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공지드린 대로 이번 주 토요일인 6월 7일 오후 3시 시민행성에서

 

"내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주제 아래 시민 집담회가 열립니다.

 

 

이 집담회에는 고병권 선생과 진은영 선생, 김정한 선생께서 패널로 참여해주시고

 

제가 사회를 맡게 됐습니다.

 

이번 집담회의 취지를 소개하기 위해 몇 마디 안내글을 써봤습니다.

 

이 안내글은 며칠 전 경향신문에 세월호 참사에 관해 기고했던 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집담회 안내 및 시민행성 약도는 아래 주소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http://citizenplanet.tistory.com/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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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가 남긴 슬픔과 고통은 여전히 유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냥 운이 나빠 즐거운 수학여행 날 겪게 된 작은 사고일 수 있었습니다. 온 몸이 물에 젖어 춥고 아끼는 물건이 못쓰게 돼 속상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순간 잠깐 조바심을 내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괜히 미안해지기는 해도, 그냥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이 취소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그렇게 모두 집에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어쩌다 한 번씩 겪는 재수 없는 일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재수 없는 사고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그냥 불운(不運)한 수학여행의 안 좋은 추억으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아, 어쩌다 이렇게 큰 불의(不義)의 참사로 변할 수 있었을까요?

 

얼마 전 촛불집회에 나온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금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되씹어봐도 티끌만큼도 잘못한 것 없이 제 아이는 제 앞에 없고 저는 이 자리에 있다”면서 “아직도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를 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그 아이들이 왜 이토록 참혹한 불의의 희생자가 됐을까요?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안타깝게도,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의문들의 중심에는 국가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귀여운 내 아이가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겼다는 비보를 접하고 팽목항으로 내달려온 맨 몸뚱이의 가족들과 곁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보살피는 자원봉사자들,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과 미안함에 눈시울을 적시며 한 달 넘도록 하루빨리 한 사람의 시신이라도 더 수습하기를 애타게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만이 있었습니다.

 

아니, 국가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구해달라는 애타는 신고를 접하고도 사태 파악을 못하고 침몰하는 배를 보고도 배 안에 갇힌 승객을 외면한 것이 국가였고, 사고 가족들의 애타는 호소와 항변이 있어야 마지못한 듯 수색작업을 전개하고 혹시 불순분자들이 섞여 있을까 수백 명의 사복 경찰을 풀어 가족들의 행태를 감시한 것이 국가였으며, 혹여 대통령에게 해가 될까, 지방선거에 피해가 갈까 언론 통제에 전력을 다한 것이 국가였습니다.

 

그러니 마치 떠밀리듯 TV 앞에 나와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국민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여러 가지 사고 예방 대책을 내놓는 대통령의 담화가 진정성 있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우선 이번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해 유가족과 시민이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대책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는 이번 참사의 책임자 중 하나가 아닙니까?

 

고귀하고 무고한 어린 생명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새삼 들게 된 의문 중 하나는 우리에게 과연 공동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파 쪽 학자나 지식인들을 만나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좌파 쪽 사람들은 부정사관에 사로잡혀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25 전쟁 이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불과 수십 년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 좌파들은 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그동안의 정부, 기업, 엘리트 등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만이죠.

 

아마도 그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업적은 정부, 기업, 엘리트만이 이룬 것이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국민들의 재능과 헌신과 열정을 동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수십 년 동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언명령으로, 나라의 유일한 최고 가치로 지배해온 것과 이번 참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촛불집회에서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대한민국도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영원히 살고 싶은 나라로, 소생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 중 한 분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 바 있습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세월호는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이 말하듯 사건은 그것을 어떻게 상속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됩니다. 세월호의 참사가 계속 되풀이되어왔고 또 앞으로 되풀이될 또 다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을 위한 출발점이 될지 그것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시민행성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하는 집담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집담회는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나와서 시민 대중에게 세월호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강연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또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성원들로서의 시민들, 국민 그 이상의 성원으로서의 시민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밝히는 자리입니다.

 

이번 집담회의 주제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로 잡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는 늘 국가를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민등록증을 주고 병역 의무를 주고 세금을 걷어가고 선거의 기회를 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또한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 앞에, 우리 이전에 주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단단한, 아마도 가장 단단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던 국가, 나라가 사실은 너무나 허망한 어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그것이 우리 곁에 있다고, 우리의 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지만, 사실 그것은 커다란 공백, 검은 구멍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들 각자에게 질문하는 것, 우리들 각자에게 대답해보도록 호명하는 것은 바로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국가라는 것이, 나라라는 것이 정녕 검은 구멍일 뿐이라면, 우리 각자에게 남은 길은 그것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구멍을 함께 살펴보고, 그 구멍을 함께 나누는 것, 아마도 그것이 그 구멍을 줄이는 한 가지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민행성 집담회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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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용 토지의 80%를 1%의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는 위대한 나라가 있다.

그 국가의 이름은 "한국(韓國)" 이라고 한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5%가 35~40%를 토지를 소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혁명이 일어났다.

한국이라 불리는 이곳은 가만히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평화롭게 잘들 살고 있다.

관대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월드컵 때 나라 이름이나 외치고 있는 위대한 인간들이 많은 곳.

국가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없이도 인간이 살 수 있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국가 안에 갇혀 산다고 해도 그 상상력이 냉철하게 국가를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국가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가 없는 정치적 상상들은 무수하게 많을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하다.

그것은 무정부도 무질서도 아니다.
 

제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시민행성"에서 5월 26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성찰적 인문학에 관한

 

모임을 마련했습니다.

 

 

 

 

 

저도 두 가지 모임을 마련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1) 특강: 세월호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 (6월 9일 오후 7시)

 

다른 많은 분들처럼 저도 이번 세월호 참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괴롭고 슬프고 분노했는데,

 

이제 생각을 좀 가다듬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세월호 참사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가지 제 생각을 밝혀보려고 합니다.

 

 

 

2) 시민 집담회: 내가 살고 싶은 나라  (6월 7일 토요일 오후 3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제시하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미 대통령 담화에서도 나타났듯이, 정부에서는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시민들이 모여서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관해 발언할 수 있는 작은 집담회를

 

하나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 공동체란 어떤 것인가?

 

시민이란 누구인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민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나라, 자신들이 원하는 공동의 가치를 발언할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집담회에는 고병권 선생과 진은영 시인, 김정한 선생께서 고맙게도 함께

 

참여해서 시민들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고 같이 토론해볼 생각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이번 특강 및 집담회는 모두 무료로 진행되는데, 다만 장소가 넓지 않은 관계로

 

원하는 분들은 시민행성 홈페이지에 참여 의사를 미리 밝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민행성 홈페이지는 아래 주소로 가시면 나옵니다.

 

 

http://citizenplanet.tistory.com/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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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0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근에 은퇴한 부사령관이 예전에 선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마르코스는 기성의 정당들을 향해 "3년마다, 6년마다 그들은 똑같은 거짓말로 우리를 팔아치운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우리에게 유용한 것도 없다"고 비난하고 "변화는 밑에서부터, 그리고 왼쪽(좌파)에서부터 올 것이다"고 선언했다.

르네상스 창녀 2014-06-0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럽중심주의자 헤겔식으로 얘기하면 이른바 <국가이성>이 미쳐버린 마당에 다시 국가를 얘기하시는 군요.

나라와 국가가 없는 사회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는 것. 나라와 국가가 없는 것이 무정부나 무질서도 아니며 그것이 없는 정치적 상상을 배제할 필요도 없습니다.

밀양이나 세월호, 용산참사 등을 볼 때 오히려 국가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요?

국가나 나라없이는 못 산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나라와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휴대폰이나 자동차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그것과 다를 게 없지요.

르네상스 창녀 2014-06-0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서 호명하고 있는 것은 <시민>은 누구인가요? 설마 엉터리 같은 말장난인 "시민계급"은 아니겠지요?

시민이라는 호명으로부터 벗어난 사회, 시민사회로부터 벗어난 사회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는 오히려 근대 시민사회나 자본주의적 근대 국가를 모두 내부로부터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는 파괴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근대까지도.
 

 

 

 

내일 목요일부터 서울인권영화제가 시작되는군요.

 

아래 주소로 가시면 영화제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rffseoul.org/

 

 

 

그리고 아래 주소로 가시면 인권영화제 후원을 위한 소셜펀치 후원함이 있습니다.

 

아직 목표액에 턱없이 부족하네요.

 

많은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socialfunch.org/19thhrff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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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겨레 기획연재 <다시, 변혁을 꿈꾸다> 10회차 원고 올립니다.

 

이 원고는 원래 내일자 신문에 실릴 예정이었는데,

 

이번 주 월요일 신문이 휴간을 해서 한 주 연기되어 5월 19일치 신문에

 

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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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냉전의 시대, 다원적 가치 옹호한 자유주의>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렸습니다.

 

신문에 실린 원고를 읽어보시려면 아래 주소로 가보세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375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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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벌린(1909~1997)은 레몽 아롱, 칼 포퍼, 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과 더불어 이른바 ‘냉전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1945년 독일이 패망하고 나서 2차 세계 대전 중에 잠정적인 동맹 세력이었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점차 괴리가 생겨나게 된다. 동유럽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서유럽에서는 미국의 유럽부흥계획(마셜플랜)에 따라 원조가 이루어졌으며,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성립,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세계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냉전은 사상 분야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소련은 1947년 국제 공산주의 정보국(Cominform)을 설립하여 미국과 서유럽의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화했고,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나날이 유럽 지식인들과 문화ㆍ예술인들에게 성가(聲價)를 높여 가는 공산주의에 대한 영향력을 차단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가치를 선전하기 위해 1950년 창립된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Congress for Cultural Freedom)에 대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했다.

 

냉전 자유주의 사상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태동하고 전개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냉전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이 사상가들 중에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이론가는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비난한 <지식인의 아편>(1955)을 쓴 아롱은 사회학자였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을 쓴 포퍼는 과학철학자였으며, <노예의 길>(1944)의 하이에크는 경제학자였다. 벌린이 정치사상가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정치이론가라기보다는 지성사가로 여겼다.

 

이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와 직접 관계가 없는 정치 사상에 관한 저술을 한 이유는 유럽 문명이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그와 별 차이가 없는 스탈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의 위협 아래 붕괴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전체주의의 위협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이들을 연결하는 사상적 끈이었던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사상은, 미국의 정치학자 주디스 슈클러(Judith Shklar)의 용어를 빌리면 “공포의 자유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냉전 자유주의의 근본 관심사는 어떻게 최선의 것을 성취하느냐 여부보다는 어떻게 최악의 것을 방지하느냐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벌린은 정치철학적으로 이를 가장 정교하게 옹호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09년 러시아의 라트비아에서 성공한 목재상의 외아들로 태어난 벌린은 1920년 볼셰비키의 감시와 억압에 위협을 느낀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망명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 후 순탄한 학문적 경력을 쌓던 벌린은 2차대전이 발발한 후 미국 주재 영국 대사관에서 정보 분석가로 활약하면서 영국과 미국 정계와 언론계에 두터운 인맥을 형성한다. 전후 소련 주재 영국 대사관에서 역시 정보 분석가로 활동한 후 다시 학계로 복귀한 벌린은 자유주의 정치 사상가 및 지성사가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벌린은 1958년 옥스퍼드 대학의 사회정치이론 분야 치첼리 석좌교수로 취임하면서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유명한 강연을 했다. 이 글은 그 이후 영미 정치철학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후반 영미 정치철학계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가 된다.

 

“자유의 두 개념”은 자유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구별하면서 출발한다. 하나는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로,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 없이 주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거나 또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보존되어야 하는 영역은 어떤 영역인가?”(<이사야 벌린의 자유론>)라는 질문을 중심적인 문제로 삼는 자유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로, 이것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하도록 규정할 수 있는 통제나 간섭의 원천은 무엇 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벌린은 적극적 자유 개념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려는 개인의 소망”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곧 이는 내 삶과 결정이 여하한 종류의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따라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자기 지배자가 되기를 추구하는 개념이다.

 

벌린은 이 두 가지 개념 중에서 소극적 자유 개념을 더 중시한다. 그 이유는 우선 적극적 자유 개념이 지닌 문제점 때문이다. 벌린에 따르면 적극적 자유 개념은 가치에 관한 일원론적 관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가치 일원론이란, “사람들이 믿어온 모든 적극적 가치들이 궁극적으로 양립 가능하며, 어쩌면 그것들 사이에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확신”을 가리킨다. 곧 겉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상이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치들은 서로 양립 가능하며 심지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그 중요성의 정도가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 가치 일원론의 논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가치들의 중요성의 정도를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성이 자유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이 좀 더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목적인지 합리적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되며, 그렇지 못한 것은 자유는 자유이되, 바람직하지 못한 자유로 간주된다. 벌린이 보기에 여기에서 전체주의까지는 고작 한 걸음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적극적 자유의 관점에 따르면, “국가, 계급, 국민”이라는 주체가 이성 내지 역사의 필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진정한 자유의 목표를 설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벌린에게는 “간섭을 피한다는 소극적인 목표”야말로 자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어떤 사람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문을 잠그고 단 하나의 문만을 열어놓는 행위는 열려 있는 문으로 나타난 길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또 그런 조치를 취한 사람들의 동기가 아무리 선의를 지닌 것일지라도”, 그것은 각자 고유한 삶을 지닌 인간 존재자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자유의 핵심은 타인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간섭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벌린이 적극적 자유를 완전히 배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벌린이 적극적 자유에 비해 소극적 자유를 자유 개념의 핵심으로 삼은 이유 중 하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적극적 자유에 대한 옹호가 오히려 자유에 대한 지배로 전도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소극적 자유는 훨씬 더 드물다는 점이었다. 벌린이 보기에 당대의 역사적 현실은 이를 강력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벌린의 자유론은 그의 가치 다원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들은 서로 공약 불가능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이것들 사이에 우열을 가늠할 만한 일원적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원적 가치가 갈등적으로 공존하는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노예 제도나 유대인 대학살 등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피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치 다원론이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벌린을 포함한 냉전 자유주의자들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이에크를 제외한다면, 아롱이나 포퍼, 벌린은 모두 나름대로 가치의 다원성에 기반을 둔 열린 사회를 정치적 이상으로서 추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개 스탈린주의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없듯이, 포퍼나 아롱, 벌린이 단순히 반공주의를 전파하는 데 동원된 지식인들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계가 몰락하고 전체주의적 정치 체제의 위협이 사라진 오늘날 벌린을 비롯한 이들의 사상이 얼마나 현실성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자유를 가장 위협하는 것이 전일화된 신자유주의적 경쟁 질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극적 자유 개념이 사람들의 자유 및 가치의 다원성을 옹호하기 위한 충분한 자원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간섭의 회피라는 이름 아래 시장에서의 전횡을 묵인하고, 간섭주의(paternalism)라는 이름 아래 국가의 책임을 가로막아온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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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획연재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제 9회차 원고 올립니다.

 

이번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다루고 있는데,

 

신문사에서는 "하이에크는 단순한 신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고 제목을 잡았네요.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347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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