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류우님의 "류우님이 작성하신 방명록입니다."

발리바르의 말을 역사적으로 이해한다면, 박상현 씨가 이야기한대로 어떤 상징 체계의 변혁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형제애]" 같은 것들은 혁명 이후 지배적인 정치적 상징체계가 되죠.

그런데 만약 이것을 마르크스의 관점 그대로, 곧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고 이해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것들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계급 지배의 도구 및 피지배 계급에 대한 기만/조작이라는 함의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이념은 봉건 사회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나름대로 진보적이지만, 그래도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결국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알튀세르가 수행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조 작업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알튀세르의 개조가 가지는 중요한 함의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는 단지 기만이나 조작이 아니라, 독자적인 물질적인 실존과 메커니즘을 지닌 적극적인(positve), 더 나아가 구성적인 층위라는 점입니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가상이나 신비화, 왜곡으로 보는 경우와 달리 이데올로기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존을 부여하게 되고, 사회 구조 및 계급의 구성과 재생산 및 개인들이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 편입되고 그 속에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효과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알튀세르도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는 마르크스의 정식 그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애매성 중 하나인데,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을 역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와 진정한 정치(곧 프롤레타리아 혁명)를 계속 대립시키죠. 이 후자와 같은 경우 진정한 정치는 정의상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또 이데올로기를 초과하려는 경향을 지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의 물질성만을 계속 주장할 경우에는, 도대체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왜 이데올로기냐라는 물음, 다시 말해 (영원한 것, 물질적인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와 정치, 곧 계급투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부딪치게 되는데, 알튀세르의 관점이 기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주장은 이로부터 생겨나게 됩니다.

발리바르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피지배 계급의 이념의 보편화다"라고 말한 것은 알튀세르의 개조 작업의 의의를 보존하면서도 이러한 애매성을 전위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상징체계를 피지배 계급의 이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게 되면, 우선 마르크스와 같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이념을 기만이나 조작, 왜곡으로 보지 않고 그것들이 지닌 적극적 함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할 수 수 있게 되죠. 왜냐하면 이러한 상징들은 지배 계급의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 대중들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곡이나 기만, 조작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이 상징들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들을 제도적ㆍ계급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의 문제가 됩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상징들은 지배 계급의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또 피지배 대중들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준거가 된다는 뜻이겠죠.

류우님이 질문한 문제로 되돌아간다면, 혁명 이후 유럽의 정치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죠.

첫째는 상징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문제가 있겠죠. 곧 “자유, 평등, 박애”라는 상징들 자체는 처음부터 온전한 형태 그대로 정치의 이념으로 제시되었다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겪으면서 정치의 상징들로 부각된 것이고, 또 그 이후에도 다른 상징들과의 지속적인 갈등 과정을 겪는 게 아닌가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자유”보다는 “질서”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보수주의가 그렇겠죠), “평등”보다는 “능력”이나 “독특성/개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박애”의 남성 중심주의를 문제 삼는 경향도 있겠죠. 이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의 갈등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상징들이 제도적ㆍ계급적으로 전유되는 방식들이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들을 구현하는 다양한 제도적인 장치들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가령 프랑스 혁명 이후 선거 제도가 전개되고 변화되는 과정이라든가, 시민권이 변화 및 확장, 발전되어가는 과정, 또 교육 제도의 상이한 전개 과정들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두 가지의 역사는 서로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고, 또 사실 각각의 역사를 분석할 때 다른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참조하는 것이 좀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석을 제시해줄 수 있겠죠.

이 분야에 관해서는 많은 책들이 존재하지만, 우선 발리바르의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죠. 그리고 혹시 불어를 할 줄 안다면, 첫 번째 역사에 관해서는 Florence Gauthier, Triomphe et mort du droit naturel en Révolution : 1789-1795-1802 같은 책이나 아니면 좀더 폭넓게는 Francois Chatelet, Histoire des ideologies, vol. 1-3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되겠죠. 두 번째 경우에는 Robert Castel의 여러 저작들 및 Pierre Rosanvallon의 저작들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서는 아니지만, T. H. Marshall의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같은 책도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을 수 있겠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17세기 이래 서양의 정치사, 지성사, 법사학/법제사, 경제학설사 등등이 모두 이 문제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자면 엄청 분야가 넓죠. 문제의식을 잘 가다듬어서 폭넓으면서 아주 구체적인 그런 연구를 한 번 해보세요. ㅎㅎㅎ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02-02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입센의 작품들을 좀 읽어볼 일이 있어서 검색을 해보니까

몇 가지 작품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네요.

원문 번역은 아닐 테고 대부분 영어나 일어 중역본인 것 같은데,

개중에서 그래도 나은 번역본은 어떤 것인지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무리 출판사에서 도서할인전을 한다는군요.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일 듯해서 광고를 올려봅니다.

저도 스피박 책을 좀 사봐야겠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회화와노동
2008.01.30 |379호


 



민주노동당의 혁신/분당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대중운동의 재건과 계급형성을 위한 운동의 재편이 필요하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87년의 투쟁성과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합의주의’와 ‘의회주의’로 상징되는 제도화 전략의 실패라면, 그것을 대표하는 ‘민주노총-민주노동당-한국진보연대’로 고착화된 상층연대를 넘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대중운동의 재건과 급진화,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새로운 질서 재편이 절실하다. 사회운동(민중운동)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다양한 운동노선과 경향들을 고려할 때, 기존의 정파갈등을 상대화하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수평적 연대연합운동을 구축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당 운동을 특권화하고 사회운동을 주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당과 사회운동 모두가 개방적으로 지배 세력의 신자? ?聆퓻?노동자분할 전략에 맞서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는 ‘대중운동’의 재건․형성을 목표로 하는 연대연합의 운동을 구축하고, 대중운동에 대한 공동의 개입과 실천을 전개하며, 정당과 사회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헤게모니 전략을 구성해야 한다.





겨울 사회운동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집중]설 집중 이랜드 투쟁 계획


[성명]보호소에서 병 걸린 이주노동자 수바수에 대한 적절한 치료 없는 강제출국시도 즉각 중단하라!!







 물산업 지원법 비판 정책워크샵 자료

 

사회진보연대
http://www.pssp.org | pssp@jinbo.net
(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02-778-4001~2 | FAX:02-778-40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국내 학술지와 외국 학술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글의 수준? 언어의 차이? 돈받고 판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술지에 한정하자면, 내가 판단하건대,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서평의 차이다.

도서관 같은 데서 외국 학술지를 한번 훑어보기를. 웬만한 외국 학술지는 대개 10여편 정도의 서평을 싣고 있고,

많은 데는 수십편, 아니 때로는 짧막하게나마 수백 편의 서평을 싣는 곳도 있다.

그에 비해 국내 학술지는 마지 못해 한두 편을 싣거나 아예 아무런 서평을 싣지 않는 곳도 있다.

국내에는 서평할 책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정말로??  

지금 당장 알라딘을 한 번  검색해보라. 번역서를 포함해서 한 달에 도대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몇 권의 책이 출간되는지. 서평은 하찮은 일이어서 연구자가 할 만한 일이 못되나? 왜??

그런데 왜 외국 학술지, 최근 국내 학계의 오매불망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 외국 학술지는

왜 그렇게 많은 서평들을 싣고 있는 것일까? 학자들이 할 일이 없어서??  

아니면 국내에는 국내 필자들의 학술 도서가 적어서 서평이 거의 없는 것일까?

그런데 번역서는 서평의 대상이 못되는 것일까? 왜?? 오히려 국내 인문사회과학 번역의 실상을 고려할 때

엄정한 번역 비평이야말로 학문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기초 작업이 아닐까?

그런데 왜 서평을 안하지?? 번역이 너무 형편없어서???

인간관계가 얽혀서???? 서로 점잖고 인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내 생각에 서평은 학문 연구자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아닐까 한다. 좋은 서평을 쓰려면 남의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책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대개 제한된 지면 안에서 균형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좀더 좋은 서평이려면, 이 책을 관련된 분야의 연구 현황 및 역사 속에 위치시키면서

그 책의 위상이나 의미, 한계, 문제점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좀더 욕심을 내보자면, 서평자 본인의

뚜렷한 개성과 관점이 담긴 문체도 담겨 있어야 한다. 이 정도면 훌륭한 학술 서평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논문이나 저서에서 요구되는 사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서평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성은 학계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겠지만, 국내에는 이제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일개 독자로서는 그 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평소에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선진

학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고급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부러움과 시샘, 절망감 속에서 바라보곤 하는데,

어느덧 우리나라도, 대부분 번역서들이긴 하지만, 상당한 분량의 고급 지식들이 매일 산출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는 이런 정보들을 선별하고 분류하고 평가할 만한 체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대개 값싼 실용서나 심심풀이 교양서로 지면을 채우곤 하는 신문 서평란에게는 도저히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학계에서 그 일을 맡아야 할 수밖에.  사실 지금도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늦었어도 갖출 건 정확히 갖추고 나아가야 한다.

활발한 서평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많들고 그것을 비중있게 대접하는 길 이외에는

그런 체계를 마련할 다른 방법이 없다.  본격적인 서평 전문지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각종 학술지 등에서

서평란을 좀더 넓히고 좀더 비중있는 업적으로 대우하는 일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제대로 된 서평문화의 정착은 자립적인 학술활동, 내실 있는 교양의 축적을 가능하게 할 든든한 받침이다.

 

이렇게 사설이 길어진 것은 [교수신문]에서 아주 반갑게도 서평 특집호를 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자리에서 서평의 중요성과 국내 서평의 현황과 문제점을 말해왔는데,

교수신문에서 이렇게 알찬 특집으로 다뤄주니 고맙기 짝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특집호에 실린 글들을 모두 가져오고 싶지만,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하니까 아래의 주소로 직접 가셔서 한 번 읽어보시길.

제때에, 아주 시원스러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서, 여간 기분이 상쾌한 게 아니다.  

------------------------------------------------------------------

 

 

왜, ‘서평’을 다시 말하는가
서평특집호를 내면서
 

2008년 01월 29일 (화) 11:21:51 최익현 편집국장 editor@kyosu.net
 


   
  Francois Schuiten,The Ultimate Book, 68.6 X 96.5cm,Poster.  
 
추위가 한풀 꺾인 1월말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우려면 한껏 추위를 떨쳐야 하는데, 온난화 탓인지 매서움도 예전만 못합니다. 이 지리멸렬한 계절 한 가운데, 교수신문 <비평> 467호는 ‘서평’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서평이야 일간지를 비롯 곳곳에서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전문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서평지를 표방한 매체도 더러 있긴 하지만, ‘서평문화’가 꽃처럼 만개했다고 보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교수신문 <비평>은 서평 관계자들의 심층 의견조사를 벌였습니다. 교수신문을 비롯, 일간지, 계간지 등에 서평을 기고해왔던 서평자, 서평을 게재하고 있는 계간지의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 등 36명의 전문가로부터 귀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서평문화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서평문화가 이처럼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2

http://www.kyosu.net/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8-01-31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적, 아니 당연한 지적이네요. 그리고 주례사 서평도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칭찬만 하니깐 읽는 사람 입장에선 닭살 돋아요. 아, 근데 스퀴텐의 포스터를 여기서 볼 줄 몰랐어요. 기사 내용에 참 잘 어울리는 포스터같아요. 스퀴텐이 지은 만화책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balmas 2008-02-0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맞습니다. 주례사 서평은 좀 민망하죠. 더욱이 번역은 엉망인데, 책 참 좋다고 칭찬하는 서평 보면 어이가 없죠. -_-+ 근데 저 사람이 유명한 만화가인가요? 오 처음 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