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15년 겨울호에 실린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이 글에 대한 토론이나 인용은 출판된 판본을 대상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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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 없는 이들의 몫―을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I. 몫 없는 이들로서의 을
을(乙)이라는 용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시사적인 용어 중 하나가 되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을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정의된다. 하나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때, 그중 하나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둘째를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앞의 것은 을이 계약 관계에서 두 상대방 중 하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뜻이고, 뒤의 것은 갑, 을, 병, 정 등에서 을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을이라는 말은 아주 평범한 말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을이라는 말은 비정규직 취업자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대기업의 하청 업체 직원들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 또는 재벌 기업의 횡포에 피해를 당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을은 약자이고 피해자, 못 가진 자, 주변화된 자, 배제된 자, 또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몫 없는 이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용어가 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대중들 스스로 만들어낸 말이라는 점이다. 주로 계약관계에서 당사자 중 한 쪽을 지칭하기 위해 널리 통용되던 말이 사회적 약자, 몫 없는 이들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하고, 이제 어느덧 하나의 개념의 지위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을이라는 말이 이처럼 무거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두 가지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하나는 최근 영국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기한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지그문트 바우만, 「문명, 그 길을 묻다-세계 지성과의 대화 (6) 지그문트 바우만」, 경향신문 2014년 3월 24일; Zygmunt Bauman, “Times of Interregnum”, Ethics & Global Politics, vol. 5, no. 1, 2012; “Living in Times of Interregnum”, Transcript of the Lecture delivered at the University of Trento, Italy, on October 25, 2013(인터넷 주소 http://wpfdc.org/images/docs/Zygmunt_Bauman_Living_in_Times_of_Interregnum_Transcript_web_I.pdf). ] 두 개의 레그눔regnum 사이의 시대, 곧 하나의 통치 시대와 다른 통치 시대 사이, 하나의 정치체와 다른 정치체 사이, 더 나아가 하나의 문명과 다른 문명의 사이라는 문제. 사회적 약자, “몫 없는 이들”의 아우성의 표현으로서의 을은 이러한 사이의 문제, 이행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주체에 관한 물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적 주체의 문제는 현대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화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 정치철학에서 정치적 주체의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첫 번째 인터레그넘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돼 있다. 곧 이전의 통치, 이전의 정치체, 이전의 문명에서 정치의 주체로 존재했던 것들이 더 이상 정치적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는 반면, 새로 나타날 정치적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정치적 주체가 새로운 통치와 정치체, 문명의 주체가 될 것인가의 문제는 불확실한 채 남겨져 있다. 이 문제에서 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주체의 명칭인가 아니면 적어도 우리에게 그 주체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을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주체의 잔영인가? 이것이 내가 두 번째로 제기하고 싶은 질문이다.
II. 인터레그넘의 시대
인터레그넘이라는 개념은 로마법에서 유래하는 용어로, 원래는 최고 권력의 공백 상태 또는 헌정의 중단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령 통치하던 왕이 죽었는데,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상태가 바로 인터레그넘에 해당한다. 이 용어에 대해 좀 더 현대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였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기는 정확히 말하면, 낡은 것이 소멸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인터레그넘에서는 극히 다양한 병리적 증상들이 출현하게 된다.”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1: 정치ㆍ사회편, 이상훈 옮김, 거름 출판사, 1987, 312쪽-번역은 수정. 국역본에서 “인터레그넘”은 “공백기”라고 번역되어 있다.]그람시는 원래 법학 개념이었던 인터레그넘에 대하여 좀 더 포괄적인 사회적ㆍ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곧 레닌이 ‘혁명적 상황’을 ‘지배자들이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고 피지배자들이 더 이상 지배받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으로 정의했던 것을 염두에 두면서도 그람시는 그것을 진지전의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곧 그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조형하는 법적ㆍ제도적 틀이 더 이상 자신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것을 대체해야 할 새로운 틀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태 또는 여전히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인터레그넘의 시기로 규정한다.
바우만이 그람시의 이 개념을 되살려 말하고자 한 것은 현대 세계가 인터레그넘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는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세계 질서를 뒤흔들어버렸다. 영토ㆍ국민(또는 인구)ㆍ주권이라는, 기존의 정치 질서를 특징짓는 세 가지 요소는 세계화로 인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국가에 기초를 둔 주권은, 세계 시장, 초국민적 자본의 힘으로 인해 반쪽짜리의 권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우만이 간명하게 말하듯이 “정치가들은 결정을 내릴 때면, 월요일 주식시장이 재개된 뒤 과연 자신들의 결정이 제대로 실행될 기회를 얻게 될지 아니면 그릇된 결정이었다고 판명이 날지 초조하게 기다린다.”[Z. Bauman, “Living in Times of Interregnum”, op. cit., p. 6.] 따라서 오늘날 각 국 정부는 한편으로 그들을 뽑아준 유권자들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시장의 압력 역시 받게 된다.
바우만은 “권력과 정치의 결별”[Z. Bauman, “Times of Interregnum”, op. cit., p. 52.]에서 인터레그넘의 핵심적인 징표를 발견한다. 여기서 권력은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정치는 “어떤 것을 실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Z. Bauman, “Living in Times of Interregnum”, p. 4.]을 의미한다. 국민국가의 시대에 권력과 정치는 동일한 영토의 한계 내에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작동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권력은 국민국가의 영토를 넘어서 “정치에서 자유로운 ‘흐름의 공간’으로 증발되어” 버린 반면, 정치는 여전히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민국가라는 지역적인 수준 또는 “‘장소들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특히 세계시장 및 자본의 권력)이 오늘날 사회적ㆍ개인적인 삶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 및 그것이 대표하는 국민 또는 인민의 주권적 힘은 이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바우만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나는 우리 역시 인터레그넘의 시기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바우만이 살고 있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세계화의 강력한 자장에 속해 있는 만큼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그가 분석한 바와 같은 인터레그넘의 시기에 속해 있지만, 우리는 또한 또 다른 의미의 인터레그넘의 시기를 겪고 있다. 나는 이것이 특히 세월호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지난 4월에 출간된 인문학자들의 세월호에 관한 성찰을 묶은 책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 바 있다. [진태원,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 폭력, 국가, 주체화」, 인문학협동조합 엮음,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현실문화, 2015.]
첫 번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가장 단단한 현실”이라고 믿었던 국가가 사실은 “너무나 허망한 어떤 것이라는 점 ... 커다란 공백이고 검은 구멍이었다”[같은 책, 145쪽.]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늘 자랑하던 자신들의 국가가 사실은 한 사람의 국민의 생명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더욱이 이러한 무능력은 “단순한 무능력이 아니라 무의지의 표현이라는 점, 곧 국가는 단지 구조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조할 생각이나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같은 책, 146쪽]인다는 점이다. 이는 치안기계로서의 국가가 가장 큰 관심과 공력을 기울이는 것은 더 이상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대중적 분노를 일으킨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목숨을 구조하는 것을 일차적인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믿었던 대중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드러낸 이러한 계급적이고 치안기계적인 성격에 분노하고 또한 절망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리키는 환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 좌절감을 가져다 준 것은, 이 사건이 “가난한 우리를 위한 국가는 없다, 가난한 나를 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다음 차례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는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두 번째 것은, 세월호 사건이 말하자면 과소주체성(under-subjectivity)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과소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객관적 요인보다는 주체적인 요인에 의해, 더 정확히 말하면 주체성의 부재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선원들의 도덕적 책임감의 부재일 수도 있고, 오직 이윤추구만을 위해 다 낡은 배를 무리하게 운항한 해운사의 천박한 경영 방식일 수도 있고, 이를 제대로 관리ㆍ감독하지 못하고 방치한 정부 기관의 도덕적 해이일 수도 있고, 눈앞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들을 보고도 외면한 해양경찰들의 잘못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건이 일어난 후 이를 제대로 수습하고 처리하지 못한 중앙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일 수 있으며, 피해를 당한 유가족들을 충분히 위로하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진상조사에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족들을 불온한 치안 방해꾼으로 취급한 현 정부의 비인간적인 처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세월호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성의 부재, 주체성의 결여로 특징지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과소주체성의 또 다른 의미, 좀 더 심층적인 의미는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이 동질적인 이들, 하나의 동일한 주체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편으로 본다면 세월호 사건이 이처럼 큰 사건으로 부각된 데에는 대중들의 놀라운 공감과 유대의 능력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사건이 일어난 당시부터 사건의 추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들에게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내면서 사고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난하면서 해결을 촉구했으며, 또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사들을 질타했다. 아울러 배가 침몰하고 수색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도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서 유지시켜온 것 역시 대중들 자신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후부터 “자식들 팔아서 한 몫 챙기려고 한다,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되지 않는다, 국가에 무슨 대단한 공을 세웠다고 유공자 행세를 하려 드느냐는 비난들을 일상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옮”겼던 이들 역시 대중들이었다. 또는 적어도 그러한 비난들을 묵과하고 용인했으며,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로 덮고 싶어 하는 정권 및 여당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 역시 대중들이었다.
한 편으로 국가가 우리 편, 나의 편이 아니라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 이들, 적어도 그들 중 어떤 이들이 곧바로 이렇게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원망과 비난으로 표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국가가 그들의 편이라면, 그리고 우리는 국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렵다면, 내가,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내가 그들에 속하는 길이다. 실제로, 곧 경제적으로ㆍ물질적으로 그들에 속할 수 없다면, 상상적인 방식으로라도 그들에 속할 수 있어야”[같은 책, 149쪽]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개인적ㆍ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힘 있는 자들, 몫 있는 자들의 편에 속하는 것이 자신들의 삶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특히 국가의 보호가 없이는 하루하루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 가장 몫이 없는 이들이야말로 이러한 실존적 진리를 절박하게 체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몫 없는 이들은 또한 가장 과소 주체화된 이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상징적 주체성을 힘 있는 이들과의 상상적 동일시로 대체한 이들”[같은 책, 152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세월호가 뜻하는 세 번째 측면이 나온다.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서의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같은 책, 153쪽]이다. 세월호 사건이 드러낸 것이 검은 구멍, 검은 공백으로서의 국가이고, 그러한 공백을 통해 표현된 것이 과소주체성이라면, 제기되는 문제는 주체성을 상실한 국가, 따라서 계급적인 치안기계로서의 본성(만)을 갖게 된 국가를 어떻게 (다시) 주체화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인터레그넘의 문제라면, 이는 이 문제가 해방 70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적 위상과 그 장래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본다면 지난 70여년 또는 60여 년 동안 한국인에게 유일한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해방과 전쟁이 남겨놓은 가난 속에서 사람들에게 지상과제는 하루하루의 생존이었으며, 먹고사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유일한 화두였다. 문제는 흔히 말하듯 이제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에게 유일한 화두는 먹고사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 유일한 개인적ㆍ국가적 관심사는 먹고사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것 이외에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전무한 공동체를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정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방식으로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정치공동체라기보다는, 랑시에르가 정의한 의미에서 치안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가 불화에서 사용한 치안 개념은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이를테면 반(反)정치적인 정치성이다. 랑시에르가 푸코에게 빌려와서 변형시키고 있는 치안police 개념은 우리가 보통 정치라고 부르는 것, 곧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가 이루어지는 과정들 전체”[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5, 61쪽]를 가리킨다. 하지만 랑시에르가 이것을 정치가 아닌 치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과정들 전체는 정확히 데모스를 정치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철인정치를 꿈꾸었던 플라톤의 아르케정치archi-politique[이것은 랑시에르가 플라톤주의적 정치철학을 규정하기 위해 불화 4장에서 사용한 용어다. 그는 치안의 정치철학을 플라톤의 아르케정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사정치, 마르크스의 메타정치로 구별한다.]에서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유 민주주의 정체에 이르기까지 치안은 데모스를 대신하여(또는 데모스를 배제한 가운데) 통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치안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뿌리를 둔다는 점이다. 치안은 무엇보다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을 정의하는 신체들의 질서이며, 이 질서는 신체들이 그것들의 이름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과제를 부여받도록 만든다. 이 질서는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의 질서로서, 어떤 활동은 가시적인 것으로 다른 활동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어떤 말은 담론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말은 소음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듣게 만든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노동의 장소를, 공적 영역이라 불리는 것에 고유한 보기 및 말하기 양식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사적 영역으로 만든 것이 치안의 법이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63쪽]
그러나 지난 60~70여 년 동안 존속해온 이러한 공동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공동체 또는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구현하는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도와 운동, 절차들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주체 내지 행위자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치안기계로서의 국가의 본성은 지난 70여 년 동안 오직 먹고사는 것 하나만을 유일한 가치로 추구해온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공동체의 역사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호명하는 것이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진태원,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 앞의 책, 154쪽]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월호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은, 그 유가족들 스스로 제기하는 이 문제, 곧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를 (다시) 구성하는 문제를 우리가 집합적으로 제기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내가 생각하는 인터레그넘의 문제다.
III. 어떤 정치적 주체?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왜 ‘을’의 문제로, ‘을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로 제기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짧게 말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인터레그넘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주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을’이라는 용어가 이 정치적 주체라는 문제에 관해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 중에서 특별히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이 용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과소주체적 현실, 곧 정치적 주체성의 부재에 대하여, 더 나아가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 용어 내지 개념의 부재에 대하여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을이라는 이 용어가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 용어 내지 개념의 부재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에 대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국민’이라는 말도 있고, ‘대중’이라는 말도 있으며, 또한 1970~80년대 인문사회과학에서 널리 사용되던 ‘민중’이라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에서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하는 용어가 부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선 국어사전에서 이 용어들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국어사전에 따르면(여기에서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어대사전을 참조하고 있다) ‘국민’은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국민은 정치적 주체라기보다는 통치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은 어떤 정치 공동체에 대한 법적 소속을 가리키는 용어이지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이는 ‘국민’은 주권의 담지자이며, 모든 권력의 주체라는 점을 표현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헌법적인 규정에 따르면 국민은 유일한, 또는 적어도 탁월한 정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 국민을 이런 의미의 정치적 주체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내가 확인한 바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어사전의 용법에 따를 경우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거나 법적 소속을 가리키는 용어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국어사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국어사전은 한국어 단어들의 실제 용례를 수집해서 기록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어사전은 국민이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헌법전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헌법상으로는 국민이 정치적 주체로 규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국민을 정치적 주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난 60여 년의 정치적 경험의 표현이든, 아니면 현재의 사회적 현실의 표현이든 간에, 국민을 실제로 정치적 주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자들인 경우 더욱 더 드물다. ‘국민이라는 노예’, ‘국민이라는 괴물’,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같은 저서들의 제목이 가리키듯,[니시카와 나가오, 국민이라는 괴물, 윤대석 옮김, 소명출판사, 2002; 권혁범,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삼인, 2004; 김철, ‘국민’이라는 노예, 삼인, 2005. 이 저작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진태원, 「국민이라는 노예?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민족문화연구 51호, 2009 참조.] 인문사회과학자들, 특히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자들일수록, 국민을 정치적 예속과 피지배의 표현으로 간주하지 정치적 주체의 표현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민족’이야말로 국민보다 정치적 주체에 더 가까운 용어라고 생각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민중’이야말로 우리말에서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진정한 용어라고 간주한다. ‘민족’의 경우는 차치해두고 여기에서는 ‘민중’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기로 하자.[‘민족’에 관해서는, 진태원, 「어떤 상상의 공동체? 민족, 국민 그리고 그 너머」, 역사비평 96호, 2011 참조] 역시 국어사전에 따르면 민중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보통 피지배층을 이루는 노동자, 농민 등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정의에서도 민중은 정치적 주체를 표현하지 않는다. 민중은 한편으로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사회에서 아래쪽에, 피지배층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농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또는 국가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룬다는 것이 정치적 주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과거 노예제 시절이나 봉건제 시절에도 피지배자들은 국가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었지만, 그들이 정치적 주체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어사전의 용법에 따를 경우 민중을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학자들의 경우에는 민중을 정치적 주체로 간주하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이 경우에도 답변은 부정적이다. 지난 192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민중’ 개념의 계보를 검토하고 있는 글에 따르면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3ㆍ1운동을 거치면서 더 이상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영웅의 존재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그 대신 민중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세영, 「‘민중’ 개념의 계보학」, 김경일 외, 우리 안의 보편성, 한울, 2013, 303쪽] 또한 1970년대에 들어서 함석헌은 “어떠한 정치적ㆍ사회경제적 제도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인 의미의 사람이자 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민중 내지 씨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이르게 되면, 민중신학, 민중사학, 민중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민중이라는 용어가 점점 더 “역사를 이끌고 가는 하나의 주체로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단계에 있어서의 대중”[같은 책, 307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민중이 “(신)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의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의 변혁주체”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민중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의 자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이제는 거의 누구도 역사의 주체,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이라는 개념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로 민중이라는 용어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에서 점점 더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최근 들어 “민중사학 이후의 민중사”라는 의제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민중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일군의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의 민중 개념(적어도 민중사학에서 사용된)이 “현실에서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구성해낸 ‘개념’”[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민중사를 다시 말한다, 역사비평사, 2014, 17쪽]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오히려 ‘일상적’이고 ‘다성적’인 주체로서의 새로운 민중을 재현하는 것을 자신들의 공통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둘째, 더 나아가 192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주체로 설정된 민중의 실제 의미는 저항의 주체라는 점이다. 곧 혁명가나 활동가 또는 학자나 문인들이 호명한 민중은 엄혹한 지배의 현실에 맞서 투쟁하고 저항할 수 있는 집합적 존재로서의 민중이지,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중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민중은 실제의 민중이라기보다는 당위적으로 요청된 민중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저항의 주체와 정치의 주체를 구별한 것은, 저항이 정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항 자체에 머물러 있는 주체, 따라서 자신을 구성과 통치의 위치에 놓지 못하는 주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의 주체에 미달한다는 점이다. 집합적으로 어떤 정치체를 구성하고 그 정치체를 통치하고 조직하는 위치에 존재하는 것만이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주장할 수 있다. 반면 민중은 ‘민중이 나라의 주인 되는’(김남주) 같은 시적 표현들이나 ‘민중민주주의’ 같은 사회과학적 표현들에서는 지속적으로 주체의 명칭으로 호명되었지만, 민중이 주인 되는 나라, 민중이 통치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실제로 누구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어에는 놀랍게도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중도 대중도 아니며, 국민도 아니다. 북한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러한 의미의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나온 조선말 대사전 증보판에 따르면 인민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1. 나라를 이루고 사회와 력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주체로 되는 사람들. 혁명의 대상을 제외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다 포괄된다. 2.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자주적으로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3. 어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북한 사회과학원, 조선말 대사전 증보판, 사회과학출판사, 2006] 이 세 가지 정의 가운데 첫 번째 정의가 바로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 사용되는 말 가운데는 이러한 의미의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부재한다.[알다시피 ‘인민’이라는 용어는 해방 이후에도 사용되다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남한에서는 더 이상 공식적인 법적ㆍ정치적 용어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성보,「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개념의 분화」, 한국사연구 144호, 2009 및 박명규, 국민ㆍ인민ㆍ시민, 소화, 2014를 참조]
하지만 이것이 마냥 불운한 일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의 이러한 부재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정치적 주체의 성격에 대해 새롭게 고찰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가 조금 뒤에 살펴볼 정치철학자들의 논의에서 좀 더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북한 사전에 나와 있는 인민에 대한 정의는 대문자 인민과 소문자 인민, 통치의 주체로서의 인민과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된 이들로서의 인민 사이의 간격과 괴리를 상상적으로 봉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전에 따르면, 북한에는 피지배자로서의 인민, 몫 없는 이들로서의 인민, 을로서의 인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최근 정치적 주체의 문제를 제기한 몇몇 서양철학자들의 작업을 검토해보고 싶다. 내가 살펴보려는 철학자들은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과 프랑스의 자크 랑시에르, 그리고 작년에 타계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영국 철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치적 주체의 문제를 이탈리아어의 포폴로popolo, 불어의 푀플peuple, 영어의 피플people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이 단어들은 모두 우리말로 하면 대략 ‘인민’이나 ‘민중’ 등으로 옮길 수 있을 터인데, 이 말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의 문제가 내가 살펴보려는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음역해서 사용하겠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정치적 주체로서 포폴포, 푀플, 피플의 핵심적인 특징은 그것의 내적 분할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1. 아감벤과 포폴로
아감벤은 목적 없는 수단이라는 논문 모음집에 수록된 「포폴로란 무엇인가?」라는 글[조르조 아감벤, 목적 없는 수단, 김상운ㆍ양창렬 옮김, 난장, 2009. 목적 없는 수단의 번역자들은 아감벤의 이탈리아어 popolo(영어로는 people)라는 단어를 줄곧 ‘인민’이라고 옮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이 번역 대신 원어를 그대로 음역하는 것을 택했다. 왜냐하면 popolo, peuple, pueblo, people 또는 Volk 같은 용어들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지, 또는 이러한 유럽ㆍ서양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어떤 것인지가 이 글의 주요 고찰 대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에서 서양어, 특히 유럽의 언어적 전통에서 ‘피플’people이라는 말이 갖는 이중적 의미를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어 포폴로popolo, 프랑스어 푀플peuple, 스페인어 푸에블로pueblo 같은 어휘들은 근본적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말들이다. “즉 동일한 하나의 용어가 구성적인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권리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정치로부터 배제된 계급도 가리키는 것이다.”[조르조 아감벤, 목적 없는 수단, 38쪽―강조는 아감벤] 부연하자면, 포폴로, 푀플, 푸에블로 같은 용어들은 한편으로 “총체적이면서 일체화된 정치체로서” 대문자로 된 포폴로Popolo, 푀플Peuple, 푸에블로Pueblo를 표현한다. 반면 동일한 용어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배제된 자들의 부분적이자 파편화된 다수”[같은 책, 40쪽]인 소문자 포폴로, 푀플, 푸에블로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자는 근본적으로 포함적인 반면, 후자는 본질적으로 배제적이다. “한 쪽 극에는 주권과 일체화된 시민들의 완전한 국가가 있고, 다른 쪽 극에는 비참한 자ㆍ억압받는 자ㆍ정복당한 자로 구성된 (‘기적의 궁전’이나 수용소 같은) 금지구역이 있다.”[같은 책, 같은 곳]
이러한 언어학적 고찰에 기대어 아감벤은 그 자신이 나중에 호모 사케르 연작을 통해 발전시킨 바 있는 서양의 정치 형이상학의 기본 구조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포폴로라는 개념에서 우리가 본래의 정치 구조를 규정하는 짝패 범주들을, 즉 벌거벗은 생명([소문자] 포폴로)과 정치적 실존([대문자] 포폴로), 배제와 포함, 조에zoe와 비오스bios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포폴로라는 개념은 그 안에 근본적인 생명정치적 균열을 이미 언제나 담고 있다. 포폴로는 자신이 이미 언제나 포함되어 있는 전체에 속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전체에 포함될 수도 없는 것이다.[같은 책, 41-42쪽]
그리고 아감벤은 역시 그가 나중에 호모 사케르 연작에서 제시한 바 있는 종말론적인 또는 오히려 메시아주의적인 정치철학(또는 정치신학)의 논지를 피력하고 있다. 곧 나치의 유대인 학살수용소에서 난민수용소를 거쳐 미국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배제된 자들인 포폴로를 근본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포폴로를 분할하던 분열을 메워보려는 집요하고도 체계적인 시도에 불과”[44쪽. 강조는 아감벤]하다. 특히 오늘날 “발전을 통해 빈민 계층을 제거하려는 자본주의적-민주주의적 계획은 자신의 내부에서 배제된 자들로 구성된 인민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모든 주민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바꿔놓고 있다.”[45-46쪽] 따라서 이것은 전지구적인 내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근본적인 생명정치적 분열[곧 조에와 비오스의 분열-인용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만이 유일하게 이런 진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지구상의 포폴로와 시민 전체를 분할하는 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46쪽]
아감벤의 논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서양어, 특히 유럽의 로만스 언어 계열에서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들(포폴로, 푀플, 푸에블로, 또는 어느 정도까지는 영어의 피플)은 본질적인 중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용어들은 한편으로 어떤 정치체의 성원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그 중 특정한 일부, 곧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된 이들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중의성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지속되어온,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의 근대성을 근원적으로 특징짓는 생명정치적 이원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가 상징적으로 표현하듯, 배제되고 주변화된 포폴로를 완전히 배제하고 절멸시키려는 기획을 표현한다. 따라서 아감벤의 정치적 기획은 이러한 묵시록적인 절멸의 기획, 전지구적인 내전의 기획에 맞서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적 주체로 또는 오히려 정치적 탈주체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랑시에르와 푀플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랑시에르 역시 서양 정치철학의 시초에서부터 정치적 주체는 이중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감벤과 달리 그는 이를 시원적인 생명정치적 분할과 연결시키지 않으며, 메시아주의적인 정치적 기획과 관련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초부터 유일한 정치적 주체는 몫 없는 이들로서의 푀플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랑시에르의 논점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텍스트를 통해 그의 주장을 검토해보자. 랑시에르는 「정치에 대한 열 개의 테제」 중 5번째 테제에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푀플peuple(랑시에르 저작의 국역본에서도 역시 이 단어는 모두 ‘인민’으로 번역되어 있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테제 5: 민주주의의 주체이며, 따라서 정치의 모체가 되는 주체인 푀플은 공동체 성원들의 총합이나 인구 중 노동하는 계급도 아니다. 푀플은 인구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관하여 대체 보충적인 부분으로, 이것은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Il est la partie supplémentaire par rapport à tout compte des parties de la population, qui permet d'identifier au tout de la communauté le compte des incomptés. [Jacques Rancière, Aux bords du politique, Gallimard, 2004, pp. 233~34; 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 242쪽]
5번째 테제를 번역하면서 번역자는 프랑스어 원문의 “la partie supplémentaire”를 “보충이 되는 부분”으로 옮겼지만, 나는 이것을 데리다적인 의미에서 “대체보충적인 부분”이라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데리다의 ‘대체보충’의 의미에 대해서는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에 수록된 “용어해설”을 참조]
이 테제에서 푀플은 두 가지로 정의되고 있다. 첫째, 푀플은 “민주주의의 주체”, 따라서 “정치의 모체가 되는 주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푀플은 “공동체 성원들의 총합collection des membres de la communauté”이 아니며, 인구를 구성하는 여러 개인들이나 집단들 중에서 “노동하는 계급classe laborieuse”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둘째,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푀플은 “인구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관하여 대체 보충적인 부분”을 뜻한다. 그리고 랑시에르는 이러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두 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푀플은 공동체의 부분들 각각에 대한 셈을 대체 보충하는 부분으로, 이러한 대체 보충적인 부분에 의해 공동체 전체는 셈해지지 않은 이들의 셈과 동일시될 수 있다. 푀플에 대한 랑시에르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1)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우선 이 테제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한 랑시에르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랑시에르는 기원전 500년 경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클레이스테네스가 이룩한 민주주의 개혁을 “민주주의에 그것의 장소를 부여하는 중대한 개혁”[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242쪽]으로 평가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혈연에 기반을 둔 통치 체제와 단절하는 민주주의 정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이 개혁의 핵심은 클레이스테네스가 도입한 행정구역 재편에 있다.[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에 대한 랑시에르의 평가는 프랑스 고전학자들의 작업에 기대면서도 또한 그들의 논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장 피에르 베르낭, 「고대 그리스의 공간과 정치적 조직」,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박희영 옮김, 아카넷, 2005 참조] 이전까지 아테네는 ‘퓔레phyle’라고 불리는 혈연에 기반을 둔 4개의 부족 체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이것을 해체하고 대신 아테네 시와 그 주변지역, 해안지역, 내륙지역 같이 3개의 구역으로 아테네 국가를 정비하면서 데모스demos라 불리는 촌락공동체가 중심 단위를 이루는 10개의 부족으로 재편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체제에서 남성들은 18세가 되면 데모스에 등록하여 재산이나 혈연과 무관하게 참정권을 비롯한 시민의 권리와 지위를 평등하게 보장받았다. 따라서 랑시에르에 따르면 “요컨대 인민이란 출생의 원칙을 이어가기 위해 부의 원칙을 부여하는 논리를 가로막은 인위적 고안물artifice이다.”[Rancière, Aux bords du politique, p. 233;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243쪽] 랑시에르가 푀플에 대하여 제시한 정의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재해석의 결과다.
2) 추상적인 것으로서의 푀플
그는 테제 5를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한다. “푀플은, 인구를 이루는 부분들이 공동체에서 몫을 나누어가질 자격에 대한, 그리고 이 자격에 따라 그들에게 돌아올 몫들에 대한 모든 실제의 셈과 관련해볼 때 추상적인 하나의 대체 보충이다. 푀플은 셈해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셈 또는 몫 없는 이들의 몫, 곧 말하는 이들의 평등—이러한 평등이 없이는 불평등 자체도 사고 불가능하다—을 기입하는 대체 보충적 존재다.”[Ibid., pp. 234~35; 243쪽-번역은 수정]
이러한 재규정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푀플은 “모든 실제의 셈과 관련해볼 때 추상적인 하나의 대체 보충”이라는 규정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모든 실제의 셈”이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 곧 각각의 개인과 집단, 계층과 계급들이 그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갖게 되는 몫에 대한 규정을 뜻한다. 이러한 몫은 좁은 의미의 경제적 이익이나 이러저러한 권리만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이 지니는 정체성과 성질 및 자격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푀플이 이러한 “모든 실제의 셈과 관련해볼 때 추상적인 하나의 대체 보충”이라고 말한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푀플이라는 속성 내지 자격이 몫의 분배와 관련된 “실제의 셈”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뜻한다. 곧 푀플이라는 속성 내지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어떤 몫을 더 받거나 덜 받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푀플이 단지 “추상적인” 자격이나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대체 보충”이라는 점이다. 푀플은 공동체에 속하는 각각의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지닌 이러저러한 속성이나 자격, 정체성에 덧붙여진 추가적인 속성 내지 자격이다. 그것은 실제의 셈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분배의 몫을 규정하는 데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정치 공동체인 한에서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성원들이 항상 이미 지니고 있는 속성 내지 자격이 바로 푀플이라는 속성이다.
3) 대체하는 보충으로서의 푀플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대체하는” 보충인가? 이것이 “대체하는” 것은 무엇인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곧 개인들이나 집단들에게 돌아갈 몫들의 분배를 규정하는 것은 아르케arkhe의 논리다. 그리스어로 “시초”, “원리”, “지배” 등을 뜻하는 아르케라는 말은, 랑시에르에 따르면 어떤 공동체 성원들의 속성 내지 자질과 그에 따른 분배의 몫을 규정하는 원리를 뜻한다.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가령 고귀한 혈통 출신의 사람들이 비천한 혈통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자격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몫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또 나이가 더 많거나 재산이 많은 이들, 또는 남들보다 더 유덕하거나 더 많은 지식을 지닌 사람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자격을 지니고 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몫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비해 자격이 덜한 사람들, 곧 혈통이 비천하고 나이도 적고 재산도 변변찮고, 유덕하지도 못하며 지식도 없는 사람들은 더 적은 몫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셈 자체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스의 경우 여성이나 노예, 외국인 등이 그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케의 논리는 불평등의 논리이자 배제의 논리며, 이러저러한 본성적인/자연적인 자격의 차이에 근거하여 그러한 불평등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불화에서 랑시에르가 사용한 용어에 따른다면, 아르케의 논리는 모든 종류의 치안—우리가 흔히 정치체 내지 정치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을 근거 짓는 논리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참조]
푀플이라는 속성 내지 자격이 대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르케의 논리다. 아르케의 논리에 따르면, 가령 한국 최고의 재벌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이태원 전철역 앞에서 노숙하는 사람은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한 성원이기는 하되, 그들이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몫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속성과 자격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푀플이라는 원리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자격 및 따라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에 대한 실제의 모든 셈과 무관하게, 그러한 셈에 앞서 한 사람의 푀플, 한 사람의 데모스라는 점에서는 동등하다(데모스라는 말의 또 다른 뜻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한남동의 주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양자는 모두 한 사람의 푀플이며, 그런 한에서 동등한 정치 공동체의 주체로서 존재한다.[그는 다른 곳에서는 이를 ‘대체 가능성’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J. Rancière, “Should Democracy Come?”, in Pheng Cheah & Suzanne Guelac eds., Derrida and the Time of the Political, Duke University Press, 2009 참조]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은 정치적 주체로서의 동등한 몫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일정한 속성이나 자격의 부재 때문에 공동체의 몫의 분배 질서에서 배제된 사람들 역시 한 사람의 푀플, 하나의 데모스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등하며, 정치적 주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는 모두 동등한 몫을 지니고 있다. “푀플은 셈해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셈 또는 몫 없는 이들의 몫, 곧 말하는 이들의 평등—이러한 평등이 없이는 불평등 자체도 사고 불가능하다—을 기입하는 대체 보충적 존재다”라는 랑시에르의 말은 바로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4) 민주주의=몫 없는 이들의 몫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대체 보충적인 부분이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테제 5)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공동체 전체가 셈해지지 않은 이들의 셈과 동일시된다는 것은, 첫째,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 공동체로, 이러한 공동체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들의 합과 동일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각각의 부분들의 속성과 자격 및 그에 따른 몫의 분배가 아르케의 논리를 따르며, 아르케의 논리는 자연적인 불평등 질서의 표현이자 정당화를 뜻하는 데 반해, 정치 공동체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아르케 논리와의 단절을 통해 형성된 “인위적 고안물”이다.
둘째, 정치 공동체가 인위적 고안물인 이유는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성원들인 데모스 또는 푀플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존재자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성된, 또는 발명된 존재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속성(혈통, 부, 유덕함, 지식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능력이나 자격의 정도와 무관하게 동등한 주체들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그러한 평등을 서로에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 공동체의 유일한 토대 아닌 토대로 긍정하는 정치적 주체들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며, 또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푀플 내지 데모스라는 정치적 주체의 등장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인구 자신을 그 내부에서 분할하는 일이다. 데모스가 등장한 이후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구들은 더 이상 그 이전과 동일한 인구가 아니다. 그 이전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구들이 아르케 논리에 따라 규정되고 몫을 분배받는 존재자들이었다면, 푀플 내지 데모스의 등장 이후의 인구들은 그들의 “모든 실제적인 셈”에 앞서, 푀플이라는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으로 규정되는 인구들이다. “푀플은 정당한 지배의 논리를 중단시킴으로써 인구를 인구 자신으로부터 탈구시키는 대체 보충이다.”[Rancière, Aux bords du politique, p. 234;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242쪽]
3. 포퓰리즘과 피플
마지막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처음으로 제창한 인물이자 현대 포퓰리즘 이론을 쇄신한 바 있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피플에 대한 재규정을 살펴보자. 라클라우는 랑시에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전자의 부분은 단순한 한 부분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질서에서 억압되고 배제된 부분이다.
이를 라클라우는 플레브스plebs와 포풀루스populus라는, 로마 시대의 정치적 집단을 지칭하는 두 가지 상이한 명칭을 통해 표현한다. 포풀루스가 어떤 정치 공동체의 성원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따라서 가령 국민 공동체의 합법적인 성원들 전체로서의 ‘인민’)이라면, 플레브스는 포풀루스의 일부분이기는 하되, 기존의 사회 현실과 정치 질서 속에서 제대로 인정받거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집단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러한 집단들은 각자 상이한 이해관계 및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들은 분산되어 있는 플레브스로 계속 머물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서로 접합된다면, 다시 말해 공동의 대의를 통해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곧 포퓰리즘적 주체로 구성된다면, 그들은 분산된 플레브스로 머물지 않고 스스로 전체를 자임하는 부분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포풀루스는 진정한 피플이 아닌 억압적이고 기만적인 피플로 드러나며, 반대로 기존의 사회 질서에서는 부분으로 나타났던 플레브스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포풀루스를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주어진 것으로서의 포풀루스(현재 존재하는 대로의 사회적 관계의 총화)는 자기 자신을 허위적 총체성으로, 억압의 원천인 부분성으로 드러내게 된다. 반면 플레브스의 경우 그것의 부분적 요구는 온전하게 충족된 총체성의 지평 속에 기입될 것이며, 진정으로 보편적인 포풀루스를 구성하는 것을 열망할 수 있게 된다. 포풀루스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엄밀하게 공약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성, 곧 플레브스는 자기 자신을 이상적 총체성으로 인식된 포풀루스와 동일시할 수 있게 된다.[Ernesto Laclau, On Populist Reason, Verso, 2005, p. 94]
랑시에르와 라클라우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이 점에 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포퓰리즘, 민주주의, 민중」, {역사비평} 2013년 겨울호 참조]
첫째, 라클라우는 차이의 논리에 따라 분산되어 있는 개인 및 집단들이 피플이라는 정치의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상징적 준거로서의 지도자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때의 지도자는 살아 있는 현실적인 인물일 필요는 없으며, 그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고 결합될 수 있다면 족하다. 따라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지도자의 이름이다. 라클라우의 모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이나 중국의 마오쩌뚱,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 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바로 그러한 이름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둘째, 랑시에르는 정치를 곧 주체화subjectivation와 동일시한다. 랑시에르가 주체화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가령 고대 그리스의 데모스라는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나 19세기 프랑스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근대적 주체의 형성, 또는 19세기 후반 여성이라는 또 다른 주체의 형성, 20세기 말 이주자라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 등이다. 랑시에르는 주체화를 탈-정체화dis-identification로 정의한다. 곧 치안이라고 불리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통해 부여된 이런저런 정체성들을 거부하고 그러한 정체성들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주체 형성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주체화이다.
랑시에르는 19세기 프랑스의 급진적인 정치가였던 오귀스트 블랑키가 사용했던 ‘프롤레타리아’라는 명칭을 이러한 주체화 과정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블랑키는 1832년 열린 재판에서 검사가 그의 직업을 묻자 “프롤레타리아”라고 대답한다. 검사가 그것은 직업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블랑키는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우리 인민 대다수의 직업”이라고 답변한다. 여기서 검사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치안의 논리로서 정체화의 논리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블랑키의 대답은 엉뚱한 대답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는 직업의 명칭이 아닐뿐더러, 블랑키 자신이 노동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블랑키는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는 사회학적인 정체성을 지닌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셈-바깥을 가리키는 이름, 내쫒긴 자의 이름”이다. 따라서 그것은 “천민들parias”이 아니라 “계급 질서에 속하지 않는 이들, 따라서 그 질서의 잠재적인 소멸인 이들(마르크스가 말했던 모든 계급의 소멸인 계급)”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화 과정을 탈-정체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라클라우가 차이의 논리를 넘어선 피플적인 등가성의 논리를 통해 비로소 급진 민주주의 주체인 피플이 형성된다고 주장할 때, 라클라우의 주장도 랑시에르의 주장과 유사하다. 단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론 및 헤게모니 이론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투쟁들을 어떻게 접합하고 결속시킬 것인가에 있는 데 반해, 랑시에르는 주체화라는 이름 아래 이러한 투쟁들의 고유성과 이질성을 강조할 뿐,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 연대를 형성하고 결속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랑시에르가 역사적인 몇몇 사례(고대 그리스의 데모스, 19세기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 19세기 후반 여성)를 통해 주체화 과정을 예시하는 반면, 라클라우는 이를 사회운동, 정치운동의 일반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라클라우에게 제기되는 질문은, 포퓰리즘을 통해 형성된 인민을 어떤 근거에서 민주주의적 인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꿔 표현될 수 있다. “만약 좌파 포퓰리즘 내지 진정한 민주주의적 포퓰리즘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 포퓰리즘을 우파 내지 극우파와 구별되는 좌파 포퓰리즘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적 포퓰리즘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진태원, 「포퓰리즘, 민주주의, 민중」, {역사비평}, 209쪽]
4. 을의 민주주의―불가능한 기획?
‘을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잘 정리된 개념보다는 하나의 화두에 가까운 말이다. 을이 누구인지, 그들이 실제로 정치적 주체로, 민주주의적 주체로 구성될 수 있을지, 그들이 과연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역사적 대한민국’의 공동체와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을은 그냥 잠시 사용되었다가 곧 소멸하게 될 유행어인지, 따라서 인터레그넘의 시기를 건너는 새로운 정치의 주체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할지,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을 을이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사회 스스로 을이라는 이 평범한 말을, 심각하고 무거운 말로, 사회의 심층적인 현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을들의 자기 지칭으로서의 을이라는 표현은 을의 민주주의가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첫째, 을이라는 말은 이 사회에는 동료 시민들에게 지배되거나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더욱이 그들이 다수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보편적 평등의 원리에 입각해 있는 민주주의의 이념에 비춰보면, 이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민주주의적 사회가 아니든가 아니면 적어도 심각하게 민주주의가 왜곡되거나 훼손된 사회라는 것을 말해준다. 을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병리성을 표현해주는 개념이다.
둘째, 갑에 의한 이러한 억압과 주변화, 소외에도 불구하고, 을들은 과소 주체적 존재자들로 실존하고 행위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을들은 동등한 을들이 아니라, 을 아래의 병, 병 아래의 정 등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을은 자신이 갑에게 당하는 것 못지않게 병 위에 군림하며, 병은 또 다른 자신의 을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주체화의 근본 과제가 을의 연대의 문제라는 것, 더 나아가 갑과 을 사이의 구조화된 위계 관계를 어떻게 평등한 민주주의적 관계로 전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곧 을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을을 새로운 지배자, 새로운 갑으로 구성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가 묻고자 하는 것은 을이 지배자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주인이 아닌(따라서 또 다른 하인이나 노예를 전제하는) 주체, 주권자가 아닌(따라서 또 다른 신민(臣民), 백성을 전제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그것을 우리가 여전히 주체subject라고(곧 객체를 전제하는 어떤 것) 부를 수 있는지, 다시 말하면 근원적으로 양가적인 주체라는 이 용어[이 점에 관해서는 Etienne Balibar, Citoyen sujet et autres essais d'anthropologie philosophique, PUF, 2011 참조]를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지도 우리가 질문해봐야 할 것 중 하나다.
셋째, 을은 한국 현대사의 증상을 표현해준다. 곧 한국 현대사에서 민은 (간헐적인 봉기의 순간들을 제외한다면) 정치적 주체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 한국어에는 역시 정치적 주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을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터레그넘의 시대에 처하여, 세월호 이후, 해방 70년의 시점을 맞이하여 민주주의 자체에 대하여, 민주주의의 주체에 대하여, 정치 공동체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고, 평등과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대의 구성에 대해 실험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장래,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