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산더미인데, 컨디션 난조로 토요일도 그렇고 일요일도 그렇고 거의 11시쯤 일어났다. 원래 느즈막히까지 자면 더 안 좋아지는 게 컨디션인지라 주말 내내 허덕허덕. 밥도 어중간하게 두 끼만 먹었더니 속이 아직까지 더부룩하다. 오늘 아침엔 병원에 정기검진 갈 일이 있어서 고구마에 우유를 먹고 왔고 점심엔 왕돈까스. 먹는 게 영 '영양스럽지' 못하다.
어제그제 누워서 재미도 없는 <린다살인사건의 린다>를 읽었다. 그냥 읽지 말까 하다가 도대체 이게 결말이 어떻게 나려고 이렇게 전개를 하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읽었다. 벡스트룀 경감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불쾌한 유형인데, 이런 부패하고 저열한 형사도 있다는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걸까. 대개의 추리소설이나 경찰소설에서는, 이 정도로 불쾌한 캐릭터를 만들 때는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사건해결은 잘 해' 뭐 이런 구성인데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끝까지, 업무 후 술 먹기, 회사돈으로 빨래하기, 여자만 보면 딴 생각하기, 맘에 안 들기만 하면 '게이'니 '레즈비언'이니 하는 말들을 상스럽게 하거나 생각하기 등등으로 일관해서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 라는 생각을 내내 하게 했다. 사건 해결도 못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으니 나중엔 좌천... 다음 편엔 부활.. 한다니 아 정말. 다음 건 안 읽을 거고, 이 책은 바로 중고로 내놓을 작정이다.
누워서 또 한 일은 넷플릭스 보기이다. 이 늪과 같은 것은 나로 하여금 보고 싶은 드라마가 딱히 없어도 뭐라도 보기 위해 헤매 다니게 하는 마력이 있어서 요즘 나는 뜬금없이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있다. 책으로는 읽은 적이 없지만,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나쁘지 않았어서 한번 볼까 했던 게 계속 보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총 16회인데 벌써 12회까지 보았다. 아 요물이야 요물. 넷플릭스를 끊어야 하나.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이생각 저생각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앞 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고아라가 맡은 박차오름 판사를 보면서 그 혈기가 부럽기도 하지만, 이제 나이가 그것보다는 한참 들어버린 사회생활에 찌들은 나는... 아 저래서 해결난다면 그건 드라마라서야.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함께 흥분하고 함께 덤비겠다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저 사람도 사정이 있을텐데, 좀더 신중하면 좋지 않을까, 저런 정의감 힘들어..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회에서 해결안되는 거니까 책과 드라마에서 시원하게 해결되는 걸 보는 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나도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들어버렸나보다. 박차오름 판사의 입장보다, 그 앞에 서 있는 정의롭지 못한 인간들의 사정을 살펴보게 되다니.
또 어찌 달리 생각하면, 나도 옛날엔 저랬는데 싶어서 좀 씁쓸하기도 하고. 나이가 든다는 건 좋게 말하면 세상을 두루두루 살피게 된다... 가 되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래저래 무관심해진다.. 의 의미인 것 같다. 안되는 것을 굳이 우겨서 할 에너지도 없고 정의가 꺾이는 것을 흔히 보는 지라 내세울 정의감도 희미해지고... 일천한 내 자리 하나 보전하려고 이러고 사는가 싶어, 사실 드라마 보면서 좀 울적해지기도 했다. 덕분에 냉장고에 있는 맥주만 들이키게 되더라는. 그래서 내가 주말에 먹은 맥주가 몇 캔이더라... 흠흠. 뭐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까 요는, 지난 주말에 재미도 없는 책을 읽고 괜히 헛헛함만 일으키는 드라마를 보았다, 이 애기이다. 할 일을 전혀 안 해서 이번 주는 좀 피곤하게 생겼다. 지난 달에 여행가느라 못 다닌 수영도 재개해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문유석 판사가 이번에 새 책을 내었다. <쾌락독서>. 제목이 맘에 드는데 한번 볼까나. 근데 이 분, 바쁠텐데 정말 열심히 글을 쓰신다. 비연, 불평불만만 많고... 좀 배워라.