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평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에선 수많은 마귀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미움과 피곤과 불만과 불평과 증오와... 아... 써놓고 보니 내 속이 좀 불쌍하다. 마귀들도 어떻게 저런 흉측스러운 이름들의 마귀들을 자라게 두었을까. 하지만 겉으론 평온하다. 개인적으로나 회사적으로나 너무 일이 없어 탈이다... 라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회사에서 엎어진 프로젝트들은 일어날 줄을 모르고, 그것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수모(?)와 자괴감들이 내 속에서 마귀를 더 키우고 있다. 아주 기름을 붓고 있다. 이를 어쩌나.. 라는 걱정이 이제 극에 달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싶은 것이고. 지금은 반쯤 포기 상태로 이 시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엄청나게 평범한 삶. 회사 출퇴근하고 조금 먹고 많이 걷고 약간 읽고 있다. 어제는 <질투의 화신>을 보는데, 내가 손 발을 넋놓고 있는 것이 문득 마음에 안 들어서 털실을 꺼내 들었다. 작년부터 세이브 더 칠드런에서 하는 '신생아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데 (https://www.sc.or.kr/moja/index.do) 올해 시즌 10이 이번달 24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언제고 털실을 들어야지 했었다. 그게 어제였던 거지.

 

사실 솜씨는 별루다. 처음이고 뜨개질을 좋아라 하지만 그닥 재주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라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질투의 화신>은 여전히 재미있고 기발하지만 중반전을 넘어가고부터는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이라 딴 생각이 난 거지. 보라색과 주황색의 실이 내게 있고 오늘 또 실을 주문했다. 작년엔 4개 떠서 보냈는데 올해는 시간 날때마다 떠서 6개까지 떠보리라. 라는 것이 나의 목표 아닌 목표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심심하면, 이런 목표를 세우냔 말이다. 뭐 어쨌든.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아무리 걷고 적게 먹어도 몸무게는 그대로이고, 심지어 뱃살은 더 튀어나오는 기분이다. 이럴리가 없잖아! 라고 하지만 매일 아침 보이는 체중계의 숫자와 육안으로 확인되는 내 가슴과 엉덩이 중간쯤에 살의 형상으로 비죽이 튀어나온 것을 보면 할 말은 없다. 스트레스가 이리 무서운 것이냐.

 

장황하게 썼지만, 요약하자면 심심하다는 거다. 아. 비연은 심심하다. 머릿 속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심심함과 무료함을 견디며 인생을, 나의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라는 것 때문에 괴로와지고 있다. 그다지 가치있어 보이지도 않는 이눔의 회사를 그만두고 일단 좀 쉬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루에 거짓말 좀 보태서 100번은 하는 것 같다. 오늘같이 월급날이면 그 횟수는 조금 준다. 한 50번 정도로? 비루한 일상이다.

 

 

 

요즘 이걸 보고 있다. 쉽고 재미있다. 상품을 잘 팔리게 하는 것은, 그저 요란하게 꾸며대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데에 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색상과 구조와 배치 등으로 하는 것이다... 뭐 이런 얘기인데 꽤 솔깃하고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이 일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겠지. 이런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마구 부러워지기도 하고. 나중에 책방을 할 꿈이 있는 나로서는 허투루 지나갈 만한 책은 아니라서, 아주 곱씹어가며 읽고 있다. 앞으로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면서. 물론, 그 날이 언제 올 지는 ... 아무도 몰라...;;;; 얼른 왔으면 좋겠지만... 내 개인적인 바램일 뿐.

 

 

 

 

 

 

 

심심한데 단풍 보러 갈까? 하다가... 주말에 단풍 보러 갔다가는 빨간 바지 입은 엉덩이들만 보다 올 것 같다 접음.... 근데 왜 등산복은 빨간색이 많을까. 바지조차. 단풍이랑 어우러져 아주 정신이 다 사나왔던 과거의 기억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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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초부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질 수 있으니 얼른 단풍 구경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날씨가 춥네요. ^^;;

비연 2016-10-22 07: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제 바람도 차고. 11월 초까지만 단풍구경이 가능할 듯... 휙~ 떠나봐야겠어요~^^
 

죽전 휴게소에서 뚜레쥬르 커피 한잔과
(이미 내 뱃속으로 사라진) 빵덩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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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사정으로... 일년 반 정도 전부터 절주를 하고 있었다. 한번 먹을 때마다 맥주 한두 캔 정도, 와인 한두 잔 정도. (이 정도가 뭐가 절주야 그런다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내 딴에는 정말 뼈를 깎는 고통으로 (정말이다!) 참고 또 참았는데 결국 지난 금요일 그것이 깨져버렸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있었다... 도 핑계고 → 아주 영향이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엄청나게 열받은 일이 연속적으로 있었다...도 핑계고 → 물론 이게 큰 작용을 하긴 했지만...

 

가장 매혹적이었던 건, 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무지하게 비싸고 좋은 일본 소주를 사줬다는 거다. 그 간에 그러니까 나한테 이렇게 비싼 술을 사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절주가 되었던 거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흐미.. 비연) 암튼 금테가 도는 뚜껑에 생긴 것도 금딱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것이, 이자카야 주인장 아저씨가 이런 좋은 술을 이러면서 가져다 주는데 눈이 띄용용. 처음엔 나혼자 생맥주 시켰다가 맛만 볼까 하고 얼음 동동 띄워 소주 살짝 부어 먹었는데 그게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결국 한 병 더 시키고.. 으으. 왜 그랬지? 게다가 안주도 광어와 해삼내장으로 만든 고급 안주가 연거푸. 흠... 결국 에라 모르겠다. 부어라 마셔라 하고는 새벽 2시에 집에 엉금엉금 기어.. 는 아니고 휘청휘청 거리면서 도착했더랬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말짱해서 친구들한테 도착했다고 메세지도 보내고 스맛폰에 알람 시간도 잘 바꾸고 잠들었더랬는데.... 눈을 떠보니 11시. 어멋. 아 머리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아아아아아아. 그러고는 다시 눈을 붙임. 중국어 학원 어쩌지? 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냥 잊어버리고 다시 취침.... 참고로 전 원래 과음 후 반드시 반나절 이상 자야 풀린답니다...ㅜ

 

다시 눈을 뜨니 오후 2시. 점심? 노. 더 잘 거얌. 이건 뭐 잠자는 귀신 붙은 거 마냥 다시 취침. 근데 머리가 너무 아파. 아 역시 일본 소주는 안돼.. 후폭풍이 넘 거세... 다시 눈을 뜨시 오후 4시. 배가 고프고... 머리는 여전 아프고. 일단 나가서 샤워를. 그런데도 정신이 안 들어서 일단 밥을 좀 먹어주었는데도 계속 두통, 치통...ㅜㅜ 다시 취침. 그게 오후 6시. 그리고는 계속 쭈욱 그 담날까지 잤다는... 믿기어려운 사실. 그러니까 반나절이 아니라 한나절을 자야 풀리는 '연세'가 된 비연. 으헝.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허리에서 무슨 뿌드득 소리가. 침대에 넘 고정 자세로 자고 있었나 보다... 허리가 굳었나봐. 으악. 하고 머리가 안 아프니 이제 허리야 엉엉... 하며 겨우 일어났다. 내가 정말 못산다. 집안 사람들의 "너 사람이니?" 라는 눈총을 받으면서 일요일 하루를 버텼다는...

 

이제 다시 시작된 절주... 삼일 째...(흑흑) 과연 언제까지??? ㅜㅜ

 

***

 

미안해서 방에 쳐박혀 책이나... 보았다. 할 일은 산더미였는데 도저히 몸이 안되어서 (머리가 계속 멍...띵...) 그냥 독서.

 

 

 

역시 머리 아프고 아무 생각하기 싫을 땐 추리소설이 최고. 다행히 집에 모리 히로시의 S&M 시리즈 나머지를 사 둔 게 있어서 모든 걸 제치고 일단 집어듦.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한 권 뚝딱. 이제 사이카와와 모에의 러브라인이 조금씩 드러나는 재미도 있고... 추리 트릭이 점점 정교해지는 맛도 있고... 시리즈물이라는 게 뭐 그런 진전하는 재미가 있다는 게 맛이니까.  나머지 권들도 읽어야지... 조만간.

 

 

 

 

 

 

 

 

 

그리고... 저녁 늦게 머리가 좀 덜 아프길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페이퍼든 리뷰든 쓰고 싶기는 하다. 사람들이 워낙 좋아들 해서 어떤가 했는데 역시 나의 정서랑도 많이 맞는 소설집이었다. 30대의 젊은 작가가 썼다고 하기에는 그 감정결의 깊이가 많이 깊어서 읽고 나니 마음에 아릿함이 진하게 남았다.

 

요즘 소설들은 기교가 난무하고 이야기를 꼬고 꼬고 또 꼬아야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추세인지라 대부분의 소설들이 읽다 보면 좀 식상해지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뭐랄까 좀 질린다고 할까. 화려한 색상의 벽지를 계속 쳐다보니 어지러워지는 느낌?

 

그 중에 이 최은영의 소설집은 담백하고 담담하고 기교가 거의 없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그대로 박힌다. 군더더기 없이 그대로.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

 

그 와중에 야구도 보았다. 아. 넥센. 왜 이리 맥을 못 추는 지. 엘쥐는 거의 상승세의 절정을 달리고 있고. 이런 기세로는 오늘 게임도 불안하다. 게다가 투수가 1차전때 엘쥐에 박살당한 맥그레거이고 엘쥐는 류제국이 아니냔 말이다. 으헉. 원래 넥센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엘쥐 유광점퍼 군단도 얄밉고, 왠지 엘쥐가 올라가면 엔쒸도 이기고 두산이랑 붙을 것 같은 불길함이 있다. 두산이 이상하게 엘쥐만 만나면 약해지곤 해서 걱정 또 걱정. 오늘은 일찍 가서 넥센 응원해야지...ㅎㅎㅎㅎ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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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회사 선배들을 만나 맥주 한잔을 했다. 정년이 되어 나가신 분들인데, 상사였기도 하고 계시는 동안 내게 친절하게 해주시기도 해서 가끔 만나뵙고 있다. 나이 차이도 한참 나고 해서... 게다가 술 드시면 얘기가 삼천포로도 잘 빠져서 재미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은 내가 술을 안 먹으니, 정말.. 가끔... 힘들다 ㅎㅎ;;;;) 그냥 얼굴 뵙고 안부 드리는 차원이다.

 

간만에 뵈는 거라, 좀 비싼 집에 가서 따로 방 빌려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내가 회사 생활 힘들다고 얘길 했다. 아 실수였다. 그러니 왜 그러냐? 그렇게 된 거고.. 그래서 내가 이 얘기 저 얘기... 그 이후로는 "잔소리말고 잘 다녀" 류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다. 알았습니다... 하고 중간에 끊으려고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흠... 실패. 결국 10시까지 훈계를..ㅜ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도 고맙다 싶기도 하고. 내가 요즘 힘들다고 너무 보는 사람마다 습관처럼 투덜대는구나,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싶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최근에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아무나 붙잡고 짜증내고 투덜대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실제로 그런 건 맞는데, 이 나이에, 이 회사경력에 그래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라는 깨달음이 문득.

 

누구나 살면서 힘든 건데 말이다. 위기가 있고 또 그걸 어떻게든 이겨내고들 있는데, 나 혼자 힘든 것처럼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절대 좋아보이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문득, 많이 부끄러웠다. 그냥 그만 두면 쿨하게 그만 두면 되지, 이렇게 구질하게 굴지 말자. 라는 결심 아닌 결심도 하게 되고.

 

투덜거리는 것, 스탑. 이다.

 

*

 

이 책을 읽고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에 대한 관심은, 예전 경제사 책을 읽을 때부터 있어왔고 이 책도 한번 꼭 읽어야지 벼르던 거였다. 내용도 관심있는 내용이고 해서. 근데 번역이 좀 이상한 건지, 내 지식이 짧은 건지, 매끄럽게 쭉쭉 나가지질 않네..ㅎㅎㅎ;;;

 

처음 열 페이지 정도 읽었고 이번 주는 이 책에 빠져 보련다. 아. 물론 그 와중에 야구는 계속 봐줘야 하고. 나야 두산만 보면 되지만, 4-5위전부터 봐나가는 재미도 놓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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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10-1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때 그랬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힘들다고 징지대는 거요.

머리로는 알고 있죠. 나만 힘든게 아니라 누구나 다 삶이 힘들다고. 하지만 저는 찌질하게 징징대는 걸 멈추지 못했어요.

나중에 후배 하나가 담담하게 자기 어려운 상황 말할때 부끄럽더라구요. 난 그 친구에게 막 징징댔는데, 그 녀석은 그토록 담담하게 말하다니.

가을 야구가 시작되었나봐요? 야구 안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예전에 열심히 야구 봤던 사람이 내가 맞았나 싶네요.

비연 2016-10-11 18:18   좋아요 0 | URL
어려울 때 어렵다고 말할 수 있어야 속에 병이 생기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길게 하면 그건 아니구나 했어요. 다들 그런 시기가 있는 거겠죠..? ... 가을 야구 시작했고 어제 오늘 4, 5위전인데 엘쥐 대 기아라 쫄깃한 즐거움이 있어요~^^

cyrus 2016-10-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위 팀의 팬들이 가을 야구 즐기는 방법은 와카전부터 챙겨 보는 일입니다. 4년 동안 그렇게 보느라 즐거웠습니다. (아련~)

비연 2016-10-11 22:54   좋아요 0 | URL
이런... 삼숭팬이시군요..^^;;;; 저도 올해 내내 시즌중의 기쁨을 누렸고 이제 포스트시즌을 즐기니... 이게 꿈인가 싶슴다~ 그나저나 오늘 엘쥐와 기아 전은 정말 쫄깃한 경기였어요! 기아 넘 아쉬울 듯..

보빠 2016-10-1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블린이 지은 책 자체가 좀 매끄럽게 적지 않고 논리성이 약하죠.다만 제도 경제학 개념을 서양에서 처음으로 주장하다보니 중요한 책이 되었지요.

비연 2016-10-16 17:54   좋아요 0 | URL
아.. 계속 읽으니 좀 그런 것 같아요. 이 개념 자체가 새롭게 느껴졌을 거란 생각도 들고. 제가 완전 이해를 못한 건 아닌 것 같아 좀 안심인데... 암튼 술술 넘어가진 않아서 시간이 걸리는...ㅠ
 

 

지난 금요일날 회의를 갔는데, 아 올해 정말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도 안 되고. 완전 失氣하여 집으로 와서는 (비까지 오더라) 바로 뻗어 잤다. 내리... 5시간을. 그리고는 자정 다 되어 일어나서는, 그래도 씻어야지 라는 양심의 호소에 힘입어 겨우 씻고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잠. 심지어 토요일 10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것이냐.

 

중국어 학원을 갈까 말까 하다가 아 그래도 그거라도 해야지 하고는 억지로 옷 끼워 입고 힘없이 나왔다. 몸도 사실 안 좋았고, 마음은 더더욱 안 좋아서 기운이 나야 말이지. 그런데 학원 갔더니, 세상에. 내가 주말마다 듣던 이 과목이 다음달부터 폐강을 한단다. 헉. 그다지 열심히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폐강이라니. 이런 일은 처음이지 뭔가... 될 일도 안 되는 올해..라는 생각이 다시. 학원 끝나고는 만사 다 귀찮아져서 에라. 집으로. 하고는 집에 틀어박혔다. 맥주도 먹기 싫은 상태라, 야구 넋놓고 보고. 그래도 야구를 크게 이겨서 (시즌 마지막 경기!) 그나마 나쁘지 않네 하고 방으로 기어 들어와.. 뭐 하지? 하다가.. 영화나.

 

 

2012년 영화를 이제야 보는. 왜 이걸 안 봤지? 사실 이게 생각난 건, <질투의 화신> 조정석이 이름을 알리게 된 영화라고 들어서였다. 납뜩이 납뜩이 하는데 도대체 어떻길래? 하는 마음으로 본 것이지. 요즘 불미스러운 일로 이름 오르내리는 엄태웅이 나와서 좀 그렇긴 했지만, 이제훈도 나오고 해서 그래 유명한 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하고 봤다. 맨 처음 크레딧 올라가는데 조정석 이름은 나오지도 않아서 깜놀. 요즘 대세인데 불과 4년 전에는 조연 중의 조연이었구나.

 

아. 심정이 별로여서 그런가. 이 영화 보고도 한참을 울었다. 뭐야..ㅜㅜ <나의 소녀시대>랑 비슷한 컨셉이지만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우리네 추억과도 많이 닿아 있는 영화라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삐삐... ㅎㅎㅎ 지금 같으면 카톡 날리면 될 일을 그 때는 삐삐... 삐삐 치고 연락 오기만을 한없이 기다렸던 시절. 1기가 짜리 하드를 크다고 놀라는 주인공 심정 이해되고. 그리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이 명곡을 계속 듣는데... 저 앨범, 정말 닳도록 들었었지 라는 기억이 새록새록 났었다. 나에게도 지금 있는 그 쟈켓의 앨범.

 

 

이거. 대학 가요제 나와서 대상 탈 때부터 눈여겨 보던 이들은, 결국 김동률 한 명만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흐르면서 사람 감동시키는데...으으흑. 근데 그 때도 강남 강북 이런 게 있었나. 라는 갸우뚱도 있었고... 순진한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예전에 나한테 고민상담하던 남자애들 몇몇 얼굴도 떠올랐다. ㅋㅋㅋㅋ 울고 불고... 말을 못 해서 고민하고 술 먹고... 내가 좋아하는데 다른 애랑 친하다고 눈 둥그래져서 나한테 진상파악 하러 오고. (난 이런 고민상담의 데스크 역할이었다...ㅜㅜ) 그런 애들 얼굴이랑 겹치면서 어찌나 짠하던지. 그리고 납뜩이. 푸하하. 조정석이 이 때만 해도 퉁퉁하게 살이 쪄서 지금의 모습과는 매치가 안될 정도였지만, 연기 하나는 정말 웃겼다. 허세스럽지만, 의리있는 친구. 전형적인 모습을 재미나게 묘사해서, 자칫 지루한 첫사랑 이야기에 액센트를 더해주고 있었다. 조연으로 나와도 괜찮겠는데, 조정석? 하면서 많이 웃었다. 수지는, 다른 데보다 여기에서 제일 예쁜 것 같다. 국민 첫사랑이라더니, 풋풋하고 퉁명스러우면서도 정깊고 외로운 아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어색하지 않았다. 이제훈도 어리버리 대학 신입생 남자아이 역할을 잘 소화해내주었고. <시그널>에서의 그 모습만 생각하다 이 영화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니 재미있기도 했고.

 

결국 작은(?) 오해로,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물어보지 짜슥.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차마 정말 그러면 어쩌나 싶어 도저히 물어보지는 못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이런 게 엇나감이구나 했다. 첫사랑의 애틋함, 엇나감. 그리고 재회. 건축학개론 수업이 시작하고 끝나는 동안 꽃피웠던 첫사랑의 흔적은 십수년이 흘러 집을 하나 짓기 시작하여 다 짓는 동안 약간의 혼란은 있었을 지언정 잘 마무리되고...  영화는, 이제 각자의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성인으로서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군더더기없이 잘 그려내고 있었다. 첫사랑의 애틋함을 다 지워낼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근데 난 왜 그렇게 운 거냐. 나 참. 오늘 아침 일어나니 눈이 퉁퉁. 얼굴이 보름달. 뭐 한 거야... 그러고는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나가기도 귀찮고 심정도 그렇고... 변명을 마음에 한가득 하면서 말이다.

 

 

2014년인가에 샀던 옌롄커의 <풍아송>을 이제야 들었다. 600페이지 남짓한 책인데, 처음에 아내의 불륜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게 어떻게 600페이지를 다 채울까 걱정되었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이 내용을 600페이지에 어찌 다 담았지 싶을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역시 중국인이 지은 작품답게 묘사도 걸죽하고 세밀하고 해학적이라고나 할까 자학적이라고나 할까... 그런 이야기들이 그냥 너무 일상적으로 묘사되어져 있다.

 

하지만, 매우 좋은 작품이다. 별 다섯.

 

지식인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거짓 앞에 무너지는 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지식인의 허울을 어느 새 던져버리고 그냥 날 것의 모습으로 세상을 대하며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인공 양커씨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해서 눈물겹지만 결국 묘한 감동을 준다.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북경대가 모델이냐며 (중국 최고의 대학이며 최고의 수재가 모인 대학이라고 계속 강조...)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고 하지만, 옌롄커 본인이 밝혔듯이 무엇이 모델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모순을, 비록 지식인이 아니라고 해도 해결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었나 싶다. 읽으면서, 유쾌하지 않은 나의 깊숙한 마음을 들킨 느낌이 들어 흠칫스럽기도 했으니. 어차피 소설가는 사회 뿐 아니라 자아를 향해서도 말하는 존재니까. 그리고 설사 그것이 북경대 이야기라고 해도, 그게 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사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북경대 혹은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이라는 교수 사회 얘기야) 심란한 마음에 읽었지만, 모처럼 집중해서 쭈욱 한 권을 내리 읽어내린 책이었다.

 

*

 

이렇게 주말이 갔다. 내일 회사 나가서 또 쪼일 생각하니... 아 배가 자꾸 아프다. 이거 무슨 학교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큰일이지 뭔가. 게다가 의욕상실에 자신감까지 잃어가고 있어서 그게 더 큰일이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그나마 가뿐한 마음으로 나가야겠다. 쪼일 땐 쪼이더라도, 쪼그라들어서 출근하면 안되지...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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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10-0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일요일 밤이 되면 막 짜증이 나요. 내일 출근하기 너무 싫네요!

비연 2016-10-09 21:24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저만 그런 게 아니죠..?ㅜㅜ 게다가 금요일 회의 망가져서 내일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저로서는... 정말이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비유가 적절한지 잠시 생각..ㅜ)

감은빛 2016-10-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정도의 차는 있어도 대부분 직장인들이 그럴걸요. 싫은 소리 들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시라면 더욱 힘드시겠어요.

저도 그런 경우 여러번 당해봐서 정말 공감합니다!

그래도 부디 힘내시고, 잠은 편하게 주무셨으면 좋겠네요.

비연 2016-10-09 21:55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감사해요...흑흑. 힘내야죠. 영차! 님도 굿나잇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