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려놓고 싶은 책이다. 이미 올리기도 했고..

 

 

사실, 문체가 특이하다. 어째 머리에 착착 붙지 않는 문체. 그런데 그 진솔함이 뼛속까지 와닿는다. 아 이게 오에 겐자부로의 필력인가. 어쩌면 필력이라기보다는 진실의 힘에 더 가깝지 않을가 한다.

 

어려서부터의 책에 대한 사랑, 한 작가의 책을 3년씩 읽어내리는 독서법, 외국 책을 원서와 병행해 읽고 그 모든 독서가 자신의 작품에 계기로서 작용했음을 고백하는 老작가. 그와 함께 자신의 인생에 늘 함께 했던 '수상한 이인조'들. 책과 사람과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져 감동이 되어 다가온다.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이 대목에 영향을 받아 평생의 마음가짐으로 삼기 시작한 유년시절. 16세에 만난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이라는 책의 저자가 와타나베 가즈오이고 이 분이 도쿄대학 프랑스 문학과 교수라는 것을 알고 거기로 진학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 그리고 생의 각순간마다 만났던 소중한 책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소중한 인연.

 

자신의 본래 장소를 잃어버린 인간으로서, 망명자로 살아가는 나라의 가장자리에 서서 비판적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는 인간이었습니다. 국가나 세계의 중심 지배 권력에 다가붙는 말을 꺼내는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망명자로서 끊임없이 발언하는 태도로 일생을 관철해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진짜 고향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의 진짜 장소가 아닌 곳에서 그러나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일을 한 사람이라고, 저는 언제나 사이드에 대해 이렇게 말할 작정입니다. (p54)

 

에드워드 사이드를 원래 좋아하고 있었지만, 오에의 이 글로 더욱 좋아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할까.

 

그리고, 장애아를 아이로 가진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고통과 그 때마다 위안이 되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의젓하게 성장한 히카리(음악가가 되었다)라는 아들과의 교감, 성장과정에서 느껴야 했던 고뇌들, 해결해야 할 문제들... 이런 것들이 오에의 문학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또한 느낄 수 있었고.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이 시인의 시들이 준 영향들.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로 깊이 생각하게 된 마음. 그런 마음을 담은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라는 그의 책.

 

단테의 <신곡>. 죽마고우였던 이타미 주조...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던 이타미 주조가 스캔들에 휩싸여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을 때... 오에는 단테의 <신곡:지옥편> 제13곡을 다시 읽었다고 썼다. "나의 영혼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죽어서라도 누명을 벗고자 올바른 몸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하였다." (p144) ...  이 경험의 마지막에서, 오에는 고전을 읽으라고 얘기한다.

 

이렇든 고전은 다양한 형태로 몇 번이고 우리에게 새롭고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어요. 특히 노년에 이르러 그것이 주는 풍부한 경험을 생각하면, 저는 젊은 여러분에게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고전을 제대로 만들어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p154~155)

 

나의 고전. 무엇이 있을까 를 잠시 책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책들 중에 내 마음에 남아 재독을 하고 싶을 정도로 인상에 남았던 책들도 떠올려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카뮈의 <이방인>... 그렇게 몇 가지가 떠오른다. 아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수상한 이인조'의 중요인물인 이타미 준과의 인연에 대해 쭈욱 이야기하는 말미의 글들에서는 ... 괜한 찡함이 느껴졌었다. 

 

그에 더하여, 저는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책이여, 안녕!>에서, 니시와키 준자부로가 번역한 T.S.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를 종종 인용했는데, 이번에 삼부작을 다시 읽으면서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던 <리틀 기딩>에 나오는 다음의 한 소절이 지금 제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나는 옆어지는 밤의 어둠 속에서 고개 숙인 얼굴을 처음 보았다. / 낯선 사람 보듯 날카롭게 쏘아보는 동안 / 불현듯 내가 아는 죽은 선생을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 잊어버렸으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 하나의 얼굴인 동시에 수많은 얼굴이다. (중략) 그리하여 나는 일인이역을 하며 소리쳤다, / 그리고 상대방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 "뭐야, 자네 이런 곳에 있었나?"

 

'그렇다, 나는 이런 곳에 있다' 라는 마음을 담아 오랜 우정을 쌓아온 그리운 분들, 아울러 이 작품을 읽어주셧으면 하는 신세대 분들에게 이 책을 보냅니다. (p177)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특별한 인연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인조로서의 삶을 살아나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일생을 함께 할 수도 있고 먼저 떠나가기도 하고 그 시기만 함께 한 채 인연이 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 남은 반쪽인 내가 기억하는 나의 사람들. 이인조의 반대편. 그들에 대한 추억을 찬찬히 떠올려보기에 좋은 단초를 제공하는 글이었다.

 

이제 80대가 된 老작가의 지나온 인생과 책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정말 진솔하게, 책을 사랑하고 읽고 쓰는 것에 한평생을 바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것이 진실이기에 글 너머로 감동이 전해오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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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오후에 '반차' 씩이나 받고

병원 순례를 다녔다.

 

진정 순례였던 것이 오후에 세 군데나. 그것도 거리가 다들 엄청 떨어진 곳들이어서, 정말 정신없이 이동하고 가서 검사받고 결과듣고 그랬다. 그렇게 다 돌고나니 저녁 7시. 검사 받는다고 점심도 못먹고 다녔더니 아. 정말 몸도 맘도 파김치가 되어 버렸었다. 

 

다행히, 안 좋은 곳은 없단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라는 결론.

 

사실.... 더 이상 병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심이었다.

그러니까 방점이, 내가 안 아파서가 아니라 더 이상 병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구나에서 안심이었다는 게 묘했다. 물론 기저에는 아프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안심이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어제 심정은 그것보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 이게 더 컸다.

 

병원은, 다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맘에 병이 드는 것 같다. CT 검사를 처음 받아보았는데 (본격적인 CT 말이다) 방사선동위원소가 담뿍 담긴 조영제를 혈관에 투입하는데 그 느낌이 끔찍했다. 뒤이어 온 몸이 정말 뜨끈해졌다. 이 동위원소들이 내 몸에 쫘악 퍼지는 게 느껴졌다. 심하게 뜨거워져서 깜짝 놀랐다. 곧이어 잦아지기는 했지만, 당분간 그 느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저,

내 건강 내가 챙겨야

이 '수모' 를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젯밤엔 몸도 맘도 지쳐서 9시부터 기절해 자기 시작했고 아침에 5시쯤 눈을 떴다. 너무 잤더니 잠도 안 오는데, 회사는 가기 싫은 거다. 휴가를 내고 가지 말까 를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우선은 일어나 씻고 나오기는 했다. 그렇게 누워서 이생각 저생각 하는 동안, 아. 정말 나를 챙겨야겠구나. 이젠 어리지 않아서... 아니 젊지 않아서 스트레스와 과로가 몸과 마음, 정신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구나... 정신 차려야겠다.... 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했다.

 

병원에 오면 항상

'을' 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게 서러우면 안 와야 하는 거다...

 

.

.

.

 

그나마 '괜찮다' 라는 얘길 들어서 오늘 아침은 오랜만에 모닝커피를 한잔 했다.

건강한 행복감이 든다는 거,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지속될 수 있다는 거,

이런 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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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3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파서 장기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시면 ^^..

비연 2016-03-30 09:23   좋아요 0 | URL
넵넵... 정말 아픈 분들도 있는데... 투덜대면 안되겠죠...^^;;;;
열심히 면역력 강화를 하자 결심하는 차원에서 쓴..ㅎㅎ

cyrus 2016-03-3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 아프면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생겨요. 지갑의 돈이 줄줄 새어나가죠, 치료받는 데 투입되는 시간이 아까워요. 외출을 쉽게 못할 수도 있어요.

비연 2016-04-03 22:3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치료받고 외출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건강해야 뭐든 할 마음이 생기는 듯요.
 

 

오늘은 일찍 출근했다. 7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오늘 오후에 휴가를 내어야 할 일이 있어서 해야할 일들을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어제 저녁 받은 메일로 좀 마음이 상해 있다. 그래서 눈도 빨리 떠졌다고 보면 되겠다. 내가 하겠다고 했긴 했으나 성의가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안된다고 거부 당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 사람이 간사하다고 매번 말하지만, 뭐든 타인으로부터의 '거부' 라는 건 괜한 상실감과 자괴감을 일으킨다. 쓸데없는 일이긴 한데, 마음이 잡히질 않는다.

 

출근해서 커피 한잔 타서 가져오고 다시 메일을 읽어 보았다. 문구문구에 나쁜 의도는 없다. 그냥 깔끔하게 거부다. 맞지 않는다 는 거지. 흠... 화장실로 갔다. 손을 씻고 싶었다. 아 근데 화장실에서... 팀장을 만났다. (우리 팀장은 여성이다) 화장을 토닥토닥 고치고 계셨다. 들어서는 순간, 나갈까 싶었지만 그냥 들어가 인사를 했다. 그닥 상냥한 표정은 아니시라서 인사하고 바로 컵을 씻고 손을 씻는데 한마디 한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할 일이 있어서..." 라고 말끝을 흐리고 바로 튀어 나왔다... 팀장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냥 나랑은 기본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상사라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대 인간으로 느끼는 심정이다.

 

자리에 다시 앉았고, 팀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또각또각. 7시 10분.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음악소리. 모짜르트의 교향곡이 울려퍼진다. 나지막하게 은은하게 그러나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의 볼륨. 아. 일찍 출근하셔서 클래식을 들으시는군? 라는 생각에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팀장의 일정은 거의 살인적인데... 그걸 버티는 힘을 아침의 클래식에서 얻는가 싶었다. 30분쯤 듣더니 사람들이 출근하는 소리가 웅성웅성 나자 꺼버린 듯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문득, 나 공연 언제 갔었지? 매달 한번씩은 갔었는데. 라는 생각에 미쳤다. 프로젝트 하느라 이걸 잊고 살았었다. 주말에 퍼져 쉬느라 공연 갈 짬을 내지 못했었다. 이런. 요즘 무슨 공연을 하지? 라며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을 한다. 좋은 공연들이 몇 개 지나가버렸다. 모르고 있었다. 늘 가고 싶었던 통영음악제가 25일 개막했단다. 또 못갔네. 좀만 서두를 걸. 싶다. 이것저것 뒤지는 데 근간에 적절한 게 안 보여서 결국 6월달 공연을 선택했다.

 

 

 

기돈 크레머의 공연을 보려다가 이걸로 선택했다. 스테판 피 재키브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그리고 비엔나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궁금해서. 좀더 유명한 교향악단 걸 듣고 싶기도 한데 일단 여기까지. 다른 건 또 뒤져보자. 이렇게 예매를 하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클래식을 잊고 살았다니. 다시금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하겠다. 월 1회 공연 보기. 이거 지켜야지.

(그나저나 넘 비싸, 클래식 공연은)

 

*

 

최근에 본 공연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공연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다 좋아한다. <2016, 이른 봄> 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차세정의 목소리가 근사했다. 소극장보다는 좀 큰 공연장이고 차세정의 유머는 매우 썰렁헀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라도 참 이쁜 공연이었다.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8725

 

 

 

 

 

현장에서 공연을 본다는 것은, 그것이 클래식이든 가요든 뭐든 간에 좋다. 생동감이 있고 약간의 거친 음색들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내고 공연이라는 걸 보러 가는 모양이다. 조금 정신차리고 나도 문화생활로 회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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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카는 나의 유일 조카이고, 2005년 생이고, 남자아이이다. 결혼을 안한 내게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이다.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올해.

 

나는 조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전담으로 책을 사주는 고모였다. 아기때 헝겊책부터 그림책, 팝업북 이런 것을 거쳐 동화책, 만화책... 안 사주는 것없이 늘 공수를 해왔다. 아이가 어려서 뭘 읽고 싶다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어 내가 골라서 사주곤 했다. 조카는 좋아하기도 하고 안 좋아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대체로 늘 환영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마법천자문이나 등등의 학습만화는 다 내가 사주었다. 올케가 만화 자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사주기 꺼려하는 걸, 내가 다 사주었다. 괜찮아, 만화도 책이야, 읽으면 다 도움이 된다, 읽는 습관이 중요한 거야. 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한달에 두번 책을 살 때마다 반은 조카 책으로 채워 넣곤 했었다. 아이는 우리집에 오면 가장 먼저 책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고 새로 도착한 신간들의 비닐을 뜯으며 좋아했다. 만화이니, 읽는 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사다놓은 건 다 읽곤 했다.

 

그 아이가, 이제 책 취향이 바뀌었다. 키가 훌쩍 크고 발 사이즈가 240이 되어버리고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이럴 때는 컸나 이 아이가 라는 생각을 하는둥 마는둥 했었는데, 아. 책 취향이 바뀐 걸 보니, 우리 조카가 정말 컸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젠 학습만화를 거들떠도 안본다. 우리집에 오면 들어와서 책이 있는 방으로 뛰어가긴 하는데, 내가 읽는 책들의 제목을 유심히 보다가 한 권 빼들고는 "고모, 이거 봐도 되요?" 라고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최근에 조카가 빌려간 책.

 

 

어머나. 너 이거 이해할 수 있겠니. 100살 할아버지 얘기야. 그랬더니 "네!" 라고 해서 빌려 주었다. 어제 물어보니, 반 이상 읽었다며 재밌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 안 읽었는데 말이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우리 조카가 먼저 읽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어머어머.

 

 

 

 

 

 

 

 

 

 

날 닮은 모양이다.... 내 동생도 올케도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다. 우리 엄마도 질색하고. 우리집에서 나만 좋아하는 장르다. 그래서 왠만한 책은 다 있다고 보면 되는데... 내가 사다놓은 셜록홈즈 전집을 찾더니 거기서 이걸 안 읽었다며 쓰윽 뽑아서 가져간다. 어머어머.

 

나는 좋다. 우리는 그래서 말이 잘 통한다. 추리소설 좋아하고 만화 좋아하고 마블 좋아하고. 서로 대화가 된다. 아 우리 조카가 나랑 대화가 되는 수준으로 자라고 있다. 감동이다.

 

 

 

 

 

 

이제 학습만화를 사는 건 그만두어야 겠다. 6학년 올라가면서부터 조금 망설였었는데, 현실로 드러났다. 함께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도록 하거나 책을 살 수 있도록 용돈을 주어야겠다 싶다. 책을 고르는 그 재미. 그런 걸 느끼게 하고 싶은 거다.

 

우리 조카가, 이렇게 커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책의 레벨이 올라가는 그 모습에 가슴 뻐근함을 느끼는 건, 대견함이겠지. 기특함이겠고. 그리고 조카에게만 느껴지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조카가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하다. 그 아이가 이렇게 단계단계 커가는 모습이 내게 있어서는 신비 그 자체이고 樂이다.

 

이렇게 무럭무럭 커다오, 우리 조카.

고모가 책은 끊임없이 공수해줄테니 읽고 싶은 책 언제든지 얘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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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3-2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너무나 좋은 페이퍼네요.
제 조카들도 좀 더 크면 제 방에서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게 될까요?
지금은 이 아이들이(7살, 4살) 책 자체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
제가 바라는 모습이 바로 비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카들이 찾아와 제 책장에서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거거든요. 아아, 제가 그리던 걸 비연님은 이미 이루고 계셨군요! 부러워요!!

비연 2016-03-28 13:34   좋아요 0 | URL
락방님 락방님... 저도 그게 로망이었는데 아이가 그닥 흥미가 없어 보여서 내심 그냥 접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갑자기! 되더라구요...우히히. 기대해보삼요~

무해한모리군 2016-03-2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자라는걸 보니 세월이 흐르는구나 싶어요... 비연님 좋은 고모군요 오호

비연 2016-03-28 13:35   좋아요 0 | URL
좋은 고모가 되고자 늘 노력하는데... 조카는 그렇게 생각하는 지..^^;;;
제가 나이 먹는 건 잘 모르겠더라도 (마음은 늘 청춘 ㅜ) 아이가 부쩍부쩍 달라져 있는 거 보면 시간이 흐르는구나... 이게 사는 거구나 싶어요.

cyrus 2016-03-28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홈즈의 매력을 잘 아는군요. 저도 조카 나이 때 한창 홈즈 시리즈를 즐겨 읽었어요. ^^

비연 2016-03-28 16:39   좋아요 0 | URL
cyrus님. 저도 제 조카 나이 때 홈즈랑 아가사 크리스티랑 참 즐겨 읽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조카가 더 귀여운 거에요 ㅋㅋㅋㅋ

moonnight 2016-03-2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제 큰 조카아이는 이제 4학년 되었는데 아직은 책보다 만화책을 (훨씬) 더 좋아해서 이번 주말에도 놀러와서는 제게 만화책 주문해놓고 갔어요. 제 오빠와 새언니는 만화책 사주지 말라고 하지만 못 들은 척^^; 언젠간 제 조카아이도 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골라가는 날이 오겠죠. 두근거리기도 하고 뭔가 아쉬운 기분일 것 같기도 해요. 더이상 아이가 아니구나. 싶은. ㅜㅜ; 하여간에, 비연고모님의 유일조카는 복받았네요.^^

비연 2016-03-29 07:01   좋아요 0 | URL
moonnight님.. 기다리시면 곧 책장 책을 빼서 가져올 날이 옵니다~ 멀지 않았어요!
제 조카도.. 제가 가끔 글자 많은 책들을 사주곤 했었는데 거들떠도 안 봤었거든요ㅜ 그래서 아... 그럼 아직은 만화인가봐 하고 그냥 만화만 사주었었는데 어느새 훌쩍 커서 알아서 만화를 안 보네요 ㅎㅎㅎ 물론 웹툰 이런 걸로 돌린 거죠. 학습만화 대신에. 제 유일조카 덕에 제가 복을 받은 거랍니다.. 참.. 기뻐요. 그 아이가 있어서.

꿈꾸는섬 2016-03-2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수준이 05년생 제 아들과 차이가 확 나요.ㅜㅜ 조카가 지적호기심이 넘치는군요. 부럽습니다.

비연 2016-03-29 07:0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ㅎㅎ 제 조카도 평소에는...ㅜㅜ 그냥 가끔 이렇게 감동을 줘요.
호기심은 많은 것 같은데.. 그냥 아이에요. 남자애라 아직은 한참 어린..^^
 

 

지구가 멸망하는 말 아침에도 블랙커피를 마실 수만 있다면 잠시는 생명체로서 느끼는 아늑함에 잠길 수 있지 않을까. 엄격한 경계조건을 조금은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카와 교수는 커피의 이런 기능을 한자 한 글자로 '魔(마)' 라고 표현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오염된 밤 공기로 얼얼하던 목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p247)

 

 

 

 

 

 

 

 

몸이 꽤 좋지 않아서, 커피마저 조금 자제하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이 이 구절이었다니. 이건 말이다. 진정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모리 히로시는 분명, 커피 애호가(혹은 중독자?) 일 것이다. 모리 히로시의 S&M 시리즈에서 주인공 격인 사이카와 교수와 니시노소노 모에는 커피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담배를 또한 무지하게 좋아한다. 이게 다 작가가 투영하는 이미지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

 

어쨌든, 커피라는 건, 그렇게 잠시 주변과 내게 다가온 많은 문제들과 생각거리에서 떨어져 나 혼자에게 침잠하게 하는 정말 좋은 '음식'이다. 이것까지 자제한다는 건, 내가 몸이 좀 많이 좋지 않다는 거고 (덕분에 병원 순례 예정ㅜㅜ) 그래서 맘이 좋지 않다. 좀만 참으면 커피를 예전처럼 먹을 수 있겠지... 라며 위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겉치장을 신경 쓰지 않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굳게 믿음으로써 겉치장을 한다. 멋 부리기를 싫어하는 인간은 멋을 내지 않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며 멋을 부린다.

문제는 같다.

타인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인간은 그런 식으로 타인에게 간섭하고 있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의식이란 원래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은 솔직한 사고에 의해 비가역적으로 연약해져간다.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생각하지 않는 것.

(p363-364)

 

 

커피 얘기만 인상에 남은 건 아니다. 모리 히로시의 작품 4개를 다 보았는데, 이 책이 제일 맘에 들었다. 좀더 일반적이고 좀더 사유적이며 좀더 로맨틱(?)하다. 자세한 것은 직접 책을 보고 느껴보시도록...(흐흐)

 

일요일이 가고 있다. 주말 내내 침대를 내몸처럼 하고 누워만 있었더니 찌뿌뚱하기도 하지만 개운한 감도 가지게 된다. 워낙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일까. 정말이지 천장만 바라보고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다가 자고 깼다가 다시 자고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런 시간이 아깝다 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그저 그렇게 반복적인 멍때리기 상태에 있어 본 지도 꽤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덕분에 기력이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 또 조심.... 한동안 스스로를 다잡아야 하겠다 싶다... 그러자니 커피도 잘 못 먹는다. 으. 급슬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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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3-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빠른 쾌유를 빕니다.
전 출근해서 핸드드립 한 잔 준비해 마시는 그 순간이 참 좋아요. 그 재미로 출근이 덜 힘드네요.
커피 마음껏 마시는 날이 빨리 오시길요....

비연 2016-03-28 11:06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그 재미로 출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ㅜ
오늘 아침, 굳게 마음 먹고 한번 모닝커피를 해보았는데... 나쁘지 않아서..
하루 한잔씩만 일단 먹어볼까 싶어요...ㅜ 수시로 먹지는 못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