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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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는 내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추리(혹은 스릴러) 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갈등되는 건 처음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 책으로 탄생한 덱스터 모건이라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잔인한 캐릭터이다. 그래서 일단 시선이 머물기는 하는데, 솔직히 읽으면서 계속 시원한 마음은 아니었다. 뭐랄까.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찝찝하고, 불안했다.

제프 린제이의 데뷰작인 이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한마디로 '죽어 마땅한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다. 어릴 때 받은 정신적 상처로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삶은 살 수 없는 괴물을 속에 키우고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 아닌가), 양아버지이자 경찰이었던 해리가 그 재능(이걸 재능이라고 말하다니, 내가 이 책을 넘 열심히 읽은 게 분명하다)을 다른 연쇄살인범들처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악당들만 처치하도록' 훈련을 시켰다. 덕분에 경찰 소속의 혈흔 분석가로 일하면서 남몰래 마음의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조사해두었던 아동성애자라든가, 아동살해자라든가 하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인간같지 않다고 판단되는 인간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선한 사이코패스라고 이름붙여도 될라나(말이 되나..이 단어가..;;;).

그런 덱스터에게 이번 책에서는 도전자가 나타난다. 덱스터의 검은 마음과 합일해서 매춘부들을 죽이고 다니는 연쇄살인범. 똑같은 방식으로 죽이고 피 한방울 남기지 않은 채 토막토막 내어 남겨두는, 그나마 덱스터와의 차이라면 드러내놓고 살인을 한다는 것과 대상이 죄없는 매춘부들이라는 것. 그렇게 해서 덱스터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우선 이 작품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유머감각이다. 이 잔인하고 끔찍한 살인현장의 묘사와 주인공의 음침한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져갔다면, 절대 끝까지 읽을 수 없는 내용이지만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전반에 깔려있어서 조금은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 덱스터의 그 특유의 이죽거림, 상황에 대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냉정한 통찰력과 블랙 유머는 잠깐잠깐 이 사람(!)이 연쇄살인범이고 괴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난 미국 작가의 연쇄살인범 스릴러와는 인연이 안 닿는 모양인지, 보는 내내 쭈욱 불쾌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었다. 살인방법이나 그 분위기(혈흔이 하나도 없는 목에 뭔가를 꽂아둔다는..컥)도 그랬고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도 그랬고 게다가 마지막, 반전이라면 반전인 부분에서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는 감상만 남았다. 아마 이 소재가 사람들에게 어필은 되는 지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 라는 책도 번역되어 나왔다던데, 그걸 볼 것인가는 아직 딜레마라는. 아직까지도 이 덱스터의 캐릭터가 '가슴이 설레고 매력적인 킬러'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걸 보면 앞으로도 흥미를 가질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덧붙이자면, 내 성향이 아니라고 이 작품이 아주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음울함 일색이 아닐 수 있도록 재미있게 쓴 작가의 역량에는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뱀꼬리.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의 삐침이기는 하지만, 난 왜 이 '덱스터'라는 이름에서 '콜린 덱스터'를 떠올리는 걸까. '콜린 덱스터' 시리즈는 정말 이제 영영 안 나오려나. 그게 더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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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7-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린 덱스터 ㅜ.ㅜ 그나저나 저는 유머는 잘 모르겠어요 ㅡㅡ;;;

비연 2007-07-31 11:54   좋아요 0 | URL
유머라고 하기에도 좀 썰렁하긴 하죠..ㅜㅜ 전 그냥 콜린 덱스터가 그리워요..

하이드 2007-08-0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꺄- 저는 책 좀 보다가 드라마 봤는데, 드라마 보고나니, 책도 급비호감;;
저도 모스경감 시리즈가 그리워요오오오

비연 2007-08-01 15:29   좋아요 0 | URL
드라마는 더할 듯 싶네요, 하이드님...ㅜㅜ
모스경감 시리즈는 더 이상 안 나오는 건지..쯔압

Forgettable. 2009-01-1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덱스터가 책이 원작이었다니! 몰랐어요 ㅎㅎ
전 미드로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덱스터가 왠지 [라스베가스]의 주인공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엄청 매력적이라.. 목소리도 너무 좋고.... 동생이랑 같이 보며 얘를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혼란스러워했는데 책에서도 그런 캐릭터라니 재밌네요 ㅋㅋ 왠지 매력적인 연쇄살인범이라니, 미국이란 나라 정말 무섭지 않나요 =.=

그나저나 덱스터모건보다 더 매력적인 콜린덱스터는 누구인가요!

비연 2009-01-16 13:10   좋아요 0 | URL
아. forgettable님^^ 덱스터를 재미나게 보셨군요! ㅋㅋ
전 미드는 안 봤는데, 책은 좀 기기묘묘하더라구요. 재미는 있어요~.
콜린 덱스터는 영국의 추리소설가에요. 아가사 크리스티를 잇는 작가이죠~

2009-01-1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7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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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며칠 새에 두 권째다. 이 책, '붉은 손가락'은 2006년 작품으로 가장 최근의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최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일본 사회의 가정과 고령화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일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겉보기에 매우 평범한 한 가정. 마에하라 아키오는 중년의 회사원이고 18년 전에 결혼한 아내 야에코와 외아들 나오미, 그리고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급박하게 걸려온 아내의 전화에 집에 달려가보니 아들의 손에 죽어 있는 한 초등학교 여자애의 사체를 발견하게 되고, 아들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근처 공원 화장실에 유기하게 된다. 이 살인사건을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그의 사촌동생인 마쓰미야 슈헤이 형사가 조사를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하게 되는데...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마에하라 가족. 시부모가 싫다고 10년이나 시집에 찾아가지 않는 아내,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보려는 노력 없이 쉽게 넘어갈 생각만 하는 남편, 그리고 이런 부모 사이에서 커서인지 가족에게 정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 외톨이인 아들. 아키오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어머니가 도맡아서 수발을 하고 자식으로서의 의무보다는 고민하고 싶어하지 않아 하며 그냥 방치해두는 아키오의 모습이나, 부모는 홀대하고 무시하면서 아들에게는 쩔쩔 매는 야에코의 모습이나 정말 읽을수록 분노와 답답함이 치미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어떻게 해결해주기를 바라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 어이없고 극단적인 설정은 누구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나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런 일들이 그닥 특별한 일도 아니겠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다.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노인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핵가족 시대에 인생을 통틀어 바쳐 키운 한두명의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커서 노인을 귀챦게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 저만치 떨어뜨려 놓고 싶어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흔한 현상일 것이다. 예전처럼 효를 강조한다거나 부모에 대한 의무를 주입한다는 것이 어려워진 요즘같은 경우에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목 '붉은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에서는 정말이지, 노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화와 소통이 없는 가정에서 크는 아이들에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그리고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점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든다. 따라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은, 그저 사건을 해결하고 그 속의 인간관계를 파헤치는 데에 주력을 기울이는 미스터리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 좀더 넓은 영역에 속한 작품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의미있는 책읽기'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마지막 대사는 아직도 내 심금을 울린다. 가가 형사가 남기는 마지막 말. 그 말에 순간 울컥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부모와 자식의 정은, 설명하기도 곤란하고 참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나름의 정을 소통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구나 라는 훈훈한 느낌.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가슴 답답한 소설에서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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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gghhhcff 2007-07-2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 가가형사와 그 아버지 이야기는 가슴 찡~ 한 뭔가를 느꼇답니다. ^_^

비연 2007-07-28 20: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아마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거에요.
그나저나 우아한인삼님, 반갑습니다!^^
 

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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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비교적 초기 작품으로 연쇄살인사건을 10개의 지갑들의 시점으로 풀어쓴 독특한 형식의 글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은, 대단히 정교하고 잘 다듬어진 흐름과 독특한 시선,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치열한 탐색 등이 특징이라고 본다면 이 초기 작품에는 이것이 제대로 갖추어지기 전, 그러니까 태동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두 남녀가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감행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뛰어든 '형사'로 시작하여 용의자 여자를 협박하는 '공갈꾼', 세번째 피살자인 사나에의 조카 '소년', 사나에가 뒷조사를 부탁했던 '탐정', 우연한 '목격자', 네번째 피살자 '죽은 이', 용의자 남자의 절친한 '옛친구', 알리바이를 목격한 '증인', 형사반장의 젊은 '부하' 그리고 드디어 '범인'까지, 그들이 가장 깊숙이 간직하고 늘 들고다니는 지갑들은 각각의 주인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그 이야기들은 교묘하게 연결되어 사건과 해결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만들어가는 솜씨에 역시 미아베 미유키구나 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이런 소설의 경우 잘못 하면 엉성한 플롯과 이음새가 조잡한 구조로 흡인력이 떨어지기 쉬운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미야베 미유키는 '지갑'을 의인화해서 사람의 심리, 행동, 돈, 욕심, 사악함 등등을 쉽게 하지만 심도깊게 파고든다. 옮긴이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그 이후의 글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군데군데 이후에 생각을 발전시켜 소설로 만들었으리라 예상되는 모티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모방범', '화차', '이유' 와 같은 소설들의 아기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신선한 즐거움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지막, 사건을 다 해결한 '형사의 지갑' 부분이 좋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인간의 악한 본성, 허영심, 욕망 등에 대해서 정말이지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내 귀로 듣는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철저하게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늘 일상의 소소한 생활을 충실히 영위해 나가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주인공일 수 있게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저 차갑게 식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좋기 때문이다. '형사의 지갑'에서처럼 남겨진 자들이 서로 의지하며 돌아가는 그 길을 나도 느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상살이에서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헤아려 보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의 줄곧 가지고 있는 관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이후에 나온 그녀만의 예리함이나 세련됨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이 초기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고 읽는다면 나름의 재미와 감동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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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미유키란 이름만으로도 저에게는 굉장한 궁금증을 가져다 줍니다.ㅎㅎ 꼭 보고 싶은 책중에 하나인데.. 자금난으로 아직 만나보질 못하고 있는 책이에요.ㅜ.ㅜ
언젠간 꼭~~ 보고 말테야~~ㅎㅎ

비연 2007-07-29 09:16   좋아요 0 | URL
자금 사정이 빨리 풀리시길..^^
미야베 미유키 글이 계속 번역되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전 행복해지더라구요ㅋ
님도...조만간 꼭 읽어보세요~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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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내게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다. 처음 읽었던 '호숫가 살인사건'은 내용이 파격적이긴 했지만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었고 '백야행'을 읽었을 때는 그 사실적인 묘사와 비참한(난 그렇게 느꼈다) 내용에 한동안 어리둥절했었고 '용의자 X의 헌신'은 아 이렇게 쓸 수도 있겠구나 라는 감탄을 안겼으며 가장 최근에 읽은 '환야'는 사실 조금 실망감이 컸었다. 전반적으로 아주 끌리는 마음으로 고르게 되지는 않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면 장바구니에 사정없이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도 이 책 '숙명'과 '붉은 손가락'을 냉큼 구입하지 않았겠는가.

숙명. 제목이 좋았다. 1990년 작품이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스타일을 확인할 수도 있겠다라는 기대감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트릭을 썼을까 하는 식으로 마술을 구사한 수수께끼도 좋겠지만, 좀더 다른 형태의 의외성을 창조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기에 이번에도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독특한 작품을 발견할 지도 모르겠구나 했다. 그리고 아주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가에 대해 이해하면서, 나쁘지 않은 마음이었던 듯 하다.

이야기의 두 축은 유사쿠와 아키히코이다. 초등학교 같은 반 동급생이었던 둘은 사사건건 경쟁 상대였다. 아버지가 경찰이고 어디서나 리더의 기질을 발휘하던 유사쿠는 말없고 냉정하며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아키히코에게 늘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같이 졸업하고 대학에 올라갈 때 아키히코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의사의 길을 선택하고 유사쿠는 그렇게도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낙방과 아버지의 병으로 결국 경찰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중, 아키히코의 회사 중역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통해 그 둘이 맞닥뜨려지게 된다. 그러면서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운명의 끈들이 차분하게 전개되는데...

이 이야기는 따라서 누군가가 살해되고 그 범인이 누구이며 그 동기가 무엇인가가 촛점이 아니다. 유사쿠와 아키히코라는 동갑내기 두 남자의 운명과 그들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더 크다. 하나의 살해사건을 통해 얽히고 맺어지는 그들의 삶이 참 녹녹하지 않게 다가오고, 마지막 몇 장에서 그 모든 비밀이 드러날 때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아연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을 선전할 때 계속 말하고 있지만, 정말 '마지막 장은 절대 먼저 읽어서는' 안되는 책 중에 하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양한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사실 미스터리 자체에 대한 관심 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들, 그들의 본성, 운명과 같은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 보인다. 대부분이 상상하기 힘든 주제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면서 무리수를 크게 두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대단히 잘 짜여진 구도와 전개, 속도감 등이 책을 한번 들면 쉽사리 놓지 못하게끔 하는 재주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좀더 최근의 작품을 먼저 읽어본 사람들은 아마 이 책이 맛으로 따지자면 좀 싱겁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파격적이지 않으면서도 충격적인 결말이라는 점은 그의 경향과 거의 일치하지만, 아직 초반 작품이라 그런지 매우 번뜩이는 글솜씨라는 측면에서는 최근 것에 비해 덜하기는 하다. 하지만, 난 양념이 많이 안 들어간 슴슴한 음식을 먹는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어쩌면 많이 유명해진 작가들의 작품들은 기교면에서 너무 기름칠한 것처럼 매끄러워서 감당하기 버겁다는 느낌을 가끔 가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추천할 만 하다. 다만, 결말이 좀 비약적이라는 것이 약간 걸리는 부분이긴 하다.

아. 난 책을 살 때 북디자인을 보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북디자인이 참 맘에 든다. 파울 클레의 '계획'이라는 작품인 모양으로, 책 내용과도 잘 부합되고 디자인 자체도 괜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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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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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코미조 세이시가 좋다. 영국엔 아가사 크리스티가 있듯이 일본엔 요코미조 세이시가 있어서 부럽다. 무엇보다 서양의 고전을 능가하는 자국 미스터리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노력에 진지한 감동을 느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아무리 바빠도 다 제쳐두고 사서 읽게 된다. 1902년 태생이니 그가 작품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참 오래전이다. 아니 시간적으로 오래되어서는 아니고(고작해봐야 50년 안팎 아닌가?) 그 동안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너무나도 많이 변화해서 전후의 그 모습들이 몇 백년 전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미조 세이시의 글은 흡인력이 있다. 지금 읽어도 하나 어색하지 않다.

특히나 이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작가가 대단히 정성을 기울인 기색이 역력한 작품이다. 기존에 나왔던 '옥문도'나 '팔묘촌'과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플롯으로 전개되면서도 한층 심화된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일 게다.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귀수촌의 공놀이 노래'라는 무시무시한 민간 노래에 따라 귀수촌의 아가씨들이 하나 둘씩 무참하게 살해되는 이야기로, 여기에는 감추어진 가족의 비밀이 있고 그로 인한 아픔이 있으며 사건이 지속되면서 하나둘씩 그 진상들이 밝혀지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이전의 작품들과 좀 다른 것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잔인함과 소름끼침이 더해지기 보다는 슬픔과 연민이 깊어진다는 것일 게다. 뭐랄까. 살인자의 마음을, 심정을 이해한다고 한다면 좀 우습겠지만, 그(혹은 그녀)의 인생과 주변 인물들의 아픔에 일말의 동감이 간다고 해야할까.

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느낀다. '쇼와'로 시작하는 그들의 연대 읽는 방법부터, 패전 후의 피폐함, 전통과 현대의 부딪힘, 그 속에서의 사람들의 갈등,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민간의 여러가지 관습들 등을 보면서 이 추리소설이 꼭 일본의 추리소설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재삼 발견하곤 한다. 가끔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리소설이 있다면 하는 생각도 가진다. 우리나라를 느낄 수 있는 추리소설. 참 멋지지 않을까.

팔묘촌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너무 미진하여 실망했었다면 이 작품 '악마의 공놀이 노래'로 다소 풀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서 긴다이치 코스케는 여전히 처음부터 짐작은 하지만 연쇄살인은 막을 수 없는 탐정으로 나오지만(사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이런 플롯으로 진행되곤 한다) 전체적인 얼개를 구성해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예의 그 뛰어난 추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도 긴다이치 코스케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더더군다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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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7-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빨리 보고 싶어요 ㅠ_ㅠ

비연 2007-07-20 20:58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지금 바로 보세요..아마 못 놓으실 겁니당^^

오월의시 2007-07-22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비연 2007-07-24 23:59   좋아요 0 | URL
까탈이님..반가와요^^ 꼭 보시길 권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