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다. 오늘 회사를 나갈까 하고 남은 것도 남은 거지만 (휴일이라지만 수요일이니까) 주중에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게 너무 피곤해서 일단 포기하고 쉬기로 했다는 게 더 크겠다. 일이 몰아닥쳤던 몇 주간의 피로가 쌓여서 정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로키 상태였다. 걷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건드리면 그냥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태. 덕분에 어제도 한바탕 하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기에) 쓰러질 듯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해서 서울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간만에 내일은 늦게 일어나도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다운로드받아 보았다. 'Notting Hill'. 이 영화는 열번까지는 과장이지만, 세 번이상은 본 것 같다. 그런데도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영화라니. 나는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쓸데없이(!) 새로 나온 영화만 좇아 다니며 보는 건 이제 사절이고, 좋은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게 더 좋다.. 뭐 이런 나이다, 내가. 허허.

 

 

 

내용이야 뭐 다들 아는 거고. 1999년 영화. 무려 18년 전의 영화이다. 주인공인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를 보니, 아 젊다. 아 이쁘고 잘생겼구나... 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까지 했다. 휴 그랜트의 그 약간 헐렁한 예쁜 남자의 이미지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다시 보니 그 눈이 참 매력적이었다. 눈 자체가 아니라 눈동자가. 그 색깔이. 참... 좋더라. 줄리아 로버츠의 당당해보이는 얼굴도 좋아 보였다. 영화라는 게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건데, 어제는 유독 주인공 남녀의 그 젊음과 아름다움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내 마음이 막 사위어져있어서일까.

 

그리고, 그 음악. "She". 이 노래가 주는 마음의 감동은. 아... 떠올리기만 해도 좋구나. 내가 이 영화 본다고 카톡단톡방에 올렸더니 누가 그런다. "노래 참 좋죠? She?" "응응 정말 멋져" "내 친구넘이 결혼할 때 신부 입장하는 곡으로 이걸 틀었더랬죠. 정말 멋졌어요." "와, 친구 멋지다. 결혼식 때 이 노래 나오면 정말 좋을 것 같아." ... "이혼했어요. 노래는 역시 평범한 걸 틀어야 해."

 

뭥미. 이 산통 깨지는 소리는. 단톡방 툭 끊어버리고. (그나저나 그 말에는 사실 동감. 어쩌면 조금 평범한 게 오래 가는 건지도 모른다. 야단스럽게 튀면 결말이 별로인 경우 간혹 있어서) 영화에 심취. 마지막 장면 보면서 아릿.... 아릿....

 

 

오늘은 삼일절. 어젠 영화 보고 바로 기절. 일어나보니.. (물론 중간중간 깨기는 했다 ㅜ)11시. 헉. 11시? 그러고도 못 일어나고 뒹굴거리다가 12시에야 일어났다. 말하자면 12시간 이상 뻗어 있었다는 뜻. 그러고 나니 조금 몸이 가벼워졌다. 흠.. 그러면 되지 뭐. 내 몸이 가벼워졌으니.. 물론 너무 누워 있어서 허리는 좀 아팠으나.ㅎㅎ

 

점심 간단히 먹고 지금은 가까운 스벅에 와있다. 한 켠 소파 좌석에 앉아서 스타벅스 전체를 바라보며 이렇게 도닥거리는 이 여유가 눈물 나게 행복하고 고맙다. 이러한 편안함은, 몰아치던 전쟁터같은 일터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때 가장 깊숙이 다가오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아무 하릴 없이 커피 한잔에 하고 싶은 얘기 쓰면서 이제 곧 책도 읽을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내 귀에는 아서 루빈스타인의 쇼팽 피아노 독주곡들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이 꽂혀 있고 말이다. 물론 가끔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와 옆 좌석 남녀의 경망스러운 웃음 소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런 여유로운 날에는 많은 것들이 용서되기 마련이다.

 

내일부터는 또 달려야 한다. 매일 야근이 이어질 거고, 주말에도 나와야 할 거고... 그렇게 삼월이 갈 거다. 예외없이. 이 즈음엔 늘 그렇듯이. 사는 게 뭐냐 투덜거리면서.

 

삼월의 첫날. 역사적으로는,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서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가슴 조리며 일을 꾸미고 드디어 오늘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래서 덕분에 후손들은 하루의 휴가를 얻게 된 오늘. 지금도 '이 땅'에서는 난데없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촛불을 들고 정의를 위해 나온 사람들이 있는 오늘.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평화로운 오늘. 그런 삼월 일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7-03-02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3월 1일 될때마다...
비연님 이 글이 생각날 것 같아요.
노팅힐이랑 스벅이랑 태극기랑 ㅠㅠ
촛불과 함께요~~~

비연 2017-03-03 14:25   좋아요 0 | URL
^_____^
 
유한과 극소의 빵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10
모리 히로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시리즈를 다 읽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결국 열권 다 사서 읽은! 이 열번째 책은, 모리 히로시가 소설이 아니라 궁시렁거리고 싶어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서없고 내용 짜임새도 별로였다. 뭔가 작가의 보기 드문 정신세계가 드러나있다고나 할까. 이제 열권 모아 중고로 내놓을 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닥 회사에 대한 loyalty 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도, 애사심이 막 끓어오를 때가 아주아주 가끔 있다. (100일에 한번?)

 

언제냐 하면?

 

회사에서 야구장 보내줄 때 - 2회 있었다

회사 돈으로 책을 살 때 - 흠... 여러번?

 

회사 돈이라고 하는 건, 현금을 주는 건 아니고 (그렇다면 더욱 쏴랑하게 되겠지만) 인터넷에서 쓸 수 있게 해 주는데 (일종의 적립금?) 책도 살 수 있고 뭐뭐뭐 해당사항은 다 살 수 있는 거긴 하지만, 난 주로 책을 산다.

 

바빠서 이 돈을 못 쓰고 있다가 제발 좀 쓰라고 메일이 계속 와서, 어제... 책구매를 했다. 냐하하~ 애사심 끓어요~ (물론, 집에 가자마자 바로 없어졌다, 그 마음)

 

 

 

 

 

 

 

 

 

 

 

 

 

 

 

 

 

 

 

 

 

 

 

 

 

 

 

 

 

 

 

 

사놓고 보니 한국과 일본사람이 저자인 것만 샀네? 오호.

 

유시민과 김훈. 사실 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글빨만큼은 인정, 유시민은 액면이 비호감이라 그냥 말만 하고 글만 쓰면 (무엇보다 글을 권한다) 아주 좋겠다. 예전에 처음 책으로 접했을 때는, 와우. 이렇게 쓰는 책도 있구나 라고 감탄 했었는데,  나와서 말하는 걸 보고 얼굴을 보는 순간... 아.. 밉상이야... 싶어서 일단 접었었는데, 이 책은 워낙 호평이라 사야겠다 계속 생각 중이었다. 그러고도 까먹었는데, 어제 지인이 이걸 읽고 있다는 말에, 화들짝. 구매. 김훈은, 액면이 마초라 하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영 내키지 않는 사람이긴 한데, 역시 글은 잘써. 이 새로 나온 장편소설은 읽어보련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예전에 읽었을 때 뭐 대단하다 이런 필력이라기보다는, 신기한 사람일세 라는 감상부터...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로망처럼 기억된다고나 할까. 히라노 게이치로 라는 작가는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랑 이름이 너무 헷갈려서 밀아디..=.=;; 일본 사람 글치고 깊이가 있다는 말에, 그래? 싶어 구매한다. 물론 알라딘 서재 여러 곳에서도 이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서 더더욱. <아주 오래된 서점>이라는 책은 그냥 습관처럼 사는, 책, 서점, 책을 사랑하는 사람... 등에 대한 이야기. 그냥 서재 한 칸에 가득 꽂혀 있어도, 그래서 다 읽지 못해도 흐뭇해지는 제목과 내용이라 두말않고 구매.

 

더 사고 싶었지만... 남은 돈이 이것 밖엔 살 수 없는 금액이라. 눈물을 머금고 스탑. 영화관람권이나 이런 것들 산다고 썼는데 그 이후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한번도 못 봤다는... 슬픈 이야기. 눈물 찔끔. 숙소에 쳐박혀 다운받은 파일로 영화를 보는 비연의 신세. 이것도 한달 반 남았다. 좀만 참아야지.

 

 

참고로, (별로 궁금해하지 않겠지만ㅜ) 현재 읽고 있는 책.

 

 

 

 

 

 

 

 

 

 

 

 

 

 

 

 

 

 

 

많이도 쥐고 있구나... 이 중 <싸울 기회>는 몇 페이지 안 남았다. 오늘 다 읽을 생각. 이에 대한 페이퍼는 곧 쓸 예정.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2-20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싸울 기회]에 대한 페이퍼 기다리고 있을게요, 비연님.

아 우리 회사도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책을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저 역시 애사심이 조금은 생길텐데요. 너무 부럽습니다, 비연님 ㅠㅠ
저는 다음 책을 사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팔고 있어요. 엉엉 ㅠㅠ

비연 2017-02-20 22:54   좋아요 0 | URL
락방님. 방금 [싸울 기회]를 다 읽었어요. 가슴벅차게 하는 책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치열함이 아름다움일 수 있다는 것도 함께. 페이퍼 곧 쓸게요^^
회사는... ㅎㅎ 부러워 마시길. 그 외엔 뭐 ... 차마 말하기 힘든 일들이 많아서 허허. 무엇보다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두근거림으로 오늘을 마감한다는 거, 좀 멋진 일이네요~

종이달 2022-03-19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과 책을 벗했다. 아빠 입원하신 동안 시간도 없었지만 시간이 있었더라도 이런 여유를 부리는 건 스스로에게 용납되질 않아서 계속 못한 일이라, 괜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 평안, 그 여유... 눈물나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물론, 내 바로 옆에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남자애 들이 앉아서 계속 영어로, 내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 얘기하는 통에 뭔가 위화감이랄까 불편감이랄까.. 를 느껴야 했지만, 어제의 기분으로는 다 무시할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읽은 책은 '싸울 기회 (A fighting chance)'. 책도 좋은 내용이라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아. 어딜 가나 정치라는 것은 더럽고 기득권 세력을 위한 것이고 서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이기심과 뒷거래가 횡행하는구나.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것은, 책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몇 년에 한번씩 다가오는 경제의 부침이 아니라, 워런의 말처럼 은행과 당국이 행한 정책의 실패가 낳은 결과였던 것이다. 국민의 삶을 위해 그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뺐으려 할 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좌절을 겪어야 하는 지 리얼하게 그려져 있는 책이다. 그 와중에도 불현듯 도와주는 힘있는 사람이 나타나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을 터준다는 것은 드라마틱한 일이다. 그런 드라마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식있는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일상을 위해, 실제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여 수년간 혹은 십수년간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고 넘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겨우, 정말 겨우 나올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작금의 우리 현실과 비교해볼 때, 마음에 너무 와닿아서 정신없이 읽고 있다.

 

물론 지금은 회사에 출근한 상태이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 근무만큼은 자제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형국이라 꾸역꾸역 나왔다. 귀찮고 피곤하고... 그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빠 퇴원하셔서 평온한 일상을 찾았음에, 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음에 안도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오후를 지내보려고 한다. 얼른 일 마무리짓고 집에 가서 나머지 부분을 읽고 싶은 나머지 초조하기까지 하네. 허허. 그동안 정신없음을 핑계로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했었기에 오늘은 집에서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쓸데없는 생각은 접고, 우선 책부터 파고드는 예전의 생활로 들어가보련다.

 

아. 물론 오늘의 일은 끝내고.. 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싸울 기회 -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박산호 옮김 / 에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쉽고, 재미있고, 그러나 의미있는,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2-18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너무 좋지요? 저는 이 책이 저의 2016년의 책이었어요. 흣

비연 2017-02-18 16:29   좋아요 0 | URL
락방님 글 보고 고른 책 이제 읽는데 넘 좋아요! 감사요~^^ 저도 올해의 책에 랭킹시킬 듯~

종이달 2022-03-19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