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 이어지는 속편 글입니다.

역시 이화여대 강철구 교수의 글입니다.


 





 


그로티우스와 식민주의적 열망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2>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 ②
등록일자 : 2008년 01 월 10 일 (목) 03 : 26   
 


  3. 그로티우스와 '바다의 자유'
  
  
네덜란드 사람인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근대 자연법의 창시자이자 국제법의 아버비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1609년에 <자유로운 바다: Mare liberum>라는 글을 통해 바다의 자유를 주장했고 1625년의 <전쟁과 평화의 법>이라는 책을 통해 국제법의 원리를 만들었으며 그것을 자연법 위에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보통 평화롭고 공정한 국제관계의 형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 휴고 그로티우스 (Hugo Grotius, 1583 –1645)

  그러나 그가 바다의 자유를 주장한 것은 공정한 국제법을 위해서가 아니다. 17세기 초는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만드는 등 아시아 무역을 위해 매우 애쓰던 시기이다. 따라서 이때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내세우며 이 수역의 독점권을 주장하고 있던 포르투갈의 논리를 분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노력은 네덜란드의 상업적 나아가 식민주의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것이다.
  
▲ 토르데시아스 조약 (Tordesillas條約, 1494) 원본

  그는 인간은 신으로부터 이성과 자유의지를 물려받았으므로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이며 도덕적인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자연법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적인 고려는 상당히 약화되어 있다.
  
  그가 자연법을 구축하기 위해 인간의 사회적 본능으로부터 끌어낸 것은 다섯 개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그것은 1) 다른 사람의 재산에 대한 존중 2) 부당하게 뺏은 재산을 돌려줄 의무 3)잘한 일을 명예롭게 해 주기 4)손해에 대해 배상해줄 의무 5) 자연법을 공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다.
  
  이 원리들을 보면 그의 사상에서 재산권이 중심적인 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분명하다. 따라서 그가 '자유로운 바다'에 대한 주장을 기본적으로 재산권 위에 구축한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자유로운 바다 (Mare Liberum, 1609)

  
▲ 전쟁과 평화의 법 (De Jure Belli ac Pacis, 1625)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비토리아와 함께 역시 살라만카 학파에 속하는 바스케스(Ferdinando Vasquez)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두 사람을 수십 번씩 언급하고 있다.
  
  특히 비토리아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논리의 큰 틀이 같으며 아에네아스를 포함한 고대의 터무니없는 글들에서 자기 논리의 근거를 끌어내는 방식도 똑같다. 다만 두 사람의 논리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그것을 네덜란드의 식민주의적 이익을 위해 재구축했을 뿐이다.
  
  그는 재산을 동산과 부동산으로 구분했는데 동산은 그것을 직접 신체적으로 취함으로써 소유할 수 있다. 몸을 움직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울타리치기가 필요하다. 울타리치기를 통한 점유와 시효(時效)에 의해서만 재산권의 주장이 가능하다. 점유만 해서는 안 되고 상당기간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땅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다는 깊어서 울타리를 칠 수 없다. 당연히 바다를 개인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공유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구나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고 다른 나라와 교역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통해 그가 <자유로운 바다>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네 가지이다.
  
  1) 동인도에 대한 접근은 모든 나라에게 열려있다.
  2) 이교도들은 그들이 단지 이교도라는 이유만으로 공유나 사적인 재산권을 박탈당할 수는 없다.
  3) 바다 자체나 항해의 자유는 점령이나 교황의 수여, 시효나 관습 등에 의해 어느 일방의 배타적인 권리가 될 수 없다.
  4) 다른 국가와 교역을 하는 권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특정한 한 쪽의 배타적인 권리가 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식민지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권리나, 교황의 수여에 의한 권리를 주장하는 포르투갈의 배타적 권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또 신은 자급자족이 가져오는 해로운 결과를 원하지 않으므로 상업을 통한 교환과 그것을 진작시키기 위한 수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포르투갈이 이런 자연법적 원리를 침해할 때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토르데시야스조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배권의 경계선. 연두색 부분이 포르투갈 세력권, 초록색 부분이 스페인 세력권이다.

  그렇다고 그의 이러한 주장이 일관된 것은 아니다. 나중에 잉글랜드가 네덜란드의 상업적 이익에 도전했을 때에는 이와는 달리 '폐쇄된 바다'를 주장했다. 자격 없는 자들이 제멋대로 무역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주장은 객관적인 원리에 의존하기보다는 네덜란드의 이익과 밀착되어 있다.
  
  그로티우스와 식민주의적 열망
  
▲ 사냥하는 북미 인디언 (18세기)

  그는 또 아메리카에서의 식민지 확보를 위해서도 같은 원리를 내세웠다. 토지는 신이 인간에게 공유로 수여한 것인데 그것을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소유로 하려면 울타리를 칠 뿐 아니라 그것을 경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땅에 대한 재산권은 직접 경작을 하는 개인에게만 가능했다.
  
  이런 논리로 그는 경작을 하지 않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을 침탈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반면 유럽에도 많이 산재하고 있는 빈 땅에 대해서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유럽의 땅은 모두 누군가의 재산권 하에 있다는 것이다.
  
▲ 정착생활을 하는 인디언의 실내 풍경

  또 그는 어떤 땅의 재산권은 그것을 경작하는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땅을 직접 경작할 개인들에게 분배될 경우에는 국가가 어떤 토지에 대해 권리를 갖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다른 유럽국가가 이미 확보한 식민지를 빼앗기 위한 논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로티우스의 자연법사상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고려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바다의 자유라는 원리로 인도양이나 신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기득권을 가진 다른 나라들의 권리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재산권 이론으로 식민지 토지의 침탈을 정당화한 것이다.
  
  그의 자연법 이론은 이렇게 철저하게 식민주의적 열망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귀족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네덜란드 공화국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포르투갈이나 잉글랜드와의 교섭에서 네덜란드의 상업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애쓴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자연법이나 국제법에 대한 이론적 구성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주장하는 평등하고 공정한 국제법은 유럽 내에서 네덜란드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을 포함한 비유럽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매우 제한된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푸펜도르프의 자연법
  
  그로티우스의 제자로 자연법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 자무엘 푸펜도르프(Samuel Puffendorf)이다. 그는 독일 태생으로 독일의 룬트 대학 등에서 교수를 하다가 나중에는 스웨덴에서 활동했다. 그가 1672년에 쓴 자연법(De Jure Naturae)은 로크가 '이 종류의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푸펜도로프는 로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 푸펜도르프 (Samuel Pufendorf, 1632~ 1694)

  그는 자연법을 논할 때 그로티우스나 로크와는 좀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 독일이나 스웨덴은 스페인,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달리 당시 식민지 문제에 직접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과 달리 이교도와 기독교인들에게 다 같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자연법을 만들기를 바랐다. 그가 자연법을 재산권이 아니라 도덕적인 맥락에서 검토한 이유이다.
  
  그는 자연상태를 원시 시대에나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아메리카나 다른 식민세계를 원시상태로 보지는 않았다. 또 아메리카 원주민을 원자화한 자연인으로 보지도 않았다. 아메리카인들도 종족이나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들도 유럽 국가들의 구성원이나 마찬가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자연상태를 전쟁상태로 본 토마스 홉스와는 달리 평화상태로 보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자연법에 의해 다른 사람들과 사교를 하며 인간의 본성과 목적에 맞추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산권에 있어서도 그는 신이 인간에게 공동으로 이 세계를 주었다고 믿었으나 그것을 소유권이라는 적극적인 형태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소극적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도, 또 어느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 푸펜도르프의 자연법(De Jure Naturae, 1672)

  따라서 존 로크가 나중에 개인적인 점유를 뜻하는 전유(專有, appropriation)를 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사용(使用)이 전유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사용권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아메리카에서의 스페인인의 여행과 무역의 자유를 정당화하는 비토리아의 논리를 공격하는 가운데 식민주의의 침략성을 고발하고 있다. 유럽인이 원주민의 땅에서 여행할 자유를 갖는 것은 단지 폭풍에 밀려 왔을 때나 순수하게 손님으로 해안에 도착했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는 환대를 받아야 하나 물론 필요한 단기간만 머물러야 했다. 장기간 머물 때는 그들의 동기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교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에서 원하는 누구나와, 또 무엇이든지 교역할 자유를 주장하나 그때도 동기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정의와 관용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당시의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도 국가로부터 특허권을 수여받은 동인도회사 같은 특허회사들의 교역 독점권을 자연법에 속하는 것으로 믿었다. 또 필요한 경우 식민지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굶주리고 쓸모없고 반역적인 사람들을 추방하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이 그로티우스나 로크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가 식민주의적인 고려를 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에 로크와 같은 사람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컸으므로 그의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은 잊혀지고 말았다.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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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8-01-15 00:26   좋아요 0 | URL
예, 메일 확인했습니다. 좀 생각해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자꾸때리다 2008-01-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내일 가도 되죵?

balmas 2008-01-15 00:27   좋아요 0 | URL
ㅎㅎ Grimaud님도 오시나요? ^^
 

[프레시안]에 재미있는 기사가 연재 중이어서 퍼옵니다.

필자는 이대 사학과 교수인데, 유익하고 좋은 글이네요.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1>
등록일자 : 2008년 01 월 08 일 (화) 00 : 58   
 


  1. 근대 자연법, 어떻게 볼 것인가
  
  근대 자연법의 형성

  
  고대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스토아학파에서 발원한 자연법은 중세 시대에는 신학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모든 법의 원천이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중세적 자연법은 16, 17세기의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16세기의 종교개혁과 그 후 1세기 넘어 계속된 종교전쟁, 또 유럽인이 아메리카나 아시아로 진출하며 부딪치게 된 많은 문제들이 자연법의 변화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의 자연법 학자들은 신적인 원리보다 스토아 학파가 설파하고 있는 인간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인간 이성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원리가 근대 자연법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자연법을 성경에서 나타나는 신의 절대적인 의지와 같은 초월적인 원리가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의 '이성'에 근거시켰다. 자연법의 존재를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사회성이나 편익과 관련시켜 설명한 것이다. 그런 것을 위해 자연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비토리아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시작되어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로크에게로 이어지고 나중에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며 17, 18세기 유럽 사회, 정치사상의 근본 모티브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나타나는 국제법, 사유재산권, 자연상태, 자연권, 사회계약론, 인민주권설 등의 이론들은 모두 자연법에서 비롯되었다. 자연법이 계몽사상의 핵심일 뿐 아니라 근대 서양 사상의 본질적인 부분이 된 것이다.
  
  그것은 또 당대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근대사의 진행과정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자연법의 바른 이해는 유럽 근대사상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선결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법의 이해와 유럽중심주의
  
  서양학자들은 지금까지 자연법을 대체로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사상체계로 이해해 왔다. 근대인들을 맹목적이고 기독교적인 중세적 도덕률에서 해방시켜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도덕철학 위에 서게 했다고 믿은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고 찬미하는 태도를 보인다.
  
  물론 서양 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연법을 유럽의 사상사적 전통과 근대 초 유럽 내부의 정치, 사회, 경제와의 관련에만 중점을 두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즉 유럽적 관련에서만 자연법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자연법은 유럽인들의 탁월한 문화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정에는 그렇게 볼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자연법의 발전이 근대 초 유럽인들의 식민주의적 열망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자연법의 발전이 애초에 식민주의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서양학자들은 이런 면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자연법 형성에서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고 단지 사소하고 부수적인 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대 자연법에 미친 식민주의의 막중한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런 태도는 상당 부분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서양학자들의 유럽중심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식민주의와의 관련성을 차단함으로써 그들이 찬양하는 자연법의 보편적인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자연법을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장에서는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비토리아,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로크의 자연법사상과 식민주의와의 관련을 검토함으로써 근대 자연법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서 보다 객관적인 이해에 접근하려 한다.
  
  2.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과 비토리아
  
  아메리카 정복의 정당성 문제
  
  15세기 말에 시작된 스페인인의 아메리카 정복과 식민화는 매우 쉬운 과정이었다. 토착 제국들과 정치체들이 급속히 붕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정복과 지배는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큰 지적인 문제를 만들어냈다. 즉 아메리카에 대한 스페인왕의 지배권(imperium)과 재산권(dominium)을 어떻게 정당화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16세기 초에는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칙서가 그 근거가 되었다. 1493년에 교황이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공동왕에게 대서양에서 새로 발견되는 땅에 대해(그것이 어느 기독교 군주에 의해 점유되어 있지 않은 한) 지배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의 이런 행위는 교황이 기독교인과 이교도들 모두에 대해 세속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중세 자연법에 기초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신학자들이나 법률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교황알렉산더 6세 (Pope Alexander VI, 1431~150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04년에 페르디난드왕이 한 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에 모인 법학자, 신학자, 교회법학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오가 왕에게 속하며 그것은 인간의 법이나 신의 법에 합치된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왕의 지배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 스페인의 공동왕 페르디난드(Fedinand Ⅱ)와 이사벨라(Isabella Ⅰ)

  1511년에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서인도의 이스파뇰라 섬에서 선교를 하던 도미니쿠스 파의 몬테시노 신부가 원주민에 대한 스페인 식민자들의 잔인하고 부당한 행위들을 설교를 통해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자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그들은 무어인이나 튀르크인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성토했다.
  이 사건이 서인도제도 뿐 아니라 본국에까지 파장을 일으키며 국왕의 지배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 해에 부르고스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다시 한 번 스페인왕이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권과 재산권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론을 내린 논거는 무엇일까.
  
  이 회의는 로마법에 근거하여 원주민들의 재산권을 부정했다. 원주민들이 적법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마 법학자들에 의하면 사회란 재산에 기초해 있는 것이고 재산관계가 진정한 시민 사이의 모든 교환의 기초였다. 따라서 그런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회는, 즉 시민공동체를 갖고 있지 않은 사회는, 그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침략자에 대해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살게 된 열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 아메리카 원주민과 그 사회,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은 16세기 스페인인들에게 매우 큰 과제였다.

  이런 주장은 서인도 제도 같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곳에는 적용할 수 있었으나 아스텍이나 잉카 지역에는 불가능했다. 이들 나라가 정치 공동체를 갖고 있고 그 땅을 지배하고 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유럽인들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530년대에 정복의 정당성 문제가 다시 대학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논리를 제공한 사람이 살라만카 대학의 신학부 교수인 프란시스코 드 비토리아(Francisco de Vitoria)이다.
  
  정복의 정당성과 신법
  
▲ 비토리아 (Francisco de Vitoria, 1483~1546)

  비토리아는 도미니쿠스파 신부로서 1511-23년 사이에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학문적으로 매우 유능한 인물로 파리 대학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편집하는 일에 참여했고 귀국해서도 제자들에게 주로 신학대전을 교과서로 하여 가르쳤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스콜라 철학자로서 16세기 스페인의 유명한 살라만카 학파의 창시자이다.
  
▲ 파리 대학의 강의 모습.

  스콜라철학자들은 재산권이란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건 아니건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재산의 권리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진다고 하는 부르고스 회의의 결론은 비토리아에게는 불충분해 보였다. 아메리카의 정복은 원주민들이 이 자연권을 그 자신들의 행위에 의해 상실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살라만카 대학은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의 하나였다.

  따라서 그는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의 토지를 원주민들로부터 빼앗는 근거를 파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야만인들은 인간적인 법(유럽적인 법)이나 그 지배자 밑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의 실정법에 의해 판단할 수는 없었고 신법(神法)에 의해 판단되어야 했다.
  
  그들은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많은 죄를 짓고 있고 이단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주권이나 재산권을 부인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기독교적 사회만이 아니라 자연상태에 사는 사람들도 이에 대한 자연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이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복되어도 좋다는 생각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도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그렇지 그 나름으로 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시의 건설이나 결혼, 관리(官吏), 통치자, 법, 수공업, 상업 등 '이성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행위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비토리아에게 문제가 된 것은 토착민들이 기독교 선교를 거부할 때 그것이 정복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는 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떤 유럽의 군주나 교황도 지구 전체에 대한 세속적인 지배권을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해서 공격을 받을 수는 없었다.
  
  또 그들이 온갖 종류의 성적인 일탈이나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을 통해 중세 자연법을 위반했다 해서 그들을 강제할 근거도 없었다. 따라서 비토리아는 유감스럽지만 스페인인은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하는 일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법의 입장에서 볼 때 스페인인들은 식민지 정복의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민법과 교통의 자유
  
  이렇게 신법으로는 아메리카 정복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었으므로 비토리아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로마 시대의 만민법(ius gentium)을 끌어 들인 것이다. 만민법은 로마 시대에 그 영토 안에 있는 수많은 종족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는 모든 국가 사이에는 만민법이 작용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는 만민법을 자연법이거나 또는 자연법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만민법의 개념을 바탕으로 신화와 허구를 포함해 고대의 많은 글들을 인용하며 '사회와 자연적 교통의 권리'라는 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이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포괄할 수 있는 기독교보다 더 보편적인 원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의하면 바다, 해안, 항구는 시민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공동으로 속하는 것으로 사유 재산에서는 벗어나 있다. 따라서 그는 어떤 해안이 누구에게 속하든 상관없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법의 객관적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의 전설적 시조인 아에네아스가 자신의 정박을 거부한 라티움 왕을 야만인이라고 부른 이유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고사(故事)로부터 선례를 만들어 가며 여행과 방문, 정착, 교역, 광산 채굴의 보편적인 권리를 끌어냈다. 그리고 이런 권리가 정중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인될 때는 전쟁을 할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전쟁의 정당한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역을 막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유무상통을 통해 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원주민들이 내지 여행을 막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한다면(그들이 그것을 믿건 말건) 스페인인들은 그들을 정복할 권리를 갖는다. 또 인간을 희생시키는 제사나 카니발리즘을 강제로 막는 것도 합법적이다. 또 원주민들의 전쟁에도 요청을 받을 경우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인디언의 낮은 지성을 고려하면 폭력은 최소화해야 했다.
  
  이렇게 비토리아는 기독교가 정당화할 수 없는 정복행위를 자연법이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로마법에 근원을 갖고, 선례를 신화에서 찾고, 비토리아에 의해 주의 깊게 제한된 상황에서이기는 하나 후대에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가 원주민들에 대한 정복과 착취를 정당화한 것이다.
  
  1539년부터 본격화된 이 논리는 곧 지배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며 이후 스페인 식민주의의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는 다른 식민국가들에게도 유용한 이론이었다. 네덜란드나 잉글랜드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 사람들이 이 이론을 열렬히 환영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과 동료애라는 가정 위에 선 이 원리가 아메리카에 적용된 상황은 참 역설적이다. 그 명목 하에 아스텍 여인들이 개의 먹이로 던져졌고 아메리카의 전체 문화가 파괴되었던 것이다.
  
▲ 도미니쿠스파 선교사인 라스 카사스(Las Casas)는 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스페인 식민자들의 악행을 고발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그의 책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1667) 가운데 한 페이지이다.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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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론과 반폭력의 정치 I 세미나



    

          (내가 1빠네 ㅋㅋ)                      (내가 왜 스피노자 옆이야??)            (난 사회민주당이 싫어!)   


     

(이데올로기는 영원해 ...)           (알튀세르, 오랜만이오,)                       (내가 왜 자네랑 같이 있지??) 
                                                (선생님, 이제 제가 더 유명합니다)         (그래도 내가 아버지야 ...)


          

(난 이데올로기는 잘 모르는데, 뻘쭘하군 ;;;)   (선배님, 제가 좀 가르쳐드릴까요? 그건 바로 왜곡된 의사소통이죠)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근데 모두 남자분들이시네 ;;)        (내가 있잖니 ... 언니라고 불러)



(극단적 폭력의 문제가 중요하죠. 그런데 뱃살이 너무 나와서 좀 쑥스럽군 ;;;;;;;;)

 

                    

(이데올로기론은 알튀세르가 자기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저는 유령입니다 ... )

만들어낸 것에 불과해!)




(내가 왜 맨 아래야, 이건 말도 안돼 !!!!!!!)

 

 


 

 

 

* 세미나 교재 및 일정

 


1. 세미나 교재


Althusser, Louis 1991.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솔.

       1995. Sur la reproduction, PUF.

       1996a. {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1996b. Pour Marx, Découverte.

       1969. For Marx, NLB(Verso).

       2007.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Balibar, Etienne1990. "The Nation Form: History and Ideology," Review XIII, 3, Summer.

       1993. La philosophie de Marx, Découverte.

       1995.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1997. La crainte des masses, Galilée.

       2001. Nous citoyens d'Europe?, Découverte

       2004.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의 동요],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 b. 

Marx, Karl & Engels, Friedrich 1969. Die deutsche Ideologie, Dietz Verlag.

http://www.mlwerke.de/me/me03/me03_009.htm

       1968. The German Ideology, Progress Publisher.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5/german-ideology/ch01.htm

       1990. {독일 이데올로기} 김대웅 옮김, 두레.


2. 세미나 일정


루이 알튀세르, [맑스주의와 인간주의], {맑스를 위하여}. [교재는 국역본을 중심으로 하되, 불어본과 영역본을 함께 참조](1주)

      , [피콜로 극단], {맑스를 위하여} [불어본과 영역본을 함께 참조](1주)

      ,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불어본과 영역본을 함께 참조](2주)

      , {재생산에 대하여} [교재는 국역본을 중심으로 하되, 불어본을 통해 오역 검토하면서 진행](6주)

칼 마르크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3주) [독어본 및 영역본을 함께 검토]

에티엔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불어본과 영역본 참조](3주)

      ,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의 동요], {대중들의 공포} [불어본과 영역본 참조](3주)

      , [민족 형태: 역사와 이데올로기], {이론} [영어본 참조](1주)

      , “Homo nationalis”, in Nous citoyens d'Europe?. [교재는 한글 번역본을 중심으로 함. [민족적 인간], {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 (1주)


* 참고 사항

1. 세미나 일정은 대략적인 계획이며, 진행 과정에 따라 다소 변화될 수 있습니다.

2. 세미나는 별도의 발제가 없이 교재를 읽어가면서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3. 세미나는 1월 15일 수요일부터 바로 시작되니, 참여할 분들은 [맑스주의와 인간주의]를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불어본이나 영역본을 가진 분들은 함께 가져오세요.

4. 불어 및 기타 외국어 해독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특별히 불어 능력을 요구하지는 않으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많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5. 기타 궁금한 사항은 댓글로 남겨주시거나 새움 홈페이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1536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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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8-01-0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 책을 다 읽나요? @@

마르크스: "내가 왜 스피노자 옆이야?"

스피노자: "발마 스님 전공이 나거든, 불만이삼?"

2008-01-07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8-01-08 21:56   좋아요 0 | URL
속삭이신 님, 예, 관심 있는 분들은 모두 참가할 수 있습니다. :-)

자꾸때리다 2008-01-07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아렌트 옆에 여자분 누구세여? 옙흐시다.★.ㅋ

가넷 2008-01-07 10:40   좋아요 0 | URL
Judith Butler 인것 같네요. (아닌가?^^;;;)

balmas 2008-01-08 21:56   좋아요 0 | URL
예, 주디트 버틀러죠.

마늘빵 2008-01-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넘 웃기잖아욧. 근데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들을 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balmas 2008-01-08 21:5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맨 첫 줄은 아실 것 같은데, 둘째 줄에서 맨 왼쪽은 알튀세르고 그 옆이 라캉과 프로이트죠.
그리고 다음 줄에서 왼쪽은 발터 벤야민, 오른쪽은 하버마스랍니다.
그 아랫줄 왼쪽은 주디트 버틀러, 오른쪽은 한나 아렌트고,
밑엣줄은 에티엔 발리바르입니다.
그 아랫줄은 자크 랑시에르, 자크 데리다고
맨 아랫줄은 지젝이죠. :-)

가넷 2008-01-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사진으로만 봤을때는 데리다의 포스(?)에는 다들 못 따라가는 듯...ㅎㅎ;;

balmas 2008-01-08 2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유령이라서 그런가요?

Ritournelle 2008-01-0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벤야민의 저 사색하는 모습은 짱입니다. ㅋㅋㅋ 랑시에르는 선생 알튀세르에 저항하려는 반항자적 모습이고요.

balmas 2008-01-08 2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좋은날 2008-01-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버마스...ㅎㅎ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읽으면서 하버마스가 예상 외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왜 이리 흥미가 안날까요..!
암튼 저도 세미나 참여할 듯 싶습니다^^;

balmas 2008-01-08 21:59   좋아요 0 | URL
예. 시간되시면 참가하세요. :-)

포월 2008-01-07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셨어요? ^^ 그런데 1월 15일은 화요일인데요... 16일에 하는 건가요?

balmas 2008-01-08 21:59   좋아요 0 | URL
제가 요일을 착각했네요. 날짜는 15일이 맞습니다.

이재원 2008-01-0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엇, 제가 개인적인 일로 1월 말까지는 "꼼짝마"가 될 듯한데, 2월부터 참여해도 되는 건가요? 중간에 끼면 안 되나요? ㅠ.ㅠ

balmas 2008-01-08 21:59   좋아요 0 | URL
예, 시간되시는 대로 참가하시면 됩니다.

류우 2008-01-0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리큘럼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상당히 유쾌한 도입부네요-ㅋ

balmas 2008-01-08 22: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밌었나요?

나디스 2008-01-0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세움에서 공지는 봤는데 자세한 커리큘럼을 올려놓으셨네요.
그런데 세미나 시간이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로 확정된 것인지요..?
딱 겹치는 일정이 있어서요...;;;;;

balmas 2008-01-0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정된 건 아닌데, 일단 화요일 오후가 편할 거 같아서
시간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1월 15일에 모인 다음 시간을 검토해봐서 다른 시간이 편하다는 분들이 많다면
시간을 조정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어차피 개학하면 시간 변경이 불가피할 것 같고요.

코스모폴리스 2008-01-0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위에 적혀있는 영역본이나 불역본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죠?

balmas 2008-01-0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구입을 원하는 분들은 각자 인터넷 서점에서 구하시면 될 것 같은데, 제본을 원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네요. 그런 분들은 그날 오셔서 한번 논의해보기로 하죠.

2008-01-1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8-01-10 23:57   좋아요 0 | URL
속삭이신 님, 글쎄요, 저도 잘 모르는 분야인데, 영미쪽 인식론을 보시려면 김기현 교수가 쓴 [현대 인식론] 같은 책이 괜찮을 것 같고, 과학철학의 흐름을 좀더 보시려면, 래디먼 [과학철학의 이해] 같은 책도 좋을 것 같네요. :-)

2008-01-1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답변이 좀 늦었지? 다른 일 때문에 이제야 답변을 올리게 됐다. 이해해라.

이번에도 꼼꼼히 읽고 지적해줘서 고맙구나. 푹 쉬고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읽고 지적해주기 바란다.


우선 113쪽은 “시대”라고 해도 좋고 “시간”이라고 해도 좋은데, 데리다가 첫줄부터 “시간temps”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웬만하면 temps이라는 단어는 “시간”이라고 계속 번역하는 게 좋을 듯해서 이렇게 번역했어.


119쪽-120쪽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도식들을―이론적ㆍ실천적으로―다루고, 이로써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이 도식들과 더불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수정 번역 “오늘날 이 문제들을―이론적ㆍ실천적으로―다루고, 이로써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도식들과 더불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22쪽과 124쪽의 경우는 네가 지적한 대로 고치는 것이 옳을 것 같고,


129쪽의 경우는 원문은 이렇지. “(mais il n'y a plus, il n'y a jamais eu le capital, ni le capitalisme,(A) seulement des capitalismes(B)―d'État ou privés, réels ou symboliques, toujours liés à des forces spectrales ...

그리고 내 번역문은 다음과 같고. “하지만 결코 자본 그 자체le capital, 자본주의 그 자체le capitalisme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존재했던 적도 없으며, 단지 국가적이거나 사적인, 현실적이거나 상징적인, 하지만 항상 유령적인 힘들과 연결되어 있는 자본주의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

영역본에서 “단수의 자본주의”와 “복수의 자본주의들”이라고 번역했다면, 그건 밑줄 친 (A)와 (B)를 각각 그렇게 번역한 셈인데,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번역이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le”라는 정관사가 “단수”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데리다가 “le”를 일부러 강조한 것은 단수를 나타내기보다는 “본질”이라는 의미 또는 “그 자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함인 것 같아. 말하자면 “le capitalisme”이 이데아 내지 형상, 본질이라면, “des capitalisme”은 그것들을 예시하는 개체들, 개별태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이데아로서 형상, 본질로서 자본주의라는 것은 없고, 단지 구체적인 개별 자본주의들, 또는 자본화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데리다의 요점일 텐데, 단수-복수라는 대비로는 이런 논점을 살리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130, 134쪽의 경우도 네가 지적한 것이 옳은 것 같아. :-)


138쪽의 경우는 빠진 내용이 “Longtemps et pourquoi pas toujours?”인데, 이건 “왜 영원히가 아니라 오랫동안인가?”(A)라고 하기보다는 “오랫동안, 하지만 항상이라고 해서 안될 것이 있겠는가?”로 옮기는 게 나을 것 같다. 만약 (A)의 뜻이라면, 데리다가 바로 다음에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할 텐데, 데리다는 그렇게 하지 않고 끝을 맺지. 따라서 “pourquoi pas toujours?”는 “왜 영원히는 아닌가?”라는 질문을 가리키기보다는 “항상이라고 해서 안 될 것이 있겠는가?”라는 수사의문문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을 것 같다. “pourquoi pas?”의 관용적인 어법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140쪽은, 네가 제안한 것처럼 “만이 아니라tout autant que” 앞 뒤 구절의 순서를 바꾸는 게 좋겠구나. 이렇게 바꿔야겠지.

“항상 지켜질 수 없는 약속. 왜냐하면 적어도 이 약속은 익명적인 독특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셈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는 주체적인 평등만이 아니라 타자의 독특성 무한한 타자성에 대한 무한한 존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43쪽의 “초역사적인 기준들의 본성”을 “초역사적인 기준들의 자연”으로 번역하는 것은 좀 어색할 듯하다. “nature”라는 말에는 항상 “본성”과 “자연”의 의미가 함께 함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기는 “본성”이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에 더 좋을 것 같다.

 

343쪽 각주에서 강조된 부분은 “약한schwache”이라는 단어인데, 그게 빠졌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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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님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 번역이 좋은지 문의해와서 간단히 몇 가지 번역 예문을 검토하면서 답변을 남겼는데,

어제 자크 비데의 [서문]을 읽어보니까 [서문]은 본문보다  상대적으로 오역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자크 비데의 [서문]은

그가 {근대성 이론Theorie de la modernite}(1990)이나 {일반 이론Theorie generale}(1999) 등에서 제시한 그의 이론

체계의 관점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요점을 잘 드러내주는 좋은 글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산 독자들이 오역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서 오역 몇 가지를 고쳐봤다. 독자들이 읽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 밖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으면 댓글을 남겨주시기 바란다.

------------------------------------------------

 

자크 비데, [서문을 대신하여: 알튀세르 다시 읽기] 번역 검토


9쪽 

“또한 그런 측면은 한편으로 역사에 대한 이런 특이한 비전과, 다른 한편으로 그가 구조의 지성을 위해 자본주의의 사회적 존재에 대해 제안하는 개념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 수정 번역

“이는 또한 역사에 대한 이처럼 특수한 관점과, 자본주의의 구조 및 사회적 존재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가 제안하는 개념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10쪽 9번째 줄 “장소틀topique” → "장소론"

     12번째 줄 “단순하게 이론” → “이론 그 자체”

10쪽 13번째 줄

“겸손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그가 ‘몇몇 제한된 쟁점들’(p. 38)에 대해서 기여하는 것은 ‘여전히 참신한 상세한 설명’뿐이다― ...”

 

→ 수정 번역

 

“겸손한 겉모습을 띠고 있지만―그는 ‘몇 가지 제한된 쟁점들’(p. 38)에 대해 ‘제법 새로운 엄밀한 해명’을 제시할 뿐이라고 말한다― ...”

 

10쪽 아래에서 7번째 줄

“제 1장이 도입하는 주장이 다루는 것은 사회적 갈등과 과학적 작업을 전제하는 형태로서의 철학이고, 새로운 것이 “결정적인 정치-경제적ㆍ과학적 사건들의 결합”(p. 50) 속에서 떠오르는 상황들의 계열로서의 철학사이다.”

 

→ 수정 번역


“제 1장은 사회적 갈등과 과학적 작업을 전제하는 형식으로서 철학이라는 그의 테제, 새로운 어떤 것이 “결정적인 정치ㆍ경제적 사건들과 과학적 사건들”(p. 50)의 결합conjonction에 따라 생성되는 정세들conjonctures의 연속으로서 철학사라는 그의 테제를 도입한다.”

 

11쪽 아래에서 11번째 줄

“변모” → “변혁transformation”

아래에서 10번째 줄

“왜냐하면 그것은―결국은 불변하는 것을 종식시키는―변화가 생산되는 불변적인 조건들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 수정 번역

“왜냐하면 그것[구조의 재생산에 관한 이론]은 변이가 생산되는 불변적인 조건들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러한 변이는 결국 불변적인 것을 종식시키기 때문이다.”

 

12쪽 아래에서 12번째 줄

“사실 권력은―알튀세르가 뒤에 가서 쓰고 있는 것처럼―”

→ 수정 번역

“사실 권력은―알튀세르가 나중에[1978년에] 쓰고 있는 것처럼―”

 

15쪽 첫 번째 줄 “고위 권력” → “계급 권력”

      8번째 줄 “기여하지 못했다” → “기여했다”

 

15쪽 마지막 줄~6쪽 첫 번째 줄

공적 제도들은 ‘계급 투쟁’의 기관들이고, 계급 투쟁에서 둘 가운데 하나가 인정되며, 계급 투쟁은 이러한 지배의 재생산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 수정 번역

“공적 제도들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계급 투쟁’의 기관들이며 ...”

 

16쪽 마지막 줄

“그 방식을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 속에 구조적으로 포함시킨다.”

→ 수정 번역

“이데올로기를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국가 속에 구조적으로 포함시킨다.”

 

17쪽 11-12번째 줄

“모든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인 주체들을 ‘구성해 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 수정 번역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들로 ‘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18쪽 위에서 두 번째 줄

“각자를 ‘자유 평등’한 것으로 정위하는 인권 선언은 주체는 최고(souverain)이고 최고 존재(le souverain)는 주체이며, 나 자신을 최고인 나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 수정 번역

“각자를 ‘자유 평등한’ 사람으로 정립하는 인권 선언은 신민/주체는 주권적이고 주권자는 신민/주체라고 선언하고(déclare le sujet souverain et le souverain sujet), 또 나 자신은 주권자로서 나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자크 비데가 강조하려는 것은 인권 선언이 철학적, 정치적으로 함축하는 전복적인 의의다. 이를 위해 그는 “sujet”라는 단어에 담긴 이중적인 의미와 함께 “souverain”이라는 개념이 내용상으로 전도되는 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발리바르가 일련의 연구에서 강조하듯이 sujet라는 말은 원래 정치학에서는 “신민”(臣民), 곧 지고한 권력을 가진 주권자(왕)에게 예속된 백성을 가리켰다. 그런데 인권 선언과 동시대의 철학자들(루소, 칸트 ...)에 의해 sujet는 예속된 백성이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자, 곧 주권적인 존재자를 갖는 것으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따라서 비데의 윗 문장에서 “신민/주체는 주권적이고”이라는 표현은 그 이전까지 서로 확연히 대립하는 존재자들로 간주된 신민 sujet가 주권자가 동일시되는 전복적인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곧 이제 sujet는 더 이상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백성이 아니라 그 자신이 주권적인 존재자, 곧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다른 한 편 “주권자는 신민/주체라고”라는 표현은 이러한 전복의 또 다른 측면을 표현한다. 곧 이제 주권자는 더 이상 이전처럼 신이나 왕 같은 초월적인 존재자가 아니라 바로 sujet 자신, 백성들 자신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 주권자가 된 것이고, 이 때문에 sujet는 이제 더 이상 신민이 아니라 주체인 것이다.

밑줄 친 부분은 이처럼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번역되어야 하는데, 김웅권 씨의 번역은 이런 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18쪽 9번째 줄 이하

“규약” →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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