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표기 문제 자체가 늘 시빗거리를 안고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전공자 입장에서 가끔 어처구니 없는 표기법을 목격하게 된다.

예컨대 루이 "알튀세"나 에티엔 "발리바"라는 표기법이 그렇다.  

가끔 이런저런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출판사에서 보낸 교정지를 보면

버젓이 "알튀세"나 "발리바"라고 고쳐진 것을 보게 된다.

왜 이렇게 고쳤는지 물어보면, 어떤 이들은

그게 "표기법 원칙"이라고 답변을 한다.

 

사실 불어에서는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예컨대 Blanchot는 "블랑쇼"라고 표기하고 Foucault는 "푸코"라고 표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원칙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다 이렇게 표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의 성이 그런데, 사람의 성의 경우에는 마지막 자음이라 하더라도

발음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잘 알려진 시인인 René Char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르네 샤"가 아니라

"르네 샤르"이기 때문이다. 또 국내 표기법에서도 "르네 샤르"라고 번역된다.

또 Victor Delbos라는 20세기 초의 철학사 연구자는

"빅토르 델보"가 아니라 "빅토르 델보스"라고 발음한다.

Levinas 역시 "레비나"가 아니라 "레비나스"라고 발음하고.

 

그런데 왜 Althusser나 Balibar는 "알튀세"나 "발리바"라고 표기할까?

이런 표기법을 원칙으로 만든 사람은 프랑스 현지에 가서

발음법을 확인한 것일까?

내가 알기로는 Althusser나 Balibar는 모두 마지막 자음이 발음이 되고

따라서 "알튀세"나 "발리바"가 아니라 "알튀세르"나 "발리바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다.

 

더욱이 후배 한 명이 어떤 프랑스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딱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프랑스인의 발음법상 "알튀세"나 "발리바"라는 발음은 이상하다고 한다.

마지막 "r"까지 발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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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한 편 쓰다가 심심해서 한 마디 해봤는데,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 터무니없는 원칙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좀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하기야 프랑스 놈들은 외국인 이름도

제멋대로 부르는 놈들인데 ... ;;;

(아래 페이퍼 참조)

http://blog.aladin.co.kr/balmas/610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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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8-01-1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익후 12만이 넘으셨네요.

paniked-83 2008-01-1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안 그래도 웅기형이랑 이번 세미나 때 이거 반드시 물어본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속시원히 해결되었습니다. -찬경

balmas 2008-01-1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덧 12만이 넘었군요. ㅎㅎㅎ
paniked-83/ 그랬군 ㅎㅎ.

2008-12-20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8-12-2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안녕하세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2부에 수록된 두 개의 글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읽으신다면 여러 가지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ㅎㅎ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라는 개념은 스피노자 이전의 철학 전통에서 유래한 것인데요, 라틴어로 쓰면 각각 "natura naturans" "natura naturata"이고 한자어로 쓰면 "能産的 自然"과 "所産的 自然"이랍니다. 아마 영어로 뜻풀이를 하면 오히려 쉽게 이해가 될지 모르겠는데요. 라틴어 문구를 영어로 그대로 풀어 쓰면 각각 "naturing nature"와 "natured nature"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결국 "능산적"이라는 말은 "산출할 수 있는"을 가리키고 "소산적"이라는 말은 "산출된"을 가리키는 셈이죠.
이렇게 본다면 능산적 자연은 "산출할 수 있는 자연", 곧 실체와 그 속성들을 의미하고, 소산적 자연은 양태(여기에는 물론 유한양태만이 아니라 무한양태도 포함되죠)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죠. :-) 따라서 능산적-소산적 자연의 구분은 어느 정도는 '능동적-수동적'이라는 구분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 구분은 '원인-결과'의 구분에 해당한다고 봐야겠죠. ^^
이 정도면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이유님 서재에서 퍼옵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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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오마이이슈]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 세상
 
글 : 김소희 (<한겨레21> 기자) | 2008.01.14 
 
없는 집 아이들이 땟국은 흘려도 있는 집 얼굴 하얀 아이들보다 더 팔다리가 야무지던 때가 있었다. 더럽고 치사해도 저놈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리라 다짐하면 위로가 되던 시절이다. 가진 자들은 없는 병도 만들었지만 없는 이들은 있는 병도 모르고 잘 지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 무병·무탈·장수는 하늘의 뜻이 아니라 자본의 뜻이다.

경기도 이천시 호법동의 한 냉동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참사는 안전과 생명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밑천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노동자,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재중동포 일가족, 유족조차 나타나지 않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등 40명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경찰이 ‘화인 조사’, ‘신원 확인’, ‘공사 관계’, 세 갈래로 나눠 수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밀어붙이는 공사 관행과 이에 따르는 불·탈법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우선 규모상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 ‘안전 총괄 책임자’가 없었다. 각종 위험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지방노동청의 관리·감독을 전혀 받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허가없이 착공해 고발을 당하고도 보름 만에 이천시에서 건축허가를 받았다. 설계·시행·시공사는 물론 감리회사까지 같은 회사인데 아무런 제재없이 넘어갔다. 지난해 한 차례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사흘 뒤 소방시설 완공검사를 버젓이 받았다. 창문이나 환기구도 변변히 없는 축구장 세배 넓이의 작업장에 비상구는 단 한곳이었다. 화재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 세계 용어로 ‘야리까리’라고 하는 ‘물량도급’은 작업이 끝나면 돈을 주거나 다른 일감을 계약하는 방식이다. 공기를 단축시켜야 이익이 나므로 배선, 용접, 도색 등을 한꺼번에 한다. 이번 화재 현장도 영업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냉동 설비와 전기 설비, 파이프 보온 등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가 급하니 옆에서 누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따질 겨를이 없었고, 기름증기와 유해가스가 들어찬 밀폐된 공간에서 환기 한번 제대로 못 시키고 일했을 것이다. 그 결과 우연한 불꽃이 “쇠가 다 녹는” 끔찍한 폭발을 일으켰다. 현장에서 일하던 57명 가운데 17명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죽고 다친 이들 가운데 이런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가리고 따질 만한 이들이 없었다는 것은, 유족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명복과 빠른 치유를 빈다.
 
글 : 김소희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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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님 서재에서 퍼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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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외국인’과 범죄는 뗄 수 없는 관계라구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강제단속 및 추방에 대한 문제지적이 있을 때마다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들의 범죄는 흉포·지능·조직화되고 있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강제단속은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부산 KNN방송국의 ‘현장추적 싸이렌’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무너진 코리아 드림, 불법체류자, 그리고... 범죄>라는 제하의 방송을 지난해 11월28일과 12월12일 양일에 걸쳐 진행한 바 있다. 이 방송에서는 미등록체류자의 범죄가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지고 있다며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의 미등록체류자 강제단속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범죄행위는, 상습도박, 폭행, 대마초흡연, 불법안마시술소였다. 하지만 대마초흡연자라고 신고가 된 이주노동자는 현장에서 소변검사까지 했지만 검사반응은 음성이었고, 폭행범이라고 신고가 된 이는 조사를 하지 못해 결국 그가 정말로 폭행을 했는지, 금품 갈취를 했는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 두 사건에서 출입국관리공무원은 단지 신고만으로 이주노동자를 범죄자로 낙인찍고, 가택수사, 공장무단침입 등을 하고 있다. 또한 상습도박범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연행된 베트남인 16명 중 9명은 등록체류자였으며 7명이 미등록체류자였는데, 등록체류자들은 불구속입건되거나 훈방 및 경고조치에 그쳤다. 이것이 법무부가 말하는 미등록체류자들의 고도로 지능화되고 흉포화되는 범죄현장인가?


 -법무부의 강제단속행위가 더 범죄에 가깝다

 


 한편, 범죄자로 낙인찍힌 미등록체류자들을 단속하는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의 단속행위는 어떠한가? 출입국관리공무원은 영장없이 무단으로 가택에 침입하여 집안을 뒤지고, 이주노동자의 핸드폰을 뺏고, 영장없이 공장에 들어가 이주노동자에게 소변검사를 강요한다. 신고와 추측만으로 검거와 연행을 일삼는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의 단속행위가 오히려 범죄에 가깝다.

 이주노동자를 만날 때마다 불심검문을 하고 있지만,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며, 반말만을 사용한다. 관행이 이러하니, 출입국관리공무원을 사칭하며 미등록노동자들의 납치,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가 발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과연 출입국관리공무원이 범죄용의자를 조사하고 연행하는 절차에 대한 기본적인 법지식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경찰의 영역이 아닌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조사와 연행 속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설 자리가 없다.

 


-‘외국인범죄율’로 미등록체류자 마녀사냥 말라.

 


 또한 방송에서는 외국인범죄율이 날로 높아간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으며, 법무부 또한 이 자료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외국인범죄율’이지 ‘미등록체류자 범죄율’이 아니다. 외국인은 미등록체류자 외에도 등록체류자 또한 포함되는 숫자이다. 방송에 나온 사건 중 도박사건과 불법안마장 사건 또한 등록체류자의 범죄사건이었다.

 오히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영신(44) 연구위원팀이 펴낸 연구보고서 ‘외국인 범죄의 실태와 전망’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개발 도상국 출신 외국인들의 범죄자 수는 경제 선진국보다 크게 낮았다. 인구 10만명당 한국인 범죄자 수와 비교해도 크게 낮다.”고 한다.(2007년2월5일자 서울신문 보도) “최 연구위원은 “불법 체류자들은 범죄로 인해 자신의 신분이 노출돼 강제 출국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범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열악한 생활 환경과 문화적 차이 탓에 내국인에 의해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범죄 피해 취약 집단”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2007년2월5일자 서울신문 보도)

 마치 미등록체류자가 모든 범죄의 온상인 것처럼 호도하는 법무부와 KNN 방송국은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를 겨냥한 인종차별적 태도와 감성을 버려야 한다. 외국인이 범죄의 온상이자 국가경제 및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시각은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 정권에서 이주민을 바라보았던 인종주의적 시각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굽어진 의식’이 결국 열린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법무부에서 입법예고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서 사실로 드러난다. 법무부는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옹호가 국가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불심검문과 검거를 허용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쌓아온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헌법에 어긋나며 형법과도 충돌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이야말로 법치주의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강제단속․추방정책이 만들고 있는 국가질서는 무엇인가? 바로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의 국가질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산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은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와 KNN 방송국에 대하여 관련기관에 진정할 예정이다.


(사)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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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체제 등장 이후의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에 대하여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폐해들이 민중들의 삶을 옥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된 대선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방향에 어떤 새로운 돌파구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영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력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유권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 보편적 정서였을 만큼, 신자유주의가 조성해 낸 끔찍한 생활의 곤경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았고, 선거의 결과가 적극적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 세력간의 경쟁 구도에 대한 혐오의 반사적 결과에 의한 것인지는 결과에 큰 차이를 불러오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 : 1987~1997년

그런 점에서 이명박 체제의 등장은 대중들의 적극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부정적 대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이명박 체제의 등장에서 주목되는 점 중 하나는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들의 와해와 재편이라는 특징이다. 이명박 체제를 단순히 보수주의로 규정한다면, 지금까지의 결과와 또 현재 진행되는 지배세력들의 재편구도를 적절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더욱이 올 봄의 총선에서 예상되는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까지 고려하면 상황을 좀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987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는 냉전시기의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탈냉전적 구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 그 시도는 자유주의적 세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보수주의 또한 일정한 변화를 거쳐 왔다. 자유주의의 변신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의 주도권은 동시에 민중적 주도권의 제약을 목표로 한 것인데,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87년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유래한 바 있다. ‘19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포섭과 그 한계’가 지난 20년간의 한국 사회의 정치정세를 규정해 왔다고 할 수 있고, 대중운동의 발전의 향배는 이런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1987년 이후 그러한 자유주의의 변신은 이른바 ‘민주화’ 담론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흔히 ‘87년체제’라고 이야기되지만 그 실체는 모호한 것이었는데, 이런 자유주의는 그럼에도 제도적 토대를 충실히 갖추지 못한 자유주의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대중운동에 대한 코포라티즘적 통제를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조건적 한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세계경제의 반주변부로서 한국사회에서 제도적 코포라티즘이 안정화할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내기에 취약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 신자유주의의 고조라는 시대적 규정성에서 나오는 구조적 제약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유주의의 변신은 한편에서 인민주의적 동원을 통하여 실제로는 대중의 탈정치화와 정치의 호도를 수행하고, 또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실제로는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켜 왔다. 다른 한편 이러한 자유주의의 취약한 구조는 통치의 유지를 위해 보수주의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보완되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주도성을 상실한 보수주의와 코포라티즘적 주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자유주의의 연대가 이렇게 형성되었고, 내부적으로 이들 중 어떤 분파의 어떤 세력이 이 결합을 주도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외양은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3당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이나, 1997년 DJP 연합을 통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정권의 등장과 정치가형 인민주의

그런 점에서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어떤 점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단독집권이라는 외양상의 특징에서 보이듯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는데, 그렇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우여곡절과 당선 직후의 사정들이 보여주듯이 매우 불안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10년과 달리 노무현 시기의 이례성이 보여주는 것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초래한 한국사회 위기구조의 결과인 동시에 그에 대한 자유주의적 봉합까지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상황적 맥락이었다. ‘민주화’와 ‘개방·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대해 대중들이 그것을 기존의 자본과 국가권력의 체제, 그리고 기성정치권이라 이름되던 세력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수동적 표출로 드러낸 것이 2002년의 대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단독 집권한 인민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은 집권시기 초부터 역설적으로 자유주의의 무능력을 전면적으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지나온 5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가지 표지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코포라티즘적인 안정적 통치 체제의 설립에 실패하고 사회 불안정성이 고조된 것, 둘째는 이 자유주의 세력과 더불어 체제를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NGO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점차 철회된 것, 셋째, 정책 지향성의 상실과 그로부터 각종 부패 스캔들이 늘어난 것 등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민주화’ 담론을 인민주의적으로 전유함에 따라, 대중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담론을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마치 신자유주의 세력의 독점물인양 취급받기 시작했고 그만큼 민중적 정치운동의 가능성의 폭은 줄어들었다. 민주주의를 전면화하고 급진화하는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발생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진보 세력에게 초래한 심각한 타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권의 정치 이데올로기 :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

2007년 대선의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위기가 다시 전문관리체제라는 명목하에, 1990년대와 유사한 세력 결합 구도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보수적 지지기반 위에 일부 자유주의 세력을 포섭하여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라는 구도로, 그간의 돌출적 정책들과 ‘민주화’ 담론의 인민주의의 폐해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새로운 집권세력이 단순한 보수주의 세력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 정치적 담론이 1990년대와 동일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주화’ 담론적인 인민주의를 포기하고 노골화한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더욱 나가게 되는 외양을 띨 것으로 보이며,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자유주의-보수주의 연합으로서 기존의 정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첫 번째로 그것은 노무현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민주의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시절의 인민주의가 ‘민주화’ 담론의 독점을 통한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전환의 방향을 띠었다면, 이명박 하에서는 교육, 공무원, 공공 분야에 대한 총공세를 통해서 다른 방식의 원한의 정치를 부각시키며 그를 통해 유예된 부문 없이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완성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미디어와 NGO의 동원을 중심으로 한 인민주의적 정치 대신 억압적인 관리·행정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억압이 가속화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시장 주도성의 강화는 쉽게 예견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걸림돌은 사실상 매우 많이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대중운동의 대응성이 전례없이 취약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비적 대응의 필요성 또한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런만큼 대중에 대한 공세적 대응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정권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

이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은 매우 취약하고, 그 어느 때보다 대중운동 자체가 위기적 상황 속에 처해있다. 대중운동의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두드러지게 그것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민중연대라는 세 가지 주요 조직들의 위기 속에서 관찰될 수 있다. 세 조직의 위기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고, 동일한 위기의 구조가 세 가지 조직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권을 위한 정책대안이라는 구도는 운동세력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지만, 운동조직이 이를 통해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유주의 집권세력의 위기가 진보세력의 위기와 맞물린 것은, 진보세력 또한 1987년 정세의 봉합 이후의 상황을 돌파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중연대의 사실상 해체(한국진보연대의 반쪽짜리 출범)는 이런 위기를 잘 보여주는 바가 있는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를 확대하고 활성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권 정치적 지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전환되어서는 대중운동의 고양을 통한 민중적 정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분할되어 있는 대중들을 통일시키기 위한 중심체로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운동조직과 운동정당의 성격을 강화하지 못하는 한 대중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시키고 그것을 통해 운동을 발전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층적, 지역적 영향력 확대를 수반하는 분명한 사회운동 정당으로의 방향전환이 없는 한 민주노동당 내의 갈등구조 또한 근본적 쇄신의 길을 동반하기는 어렵다고 보이며, 기층조직의 교육·조직·투쟁사업을 통일시키는 지나온 노동자운동 역사 속의 강점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조직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선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적 긴박성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확대하고, 특히 지역적·기층적 조직화에 힘쓰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시점이다.
 
2008년01월15일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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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maud님, 님이 꼭 소장해야 할 책이 하나 나왔네요. ㅋㅋ

프랑스 TV 좌담회에 나온 걸 한 번 봤는데,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답더군요.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줬어요.

목소리도 침착하면서도 단호한 것이

빈틈없는 내면을 갖춘 피아니스트구나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저도 한 번 구입해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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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8-01-1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악하악 그리모 여신님~~~@.@ 처음에는 미모에 반하고 다음에는 연주에 반하고 그 다음에는 글솜씨에 반하고..킄 정말 여신님 같은 여친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을텐데요...흙흙..ㅜ.ㅜ 오늘 발마스님 세미나에서 발마스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바로 저예요 ㅋㅋㅋ

2008-01-16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1-1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땡스투가 안되나요???

balmas 2008-01-16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rimaud님/ ㅎㅎㅎ 그러셨구나. 앞으로 꾸준히 나오셈~
속삭이신님/ 그렇군요. 강의계획서는 조금 있다가 조교에게 보낼 생각인데, 그럼 빠르면 내일(16일) 안에
등록이 될 겁니다. 제가 강의계획서를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필요하시면 메일 주소를 비밀 댓글로 적어주세요. :-)
나비님/ 오, 고맙습니다. 땡스투까지 해주시고. 그런데 상품 입력이 안됐나 ;;; 다시 해볼게요.

2008-01-16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