이 상황들 및 갈등들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국제주의가 언표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변하지 않고서는 국제주의는 전혀 생겨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 사이의 역사적 상호 관계 및 역사와 국민 형태가 맺고 있는 관계 자체를 미증유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시기가 강제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알제리와 프랑스의 역사, 이 두 개의 이름이 가리키는 실재들 사이의 독특한/단일한 관계인 그 역사는 우리에게 “국민”이라는 개념 및 그 용법과 한계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알제리, 프랑스: 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라고 써놓고서 내가 처음에 하려고 한 것은 단지 한 가지 가설적 진리의 요소, 곧 소속의 격렬한 분열 속에 존재하고, 알제리의 “프랑스파Hezb I França”나 프랑스의 “마그레브의 침공” 같은 끔찍한 정식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러한 요소를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이 두 국민이 실은 하나를 구성할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둘을 이루는지 묻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각의 국민 자신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 묻는 것(이는 프랑스만이 아니라 알제리에 대해서도 타당하다)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질문들은 프랑스와 알제리 관계의 독특성에 따라(비록 이러한 관계가 역사상 유일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늘날 객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이레)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하나 또는 두 개의 국민들”을 형성하며, 각각의 경우 이런저런 식으로 답변할 이유들이 존재한다. 르네 갈리소René Gallissot는 몇 년 전에 이런 시각에 따라 “프랑스ㆍ알제리 혼합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는데, 이것은 흥미로운 정식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두 개의 역사적 실재의 비분리 내지 비배제를 표상하기 위한 또 다른 형상/도형figure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너무 연속적인 데다가 충분히 갈등적이거나 변증법적이지도 못한 “혼합체”라는 형상이 아니라 현대 기하학자들이 “프랙탈”이라고 부르는, 불완전 경계frontière non-entière라는 좀더 추상적인 형상이다.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국민적 소속의 차원들이 필연적으로 하나나 둘 같은 정수/완전수nombre entière에 의해 표상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적어도 수적 알레고리라는 명목에 따라, 함께 취해진 알제리와 프랑스는 둘이 아니라 하나 반을 이룬다고 제시해야 한다. 마치 각자가 서로 더해질 때, [알제리와 프랑스 각자가] 항상 미리 타자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만약 함께 취해진 알제리와 프랑스가 절대로 둘을 이루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그것들이 서로 공통의 인구를 공유하기 때문일 수는 없다(비록 이러한 공유의 사실이 중요하다 해도 그렇다). 현행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인정되는(곧 약간의 입법의 변화만으로도 쉽게 이중 국적자가 되거나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이중 국적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은 좀더 일반적인 질문에 준거한다. 사실 산수는 국민 형태 그 자체 또는 국민 국가 구성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통일성/단일성 및 몇 가지 동일화의 특징들 내지 “단선적 특징들traits unaires”(라캉)―문화적이거나 역사적인 지표이든 아니면 정초적 사건 등이든 간에―로부터 자신을 세거자신을 열거한다. 동시에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속하는” 개인들을 센다. 이것이 바로 국상학(國狀學)/통계학statistique, 곧 “국가 과학”의 기원인데, 이것은 처음에는 “정치적 산수”라고 불렸다. 좀더 근저에서 본다면, 국민들은 방금 우리가 길게 언급했던 주체화 과정을 통해, 국민들 자신에게 속한다고 간주되는censés(또 그렇게 집계되는recensés) 이들이 그들 스스로 하나를 이룬다고 셈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제도적 현실은 절대적으로 우회 불가능한 것이다. 이 현실은 역사 속에서 국가의 지배력을 표현해준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나는 결론에서 시민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 점에 대해 다시 다룰 것이다)는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양자 택일, 곧 국가의 관점을 택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하는 양자 택일에 그칠 수는 없다. 마치 국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국경들은 과거의 유물이라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적 셈/고려compte에서 출발하여 개인들 및 집단들을, 국가에 의해 개인들 및 집단들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셈하는/고려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단순한 방식으로 “정수”의 방식으로 셈할 수는 없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불확실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곧 어떤 역사적 시기에 최대의 확실성이 추구되고 또 선언되는 곳에서 자주 이러한 확실성은 말하자면 “강압”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알제리의 현재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가능성, 착종의 가능성들과 마찬가지로 고립의 가능성들도 재검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기에 어떤 가능성들이 다른 가능성들을 대신하여 부과되고, 또 왜 그러한 가능성들이 특권화되는지 질문해봐야 한다. “알제리 전쟁” 기간 동안 제르멘 틸리옹Germaine Tillion은 미뉘Minuit 출판사에서 󰡔상호 보완적인 적들Les ennemis complémentaires󰡕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이 표현에 찬성하지는 않았다. 이 표현은 둘로 분할되는 통일체라는 관념과 하나로 융합되는 이원체라는 관념을 동시에 차례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또는 지중해 양쪽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전개 과정을 장기적으로 파악하는지 여부에 따라 이 두 가지 관념을 차례대로 동시에 원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중해 연안 양 편의 모든 민족주의자들―이 표현을 순전히, 정치에서 국민의 우선성을 인정하고 방어하는 사람들로 이해하기로 하자―은 자연히 둘로의 분할이라는 형상을 특권화했다. 이들 모두가 동일한 진영에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여기에서는 그들 중 몇몇 사람이 특히 흥미롭다. 우리는 1957년 출간된 레몽 아롱Raymond Aron의 󰡔알제리의 비극La tragédie algérienne󰡕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입장의 탁월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레몽 아롱이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리고 그의 정치 철학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시기에도 국가와 국민의 필연적 동일성에 대한 옹호자였기 때문에, 그는 알제리와 프랑스가 “하나”를 이루지 못하므로 필연적으로 “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국제주의자들은 가장 복잡한 입장, 심지어 가장 애매한 입장을 택했다. “이름 없는 전쟁”(베르트랑 타베르니에Bertrand Tavernier가 자기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던 표현을 다시 사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전쟁은―적어도 프랑스 쪽에서는―결코 “대외 전쟁”으로도 “내전”으로도, 곧 이원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통일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지칭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기간 동안, 이 질문은 분명히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결국 탈식민화는 하나라는 거짓된 단순성에서 둘이라는 거짓된 단순성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요컨대 이는 프랑스 전통 속에 아주 깊이 기입되어 있는 시민권과 국적의 등식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등식이 쇠퇴의 시작에 접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불가능한 고립으로 되돌아갈 경우에만 상호 의존을 설립하거나 아니면 제도적 상호 삼투를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여러분은 왜 내가 전적으로 “국민”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는지 당연히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역설적인 언표를 통해 답변해보겠다. 곧 그것은 이 용어가 가장 중의적인équivoque 용어이기 때문이다. 인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들 중 누구도 “알제리 인민”과 “프랑스 인민”은 하나를 이룰 뿐이라고 말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두 인민 각자에 고유한 내적 다양성을 더 잘 의식할수록 우리는 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알제리와 프랑스가 단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거나 형성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두 개의 인민이고 두 개의 국가이며, 그들 각자는 오늘날의 국가들이 그런 것처럼 상대적으로 주권적이고 독립적이다. 하지만 이 둘이 정확히 두 개의 국민인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들이 (지중해 양쪽에서) 프랑스를 알제리로부터, 그리고 알제리를 프랑스로부터 절단하려고 하는, 곧 어떤 식으로든 완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1962년의 [알제리 해방] 과정을 “완수하려고” 하는 순간에, 사람들은 이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이 때문에 나는 늘 동일한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수정”하지 않고서도, 곧 미완의 탈식민화를 주장하지도 않고, 다소간 프랑스 제국의 환영들에 사로잡힌 “형성 중인 국민”으로서의 알제리라는 저 유명한 테제로 돌아가지 않고서도 이러한 상황을 사고할 만한 수단들을 지니고 있는가?

***

여기서 적절한 방식에 따라 몇 가지 질문들, 곧 사회정치적 범주들로서의 인민들 및 인민이라는 질문, 국가 헤게모니의 구성이라는 질문, 상호적 민족주의라는 질문 및 민족주의의 쌍이라는 질문을 검토해봐야 한다.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짧게, 세 가지 가설을 언급해보겠다.

첫 번째 가설은 프랑스-알제리 쌍은, 그것이 수반하는 동일시 및 경쟁 효과들과 더불어 프랑스-독일 쌍만큼이나 프랑스 현대사에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국적인 흔적이 띠고 있는 예외적 모습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오늘날 세계 전체에서 국민이 지닌 제국적 모습의 지양을 목격하고 있음에도, 나는 알제리와 프랑스의 경우에는 1962년의 탈식민화가 이러한 쇠퇴를 낳는 데 그 자체로 충분했다고 믿지 않는다. 30여 년 뒤에 와서야 우리는 어떤 지점까지 서양 민족들의 구성에서 제국적 형식이 필수적이었는지 좀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탈식민화 및 새로운 국민들에 대한 인정이 의미했던 바에 대해서도 좀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 알제리에서 우리는 전면적 부인의 대상이 되었던 극단적 상황과 관계하고 있었다. 알제리 영토를 “프랑스의 구역”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프랑스는 자신을 구성했던 제국주의적 지배를 부인했으며 피지배자들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인했다. 이는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차별과 억압 형태들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알제리] 문화를 뿌리뽑으려는 시도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이 제국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제국이 항상 아직도, 물리적ㆍ법적 분리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국민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특히 프랑스 및 알제리의 사회 공간 속에서 행정적ㆍ문화적 정책들에 의해 다문화주의가 부인되고 억제되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프랑스와 알제리 양쪽에서] 현상은―식민화 자체가 그랬듯이―분명히 대칭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양쪽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알제리 쌍에서 무엇보다 국민과 제국의 이러한 상호 소속의 지속적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지배 장치domination으로 구성하게 되는 국민들의 제국주의의 제거할 수 없는 “흔적”을.

나의 두 번째 가설은 우리가 사후에, 한 세대 이후에 이러한 주권 형태의 붕괴의 결과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 곧 비록 허구적인 방식이라 할지라도 제국들이 아닌 국민들은 존재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은 엉뚱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진정한 국민들이 제국 형태에서 해방되고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제3 세계라고 불렀던 새로운 국민들은 자신들을 반제국적인 국민들로 구성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 국민들 역시 그 자신들의 수준에서, 심지어 [이전보다] 축소된 공간에서조차 제국주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모면하지 못했다. 알제리 제국주의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전의 식민주의적 국민들의 경우는 자신들 내부에서 종족적ㆍ문화적 차별 형태들을 계속 영속시켜 왔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세계적인 차원의 보편성의 담지자라는 주장을 다시금 제기했다. 이 후자의 국민들은 제국 없는 제국주의 국민들이 된 셈이다. 분명히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는데, 단 (유엔 헌장이 이상적으로 명문화한 것과 같은) 전 세계의 국민들 사이의 형식적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호 의존 및 헤게모니의 새로운 관계들(이러한 관계들을 어떻게 개념화해야 할 것인지는 남겨진 과제다)을 위해 사라지고 있다.

이로부터 나의 세 번째 가설이 나오는데, 이것은 국경이라는 통념 및 프랑스와 알제리의 경우에 국경이 지니는 아주 특수한 모습에 관한 것이다. 나는 프랑스-알제리 집합 그 자체가 하나의 “국경”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물론 매우 두껍고 복잡한 국경으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두 개의 자율적 주권들 사이의 경계선이라는 이론적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알제리 집합이라는 이 국경에서 일어나는 마주침과 갈등은 지중해 공간 전체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과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세계 경제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이러한 경계를 세계 경계라고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속의 모든 경계들이 그 자체로 세계 경계들, 곧 북쪽과 남쪽이 각각 [상이한] 사회 및 경제 유형들임과 동시에 적대적인 문명 유형들로서(이 경우에는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균열에 뒤따르는 유럽과 아랍 사이의 “차이”가 문제다) 서로 뒤얽혀 있는 경제ㆍ문화적 경계들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알제리가 각각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상당한 두께를 지닌 이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는가? 시기에 따라 다소간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단순한 인접 관계가 아니라, 이중적 제약, 곧 이 두 집합체를 분리해야 할 필연성과 그 불가능성이라는 이중적 제약의 강화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강화는, 항상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항상 어렵기만 한 정치적 인정을 추구하는 역설적 개인들, 곧 이전에는 “무슬림 프랑스인”이라고 불렸고 오늘날에는 “프랑스 무슬림”이라고 불리는 개인들의 증가로 표현된다.

프랑스와 알제리를 결정적으로 분리하기는커녕 양자를 통합하는 “세계 경계”는 이 양자가 함께 국경의 경계선 자체 위에서 갈등적인 위치를 차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제 우리는 식민화와 탈식민화가 사후에 알제리 사회 내부와 프랑스 사회 내부에 산출한 유산들 및 효과들의 독특한 의미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콜로퀴엄 도중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알제리 안에 현존하고 있듯이 알제리는 프랑스 안에 환원 불가능하게 현존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서 “이질적인 몸체”가 단지 물리적으로 현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 새겨져 있고 동일성 구성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하다. 프랑스와 알제리 각자는 내적 차이, 자기 자신과의 본질적인 비동시대성으로 인해 변용되어affectant 있다.

이러한 비동시대성은 국가 속에서 사회의 대표/재현 및 역으로 국가에 의한 사회의 “국민화”를 작동시키는 주요 제도의 중심에 존재한다. 우선 언어의 경우, 언어 정책 및 공적 공간 내에서 상이한 언어들의 위치가 문제다. 이는 알제리에서 정치의 언어는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인데(이는 가장 가시적인 문제다), 왜냐하면 알제리에서 프랑스어가 어느 정도까지나 대중적인 권리 요구 및 지적 기획의 매체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게 되면 놀라게 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서 일종의 이상적인 프랑스에 대한 준거(또는, 때로는 “자코뱅주의”나 “정교분리”로 불리기도 하는 공화주의)가 영속적으로 작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프랑스의 공적 공간 내에서 아랍어와 아랍주의의 위치라는 잠재적인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중적인 언어(“방리유”의 언어)의 진화에서 아랍어가 미친 영향이 한 가지 징표인데, 교육과 지식 생활에서 아랍어 및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아랍 문화의 위치라는 질문 역시 마침내 제기되고 있다(알랭 드 리베라Alain de Libera의 󰡔중세 시대의 사유Penser au moyen âge󰡕는 이러한 경향을 눈부시게 입증해준 바 있다).

가족 구조 및 세대라는 문제는 언어보다도 더 근본적이다. 이 문제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별을 근원적으로 뒤흔들면서 동시에 행정적 관행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 도전을 제기한다. 콜로퀴엄 첫째 날 압델와하브 메데브Abdelwahab Meddeb는 오늘날 알제리에서 알제리의 동일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모종의 불가능성을 묘사하기 위해 “계보의 단절”이라는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나는 또한 그와 상관된 질문을 제기해보자고 제안했었다. 곧 계보의 단절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또는 봉합될 수 있는가? 수많은 프랑스-알제리 가족들 및 그 양쪽의 “친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선 “사적” 수단들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그들의 “동일성”은 정확히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동일성은 아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정치적 결과들을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들 중에서 특히, 다른 곳보다도 미디 지방[“미디 지방Midi de la France”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지역을 가리킨다.]에서 민족주의적인 반감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는 폭력적인 결과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이는 한편으로는 독립 전쟁 말기에 알제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의 강제적인 본토 이주와 다른 한편으로 이민 노동의 전진적인 통합을 낳은 이중적 억압의 귀결이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회의 모든 계급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가족들에서 [프랑스인과 알제리인이] 서로 섞이고 있다는 사실도 존재한다(이 가족들은 프랑스와 알제리를 분열시키며, [동시에] 프랑스와 알제리가 서로 공유하게 만든다).

알다시피 가족들 자신에게는(그리고 아마도 국가들에게도) 거주와 교육, 행정부 및 경찰과의 관계 등과 같은 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 정책의 기조는 복잡성을 대폭 감소시키는 것, 곧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가 지닌 폭력성은, 비자와 “체류증”에 얽힌 수많은 비열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매일같이 목격하게 되듯이, 가족들을 도려내려는 영속적인 경향에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정치의 우위가 재긍정되는데, 단 이는 국민 국가에 대한 모종의 도덕적 탈정당화라는 상징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왜냐하면 국민 국가는 상상계 속에서는 일종의 커다란 가족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을, 가족들의 계보가 제도화되고 인정받고 보호받는 포괄적인 통일체로 나타낼 수 없는 순간부터 국가는 자신의 한계들에 직면하게 된다. 언젠가는 “사적인 것”의 구조들이 모든 “공적” 제도의 재생산 속에 연루되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어서는 사적 유대의 발전이라는 문제는 분명 구체적인 분석들, “미시 사회학적인” 또는 “미시 정치학적인” 분석들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분석들이 북쪽만이 아니라 남쪽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재검토 및 국민 주권들의 상대화라는 세계적 맥락―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노골적인 세력 관계로 표현된다(걸프 전쟁을 떠올려보자)―속에서 제시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어떻게 이러한 맥락이 “문화적” 대결들의 형태를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프랑스-이슬람 집합체 내부에서 이슬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면, 이는 특히 중요한 질문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심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마땅한 것은 어떤 측면인가? 그것은 식민화가 갑자기 억압하고, 심지어 말살했던, 그리고 오늘날 복귀하고 있는 특수주의로서의 알제리의 전통적인 이슬람주의인가? 지속적인 차별―곧 이슬람이 프랑스의 공적 공간 속에서 늘 그 대상이 되고 있고(알다시피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은 이러한 차별을 표현하기 위해 도발적이지만 적절한 “가톨릭적인 정교 분리catholaïcité”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바 있다), 필경 알제리에서의 프랑스에 대한 인식을 규정하고 있는―이 그러한 측면인가? 역으로 그것은 또한 모종의 보편주의 아닌가? 또는 이슬람을 통해 보편주의에 진입하는 모종의 방식이 아닌가? 이러한 방식은 명백히 이슬람 자신이 보편자 및 국민에 대해 역사적으로 제시한 특수한 표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특수주의 및 전통주의에 대한 너무 단순한 이미지들(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던 편견에 의해 늘 영향 받은)과는 무관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 친구인 모하메드 하르비Mohamed Harbi는 현재의 이슬람주의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 전근대적인 종교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는 점을 매우 강조했다. 어쨌든 그것은 이 후자의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화 과정이 맞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종교적인 것의 정치화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국민 형태 및 그것에 고유한 “시빌리테” 모델들의 위기는 명백히 이러한 세계적 위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깜짝 놀랄 만한,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모종의 동맹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와 특정한 과학ㆍ기술적 진보주의 사이의 동맹이다. “반(反)개화주의obscurantisme”라는 상투어구와는 대립적이게도, 적어도 어떤 경우들에서는 기술적 세계화로 진입하려는 열망과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에 대한 옹호 사이에 경향적인 통일성이 존재한다. 알제리에서는 이러한 동맹이 “프랑스파”에 대한 또는 프랑스적인 공간 및 프랑스적인 상상계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파리아[“파리아pariah”(프랑스어 표기로는 paria)는 원래 인도의 최하층 계급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요즘은 주변인 또는 지배적인 동일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 지식인들에 대한 사회학적 일반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고, 교육과 행정의 아랍화의 특수한 역사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보다는 오늘날 집합적ㆍ관국민적 동일성들이, 세계화의 맥락 속에서 일반적으로 미국화에 대한 대안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적어도 모종의 이슬람주의는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대체물 내지 보충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지배적인(유럽적이거나 서구적인) 자신의 모습에 맞서 보편성을 옹호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바로 여기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난폭하고 불쾌한 방식이지만, 보편성을 현시하는 서양식 관점에 깃들어 있는 특수주의의 요소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사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인권은 “서양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주장, 곧 이슬람에 준거하는 모종의 방식 안에도 인권 및 그 보편화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주장에 내재적인 모순은 또 다른 모순, 곧 서양의 열강들이 가로챈 보편자에 대한 전유, 보편자에 대한 해석의 독점이라는 모순에 대한 응답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무대는 결코 보편주의 대 특수주의들 간의 갈등의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허구적 보편성들 사이의, 보편성에 대한 적대적 주장들 사이의 갈등의 무대이며, 그리고 보편주의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갈등의 무대이기도 하다.

내가 방금 국민과 언어, 가족 내지 계보, 종교 및 보편성에 대해 제기해보려고 한 모든 질문들은 각각 경계라는 질문의 상이한 측면들이며, 이러한 측면들은 경계의 고유한 복잡성을 구성한다. 우리는 경계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또는 우리는 점점 더 그것에 대해 무지하게 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사실상 경계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경계는, 우리가 남쪽에서 보는지 북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은 알제리와 프랑스의 경우(및 아마도 다른 몇몇 경우)에 서로 겹치는 두 개의 시선은 서로에 대해 내면적인 것이 되었으며, 따라서 말하자면 경계 그 자체에 내재적인 것들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국경/경계가 정치적 공간과 맺는 관계가 전화되고 있는 조건들에 대해 질문해보도록 인도한다. 나는 시민권이 완전히 국민적 소속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가 없이는 정치가 없는 것처럼 국가 없이는 시민권도 없다. 그런데 초국민적 국가 내지 경계 없는 국가라는 관념은 오늘날 진정으로 일정에 올라 있지 않다. 역으로 관국민적 제도들이라는 관념은 뜨거운 현실성을 맞고 있다. 문제는 국가적인 국적이 시민권을 가두고 조건 지을 것인가 아니면 규정되어야 할 한도 내에서 시민권이 국적을 넘어서 그것을 상대화할 것인가 여부다. 어디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시민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시민권 제도가 우리로 하여금 모순적인 두 가지 요구, 곧 차이에 대한 권리라는 요구와 차이로부터 차이화할 권리라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줄 것인가?

나로서는 프랑스-알제리라는 쌍couple(또는 역사적인 결합couplage)이 우리의 성찰 및 우리의 정치적 실천의 특권적인 쟁점들 중 하나가 될 때에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또한, 이러한 쌍이 순수하게 이원적인 관계, 각자가 차례대로 선하고 악한 타자의 모습을 띠게 되는 대면 관계 속에서 돌고도는 일을 멈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인들과 알제리인들은 단지 자기 자신들 및 상상적으로 폐쇄된 자신들의 역사를 “탈동일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쌍” 역시 탈동일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세계화의 관점 속에 기입하는 일도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 삼고 있으며, 우리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경계가 더 이상 단지 행정적ㆍ경제적ㆍ문화적 경계가 아닌 이상, 또는 문명 원리들 사이의 경계가 아닌 이상 이는 더욱 더 필수적이다. 경계는 또한 폭력의 경계(또는 경계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알제리인들에게는 두 나라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그리고 심지어 국경을 넘나들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일이 절박한 문제인 데 반해, 많은 프랑스인들은 국경을 폭력의 분출로부터 거리를 두는 한 가지 방식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러한 국경의 강화를 자신들의 안전 및 정치 자체의 조건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특별히 위험스러운, 하지만 또한 맞서 싸우기가 특별히 어려운 미망이다.

반대로 나는 정치 및 민주주의와 동시에 사람들까지 살해하는 극단적 폭력의 확산은 또한 그 본질적인 일부에서는 국경의 강제 및 불가능한 봉쇄를 수단으로 한 국가에 의한 인구 정착과 격리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면서 반폭력의 정치(내가 시빌리테의 정치라고 부르는)를 옹호하고자 한다. 국경에 대한 치안적 관점, 곧 국경을 “방역선”으로 간주하는 관점 대신, 국경에 대한 정치적 관점 및 실천이 필요하다. 국경을 정치의 장으로 전위시켜서, 더 이상 국경이 모든 반항과 통제, 상호성의 권역 바깥에, 가장자리에 놓이지 않고 중심에 놓이도록 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개인들과 집단들이 오늘날 때로는 국경 이쪽에서, 때로는 저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말하자면 그들이 경계선 양쪽에 걸쳐 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탁월하게 비민주주의적인 제도, 그 자신은 결코 집합적으로 통제되지 않음에도 개인들과 인구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국경이라는 이 제도가 정치적 쟁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곧 그 활용 양상 및 전화를 협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믿기로는 바로 이것이 현재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알제리 쌍이라는 특권적인 형태로 이 질문과 마주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이러한 형태 안에서 이 질문과 대결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지중해 공간”이라는 아주 일반적인 관념―이는 하나의 역사 내지 하나의 문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역사들 및 문화들 사이의 영속적인 만남 및 갈등의 지점을 가리킨다―이 다시 한 번 문명 기획의 지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민족과 국민
    from Droit de cité (씨테에 대한 권리) 2009-09-02 07:32 
    우리가 (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국민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존재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근대'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국민'이 존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도,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봤을 때도  어딘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