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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막 여행을 떠나려는 당신에게 저는 '어디 가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무엇 때문에 여행을 가십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대답합니다.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거나, '기분 전환하러' 또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위해서'라고. 사흘 뒤, 일주일 뒤, 아니면 한두달 뒤 여행에서 다녀온 당신들에게 물어봅니다. 애초의 목표들은 잘 이루셨냐고. 당신들은 피곤한 얼굴로 머뭇머뭇합니다. 뭔가 기대만큼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일겁니다. 저는 여러분들과의 대화에서 한가지 의문을 느낍니다. 왜 여행은 기대만큼 충전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제가 느낀 의문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베르나르가 제안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살갗을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완전한 그대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됩니다. 이 여행에서 동반자는 없습니다. 오로지 '바보'가 되어 당신 혼자 떠납니다. 프랑스어에서 '바보'란 '목발이 없는 사람'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바보란 목발도 지팡이도 보호자도 없이 홀로 서서 걸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감이 오실겁니다. 이 여행은 오로지 당신의 상상력, 정신력 그리고 오감을 통해서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그대에겐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육체적인 오감 뿐만 아니라 감정, 상상력, 직관, 의식, 영감 등 정신적인 오감도 있답니다. 아마 이 여행을 통해 충분히 활용하게 될 겁니다.
우선 우리들은 집 한채를 짓게 됩니다. 시야가 툭 트여진 넓은 공간에 당신의 상상력과 재능으로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대로 그대의 안식처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대의 내밀한 안식처, 뭔가 일이 잘 안될 때면, 언제라도 가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비록 상상속의 집이지만, 한 재산 얻은 듯 든든한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새로 지은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구요? 하지만 이 여행은 단지 휴식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일곱 번의 싸움을 거쳐야 합니다. 이 싸움을 거친 후에야 당신은 진정한 평안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투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시작하여 그대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자와의 싸움, 체제나 조직과의 싸움, 질병과 불운과 죽음, 마지막으로 그대자신과 싸우기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이 싸움이 반드시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것은 <여행의 책>이 주는 조언 때문일 것입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대목들이 여럿이나 한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해학은 죽음보다 강하다' 물론 한번의 여행으로 괴로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순 없겠지만 든든한 무기를 얻은 이상 의연한 도전과 투쟁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행은 과거로 갑니다. 당신과 당신 부모님, 조부모, 또 그 윗대 할머니 할아버지... 중세와 고대를 거쳐 선사시대의 조상들을 만나고 유인원과 물고기를 닮은 더 먼 선조와 단세포생물, 물 분자... 그 이전의 빛... 그리고 태초의 빅뱅, 그것이 그대 존재의 가장 깊숙한 근원입니다. 느껴지십니까? 저에겐 좀 어렵게 느껴지는군요. 태초의 빅뱅에 대한 기억, 이제 우리존재의 근원에까지 이르렀으니 길고 길었던 여행을 마칠 때인가 봅니다. 하지만 <여행의 책>이 이르기를 이것이 여행의 끝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대는 단 하나의 시공간을 탐사했을 뿐이다. 외적인 오감과 내적인 오감의 지각력을 높여서 다른 시공간들을 여행해 보라.'는군요.
이 여행을 마친 뒤에 저는 가뿐하고 생기발랄하며 든든하고 강해진 느낌입니다. 올여름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나신다는 분들에게 <여행의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께서 갖고 계시던 막연한 물음들이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다가올겁니다. 물론 그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은 목발없는 바보- 바로 당신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