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고, 읽고 좋았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면 좀 과장 보태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외면하고 있었다. 다작도 다작도. 도대체 이 작가는 주 1회 쓰는 거임? 이제까지 읽은 거 대부분 중고서점에 내놓으며 든 생각이었다. 많이 쓰는 게 흠은 아니지만, 그렇다보니 범작도 많고 서점에 쭈욱 늘어져 있는 그 수많은 책들을 보면 어째 품위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냥 나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다. 양이 질을 담보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런.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유명한 데는 그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그 중엔 분명 괜찮은 작품, 보관해두어도 괜찮은 이야기가 있다. 내 책장에도 밖에 내보내지 않은 그의 책이 몇 권은 꽂혀있다. 어디 보자...

 

 

 

 

 

 

 

 

 

 

 

이 정도? ... 그래도 몇 권 되네. 그밖에 가가형사 시리즈도 나쁘지 않았고 갈릴레오 시리즈도 괜찮았지만, 일단 대부분 바이바이. 소장까지는 안하겠어 라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소장하게 될 것 같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교류 이런 내용이 많기는 하다. 내가 열광하며 보고 있는 <시그널>도 그렇고. 그건 어쩌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드라마와 영화는 항상 한발 앞서 가니까. 그래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다 어느 공간에서인가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어쪔 그 사이의 연결끈을 찾으면 소통이라는 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가슴 떨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두려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이름이 나야미(悩み, 고민)과 비슷하다 하여 아이들이 장난삼아 고민상담이라는 걸 하게 되었고 거기에 재치있는 답을 해주던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는, 어느새 진지한 고민에도 진지한 답변을 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해주게 되었다. 그렇게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현재와 그 먼먼 미래가 날실과 씨실처럼 얼기설기 엮여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편지로 상담을 하고 답을 받던 사람들의 生이 어딘가에서 접점을 가져 영향을 주고, 결국 상담을 주고받음으로써 많은 인생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방법을 찾아나가더라는 이야기가, 참 훈훈하게 펼쳐져 있다. 잘되었다 못되었다를 떠나서...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더라.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158-159)

 

이 글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져 왔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그래서 평범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정성어린 답장이 또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뭔가를 남기는 모습들이 좋았다.

 

제일 마지막 편지 내용도 좋았다. 하지만 그건 읽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마지막에 가서야 봐야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일테니 여기서는 옮기지 않겠다. 책을 덮으면서,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나의 고민을 던지고 답장을 받을 수 있는 곳. 내게 답이 이미 내려져 확신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든, 정말 답을 몰랐어서 물어보는 행위이든 (사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대부분은... 자기가 자기의 답을 안다...) 그렇게 내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면 맹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사람들이 즐비한 이 정글같은 세상에서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3-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일본 작가가 하루키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가장 많이 번역되었을 겁니다. ^^

비연 2016-03-06 21:50   좋아요 0 | URL
지금도 하루키와 미미여사의 책은 끊임없이 나오는데, 하루키와 미미여사 책은 그렇게 질리지 않는 반면에... 묘하게 히가시노 게이고만 질리는 건 뭘까요..? ㅎㅎ 그래도 이 책은 좋습니다.

마태우스 2016-03-0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한다기보다 그런 고민을 보낼 곳이 있다는 게 참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고민은 여전하더군요.

비연 2016-03-06 21:45   좋아요 0 | URL
네네.. 마태님. 저도 동감요. 그런 고민을 어떤 대상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될 거라는 거요. 벽보고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리고 나에게 답이 온다는 거... 평생 살아도 하는 고민의 양태와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르한 파묵의 <고요한 집> 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있기도 하다. 지금 1권 중간 넘게 읽었는데... 오타 속출인 거 빼고는 - 이거 오래 전 산 거라 이젠 많이 고쳐졌으리라 믿어본다.. - 괜찮다. 오르한 파묵. 멋지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찰스 페로의 책이다.

예전에 읽으려고 몇 장 시도했다가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다 잊어버리고 (까묵었다 는 게 더 잘 맞는 표현인 거 같다..ㅜ) 다시 첫장부터 읽고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원서로 읽고 있다.

그러니까 매우 천천히 아주 조금씩 읽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상반기에 완료할 예정이다.

 

 

올해는 독서일기를 충실히 써보려고 했는데 계속 여의치 않고 있다. 좀더 노력하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3-0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게 기록하는 것도 좋습니다. ^^

비연 2016-03-01 22:45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 짧게라도 기록을 계속 해나가는 데 의의를 두는 걸로.
 

 

제목에 쓰인 대로다.

 

삼일절이니까.. 뭐 다른 의미의 글을 올려야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영화 '귀향' 을 곧 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그리고 온종일 자다가 (인간이 이렇게도 잘 수 있구나 싶다ㅠ) 책 사겠다고 노트북 도닥거리고 있다... 노트북 새로 산 지 4개월쯤 되었는데 흡족하다.. 라고 샛길로 잠시.

 

 

 

이 책을 왜 지금 사나요? 2013년 올해의 책이었습니다만...

 

내 맘이다. 라고 삐딱하게 대답하고는 이번에 장바구니에 퐁당 넣었다.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었고 - 가가 형사 시리즈 이런 건 정말 좋다 - 중고서점에 제일 많이 내놓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머리비우고 읽을 땐 좋은데 소장의 기분은 안 느껴지는.

 

게다가 넘 많이 쓴다. 다작도 다작도... 끊임없다. 소재도 다양하고 분량도 다양하고 내용도 다양하고. 그래서 에잇. 사기 싫어 라는 마음으로 계속 버틴 책이 하필이면 이 책이다. 다들 좋다고, 읽을 만 하다고 호평하는 이 책을 말이다. 쩝. 그래서 이번에 샀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여든의 노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죽마고우였던 오랜 친구의 갑작스러운 자살, 장남 히카리의 장애, 본인 작품에 대한 비판 등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고, 소설 집필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시련을 포함한 그의 모든 삶의 순간들엔 ‘책’이 있었다. 책은 그가 인생의 문제들로부터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더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저자가 일생동안 그토록 치열하게 읽어왔던 이유기도 하다.  - 알라딘 책소개 中

 

나중에 나도 이런 책 한번 쓰고 싶다. (홋?!) 나의 모든 절망의 순간에 '책'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 전에 오에 겐자부로의 고백부터 읽어보련다.

 

 

 

반역.. 이란 말에 상당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과학자들은 다 반역자이다. 반역이 무엇인가.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게 반역이다. 정치적 반역만 반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순응하는 자가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입증하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과학자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일면 다 철학자이다. 남들이 말하면 응응.. 다 맞아 라고 얘기하고 체제에서 말하는 것에 다 옳소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과학자는 기본적으로 이단자들이고 반역자들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끌렸다. 제목부터가.

 

 

 

 

 

 

카뮈를 좋아해서 (내 서재의 주소를 보라. camus다) 그에 관한 글은 모조리 산다. 이 책은 카뮈의 딸인 카트린 카뮈가 아버지 알베르 카뮈의 인생을, 그가 다닌 행적을 되짚어 가면서 찾아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다. 화보도 많고 글도 유려하다고 한다.

 

카뮈가 사랑하고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한 세계 여러 곳의 풍광, 여행 당시를 기록한 사진, 육필 원고, 서한 등 풍성한 시각 자료뿐만 아니라, 함께 수록된 소설, 에세이, 시평, 연설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인’ 알베르 카뮈의 삶과 그의 정치적 · 예술적 신념, 더 나아가 그의 작품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리적 좌표를 통해 알베르 카뮈의 단면을 세밀하게 살피는 이 책은 카뮈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더욱 자세하고 깊숙이 내보인다. 그의 딸 카트린 카뮈와, 카뮈와 시대를 함께해온 문학계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사진 등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시각 자료들을 통해 카뮈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빚어져왔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알라딘 책소개 中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진이 많이 포함되었다니 더더욱.

 

 

 

영어 원제가 'On Evil' 이다.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쓴 책이라고 한다. 악에 대한 성찰이라.

 

악을 저지르는 인간은 비범하고 특별한 존재인가. 일상적이고 평범한 자들의 악행이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 것이 아닌가. 악은 악을 저지를 만한 사람만이 저지른다는 고정관념이 더 무서운 것이 아닌가.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마이클 코넬리와 찬호께이의 신간이다. 무조건 산다... 에 해당하는 작가들이다. 마이클 코넬리의 책에서는 이복형제인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가 만나서 협력한다고 하니 흥미 만점이지 않은가.

 

찬호께이는 <13.67> 이라는 책으로 나의 사랑을 한아름 받게 된 작가이다.  한 권이 더 나왔으니 내가 사랑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니 바로 장바구니에 퐁당.

 

 

 

 

 

조카를 위한 책.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괜찮은 지는 한번 사보고 결정하려고 한다. 요즘 계속 나오고 있던데.

 

우리 조카는, 영상물을 좋아하고 그래서 지금 영화감독을 하겠다면 영화에 아주 심취하여 산다. 초딩 6학년 올라가는 아이의 그 모습을 보면서 그래그래, 꿈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멋진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선 세상 보는 관점이 넓고 발라야지. 고모가 좋은 책 더 많이 사줄게... 귀여운 조카 같으니 ~^^

 

 

 

 

 

 

*

 

책을 사고난 기분은, 참 좋다. 뭐라고 구질하게 표현하기 싫다. 그냥 좋다. 그래서 삼일절 내내 잠만 잤는데도 왠지 뭔가 한 느낌... 이기 전에 입금부터 해야겠구나...ㅎㅎ;;;;;

 

마지막으로 요즘 내가 버닝하고 있는 <시그널>의 OST 중 하나... 투척.

 

아 이 드라마. 슬프고 짠하고. 이 음악도 정말 잘 어울리고.

김윤아의 매력적인 보이스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에세이 잘 쓴다. 그러니까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유려한 문장과 가슴을 파고드는 애잔함이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가 흔히 에세이 잘 썼어 라고 할 때의 그 느낌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으니 이게 정답이다 하진 못하겠고, 암튼 하루키씨는 그냥 그런 올림픽 관련 이야기도 참 재미나게 쓴다. 계속 읽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이 노오란 책을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음도 고백한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무겁고 부피도 많이 나가고. 나의 작은 백팩에 쑤셔박다가 결국 표지를 부욱... 찢어버려서 스카치테이프의 힘을 빌려 밀봉시켜 두었다. 아 그 부욱.. 소리 기분 정말...

 

어쨌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 매일 가지고 다녔다. 심지어 미용실에도 들고 가서 읽었다. 미용실 잡지를 안 좋아해서 가끔씩 책을 들고 가긴 하는데, 남들은 다 잡지 읽는데 나혼자 책들고 있는 게 좀 쭈뼛스러워서 그냥 머리에 안 들어오는 잡지들을 졸다말도 보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이 노오란 책을 떡 올려놓고 오고가며 계속 읽었다.

 

왜? 재밌으니까. 뭐 다른 이유 있겠수?

 

근데 알고보면 이 책이라는 게 그렇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다. 그래서 뭘 먹었다. 어딜 달렸다.. 이런 게 거의 매일 반복된다. 그게 얼마다 도 있고 ... 맥주는 뭘 먹었다, 저녁엔 몇 시에 잤다, 원고는 몇 장 썼다.. 이것도 매일이다. 이런 일상적이며 일기도 아닌 것 같은데 일기 비스므레한 형식의 에세이가 뭐가 좋다고 말이다...

 

시드니 올림픽은 기억에 없다. 무슨 올림픽은 기억에 있니? 라고 물으면... 흠.... 황영조가 마라톤 우승했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도? (무슨 신석기 시대 얘길 하는 듯한 이 기분이란..ㅜ)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시드니 올림픽을 기억했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결과는 회심의 2루타. 순식간에 2점을 따간 뒤, 예의 노랑머리 4번타자, 김동주가 역시 깔끔한 안타를 쳐서(배트 회전이 빠르다) 승기를 굳혔다. 한국의 동메달이 정해졌다. (p282)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야구선수, 아니 이젠 과거형인가.. 암튼 김동주가 안타를 쳐서 우리나라가 야구에서 동메달을 따게 했던 바로 그 대회였던 거다. 웅... 그게 시드니였니? 기억이 안나. 그냥 그런 날이 있어서 내가 무지하게 좋아했던 것만 기억이 날 뿐.

 

하루키의 그 무심하면서도 시크한 표현력은 압권이다. 문장 곳곳에서 그런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피식피식 웃게 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하루키가 좋은 작가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루하고 별로 쓰잘데기 없는 것 같은 올림픽이라는 허영덩어리 소용돌이에서도 그만의 관점에서 뭔가를 엮어낸다는 것일 게다.

 

우리는 모두-거의 모두라는 뜻이지만-자신의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 약점을 지울 수도 없앨 수도 없다. 그 약점은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딘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슬쩍 감춰둘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아 그런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행동은 약점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약점을 자신의 내부로 잘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약점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디딤돌로 새로이 구성해 자신을 좀더 높은 곳으로 끌고 가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얻는다. 소설가에게도, 운동선수에게도, 어쩌면 여러분에게도 원리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나는 당연히 승리를 사랑한다. 승리를 평가한다. 승리는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깊이 있는 것을 사랑하고 평가한다. 사람은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진다. 그러나 그뒤에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p394)

 

그래. 아마 올림픽이라는 것. 승자가 독식하는 그 대회에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승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해도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 기력이 쇠하든, 실력이 안되든, 어쨌든 누군가는 자신만의 약점을 안고 지탱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재화하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것. 그것을 생각하게 된다.

 

Thank you, Murakami Haruki!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2-2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드니 올림픽 야구 경기가 잊히지 않아요. 일본 사람들도 동메달 결정전을 잊지 못했을 겁니다. 축구 한일전만큼이나 야구 한일전도 엄청 화끈하죠. ^^

비연 2016-02-28 18:41   좋아요 0 | URL
아 그랬던가요. 전 그냥 `김동주`가 결정타 친 야구로만 기억했던 듯 ㅎㅎㅎ

컨디션 2016-02-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재미나게 써주시는 비연 님..^^

비연 2016-02-28 18:41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ㅎㅎㅎ 하루키의 책은 더 재미납니다~ 일독을 권해드려요^^
 

 

... 그걸 잘 모르겠다.

 

근 한달동안 시달렸다. 프로젝트 PM을 수행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일정이 짧은데 일이 몰렸고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나의 집중력이 저하되었다. 야근과 철야를 밥먹듯 하고 휴일에 나와 일하는 게 몇 주씩 계속되다 보니 조금씩 날카로와져갔다.

 

그래서 프로젝트 결과물을 내놓았는데... 물론 엉성한 면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기일이 촉박하면 원래 그런 법이다. 잘난 사람도 실수를 한다. 오타를 친다.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믿음의 선은 지켜야 한다. 나는 믿고 고객과 맞대응을 하는데, 알고 보면 우리 실수다... 라는 게 거듭되니 서로 불신이 쌓이고 있다. 겉은 웃으나 내상이 크다... 화가 늘었고 눈초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러고 있다. 그렇게 된다.

 

덕분에 건강도 상하고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하고 관계도 상했다. 아주 괴로와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원래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말들이 나온다. 아 큰일이다. 아 미치겠다. 아 이러면 안되지... 사람들이 점점 뜨악해진다. 이해한다. 죽자고 밤새가며 한달 일했는데 안된다고 자꾸 괴롭히는 거라 생각할 거다. 탓을 하는 거라 생각할 거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어떻게든 고객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자꾸 '빵꾸'가 나면 할말이 없어진다. 내가 주지 않아야 할 것도 줘야 한다. 왜냐하면 헛점을 자꾸 보이니까.

 

위기인데. 이걸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버티자니 너무 힘들다. 얼굴은 푸석해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눈에는 힘이 없다. 어느날 거울 속에 바싹 삭은 한 여자가 날 쳐다보고 있음을 눈치챘을 때는... 만사 다 귀찮아서 달아나고 싶었다.

 

.

.

.

그 와중에, 필리버스터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난 너무 바쁘게 다니느라 테러방지법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조차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애꿎은 책상만 두드려 맞고(ㅜ) 국회에서는 텅빈 의원석을 대상으로 몇 시간 씩 연설을 하는 릴레이가 벌어지고 있다.

 

 

필리버스터 (Filibuster), 의사방해연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거나 표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장시간 발언으로 시간을 끄는 의회 운영 절차의 한 형태이다. 입법관행상 미국 연방상원에서 소수파(때로는 1인의 상원의원)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의회 전술이다. 다수파가 양보를 하거나 법률안을 철회할 정도로 오랫동안 연설함으로써 의회를 방해한다. 의사규칙으로 발언시간을 제한하고 있는 연방하원과는 달리 상원은 법률안의 토론에 시간 제약을 두고 있지 않다. 발언은 의안과 전혀 무관할 수도 있다.

 

이런 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했고, 이미 예전에 김대중대통령이 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식한 비연...) 그리고 묘하게 이걸 보면서 위기를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위기 정도가 위기 축에나 끼겠냐마는... 이들을 보면서 왠지 희망이 생긴다고나 할까.

 

첫째. 국회의원이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긴 시간동안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저 하품하고 싸우고 삿대질하고 이상한 얘기나 하는 의원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하.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그에 비해, 앞에서 김밥이나 시키자는 둥, 공천 되려고 발악을 한다는 둥 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의원들은 정말 졸렬하고 저질이라는 생각밖에는 안든다.

 

둘째. 이게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회기를 넘기면, 다음 회기에 바로 올리면 된다. 말하자면 하겠다고 하면 그냥 기다렸다 그 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고 있다. 의미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은 절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래서 수시간동안 버텨낸다. 지는 싸움이라고 해도, 한다.

 

세째. 강기정의원이나 은수미의원이나 서기호의원이나 김광진의원이나 등등등.. 모두 주옥같은 말들을 남기고 있다. 보면서 들으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감동이고... 당을 초월하여 정말 헬조선 운운하는 이 시대에 나라의 미래를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고 말하는 발언도 멋지고 대단하다. 그저 자기 당만을 생각하고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앞뒤 안 맞는 말과 행동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역시. 이런 생각을 한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방청권 얻어서 가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회사에 앉아 골머리썩여가며 힘들게 일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는 싸움이라도 하듯이, 나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0.000000000001%의 기여밖에 못하는 일을 할 지언정 자리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정치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인생과 대의에 충실함으로써 하나하나 조금씩조금씩 변화의 기운을 쌓아가는 데 일조는 할 수 있다. 아마 그들이 하는 일도 그런 일이 아닐까.

 

세상은 변하고 있다.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투덜거리고만 있으면 안되는 거다. 괜히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방금은... 강기정의원이 말미에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유투브로 보았다... 눈물이 난다. 그 가사 한줄한줄이 가슴에 사무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6-02-2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후퇴하는 줄 알았는데 앞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너무 좋아요 ㅜㅜ

비연 2016-02-28 10:12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매일이 감동입니다, 락방님 ㅠㅠ

알케 2016-02-2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엉크러질 땐 답이 없어요. 배째라! 하고 뻔뻔해지세요.
옆에서 빨던 것들이 귀신같이 배를 갈아타죠 ㅎ
갑이나 고객사는 영악하게 눈치를 채고.

금방 지나가요. 그 시기를 뻔뻔하게 버티셔야...

직장생활 23년차 아재의 조언입니다.

비연 2016-02-28 10:14   좋아요 0 | URL
알케님... `뻔뻔하게` `버티라` 는 말씀. 새깁니다. 정말 제일 필요한 말들인 것 같아요 ...

2016-02-27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8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8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8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