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제이북스에서 제가 번역해서 냈던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가  

조금 있으면 절판된답니다. 사실 재고가 거의 다 소진됐고, 남은 책들은  

책 표지가 없거나({헤겔 또는 스피노자}) 아니면 책 표지가 약간 훼손되거나  

바랜 책({스피노자와 정치}) 뿐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제이북스 측에서 이 책들을 대폭 염가 판매하겠다고 하네요.  

연락을 해봤더니 권당 1만원 내외에서 판매한다고 하니까  

책 값이 비싸서 아직 이 책들을 못구하신 분들은  

직접 이제이북스로 연락해보시기 바랍니다.  

 

전화번호: 02- 333- 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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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9-02-18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나 둘 다 소장도서네요^^자랑질~

balmas 2009-02-19 03:2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해이] 2009-02-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다 소장도서입니다. 물론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ㅋㅋㅋㅋ

lefebvre 2009-02-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 직접 가서 <헤겔 또는 스피노자>를 구입했네요! 너무 싸게 사와서 좀 민망했다는...... ^^;;

balmas 2009-02-20 00:36   좋아요 0 | URL
싸게 구입하셨다니 잘 됐습니다.^^

hkcsp 2009-02-2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배송료도 있나요?
제가 사는 곳은 지방이라서 우편 배송을 요청해야 할 것 같은데...

balmas 2009-02-20 23:10   좋아요 0 | URL
지방에 사시면 아마 배송료를 받을 것 같은데, 책값은 그리 비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 한번 직접 문의해보시죠.^^

열매 2009-02-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출판사가 요즘 구간들을 45%세일해서 팔더군요.
곧 절판될 것 같아 미루어오던 몇권 구입했는데,
문의해보니 위에 언급된 책들을--표지가 없거나,약간 구겨졌다고--
50%에 출판사 부담, 택배로 보내준다고 하시더군요.

balmas 2009-02-22 01:0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구매를 원하는 분들께 좋은 정보네요.^^

콩세알 2009-02-2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스피노자와 정치>를 사려고 출판사에 전화해 보았는데 <스피노자와 정치>는 품절이 아니라구,
<헤겔 또는 스피노자>만 그런 방식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하시데요. 이 책은 있는데 말이죠. ^^;;

balmas 2009-02-23 21:2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직접 출판사로 연락해보는 게 좋겠군요.^^

ed hardy 2010-07-2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가

조금 있으면 절판된답니다. 사실 재고가 거의 다 소진됐고, 남은 책들은

책 표지가 없거나({헤겔 또는 스피노자}) 아니면 책 표지가 약간 훼손되거나

바랜 책({스피노자와 정치}) 뿐이라고 하네요.
 

 

서산철학강좌는 무료공개강좌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많이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는 지난 2005년 2학기부터 66회에 걸쳐 “서산철학강좌”라는 철학 공개강좌를 진행해 왔습니다. 철학을 물론 학제간의 대화를 통해 연세대학교 안팎의 학생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동서양 사상의 전통과 흐름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서산철학강좌”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학 사회에 부재했던 개방적인 학술 강연 문화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2009학년도 1학기에는 “철학과 정신분석”이라는 주제로 다섯 차례의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목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외솔관 110호에서 열리는 “서산철학강좌”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시간: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8시 30분
                                        장소: 연세대 외솔관 110호
                                        주최: 연세대 철학연구소         
                                        후원: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2009학년도 1학기 서산철학강좌

주제: 철학과 정신분석

제67회 (3월 12일)
자크 라캉:
욕망하는 주체 - 라캉사상의 현대적 의미
김 석 (건국대)

제68회 (3월 19일)
루이 알튀세르:
스피노자와 정신분석 사이에서
진태원 (고려대)

제69회 (3월 26일)
질 들뢰즈:
익명적 욕망과 무의식
서동욱 (서강대)

제70회 (4월 2일)
주디스 버틀러:
비정체성의 젠더 계보학
조현준 (경희대)

제71회 (4월 9일)
슬라보예 지젝:
유물론자의 신학?
민승기 (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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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9-02-18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해당 학자의 번역으로 뵈었던 분들이네요. 꼭 가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실제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시간에 맞춰 찾아 가면 되는 건가요? 3월 19일날 가면 뵐 수 있나요? :)

balmas 2009-02-18 15:23   좋아요 0 | URL
예, 그날 시간 맞춰 오시면 됩니다. :-)
저는 사회를 맡아서 5회 모두 출연합니다. ^^;

기인 2009-02-1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공개무료 강의인가요? ㅎㅎ 들어보고 싶네요. :)

balmas 2009-02-18 17:20   좋아요 0 | URL
예, 무료강좌니까 많이들 찾아주세요. :-)

열매 2009-02-2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008년 가을학기 아감벤과 바디우때 갔었는데, 사회자인 balmas님의 활약이 너무 미미하셔서 약간 서운했네요^^;;
몇번 수업들었던 민승기 선생님의 강의를 추천합니다.
민선생님은 지젝과 데리다에 관한한 최상의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봄바람에 산들거리며 가보고 싶은 강연들입니다.
강연 끝나고 짧은 차 한잔의 시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만^^;;

balmas 2009-02-20 23: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회자 역할은 그저 강연자가 잘 강연할 수 있게 해주고 청중들 질문 받아주고 하는 거 아닌가^^ 서운하셨다니 이번에는 아크로바트 ... 는 못하니까 줄넘기라도 해볼까요? ㅋ
서산철학강좌 끝나고 나서 늘 강연자 선생님 및 연대 철학과 선생님들과 간단히 뒷풀이를 하는데
원하시면 같이 가셔도 됩니다. 근데 재미는 보장 못합니다. ㅎㅎ

moncler vest 2010-07-2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기부터 66회에 걸쳐 “서산철학강좌”라는 철학 공개강좌를 진행해 왔습니다. 철학을 물론 학제간의 대화를 통해 연세대학교 안팎의 학생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동서양 사상의 전통과 흐름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서산철학강좌”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학 사회에 부재했던 개방적인 학술 강연 문화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전출처 : balmas님의 "부리님 대단하시네요"

답변이 너무 짧다고?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ㅎㅎ 근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이런저런 기회에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이런저런 블로그에서 이런저런 인물평들이 많이 나오지. 개중에는 좋은 평들도 있는데, 대개는 대상에 대한 좋은 평가라기보다는 자기 정념의 난폭한 표출에 불과하지. 질투나 시기심, 허영, 과시 등등. 좀더 많은 경우는 자기 정념의 표출도 아니고 그저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거, 출처도 분명치 않고 근거는 더 부족한 험담이나 뒷담화 등이지. 어린 학생들일수록 이런 식의 인물평에 민감한 경우가 많은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중 하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거. ㅎㅎ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거든 직접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면 되지. 그 사람에 대해 누가(가령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걸 궁금해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에 대한 뒷담화 잘하는 사람치고 좋은 지식인일 확률이 희박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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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

힘 내시고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계가 사회보다는 깨끗하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그래도 부리님 같은 분들이 계시니 다행입니다.  

알라딘의 양심 부리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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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4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02-15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ㅎㅎ 학계도 다 사람사는 곳인데, 뭐 다 그렇죠.

2009-02-15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02-15 22:31   좋아요 0 | URL
읽으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2009-02-16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02-16 00:38   좋아요 0 | URL
답변이 너무 짧다고?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ㅎㅎ
근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이런저런 기회에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이런저런 블로그에서
이런저런 인물평들이 많이 나오지. 개중에는 좋은 평들도 있는데, 대개는 대상에 대한 좋은 평가라기보다는 자기 정념의 난폭한 표출에 불과하지. 질투나 시기심, 허영, 과시 등등. 좀더 많은 경우는 자기 정념의 표출도 아니고 그저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거, 출처도 분명치 않고 근거는 더 부족한
험담이나 뒷담화 등이지. 어린 학생들일수록 이런 식의 인물평에 민감한 경우가 많은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중 하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거. ㅎㅎ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거든 직접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면 되지. 그 사람에 대해
누가(가령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걸 궁금해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에 대한 뒷담화 잘하는 사람치고 좋은 지식인일 확률이 희박하다는 거.

2009-02-16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실 이건 서평이라기보다 소개글에 가깝다고 해야 하는데,  

[시사인]에서 요청이 들어와서 지난 주에 출간된 {뉴레프트리뷰}에 대한 서평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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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사실, 사고, 사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세대 중 한 명인 필자에게 [뉴레프트리뷰]는 화려한 아우라가 휘감고 있는 눈부신 지적 권위의 상징이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에릭 홉스봄, 프레드릭 제임슨 등과 같은 영미권의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니라 테오도르 아도르노, 루이 알튀세르,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유럽의 저명한 사상가들의 글을 ‘원전으로’ 처음 접한 곳이 바로 이 잡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2000년 이후 새출발을 선언하면서 좌파적 색채가 퇴색했다는 평가들도 있지만, 여전히 [뉴레프트리뷰]는 화려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졌다. 페리 앤더슨의 폭넓은 시야, 서브프라임 사태 같은 현재의 화급한 쟁점에 대한 로빈 블랙번의 깊이 있는 분석, 또 장밋빛 미래, 꿈의 도시로 각광받던 두바이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마이크 데이비스의 뛰어난 통찰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곳이 이 잡지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사회주의의 역사를 매체론으로 재조명하는 레지 드브레의 신선한 시각, 자본주의 사회의 미학적 형식의 모순들에 대한 테리 이글턴의 명민한 탐색, 칸트에서 리오타르에 이르는 미학적/감성적 전위 운동에 대한 자크 랑시에르의 탁월한 해석은 [뉴레프트리뷰]가 건조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넘어 문화적ㆍ감성적 삶의 맥박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동안 국민국가적인 틀 안에 갇혀 있던 사회정의의 문제를 범세계적인 시야에서 재구성하려는 낸시 프레이저의 야심찬 기획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감벤에 이르는 생명정치 노선에 대한 맬컴 불의 간명한 지도 그리기는 이 학술지의 저변에 흐르는 철학적 질문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한국어판 창간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알랭 바디우와 커식 선더 라한의 글이다. 사르코지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이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를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 속에서 풀어내는 바디우의 글은 과연 대가다운 솜씨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진 인류학자인 선더 라한의 글은 생명자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창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 분석을 21세기 생명공학의 영역으로 확장ㆍ쇄신하고 있다. 이 젊은 거장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낯 뜨거운 자화자찬이라고 힐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것이 ‘사실’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18편의 글을 묶은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가 출간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더욱이 그 글들이 한결같이 뚜렷한 개성과 높은 지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영어판 [뉴레프트리뷰]의 명성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실’은 ‘사고’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역시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고’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2.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의 출간은 혹시 사실은 사실이되, 사고로서의 사실인 것은 아닌가?  


사실 그럴 만한 소지는 다분하다. 혹시 이 한국어판은 영어판 필자들의 화려한 면면을 내세워 그저 책이나 팔아먹으려는 어두운 거래의 소산이 아닐까? 아니면 국내 좌파 담론의 실종 내지 약화의 타개라는 그럴 듯한 구실을 내세워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교묘한 수단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지적 권위주의 내지 심지어 지적 제국주의에 대한 무분별한 맹종이 아닐까? 사실 타리크 알리의 「한국어판 서문」 마지막 문장 “한국어판의 발행은 우리의 목소리가 극동에까지 이르렀음을 뜻하며, 이를 계기로 중국어판과 일본어판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에서 그들의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을 느끼는 독자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극동’이라는 유럽중심적인 지정학적 범주 사용을 껄끄럽게 느끼는 이들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또한 ‘사건’일 수도 있다.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이라고 한다.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가 단순한 ‘사실’을 넘어, 위험한 ‘사고’의 함정을 피해,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굳이 독자적인 편집위원회를 꾸려서 우리의 상황에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글들을 따로 가리고 추린 다음, 여러 차례에 걸친 교열과 교정을 거쳐 책을 펴낸 것은, 한국어판이 영어판의 단순한 복제판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출판사와 편집위원회의 공통의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결국 무위에 그치기는 했지만, 한국어판을 처음 기획할 때 다른 외국 학술지의 좋은 글들도 함께 수록하려 하거나 한국 필자들의 글을 실으려고 했던 것은, 이 책이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가 되기보다는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가 되어야 하며, 그것이 이 책을 좀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의 발로였다. 
 

그렇다면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는 역설적인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한국어판은 일찍 소멸할수록 그만큼 더 좋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 한들 [뉴레프트리뷰]는 외국인, 그것도 주로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펴낸 학술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서 정기적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출판사와 편집위원회의 뜻이 아무리 갸륵하다 해도 역시 옹색한 형편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가 기록해야 할 진정한 ‘사건’은 아마도 자신의 소멸이라는 사건일 것이다. 더는 존재의 이유가 없어질 때, 더는 출간의 필요성이 없게 될 때 한국어판은 자신의 소임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한국어판에 대한 꼼꼼하고 능동적인 독서는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외국 학술지 한국어판의 출간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사건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자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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