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라는 게 여행하고는 좀 달라서 약간의 긴장감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고 집에 돌아오면 갑자기 피로가 엄습한다. 그다지 강행군도 아니었던 이번 출장 - 이번이 이 프로젝트 시작하고 세번째 하노이 출장인데 그나마 가장 쉬웠다 - 도 예외는 아니었고, 결국 주말 내내 푹 쳐져 있었다. 책 한글자도 제대로 못 읽은 주말이었구나, 일요일이 저물어가는 지금, 갑자기 서러움으로 밀려온다.
사실 할 일은 많았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들도 있어서 어제 오늘 했어야 했는데,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지내 버렸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지 뭐 이런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잘 쉰 것 같다. 오늘은 밀린 청소와 빨래, 설겆이까지 다 해치우고 반신욕을 하는 호사를 누린 후 라면을 끓여 한 사발 다 먹은 것에 더해 밥까지 한 공기 알차게 말아 먹은 후 졸았다. 이것이 다 살로 가겠지 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쩌랴. 내 몸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그냥 편하게 두련다 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동료 중 하나가 "어? 주모군의 카톡이 해킹당해서 실검 1위 네요."할 때까지만 해도 이게 뭔 소리인가, 또 연예인 계정 해킹해서 난리치는 애들이 있구나 라는 정도의 감상이었다. 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실검 1위 뜨자마자 싹 삭제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내용들이 캡쳐되어 떠도는 내용을 접하고 나서는...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얘네 제정신인가. 라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졌더랬다. 이제 네*버나 다*에서는 그냥 해킹되었다고만 뜨고 명예훼손 소송 걸겠다는 얘기만 남아서 이해 못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얘네 카톡 내용이.. 무슨 여성을 자기네 노리개로 취급하는 유치발치저질의 내용이어서 보고 있자니 오바이트가 쏠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내용보다 더 충격적인 건 (대부분이 남자로 예상되는 자들의) 댓글들이었다. 이러한 사안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 민낯을 확인하는 게 상당히 괴로왔다. 여성이 대상이라는 것만을 집중해서 볼 것이 아니라, 이건 그냥 인권의 문제다. 여성들의 얼굴이 가려지지 않고 다 노출되었고 그 내용도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며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희롱, 착취, 매매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성욕의 문제로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나라와 이 지구에서는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지만, 그 사건들이 시민권 문제나 인권 문제로, 혹은 위기로, 혹은 하나의 패턴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폭력에는 인종도 계급도 종교도 국적도 없다. 그러나 젠더는 있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p37
덕분에 주말이 피곤에 더해 씁쓸함으로 지속되었다. 역사는 지속되고 있고 소위 발전이라는 걸 한다는데 어째서 이 부분만큼은 이리도 더디고 이리도 뿌리깊은 편견이 없어지지 않고 이리도 제멋대로인지, 도대체 발전하는 게 맞는 건지, 발전이라고 하면 어떤 분야의 발전인 것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 일요일 마저 쉬고 내일을 준비해야 겠다. 참, 여러가지로 피곤한 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