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어쩌려고 그래…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야”

김선일씨 납치 뒤 이라크 현지 표정… 한국의 파병 강행 보도되자 납덩이처럼 무거운 반응


한국의 한 노동자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억류되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겨레21>은 현지에 있는 자유기고가 김영미씨를 긴급 섭외해 현지 상황과 이라크인들의 반응을 취재했다. 이라크인들은 정부가 성급히 파병 철회 거부를 선언하는 것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추가 파병 예정지인 아르빌의 복잡한 상황도 전한다.


▣ 아르빌= 김영미/ 자유기고가

마침내 우려하던 사태가 불거졌다.

지난 6월20일께 바그다드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스완 호텔에 사무실을 차린 <알자지라> 방송사로 CD 한장이 들어왔다. 어떤 낯선 남자가 놓고 간 것이다. CD의 내용은 놀랍게도 가나무역의 한국인 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됐으며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알자지라>의 신속한 보도 결정


△ 김선일씨의 귀환을 위하여, 6월21일 저녁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파병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사진/ 김진수 기자)

이라크 저항세력의 외국인 납치는 올해 들어 끊이지 않고 있다. <알자지라>는 이렇게 인편으로 호텔에 놓고 간 테이프로 그동안 일본인과 이탈리아인, 프랑스인 등 여러 나라의 외국인 납치 사건을 방영했다. 한국인 납치 뉴스를 담당한 <알자지라> 프로듀서 오마르는 “지금으로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납치 억류돼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 화면을 보는 순간 톱뉴스라고 생각했고 신속하게 보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선일씨는 6월17일에 납치된 것으로 확인됐고 바그다드에 소재한 가나무역의 직원이다. 가나무역은 이라크 주둔 미군부대에 일상용품이나 군복에 관련된 물건을 납품하는 군납업체인데,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군을 상대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왔다. 이라크에는 지난해 바그다드 함락과 동시에 미군과 함께 이라크에 들어와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알와하드 거리에 민가 두채를 빌려서 사업을 하는 중이다.

사장 김천호씨를 비롯해 12명의 한국인 직원, 제3국에서 온 노동자와 이라크 현지인 등 제법 큰 회사로 성장했다.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 성공한 사례로 꼽혔고 매출도 꽤 많은 회사이다. 가나무역의 직원들은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면 남부 나시리야, 나자프, 북부 티크리트, 키르쿠크, 모술 등 가리지 않고 다녀야 했고, 이라크 현지 사람들에게 감정이 안 좋은 미군에게 납품을 하는지라 그전부터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미 해병대가 지난 4월 팔루자 전투 이후 팔루자 인근에 주둔지를 마련하면서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자, 김선일씨는 이라크 현지인 한명만 동반한 채 배달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한국에 김씨 납치 사실이 알려진 것은 <알자지라> 채널을 통해서다. 이곳 시각은 6월20일 밤, 한국은 21일 새벽 5시께다. <알자지라>는 저항세력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애용(?)하는 방송사다. 김씨가 복면을 한 3명의 무장 괴한들 앞에서 울부짖으며 영어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과 무장세력이 한국군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낭독하는 장면을 담은 2분가량의 비디오테이프가 방송됐다.


△ <알자지라>가 입수, 6월20일 방영한 김선일씨의 모습.(사진/ AP연합)

파병 재확인 이라크 전역에 방송

지난 6월18일 한국 정부의 추가 파병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해서 아마 이라크 전역에 신속하게 그 소식이 전달됐을 것이다. 이번 김선일씨 납치 사건도 톱뉴스로 다뤘다. 지금 상황은 김선일씨를 인질로 잡고 <알자지라>라는 방송을 이용해 한국 정부와 한국군을 ‘협박’한 셈이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기존의 파병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했고, 이는 또다시 신속하게 이라크 전역에 방송됐다. 이 방송은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 3천명의 병력을 파견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21일 보도했다. 방송은 ‘한국, 구조 신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파병키로’라는 자막과 함께 한국 정부가 긴급 대책회의에서 파병 강행 방침을 정리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김씨의 울부짖는 모습에 한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파병 결정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송을 접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저항세력이 나름대로 정색을 하고 협박하는데 한국 정부가 파병 철회 불가를 계속 외치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정면에서 거절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 있겠지만, 이곳 이라크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방송을 접한 이라크 시민들은 저러다 인질이 희생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마디씩 했다. 바그다드와 아르빌을 오가며 중고차를 수입하는 요세프(52)는 “나도 한국의 중고차를 많이 수입하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데 이런 사건이 일어나서 유감이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한국인들이 겪어보지 못한 특별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한다면 하는 사람들인데 한국 정부가 너무 강경하게 나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현지인들은 거의 김씨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체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돈을 원하지 않는다


△ 부산 동구 김선일씨의 집에서 아버지 김종규씨와 어머니 신영자씨가 울먹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그럼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지금 무장세력들이 방송을 통해 요구를 하는 만큼 한국 정부도 이곳 방송을 통해 설득해봐야 한다. 아마 테이프를 보내놓고 <알자지라>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한국 정부쪽 인사가 그들을 설득하는 방송을 해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해야 하고 팔루자에서 영향력 있는 부족장이나 성직자를 찾아내 그들을 설득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서둘러 김선일씨를 구출하는 데 애를 써야 한다. 마침 카타르 주재 정문수 대사는 6월21일 정오(한국시각 오후 6시) <알자자라>에 출연해 김씨의 석방을 호소했다. 그는 특별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에 파병된 서희·제마부대의 인도적 지원과 평화유지 활동을 집중 설명하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방송은 정 대사의 인터뷰 내용을 약 4분간 생방송으로 내보낸 뒤 한국의 국립방송이 제작한 ‘서희·제마부대를 가다’를 약 3분에 걸쳐 내보내는 등 한국군의 평화재건 활동을 부각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한국 정부의 파병 철회 불가 방침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다행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라크 수니파 지도자 협의체인 이슬람 울라마 기구가 21일 수니파 밀집지인 팔루자에서 납치된 김씨의 석방을 호소했다. 이 단체의 하레스 알다리 대변인은 “점령군에 협력한 사실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도적 차원에서 인질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 기구는 지난 4월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됐던 일본인 3명이 무사히 석방되는 데 기여하는 등 이라크에서 영향력이 큰 수니파 조직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다른 김씨 구출방법은 어떻게 작동된 걸까. 사실 이곳은 거의 무정부 상태다. 무장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중앙정부가 부재한 상황에서 외교를 펼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장세력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행동을 할 뿐이다. 지금 이들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존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무장세력의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억류한 무장세력을 돈으로 매수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일부 있으나, 이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이들이 돈을 원했으면 ‘24시간 내 참수 경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원했으면 그처럼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 주한 중동국가 대사들이 6월21일 김선일씨의 무사 귀환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받은 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사진/ 류우종 기자)

제2, 제3의 한국인 납치 사건…

애초에 한국군 파병을 결정한 것 자체가 이런 사건을 이미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인이 납치돼 희생당한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라크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무척 존경했다. 잘사는 나라, 민주적인 국가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는데 어쩌다 양국관계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제2, 제3의 한국인 인질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에서는 가정마다 위성방송을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다른 지역에 있는 저항세력에게도 좋은 홍보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군의 파병이 이렇게 이들에게 큰 사안이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24시간이 거의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곳 시각으로 21일 오후 4시(한국시각 밤 10시)께 <알자지라>가 “1시간 뒤 김씨와 관련된 새로운 테이프를 보여주겠다”는 긴급 속보를 자막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현지 시각 밤 9시(한국시각 22일 오전 3시) 현재까지 <알자지라>는 새로운 뉴스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김씨의 생사 여부에는 관심없다는 듯 이라크의 밤은 전날처럼 그렇게 고요속에 깊어가고 있다. 그가 참수됐다는 불길한 소식만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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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국민의 분노는 무장세력 아닌 정부를 향해 있다"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16> 국회, '파병 연기안'이라도 제출해야

 

  이라크 파병과 관련하여 한국 민간인이 납치 살해의 위험에 처하는 악몽이 현실화되었다.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납치 살해의 성격과 함의에 대해 이 연재에 게재한 앞 글("이라크 저항세력의 '이지메의 군사학'")에서 자세히 논한 바가 있으니, 이 글에서는 현재의 급박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의 방향에 대한 논점만을 짧게 제시하고자 한다.
  
  어처구니없는 '백지 파병안'
  
  현재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시민 한 사람의 납치로 인하여 파병이라는 국가 정책이 좌우될 수는 없다"는 안이한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 "중대한 국가 정책"인 파병을 결정하고 집행해 온 현재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파행적이었는가를 전혀 보지 않음으로서, 현재의 사태로 인하여 그렇게 파병을 결정한 국가 권력 전체(노무현 정권 뿐이 아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여야)가 지금 정당성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더욱 근본적인 위험성을 완전히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 국가란 기본적으로 국민 전체의 안녕과 국익을 지키는 집단이다. 그리고 '파병'이란 한 나라가 그 행위에 따라오는 모든 위험과 자신의 국익에 대한 철저한 심사숙고 끝에 내리는 무겁고도 비장한 결정이다. 따라서 그 국가의 개별 성원들 몇몇의 개인이 위기에 처한다고 해서 국민 전체를 생각하여 내린 그 '파병'이라는 상위의 정책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시비 여하를 떠나서 이러한 보수적인 논리가 정치 외교에 있어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해왔음은 분명하다.
  
  현재의 문제는, 그 '심사숙고'의 과정이라는 것이 국민들 모두가 보았고 게다가 수 많은 이들이 숱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루어져왔는가라는 데에 있다. 대통령은 대중적 토론과 국민 여론 형성을 원천적으로 막아오다가, 논의 시작 하루 만에 파병 결정을 내려버렸고, 몇몇 관변 제도 언론들은 파병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쟁점들을 명시적 암묵적으로 호도하여 토론 형성을 저해하였고, 그 와중에서 예산도 구체적 계획도 파병 목적지도 관련 법률 근거도 모호한 전대미문의 '백지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해버렸다.
  
  쿠르드 지역에 파병을 하면서도 '21세기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저 일촉즉발의 쿠르드 민족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은 아예 묻기조차 쑥쓰러운 지경이다. 도대체 파병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묻는 의회 석상의 질문에 대해 NSC에서 나온 정부 관료는 "국익은 애매한 문제"이며 또 "자세히 말하기 힘든 예민한 문제"라고 하면서 답변을 사실상 거부해 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오만과 독주를 질책하고 들어갔어야 마땅한 여의도의 '국민의 대표들'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오히려 파병 찬성으로 돌아서 버렸다.
  
  "국민의 분노는 정부를 향해 있다"
  
  파병이라는 그 '중대 결정'이 이렇게 파행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생겨난 최대의 문제는 무엇인가. 원래 국민들은 파병이라는 국가의 결정에 동의하고 진행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부와 똘똘 뭉쳐 헤쳐나가는 일 주체로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준비에 필요한 정보가 조직적 체계적으로 차단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평화로운 지역에의 비전투병 파병"이라는 식의 반복되는 정부와 관변 여론의 선전으로 인하여, 국민들은 이라크 파병이 그저 "마을 회관 지어주고 예방 주사 놓아주러 가는" 정도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따라가는 호송 병력도 기껏 경계 근무나 서다 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벌어진 국내의 파병 논쟁이라는 것도 마치 "국익이냐 평화 인권이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같은 고담준론 차원에서 벌어졌지, 그 누구도 내 아들이 내 아버지가 톱에 목이 잘릴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는 차원으로 논의를 걸지 않았다. 요컨대, 파병되는 젊은이들은 물론 심지어 김선일씨 같이 평범한 '우리' 조차 '참수'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은 한 번도 국민들에게 진지하게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허술한 준비 속에서 파병이 진행되고 현재의 사건이 터지게 되었으니, 국민들은 이번 김선일씨의 일에 정말로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분노는 지금 이라크 무장 세력에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키고나서 일이 터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파병 결정 변함없다"를 외치는 정부에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국민들도 안전하지 않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만에 하나 불상사가 터지고 이전의 미국인들의 경우처럼 그 광경이 전세계에 보여지게 될 경우 어떤 일이 생길까. 나아가, 한국의 국민들은 100% 안전한가. 스페인의 끔찍한 전례는 절대 없을 것인가. 그런 악몽이 현실화될 경우, 그 때에 사람들은 누구에게 분노할 것이며 무엇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국민들 다수의 여론과 감정이 "이러한 위기일수록 한마음으로 뭉쳐 정부와 함께 저 이라크 원수들과 싸우자" 쪽으로 갈 것으로 보는가. 아마도 어제 만두 파티에서 "한 사람 죽는다고 파병을 뒤집는단 말인가"라고 발언했던 유시민 의원 같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상황을 풀어 나가는 열쇠는 의회가 그래서 의회가 쥐고 있다. 이 시점에서 그래도 소중한 자산은, 민주 노동당 의원들 전원을 위시하여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도 야당인 한나라당 민주당에도 적극적인 파병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포진하여 의회 내에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속하고 적극적인 단합된 행동으로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파병 철회를 이루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파병 연기안'을 시급히 제출하여 임박한 파국은 막아야 한다. "이라크가 안전한 상황"이라는 국방부 등의 상황 보고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기존의 파병안 통과는, 전황이 악화되고 파병도 이루어지기 전에 민간인들의 생명이 위태로와지는 현재의 시점에서 충분히 재검토할 이유가 있다.
  
  이것을 받아 안아 상황을 풀어나갈 열쇠는 과반수를 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있다. 열린우리당은 그러한 발의를 신속하게 공론화하고 의회 내의 방향을 '연기' 쪽으로 주도하여 안으로나 밖으로나 한국의 파병 여부를 일단 유동화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밖으로는 이라크 무장 세력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행동을 일단 유보하도록 이끌어야 하며, 안으로는 경악에 질린 국민 감정을 달래어 안정시키고 다시 이성적인 논의의 실마리가 찾아질 수 있도록 상황을 다듬어야 한다.
  
  "국회, 신속한 파병 연기안 처리해야"
  
  "파병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현재의 상황에서, 도저히 접점이 보이지 않는 파병 철회론과 고수론의 호각을 지켜볼 여유가 없다. 파병이 국익을 위하여 여전히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는 쪽도 또 거기에 반대하는 쪽도 그 다음에 자신들의 의견을 차근차근 대중들 앞에 공개하고 설득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면 그만이다.
  
  파병 지역인 쿠르드에 지금 급박한 상황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김선일 씨의 '참수'의 가능성을 끌어안으면서까지 예정대로 파병을 진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연후에 파병을 통해 어떤 '국익'을 얻게 되는지 혹은 잃게 되는지를 충분히 논의하면서 국민들은 그제서야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진 논의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부나 열린우리당 또 한나라당은 결코 이러한 파병 연기의 제안을 이라크 무장 세력에의 굴복이나 국가의 권위 실추라고 받아들여서는 아니된다. 이렇게 납득할 수 없던 과정으로 나온 파병안은 어차피 진즉에 원점으로 돌렸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이라크 파병 문제는 그래서 국제 문제가 아닌 우리 내부의 문제로 변해 있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파병안 연기는 현재 이상의 사태 악화의 가능성에 처한 현 시점에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한 국가의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예방조처이다.
  
  요약하겠다.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김선일 씨의 생명 뿐이 아니다. 파병 선택의 대가가 이토록 값비싼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된 일반 국민들의 안전도 위험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해진 것은, 기상천외와 임기응변의 정치 기술로 '파병'이라는 중대사마저도 뜻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현 정권과 국가의 도덕성 정당성이다. 신속한 파병 연기안의 통과야말로 김선일 씨의 생명과 분노하고 당혹한 국민 그리고 돌연 일대 위기에 처한 정권 모두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의 최소한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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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정치학자가 쓴 아주 명쾌한 글입니다. 많이 읽어보고 퍼가고 하시길...

릴케 현상 2004-06-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

nrim 2004-06-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올려고 했는데 먼저 퍼오셨군요. 감사. ^^

balmas 2004-06-2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 제가 한 발 앞섰군요.

모모 2004-06-22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물론 퍼가고요 =) (이거 말고 다른 글도 하나 퍼갔었는데, 흐.) 마음이 갑갑하네요.

balmas 2004-06-2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 납치되어도 전 국민의 가슴이 이렇게 답답한데, 혹시 있을지도 모를(이런 가정 자체가 너무 끔찍하긴 하지만) 제 2, 제 3의 납치, 심지어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테러를 생각하면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오직!

노무현 정부는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

미국은 파병압력 중단하고, 이라크에서 즉각 물러나라!


조선인 2004-06-22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팍팍 추천해야 합니다요. ^^

balmas 2004-06-2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퍼날라야죠.^^
 

[조선일보 사설]

인질사건에 치밀하고 성숙한 대처를

이라크의 과격 무장 테러단체가 한국인을 인질로 삼아 한국군의 철수와 추가파병 철회가 없으면 처형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인질로 잡힌 김선일씨가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처절하고 안타깝다.

우리는 무엇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민간인에 대한 납치 테러 행위에 분노하고,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김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테러의 표적이 됐다면 이것은 한국과 한국민 전체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다.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돕자는 것이지 이라크 국민과 싸우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같은 한국의 파병 목적과 활동은 그동안 서희·제마부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라크인들의 마음에 새겨졌으며 추가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우리의 이러한 선의(善意)와 파병 목적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충분히 알려야 한다. 그것이 한국인에 대한 테러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지금 김씨를 구출하는 데 최대의 장애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장 이라크의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테러단체를 설득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필요하면 막후 교섭도 벌여야 한다. 일본은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했지만 납치된 일본인을 무사히 구해낸 경험이 있다.

이런 우방국들의 경험과 채널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신속한 외교 공조태세도 갖춰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중동지역 교민들의 안전 대책과 함께 국내 테러에도 대비하는 국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의 테러 예방 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도 스스로의 불행과 국가적 곤경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테러 예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 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테러에 굴복하는 것은 또 다른 테러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으로 이라크 파병의 원칙과 정신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추가 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황망한 상황 속에서 여당 일부 의원들이 이라크전과 관련한 반미 성명을 내고, 서울시내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인질을 구출하는 데도, 나라의 어려운 처지를 돕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조선>, 김선일 씨를 죽이자는 말인가?

신미희 기자

<조선일보>는 납치된 김선일씨를 죽이자는 말인가. 김선일씨 납치사건을 겪고도 조선일보의 파병불변 원칙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22일자(가판) '인질사건에 치밀하고 성숙한 대처를' 제하의 사설에서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한 이라크 파병 원칙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조선은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의 김씨 피랍사건에 대해 민간인 납치행위를 규탄하고 테러 예방을 거론하면서도 "이라크 파병의 원칙과 정신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며 "테러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조선이 강조한 성숙한 대응은 "테러에 굴복하는 것은 또다른 테러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그 이유로 내세운 근거는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추가 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어 파병반대 운동이 피랍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까지했다. 조선일보는 "여당 일부 의원들이 이라크전과 관련한 반미 성명을 내고, 서울 시내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인질을 구출하는데도, 나라의 어려운 처지를 돕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한 생명이 목숨이 달린 긴급한 상황에서 생뚱한 한국인 테러 방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파병목적과 활동에 대한 선의를 이라크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리는 게 한국인에 대한 테러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한국인 피랍이 한국군 비전투병 파병의 취지를 알리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인가. 조선일보는 한국이 군대를 이라크에 보낸 것 자체가 이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며 즉각 한국군 철수를 요청한 김선일씨의 호소를 아직 듣지 못한 듯하다.

2004/06/21 오후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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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보기에 <조선일보>의 사설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의 입장을 정확히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상한 것은 <오마이뉴스>가 여기에 대해 흥분한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럴 이유가 있을까?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오마이뉴스>의 기회주의는 <조선일보>의 그것에 버금간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선인 2004-06-2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만 미친 거 아니에요. 외교부도 미쳤어요. 왜 굳이 파병불변 방침을 기자회견에서 밝힙니까? 노코멘트를 하거나 아직 논의중이다 이런 식으로 흐리면 될 것을. 으... 열불나.

balmas 2004-06-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부 내에 주체적인 시각, 전략이 얼마나 부재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겠죠.

릴케 현상 2004-06-2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어쩔 수 없다고 했던 진중권이 이라크 파병 반대할 자격 있냐고 묻는 거랑 비슷하네요

balmas 2004-06-2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씨가 그랬나요? 저는 모르고 있었네요.

모모 2004-06-2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아이 / 진중권이 그런 이야길 했다는 건 처음 듣는 데요. 어디서 한 이야기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으신가요? 진중권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그가 할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balmas 2004-06-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씨가 그런 말을 분명히 하긴 했군요.

아래는 [디지털 말] 188호 2002년 2월 21일자, 고동우 기자와의 인터뷰 [내가 극우·극좌·북한추종자들과 전쟁을 벌이는 이유 ] 중 일부입니다.

파란색은 고동우 기자의 질문이고, 그 다음이 진중권 씨의 답변입니다.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한 유럽의 나라들이 미국의 아프간 전쟁을 지지하거나 직접 참여하는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하나요.

"중국은 어땠어요. 찬성했잖아요. 북한도 테러에 반대한다면서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중요한 것은 자기 나라가 사는 것이거든요. 지금 상황 자체가 미국 말 안 듣고는 못 살아요. 미국 애들이 깡패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튀어버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민주의 정권도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자기들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전체를 대변해야 하거든요.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한테 밉보여서 당장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에요. 할 수 없이 그러는 것이라고 봐요. 또 유럽 국가들도 속으면 안되는 게, 사민주의 정당도 집권하면 전쟁물자 팔아요. 그럼 자국 내 이해관계도 따져야 하는 거죠. 우리 같은 경우도 봐요. 만일 미국한테 못 도와주겠다고 해봐요. 그럼 작살나는 것이거든요."

그럼 만일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겁니까.

"전 물론 전쟁에 반대해요. 진보정당도 그렇죠. 그러나 정책결정을 할 때는 이상만 가지고 할 수 없다는 거죠. 정치라는 게 원래 더러운 거예요. 우리 이념, 원칙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어요. 진보정당이 국가권력을 잡아도 국가적 결정, 운영을 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국가는 합의에 따라 결정되고 운영되는 것이잖아요. 만일 거부하면 고립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럼 북한 꼴이 되든지, 이라크 꼴이 되든지 하겠죠. 우린 당장 무너져요. 한 3개월이면 경제 완전히 쪽박차고 개판나죠."

어려운 문제군요. 하지만 너무 패배주의적인 것은 아닌가요. 싸울 것은 싸워야 하지 않나요.

"싸우고 있잖아요. 그러나 북한의 경우만 봐도 싸움만 해서는 못 살아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어차피 자본주의체제 속으로 편입되어야 하거든요. 그럼 고립되어서 살 수 없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니겠어요? 어차피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어요. 물론 화끈하게 싸우겠다면 전 말릴 생각은 없는데, 민중들이 참 불쌍해질 것 같아요. 이라크에서 10만 애들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담 후세인은 아랍권에서 떡하니 폼잡고 있죠. 미국에 대항한다면서.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밥 굶는데 무슨 자주성이 필요해요. 그럼 인간적인 위엄이 없어지는 거예요."

진중권 씨는 분명히 자기의 이런 말에 대해 먼저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손석춘 칼럼]

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

 

"제발 난 죽고싶지 않다. 난 살고싶다."

참수위기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의 절규다.

두려움에 질린 그 호소를 들었을 때 받은 첫 느낌은 결연했다. "올 것이 왔다"였다. 찬찬히 돌아 보라. 한국 정부는 6월 18일 이라크 추가파병을 공식 발표했다. 아랍 방송들이 곧장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알 자지라>도 마찬가지다. 다음날 이라크의 최대 일간지 <아자만>도 1면에 4단 크기로 편집했다. 특히 이 신문은 "한국군의 파병은 연합군에 세번째로 많은 병력"임을 보도했다.

이라크 민중이 <알 자지라>와 <아자만>을 보고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는 자명하다. 김선일씨가 파병 공식 발표에 앞서 피랍되었으되, 발표 뒤 참수위기에 놓인 상황을 보라. 무장단체 또한 또렷한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파병철회와 한국군 철군을.

그래서다. 올 것이 왔다고 느낀 까닭은.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만 더 성찰해보아도 충분하다. 거듭 새겨보자. 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김선일씨의 참수위기는 올 것이 온 것처럼 '필연'이 아니다. 얼마든지 그 '올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던가. 추가파병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고하지 않았던가.

이미 지난 칼럼 '피로 물든 서울 도심을 상상하라'(6월 16일)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경고했듯이, 사태의 책임은 추가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권에 있다. '마드리드 참사'를 거론하며 그 책임이 여론을 무시하고 파병을 결정한 스페인 집권당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지 않았던가. 노 정권이 국민 여론에 귀기울여 추가파병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사태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두번째 이유이다. 올 것이 아직 다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김선일씨의 피랍과 참수위기는 '시작'일 따름이다. 피로 물든 마드리드처럼 '피로 물든 서울의 아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라. 미국의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그 가능성을 실감나게 입증하지 않았던가.

알 카에다는 9·11 때 한국의 미국 시설물을 동시 테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미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객기를 납치해 공중에서 폭파하거나 일본이나 싱가포르 또는 한국 내 미국 목표물에 충돌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그 검토의 '프로그램'은 빈 라덴이 묻어두었을 뿐이다.

심지어 6월22일치 신문 사설에서 <조선일보>도 테러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테러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 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참으로 가증스럽지 않은가. 테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언죽번죽 '성숙한 대응자세'를 주문하는 저 신문이.

그렇다. 문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김선일씨의 참수 위기는 '신호'이다. 설령 그가 다행히 목숨을 구하더라도 신호는 살아있다. 그 신호 속에 얼마나 큰 참사가 담겨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라크 민중 그리고 우리 민중이 어떤 실천을 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다. 명토박아 둔다. 올 것이 온 게 아니다. 필연이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재앙'이다. 역사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반드시 보복해 왔다. 그 역사가 '신호'까지 보냈는데도 이를 묵살한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노무현 정권에게 파병철회를 진지하게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가, 그리고 저 17대 국회의원들이 거부한다면, 민중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 그것은 김선일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다.

그렇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 눈물의 절규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이어야 옳다. "제발 난 죽고싶지 않다. 난 살고싶다."

2004/06/22 오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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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2004.6.18 - 6.24 일주아트하우스 아트큐브
상영일정은 http://iljuarthouse.org/screen/s_view.html?e_uid=100 이곳을 참고...

오늘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을 다녀왔다.
요리스 이벤스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과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 두 작품을 보았다.

강연은 이번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김정아님(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이 해주셨고...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도 보았다. 사실 파병문제로 딴지를 걸고 싶었으나 그냥 참았다.

요리스 이벤스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얼렁뚱땅 정리모드..강연내용과 자료집을 토대로 요약 정리한 것으로 무언가 잘못 쓰여진 부분이 있다면 몽땅 내 책임;;;)

189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89년까지 20세기를 열정적으로 살다간 영화감독이다. 다양한 실험영화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다큐멘터리까지 잡종 영화인이라 불릴 만큼 활동 영역이 넓었다고 한다. 거대자본을 위한 홍보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반면 세계노동운동을 위한 선정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그의 신념은 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던 전략가이기도 했다. 거대 자본이나 정부의 돈을 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 <필립스 라디오> <인도네시아가 부른다>-, 로버트 카파,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에른스트 부쉬, 피카소, 헤밍웨이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인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아옌데, 주은래, 호치민 등 수많은 정치지도자와도 교류를 가졌다.

그는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 불릴만큼 20세기 사회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다. 소련, 쿠바, 칠레, 스페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세계 곳곳의 격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그가 가장 애착을 느꼈던 곳은 중국이었다. 1939년에 중국을 배경으로 <4억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찍은 후, 1976년에는 중국 문화 대혁명을 다룬 12시간의 12부작 다큐멘터리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를 찍었고,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인 1988년에는 그의 영화 전반을 정리하는 <바람의 이야기>를 중국에서 찍었다.

사진사였던 할아버지, 사진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카메라와 친해졌던 이벤스는 카메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적 추구를 하게 된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이벤스는 단편, 과학, 카툰, 홈무비등 영화 미학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영화 청년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때 기회를 얻어 소련을 가게 된다. 소련 방문 이후 그는 작품 세계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과 관련을 맺게 된다. 그는 또한 영화에 대한 대중매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변혁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고 그 투쟁을 대중과 공유하는 요즘으로 치면 비디오 액티비즘과 유사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중 하나는 시적 영상.  바람과 구름은 그의 시적 영상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이다. 초기작 <비>에서 시작하여 그의 시적 표현은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그리고 그의 유작 <바람의 이야기>로 집대성 된다. 고흐, 샤갈, 보티첼리, 중국 서예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자기 작품에 인용하는 것도 그가 즐겨사용한 방법.

그의 한 쪽 눈은 삶에 깃들여져 있는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 쪽은 불의와 가난 그리고 착취가 가득한 모순적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요작품

1928. 다리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와 경이. 산업화의 주역인 기차를 타고 또다른 주인공인 (움직이는)다리를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는 것. 오늘날까지 아방가르드의 대표적 작품으로 실험영화에 영감을 주고 있는 작품.

1929. 비
비의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 한 작품으로 그의 시적 영상을 잘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

1931. 필립스 라디오
필립스사로부터 회사홍보영화 제안을 받고 작업한 작품이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거대 공장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노동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노동자들의 모습, 생산라인의 움직임과 함께 구성해 마치 교향악처럼 만들어 냈다.

1933. 신세계
네덜란드 간척사업을 다룬 영화

1934. 보리나제
벨기에 탄광 노동자 파업을 다룬 영화.

1937. 스페인의 대지
프랑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스페인 민병대의 투쟁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 당시 '너무 끔찍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 헤밍웨이와 함께 작업.

1939. 4억의 사람들
일본과 장개석 정부 사이의 전쟁을 필름 르포르타쥬 형식으로 만든 작품. 로버트 카파와 함께 작업. 국민당 정부의 엄격한 검열하에 촬영된 영화로 공산당과 마오쩌둥에 관한 이야기는 드러내질 못했다.

1946. 인도네시아가 부르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의 식민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향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벤스에게 의뢰한 작품. 그러나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가기전 인도네시아는 자체적으로 해방 선언을 하게 되고 연합국에는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자 이벤스는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와 연합국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고 그후 얼마동안 네덜란드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1954. 강의 노래
세계노동조합연맹이 제작비를 댄 작품으로 세계 6대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동자들의 현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피카소등 유명 예술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1957.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프랑스 세느강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벤스의 시적 리얼리즘이 잘 드러나는 작품.

1963. 발파라이소
아옌데의 후원으로 1962년 산티아고를 방문한 이벤스는 산티아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 이론과 제작을 가르쳤다. 이를 계기로 칠레의 독특한 항고 도시에 관한 영화 <발파라이소>가 탄생.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시적인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1968. 위도 17도
그의 세번째 부인인 마셀린 로리단과 함께 베트남전을 기록한 영화. 16mm 경량 카메로 폭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을 기록.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혁명전을 치르는 베트남 민중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76.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
중국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5년간 12부작으로 완성된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때로는 기나긴 인터뷰가 이어지고, 때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중국 변방의 시골 공회당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편집 없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담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의 우공들이 어떻게 봉건주의라는 산을 저리로 옮기고, 사회주의라는 산을 옮겨 오는지를 "마음으로" 보여준다.

1988. 바람의 이야기
이벤스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성찰한 내용이자 세계 속에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고찰한 영화. 마르셀린 로리단과 공동으로 작업. 중국을 배경으로 바람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서, 그리고 문화 사회 혁명의 변화들을 나타내는 은유로서 포착하고자 했다. 1988년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상영되어,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현장 구매, 예약만 가능.. 오늘 본 바람의 이야기는 매진에 입석까지 있었다.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는 오늘 보았고..
예매한 영화는

20일 8시 필립스 라디오, 스페인의 대지
21일 8시 센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24일 8시 강의 노래.

좀 무리했다. 그래도 이번 기회아니면 또 언제보나 싶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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