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리도 솔직하고 세심하고 유려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지. 마여 앤젤루의 장단에 맞춰 재미있게 슬프게 조마조마하게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어를 그렇게까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지라 바라보며 얘기하긴 글렀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왜, 많은 흑인들이 그녀를 존경하는지 칭송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단 한 권의 작품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 책은 마여 앤젤루의 자서전이지만, 한 흑인의, 한 흑인여성의, 한 성폭행 피해자의, 한 버림받은 자식의, 한 미혼모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책에 너무나 조화롭게 어우러져 묘사되어 있다.
지금도 난리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은, 그 시절에는 더 심했었다. 북부보다 남부가 심했고 그게 너무나 일상에 파고들어 있어서 세상에 백인이라는 부류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읽고 있노라면, 어떻게 사람을 이리 분류하여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는 지 그 속에서 흑인들이 느꼈을 수치심과 분노와 자괴감은 어떠했을 지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우리 마을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좋아하지는 않았고 몇몇은 아주 싫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었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 즉 외계인처럼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고 있는 그 낯설고 창백한 피조물들은 사람들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백인들일 뿐이었다. (p38)
판사는 '미세스 핸더슨'을 소환하라고 명령했고, 마마가 도착해 자신이 '미세스 핸더슨'이라고 말하자 판사와 법정 관리, 백인 방청객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판사는 흑인 여자를 '미세스'라고 부르는 실언을 내뱉고 말았다. 파인 블러프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서 가게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흑인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그 사건을 가지고 오랫동안 킬킬거렸고, 흑인들은 이 사건으로 우리 할머니의 가치와 위엄이 입증됐다고 생각했다. (p65)
의사는 문손잡이를 놓고 마마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비좁은 층계참에 우리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애니, 내 원칙은 말이오. 검둥이 입에 내 손을 집어넣느니 차라리 개 주둥이에 집어넣겠다는 거요." (p249)
샌프란시스코의 백인 부인 한 사람이 전차에서 흑인 시민이 옆으로 비키면서까지 앉을 공간을 만들어줬는데도 그 옆자리에 앉기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부인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은 징병 기피자에다 흑인인 그 사람 옆에는 앉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오 섬에서 싸우고 있는 자기 아들처럼 그 흑인도 최소한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부인은 덧붙였다. 소문에 따르면 흑인 남자는 창문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더니 팔이 잘려나가 텅 빈 한쪽 소매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용히 위엄 있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시면 부인, 아드님께 그곳에다 두고 온 제 팔을 좀 찾아봐달라고 부탁하시죠." (p280)
또한, 흑인 여자아이로서의 마여 앤젤루는 아름답지 않다고 고정관념화된 자신을 이야기한다. 백인은 아름답고 우아한데 반해 흑인은 못생기고 거칠고 투박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그녀에게 자리잡혀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이 어둡고 흉측한 꿈에서 깨어나면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까? 마마가 곧게 펴지 못하게 하는 곱슬머리 대신에 기다랗고 금발인 내 진짜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면 말이다. 모두 내 눈이 너무나 작고 사팔뜨기라서 "아버지가 중국 사람임에 틀림없다"고들 말했는데 본래대로 돌아온 연푸른 내 눈동자를 보면 그들은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매혹당할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내가 왜 남부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으며 저속한 속어를 사용하지 않는지, 그리고 흑인들이 잘 먹는 돼지 꼬리와 돼지 주둥이를 먹으려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백인이었는데 잔인한 요정인 계모가 아름다운 내 모습을 질투해서 나를 검정 곱슬머리에 두 발은 마당만 하고 이와 이 사이가 넘버-2 연필이 들어갈 만큼 벌어진 몸집 큰 검둥이 계집애로 만들어버렸다. (p11)
이 대목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p165~p166에 걸쳐 바로 '이 대목'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야 안젤루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백인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된 과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위 단락 이용) ... 흑인을 "밝은 피부를 지닌" 흑인과 "시시한 흑인"의 두 범주로 나누는 것은 흑인여성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검은 피부를 지닌 여성은 열등한 존재이자 "잘 안 빗어지는 머릿결을 지닌 뚱뚱한 흑인소녀"로 취급된다. (p165~p167, <흑인 페미니즘 사상> 중)
마여 앤젤루는 흑인이기 이전에 여성이었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흑인 애인에게 무참하게 성폭력을 당한 후 4년간 말을 잃었다. 같은 멸시받는 흑인이면서 남성이 여성을 또 폭력으로 억압하는 상황.
"마거리트, 질문에 대답을 해요. 당신이 강간당했다고 말한 그날 이전에도 피고가 당신을 건드린 적이 있었나요?
법정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히 "아뇨"일 거라고 생각했다. 프리먼 아저씨와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나는 애타게 "아뇨"라고 대답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의 슬픈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뇨" 하고 대답했다... (중략) .. "이 늙고 비열하고 더러운 놈아. 더럽고 늙은 놈아." (p113)
아이는 처음에 성추행을 당했을 때 그것을 따뜻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간을 당하고 나서 그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그러니까 자신이 그냥 받아들인 것을 알고 착한 아이가 아님에 실망할까봐 차마 "네"라는 답을 못한 채 "아뇨"를 한 후 소리소리 지른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게 한 강간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내내... 흑인여성은 한편으로는 인종에 대한 충성심과 다른 한편 여성으로서 느끼는 연대감 사이에서 분열을 느낀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억압하는 편을 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녀들은 거의 언제나 여성보다는 흑인인종을 선택했다. 인종의 편을 들면서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자아와 온전한 인간성을 희생한 것이다. (p221, <흑인 페미니즘 사상> 중)
그러나 마여에게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친할머니 마마가 있었고, 어머니 비비가 있었고 플라워즈 부인이 있었고 오빠 베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민한 그녀 자신이 있었다. 마여는 그렇게 스스로 처한 험한 인생살이를 버티고 지켜 나간다. 그녀는 순순히 그렇게 차별받으며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빠가 집을 나가자, 전차 차장이 되기로 결심했으나 흑인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끝까지 투쟁하기로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곁엔 어머니가 있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실패할 때 실패하더라도 한번 시도해야지. 네가 가진 걸 모두 바쳐라. 너한테 여러 번 말했지만 '할 수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으니까. 그 두 가지 말은 의미가 없어."
그 말을 해석하자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고, 또한 인간이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나한테 그보다 적극적인 격려는 없을 것 같았다. (p347)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도 줄곧 얘기하고 있지만 흑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남다르다. 흑인 어머니는 자녀에게 특히 딸에게 좋은 훈육자이자 생존을 위한 보호자라는 말. 마여는 그렇게 어머니에게서 힘을 얻고 그 나름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결국 최초의 전차 회사 흑인 직원이 될 수 있었다. 부라보!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까 사고방식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려서 나 스스로도 이것이 내 모습이 맞나 생각할 정도였다. 폐차장 친구들이 나를 무조건 받아들인 탓에 보통 느끼게 마련인 불안감이 사라져버렸다. 전쟁의 광란이 만들어낸 진흙투성이 집 없는 아이들이 뜻밖에도 나에게 처음으로 형제애라는 것을 가르쳤다. 미주리 주에서 온 백인 소녀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멕시코 소녀, 오클라호마 주에서 온 흑인 소녀와 함께 깨어진 빈 병들을 주워 파는 생활을 하고 나니까 나 자신이 인류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임시로 만들어진 우리의 특별한 공동사회가 보여준 비판 없는 분위기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내 삶에 관용이라는 색조를 낳았다. (p333)
아버지에게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우연치않게 한 달간 노숙을 하면서 (구태여 데려와달라 연락하지 않은 채) 마여는 또 다른 세상을 맛본다. 모든 인종이 가난 속에서 모여 살면서 느끼는 형제애. 그 속에서 관용이라는 것, 일종의 인류애라는 것을 느낀다. 십대 여자아이였지만,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은, 성장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경탄하게 되는 구석이 있었다. 그 아이가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급기야 열 여섯살에 미혼모가 되기를 선택하는 과정 또한 드라마틱하다.
이 책은 자서전 6권 중 첫 번째 권으로 4살부터 16살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도 가장 강렬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흑인이면서 여성이면서 가난한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서, 수없이 많은 장애물을 넘고 마여 앤젤루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 그 성공 스토리를 꼭 말하지 않더라도,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마여 앤젤루의 가치는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자서전이라는 분야를 좋아해서, 여러 사람의 책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재미있고 솔직하고 담대한 책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읽은 수많은 분석과 의견들을 한방에 다 증명해내고 있어서 읽는 내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뒤적거리며 아 이 부분이야 그렇지 이 부분이 현실에선 이렇겠구나 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힘은, 그 어떤 이론서도 뛰어넘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해낸 책이다.
마여 앤젤루의 다른 번역책들도 냉큼 보관함에 넣어둔다. 이런 재치있고 진솔한 글이라면 언제든지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마여 앤젤루의 이후 인생 또한 매우 다채롭고 흥미진진하여 번역이 되지 않았다 해도 자서전 나머지를 원본이라도 사서 읽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