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책도 잘 안 읽혀지고, 페이퍼도 잘 안 써질 때. 컴퓨터 로그인은 수없이 하면서도 차마 페이퍼 쓰기로는 커서가 옮겨가지 않을 때. 내가 지금 그런 지경이다. 그러니까 이런 걸 일종의 슬럼프라고 하는가.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글을 올리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 하나 섭섭해하지 않을 순 있지만 이상하게 내가 계속 찝찝하다. 알라딘에 책 이야기 쓰는 버릇이 거의 생활처럼 되어 버린 탓인가보다. 뭔가 해야 할 일을 안하는 것 같고 그래서 해야 하는데 왜 난 안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되는, 그러면서도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이 '슬럼프'의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에 애석함마저 느꼈었다. 좀더 활발하게 글 쓸 때였으면 장마다 글을 썼을텐데, 책 한장 한장 빼곡이 밑줄을 그어대면서도 페이퍼를 하나 제대로 쓰지 않는 내게 화도 났다. 근데 어쩌겠는가. 인간의 무력함이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냥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어쨌든, 이 책에 미안했다, 내내.

 

정말 좋은 책이다. 한 구절 한 문단 줄 치지 않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다 마음에 와닿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글들이었다. 이론가가 사상책 여러 권 읽고 써내는 책이 아니라 실천가가 현장에서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고 행동하고 그 와중에 좌절하면서도 신념을 지켜나갔을 그 경험이 오롯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여성주의 책읽기를 하면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매매춘을 애기하면 누군가는 얘기한다. 원래 있던 건데 어쩌겠어. 없앨 수 없어, 이건 남성의 욕망과 관련한 거야. 이런 직업을 택하는 여성들이, 여기에 생계를 의지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럼 이거 없애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남자들은 어떻게 해. 없애지 못하면 유지하고 그들이 탄압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맞는 거 아니겠어.

 

너무 이상적이라고?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p374)

 

 

그래서 매매춘을 없애자, 여성에 대한 권력적 성 탄압을 없애자 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이상이야.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어. 이건 수천 년 전부터 이어왔던 일이야. 그래서 하지 말자고?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건 성경 말씀이다. 시작할 떄 될 거라고 생각하는 한도 내에서만 덤비면 이루어낼 수 있었던 일은 하나도 없다. 이 책에서도 얘기하지만, 노예제도가 그랬다. 지금 여건만으로 될 거라고 상상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현실이지만, 원칙을 세우고 시간을 들여 지속적으로 투쟁하면 어느 순간, 이루어진다. 그게 역사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과학의 발전도 그렇다. 토마스 쿡이 말했었다.

 

 

과학의 발전은 선형이 아니다. 정상과학이라 믿고 있는 절대 논리 아래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항상 올바른 길로 가지 않을 수 있고 이런저런 논쟁이 붙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밖으로 보이지 않거나 남들에게 무시될 뿐이다. 그게 말이 되냐?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그러나 그게 모이고 모여 어느 새 대단한 동력이 되어 갑자기(아니, 예측할 수 없었던 타이밍에) 과학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는 그 상태. 그게 혁명이다.

 

우리는 여성주의에서도 그런 혁명을 꿈꾸는 거다. 조금씩 발전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바도 있지만, 인식을 전환하고 대반전이 일어날 그 날을 위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 거다. 나는 사실, 그 힘을 믿는다.

 

 

 

 

 

기꺼이 정상적인 생활을 이끌고자 원하는 매춘부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국가로부터 일정한 돈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기업이라도(민간이거나 공공 기업이거나) 매춘부들에게 고용을 제안하는 기업들은 모든 구체적 사례마다 그에 맞는 기금을 할당받을 것이다. 생산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개혁 센터에는 신용 대부금을 줄 수 있다. (p375)

 

이미, 베트남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타격이 올 지라도 매매춘을 소멸시키겠다는 전략이 수행되고 있고 거기에 대한 정책적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닌 거다. 생각이 바뀌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매매춘이 없는 세상....

매매춘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1820년대에 노예제 없는 미국을 상상하는 일과 같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한창일 때, 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노예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예외자 중에서 소수는 단호하고 열렬한 노예 폐지주의자였고, 대다수는 노예제가 불가피하는 일상에 만연한 이데올로기의 인정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그들은 노예제가 역사 초기부터 있어 왔다는 주장에 포섭되거나 패배하기를 거부했다. 노예 폐지주의는 어떤 시기에는 전위적인 운동으로 여겨졌고, 또 다른 시기에는 사회의 다른 곳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괴상한 사람들과 노예제를 합리화하는 신성한 미국 헌법에 항의하는 기이한 사람들로 구성된 퇴행적인 운동으로 인식되었다. 단호한 폐지주의의 핵심 그룹은 그들의 주장이 대중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p391-392)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노예제 대신에 여성주의(페미니즘)을 넣으면 딱 지금 현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내 승리하던 '전지구적인 양식' 말이다.

 

 

매매춘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모든 여성에 대한 성 착취의 근절을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강간 위기 센터 활동과 학대받는 여성들에 대한 보호는 단지 내가 '에비앙 해결법'이라고 부르는, 즉 가뭄으로 고통받는 시골에 에비앙 물 한 상자를 보내는 일처럼 우리의 활동을 물 한 양동이에 물방울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p392)

 

그래서, 저자는, 매매춘에 국한되지 않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권력적 정치적 성 착취에 대한 체제를 없애야 한다고, 그래서 다른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여성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연대'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하기 쉽지 않지만, 한번 하면 절대적인 파워를 드러내는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다. 단지 매춘 여성에게,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세상에 성적으로 핍박받는 수많은 여성들의 상황 중 일부만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라, 철학적으로 더 심층적인, 저변에 깔린 상황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어리든 나이가 들든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패트리샤 허스트의 예를 보라) 여성이라는 성별로 인해 겪어야 하는 착취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인식하고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것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제까지 다양한 여성주의 책들을 읽었지만, 이 책은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완벽히 쉽지 않고 현실을 알려주면서도 이론적 배경을 생각하게 하고 또, 생각할 거리를 사정없이 던져주는, 좋은 책이다.

 

자, 이제 다음 책은 이거다. 만만치 않아 보인다... (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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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24 0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베트남의 사례 읽으면서 하려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도도 해보지 않고 그건 없앨 수 없어, 원래부터 있던거야, 라는 핑계로 사실은 개선할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좋은 독서는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하는 독서고 그래서 좀 더 알고 싶게 하는 독서라고 생각해요. 이번 책은 너무나 그런 책이었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모두가 좋다고 얘기하고 이렇게 글을 써주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9월도서도 정말 만만찮아 보이지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 열심히 읽고 씁시다. 이렇게 여성주의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주 노출되는 건 작게나마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화이팅이에요, 비연님!

비연 2020-08-24 10:06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추천한 분의 통찰력에 감사하며(^^) 9월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저 책을, 자알 읽어내기로~
저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길을 내듯이, 작게 작게라도 자꾸 반복해서 얘기하고 그 얘기를 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변화는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 함께 화이팅해요!

단발머리 2020-08-25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쓰기 전에 비연님 글 한 번 더 읽기.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네요.
다락방님이 제가 페이퍼를 쓰면 그렇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늘 비연님 글 읽으면서 딱 그 맘이 느껴져요.
비연님, 고마워요. 하트뿅뿅! 😍

비연 2020-08-26 11:45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감사요^^ 하트뿅뿅~
이 책을 읽으면서, 다같이 읽는 기쁨을, 그리고 공감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어서 다시한번 행복했어요. 누구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자기들끼리만 좋아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살면서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자체가 행운이 아닌가 싶구요. 앞으로도 홧팅해요 우리!

공쟝쟝 2020-08-26 0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슬럼프라고 하기엔 넘넘 멋진 글! 저도 어려운데 홀릭되어 읽었답니다. 이걸로 양이 안차신다니... 다음 책에서는 슬럼프 없이 날아다니는 비연님의 페이퍼를 볼 수 있기를~ 플라이~~~>.<

비연 2020-08-26 11:47   좋아요 2 | URL
이제 슬럼프를 조금씩 벗어나나 싶은데.. 이게 같이 읽어야 하는 책이 있으니 어쨌든 계속 책을 잡아야 한다는 의무감 덕분인 듯 해요. 읽다보면 슬럼프를 벗어나게 되는? ㅎㅎ 다음 책은..흑흑. 슬럼프 아니라도 뭔가 많이 힘들 것 같지만, 우리 다 같이 플라이 플라이 해요~!^^
 

6월에 생각날 때마다 책을 샀기에, 7월은 좀 자중했었다. 쌓이기만 하고 읽지도 못하니, 좀 읽고 사자... 했건만, 흠. 그게 잘 지켜졌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8월 들어서는 책을 사기로 했다. 인생 그리 길지도 않은데 읽고 싶은 책 좀 사서 쌓아두면 어떠리.. 라는 막무가내적, 막가파적 생각이라고나 할까.

 

여름이라, 쟝르소설을 여러 권 구매했다. 캬캬. 더운 여름에는 그저 스릴러가 최고지. 근데 더운가? .... 심지어 춥다. 서늘하다. 비가 연일 내린다. 2달 가까이 내린다. 앞으로도 더 내린다고 한다. 맑은 하늘을 보면 가슴이 뛰고, 날이 더워서 땀이 나면 괜히 좋다. 이게 뭔 일인지. 기후위기가 이렇게 기상청도 예측을 못하는 장마를 낳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좀 찾아봐야겠다. 어쨌든, 오늘은 책 산 얘기를.

 

 

 

 

 

 

 

 

 

 

 

 

 

 

 

 

 

<너는 여기에 없었다> 이 책은 계속 읽고 싶기는 했다. 심지어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로도 나왔다고 했고. 근데 표지가.. 난 개인적으로 이런 표지를 선호하지 않는다. 일단 읽겠다고 저녁에 들 때 무섭고 자다가 눈을 게슴츠레 뜰 때 보면 무섭고.. 책 내용이 그런 내용이라도 좀 상징적으로(?) 표지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있다.. (아멘)  뭐 아뭏든 요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읽고 있어서 이 책 내용이 더 끌렸던 건 사실이다.

 

맨해튼의 성매매업소 ‘놀이터’에 갇힌 뉴욕 상원의원의 딸 리사. 고작 열세 살에 불과한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해결사 조가 고용된다. 그러나 위험한 음모와 우연히 마주친 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과 싸우는 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는다

- 출판사 제공 책 소개 中 (알라딘)

 

소설에서 이들을, 이 더러운 남자들을 처단해줬으면 하는, 현실세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쾌감을 내게 선사해줬으면 하지만, 우선 읽어봐야 알겠지.

 

 

<눈의 살인> 우선 1권만 구입한다. 아마도 2권을 또 구입하겠지만 그래도 양심상 1권만. 프랑스 사람의 추리소설은 다른 나라와는 좀 차별적인 부분이 있다. 사건보다는 주변 배경을, 물질적 실체보다는 내면적 흐름에 초점을 더 맞춘다고나 할까. 그래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데.. 평을 보니 아주 음산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소설이라는군. 땡큐.

 

 

<왼손잡이 숙녀> 에놀라 홈즈 시리즈 2편이다. 1편을 읽고 나서 이어서 읽을까 말까 좀 망설여지긴 했으나, 시작했으니 3편까지는 읽어보자 라는 마음에 구매. 아주 실망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던 책이라 그냥 심심할 때 가볍게 읽기에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게다가 2편부터는 에놀라 홈즈가 직접 탐정 사무소를 열어서 사건을 해결한다고 하니, 그 지점까지는 읽어줘야겠지. 라는 마음이다.

 

 

 

 

 

 

 

 

 

 

 

 

 

 

 

 

 

 

<나의 사촌 레이첼> 이 책은 순전히 단발머리님의 추천(?)에 의해 구매한 책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은 <레베카> 정도 아주 예전에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어쩌면 영화를 책으로 착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듀 모리에의 나이 44세, 작가적 기량이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 발표한 이 소설은 머나먼 타국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한 남자와 그의 아름다운 미망인 레이첼, 그리고 레이첼을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증오하면서도 서서히 그녀에게 빠져드는 젊은 상속자 필립의 이야기를 그렸다. - 알라딘 책소개 中

 

'서스펜스의 여제'라고까지 불린다는데 히치콕의 영화 원작으로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영국의 기사작위에 해당하는 데임 작위도 받은 사람인데 말이다. 우선 이 책부터 시작해보리라.

 

 

<배를 엮다> 권남희의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볼까>에서 본인이 번역한 책 중에 칭찬을 많이 한 책이라 관심이 좀 갔다. 예전에도 흥미가 돋았던 기억도 있었고, 뭔가 사전 편집 이야기라고 하면 꽤나 지루할 것 같은데 일본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서점 대상 1위 수상도 했다고 하니, 한번 볼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거지. 생각해보니, 미우라 시온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이 처음이려나.

 

 

<아무튼, 술> 아무튼 시리즈의 20번째 책. 한번도 찾아 읽어본 적 없는 김혼비 라는 작가의 에세이이다. '세상 모든 술꾼들을 위한 책'이라는 광고 문구에도 혹했고, 미국 사는 선배 언니가 재미있다고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공쟝쟝님 글에서도 재미있다고 하길래, 흠? 사서 읽어봐? 이러면서 산 거다.

 

소주, 맥주, 막걸리부터 와인, 위스키, 칡주까지 주종별 접근은 물론 혼술, 집술, 강술, 걷술 등 방법론적 탐색까지… 마치 그라운드를 누비듯 술을 둘러싼 다양한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작가를 좇다 보면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주종과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은 애주가나 여태 술 마시는 재미도 모르고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비애주가 할 것 없이 모두가 술상 앞에 앉고 마는, 술이술이 마술에 빠지게 된다.  - 알라딘 책소개 中

 

 

 

 

 

 

 

 

 

 

 

 

 

 

 

 

 

 

<젠더> 이반 일리치 전집 중 하나이다. 묘하게 이반 일리치의 책은 잘 안 읽혀지는 책 중의 하나인데 (여러권 있다ㅜ) 사월의책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이 사람의 책을 계속 시리즈로 내고 있어서 제목을 보고 자꾸 사게 된다. 

 

일리치는 주장한다. 원래 남자와 여자는 불평등한 게 아니라 비대칭적일 뿐이며, ‘젠더’라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 존재들이었다고. 일리치의 이 책은 현대의 성차별적 현실을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 조명한 역사서이자, ‘경제적 인간’의 탄생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이기도 하다. - 알라딘 책소개 中

 

일리치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회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글을 엮어나갔을 지 궁금해진다. 이번엔 잘 읽어봐야지. 읽다 만 일리치 선생의 책들을 흘깃 바라보며... (한숨...)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이 책을 제목만으로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책인데, 우에노 지즈코의 책은 처음이다. 세계적 권위의 사회학자라고는 해도, 일본 사람들의 책은 추리소설 외에는 잘 안 읽는 나로서는 그냥 그런 얘기겠지 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지나쳐왔던 것 같다. 근데,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되었다. 읽고 판단하자. 무엇보다 일본이라는 나라, 여성의 지위가 한없이 낮은 저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는 지 어떤 생각을 하고들 있는 지 한번 보자.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세계적 권위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이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는 여성 혐오적인 일면을 통렬히 비판한다. 저자는 일상의 여러 단면 속에 숨겨진 여성 혐오적인 부분을 꼬집고, 예술 작품 속에서의 여성 혐오적 설정을 들추어낸다. 독자들에게 결코 유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불쾌한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리 불쾌하다 하더라도 눈을 돌리면 안 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앎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알라딘 책소개 中

 

 

이것이 끝인가... 아니다. 알라딘에서 산건 아니지만, 또 오고 있는 책들이 있다... 

 

 

 

 

 

 

 

 

 

 

 

 

 

 

 

 

 

서재에 책장이 모자란다. 이사올 때 결심한 게 책 그만 사고 쌓아두지 말고... 내가 지금 산 책장을 넘어가는 책들은 전부 팔거나 기증하자. 그랬었는데 약속은 물건너 가고... 책장을 더 사서 꽂아야 하나 라는 심각한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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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8-11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 책은 이렇게 쌓여져 가고 또 책은 장바구니로... 퐁당퐁당.... 우에노 지즈코 읽고 싶어요. 난민은 읽고싶지만 넘 어려울 거 같아서 패스_ 저 중에 제일 읽고싶은 책은 술 ㅋㅋㅋㅋㅋ 그리고 배를 엮다는 영화도 보았고 책으로도 보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완전 빠져들면서 읽었어요. 근데 이 페이퍼에서 와인향이 납니다. 대체 이건 무엇?;;;;;

비연 2020-08-12 09:28   좋아요 1 | URL
와인향.. 와인향... ㅎㅎㅎㅎㅎ
<배를 엮다>는 수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바로 읽고 싶어지네요.
책을 장바구니로 퐁당퐁당 하는 것은, 정말이지 중단이 안되는 일인 듯 ㅎㅎ
<아무튼, 술>을 읽고 사케를 먹을 생각입니다만.. (이건 뭔 맥락? ^^;;)

단발머리 2020-08-11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눈에 띄는 문장은요.
7월은 좀 자중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입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읽어야지~~ 하는 책인데 비연님 방에서 만나네요^^

다락방 2020-08-11 21:52   좋아요 1 | URL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이미 읽은 1인 (으쓱)

단발머리 2020-08-11 21:54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다락방님은 이거 읽으셨죠? 전 우에노책을 딱 한 권 읽은것 같은데 그 책은 무엇이었나... 기억이...
으쓱으쓱에는 짜잔! 🤗

다락방 2020-08-12 08:36   좋아요 1 | URL
오늘 보니까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리뷰 땡투 들어왔던데, 비연님 이십니까?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8-12 08:42   좋아요 1 | URL
아니면 안 되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말고 누구에게 페미니즘 땡투를 한단 말입니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8-12 09:29   좋아요 0 | URL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땡투는 당연히.. 다락방님 ㅎㅎ
정말, 그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읽어야 겠다 결심했지 말입니다...^^

이번 8월도 책을 가득가득 살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에 시달리고 있는 비연..ㅜ

로제트50 2020-08-11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프랑스 추리소설이...
<유의미한 살인>도 사실 내용은 그냥 그런데 풍경 묘사가 넘 좋았거든요 *^^*
비연님 믿고 2권 모두 구입합니다~
감사!!!

비연 2020-08-12 09:30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아직 안 읽어서 믿고 구입하신다니 부담이 막 되지만..
재미있으리라 믿으며 ㅎㅎㅎ 같이 재미나게 읽어보야요, 로제트 50님^^

라로 2020-08-12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게 책을 많이 주문하셨는데,,,언제 <우아한 연인> 읽으실지?? 음, 가을이 분위기상 읽기 좋은 것 같긴 해요,,,재즈 들으면서?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여기서 <아무튼, 술> 이랑 <눈의 살인> 일단 보관함으로.

비연 2020-08-12 14:55   좋아요 0 | URL
이것도 많이 자중하면서 샀는데.. 정말 언제 다 읽으려나요 (후 =3=3)
그러나, 책은 사라고 있는 것 ㅎㅎㅎㅎ
<우아한 연인>은 올해 내로 꼭 읽으려고 해요. 흠.. 가을 좋네요. 가을로 결정.

페크pek0501 2020-08-12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당~~

비연 2020-08-14 01:13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

2020-08-23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3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0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8-24 05:25   좋아요 0 | URL
^_____^

블랙겟타 2020-08-24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를 엮다> 저 얼마전에 영화로 봤는데요. 소설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ㅋㅋㅋ

비연 2020-08-24 14:09   좋아요 1 | URL
아. 이거 영화 괜찮아요? 원래 소설이 유명해서 영화인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ㅎㅎㅎ

블랙겟타 2020-08-28 21:26   좋아요 1 | URL
일본 특유의 소소한 느낌이 나는 영환데 저는 재밋게봤어요 ㅋㅋ 그런영화 좋아해서요

비연 2020-08-28 23:1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류의 일본 영화 좋아해요~^^ 책도 봤으니 영화도 봐야겠네요 ㅎㅎ
 

 

 

 

 

 

 

 

 

 

 

 

 

 

 

 

1.

 

대학에 들어갔더니 남자 동기들이 청량리 588을 얘기했었다. 나는 처음에 뭔지 몰랐고 왜 그렇게 그 얘길 하면서 낮게 키득거리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왜 그러는 지를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게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왜 그걸 가지고 키득거리고 농짓거리를 하는 거지? ... 20대 때 첫 직장에 들어갔다. 몇 번 썼었는데.. 첫 직장의 남자들은 정말 저질인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그게 그 시대 직장을 다녔던 중년 남자들의 민낯인 지도 모르겠다. 난 그들과 함께 있는 게 너무 싫었고 술자리에서 하는 성희롱의 언사들을 듣고 있으면 구역질이 났다. 책에서 접했던 상황들이, 그 당시 나는 남들보다 책을 훨씬 많이 읽어서 세상을 '좀더' 안다고 착각하던 때였는데도, 그들이 하는 말들이 내가 읽은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라는 것, 뭔가 구체적이고 살갗에 벌레가 앉아서 스물스물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아주 선명하게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읽는 것과 당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어쩄든, 어느날인가 남자 부장 한 명과 남자 대리 한 명과 내가 자동차를 몰아 출장을 가게 되었다. 운전면허증은 있었지만 차를 몰지 못했던 나는 대리가 모는 차 뒷칸에 앉아 앞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애써 무시하며 앉아 있었다. 경기도 북부쪽으로 가는 거였고 그 날따라 차가 막혔다. 그랬더니 대리가 "어쩔 수 없네." 하고는 운전대를 꺾어 원래 가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나야,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아니니 그냥 따라갈 밖에 없었고 그냥 멍하니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름길이라고 택한 곳이 청량리였다. 청량리역 뒷편 좁은 길가. 그 길은 너무 좁아서 더 막혔고 나는 속으로 어째서 이런 길을 택한 거야 하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바깥에는 허름한 낮은 집들이 보였고.. 여자들이 보였다. 대낮이었는데, 그 앞에 주차한 자가용들이 여러 대여서 여기저기 길을 막고 있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부장이 얼굴이 벌개져서는 말했다. "oo 대리,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막 흥분시키는 거야?".. 그러면서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키득. 키득.

 

밖에는 드문 드문 여자들이 서있었다. 대부분 다 늘어진 옷을 입고 혹은 딱 붙은 짧은 치마를 입고, 그냥 서 있었다. 지나가는 차를 보며, 퀭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문득 남자가 하나 지나가자, 한 여자가 그 남자를 잡았다. 남자가 뿌리치고 가자, 여자는 다시 서 있던 곳에 돌아와 담배를 물었다. 대낮인데.. 나는 마치 그런 일은 대낮에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인 양, 대낮에만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 양, 생각하며 그 길을 지나쳤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들을 쳐다보며, 그 눈을 보며, 그 분위기를 느끼며 있던 시간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선명히 기억된다. 아마도 내가 처음 그 곳에 가 보아서였을 것이고, 그 시기의 앞과 뒤에 남자들이 했던 말들, 행동들이 중첩되어 이해라는 형태로, 그리고 그 뒤에 날아드는 분노라는 형태로 함께 기억되어서인게 아닌가 싶다.

 

"여성은 인간인가?" (p41)

 

 

2.

 

중학교 때 너무나 좋아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 애들이 드문데, 그 아이는 수없는 책들을 읽으면서도 전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아이였다. 나랑 절대 맞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아이가 좋았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믿었다. 고등학교를 지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까지도 만나고 놀고 했었는데 여전히 나는 (아마도) 그 아이를 맹목적으로 좋아헀던 것 같다.

 

어느날인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때, 이화여대에는 여성학 석사과정이 있었고 (지금도 있나?)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왔는데 그 아이가 그랬다. "페미니즘은 아니야. 그건 휴머니즘이어야 한다고 봐. 그냥 페미니즘은 말도 안돼." 스쳐가듯 한 이야기가 내게 꽂힌 건, 그 이후에도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어야 한다고 한참 생각했던 건,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믿었기 때문이고.. .어쩌면 내가 여성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하지 않고 그냥 그 단어 그대로, 그 단어가 멋져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참을, 그렇게 생각했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사람이어야, 인간이어야, 인간취급을 받아야 휴머니즘을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이어야 할 수 있지?... 의문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헤어짐을 낳는 것인지. 이제는 그 아이와 만나지 않게된 지 한참 되었다. 아주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들은 것까지가 전부다. 잘 살면 된 게지. 다만, 이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참 시간이 지나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가 왔었는데 난 무덤덤히 반응하고 끊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여성에게 성적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반면, 남성은 행위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성애화된 사회는 불평등을 성별화한다... (중략) ... 사회 정치적으로 구성되지 않고 생물학적으로만 주어지는 섹스는 없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조건은 생물학적 조건보다 우선한다. 성적인 욕망은 욕구와 필요성의 상호 작용 속에서 구축된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섹스는 문화의 사회적 구성물이며 성별 위계 질서의 정치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인 남성 권력의 조건이다. (p41)

 

 

3.

 

이 책을 처음 접할 때의 두려움은 이제 없다. 이 얘기를 이제 읽어야 할 때가 온 거다. 애써 외면했던 이유는 무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여러가지 치욕스럽고 당황스럽고 절망스러웠던 여러 상황들이 이제 와 겹치는 게 싫었고, 그런 내가 매매춘을 하는 여성과는 (그나마) 다른 층위에 있다고 열심히 생각해온 나 자신의 부조리를 들춰내는 게 두려웠고, 무엇보다 이런 내용을 더 알게 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성을 이야기할 때, 모니크 위티그가 말했던, 하나만의 젠더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할 때, 섹스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음을, 이제쯤 되니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이 책을 지금 읽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어쩌면 초기에 읽었다면, 내가 여성주의 책을 읽기 시작한 초기에 읽었다면, 난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무서워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리고 너무나 비참해서. 그러나. 이제 읽을 수 있고, 정말 한줄 한줄 빼곡히 밑줄을 쳐가며 열심히 읽게 된다.

 

 

인간이 육체로 환원되고, 동의가 있건 없건 타인의 성적 서비스를 위한 도구로 화할 때, 거기에는 이미 인간에 대한 폭력이 자행된 것이다. (p43)

 

강간은 남성이 강취하는 것이다. 매춘에서 남성이 산 섹스는 그들이 강간으로 강취한 섹스와 같은 것이다. 이 섹스는 탈신체화(disembodiment)된 것이며, 남성을 위해,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몸 위에서 일어난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섹스를 할 것인지, 혹은 강제로 아니면 동의를 받고 할 것인지는 남성이 결정한다. (p59)

 

 

살인,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 강간, 그리고 매매춘 자체는 비인간화된 섹슈얼리티의 결과이고 억압의 조건이다. 인간의 의지에 대한 자유주의 법 구조가 언제 어디에서 폭력이 발생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할 때, 가부장적 억압을 통한 섹슈얼리티의 비인간화는 개인에게 발생한 폭력으로부터 분리된다. 원인과 결과가 분리된다. 지배는 계속된다. (p73)

 

 

좋은 책이다. 아무리 읽어도 주옥같다. 계속 읽어보자. 지금 80페이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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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10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좋은 책을 읽으셔서 그런걸까요, 비연님의 이 글도 너무 좋습니다. 항상 느끼는건데 비연님은 참 정리를 잘하세요. 제가 갖지 못한 면이라 매우 부럽습니다. 체계적인 글쓰기를 하시는 분..

2. 쪽수를 적어주셔 감사합니다. 21쪽인 제가 부끄럽다고 합니다.

3. 좋은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제가 골라서 더 행복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쓱)

비연 2020-08-10 12:1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와락~ 이 책을 골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쓱으쓱 여러번 해도 됩니다~^^
저는 다락방님의 솔직하면서도 명쾌한 글이 좋은데... 서로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겠죠, 우리?
덥고 습하고 비가 왕창 왕창 계속 쏟아지는 여름이지만, 이 책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합니다~

수이 2020-08-10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이 밑줄 올리신 거 저도 지금 책 들춰보니 저도 모두 밑줄 쳤네요 ^^ 이번 책은 많은 것들을 들춰보게 만들 거 같아요, 걔들이랑 나랑은 달라, 이런 관점으로 냉소적으로 바라볼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순간 삐끗 하면 저들과 같은 집단이 될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이 한동안 강하게 들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 길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하게 만든 이들에게도 함께 읽어보지 않으련 하고 말하고 싶어지구요. 친구 중에 고급 콜걸 일을 알바로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결국 그 길로 한번 들어선 후에 빠져나오지 못하더라구요. 재력가의 정부가 되어서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그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자괴감을 어떻게 해서든지 부수려고 엄청 노력하던데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책을 골라주신 락방님 으쓱으쓱 백만번 하셔도 될듯요.

비연 2020-08-10 13:48   좋아요 0 | URL
앗. 밑줄 친 게 같다니.. 우힝.. 넘 좋네요^^ 저도 이 책에서 저 자신과 제 주변에서 머리 안과 밖으로 벌어지는 부조리함이라든가 괴리라든가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건드려지기 싫은 부분들을 뚫어져라 쳐다 봐야 하는 느낌. 다시한번, 좋은 책임을 느껴요. 우리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하다니. 이 책이!

청아 2020-08-10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예요! 저도 읽어볼래요 이책.

비연 2020-08-10 14:27   좋아요 1 | URL
책은 더 좋답니다~ 추천에요^^ 함께 읽어 보아요~

공쟝쟝 2020-08-18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책읽기는 생각이 참 많아져서 진도가 참 안나가지는 것 같아요, 별하나에 사랑과 도 아니고 글 한 줄에 기억과, 또 한 줄에 상처와, 옛사랑과 엮이는. 좋은 리뷰 또 읽고 싶습니다!

비연 2020-08-23 23:33   좋아요 0 | URL
아. 이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정말이지 페미니즘 책읽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고 생각이 많아지고... 밑줄 긋느라 정신없구요... 이렇게 같이 읽어나가니 공유할 얘기도 많고.. 정말 좋습니다^^
 

 

우연히 영드 중에 <인데버(Endeavour)>라는 형사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드는 좋기는 한데 시리즈 하나당 편수가 적은 대신 한 편이 거의 영화 한 편 (1시간 반 정도)이라 보기 시작하면 매우 부담스러워지곤 해서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장마도 길어지고 경찰 드라마 좋아하는데 그냥 건너뛰기도 찝찝해서 보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영국 소설가 중 콜린 덱스터라는 사람의 모스 경감 시리즈가 있다. 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이라 번역본 나온 건 다 사두었고 번역 안되고 있는 책들은 영어원본으로 사모으고 있는 시리즈이다. 그 모스 경감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서 만든 게 이 <인데버>라는 거다. 하긴 이것만으로도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이유가 되기는 한다.

 

 

 

 

 

 

 

 

 

 

 

 

내가 알기로 모스 경감 시리즈는 33편인가 된다. 해문출판사에서 2005년까지인가 야심차게 내다가 끊어졌는데... 이러면 안되지. 제발 더 내주세요.. 라고 애원하는 심정이 되네. 모스 경감은 옥스포드 대학 중퇴의 경찰로, 까칠하고 맥주를 좋아하고 여성편력이 있고 주로 추리를 귀납법으로 하는 사람이다. 셜록의 왓슨과 같은 캐릭터로 후배 형사 루이스가 나오는데 이 콤비가 아주 재미있다. 모스 경감은 기본적으로 매우 지적인 사람이라, 그런 얘기들을 풀어나가는 것에 상당히 혹하게 하는 구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독특한 성격의 사람이다. 이게 이 시리즈의 묘미다, 이거지. <모스 경감> 시리즈도 영드로 만들어졌으니 이 <인데버> 시리즈는 <모스 경감>의 프리퀄로 이해하면 된다. 콜린 덱스터의 마지막 소설에서 모스 경감은 죽게 되는데 (그러니까 소설가가 알아서 정리해준 거다) 그 이후 후배 형사 루이스의 활약상을 그린 영드도 계속 시리즈로 이어져 나왔다. 영국 드라마가 가끔 놀라운 건, 이런 원작들을 해석해내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아주 그럴 듯하다.

 

 

 

 

모스 경감의 원래 이름이 인데버 모스란다. 젊은 시절의 모스로 나오는 숀 에반스. 진심 영국사람처럼 생겼다. 아주 잘 생기진 않았지만, 모스 경감이 젊었더라면 정말 저렇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인데버> 시리즈는 8시즌이 진행되고 있고 그러니까 나는 3시즌 보고 있는 중인데, 모스 경감이 어떻게 경찰이 되었는 지 처음엔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경찰에 어떻게 적응하게 되는지 뭐 이런 저런 얘기들을 잘 풀어나가고 있어서 매우 재미나게 보고 있다. 이 배우도, 첨엔 그냥 그랬는데 볼수록 매력적이다. 고민할 때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라든가 좋아하는 것을 만날 때 (예를 들어 오페라나 이런 거) 슬쩍 짓는 미소라든가.

 

 

 

 

이 사람은, 모스 경감을 옥스포드로 부른 서스데이 경위이다. 남들은 귀찮아하고 괴짜로 취급하는 모스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보고 아끼고 보호하는 인물. 역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해, 라는 진리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캐릭터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아픈 기억이 있긴 하지만 좋은 아내와 아들 딸 낳고 성실히 살고 있고 매일 아내가 싸주는 샌드위치를 우걱거리며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파이프 담배... 우리 외할아버지도 이 파이프 담배를 피셨었는데.. 잠시 추억에 젖게 된다.

 

경찰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이다. 매 회가 영화와 같이 잘 구성되어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물론 지금처럼 과학수사가 발달하지 않은 때의 이야기라 (1960-1970년대) 좀 템포가 느린 감이 있지만, 사실 예전 형사물이 좋은 건 그래서 더욱 심리라든가 아주 사소한 물건에서 증거를 찾는다든가 하는 내용 구성이 가능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현장에 막 신발 신고 들어간다던가, 물건을 장갑도 안 낀 채 막 만진다든가 하는 걸 보면서 격세지감도 느끼고.

 

그나저나, 콜린 덱스터의 다른 작품들도 제발 번역해서 내주면 안될까요, 해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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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8-06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모스이고, 인데버입니다.
서재에 한번 정리해서 글을 올릴까 생각만 몇년째 하고 있는데 비연님 이 페이퍼로 말끔하게 정리가 다 되네요. 한줄 한줄 모두 공감합니다.

비연 2020-08-06 18:56   좋아요 0 | URL
앗. hnine님도 이 시리즈 좋아하시는군요! 완전 반갑습니다. ^___________^
요즘 이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거든요. 지금 왓챠에서 시즌 4까지만 들어와 있는데 제발 시즌8까지 들여주기를 또한 기도하고 있나이다..아멘...
 

 

 

 

 

 

 

 

 

 

 

 

 

 

 

기차를 타면 뭘 읽을까. 머리를 써야 하는 책은 잠깐만 읽고 좀 나긋나긋 부들부들한 책으로 쉽게 가야지 하는 마음에 책장을 보다가 이 책을 골랐다. 사실, 집에서 읽는다면 이 책을 (사긴 샀지만) 읽겠다고 고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목이 끌렸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이런 류의 책은 그냥 두세 시간이면 뚝딱 할 수 있는 책이지만, 간혹 아주 짧은 글들 속에서 괜한 공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일상적인 생각을 일상적으로 쓰는 에세이. 번역가로서의 생활과 딸과 함께 하는 생활이 교차되는 삶.

 

 

오, 시상이 떠오르듯 랩이 절로 나오네. 인맥이나 팔로맥(follow脈)이나 모두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맥의 수나 팔로어 수가 그 사람의 완성도는 아니니, 이 숫자의 많고 적음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제일 구려 보이는 사람은 인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맥이 넓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이다. (p64~65)

 

뜨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오조오억 명이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싫어하는 오조오억 명에 들어가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 (p85)

 

끄덕..

 

 

서로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은 잠시 소환했다가 제자리에 돌려 놓는 게 좋다. 긴 공백은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한다. 안부는 바람을 통해 듣도록 하자. (p125)

 

 

맞아..

 

 

나무늘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종일 집 안에만 있는 내가 느리고 게을러터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긴 세월 나름대로 쉬지 않고 번역만 하며 성실하게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기 가치관과 다르게 산다 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래서 나는 나무늘보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싶다. 나무늘보는 지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라고. (p117~118)

 

 

누가 누굴 평가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 뿐. 남까지 평가하는 건 우습기도 하지만 심한 오지랖이다. 

 

이 책에 나온 책 중 <배를 엮다>라는 책이 궁금해져서 보관함에 넣는다. 예전에 보고싶다고 한번 체크했다가 연말에 지웠던 기억이 나는 책인데, 역자가 쓴 글을 보니 한번 꼭 봐야겠구나 싶어진다. 이렇게 책은 책을 연결하고...

 

 

 

 

 

 

 

 

 

 

 

 

 

 

 

 

 

이제 이 책을 덮고 8월의 함께 읽기 책으로 돌아간다. 삼인 출판사의 책 표지는 언제나 봐도 정감 있고 마음에 든다. 그리고 400페이지 남짓의 분량과 촘촘한 글 간격에 잠시 놀랬던 마음은 지나가고 서론부터가 마음에 쏙 들어 자꾸만 읽게 되는 책이다.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묘하게 그게 드러난다. 그냥 대충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고 바람에 휘익 날아간 것 처럼 다음엔 생각도 나지 않을 말들을 흩뿌리며 다니는 것과는 다르다. 이 책,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의 저자는, 수많은 세월 동안 관련 주제에 대해 열심으로 고민했고 그렇게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갔고 주변도 변화시켜 나갔다는 게, 이 책 말머리에서부터 느껴진다. 그 전해지는 느낌에 신기하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게도 된다.

 

 

 

 

 

 

 

 

 

 

 

 

 

 

 

 

나는 계급 억압의 모든 차원들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억압적 상태에 대항하여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매매춘에 관한 나의 작업은 가장 가혹할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제도화되어 있고 그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형태로 존재하는 성적 권력을 연구하고 폭로하는 것이었다. (p27)

 

그러나 투쟁 속에서 이러한 핵심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필히,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급진적인 정치적 페미니즘의 근본 명제에 따라, '창녀'인 그들과 '여성'인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이 전적으로 기만적이라는 사실, 가부장제의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섹스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포르노그라피 안의 섹슈얼리티와 '우리의 의지에 반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우리는 명백하게 말해야 한다. (p28)

 

 

여성의 입장에서, 포르토그라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결코 '여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말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관련 책이나 이야기들, 이론들, 그리고 사회적 현상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꾸만 피하려고 하는데, 결국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접하게 될 때 이 부분에 다다르지 않을 수 없음을 차츰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자각 흐름 속에 아주 적당한 타이밍에 들어온 책이다. 아마 좋은 독서의 시간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고... 나 스스로의 생각도 좀더 깊어지리라 기대하게 된다. 

 

8월이다. 덥다고 한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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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5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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